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모나코, 프랑스, 영국, 독일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다 최고의 우승 조건을 가진 재키 스튜어트
2000-02-24  |   9,606 읽음
1971년 F1 그랑프리 월드챔피언십 시리즈는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데니스 헐름은 새로운 맥라렌 M19A로 선두로 달리고 있었으나 서스펜션 문제로 뒤로 쳐졌고, 곧 페라리 312B1을 몰고 출전한 마리오 안드레티가 1위로 나서 F1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마트라는 처음으로 엔진 위에 높은 공기 흡입구를 달고 나왔는데, 이것은 엔진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압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차를 본 많은 F1 경주차 디자이너들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실험을 통해 다양한 공기 흡입구의 모양을 개발해 그들의 차에 적용시켰다.

티렐, 새로운 프런트 브레이크 선보여
빗속 경기 타이어 선택이 우승 결정해


1월말 마트라의 크리스 아몬은 아르헨티나 F1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비공식 경기였던 이 경기에는 페라리, 티렐, BRM 등의 많은 정상팀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마트라의 우승은 마트라 V12 엔진의 첫 번째 F1 그랑프리에서의 우승이었다. F2 드라이버였던 카를로스 알베르토 로이테만은 조킴 보니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맥라렌-포드 M7A을 몰고 이 경기에서 처음으로 F1에 데뷔해 3위를 차지했다. 71년 시즌 종반에 그는 브라밤의 워크스 드라이버로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십 경기에 참가하게 된다.

클레이 레가조니는 3월에 영국 브랜즈 해치에서 열린 일반 레이스에서 마우로 포르기에리가 디자인한 페라리 312B2로 우승을 차지했다. 몇 주 후 페라리의 안드레티는 구형 312B1로 캘리포니아 온태리오 서키트에서 열린 비공식 경기인 퀘스터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열린 챔피언십에서의 우승은 스페인과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던 티렐-포드의 재키 스튜어트에게 돌아갔다. 바로셀로나에서 페라리 312B1을 몬 재키 익스는 스튜어트를 그림자처럼 뒤쫓았으나, 모나코 경기에서는 스튜어트와 티렐의 팀웍에 그 누구도 경쟁할 자가 없었다.

모나코 그랑프리의 연습에서 티렐은 새로운 걸링 프론트 브레이크를 선보였다. 이전까지 디스크는 휠 림 밖에 있어 공기에 직접 닿아 냉각되었으나, 새로이 림 안으로 옮겨진 디스크는 쉽게 과열되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티렐은 듀얼 디스크를 썼다.

네덜란드 그랑프리에서는 타이어 선택이 가장 중요한 우승요인이었다. 스타트 때부터 내린 심한 비로 인해 트랙은 젖어 있었고, 이것은 곧 굿이어 타이어를 낀 선수들보다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쓴 경쟁자들이 더 우수한 성능을 내게 했다. 페라리 312B2를 탄 익스와 BRM P160을 몬 로드리게스는 곧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선두 그룹을 이뤄 치열한 경쟁을 벌렸다. 비오는 날에 더욱 뛰어난 운전 실력을 발휘하는 드라이버 재키 익스가 무서운 경쟁자인 로드리게스를 따돌려버릴 때까지 그들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많은 드라이버들사이에서 재키 스튜어트는 상대방의 꼬리에 코를 대고 쫓았으나 결국 트랙을 벗어나고 말았다. 로터스 56을 몬 데이브 워커는 빗길에 미끄러져 레이스를 방호벽에서 끝마쳤다.

프래트 앤 휘트니 개스터빈 엔진을 얹은 로터스 56은 1970년 인디애나폴리스 로터스 경주차의 변형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 머신은 유럽의 코스에 적응하기 어려워 에머슨 피티팔디와 라이네 비젤은 스핀으로 트랙을 벗어나 방호벽에 충돌하고 말았다. 개스터빈 엔진은 코너 밖에서 부드러운 가속으로 최고 엔진 회전수에 다다를 때까지 엔진의 회전속도를 계속 올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 드라이버는 코너에 들어서기 전에 브레이킹과 동시에 최대로 가속하는 테크닉을 구사해야 했다.스튜어트 새로운 경주차로 또다시 우승
비운의 죽음 맞은 페드로 로드리게스


티렐의 재키 스튜어트는 마르세이유 근처 르 카스텔레에 있는 새로운 서키트에서 열린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또 다른 통쾌한 우승을 거머쥐었다. 티렐-포드를 몬 스튜어트는 경쟁자들의 모든 움직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미리 대치하는 등 그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티렐은 이 경기에서 넓게 벌어진 노즈가 똑바르게 바퀴까지 뻗은 새로운 머신 티렐-포드 001을 선보였다. 이 디자인은 경주차에 더 큰 다운포스를 주었고, 다른 디자이너들은 곧 이 디자인을 참고해 새로운 경주차를 개발했다. 프랑스 그랑프리에서는 티렐 엔진이 표준 연료를 쓰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연료 테스트 후 이상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곧 잠잠해졌다. 그러나 또다시 영국 그랑프리에서 티렐 경주차의 엔진 배기량이 틀리다는 풍문이 돌았고, 검차결과 규정에 맞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시즌 중반 BRM과 페라리 모두 경주차 섀시에서 진동이 발생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발견했다. BRM의 경주차는 롤바 위에 놓인 점화 코일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트러블은 코일이 진동이 있는 곳에 달린 것이 원인이었기 때문에 실린더 헤드 위로 위치를 옮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 사건은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직전에 있었는데, 같은 시기에 페라리의 기술자들도 진동으로 발생하는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모든 테스트를 해보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고 차의 진동 트러블은 시즌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나 결국 BRM과 페라리 모두의 문제는 파이어스톤 타이어에 그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그 해결책으로 타이어의 지름이 더 커졌다. 1969년 페라리 2ℓ 212E를 몰고 유러피언 마운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피터 쉐티 박사는 1971년에 페라리 경주팀의 매니저로 임명되었다.

페드로 로드리게스는 그 해 7월에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서키트에서 열린 한 인기 없는 스포츠카 경주에서 31세의 나이로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페라리 512를 타고 이 경기에 참가했는데, 경기 중에 앞서 천천히 달리던 경주차가 갑자기 멈추는 것을 미쳐 피하지 못하고 충돌하고 말았던 것이다. 페라리는 곧 불길에 휩싸여 폭발했고, 그는 살아나지 못 했다. 뛰어난 운전기술을 가지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드라이버도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었다.

실버스톤에서 열린 영국 그랑프리에서도 재키 스튜어트의 우승은 계속 되었고 이것은 독일 그랑프리까지 이어졌다. 독일 그랑프리는 완전히 새롭게 지어지고 최신의 안전 시설을 갖춘 뉘르부르크링 서키트에서 다시 한 번 열렸다. 프랑스에서 2위를 차지했던 티렐팀의 세컨드 드라이버인 프랑수아 세베르는 이 곳에서도 2위를 차지했고, 이 어려운 고난도의 코스에서 7분 20.1초의 새로운 랩 레코드(시속 186.8km)를 세웠다. 티렐의 성공은 재키 스튜어트의 능력과 재능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술적으로 진보한 경주차의 우수함도 기여한 것이었다.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