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공학과 산업 기술 덕후들을 위한 공간, Technik Museum Speyer
2019-06-20  |   10,700 읽음

기계공학과 산업 기술 덕후들을 위한 공간

Technik Museum Sp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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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라는 나라는 어디를 가도 깨끗하고 정돈된 분위기다. 규칙에 대한 엄격함, 모든 게 딱딱 맞아 떨어지는 사회구성을 보면 독일 사람들이 기술이나 기계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은 항공기와 선박을 비롯해 자동차와 우주왕복선까지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기계에 관한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있는 곳이다. 


사실 독일의 기술 발전은 유럽에서 그다지 빠른 편은 아니었다. 여러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쌓인 노하우가 20세기 중반을 넘어서면서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에야 ‘믿고 쓰는 독일제’ 라는 말이 있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국의 기술 발전에 비해서는 시작은 늦은 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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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도 각종 항공기가 전시되어 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볼거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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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는 산업 발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존재다 


오죽하면 2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인기 미드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는 ‘아직도 말을 타고 다닌다니’ 라는 대사가 나올 정도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독일의 기술 발전은 상당수가 전쟁 이후 경제를 재건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 것이 많다. 과거야 그렇다 치고 현재 기술과 산업에서 독일은 여러모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앞서 있다. 산업 기계와 자동차를 포함해 복잡하고 똑똑한 전자장비까지, 일단 독일 제품은 그야말로 믿고 쓰다는 말에 가장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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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의 기계식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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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경쟁을 위해 태어난 드래그용 퍼니카 


기계 덕후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

메르세데스-벤츠의 고향이라 불리는 만하임에서 서쪽으로 약 25km에 위치한 슈파이어는 독일의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 박물관이 있는데, 바로 기계 덕후라면 한 번쯤 들르게 된다는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이다.

진즈하임 기술 박물관(자동차생활 2015년 12월호 게재)과 더불어 독일의 기술 발전의 역사를 총망라해놓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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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포함한 광학 기술 역시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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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디자인의 클래식카 스티어링 휠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두 곳은 모두 같은 기업에서 운영한다. 규모로 보면 1981년 문을 연 진즈하임 쪽이 더 크지만 슈파이어는 보다 대중적이고 생활에 밀접한 내용이 많다. 진즈하임의 상징은 냉전시대 아이콘이라 불리는 자유진영의 콩코드와 공산진영의 투폴레프 Tu-144이다. 반면 슈파이어는 보잉 747과 러시아의 우주왕복선 부란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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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방차는 슈파이어의 소장품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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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기술은 전쟁을 겪으면서 발전해 왔다. 반면 독일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매우 조심스럽다 


1994년 문을 연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은 22m×27m 크기의 아이맥스 영화관, 50대가 넘는 항공기, 100여대의 자동차와 20여대의 오르간을 비롯해 잠수함과 선박 등 2004년 기준총 2,000점이 넘는 소장품이 15만m² 공간에 빼곡하다. 오래된 격납고를 개조한 실내 전시 공간과 항공기와 선박이 즐비한 야외 전시 공간 외에도 러시아의 우주왕복선인 부란과 항공우주 발전사를 다룬 특별 전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새 폐장 시간이 다가올 정도로 볼거리가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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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 상점과 박물관을 나누는 푯말. 여기를 지나면 재입장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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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차는 아예 통으로 가져다 놓았다. 철도 관련 자료도 상당하다 


진즈하임과 가장 큰 차이는 대중적이라는 점이다. 진즈하임의 소장품이 전쟁과 인간의 욕망에 초점이 있다면 슈파이어의 소장품은 보다 대중적이고 기술 발전에 대한 쉽게 이해할 수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두 곳모두 둘러보는 것이 좋겠지만 어느 쪽을 가더라도 기대 이상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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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핫 로드의 인기는 독일 내에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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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크게 세 곳으로 구분된다. 가장 중심이 되는 실내 전시장, 항공기와 선박, 잠수함으로 가득 찬 야외 전시장, 우주왕복선 부란을 중심으로 꾸며진 항공우주 전시장 등이다. 항공기와 자동차는 사실 다른 소장품에 비해 흔한 편이다.

그러나 슈파이어에 있는 항공우주 전시장은 소장품이나 전시 수준이 웬만한 항공 박물관에 못지않다. 부란이 있는 공간은 그야말로 거대한 격납고를 연상케 한다. 부란을 중심으로 그 동안 인류가 시도해온 우주로 향하는 도전의 흔적을 상세하고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동선이 복잡하고 일관성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구성 자체는 관람객의 편의를 고려한 부분이 많다. 빡빡하게 전시된 소장품은 관람객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디를 봐도 볼거리가 풍성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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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의 전시차는 시대상을 반영한 전시 컨셉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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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747은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다. 점보 제트기는 대륙간 이동 수단의 혁명을 가지고 왔다 


항공기와 선박, 잠수함이 가득한 야외 전시장도 재미가 쏠쏠하다. 슈파이어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보잉 747을 비롯한 몇몇 항공기는 내부를 직접 둘러 볼 수 있다. 기억에 남는 건 안토노프 An-22 수송기다. 나름 항공기 쪽도 관심이 큰 지라 슈파이어에 있는 항공기는(주로 전투기) 대부분 익숙한 것들이 많았다. 한때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했던 안토노프 수송기의 내부에 들어가면그 크기와 규모에 놀라게 된다. 1950년대 개발 당시부터 세계 최대 수송기가 목표였으며, 미국의 C5 갤럭시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자리를 지켰다. 전차를 비롯해 장갑차 등 총 80톤을 수송할수 있는 An-22는 68대가 생산되었으며 군용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일부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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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럽과 전 세계의 하늘을 지키던 퇴역 전투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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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에 이 전투기들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지금은 사이좋게 한 공간에서 여생을 마무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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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용했던 구조선(SAR)도 내부를 관람할 수 있다. SAR은 Search and rescue의 약자이다.


보잉 747이나 안토노프 An-22에 비해 주목도는 떨어지지만 전시장 뒤편에는 비운의 항공기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은 보잉 737의 대항마로 개발된 닷쏘 메르큐어이다. 1960년대 민간항공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공하면서 상업용 항공기 개발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에 등장한 메르큐어는 당시 유럽에서는 굉장히 큰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프로토타입 2대를 포함해 12대만 생산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기체이다. 손익 생산 대수는 120대였고 예상 생산 대수 400대의 거대한 프로젝트였지만 경제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1975년 생산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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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스포츠의 천국이라 불리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경주차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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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이 개발한 사브 J35 드라켄 전투기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은 실험 정신과 도전 정신에서 출발해, 기술 경쟁 시대를 거쳐 살아남은 것들과 사라진 것들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자동차를 다루다 보면 자동차 기술이 생각보다 다양한 곳에서 파생된 것을 알 수있는데,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은 너무 딱딱하지 않고 흥미를 끌 수 있는 전시물로 배울 수 있다. 선구자들의 시련과 실패를 통해 완성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다양한 기술에 대해 돌아보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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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레이스 무대에서 큰 족적을 남긴 닛산 프리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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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는 생소하지만 오펠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었다


부란

구소련 시절 개발된 우주왕복선 부란은 미국의 우주왕복선 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기체이다.

1988년 최초 비행을 마쳤으며 기술적으로 미국과 다른 부분이 많지만 디자인 때문에 복제품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당시 연구진들은 ‘가장 이상적인 설계를 하다 보니 형상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밝혔다. 한간의 소문에 의하면 KGB가 미국의 설계 도면을 빼내 만들었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프로토타입과 비행기 포함 총 11대가 제작되었으며 현재 7대가 남아 있다. 대부분은 소련 붕괴와 위성 독립 국가들의 우주항공 프로젝트 폐지에 따라 방치되거나 해체 되었다. 2002년 격납고에 보관 중이던 시제1호기가 폭발 사고로 소실되기도 했다. 러시아와 부란을 보관했던 위성 독립 국가들 역시 우주항공 프로젝트 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폐기하면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온전한 기체는 슈파이어에 있는 실험기 1호(OK-GLI)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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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록은 없다. 이 기체는 2002년 바레인에 매각된후 한 동안 방치 되었다가 2004년 슈파이어에서 매입한후 2008년부터 전시 중이다. 바레인에서 독일 내륙으로 이송,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까지 이동하는 것이 하나의큰 이벤트였다.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과 진즈하임 기술 박물관은 이런 부분을 잘 활용하는데, 콩코드와 투폴레프 Tu-144, 보잉 747, 부란은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컨텐츠로서의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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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500K 에르드만&로시

1898년 베를린에서 설립된 독일의 코치빌더 에르드만&로시(Erdmann&Rossi)에서 제작한 500K는 독특한 외관이 특징이다. 당시 최고급차에 속했던 500K를 베이스로 그들만의 독특한 터치로 보디를 완성했다.

경량화에 중점을 둔 이 차는 에르드만&로시의 황금기에 제작된 차로 보디가 도색되지 않은 알루미늄이다.

에르드만&로시는 다양한 차의 보디를 제작했는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나치 고위층들을 위한 특별한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앞바퀴까지 덮어씌운 독특한 공력 디자인의 이 500K는 항공우주 전시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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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6-28 듀얼 윈드실드 투어러

미국의 자동차 메이커인 문(Moon)에서 제작한 6-28 듀얼 윈드실드 투어러는 문에서 제작한 차 중에 가장큰 모델이다. 이름의 유례인 듀얼 윈드실드는 이 차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낸 단어인데, 운전석의 윈드실드 외에 뒷좌석 앞에도 별도의 윈드실드를 장착한 것이 특징이다. 1920년대 롤스로이스와 성격이 비슷했던 문은 듀얼 윈드실드 투어러를 2대 제작했다. 그 중 한 대가 슈파이어 기술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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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즈 팬텀1

1925년 실버 코스트의 후속으로 발표된 팬텀1은 1931년까지 3,500대가 영국과 미국에서 생산되었다. 당시 롤스로이스는 엔진과 섀시만 코치빌더에 공급했는데 주문자 요구에 따라 다양한 버전이 만들어졌다. 팬텀은 이후 롤스로이스의 간판 모델이 되는데 주문이 까다롭고 가격이 비싸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또한 일종의 커스터마이즈 시스템으로 제작되다 보니 같은 팬텀이라고 해도 사양과 디자인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슈파이어에 전시된 팬텀1은 1926년에 제작된 모델로 배기량 7.7L의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최고출력 108마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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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워드 이사벨라 2+2 쿠페 

1954년부터 1962년까지 1만1,150대가 생산된 이사벨라는 독일 보그워드의 상업적 성공을 알린 차이기도 하다. 이사벨라는 당시 경쟁사였던 포드나 오펠의 동급 모델보다 비쌌지만 메르세데스-벤츠 180보다는 낮은 가격이어서 큰인기를 끌었다. 직렬 4기통 1.4L 엔진의 출력은 74마력으로 당시 경쟁차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이사벨라는 세단을 기반으로 픽업, 왜건, 쿠페 등 다양한 버전이 발표되면서 인기를 이어가는 듯 했지만 독일의 경기 불황과 자동차 과잉 공급 시대를 맞이하면서 1962년 단종된다. 이사벨라의 퇴장 후 BMW는 스타일리시한 1500을 발표하면서 이사벨라의 빈자리를 채웠는데, 덕분에 파산 직전이던 BMW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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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차 모음  

진즈하임에는 스포츠카와 희귀한 차가 많지만 슈파이어에는 비교적 친숙한 대중차가 대거 전시되어 있다. 시대상을 나타내는 BMW 3200, 320을 비롯해 피아트 124, 혼다 S800, 트라반트, 트로얀 등을 한 곳에서볼 수 있다. 딱히 희귀 차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냉전시대 극한의 대립각을 세우던 서독과 동독의 대표 주자들이 한 자리에 전시된 모습도 다채롭다.


글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사진 황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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