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키 스튜어트, 두 번째 월드 챔피언 되다 1971년(하)/ 71년 F1 그랑프리 시즌에서 여섯 번 우승한
2000-03-26  |   7,988 읽음
짤즈부르크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그랑프리는 조셉 시퍼트의 날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BRM P160을 타고 연습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운 그가 이 경기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폴 포지션을 차지한 시퍼트는 경기 내내 선두를 유지하며 폴 투 피니시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티렐-포드를 탄 재키 스튜어트가 그를 바짝 쫓으며 추월하려고 했으나 34랩에서 스핀해 트랙 밖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선두로 달리던 시퍼트의 경주차 왼쪽 뒤 타이어는 마지막 랩에서 바람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점점 뒤로 처지자 로터스 72를 몬 에머슨 피티팔디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세 그를 따라 붙었다. 시퍼트는 피티팔디보다 겨우 5.1초 먼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아슬아슬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의 승리는 시퍼트의 마지막 승리가 되었다. F2 드라이버 출신인 마치의 니키 라우다는 이 경기가 그가 참가한 첫 번째 월드 챔피언십 F1 그랑프리였다.

슬립스트림 경주 벌어진 이태리 그랑프리
프랑스인 세베르 미국 그랑프리에서 우승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출전을 포기했던 마트라는 이태리 그랑프리에 다시 출전했다. 몬자 서키트에서 열린 이 경기의 연습에서 크리스 아몬은 베스트 랩을 기록했다. 레이스는 스타트 신호와 함께 고속의 슬립스트림 경주로 시작되었다. 레가조니와 아몬, 시퍼트, 피터슨, 스튜어트 등이 모두 한두 번씩 선두로 나섰고, 신인 드라이버 마이크 헤일우드와 피터 게딘이 선두에 나서기도 했다. 월드 모터사이클 챔피언이었던 헤일우드는 서티스의 TS9를 몰고 이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그는 몇 해전부터 특별한 소속팀 없이 개인 자격으로 F1 경기에 출전하고 있었다. 반면 게딘은 유명한 영국 레이서의 아들로 BRM의 P160을 탔다. 아몬은 연료공급장치에 문제가 생겨 선두그룹에서 뒤로 쳐졌고, 시퍼트는 트랜스미션의 결함으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사진판정으로 아슬아슬하게 게딘이 마치 711을 몬 로니 페터슨과 1m 간격으로 예기치 않은 우승자가 되었고, 간발의 차이로 티렐의 세컨드 드라이버 프랑수아 세베르가 3위를 차지했다.

슬립스트림 경주는 복권 당첨과 같이 운이 따라야 하는데 게딘의 우승은 그 행운과 훌륭한 감독의 도움으로 우승컵을 안을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랩의 파라볼리카 코너에서 늦게 브레이크를 밟는 위험한 브레이킹 트릭으로 그의 라이벌들을 누를 수 있었다. 다음에 열린 캐나다 그랑프리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펼쳐졌다. 굿이어 레인타이어는 모든 면에서 파이어스톤보다 뒤떨어졌다. 이 경기에서 파이어스톤을 낀 재키 스튜어트는 로니 페터슨을 이기고 또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 F1 그랑프리에 참가한 미국인 레이서 마크 도너휴는 로저 펜스키팀 소속으로 맥라렌-포드 M19A를 몰고 3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성적을 보였다.

1971년 월드챔피언십 시리즈는 확장수리를 해 더욱 안전해진 와킨스 글렌 서키트에서 열린 미국 그랑프리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경기 초반에 선두로 나섰던 스튜어트가 엔진 트러블로 뒤로 처지자 그의 팀 동료 세베르가 앞으로 나섰다. 이 경기에서 세베르는 시퍼트와 페터슨을 누르고 처음으로 F1 그랑프리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것은 1958년 모나코에서 모리스 트랭티냥 이후로 그랑프리에서 프랑스인이 거둔 첫 번째 우승이었다.국제스포츠위원회는 71년 F1 그랑프리 월드챔피언십 시리즈 중 마지막 경기인 멕시코 그랑프리를 취소했다. 70년 멕시코 경기처럼 질서를 잃은 군중들이 트랙 가장자리까지 떼지어 몰려들 경우 또다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사유였다. 또한 멕시코의 우상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죽음 이후로 F1 그랑프리는 멕시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큰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스튜어트, 두 번째 월드 챔피언 영광 안고
비공식 F1 경기에서 조셉 시퍼트 목숨 잃어


1971년 11회 열린 월드챔피언십 시리즈에서 9회나 완주하고 여섯 번의 우승을 차지한 재키 스튜어트는 62포인트를 얻어 생애 두 번째 월드 챔피언의 영광과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라는 명예를 안았다. 시즌 후반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 마치의 로니 페터슨은 33포인트를 얻어 2위, 그 뒤를 스튜어트의 팀 동료 프랑수아 세베르가 26포인트로 3위를 차지했다. 재키 익스와 조셉 시퍼트는 각각 19포인트를 얻는데 그쳤고, 처음으로 모든 F1 그랑프리 경기에 참가한 에머슨 피티팔디는 6위를 했다. 티렐팀의 스튜어트와 세베르는 총 11회의 경기 중 7회를 우승해 팀에게 컨스트럭터즈 부문의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티렐팀의 승리는 그 해가 그들의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놀라운 업적이었다.

페라리의 우승과 함께 시작되었던 71년 F1 그랑프리 시즌은 후반 이후 페라리의 성적이 점점 떨어지자 스튜어트와 티렐 콤비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BRM은 그들의 본 기지에서 많은 발전을 보여 시즌 마지막 몇몇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마트라, 맥라렌, 브라밤 등은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의 매우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맥라렌 M19A와 페라리 312B2의 새로운 실험적인 서스펜션 시스템은 시즌 경기를 통해 결국 실패로 밝혀져 다시 이전의 것으로 바뀌었다. 정교하면서도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는 포드-코스워스 DFV 엔진은 많은 사람들의 성적이 나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뛰어난 성능을 보이며 71년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4위를 차지했다.

1971년 레이스 시즌 후반에는 또 다른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취소된 멕시코 그랑프리 대신 10월 24일 영국 브랜즈 해치에서 비공식 F1 경기인 로스만스 월드 챔피언십 빅토리 레이스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 BRM P160을 탄 조셉 시퍼트가 14랩에서 죽는 사고가 일어나 경기가 중단되었다. 당시 정확한 사고원인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기술적 결함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불길에 휩싸인 BRM은 곧 폭발했고, 콕피트에 있던 시퍼트는 연기에 질식해 숨지고 말았다. 소방관과 비상 구조대가 도착했으나 너무 늦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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