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그랑프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다 많은 팀들이 새로운 경주차 선보인
2000-05-29  |   9,238 읽음
1972년 F1 그랑프리 시즌에는 12년만에 아르헨티나 그랑프리가 부활했다. 이 경기의 연습에서 농부의 아들인 카를로스 알베르토 로이테만이 브라밤-포드 BT34를 몰고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자 모두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예선 결과 그는 결승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했고, 국유기업 YPF 정유회사가 그의 스폰서가 되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티렐-포드 003을 몬 재키 스튜어트가 첫 번째 랩에서 선두를 차지, 마지막 랩까지 맥라렌 M19A을 탄 데니스 헐름과 페라리 312B2의 재키 익스를 앞서 우승을 차지했다. 로이테만은 스타트는 좋았으나 피트에서 타이어를 바꿀 때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에머슨 피티팔디는 서스펜션 트러블로 리타이어했다.

브라밤, BRM 등 새 경주차 선보이고
피티팔디,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우승


이어 열린 남아프리카 그랑프리에서 스튜어트는 45랩까지 선두를 유지하다 트랜스미션 고장으로 경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 대신 맥라렌-포드 M19A를 탄 헐름이 선두로 나섰고, 로터스 72의 피티팔디와 팀 동료 피터 레브슨, 페라리의 마리오 안드레티 등을 누르고 1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브라질인 카를로스 파세는 이 경기에서 마치 721을 몰고 F1 그랑프리에 데뷔했다.

72년 유럽에서 열린 첫 번째 그랑프리는 자라마의 스페인 그랑프리였다. 여러 대의 새로운 경주차가 이 경기에서 처음 선보였다. 그레이엄 힐은 BT34의 개량형인 브라밤 BT37을 몰았는데, 이 차는 이전 모델의 집게발 모양 프론트 노즈가 아닌 평범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로이테만은 스페인 그랑프리가 열리기 몇 주 전에 상파울로의 인테라고스 서키트에서 열린 비공식 F1 경기에서 BT34를 몰고 우승했다. 그러나 시즌 초 무한한 장래성을 보여줬던 로이테만은 영국 F2 경기의 연습에서 바퀴가 빠지는 사고로 발뼈가 부러져 스페인과 모나코 그랑프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스페인 그랑프리에 등장한 또 다른 새로운 경주차는 BRM의 P180으로 피터 게딘이 운전했다. 이 경주차를 디자인한 토니 사우스게이트는 구동바퀴 쪽으로 무게배분을 옮기는데 가장 많은 중점을 두었다. 또한 뒷바퀴 위에 있는 공기흡입구 안에 라디에이터와 오일쿨러를 놓는 새로운 방법도 시도했다. 프론트 노즈의 모습은 로터스 72와는 전혀 다른 쐐기 모양이었지만, 아쉽게도 성능은 기대 이하였다.

두 대의 새로운 마치-포드 모델도 등장했는데, 워크스 드라이버인 페터슨와 라우다가 721X, 마이크 베틀러(Mike Beuttler)가 721G를 운전했다. 로빈 허드는 로터스와 BRM이 뒷바퀴쪽에 무게중심을 맞추는데 중점을 둔 것과 달리 경주차의 중심 부분에 무게를 집중시키는 방법으로 721X를 디자인했다.
알파로메오의 스포츠카에 쓰는 타입 33/T3 트랜스미션을 리어 액슬 바로 앞에 놓고, 안전성이 높아진 새장 구조의 콕피트을 최대한 앞쪽으로 놓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BRM P180처럼 721X도 성공적인 디자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프랑스 그랑프리 이후 이전 방식 무게배분과 모노코크 보디 옆에 라디에이터를 단 721G로 모두 바뀌었다.에머슨 피티팔디의 우승 행보는 1972년 스페인 그랑프리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5위로 출발했지만 후반에 선두로 나섰다. 재키 익스와 클레이 레가조니의 페라리 312B2s가 피티팔디의 뒤를 쫓았고, 서티스-포드 TS9을 탄 안드레아 드 아다미크와 맥라렌-포드 M19A의 피터 레브슨, 마치-포드 721의 카를로스 파세, 그리고 F1 그랑프리에 처녀 출전한 브라밤-포드 BT33의 윌슨 피티팔디 등 네 대의 경주차가 무리지어 그 뒤를 맹추격했지만 결국 우승은 피티팔디에게 돌아갔고, 재키 스튜어트는 스핀으로 리타이어했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엄청난 폭우 속에서 열렸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경주차들이 스핀을 일으켜 역사상 가장 많은 파란이 일어난 경기로 기록되었다. 폭이 가장 넓은 최신형 레이싱 타이어도 곳곳에 고여 있는 빗물 위에서는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레이서 잔 피에르 벨토이즈는 BRM P160을 몰고 그 엄청난 빗속을 뚫고 달렸다. 많은 선수들이 빗길에 미끄러져 충돌하거나 속도를 줄여 나쁜 성적을 냈지만, 그는 자신의 경주차와 노면상태 등을 완전히 파악해 스타트부터 피니시까지 최악의 조건을 이겨내며 실수 없이 달려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우승은 레이스 경력에서 유일하게 자기 힘으로 얻은 승리였다.
모나코에서 재키 스튜어트와 티렐-포드 콤비는 더 이상 최고가 아니었다. 경쟁자들의 머신 성능이 더욱 좋아졌고, 스튜어트가 쓰는 굳이어 타이어보다 파이어스톤이 훨씬 성능이 좋았기 때문이다.

많은 파란 일어난 모나코 그랑프리
티렐과 마트라의 새 경주차 등장해


벨기에 그랑프리는 스파 서키트가 아니라 브뤼셀 근처 니벨에 새로 만든 서키트에서 열렸다. 고속 코스인 스파 서키트가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트랙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했지만 그러기엔 엄청난 자본이 필요해 결국 장소를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이 모두에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니벨 서키트의 코스는 겨우 3.72km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키 스튜어트는 위궤양으로 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피티팔디는 연습에서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했고, 레가조니가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로터스 72를 운전한 피티팔디가 티렐의 세베르, 맥라렌의 험름을 누르고 우승했다. 테크노의 새로운 경주차 테크노 PA123도 처음 선보였으나 레가조니와 충돌해 둘 다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벨기에 그랑프리가 끝나고 며칠 후 티렐은 프랑스의 르망에서 새로운 005 모델을 언론에 공개했다. 데렉 가드너는 이 머신을 넒은 박스 모양의 섀시 뒤쪽에 높은 공기흡입구를 달고 더욱 에어로다이나믹한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세베르가 이 새로운 경주차를 처음 탔다. 그러나 연습중 트랙을 벗어나 방호벽에 충돌, 영국 그랑프리에 다시 등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독일 그랑프리는 잔트보르트 서키트가 안전시설을 보강하는 공사 중이어서 취소되었다.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조르쥬 마르텡과 로베르 모렝이 디자인한 타입 MS120D가 새로 등장했다. 이 머신은 69년에 등장한 MS80과 거의 흡사했고, 중심 부분이 공처럼 둥그런 모양이었다. 크리스 아몬은 이 머신을 타고 연습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냈다. 레가조니는 찰스부르크링의 1만km 스포츠카 경주에서 페라리팀 미케닉들과 축구시합을 하다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프랑스 그랑프리에 참가하지 못했다. 대신 페라리는 테크노팀의 드라이버 나니 갈리에게 312B2를 몰게 했고, 데렉 벨은 테크노를 운전했다.
이 경기에서 마트라팀의 크리스 아몬이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경기 후반까지 그 누구도 선두로 달리는 아몬의 파란색 경주차를 추월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타이어 펑크로 스튜어트와 피티팔디에 이어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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