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T 챔피언십 최종전 리뷰 상급 드라이버들 졸전, 신인들의 멋진 승부 대비
2003-11-25  |   4,241 읽음
지난 10월 12일에 BAT GT 챔피언십 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1년에 여섯 번 레이스를 치러 챔피언을 가리는 이 경기의 최종전은 한 마디로 멋있었다. 필자가 본 어느 경기보다 박진감 넘쳤고, 보는 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대부분의 클래스가 챔피언을 확정짓지 못한 탓에 더욱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챔피언의 향방을 점치는 모습을 경기장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필자는 경기장을 맡았기 때문에 레이스를 즐길 여유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여느 때보다 열띤 분위기가 점쳐지는 가운데 그만큼 사고 위험도 높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모터스포츠팬들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에서 예측하지 못한 두 가지 사건이 생겼다. 그것도 국내 최고라고 자부하는 선수들이 사건을 일으켰다.

장순호와 이승진 동반 탈락
최종전은 포물러1800 레이스가 펼쳐질 즈음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다. 시리즈 챔피언을 다투는 라이벌은 오일뱅크 소속 장순호와 이승진의 집안 싸움이다. 두 선수의 점수 차이는 불과 1점, 무조건 앞서는 사람이 챔피언을 차지하게 된다.
장순호와 이승진을 뒤따르는 사가구치 료헤(인디고)는 21점이나 뒤져 있어 둘 다 리타이어하지 않는 한 챔피언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선수는 팀메이트이기 때문에 위험한 레이스를 펼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하게 된다. 예선에서는 장순호가 폴포지션을 잡아 먼저 기선을 제압했다.
결승 그리드에서 누가 선두를 잡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신경이 출발 신호에 집중되었다. 장순호가 폴포지션에 섰지만 이승진의 뛰어난 스타트 테크닉은 이미 잘 알려진 터라 장순호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뒤따르는 사가구치 료헤는 스타트 징크스에 빠진 드라이버여서 선두경쟁에서 제외된다.
메인 포스트의 녹색점등이 켜진 후 스피드웨이 제1코너를 먼저 차지한 드라이버는 이승진이었다. 추월을 허용한 장순호가 챔피언에서 멀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장순호는 이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승진을 추돌해 둘 다 스핀, 최후미에서 두 선수는 다시 경기에 임하게 된다. 두 번째 무대에서도 둘은 앞에 서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였고, 평정심을 잃은 상태에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스타트 순간 드라이버들은 초긴장 상태지만 2랩 정도 지나면 안정감을 찾아 정상적인 경기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큰 충격을 받은 이승진은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과격한 드라이빙으로 앞차를 푸싱하기도 해 페널티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제3코너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이승진이 앞서 달리던 장순호를 추월하기 위해 무리하게 코너에 진입,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고 장순호의 경주차를 올라타게 되었다. 이로써 두 선수는 리타이어, 올 시즌 챔피언을 사가구치 료헤에게 헌납하고 말았다.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사고여서 관중을 포함해 모두가 경악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두 사람은 국내 굴지의 프로 레이싱팀 소속 드라이버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프로 드라이버로서 성적에 대한 욕심은 당연하겠지만 단순한 개인 경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한다.
인디고 레이싱팀이라는 라이벌이 있고, 두 팀의 경쟁이 워낙 치열해 팀간의 성적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두 선수의 과열된 경쟁으로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우승을 전혀 기대할 수 없던 사가구치 료헤가 챔피언을 차지한 것은 그로서는 행운이겠지만 두 선수의 마음가짐이 프로답지 못해 아쉬움이 더욱 크다.

신인전, 투어링B 명승부에 감탄
최종전의 마지막 게임은 GT 레이스다. 이 경기는 국내 최고의 이벤트이고 정상급 드라이버들이 참가한다. ‘올해 최고선수는 누가 될까’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이 경기도 챔피언을 가리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왔다. 인디고 레이싱팀의 디펜딩 챔피언 김의수 및 이재우의 경쟁과 윤세진의 최종순위가 관심의 대상이다.
마지막 경기는 포물러 경기의 지연으로 조금 어두운 날씨에서 스타트 신호를 기다리게 되었다. 폴포지션의 이재우는 챔피언을 고대하고 있으며, 3그리드의 김의수는 2위 안에 들어야 한다. 두 선수 사이에 윤세진이 자리했다.
레이스는 예선 그리드대로 무난하게 진행되었고 중반에 김의수가 2위로 올라섰다. 이재우로서는 챔피언 등극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되었다. 비가 멈춰 노면이 말라 가는 상황에서 이재우가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헤어핀에서 코스를 이탈해 정지해 있는 차를 들이받으며 리타이어한 것이다. 덕분에 김의수는 쉽게 챔피언에 올랐지만 이재우는 종합 3위로 내려앉았다.
드라이버가 경기 도중 많은 생각을 하면 성적이 나빠진다. 따라서 경기에만 집중해야 한다. 잡생각이 많으면 집중력이 떨어져 결과를 그르친다. 레이스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경기이므로 집중력 저하는 곧 경기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최종전에서 상급 드라이버들의 실수가 많았던 반면 신인급의 파이팅이 돋보였다. 유일하게 최종전이 열리기 전에 챔피언이 결정된 신인전에서 박인천과 김동선, 하이카(투어링B) 레이스의 김중군과 김호중이 보여준 치열한 선두경쟁은 이날의 명승부로 꼽힌다. 이들은 시종일관 땀을 쥐게 하는 경쟁을 펼쳐 관중들로부터 열띤 박수를 받았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레이스를 사고 없이 마무리짓기는 정말 어렵다. 추월을 하거나 당할 때 드라이버들의 맥박수는 매우 빨라져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이때 자제력을 잃으면 사고를 일으킨다. 더욱이 신인급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컨트롤 능력을 잃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코너에서 ‘사이드 바이 사이드’로 서로를 배려하며 멋진 경기를 보여주었다.
다른 선수들도 최고의 레이스를 펼쳤다. 선배들의 어수선한 행동과 달리 후배들은 신사적인 레이스로 관중들이 요구하는 레이스를 만든 것이다. 적어도 GT 챔피언십 최종전에서는 ‘형보다 나은 동생’들이었다.
필자는 신인들의 경기 장면을 보면서 전율했다. 사고를 염려했던 신인 레이스가 최종전처럼 멋진 레이스로 발전한다면 국내 모터스포츠의 전망은 밝다. 볼만한 경기를 참관한 관중들 또한 이번 레이스를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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