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모터스포츠 분야에 불어 닥친 전기화 바람
2020-02-20  |   15,623 읽음

ELECTRIC / 모터스포츠

조용하게, 하지만 강력하게 

모터스포츠 분야에 불어 닥친 전기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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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거리가 짧고 조용한 전기차는 모터스포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의 대세가 빠르게 전기차 쪽으로 기울면서 모터스포츠 역시 그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벌써 6번째 시즌을 맞은 포뮬러E는 거대 자동차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투어링카와 랠리 등다양한 분야에서 전기차 클래스를 신설하는 중이다.


모터스포츠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승리를 위해, 스피드를 위해 안락함이나 소음, 배출가스 같은 것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귀를 찢을 듯한 소음이나 배기가스의 메케한 냄새는 매력으로 여겼다. 그렇기에 환경운동가와 민원인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환경문제가 범지구적인 문제로 떠오른 만큼 모터스포츠 바닥 역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계속 엄격해지는 환경규제 때문에 내연기관 차는 점점 판매하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자동차 시장의 주류가 전기차로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모터스포츠계 역시 분주하다. 포뮬러 E는 벌써 6번째 시즌을 맞았고, 투어링카와 랠리는 전기 클래스가 신설될 예정. 관련기술 발전에 따라 배터리의 짧은 주행거리등 단점도 점차 개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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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 E 덕분에 무려 63년 만에 스위스에서 모터스포츠 경기가 열렸다. 사진은 2018년의 취리히 E프리


포뮬러 E, 전기차 레이싱의 최고봉

모터스포츠 세계에 전기차 바람을 몰고 온 것은 포뮬러 E다. 2014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막전을 치렀으며 정식 명칭은 ABB FIA Formula E Championship. 지난해 11월에 6번째 시즌인 2019-2020 시즌이 시작되었다. 포뮬러 E는 간단히 말해 모터와 배터리로 움직이는 포뮬러카. F1의 EV 버전이라고 할까? 유명 서킷 대신 도시 거리를 무대로 삼는다. 무공해와 저소음이라는 전기차 특유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무대다. 스트리트 서킷은 노면이 거칠고 교통 채증을 유발하지만 접근성이 좋아 관중을 모으기에 좋다. 가을에 시즌을 시작해 이듬해 여름에 마감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게다가 시내에서 경기를 치르니 서킷 스케줄에서도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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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E프리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릴 예정


포뮬러 E의 등장은 의외의 결과를 불러왔다. 스위스가 모터스포츠계에 복귀한 것이다. 스위스는 1955년 르망 24시간에서 있었던 대참사에 충격을 받아 자국 내 자동차 경주를 금지시켰다. 그런데 2017-18 시즌 취리히, 2018-19 시즌에는 베른에서 포뮬러 E가 열렸다. 1982년에 F1 스위스 그랑프리가 있었지만 실제 경기가 열린 것은 프랑스 디종이었다. 따라서 2018년 취리히 E프리는 스위스 영토에서 무려 63년 만에 열린 자동차 경기였다. 로마와 파리, 뉴욕 같은 유명 도시들도 포뮬러 E를 유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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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라는 특성을 살려 도심에서 주로 경기를 치른다


경기 진행방식

F1에서 단일 경기를 그랑프리라고 부르는데, 포뮬러 E에서는 E프리(E-Prix)라는 표현을 쓴다. 하나의 E프리는 전날의 셰이크다운을 제외한 자유연습, 예선, 본선 모두가 하루에 이루어진다. 셰이크다운에서의 출력은 110kW로 제한된다. 연습주행은 레이스 당일 오전에 45분과 30분의 두 세션으로 진행하며, 더블헤더 2차전일 경우에는 45분 단일 세션이다. 이때는 본격적으로 트랙을 돌며 승부 전략을 구상하며 최대 출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예선은 1시간의 세션에서 챔피언십 순위에 따라 4개 그룹으로 나눠 치른다. 여기에서 상위 6명을 제외한 모든 드라이버의 포지션을 결정한 후마지막 ‘슈퍼 폴 슛아웃’을 진행한다. 한 명씩 랩을 돌아 그기록으로 상위 6개 그리드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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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스파크 섀시에 르노 파워트레인을 얹은 경주차를 동일하게 사용했다


본선 레이스는 45분간이다. 제한시간이 끝나면 1위가 결승선을 지나는 순간 마지막 랩이 시작되며, 그 후 들어오는 평범히 달려 완주할 거리지만 과격한 주행이 전기를 빠르게 소모시켜 28kWh 배터리로는 완주가 불가능했다.


내연기관이라면 피트로 돌아가 급유를 하겠지만 배터리 교체나 충전은 재빨리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같은 차를 한대 더 준비해 갈아타는 편법을 썼다. 2018-19 시즌부터 도입된 신차는 배터리 용량이 28kWh에서 54kWh로 늘어나 경기 도중 차를 갈아타는 생경한 광경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어졌다.


당초 계획으로는 배터리도 점차 독자개발로 바꿀 예정이었지만 아직은 같은 제품을 쓴다. 전기차의 성능과 직결되는 배터리 개발이 자유화되면 과열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대형 메이커 위주로 개발비가 폭등하면 참가팀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에 당분간은 배터리를 규제하기로 했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가 주목하다

포뮬러 E가 출범한 2014-2015 시즌에는 대형 자동차 메이커 참여가 많지 않았다. 르노와 마힌드라 정도가 있었을 뿐. 아우디도 아직은 압트(Abt)를 통한 세미 워크스 체제였다. 하지만 이후 재규어와 닛산, BMW가 참가하고 아우디도 르망 대신 포뮬러 E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2019-2020 시즌은 기존 HWA가 메르세데스-벤츠 워크스로 승격되었을 뿐 아니라 포르쉐가 합류함에 따라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BMW, 포르쉐, 닛산, 재규어 등 자동차 시장의 큰손들이 맞붙는 역대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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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경주차는 디자인이 크게 바뀌었고, 배터리 용량이 늘어 경기 도중 갈아탈 필요도 없다


순서대로 순위를 매긴다. 출력은 평상 시 200kW로 제한되며 상황에 따라 부스트를 사용할 수 있다. 포뮬러 E에 참가하면 예선 또는 경기 중, 또는 파르크 페르메에 들어갈 때나 자동차 점검 시간 동안 충전은 금지된다. 모든 참가 팀은 세션 사이와 연습 중에만 충전할 수 있다.


전기로 달리는 포뮬러

섀시는 모두 동일하다. 처음에는 섀시부터 모터와 배터리까지 모두 같은 원메이크 레이스였지만 지금은 모터와 변속기를 각자 개발해 쓴다. 초기에 사용된 경주차는 프랑스의 스파크 레이싱 테크놀로지에서 섀시를, 동력계는 르노가 공급했다. 2018-2019 시즌부터 투입된 신형 섀시(Gen2)는 독특한 외형으로 주목을 받았다. 1인승 포뮬러임에도 불구하고 앞뒤 바퀴를 덮는 카울로 공기저항을 최소화했고, 리어윙은 작게 줄이는 대신 디퓨저로 다운포스를 확보했다. 섀시는 이탈리아의 달라라에서 만들었다. 250kW로 늘어난 출력(구형은 200kW) 덕분에 최고시속이 280km로 높아짐에 따라 한층 속도감 넘치는 경기가 되었다. 포뮬러 E의 숙제는 배터리 사용 시간이다. 급가속과 급제동을 반복하는 레이스는 배터리에게 있어 최악의 사용 조건이다. 


레이스 길이는 80~100km 정도로 일반적인 양산 전기차가 개최지는 이번 시즌 모로코와 스위스, 홍콩이 빠지고, 영국 런던과 사우디아라비아 디리야가 더블헤더로로 바뀌었다. 아울러 인도네시아(자카르타)와 한국(서울)이 신설되었다. 서울 E프리는 초기에 광화문 인근이 검토되다가 잠실종합운동장으로 결정되었다. 야구장 옆에서 출발해 올림픽 주경기장 내부를 돌아 나와 동문을 빠져나온 후, 백제고분로-올림픽로를 달려 남문으로 되돌아오는 구성이다. 지난 12월에는 글로벌 홍보 모델로 BTS를 선정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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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사진)와 포르쉐까지 가세하면서 포뮬러 E는 거대 기업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2019~2020 시즌은 듀얼 모터가 금지되고 어택 모드를 사용할 때 기존의 사용 제한인 225kW에서 10kW 늘어난 235kW의 전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운전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더 치열한 휠-투-휠 레이싱이 가능하다. 어택 모드는 풀 코스 황기 혹은 세이프티카 상황에서는 금지된다. 또한 이런 서행 상황에서는 에너지 소비를 제한하는 시스템이 전기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세계의 전기차 레이싱 대회

포뮬러 E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전기차 클래스를 신설하거나 전기차 전용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재규어 I-페이스 E트로피는 포뮬러 E의 서포트 레이스로 열리는 원메이크 시리즈로 2018-2019 시즌에 처음 열렸다. 양산차인 I-페이스 기반의 경주차는 325kW(442마력)의 출력에 90kWh 배터리가 사용되며 알루미늄 모노코크는 안전규정에 맞추어 롤케이지로 보강했다. 프로(Pro), 프로-암(ProAm), 게스트(Guest)의 3가지 클래스 중에서 프로와 프로-암 드라이버만 챔피언십에서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포뮬러 E는 무공해와 저소음을 장점으로 도심 도로에서 경기를 벌이는 만큼 양산 전기차를 사용하는 I-페이스 E 트로피는 서포트 레이스로 찰떡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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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은 힐클라임 전용 ID R을 개발해 파이크스피크 힐클라임 역대 최고 기록을 달성했다


랠리 쪽에도 전기화 움직임이 활발하다. 랠리카는 대부분 양산차를 사용하는데, 요즘 양산차는 대부분 플랫폼 개발단계부터 전기차를 염두에 두고 만든다. 프랑스의 아이스 레이싱 시리즈인 안드로스 트로피(Andros Trophy)는 2007년부터 전기차를 실험해 2010년에 정식으로 클래스를 추가했다. 프랑스 엑사곤이 개발한 랠리카는 2019-2020 시즌부터 내연기관을 밀어내고 독점 출전할 예정이다.


WRC가 하이브리드 도입을 공표한 가운데 오펠에서는 코르사 전기차를 사용하는 원메이크 랠리카 시리즈 오펠 코르사 e-랠리컵을 열기로 했다. 양산형을 살짝 다듬은 랠리카는 130마력 모터에 50kWh 배터리를 조합했으며 서스펜션과 브레이크를 보강하고 토센 디퍼렌셜을 달았다. 도로형의 스펙상 주행거리는 290km지만 과격한 랠리 주행에서는 훨씬 짧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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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 I-페이스를 사용하는 전기차 원메이크 시리즈 E트로피는 포뮬러E의 오프닝 이벤트로 열린다


바이크 분야에서는 만섬 TT(Isle of Man TT)에 2011년부터 전기 클래스(TT Zero)가 신설되었다. 월드 챔피언십인 모토E 월드컵(MotoE World Cup)은 전기 오토바이만의 서킷 레이스 시리즈로 2019년 출범되었다. 3월 헤레즈 서킷에서의 테스트때 충전 중이던 바이크가 불타면서 시설까지 불이 번지는 바람에 일정에 큰 차질이 있었지만 올해는 예정대로 7전으로 열린다. 순수하게 승리를 위해 전기차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적인 힐클라임 경기인 미국 파이크스 피크 힐클라임(PPHIC)에서는 전기차가 내연기관을 넘어섰다.


지난 2018년 로맹 뒤마가 폭스바겐 ID R을 몰고 마의 8분 벽을 돌파(7분 57초 148)했는데, 세바스티앙 로브의 이전 기록을 무려 15초나 단축했다. 힐클라임 전용으로 개발한 ID R은 앞뒤 2모터로 500kW(680마력)를 낸다. 20km로 경기 구간이 비교적 짧고 오르막길에 코너가 많은 힐클라임은 초반 가속이 좋은 전기차에 유리하다. 게다가 공기가 희박한 고지대에서 내연기관과 달리 출력저하가 없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간 PPIHC에서는 전기차가 눈에 띄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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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뮬러 E 닛산 드라이버인 세바스티앙 부에미(사진)처럼 레이서 유입도 점차 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부는 전기화 바람

이밖에도 전기차는 다양한 모터스포츠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2017년 1월 파리-다카르 랠리에서는 순수 전기자동차가 아르헨티나-파라과이, 볼리비아를 통과하며 전체 9,000km 코스를 완주했다. 도전 3년 만에 달성한 완주였다. 스페인 에너지 기업 아치오나가 제작한 이 차는 250kW모터로 구동되며 긴 경기구간을 고려해 6개의 배터리 모듈로 150kWh의 용량을 확보했다. 또한 지붕에는 솔라셀을 달아 전기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 모았다. 월드 랠리크로스 챔피언십(World RX)은 내년부터 클래스를 신설한다. 원래 올해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연기되었다. 섀시는 오레카가 제작하고 250kW 모터 2개와 윌리엄즈가 제작한 배터리팩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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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 투어링카 클래스인 ETCR 출범에 맞추어 현대와 세아트가 신차를 선보였다. 사진은 현대의 벨로스터 N ETCR


투어링카 쪽에서는 ETCR이라는 이름의 전기차 투어링카 시리즈가 올해 출범한다. TCR 시리즈의 전기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난해 현대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했던 벨로스터 N ETCR이 바로 이 경기를 위한 경주차다. 겉보기에는 벨로스터에 오버펜더를 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뒷바퀴를 굴리는 후륜구동 모델. 전기차는 내연기관에 비해 구동계 배치가 자유롭다. 이밖에 쿠프라(세아트)도 경주차를 공개했다.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남에 따라 레이서 유입도 늘고 있다. 올 시즌 포뮬러 E에서는 장에는 에릭 베르뉴와 루카스 디그라시, 세바스티앙 부에미, 제롬 담브로시오, 스테판 반도른 등 F1 출신 드라이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페라리 드라이버였던 펠리페 마사도 벤추리 레이싱에서 활약하고 있다. 배터리의 발전과 전기자동차의 발전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성장을 거듭했다. 아직은 낯설고 단점도 여전하지만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다. 전기차가 자동차 시장의 주류로 올라설 때쯤이면 전기차 특유의 문제도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전기 경주차가 모터스포츠의 주류로 올라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d271909ebf083d272450c62267293437_1582173047_4057.jpg글 변성용 기자 


d271909ebf083d272450c62267293437_1582173047_4281.jpg자동차생활TV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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