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마허 대충돌로 장기간 출장 못해 프렌첸과 쿨사드 2년만에 우승
1999-08-29  |   7,529 읽음
시즌 전반을 마감하는 F1 제7전 프랑스와 제8전 영국 그랑프리가 6월 27일과 7월 11일에 결승을 치렀다. 프랑스는 폭우가 쏟아져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졌고, 영국은 시즌 드라이버즈와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좌우하는 대사고가 일어났다. 드라이버즈 타이틀은 M. 하키넨(맥라렌)과 M. 슈마허(페라리), 컨스트럭터즈에서는 맥라렌과 페라리가 팽팽하게 맞서던 F1 판도가 맥라렌으로 기울어졌다.

제7전 프랑스 그랑프리

6월 27일(일요일) 프랑스 마니쿠르 서키트(1주 4.450km, 72주)에서 F1 제7전 프랑스 그랑프리 결승이 있었다.
하루 앞선 26일 토요일의 예선은 시즌 처음으로 폭우가 오락가락하는 수중전이었다. 강호 맥라렌과 페라리는 날씨를 좀더 두고 본 뒤 공격에 들어가기로 했다. 이에 맞서 스튜어트와 자우버는 초반 선제공격으로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 선두팀의 계산이 빗나가고, 중위팀들의 작전이 맞아떨어졌다.
R. 바리첼로(스튜어트)와 베테랑 J. 알레지(자우버)가 개전 10분만에 올린 기록으로 폴포지션(PP)과 2위를 굳혔다. 바리첼로는 94년 벨기에 그랑프리 이후 2번째 PP. 스튜어트팀은 F1 GP 참전 3년만에 거머쥔 첫 PP였다. 스튜어트 진영은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O. 파니스(프로스트)가 3위였다.
4위부터 강팀 드라이버가 등장하지만 세컨드 드라이버 D. 쿨사드(맥라렌)와 H.H. 프렌첸(조단)이 앞서고 슈마허(페라리)는 겨우 6위. 예선의 황제 M. 하키넨(맥라렌)은 14위로 굴러 떨어졌다.

5년만의 PP 바리첼로 선두 질주
조단 원스톱 작전으로 승리 낚아


스타트와 동시에 바리첼로가 알레지를 누르고 선두를 잡았다. 4그리드에서 떠난 쿨사드가 파니스를 제치고 3위로 나섰다. 프렌첸은 슈마허(페라리)를 밀어내고 5위를 지켰다.
첫째 주. 2위와 1.1초를 벌린 바리첼로를 알레지, 쿨사드, 프렌첸, 슈마허, 파니스와 트룰리가 뒤쫓았다. 2주 들어 쿨사드가 바리첼로를 바싹 추격하는 가운데 하키넨이 14위에서 8위로 껑충 뛰었다. 5주째 J. 허버트(스튜어트)가 기어박스 고장으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6주에는 애들레이드 헤어핀에서 쿨사드가 바리첼로를 앞질렀다. 11위를 달리던 P. 디니스(자우버)가 트랜스미션 고장으로 초반 탈락했다.
쿨사드가 10주 들어 바리첼로에게 밀려났고, 알레지와 파니스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하키넨은 8위에서 다시 5위로 올라섰다.
비가 오기 시작한 21주. 경주차가 우르르 피트에 뛰어들었다. 파니스, 어바인, 베네톤 듀오 G. 피지켈라와 A. 부르츠, J. 빌르너브(BAR), D. 힐(조단), P. 데라로사(애로우즈)와 M. 헤네(미나르디)가 잇달아 피트에 들어가 타이어를 갈고 기름을 넣었다. 힐이 트랙으로 나가다가 데라로사에게 리어 휠을 긁혔다. 힐은 타이어 펑크로 스핀하고 33주째 전기계통 고장으로 물러났다. 어바인이 웨트 타이어를 갈아 신느라 9위에서 11위로 미끄러졌다.
뒤이어 22주에는 바리첼로, 하키넨, 알레지, 프렌첸, 슈마허 형제 미하엘과 랄프(윌리엄즈), J. 트룰리(프로스트), R. 존타(BAR), A. 자나르디(윌리엄즈)와 L. 바도에르(미나르디)가 첫 피트인을 마쳤다. 선두는 여전히 바리첼로였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25주 세이프티카 AMG 벤츠가 트랙에 나와 10주 동안이나 대열을 이끌었다. 35주째 AMG 벤츠가 물러나고 레이스 재개. 바리첼로가 선두를 지켰다. 38주에는 애들레이드 헤어핀에서 스핀한 하키넨이 2위에서 7위로 굴렀다. 43주째 9위 피지켈라가 미끄러져 중도하차했다. 수중전의 제물이 잇따랐다.
다음 주에 페라리의 슈마허가 바리첼로를 따돌리고 처음으로 선두에 나섰다. 54주째 슈마허의 F399가 기어 고장으로 갑자기 속도가 떨어지면서 6위로 물러났다. 황급히 피트에 들어가 핸들을 갈았고, 그 틈에 바리첼로가 다시 선두를 잡았다.
종반 60주에 하키넨이 바리첼로를 밀어내고 선두를 잡았다. 승리를 굳힌 듯 하던 하키넨이 65주째 바리첼로와 거의 동시에 2차 피트인. 그 사이 프렌첸이 치고 나갔다. 70주에는 랄프 슈마허가 형 미하엘을 제치고 4위에 올랐다. 하지만 미하엘의 동료 어바인에게는 추월하지 말라는 팀 명령이 떨어졌다. 타이틀전에 유리한 슈마허에게 단 한 점이라도 보태기 위해서였다.
72주를 마쳤을 때 선두 프렌첸에 이어 하키넨, 바리첼로, 슈마허 형제, 어바인이 득점권에 들었다.
조단팀의 의표를 찌른 작전이 프렌첸의 승리를 일궜다. 결승을 앞두고 각 팀은 스타트 30분 뒤쯤 비구름이 서키트 상공에 도달한다는 정보를 손에 넣었다. 이때 조단팀은 비가 오면 웨트 타이어로 바꾸고 남은 50주를 달릴 만한 기름을 넣기로 했다. 바로 원스톱 작전이었다. 65주째 하키넨과 바리첼로가 2차 급유 스톱에 들어갔을 때 프렌첸은 둘을 따돌리고 선두를 잡았다. 그 뒤 72주의 피니시까지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97년 산마리노 GP 이후 2년만에 오른 표창대 정상이었다. 통산 2승.
"완벽한 작전의 성과다. 실버스톤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싶다." 프렌첸은 조단의 상승세를 선도하고 있었다.

제8전 영국 그랑프리

시즌 전반을 결산하는 제8전 영국 그랑프리가 실버스톤 서키트(1주 5.140km, 60주)에서 승부를 갈랐다.
10일 토요일의 예선에서 맥라렌의 M. 하키넨이 혼자 1분 24초대에 들어 시즌 6회째 PP를 잡았다. 시즌 4승을 향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이다. 페라리의 M. 슈마허는 0.419초 뒤진 2위로 제1열에 나섰다. 3위는 맥라렌의 D. 쿨사드. 뒤이어 페라리의 E. 어바인이 들어서 맥라렌과 페라리의 1, 3위와 2, 4위의 협공 대열이 짜여졌다. 그 뒤로 제7전의 승자 H.H. 프렌첸과 은퇴를 선언한 D. 힐과 R. 슈마허가 섰다.
하키넨이 PP를 잡기 시작한 것은 맥라렌에 입단한 뒤부터로 97년 룩셈부르크 그랑프리가 첫 경기였다. 그 뒤 27전 중 16회를 따내 PP율은 60%에 이른다. 사상 최다 PP를 기록한 A. 세나(경기중 충돌로 사망)와 맞먹는 수준이다.
99 시즌을 끝으로 서키트를 떠나는 D. 힐(조단)은 6위. 올해 최고의 예선 전적이다. 영국 그랑프리가 최종전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결단력이 부족한 그의 말을 믿기는 이르다.

슈마허, F1 판도 뒤엎는 대사고
챔프 하키넨, 구동계 고장 탈락

11일 일요일 결승이 벌어지는 실버스톤 스탠드는 12만 관중으로 메워졌다. 아버지 그레이엄에 이어 타이틀(96년)을 거머쥔 고국의 영웅 D. 힐(조단)의 마지막 경기를 보려고 영국팬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스탠드에는 조단의 황색기가 출렁였다.
프로스트의 O. 파니스는 그리드에 나오지 않고 피트 레인에서 출발했다. 스타트의 빨간불이 꺼지면서 번개같이 달려나간 하키넨은 쿨사드의 후위를 받으며 선두를 잡았다. 2위에서 밀려난 슈마허와 어바인이 그 뒤를 맹추격했다. 하지만 파란 타이어 연기 속에 2대의 경주차가 서 있었다. 엔진이 꺼진 J. 빌르너브(BAR)와 A. 자나르디(윌리엄즈)였다. 묘하게도 토요일 예선에서 말다툼을 한 두 사람이었다.
경주차 대열이 루필드 헤어핀에 들어섰을 때 경기 진행위원들이 레이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리드에 묶인 차 때문이었다. 하지만 슈마허를 비롯한 선두 그룹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스토우 코너에서 동료 어바인을 앞지르려 할 때 슈마허의 경주차 네 바퀴가 잠겨 그대로 타이어 장벽을 들이받았다. 시속 200~230km.
앞쪽이 찌그러진 경주차에서 슈마허가 빠져나오려 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긴급의료반이 달려와 헬기에 싣고 사우섬턴 종합병원으로 날아갔다. 마샬과 작업원들이 타이어 장벽을 고치고 일그러진 경주차를 치우는데 40분이 걸렸다.
재출발 때 하키넨이 다시 총알같이 달려나갔다. 동료 슈마허가 사라져 3위로 올라선 어바인이 쿨사드를 제치고 뒤따랐다. 프렌첸이 4위. P. 데라로사의 애로우즈가 트랙에 묶여 다시 AMG 벤츠의 안전차가 나왔다. 애로우즈가 차고로 끌려간 뒤 곧 레이스가 재개되었다.
3주째 하키넨은 어바인을 1.5초 앞서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어바인과 쿨사드가 바싹 뒤쫓고, 프렌첸이 간격을 두고 따랐다. 형이 사라진 서키트에서 R. 슈마허(윌리엄즈)가 프렌첸을 추격했다.
16주째 하키넨이 여유있게 거리를 벌리며 급유 스톱에 대비했다. 22주째 힐이 피트인했고, 바리첼로가 뒤따랐다. 3위 쿨사드도 피트에 들어갔다.
하키넨은 25주에 피트인 해 9.2초나 걸렸다. 왼쪽 뒷바퀴에 이상이 있었다. 한 주 뒤에 다시 들어가 수리를 받았다. 28주에는 최고속 랩타임을 올리며 분투했지만 러필드 코너에서 바퀴가 달아났다. 세 바퀴로 돌아온 하키넨의 MP4/14에 새 바퀴가 달렸다. 선두는 동료 쿨사드에게 넘어갔다. 어바인, R. 슈마허와 프렌첸이 쿨사드 사냥에 열을 올렸다.
빌르너브의 BAR이 구동계 고장으로 발이 묶이자 안전차가 다시 들어왔다가 1주 뒤에 나갔다. 트랙에 돌아온 하키넨이 총공세를 펴며 돌진했지만 35주째 구동축 고장으로 끝내 물러났다. "안전을 위해 팀이 경기 중단을 지시했다." 콕피트를 나온 하키넨은 천적 슈마허가 사라진 서키트를 휩쓸지 못한 아쉬움을 삼켰다.
어바인이 41주에 피트인. 선두 쿨사드는 어바인과의 거리를 꾸준히 벌리고 있었다. 10주가 남았다는 모니터 표시가 나왔을 때 3초차. 저속차를 잘 피하면서 안정주행을 한다면 승리는 확실했다.
선두를 다투는 쿨사드와 어바인 뒤에서 R. 슈마허, 프렌첸과 힐이 혼전을 벌이고 있었다. 잠시 힐이 프렌첸을 뒤쫓았지만 표창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지막 몇 주에 어바인이 속도를 올리며 쿨사드를 압박했다. 하지만 앞지르기는커녕 따라잡기도 힘들었다. 형 미하엘 슈마허가 떠난 서키트에서 동생 랄프가 시즌 첫 등단의 영광을 안았다. 프렌첸, 힐과 P. 디니스(자우버)가 득점권을 마무리했다.
12만의 대관중은 영국 드라이버 쿨사드의 승리에 감격하고 환호했다. 지난해 산마리노 그랑프리 이후 실로 1년 2개월만의 우승이었다. 하지만 영국 관중은 5위 힐에게 더욱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아버지 그레이엄과 함께 챔피언(96년)의 영광을 조국에 안긴 힐은 영국 그랑프리를 끝으로 은퇴한다고 발표한 바 있었다(그러나 7월 16일 그는 시즌을 끝까지 뛰겠다고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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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스타 슈마허 없는 F1 어디로



F1계와 F1 팬들에게는 8전의 승패보다 M. 슈마허의 충돌사고가 더 큰 관심거리다. 이미 "미하엘 (슈마허)이 없는 F1은 생각할 수 없다"는 팬들의 아우성이 들려오고 있다.
뒷브레이크 고장이라는 잠정 결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차안에서 찍은 비디오를 보고 핸들을 비롯한 유압계 고장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유압계 고장이면 핸들, 액셀과 브레이크에 모두 이상이 온다. 슈마허를 담당한 사우섬턴 종합병원 주치의는 오른 다리 정강이뼈 골절이라고 밝혔다.
최악의 사태는 모면했지만 슈마허가 사라진 서키트는 썰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슈마허가 실력을 100% 발휘하려면 시즌이 끝날 무렵이나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수퍼스타가 사라진 F1 서키트. 97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다친 O. 파니스(프로스트)는 복귀할 때까지 3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다리 부상의 영향은 1년 6개월까지 남아 있었다.
특히 오른쪽 다리는 심각하다. 슈마허는 오른발로 액셀만이 아니라 때로는 브레이크도 조작한다. 이 절묘한 테크닉이 슈마허의 장기다. 파니스의 경우를 보면 한 번 부상 당한 뒤에는 사고 재발에 대한 공포감이 남는다.
슈마허가 중심축인 페라리는 초상집이 되고 말았다. 대타 선발을 놓고 고민 끝에 M. 살로를 받아들였다. 지난해 애로우즈에서 뛰다가 탈락했고, 이번 시즌에는 브라질 그랑프리에서 부상한 R. 존타(BAR)를 대신해 3전을 뛰었다. 한마디로 "대타 전문"이다.
어바인이 하키넨의, 슈마허가 없는 페라리가 맥라렌에 맞서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더블 타이틀은 이미 맥라렌의 품안에 들어간 것일까.
후반 첫 경기 제9전 오스트리아 그랑프리는 7월 25일 A1 링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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