최고의 배우이자 열정의 카레이서 - 할리우드 스타 폴 뉴먼의 레이싱 인생
2008-11-17  |   14,198 읽음

배우이자 감독이었고 제작자이면서 운동가, 성공한 사업가인 동시에 자동차경주를 즐기던 스크린의 전설 폴 레너드 뉴먼(Paul Leonard Newman) 이 오랜 암 투병 끝에 9월 26일 미국 코네티컷 주 웨스트포트의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1925년 1월 26일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뉴먼은 최고의 배우이자 자동차경주대회를 여러 번 석권한 훌륭한 카레이서였다.

54년 스크린에 데뷔한 뉴먼은 69년 자동차경주에 관한 영화 ‘위닝’을 찍으면서 레이싱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평생 허영과 사치로 물든 할리우드를 비판했던 그는 “레이싱이야말로 내가 할리우드 쓰레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40대에 자동차경주에 처음 발을 들인 그는 프로 레이서의 수준급 실력을 자랑했다.

카를 하스와 손잡고 명문 뉴먼하스팀 창단
아마추어 생활을 거쳐 76년 프로 레이서로는 처음 SCCA 내셔널 챔피언십 트럼프 TR-6 종목에서 첫 우승컵을 안았다. 레이서로서 변신을 거듭해 가며 좋은 성적을 올린 그는 프랑스에서 열린 79년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포르쉐 935 경주차로 참가해 2위를 차지했다. 82년 SCCA 트랜스암 프로페셔널 시리즈와 95년 데이토나 24시간 내구레이스 우승컵을 거머쥐어 레이서 폴 뉴먼으로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데이토나 24시간 내구레이스 우승으로 기네스북에 ‘최고령 우승 레이서’ 기록을 남기기도 했던 뉴먼의 변신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걸 생생하게 일러주었다. 뉴먼은 80세가 되던 2005년 미국 데이토나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출전해 다시 한번 깜짝쇼를 연출했다. 그는 앞서 테스트를 하다가 실버스톤/뉴먼 경주용 포드 크로포드 경주차에 불이 나 큰 사고를 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해 3월 11일 ‘AP’와의 인터뷰에서 평생 열정을 바쳤던 연기와 자동차경주에서 은퇴할 뜻이 있음을 밝힌 폴 뉴먼은 8월에 열린 SCCA 내셔널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시보레 콜벳 경주차에 자신의 나이와 같은 80번을 달고 출전해 고별전을 치렀다. 2006년에 경주차를 의인화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카’에서 왕년의 경주용 자동차 돈 허드슨 박사 목소리로 출연한 뉴먼은 지난해 “기억력과 자신감, 창의력이 퇴화하고 있다”며 영화와 자동차경주에서 모두 은퇴했다.

뉴먼은 카레이서뿐 아니라 레이싱팀 오너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82년 룰라 수입업자이며 기업가인 카를 하스와 손잡고 뉴먼하스를 창단해 챔프카 월드 시리즈(F1과 어깨를 나란히 한 포뮬러카 레이스)에 출전했다. 뉴먼하스는 챔프카 역사상 가장 성공한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창단 이후 챔프카 107승과 100회 폴포지션(PP), 8차례의 타이틀을 기록했다.

한편 노배우는 지난 8월부터 죽음을 대비해 자신이 소유한 레이싱팀을 비롯, 사업을 정리했다. 그가 자동차경주에서 이긴 부상으로 탄 레이싱 넘버 82번의 페라리 스포츠카를 오랜 친구에게 주었다고. 첫 부인과 사별한 뒤 두 번째 부인인 조앤과 50년간 해로한 뉴먼은 두 번의 결혼으로 1남 5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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