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노라, 보았노라, 드리프트했노라! - AUDI EXPERIENCE FINLAND 2011
2011-03-17  |   13,443 읽음

눈과 얼음과 호수의 나라
뛰어난 성능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자동차 메이커들은 자신들의 장기를 홍보하고 이미지를 북돋우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아우디 익스피리언스도 그 중 하나. 같은 아우디 익스피리언스라 해도 넓은 공터에서 기초적인 드라이빙 스킬을 배우는 것부터 GT 레이서를 타고 서킷을 달리는 것까지 스펙트럼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하지만 네바퀴굴림 차로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드리프트 스킬을 연마하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백미와도 같은 존재다.

출장 계획은 잡혔는데 춥다는 것 빼고 핀란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스웨덴, 네덜란드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나라, 국민악파의 대표주자 시벨리우스의 고향이라는 것 정도. 그러고 보니 핀란드는 호수의 나라로도 유명하다. 자동차 매니아라면 이 대목에서 ‘1000호 랠리’라는 명칭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전 국토에 걸쳐 19만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호수가 있다니 랠리 핀란드에 ‘1000호’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해가 된다. WRC의 주요 랠리 중에서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랠리 핀란드는 핀란드 중남부 지바스킬래에서 1951년부터 열려왔다. 우승자는 대대로 스칸디나비아 출신이 많았는데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에릭 칼슨과 미카엘 에릭슨이 스웨덴 출신이고 티모 마키넨, 하누 미콜라, 아리 바타넨, 티모 살로넨, 유하 칸쿠넨, 마커스 그론홀름 그리고 현재 포드 워크스 드라이버인 미코 히르보넨과 J-M. 라트발라가 핀란드 출신 우승자들이다.

요즘 랠리 핀란드는 겨울에 열리지 않아 그라벨(오프로드) 랠리로 구분된다. 그럼에도 고속 스테이지와 점프가 많아 매우 역동적이고 스칸디나비아인 이외의 우승자를 단 4명만 배출했을 만큼 지역색이 강하다. 반면에 WRC 팀 투표에서 4번이나 올해의 랠리로 선정되었던 인기 랠리다.

거친 자연과 혹한의 겨울을 보유한 핀란드는 운전자에게 엄격하면서도 좋은 선생님이 되어 수많은 랠리 챔피언 외에 F1 챔피언을 4명이나 배출했다. 니코 로즈버그의 아버지 케케 로즈버그(1982)와 미카 하키넨(98, 99) 그리고 현재 랠리 드라이버로 전향한 키미 라이코넨(2007)이 그들이다. 

얼음 호수를 아우디 S4로 질주하다
이번 행사가 열린 키틸랴는 수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약 900km 거리에 위치한 작은 도시. 북위 67도로 북극에 상당히 가까운 이곳은 핀란드 남부에 비해 큰 도시가 드물고 주민 수도 훨씬 적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온통 눈으로 뒤덮인 풍경과 차가운 공기가 일행을 맞이한다. 공기가 차갑기도 하거니와 공기 중에 반짝거리는 얼음가루가 흩날리다니! 북극대륙이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우리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린 일본인 관광객들은 오로라 구경을 위해 이곳에 왔다며 잔뜩 상기된 표정이다.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한 후 행사 진행팀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며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마감했다. 우리팀의 강사는 랠리 드라이버 출신의 제리 알린(Jerry Ahlin). 크지 않은 체구에 작은 얼굴, 선해 보이는 눈매와 매력적인 금발을 지닌 스웨덴 출신이다.

첫날 아침. 간단한 식사 후 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브레이크와 가속에서의 하중이동 그리고 타이어 그립한계에 대한 내용은 이후 실전을 통해 배우게 된 드리프트 주행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이었다. 곧이어 이번 행사의 동반자인 아우디 S4 아반트와 조우했다. 이 차는 고회전형 V8을 버리고 선택한 V6 3.2L 수퍼차저 엔진이 333마력, 44.9kg·m의 강대한 파워를 뿜어낸다. 왜건형인 아반트는 한국에 수입되지 않지만 아우디에게 무척이나 중요하고 인기 높은 모델. 고성능 S나 RS 라인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얀 눈세상과 대비되는 빨간색 보디는 무척이나 두드러져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핀란드에서 흰색 차를 사는 사람이 있을까?

아침 8시 50분. 목적지로 향하는 길 주변은 온통 하얗게 눈으로 뒤덮인 침엽수림이 펼쳐진 데다 길옆으로 한가롭게 거니는 순록을 볼 수 있다. 이 낯설고도 신기한 풍경에 빠져들다 보니 행렬은 어느새 도로를 벗어나 낮은 지대로 접어들고 있다. 곧이어 눈앞에 펼쳐지는 순백의 얼음세상.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호수의 이름을 물어보니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곳이 정확이 어느 지점인지는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원래 작은 호수가 여럿 모여 있는데 겨울이 되면 눈이 내리면서 얼어붙어 하나의 거대한 빙판이 되기 때문이란다. 나중에 구글맵으로 찾아보니 강 중간의 넓어진 부분과 작은 호수 두 개가 매우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호수 바닥이 30cm 정도 얼면 자동차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발밑의 얼음 두께는 무려 50cm. 차가운 얼음 호수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첫 경험의 쓰디쓴 추억
제리가 처음 우리를 안내한 곳은 15m 가량의 짧은 직선과 두개의 반원 코너로 이루어진 단순한 타원형 트랙. 여기에서 기초적인 하중이동과 드리프트 방법을 배웠다. 그가 설명하는 드리프트 방법은 무척이나 간단(설명만)했다. 우선 ESP와 ASR 등의 안전장비를 끄고 코스에 진입한다. 변속기는 2단 고정. 직선로에서 약간 속도를 낸 후 코너 앞에서 액셀 페달에서 발을 떼면서 앞바퀴를 천천히 꺾고 기다린다. 차 뒷부분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액셀을 밟아 슬립을 유지하고, 앞바퀴를 반대로 꺾어(카운터 스티어) 스핀하지 않도록 각도를 유지한다. 설명은 간단하지만 실전에서도 잘 될까? 우리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코스에 들어섰다.

영상에서 보았던 멋진 드리프트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첫 주행의 결과는 그야말로 참담했다. 설명대로라면 'lift off & steering'(액셀 떼고 스티어링 꺾고)만 잘 하면 된다는데 현실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기자의 경우 언더스티어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 강사가 무전으로 부르더니 스티어링 조작이 너무 빠르다고 지적한다. 스티어링 조작이 급하면 앞바퀴가 그립을 잃어 언더스티어가 된다는 설명. 하지만 족집게 과외에도 불구하고 액셀 오프와 적절한 스티어링 조작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체력까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집중력이 줄어 시간이 갈수록 주행은 엉망진창. 
 
오후가 되자 조금 더 복잡한 코스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 코스의 포인트는 좌우 코너가 연속되는 지그재그 구간으로 액셀 온과 오프, 스티어링과 카운터를 연속적으로 그리고 리드미컬하게 지속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이제 걸음마를 뗀 초보들이 제대로 달릴 수 있을 턱이 없다. 잠시 후 트랙터를 부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코스는 얼음 위에 50cm 가량 쌓여 있는 눈을 밀어 만들기 때문에 코스를 벗어난다 해도 눈이 충격을 흡수해 안전하다. 대신 눈 위에 올라타면 꼼짝할 수 없기 때문에 트랙터를 불러 끌어내야 한다. 이때마다 목에 건 견인 카드에 구멍이 하나씩 늘어난다. 다행히 기자는 첫날 트랙터를 한번도 부르지 않고 마칠 수 있었다.  

본격 랠리 스테이지를 경험하다
2일째 날,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아침 8시. 어제의 첫 번째 코스에서 다시 강습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 쉽게 드리프트가 되는 것이 아닌가! 어제 몸에 익은 기술이 자연스럽게 배어나온 모양이다. 이번에는 코스 레이아웃을 바꾸어 어제보다 느린 속도로 타이트한 코너에서의 드리프트 방법을 배워보았다.

좁은 트랙에서 속도는 느리고 코너는 더 급해졌기 때문에 어제의 방법으로는 드리프트 상태를 만들기 힘들다. 강사가 보여준 것은 코너 직전 스티어링을 코너 반대로 꺾었다가 다시 안쪽으로 꺾는 일종의 관성 드리프트였다. 이것을 갈고 다듬으면 그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플릭(scandinavian flick) 기술이 되는데, 말은 쉽지만 스티어링 타이밍이 조금만 늦어도 차 속도가 너무 떨어지고 조작이 너무 빠르면 앞바퀴가 그립을 잃어 언더스티어가 된다. 물론 선생님의 강습은 여전히 명쾌하고도 간단하다. 우리가 그에 따라가지 못할 뿐…….

오후부터는 초보 코스를 졸업하고 본격 장거리 코스를 달렸다. 클로즈드 트랙으로 만들어진 이번 코스는 마치 WRC의 수퍼 스페셜 스테이지(SSS)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강사 앞을 지날 때면 긴장해 실수를 연발하기도 했지만 처음 코스보다 이쪽이 다채로워 달리는 재미가 있었다. 속도가 빨라진 만큼 액셀 오프보다는 브레이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달랐다. 특히 이날 마지막 달린 2번 코스는 중고속 코너가 많이 포함된 장거리 트랙이었는데, 다이내믹한 드리프트가 가능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다. 

강습 3일째가 되자 지금까지의 코스를 두루두루 달리며 차의 움직임과 드리프트 스킬을 몸에 각인시켰다. 이제 드리프트가 어느 정도 몸에 익은 일행은 속도를 올려 타임 트라이얼에 도전하기도 하고 다양한 주행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런데 속도가 높아지면서 코스 이탈도 잦아졌다.

3일째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자 대망의 나이트 랠리 순서가 찾아왔다. 코스 2개를 연결해 만든 6km가 넘는 장거리 코스가 무대. 본격적인 랠리주행을 경험하는 한편 학생들의 강습 성과를 알아보는 의미도 있었다.

경기는 실제 랠리 경기 방식을 최대한 살렸다. 한 차에 탄 두 명이 번갈아 가면서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 역할을 담당해 페이스노트까지 작성했다. 실제 WRC는 매우 다양한 도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코스 레이아웃과 노면상태 등을 미리 적어놓은 페이스노트를 작성한다. 본 경기에서는 코드라이버가 이것을 드라이버에게 읽어주어 드라이버는 블라인드 코너도 과감하게 공략할 수 있다.

그런데 장거리 코스 달리기도 힘들었지만 익숙지 않은 페이스노트를 작성하는 일이 더 막막했다. 얼렁뚱땅 만들어진 페이스노트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해가 저물어 시야가 제한된 코스에 접어들자 코드라이버의 목소리가 큰 도움이 되었다. 가장 먼저 기록 계측을 시작한 기자는 타이트 코너에서 벽을 들이박고 한번 후진하는 실수를 했음에도 무사히 완주. 그런데 도전을 마치고 코스를 빠져나오니 경기의 양상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 후속차가 코스에 들어가는 족족 트랙터를 부르는 무선호출이 이어졌다. 결국 참가자 5명 중 완주는 고작 2명. 기자가 6분24초41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드리프트 스킬을 몸에 새기다
4일째 오전까지도 계속된 이번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는 기자가 그동안의 해외출장 경험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가혹한 스케줄이었다. 추운 날씨 속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코스를 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대신 무릎 깨져 가며 배운 자전거가 쉽게 잊혀지지 않듯이 이제부터는 차 뒷바퀴가 미끄러지는 순간 손이 자연스럽게 카운터 스티어를 구사하게 될 것 같다.

가속과 감속 상황에서의 하중이동, 미끄러운 노면에서 차의 움직임 그리고 카운터 스티어와 액셀 조작을 이용한 드리프트 앵글 조정 등은 일반도로에서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얼음이라는 특수한 상황(여기에 스파이크 타이어)과 안정성 높은 콰트로 시스템에 힘입어 매우 이상적인 교육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원래 일반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유료과정이지만 한국에서는 신청자가 없어 유명무실해졌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출장 중에는 저질체력 때문에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돌이켜 보니 소중한 추억거리 하나가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동차 매니아로서 그리고 기자로서 귀중한 재산이 될 드라이빙 스킬을 온 몸 구석구석 깊게 새겨놓을 수 있었던, 무척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핀란드에서 만난 아름다운 그녀, A7
이번 행사에서는 뜻하지 않은 손님을 만났다. 교관들이 끌고온 아우디의 최신 모델 A7이 주인공이었다. 올해 후반기나 되어야 국내에 출시될 이 모델은 신형 A6 플랫폼을 바탕으로 개발된 4도어 해치백 쿠페. 시승용으로 준비된 차가 아니었지만 강사들을 졸라 잠시 운전석에 앉아볼 수 있었다.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A7의 모습은 흡사 판타지 속 요정을 보는 듯 매혹적이었다. 직선적인 헤드램프는 사이버틱한 느낌을 주며 해치백으로 이어지는 루프라인은 세단이나 2도어 쿠페와 다른 낯선 느낌이다. 하지만 뒷좌석에 앉아 보면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뒷 승객의 헤드룸을 확보하기 위한 디자인이 때문임을.

이 차의 백미는 역시 인테리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대시보드, 화려한 인스트루먼트 패널 그리고 센퍼페시아의 고급스런 소재가 잘 어우러져 있다. 전체적으로 여성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연약해 보이지 않으며 ‘명품’이라는 두 글자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엔진은 V6 3.0L TDI였는데 스파이크 타이어에 얼어붙은 노면이라 시승의 의미는 없었다. 다만 차의 품격에 어울리는 정숙성과 부드러움을 갖추고 있음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CLS의 강력한 라이벌이 되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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