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군민들의 헌신적인 노력 뒤따라 국내 최초 랠리 성공적으로 치렀다 해피 700 평창 "99 코리아 랠리 챔피언십
1999-09-29  |   8,717 읽음
지난 7월 23~25일 강원도 평창군에서 국내 최초의 공인 랠리(경기 기사는 8월호 참조)가 열렸다. 49대의 경주차가 출전해 기량을 겨룬 이번 랠리는 국내 모터 스포츠에서 처음 시도된 분야였고, 다양한 장르를 열어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많은 관심을 모았고 기대 또한 컸다.
이를 반영하듯 대회기간 중에는 50여 명의 보도진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고, 말레시아 국영 TV에서도 5명의 취재진을 파견해 경기를 취재,15분 동안 편집해 방송했다.


자원봉사 손길 랠리 전구간에 뻗어
험로에서 빛난 드라이버들의 우정


한국자동차경주협회의 정영조 회장은 "국내 모터 스포츠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만큼 뜻 깊은 대회였다. 이번 랠리를 계기로 코스 개발, 운영 노하우 축적 등 몇 가지만 보완하면 국제대회를 치러도 손색이 없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관전 소감을 밝혔다. 많은 관계자들도 "랠리의 가능성을 본 대회였다"고 평가했다.
이번 랠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창군민이 하나로 뭉쳐 행사를 치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오피셜은 안전한 경기 운영을 도왔고, 모범운전사들의 길 안내, 아마추어 무선통신사들의 정보제공 등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랠리 전구간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랠리가 끝난 후 권혁승 평창군수는 "군민과 AMCA, KARA 그리고 군청 관계자들이 힘을 모은 덕분에 무사히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첫 대회라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이번 랠리를 교훈 삼아 다음부터는 매끄럽고 볼거리가 많은 대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평창 랠리는 스폰서가 나서지 않아 대회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1억 원의 예산으로만 레이스를 마쳤다.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이벤트는 7~8억 원이 들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평찬군은 헤드쿼터를 군청으로 정해 경비를 줄이는 등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일구어냈다. 헤드쿼터를 호텔이나 리조트로 정할 경우 2~3일 동안 2~3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해피 700 "99 평창 코리아 랠리 챔피언십은 풍성한 이야깃거리도 만들어냈다. 드라이버들은 험로에서 우정의 꽃을 피웠고, 모터 스포츠 관계자들은 처음 열린 랠리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모터 스포츠는 차와 드라이버가 하나되어 시간으로 승부를 다투는 경기이므로 드라이버들은 한눈을 팔거나 지체할 여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번 랠리에서 드라이버들은 곤경에 처한 동료를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시간을 쪼개 도와주는 우정을 보였다.
김정수(이글)는 SS3에서 코스를 벗어나 둔덕에 빠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탈출하지 못해 레이스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도움 덕택으로 김정수는 1시간 56분을 고생하고서야 겨우 SS3을 탈출,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김정수는 레이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움의 릴레이는 계속되었다. SS2에서 엔진 트러블로 리타이어한 김종수(춘천 코뿔소)는 다른 엔진을 준비하지 못해 이튿날의 레이스에 출전하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김정수가 자신의 승용차인 슈마 엔진을 빌려주어 SS15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많은 드라이버들이 동료애 덕분에 곤경을 벗어났다.
KARA와 AMCA는 "세계 랠리 유치 추진과제 선정을 위한 설문서"를 참가자들에게 돌려 눈길을 끌었다. 사실 그 동안 모든 레이스는 일회성 행사에 그쳤고, 레이스에 대한 평가는 일부 오피셜의 몫이어서 현장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KARA와 AMCA는 "설문서를 통해 모터 스포츠의 발전에 대한 드라이버들의 의견을 묻고 이를 바탕으로 협회를 운영하겠다"고 말해 드라이버들을 주인으로 대하는 자세를 보였다.
설문서를 받아 본 레이서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기회가 자주 있어야 했다. 그동안은 드라이버의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우리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설문서를 다음 대회를 알차게 치르는 밑거름으로 활용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국제대회 유치 자신감 가져
코스개발,오피셜 양성 필수


그러나 평창 랠리의 무엇보다 값진 성과는 국제대회를 유치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F1 그랑프리와 함께 세계 모터 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WRC는 프랑스, 포르투갈, 영국 등지에서 매 경기마다 30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끌어 모으고 있다. 2000년부터는 수퍼 스페셜 스테이지를 TV로 방송(이전까지는 랠리의 특성상 전파를 타는 것이 불가능했다)하기로 해 그 인기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평창 랠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WRC다. 평창군은 비포장 도로가 300km나 되어 APRC나 WRC를 치르기에 손색이 없는 조건을 갖추었고 WRC도 아시아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외형적인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권혁승 평창군수는 "평창을 세계에 알릴 방법 중 모터 스포츠만한 것이 없다. KARA와 협의해 최소 다섯 차례 정도 레이스를 치른 후 국제무대로 나설 계획이다"라고 밝혀 WRC 유치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또한 KARA도 인터내셔널 포뮬러 레이스인 F3(2천cc 미만)를 유치한 후 다양한 국제경기를 개최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 WRC 유치에 적극 협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대회를 치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우선 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 개발이 필수다. 이번 랠리가 끝난 후 AMCA의 강태성 실장은 "첫 대회여서 안전에 신경을 쓰다보니 관전 포인트 개발이 미숙했다. 다음 대회부터는 보기 좋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코스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 오피셜 양성도 시급하다. 이번 대회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빌렸지만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이 레이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전문성이 부족했고 약간의 잡음도 생겼다. 앞으로는 철저한 오피셜 교육으로 경기운영 노하우를 쌓아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계측 시스템과 각종 레이스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틀도 마련해야 한다.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이란

1911년 몬테카를로에서 시작된 랠리는 각 나라마다 고유한 전통에 따라 레이스를 펼쳤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던 랠리가 통일된 규정으로 각국을 돌며 순회경기로 치러지기 시작한 것은 1973년. WRC의 시작이다. 첫해 WRC는 몬테카를로 랠리를 개막전으로 총 13회의 레이스를 펼쳤다.
90년대 초반까지 WRC는 유럽 메이커의 무대였다. 르노, 란치아, 아우디가 거물로 성장했고, 92년까지 포드가 한 차례 타이틀을 땄을 뿐 WRC는 유럽 메이커의 손아귀에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는 도요다, 스바루, 미쓰비시를 앞세운 일본이 WRC의 강자로 자리를 굳혔다.
WRC 위닝 클래스에 참가하는 경주차는 4WD에 터보를 달아 300마력 이상의 파워를 낸다. 현재는 미스비시 랜서 에볼루션Ⅴ, 도요다 카롤라, 스바루 임프레사, 포드 포커스 등이 위닝 클래스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새로운 규정(월드 랠리카는 50대만 만들어도 된다. 이전까지는 양산대수 2천500대 이상이어야 자격이 주어져 많은 메이커가 참가를 망설였다)이 적용됨에 따라 세아트, 스코다, 푸조가 올해 도전장을 던졌고, 티뷰론으로 F2 클래스에 참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도 2000년부터 풀 참전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를 위해 새 경주차를 개발중인데 베이스 모델은 베르나로 알려지고 있다.
WRC도 F1처럼 활동무대를 아시아로 넓혀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지난해 치를 예정이었지만 정쟁으로 무산)가 거론되다가 올해는 중국에서 9월 17~19일 제11전을 열기로 했다. 체계를 갖추기만 하면 평창도 WRC의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WRC에 대한 유럽인들의 사랑은 열광적일 정도다. 경기마다 300만 명 이상의 구름떼 관중이 모여들고, 영국 랠리는 시청자가 1천140만여 명이나 된다. 97년 총 13전을 기준으로 국가별 관중을 보면 1경기에 1천270여만 명이 랠리를 관람했다. 전세계 시청자수는 130억을 웃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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