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 타이어의 세계 개발과정부터 실전 투입까지
1999-10-25  |   12,060 읽음
드라이버, 경주차 그리고 타이어는 모터 스포츠를 지탱하는 힘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모터 스포츠가 존재할 수 없다. 지난 110여 년 동안 모터 스포츠는 이들의 조화를 통해 발전해 왔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어 왔다. 경주차의 성능이 승부를 결정짓는 시대가 있었고 드라이버의 능력이 결과를 바꾸는 시대도 있었다. 최근에는 승부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타이어로 꼽힌다. 드라이버의 능력과 경주차의 성능은 일정 궤도에 올라섰지만 타이어는 노면상태와 기후조건 등에 따라 성능변화의 폭이 커 타이어 세팅에 따라 승패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레이싱용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와는 태생이 전혀 다르다. 일반 타이어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값이 싸면서도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데 비해 레이싱용 타이어는 빨리 달리고 쉽게 멈출 수 있는 성능을 절대과제로 삼는다.
브리지스톤, 굳이어, 던롭, 미쉐린 등은 일찍부터 포뮬러, 랠리, GT 등 레이스 전 분야의 타이어를 실전에 투입해 실적을 쌓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세계적인 메이커로 성장했다. 이에 비해 국내 타이어 메이커는 포뮬러 1800과 랠리 그리고 투어링카용 타이어를 만들어 내는 수준에 머문다. 선진국보다 출발 시기가 뒤지고, 규모(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의 연구원이 300여 명 정도인 데 비해 미쉐린 타이어의 연구원은 3천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도 작아 개발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레이싱 타이어 개발과정
타이어 메이커는 레이스에 뛰어들기 위해 F1 GP 또는 BTCC, 르망 24시간 등 카테고리를 결정한다. 레이싱 타이어 개발 초기단계부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시간과 경비를 낭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내 타이어 메이커(한국타이어는 F1600용 타이어를 생산하기도 했다)도 처음에 투어링카 레이스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한 다음 랠리, 포뮬러용으로 카테고리를 넓혀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원하는 카테고리가 결정되면 클래스 규정에 맞춰 타이어 사이즈가 결정된다. 그 다음은 타이어를 신는 경주차의 엔진 파워, 기어비 등 기본적인 제원은 물론 서키트의 상황(직선로, 코너 등 코스의 특성)을 종합해 분석한다. 그래야만 타이어의 구조와 컴파운드 포지션을 뽑아낼 수 있다.
기초적인 조사가 끝나면 경쟁 메이커의 타이어를 샘플링한다. 타이어에는 메이커의 기술력이 그대로 녹아 있어 어느 정도 장단점(생김새와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타이어 구조 등 설계기술은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지만 컴파운드에 관한 노하우를 알아내는 상당히 어렵다.
각종 계측기를 동원한 실내 테스트를 통해 스프링 상수값, 코너링 포스(그립력 측정), 트랙션, 압력과 면적에 따른 타이어 상태 등을 데이터로 뽑아낸다. 내구성 테스트에서는 온도 증가, 무게 가감 등 각종 데이터를 계측기에 입력한 후 캠버와 슬립 앵글 등 레이스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체크한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그려진 3~5종 설계도상의 림 폭, 공기압, 무게, 캠버(경험치와 예측치를 한꺼번에 적용한다) 등을 컴퓨터에 입력시킨 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해석하는데 이를 FEM(finite element method)이라고 한다.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의 김영수 선임연구원은 "현재 국내에서는 FEM 결과를 타이어 개발에 접목시키는 비율이 작지만 앞으로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을 것이다. FEM은 타이어 개발기간을 단축시키고 경쟁 메이커에 대한 대응력을 키우는 방법"이라며 "국내 메이커는 프로그램이 단순해 접지형태, 응력의 분포, 스프링 상수값 등 정적인 요소를 주로 파악하지만 외국 메이커는 운동상태를 중심으로 한 다이내믹 테스트가 주류를 이룬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FEM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타이어 설계도가 두 가지 정도 확정되면 곧바로 금형제작으로 들어간다. 제작에 45일 정도 걸리는 금형은 타이어 크기에 따라 작으면 스틸, 크면 알루미늄을 소재로 쓴다. 타이어 구조를 3~7종 만들고, 구조 1개에 소프트, 미디엄, 하드 타입의 3가지 컴파운드를 적용해 9~42종의 시제품을 내놓는다. 시제품은 샘플 타이어와 마찬가지로 특성시험, 내구성 테스트, 구조분석 등 실내 테스트를 통해 다시 3~5종류로 추려진다.
실차 테스트는 경주차와 같은 조건에서 이루어진다. 공기압, 타이어 표면 온도 등의 변화를 살피고, 2차 테스트에서 차고, 공기압, 캠버, 스프링 강도 등을 다르게 해 가장 알맞은 타이어를 골라낸다. 실차 테스트에서는 드라이버의 조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드라이버의 느낌은 연구소로 피드백되어 다음 제품 개발에 도움을 준다.
실차 테스트에서는 구조와 컴파운드가 같은 타이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드라이버의 운전특성과 관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한국타이어가 지원하는 드라이버들도 컴파운드가 서로 다른 타이어를 신고 있다.
테스트를 마친 타이어는 계절(날씨, 온도 등)의 변화에 따라 구조와 컴파운드에 변화를 주는데 서키트가 하나밖에 없는 국내의 레이싱(포뮬러와 투어링카) 타이어는 봄, 여름, 가을용 3가지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에 따라 컴파운드를 다르게 한 타이어를 더해 날씨와의 거리를 줄여가고 있다.
랠리 타이어는 트레드가 있어 패턴의 설계기술 및 컴파운드가 서키트용 슬릭 타이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뜨거운 사막과 비포장 및 얼음길을 달려야 하고 심한 기후변화에도 적응해야 하므로 쇠못을 박은 스파이크 타이어 등 종류가 다양하고 트레드 패턴도 노면에 따라 자주 바뀐다.
타이어 메이커가 1년 동안 연구와 개발, 생산을 거쳐 모터 스포츠에 투자하는 비용은 적게는 수천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른다. 한국타이어는 5~7억, F1 GP에 타이어를 대는 브리지스톤은 500억 원 정도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F1 GP에 이처럼 많은 돈이 드는 이유는 전 세계 16곳에서 그랑프리가 열리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많이 들고, 경기마다 다른 타이어를 신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이어 성능의 90%는 컴파운드
레이싱 타이어는 구조와 소재배합률에 따라 성능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국내 타이어 메이커가 일반 타이어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레이싱용 타이어에서는 뒤처진 이유 역시 컴파운드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컴파운드 기술은 끝없이 반복되는 테스트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컴파운드의 중요성은 레이스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내구레이스에서 소프트 타입 타이어를 끼우면 그립력이 떨어져 속도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빨리 닳아 타이어 교환을 위해 피트에 자주 들락거려야 한다. 반면 예선 또는 스프린트 레이스에서 하드 타입을 끼우면 그립력이 나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컴파운드는 베이스가 되는 고무에 황, 카본 블랙, 노화방지제, 가류촉진제 등 8~16종의 배합제를 혼합해 만든다. 배합제의 특성 혹은 양 조절에 따라 1%의 차이만으로도 고무의 물성이 크게 달라지고 성능차이도 커진다. 타이어 메이커는 가장 이상적인 혼합비율을 찾기 위해 테스트와 연구를 반복하고, 새로운 배합비법을 발견해도 특허출원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 임달용 부장은 "기술유출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대부분의 메이커는 경쟁사의 제품을 벤치마킹하므로 특허출원 과정에서 신기술이 경쟁사로 빠져나갈 수 있다. 어느 메이커도 제품으로 컴파운드 포지션을 100% 분석할 수는 없지만 특허에는 소재는 물론 배합비율 등이 다 기록되어 있으므로 기술도용이 쉽다"고 특허출원 기피 이유를 설명했다.


영원한 맞수 한국과 금호타이어
한국과 금호타이어는 비포장경기만 열리던 1987~1994년 대회를 후원하는 기업으로 모터 스포츠에 발을 들여놓았다. 두 메이커가 영원한 숙적으로 경쟁에 돌입한 시점은 93년 경기도 용인에 포장 서키트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가 문 연 뒤부터다. 이듬해 연습경기를 거쳐 95년 공식경기로 치러진 투어링카A는 금호타이어가 휩쓸었다. 한국타이어는 96년 F1600용 타이어를 공급했지만 투어링카와는 전혀 특성이 달라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97년부터 한국타이어는 레이싱 타이어 전담팀을 구성해 레이스에 대응했고 그 결과 그 해 시리즈 우승컵(투어링카A 이명목)을 거머쥐면서 금호타이어의 콧대를 눌렀다. 한국타이어의 우세는 지금까지 이어져 금호타이어는 여전히 맥 빠진 모습이다.
하지만 금호타이어의 반격도 서서히 달아오를 전망이다. 마케팅팀의 김희정 과장은 "전담팀 구성 또는 그밖의 모든 대응책을 구상해 잃었던 영광을 재현하겠다. 지켜 보아달라"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맞수의 경쟁은 레이싱 타이어의 노하우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 투어링카용 타이어가 전부였던 5년 전에 비해 지금은 포뮬러와 랠리용 타이어도 생산해 드라이버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얼마 후면 F3, F3000, F1 타이어를 생산해 외국 기업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니 타이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두 메이커의 경쟁은 드라이버들의 경제적 부담도 덜어 주었다. 97년의 경우 하루 연습비(서키트 사용료, 연료, 타이어)가 70만 원이 넘었지만 지금은 원메이크 드라이버들까지 타이어를 무상으로 공급(메이커의 지원이 아니더라도 프로팀 등에서 나눠주고 있다)받아 비용을 2/3 이상 줄이게 되었다. 입상 상금을 내놓아 드라이버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채워주기도 한다. 자동차 메이커가 모터 스포츠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모터 스포츠가 오늘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 금호의 치열한 라이벌 다툼 덕분인지도 모른다.



F1 GP에 타이어 공급하는브리지스톤
지난해 11월 1일 일본 그랑프리에서 M. 하키넨이 우승컵을 거머쥔 순간 환희와 흥분으로 달아오른 팀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F1에 타이어를 공급한 지 2년밖에 안된 신출내기 브리지스톤 타이어였다. 이 날의 승리로 브리지스톤은 굳이어를 누르고 세계 최정상의 레이싱 타이어 기술을 가진 메이커로 등극했다.
혹평가들은 "참전 2년만에 거둔 운 좋은 승리였다"고 평가절하했지만 브리지스톤이 F1 GP 참전을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고나면 그 날의 승리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브리지스톤은 F1 참전 희망을 품고 87년부터 굳이어, 피렐리 등 경쟁 메이커의 서비스 체제와 타이어 분석 등을 통해 꾸준히 기술을 축적했다. 89년 혼다의 F1 동반참전 제의를 계기로 타이어의 그립력(컴파운드 부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91년 신소재와 시뮬레이션을 통한 최초의 F1 GP용 타이어가 만들어졌다.
94년까지 브리지스톤은 2만km 이상 테스트를 해 데이터를 확보했지만 참전에 대한 희망만 있을 뿐이어서 95년에는 테스트를 중단(94년을 마지막으로 혼다가 F1에서 발을 뺀 것도 원인이다)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88년 인수한 파이어스톤사가 95년부터 인디카(지금은 CART)에 타이어를 공급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브리지스톤은 유럽을 겨냥한 글로벌 마케팅을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96년 2월, 98년부터 정식으로 참전한다고 발표했다.
이 해 브리지스톤은 애로우즈와 손잡고 서키트에 따른 타이어 컴파운드 포지션을 결정해 나갔고, 타이어 구조 4종과 컴파운드 5종 등 모두 20여 개의 타이어로 하루 300~500km의 주행 테스트를 했다. 이 테스트로 96년 6~9월 4개월 동안 8천km를 달리며 데이터를 모았다. 테스트 결과가 만족스럽자 96년 말 영국에 전담팀을 배치했고, 예정을 앞당겨 97년 출전을 결정했다.
프로스트, 애로우즈, 스튜어트, 미나르디 등 중하위팀과 계약을 맺었던 브리지스톤은 개막전 호주 GP(3월 9일)에서 O. 파니스가 5위로 골라인을 통과해 2점을 얻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이때는 홈이 없는 슬릭 타이어였고, --예선 전용타이어는 신을 수 없었다.??-- 사이즈는 앞 245/50R 13, 뒤 325/45R 14였다.
98년 F1 GP의 타이어 사이즈는 앞 265/55R 13, 뒤 325/45R 13으로 앞타이어가 97 시즌보다 커졌지만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써온 슬릭 타이어가 F1 무대에서 사라지고 안전을 목적으로 앞 3, 뒤 4개의 홈을 넣은 타이어가 나왔다. 머신의 최대폭도 2천mm에서 1천800mm로 줄었다. 새 규정에 따르면 다운포스가 줄어 잘 미끄러지고 그립력이 떨어지므로 타이어 메이커에게는 부담이었다. 결국 이 규정은 굳이어가 F1에서 은퇴하고, 브리지스톤이 최강의 자리에 서는 기회가 되었다.
브리지스톤은 97년 4월 30일 바르셀로나에서 시제품을 테스트하며 98 시즌을 대비하고, 계약팀을 97년 4팀에서 98년 맥라렌, 베네톤을 더해 6개 팀으로 늘리는 등 라이벌을 물리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즌 중반에도 3번이나 타이어 스펙을 변경하는 등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올해부터 F1 타이어는 브리지스톤 원메이크로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경쟁자 없는 독주는 의미가 없기에 브리지스톤은 라이벌의 등장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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