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24승 거둔 J. 클라크, 최고 드라이버 자리 굳히다 (1/2) 1967년(하)
1999-03-24  |   8,626 읽음
1967년 고속 서키트인 아르덴에서 영국 엔지니어 출신인 M. 파크가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그는 이 레이스에 앞서 출전했던 동료 M. 호던처럼 휠 베이스가 긴 페라리 경주차로 출전했다. 이 사고로 M. 파크는 오랫 동안 레이스를 뛰지 못해 많은 기회를 놓쳤다. 같은 시기에 언론인이며 광고주 그리고 페라리팀의 매 니저로 활동했던 F. 리니와 치프 엔지니어 M. 호히에르에게 불운이 겹쳤다. 투스카니 레이스에서 페라리 디노 스파이더를 몰고 나온 독일인 드라이버 K. 클라스가 연습경기 도중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그랑프리 처음 문열어
시즌 종반 다양한 엔진 쏟아져


1967년 ACF 그랑프리는 지난 1906년과 1921년처럼 프랑스 르망에서 열렸다. 그러나 이 때는 ‘르망 24시간’ 코스가 아니라 ‘서부지역 자동차 클럽’에서 새로 만든 부가티 서키트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 서키트는 예전 트랙의 마지막 직선 코스와 짧은 스트레치 구간을 연결했지만 대부분 피트 뒤쪽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했다. 서키트 레이아웃의 창의력이 떨어져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드라이버와 엔지니어들의 반발을 사 완만한 헤어핀도 만들어 두었다.
어쨌든 막을 올린 레이스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도 없었고, 관중 동원에도 실패했다. 이 때문에 ACF 그랑프리는 두 번 다시 르망에서 열리지 않고 있다. 이 레이스에서는 브라밤팀의 잭 브라밤과 D. 흄이 원투 피니시를 거두었다.

실버스톤에서 열린 영국 그랑프리는 로터스 49를 몰고 나온 J. 클라크에게 5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G. 힐은 연습경기에서 서스펜션이 고장나 벽에 부딪쳤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결선에서도 G. 힐은 똑같은 사고를 당했지만 피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원인은 서스펜션의 나사를 꽉 죄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브라밤 BT24를 탄 흄, 페라리 312의 어몬과 잭 브라밤이 차례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영국 그랑프리에서 J. 린드는 T86 쿠퍼를 몰고 나왔다. 3밸브 V12인 마세라티 엔진을 얹었지만 T. 로빈슨이 설계한 매우 가벼운 섀시를 썼다. T86 쿠퍼는 로터스 49처럼 냉각효율을 높이기 위해 돌출형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팀을 달았다.
독일 그랑프리에서 J. 클라크는 로터스 49로 초반 레이스를 이끌었지만 타이어가 펑크나 5랩에서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2위를 달리던 이글팀의 D. 거니가 1위로 올라섰지만 13랩에서 드라이브 샤프트 고장으로 탈락, D. 흄에게 승리를 헌사했다. 흄은 BT24로 두 번째 우승을 거뒀다.

1967년에는 캐나다 그랑프리가 월드 챔피언십 레이스로 처음 문을 열었다. 폭우 속에 치른 레이스에서 J. 브라밤과 팀 동료 D. 흄이 원투 피니시를 거두었다. 그러나 짐 클라크는 점화장치가 말썽을 부려 또다시 정상정복에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는 B. 맥라렌이 새 포뮬러카 M5A를 내놓았다. 모노코크 섀시에 T. 루드가 8기통을 샘플링해 만든 2천988cc(74.6×57.2mm) BRM 12기통 엔진을 얹었다. H16 엔진처럼 성능에 관해 많은 말이 있었지만 BRM팀은 다음 해에도 이 엔진을 계속 사용했다.
이태리 그랑프리는 가장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였다. 4밸브 엔진을 얹은 페라리 312가 첫선을 보였고 혼다도 새 경주차 RA300의 베일을 벗겼다. RA300은 V12 엔진을 썼지만 A. 브로들리가 만든 새 모노코크 타입 섀시를 입혔다. 혼다의 새 엔진은 ‘혼돌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F2에서 활동하던 영국 티렐팀의 J. 아이크는 쿠퍼-마세라티의 T81을 타고 F1 그랑프리에 데뷔했다.
1967년 시즌 후반에 완성도 높은 다양한 엔진이 쏟아졌다. 페라리, 마세라티, BRM, 웨스레이크, 혼다 등이 새 엔진을 선보였다.J. 클라크 최고 드라이버로 떠올라
2승 거둔 D. 흄 월드 타이틀 따내


이태리 레이스에서 J. 클라크가 최고 드라이버로 자리를 굳혔다. 출발하자마자 선두를 잡은 클라크는 곧 타이어 교환 때문에 피트 인했다. 피트 아웃했을 때 순위는 15위. 선두는 한 바퀴 이상 앞서 있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레이스를 펼친 결과 59랩에서는 팀 동료인 G. 힐을 눈앞에 두었다. 팀의 에이스 드라이버에게 길을 터준 힐은 순위가 밀리기 시작했고 클라크는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브라밤과 J. 서티스가 바짝 뒤쫓으며 선두탈환의 집념을 불태웠다.
운명의 파이널 랩. 시속 260km로 세 대의 경주차가 쿠바 그랑 코너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클라크 경주차의 속도가 줄었다. 기름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브라밤과 서티스의 경주차는 비틀거리는 클라크의 로터스를 앞질러 나갔다. 브라밤이 코너 안쪽을 파고들면서 추월을 시도했지만 서티스의 블로킹은 절묘했다. 결국 이태리 그랑프리의 우승컵은 간발의 차로 혼다팀의 서티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3위를 한 클라크의 날이었다. 그랑프리 역사상 어느 누구도 피트 인한 후 한 바퀴나 뒤진 상태에서 선두로 올라선 레이서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끝없는 훈련을 통해 익힌 테크닉과 판단력 그리고 로터스 49의 성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그랑프리에서도 이태리와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클라크는 레이스 종반까지 2위 G. 힐을 두 바퀴나 앞섰다. 그러나 마지막 랩에서 서스펜션 볼트가 빠져 버렸고, 클라크는 그 상태에서 속도를 줄여 한쪽으로 기운 경주차를 몰고 간발의 차로 우승컵을 안았다.
멕시코 그랑프리에서도 클라크가 우승했다. BT24를 탄 브라밤과 흄이 혼다팀의 서티스를 제치고 클라크의 뒤를 이었다. 멕시코 우승으로 24번이나 그랑프리 영광을 안은 클라크는 전설적인 레이서 후안 마뉴엘 판지오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
D. 흄과 J. 브라밤은 이 해 2번씩 우승했고, 클라크는 로터스 49로 4번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드라이버 챔피언십은 51점을 얻은 흄에게 돌아갔다. 브라밤 46점, 클라크 41점, 페라리팀의 어몬과 혼다팀의 서티스는 20점을 받았다.
3.0X F1 경주차가 나온 지 2년째인 67년 월드 챔피언십을 따낸 흄은 2승을 거두는 데 그쳤지만 뛰어난 테크닉과 득점관리 능력이 돋보였다. 브라밤팀은 흄의 활약으로 매뉴팩처러즈 타이틀까지 손에 넣어 렙코-브라밤 엔진의 성능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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