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모터스포츠

Bentley EXP Speed 8 70년 전 영광.. 2001-02-28
모터쇼의 벤틀리 부스는 항상 고급, 고성능 모델로 화려함을 자랑해왔다. 하지만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날렵한 레이싱카 한 대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쐐기형 노즈에 거대한 벤틀리 날개를 그려 넣고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으로 차체를 감싼 이 모델의 이름은 ‘EXP 스피드8’. 70년여 만에 르망 제패를 목표로 등장한 벤틀리 경주차다. 지난해 우승했던 아우디 엔진 얹어 벤틀리의 역사는 당시 많은 메이커들이 그랬듯이 항공기 제작기술에 뿌리를 두고 있다. 1차대전 중 항공 엔진(BR1/2) 개발로 이름을 날렸던 월터 오웬 벤틀리는 1920년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 자동차 메이커를 창업했다. 고성능 GT를 목표로 한 벤틀리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벤틀리 블로어’라 불리는 수퍼차저 모델로 1924년 첫승을 올렸다. 벤틀리는 27년부터 30년까지 4연승을 올리며 최고의 성능과 신뢰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레이스 성적과는 반대로 1931년 도산했고 롤즈로이스에 인수되어 이후 롤즈로이스를 개조한 고급, 고성능 모델을 선보여 왔다. 롤즈로이스 역시 90년대 들어 경영이 악화되었고 지금은 모두 폴크스바겐에 인수된 상태다. 하지만 BMW가 롤즈로이스 상표권(상표권만은 롤즈로이스 항공부문 소유였다)을 사들이면서 2003년부터는 한집안 식구였던 롤즈로이스와 벤틀리가 BMW, 폴크스바겐의 대리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다. 폴크스바겐은 우선 ‘롤즈로이스의 스포츠 버전’이라는 벤틀리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팔을 걷어 부쳤다. 99년 수퍼 컨셉트카 유노디에르를 발표한데 이어 올해부터는 르망 24시간에 도전한다. 그 주인공이 바로 EXP 스피드8이다. 경쟁차들 대부분 지붕이 없는 프망 프로토타입(LMP) 규정을 따르는데 비해 벤틀리는 지붕이 있는 GTP 규정을 선택했다. GTP 클래스에서는 포르쉐가 퇴진을 선언했고 지난해에는 벤츠와 도요다가 떠나버려 지금은 경주차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휠 폭이 LMP의 16인치보다 좁은 14인치지만 대신 공기저항이 적고 에어 리스트럭터(흡기제한기) 내경이 1mm 커 출력 면에서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경주차 개발은 RTN(Racing Technology Nortfolk)이 담당하고 리처드 로이드가 이끄는 아펙스 모터스포츠(Apex Motorsport)가 테스트와 레이스 참가를 맡는다. EXP 스피드8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가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이다. 윈드터널에서만 11주라는 오랜 시간을 보내며 1천 가지의 다양한 테스트를 거쳤다. 앞부분은 날카로운 쐐기형으로 전형적인 경주차 스타일을 따른다. 노즈를 타고 올라 온 공기는 양쪽으로 나뉘며 펜더와 운전석 사이의 통로를 타고 엔진룸으로 보내진다. 이것은 차체 양쪽에 흡기구가 있던 예전 스타일이나 최근의 LMP 경주차보다 높은 효율을 자랑한다. 서스펜션은 레이싱카의 기본이랄 수 있는 푸시로드식 인보드타입(댐퍼를 차체 안에 내장)으로 앞쪽에 일반 스프링 대신 토션빔을 사용했다. 방해물을 줄임으로써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차체와 보디패널은 모두 카본 파이버 소재로 섬유의 배열방향을 통일함으로써 강성을 더욱 높였다. 카본 모노코크의 튼튼한 캐빈룸은 드라이버를 보호하면서 무게는 70kg에 불과하다. 이 차가 데뷔 첫해부터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이유는 V8 3.6X DOHC 트윈 터보 엔진 때문이다. 지난해 아우디 LMP 경주차에 얹혀 1, 2, 3위를 안겨주었던 엔진인 만큼 성능과 신뢰성은 충분하다. EXP 스피드8에는 터보차저를 새로 바꾸고 많은 부분을 손질해 얹었다. 트랜스미션은 X트랙의 6단 세미 AT. 브레이크는 AP가 개발한 카본 디스크와 패드를 사용한다. 타이어는 앞뒤 모두 OZ의 단조 마그네슘 소재 18인치. 타이어는 20~30년대 벤틀리와 함께 했던 던롭이 오랜만에 다시 파트너가 되었다. 이 차는 모터쇼 전시를 끝낸 후 5월 5~6일 열리는 르망 공식 테스트에 모습을 나타낼 예정이다. 드라이버진은 이미 결정되었다. 데이토나와 세브링 우승 경험이 있는 앤디 월레스와 95년 IMSA, 96년 BPR 챔피언이자 97년 데이토나 우승자인 제임스 위버, 그리고 데이토나에서 세 번의 우승과 WSC 챔피언 2회에 빛나는 부치 라이츨러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르망은 오랜만의 우승을 노리는 벤틀리 덕분에 벌써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F1800 섀시 구조와 세팅 바로알기 2000-11-28
11월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레이스 중 가장 규모가 큰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수퍼프리가 열리는 달이다. 이번 호에는 앞서 밝힌 것처럼 포뮬러 1800의 섀시와 서스펜션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본다. 먼저 현재 F1800 클래스에 쓰이는 섀시는 2가지가 있다. 하나는 JK96F로 한국의 첫 포뮬러 머신이고, 나머지 하나는 올해 새로 나온 JK002F이다. 두 섀시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투어링카 드라이버들은 보디 튜닝이 잘된 차와 전혀 하지 않은 차의 차이를 쉽게 느낀다. 신형과 구형의 차이를 투어링카와 비교하면 보디 튜닝이 잘된 차와 그렇지 못한 차라고 보면 된다. 쉽게 말하면 코너링 때 구형은 프론트가 진입하면 잠시 후에 리어가 꺾여 들어오는 데 비해 신형은 앞, 뒤가 일체로 움직이는 느낌이란 것이다. 알루미늄 허니콤, 뛰어난 강성이 특징 쇼크 업소버 댐퍼의 보조탱크 허용해 섀시의 재료는 구형이 스틸 파이프이고 신모델은 알루미늄 허니콤이다.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스틸 파이프로 골격을 만들고 결합부위는 용접을 해서 제작한 것이 바로 파이프 프레임 구조이다. 반면 알루미늄 허니콤이란 양쪽 끝을 알루미늄 판으로 연결하고 그사이에 벌집모양의 중간층을 둔 것이다. 무게가 가벼운데 비해 강성이 뛰어나다. 이런 알루미늄 허니콤 소재로 결합부위는 모두 리벳으로 고정시키는 방식을 쓴 것이 신형이다. 일반적으로 포뮬러 섀시는 카본 파이버, 알루미늄 허니콤, 파이프로 만들어진다. 지난 호에 얘기한 것처럼 계보 중 F1~ F3는 카본 파이버, F4와 F1800 신형은 알루미늄 허니콤, 포뮬러의 걸음마인 포뮬러 주니어(FJ)와 F1800 구형은 스틸 파이프를 소재로 쓰고 있다. 성능 순으로 배열하면 카본 파이버, 알루미늄 허니콤, 스틸 파이프 순이다. 섀시의 기본 구조에서 오는 차이는 매우 크다. 카본 파이버는 섀시의 비틀림이 거의 없고, 알루미늄 허니콤은 카본 파이버보다는 횡적인 비틀림을 많이 받는다. 마지막으로 파이프 프레임 구조는 보디 자체의 유격이 매우 크고, 섀시 자체의 한계를 넘어서면 프레임에 결함이 생겨 성능(엔진, 타이어, 에어로다이내믹 등)이 너무 높으면 안 된다. 신형과 구형 두 가지를 모두 다루어 본 필자는 그 차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구형에 접근했던 방법으로 신형을 손보다가 낭패를 본 적도 몇 번 있다. 아직도 서스펜션 셋업을 테스트중 이지만, 몇 경기만 지나면 섀시의 잠재적 능력이 뛰어난 신형이 구형을 앞지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지난해와 올해 규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서스펜션은 쇼크 업소버 댐퍼의 보조탱크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띈다. 댐퍼를 달아 서스펜션의 셋업이 좀 더 예민하고 섬세해졌다. AVO, 퀀텀, 펜스키, 다이내믹스 등이 많이 쓰이고 있는 데 1웨이 조정방식, 2웨이, 3웨이 등에 따라 셋업의 범위에 큰 영향을 준다.가장 진보한 댐퍼는 3웨이 조정 방식 셋업에 중요한 데이터 로깅 시스템 현재 F1800에서 쓰는 댐퍼 중에서는 가장 진보한 3웨이 조정 방식은 범퍼 조정이 2가지, 리바운드가 1가지이다. 범프는 다시 하이 스피드 범프와 로우 스피드 범프로 나눌 수 있다. 빠른 속도로 일어 날 때는(예를 들자면 연석을 쳤을 때, 노면의 불규칙한 상태 등) 하이 스피드를, 느린 속도로 일어 날 때면(예를 들어 코너링 중이라던가 액셀, 브레이킹 때 등) 로우 스피드 쪽을 조정해 준다. 모든 차가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포뮬러는 매우 예민해 `한꺼번에 큰 변화보다 어디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에 이 부분의 수정이 있어야 하겠다`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후 브레이킹 때 앞쪽으로 쏠리는 것을 파악하고 있다면 코너의 진입부, 중간부, 탈출부에서 문제를 말하는 드라이버에게 좀 더 좋은 차를 태우기가 쉬울 것이다. 신형과 구형의 또 다른 차이는 에어로 다이내믹이다. 겉모습은 저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었지만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었다. 구형은 한여름에 물 온도가 90℃를 훨씬 넘는데 반해 신형은 80℃를 넘지 않는다. 같은 엔진 같은 ECU, 같은 라디에이터를 사용하면서 그 차이가 나는 이유는 바로 사이드 폰툰 내부의 공기 흐름이었다. 에어로 다이나믹스의 중요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신형은 차의 셋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데이터 로깅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경주차에 있어서 비행기의 블랙박스 역할을 하는 것으로 옵션에 따라 랩타임, rpm, 속도, 수온, 유압, 유온, 트로틀 밸브의 열림 정도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주행중의 차 상태를 주행직후 혹은 실시간으로 피트에서 곧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이를 통해 미캐닉이 선택한 기어비가 원하는 영역의 rpm을 유지하는지, 타이어 록이 생기는 코너 등을 알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드라이버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는 뜻은 아니고, 차의 움직임을 그대로 드라이버가 느껴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언더스티어가 있는 차를 타면서 드라이버는 그 때문에 무의식중에 스티어링 휠을 더 가져가고, 그로 인해 뒤쪽에 슬라이드가 생기면 드라이버는 피트에서 미캐닉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오버스티어가 심해!" 이제 국내 레이스도 데이터 러거가 하루 빨리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좀 더 높은 수준의 경기를 원하는 드라이버와 미캐닉을 위해서다. 몇 회에 걸쳐 현재 국내 온로드 레이스의 클래스들을 짚어 보았다. 짧은 지면을 통해 얘기하다보니 빠뜨린 부분도 많았고,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지도 못했다. 다음 호에는 레이스의 선진국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GT 클래스(JGTC) 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투어링카A 클래스 경주차의 세팅 찾기 2000-09-23
지난호에 이어 국내 모터 스포츠 중 최고봉인 투어링카A 클래스에 관해서 알아보자. 현재 최정상에는 GT카 클래스가 있지만 참가대수가 3대 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정상적인 클래스로 볼 수 없어 투어링카A를 거론하는 것이다. 투어링카A 클래스 차종 분포를 보면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제4전의 경우 참가대수 17대중 티뷰론(터뷸런스 포함)이 11대로 가장 많고, 슈마 3대, BMW320i 1대 그리고 누비라가 2대다. 티뷰론은 참가대수 뿐 아니고 성적도 다른 차종이 표창대를 넘보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같은 엔진도 차별화할 수 있고 보디워크의 한 분야 에어로파츠 규정을 살펴보면 투어링카A 클래스의 엔진은 엄격하게 노멀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엔진 성능에 큰 영향을 주는 하드웨어를 이용해 같은 엔진도 차별화 할 수 있는 틈이 있다. 헤드 개스킷을 바꿔 압축비를 높일 수 있고, 라디에이터와 오일 쿨러를 이용해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 이외에 흡기 계통과 교환이 허용된 배기 매니폴드로 효율을 높여 경쾌한 배기음을 얻는다. 하지만 역시 규정을 제대로 지킨다면 엔진만으로는 다른 클래스의 차보다 월등한 우위를 점할 수는 없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성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지만 용인 스피드웨이 경기에 참가하는 그 누구도 그런 방법을 쓰지 않으리라 믿는다. 이런 전제 아래 풀어나가면 차의 성능은 보디워크와 서스펜션에서 판가름난다는 생각이다. 지난해는 자유였던 기어비가 올해는 노멀이어서 조건은 누구나 같기에 더욱 그렇다. 경주차를 만들 때 가장 첫 단계인 보디워크는 차체의 기본 성능, 성향과 강성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작업으로 최저 무게 규정도 한 몫 거들고 있다. 현재 규정은 980kg으로 이를 지켜 차를 만들면 참가 차종중 구형 티뷰론을 제외한 모든 차가 무게보다 많이 나간다. 따라서 강성, 성향과 함께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 하기에 보디워크가 어려운 것이다. 마무리단계인 에어로파츠도 보디워크의 한 분야로 해가 거듭될 수록 중요하게 여긴다. 몇 년 전에는 투어링카에서 다운포스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이를 얘기하고 있다. 몇몇 팀들은 풍동실험까지 거쳤다는데 이는 정말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 좀 더 좋은 성능의 차들이 경주를 하게 된다면 에어로 다이내믹에 관한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투어링카A 클래스와 원메이크는 쇼크 업소버 어퍼마운트와 스태빌라이저의 변경 및 교환이 다르다. 즉 투어링카A 경주차는 어퍼마운트는 캠버 및 캐스터 조절형으로 일반 고무 부싱을 쓰는 원메이크와는 달리 필로우 볼이라는 볼 베어링을 포함한 제품을 쓴다. 이것으로 원하는 캠버와 캐스터를 얻을 수 있고, 킹핀각 측면에서도 스탠더드 마운트에 비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요즈음은 이 마운트 역시 테스트를 거친 후 고정용 타입으로 제작해 쓰는 차가 많아졌다. 보통 스티어링의 조정 안정성을 위해 캐스터는 조금 더 들어가고 캠버는 마운트로 줄 수 있는 맥시멈까지 들어간 상태로 제작을 한다. 스태빌라이저는 안티 롤바라고 부르는 것으로 말 그대로 롤에 저항을 주는 것이다. 직선에서의 브레이킹과 액셀레이션으로 인해 생기는 피칭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고 코너에서 차의 좌우 움직임인 롤이 생길 때만 좌우 서스펜션의 간섭을 이용해 이 현상을 억제한다. 스테빌라이저는 롤링을 억제하고 얼라인먼트는 요인의 변화 심해 BMW 320i를 제외한 모든 차가 FF방식이므로 프론트보다는 리어를 좀더 하드하게 세팅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는 프론트에 더 많은 그립을 주어 트랙션을 최대화하려는 의도에서다. 하지만 코너에서 차의 움직임은 스태빌라이저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드라이버마다 달라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덧붙여 피칭을 제어 할 수 있다면 스프링과 쇼크 업소버의 댐핑 포스를 소프트 타입으로, 스태빌라이저를 하드 타입으로 하는 것이 낫다. 직선에서 노면의 불규칙한 부분 등 드라이버에게 피로를 주는 요인을 제거하면서도 코너에서는 롤을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스펜션의 마지막 부분인 쇼크 업소버는 TRD 제품이 가장 많이 쓰인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레이스 현실에서는 TRD보다 좋은 것이 없다`라는 말을 한다. 필자의 생각도 몇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쳐 현재의 제품이 나왔고 저렴한 가격에 비해 누릴 수 있는 효과가 뛰어나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엄밀히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TRD제품은 레이스용이라고 말하기엔 조금은 부족하다. 결코 이 제품의 성능이나 기대효과를 깎아 내리려 하는 의도는 아님을 밝힌다. 이외에 쓰이는 제품으로는 펜스키, 퀀텀 등을 들 수 있다. 장점으로는 간단한 오버홀을 통해 전혀 다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품의 구입, 교환만으로 수리가 가능하다. TRD 제품과 비교하면 폭넓은 세팅범위, 월등한 잠재 능력 등이 있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역시 월등한 가격에 비해 그만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큰 약점이다. 얼라인먼트를 뒷받침하는 캠버와 캐스터, 토 등은 요인에 따라 변화가 심해 자신이 해오던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테스트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오든 그렇지 않던 원인을 분석 할 수 있는 테스트라면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투어링카A 클래스 경주차의 세팅에 관한 얘기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레이스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드라이버와 미캐닉들에게 지면을 빌어 한 가지씩 부탁을 드리고 싶다. 드라이버들에게는 1등을 하는 차는 차만으로 그 랩 타임이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현재 자신의 차로 능력의 한계까지 타본 후에 세팅을 바꾸는 것이 드라이버로 커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많은 경험이 훌륭한 드라이버를 만드는 지름길인 셈이다. 미캐닉을 직업으로 삼은 모든 사람은 공통적인 불만과 바램을 갖고 있다. 1등 하는 팀도, 2등, 3등 하는 팀의 어떤 면을 부러워하고, 그에 대한 불만을 가지기 마련이어서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모든 이와 `단합`하는 것이 필수다. 자신이 생각할 때 어떤 이유(엔진 때문에, 쇼크 업소버 때문에, 타이어 때문에, 드라이버 때문에, 돈 때문에....)로 -그 이유가 자신이 극복 할 수 없는 이유라면- 4등이 자신의 한계라면 4등이 곧 1등인 셈이다. 4등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1/5 클레이 모델에서 카울 떠내기까지 2000-09-23
마스터 모델의 밑그림 그리기 각 단면을 치밀하게 맞추어야 1/5 클레이 모델을 앞에서 10mm를 단위로 해 가로로 표면을 둥글게 잘라나간다. 그 단면의 선도(線圖)를 차례로 종이에 옮긴다. 가로로 그려나간 횡단면의 선도를 완성한 뒤에는 다시 세로로 잘라나가는 종단면 선도를 그린다. 똑같이 10mm 단위의 종단면 선도를 종이에 옮긴다. 그런 다음 1/1 마스터 모델의 제작 준비에 들어간다. 하지만 1/5 선도에서는 모든 것이 1/5 규격이다. 따라서 처럼 선도를 5배로 확대하면 바라는 1/1 마스터가 나온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마스터 모델의 제작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스터 모텔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웨스트 레이싱이 실제로 하고 있는 방법 가운데서 비용이 덜 드는 것으로 소개한다. 처음 제작을 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제작비용은 큰 부담이 아닐 수밖에 없다. 비용이 덜 드는 것을 택한 후 차츰차츰 응용해 가는 방법도 좋을 듯하다. 먼저 재료를 잘 선택해야 한다. 가장 먼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베니어판을 준비해야 한다. 그런 다음 수지 우레탄을 파는 가게에서 발포 우레탄을 산다. 발포 우레탄은 A액과 B액으로 나누어졌는데 둘을 섞으면 발포 우레탄폼이 된다.발포 우레탄을 다듬기 위한 파데가 있어야 하고, 폴리에스테르 표면제도 필요하다. 여기에 거친 표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내수 샌드페이퍼를 준비한다. 이밖에 FRP재료(폴리에스테르 수지, 글라메스트, 경화제)와 켈코트, 이형제 등도 준비한다. 재료가 준비된 상태에서는 1/1 선도에서 각 횡단면의 선을 바탕으로 베니어판을 자르면서 단면과 같은 판을 만든다. 횡단면과 종단면이 만들어지면 두 개를 맞춰 나가는 작업에 들어간다. 치밀하게 각 단면을 맞추어 나간다. 마스터 모델바탕으로 메스형 만들어 카울을 프레임에 맞추면 포뮬러 완성 모두를 짜맞추면 1/1 마스터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런 다음 공간을 발포 우레탄으로 채워나간다. 틀을 잡고 표면을 다듬은 뒤 발포 우레탄을 굳히기 위해 마스터 모델 위에 FRP 코팅을 한다. 그런 다음 표면을 완성하는 파데 작업을 한다.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이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카울의 완성도가 좌우된다.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표면의 요철이 없도독 손질한다. 아울러 카울 디자인과 일치하는가를 세심하게 살핀다. 파데 작업으로 표면이 완성되면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표면을 한층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폴리에스터 표면제를 스프레이 건으로 뿜어 바른다. 표면제가 완전히 굳은 뒤에 마지막 손질로 내수 샌드페이퍼 #400과 #800으로 표면이 반들거릴 때까지 문지른다. 이렇게 완성된 마스터 모델에서 메스형을 떠낼 준비를 한다. 마스터 모델에 이형제를 발라서 완전히 마른 다음 메스형 제작에 들어간다. 카울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메스형 제작이 조금씩 달라진다. 기본적으로는 절단면에 립을 세워 메스형을 분할해 만든다. 마스터 모델에 겔코트를 바른 뒤 마르면 그 위에 FRP를 겹겹이 쌓아 메스형을 만든다. 며칠 동안 말려서 메스형을 안정시킨다. 그러면 마스터 모델에서 메스형을 떼낼 차례다. 이때 이형제가 효과를 발휘하여 쉽게 떨어진다. 메스형을 떼어낸 다음 표면을 컴파운드로 문지르면 일이 끝난다 메스형이 완성되면 카울을 양산할 수 있다. 메스형에 이형제를 발라 말린 다음 겔코트를 바른다. 겔코트가 마른 뒤 FRP를 2~3 플라이 층층이 바르면 강도가 충분한 제품이 나온다. 그러면 하루쯤 말려서 메스형에서 떼어내면 멋진 카울이 완성된다. 카울을 프레임에 맞추면 포뮬러카의 모습이 드러난다.
스쿠프 터보에서 터뷸런스 GT까지 눈에 띄는 발전 .. 2000-12-29
95년 공식경기 첫해는 경주차 완성도가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지만 나름대로 기틀을 잡아가는 시기였다. 이때 대우자동차는 차종이 없어 서키트에서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자웅을 겨뤘다. 톱 클래스인 투어링카A는 스쿠프 터보와 콩코드가 강력한 우승후보. 하지만 규정 때문에 공식경기를 앞둔 93년 말부터 2년 동안 진통을 앓았다. 풀 튜닝과 노멀 상태에서 드라이빙 테크닉만으로 우열을 가리자는 두 가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기 때문이다. 결국 협회(이때는 KAA)와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가 노멀에 가까운 규정을 내놓자 배기량과 무게가 경주차 선택의 잣대가 되었다. 원년에는 스쿠프 터보가 사랑 받고 기아자동차, 다양한 차종으로 공략 여기에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의 직선은 400여m 밖에 안되고 급코너가 10여 곳이나 되는 테크니컬 코스여서 세팅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엔진에서 손볼 곳이 없는 반면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성능 및 테크닉이 승부를 결정지을 수밖에 없었다. 초기 스쿠프 터보는 드라이버들에게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값이 싸고 기본 메커니즘이 레이스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차체가 낮아 고속 코너링 때 무게 중심의 변화가 적고 터보 엔진으로 동급의 DOHC 엔진보다 출력을 10% 정도 높일 수 있는 매력도 있었다. 스쿠프 다음으로는 배기량에서 앞선 콩코드 2.0 DOHC가 출력과 토크가 큰데다 서스펜션이 안정되어 사랑을 받았다. 원년에서는 콩코드 2.0 DOHC가 스쿠프 터보를 누르고 챔피언에 올랐다. 그러나 무겁고 값이 비싼 것이 흠이었다. 하지만 이들 경주차도 시대에 흐름에 따라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95년 개막전 당시 투어링카A에서 전체 25명의 드라이버 중 20명이 선택한 스쿠프는 티뷰론이 등장으로 빛이 바랬다. 콩코드의 마지막 주자였던 김한봉(MBC 카맨파크)도 97년에 티뷰론으로 바꿔 콩코드는 상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96년 5월(내구레이스)에 데뷔한 티뷰론은 드라이버들의 최대의 관심사였다. 현대자동차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알루미늄 보디와 개조된 ECU를 만들고 그에 맞추어 기어비를 조정한 스페셜 팩을 투입했다. 이런 투자의 결과 티뷰론은 이명목(벤투스)과 윤철수를 앞세워 96년 5연승을 거뒀고, 96년 투어링카A 최종전에서는 15대 중 8대가 그리드를 채워 국내 투어링카 레이스의 주연으로 떠올랐다. 인기 모델이었던 스쿠프의 계보를 티뷰론이 잇게 된 것이다. 한편 티뷰론의 독주는 라이벌인 기아자동차를 자극했다. 기아는 톱 드라이버인 박정룡을 앞세워 스페셜 팩으로 무장한 세피아 1.8을 데뷔시켰다. 하지만 배기량이 떨어지고 준비기간이 짧아 티뷰론의 맞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이렇듯 96년은 티뷰론이라는 걸출한 경주차의 등장 앞에서 다른 차종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v97년 기아는 세피아 1.8을 대신해 크레도스(드라이버 박정룡, 심상학)로 티뷰론에 맞불을 놓았다. 크레도스는 덩치가 커서 눈길을 받지 못했지만 새규정에 의해 티뷰론의 알루미늄 보디를 쓸 수 없게되자 경쟁력을 갖췄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결과는 티뷰론의 압도적인 승리로 막을 내렸다. 티뷰론은 몇 번의 스페셜 팩을 내놓으면서 군살을 뺐지만 크레도스는 무게규정(930kg)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했다. 드라이버들은 줄줄이 티뷰론을 선택했고 97년 최종전은 티뷰론 원메이크화 되어 버렸다. 티뷰론, 96년 5월 데뷔이후 열풍 250마력 GT카 고성능 진가 발휘 98 시즌 기아는 공식경기 원년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슈마 2.0(1.8ℓ 베이스)을 제5전에 긴급 투입(드라이버 박성욱)했다. 슈마는 제7전(9월 20일) 2, 3(김정수, 박성욱)위로 표창대에 오르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티뷰론은 여전히 버거운 상대였다. 99년 시즌 들어 슈마는 이명목(제임스 딘)과 최상진이라는 명 조련사를 만나면서 기세를 높였다. 이명목은 제2전(4월 28일)에 이어 제8전(8월 3일) 두 차례나 우승컵을 안아 티뷰론의 콧대를 눌렀다. 또한 김정수도 제 7전(9월 12일) 표창대의 정상에 올라 슈마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시즌 3승을 챙기는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대우는 98년에 누비라(드라이버 곽성길) 2 해치백으로 도전장을 냈지만 티뷰론과 슈마의 그늘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결국 대우는 1.6ℓ DOHC 엔진을 얹은 라노스 로미오(드라이버 이재우)로 투어링카B 사냥에 나서는데 만족해야 했다. 올 시즌 경주차의 최대 화두는 250마력의 GT카. 시리즈 초반에는 경주차 트러블로 인해 완주하지 못하고 전멸 당하는 비운을 겪었다. 하지만 경기가 진행될수록 안정을 찾으며 숙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이처럼 GT카가 관심을 끌었던 것은 투어링카A의 개조범위가 적은데 비해 ECU, 피스톤, 커넥팅 로드 등 손을 댈 수 있는 곳이 많아서다. 투어링카A보다 100마력이 높은 250마력 이상의 최고출력을 내는 것도 매력이다. 비록 일부 프로팀(오일뱅크, 인디고)에서만 참가하기는 했지만 투어링카의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6년 동안 온로드 레이스 출전차로 포뮬러 1800을 빼놓을 수 없다. 97년 연습경기를 거쳐 98년부터 공식경기가 펼쳐지면서 한국 모터 스포츠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주머니가 얇은 드라이버들의 외면으로 98년 개막전에는 12대가 참가하는 데 그쳤고, 99년 제9전(11월 14일)에서는 8대에 머물어 인기가 시들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창원 F3 그랑프리 영향으로 올해 최종전에는 15대가 참가하면서 상승 곡선을 긋고 있다. 모터 스포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97년에 신설된 티코전은 경기 출전 경험이 없는 초보 레이서와 입문자를 대상이었다. 반면 99년 3월 JK 자동차기술 연구소가 제작한 2시트인 포뮬러 입문용 주피터는 서키트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비운을 맛보았다.
이레인 주대수 현해탄 건너온 겁없는 신예 2001-01-31
제2회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수퍼프리가 무사히 끝났다. 주최측은 혼란스러운 경제상황을 고려해 지난 대회만큼 풍족한 볼거리를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 내실 있는 경기운영에 치중해 대회기간 내내 매끄러운 진행이 돋보였다. 그러나 유일하게 F3 경기에 출전한 윤세진이 출발과 동시에 리타이어해 관람객들이 응원할 우리 선수가 없었다는 점은 아쉬웠다. 다행히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는 원메이크, GT, 투어링A·B 경기가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어 재미를 살릴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포뮬러 1800 경기가 손에 땀을 쥐게 했는데 1.8X 엔진의 포뮬러 1800은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FJ(1.6X)와 F3(2.0X) 중간등급의 경주차다. 이번 창원 경기에서 절정의 기량을 뽐내는 국내 포뮬러 1800 레이서들의 틈바구니에서 놀라운 파이팅을 보여준 신예 드라이버가 등장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이레인의 주대수(21). 그는 국내 데뷔전인 창원경기에서 선두 오일뱅크 장순호의 경주차 바로 뒤에 붙어 경기 내내 강력한 압박주행을 펼쳐 지켜보던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던 기자는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대수는 이레인 레이싱팀 입단 테스트로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한 차례 돌아보았을 뿐 다른 선수들처럼 집중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포뮬러 1800 머신의 적응력을 키우려는 의도로 창원경기에 참가했는데 예선 5위를 기록해 팀 관계자들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예선에서 1분 21초 559의 랩타임으로 예선 1위 이명목과 예선 2위 장순호보다 1∼2초 정도 뒤진 기록을 냈다. 첫 출전치고는 만족할 만한 기록이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고 결승경기에서 혼신의 역주를 펼쳤다. 상대방의 견제 속에 치열한 순위경쟁을 벌이는 결승경기에서는 예선보다 좋은 랩타임을 낼 수 없다. 그러나 주대수는 더 빨랐다. 그는 최고 1분 20초 348만에 3.022km의 코스를 돌았다. 경기중 좌우로 끊임없이 추월을 시도하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F1에서도 보기 힘든 명승부전을 펼친 결과 선두보다 0.25초 뒤진 기록으로 2위를 차지했다. 재일 한국인 3세(귀화하지 않았음)인 주대수는 창원 경기를 마치고 일본에 돌아갔지만 특별히 본지 독자들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가 올 시즌 뛰게 될 주무대인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반나절을 함께 했다. 자신의 소개를 해달라. - 80년 9월 2일 생으로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재일 한국인 2세이고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92년 호주로 건너가 베노와 전문학교(BENOWA TAFE)에서 자동차공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온 가족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오사카에서 살고 있다. 레이서의 꿈은 언제 지니게 되었는가? 혹시 아버지가 모터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 8살 때 우연히 D. 만셀의 경기를 보게 되면서 F1 드라이버를 꿈꿨다. 호주이민 시절 카트를 접하게 되면서 드라이빙 테크닉을 배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레이싱 카트를 타기 전에는 인도어 고카(Indoor Go Kart)를 탔는데 특성상 슬라이드가 심해 많은 기술을 쌓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스포츠를 좋아하시지만 아쉽게도 골프광이다. 지금은 가족 모두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예전에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경비를 충당했다. 음식점, 가라오케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레이싱 입문은 언제 시작했는가? 데뷔 경기 성적은 어땠는가? - 본격적인 레이싱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99년부터 시작했다. 레이싱 카트를 빌려 타다 코스 레코드에 가까운 기록을 내자 이를 지켜본 관계자의 도움으로 포뮬러 주니어(FJ)에 입문할 수 있었다. TI 아이다 서키트에서 99년 5월 데뷔전을 가졌다. 다른 선수들은 평균 10번 정도 연습주행을 갖는데 나는 3번만 했다. 15명의 참가자 가운데 예선기록 7위를 기록했는데 사이드 미러가 부서져 피트에서 출발해야했다. 내가 서키트에 들어섰을 때 다른 선수들은 이미 2번 코너에 접어들고 있었지만 추월을 거듭해 7위로 경기를 마쳤다. 처음 출전한 것치고는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일본보다 레이스 하기 어려운 우리나라에서 뛰려는 이유를 설명해달라. - 일본은 모터 스포츠가 정점에 올랐다. 반면 한국은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내 몸에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아버지의 나라에서 레이서로 성공하길 원해 이레인팀에 이력서를 보냈다. 기회를 얻게 되어 매우 기쁘다. 창원경기를 분석해보니 예선보다 결승경기에서 1초 이상 빠른 랩타임(1분 20초 348)을 기록했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3, 5, 7, 9랩에서 추월시도를 했는데 실제로는 어떠했는가? - 항상 추월하려고 했다(웃음). 정확하지는 않지만 3번 정도 강력한 압박작전을 구사했다. 헤어핀마다 인-인-아웃으로 추월을 노렸는데 앞서가던 장순호 선수가 조금 당황한 듯 경주차 테일이 비틀거렸다. 그러나 그가 곧바로 침착하게 차체의 방향을 잡아 추월할 수 없었다. 돌면 돌수록 머신과 코스에 적응되었지만 경기 후반에는 무리한 달리기를 자제했다. 1위를 차지하지 못해 아쉽다. 내년 시즌 목표를 소개해달라. - 물론 챔피언이다. 코스와 경주차 모두 낯설기 때문에 얼마나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에 뛰어든 레이서가 1위를 욕심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평소 우리나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가? -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한국의 이곳 저곳을 둘러본 적 있다. 덕분에 호주에서 한국 유학생들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꽤 있다. 그들 덕분에 한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때마다 알게 된다. 타고 다니는 차와 갖고 싶은 드림카를 소개해달라. -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원박스카인 도요타 에스티마를 타고 있다. 대다수의 젊은이들처럼 아직은 호주머니 사정이 나쁘기 때문이다. 꼭 갖고 싶은 드림카는 페라리 F40이다. 주대수는 이날 용인 서키트에서 시범주행을 했다. 기자는 그에게 일본의 유명한 자동차 칼럼니스트 고바야시 쇼타루가 이곳을 찾아 ‘서키트 길이에 비해 코너가 너무 많다’고 평가했다는 귀뜸을 해주었다. 그러자 그는 “고속 코너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용인에서만 달린 레이서라면 스즈카 서키트처럼 정교한 액셀 페달 조작이 필요한 고속 코너가 있는 경기장에서 당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레인 레이싱팀 관계자에 따르면 주대수는 혼다에서 운영하는 F1레이서 양성 프로그램 테스트를 2위로 통과했다고 한다. 귀화하면 좋은 조건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고국을 찾았다. 창원 F3 경기에서 뛴 일본인 레이서 중 한국인임을 굳이 밝히지 않았던 선수와 비교하면 주대수는 확실한 우리 선수다. 그가 올 시즌 좋은 성적을 내고 머지않아 한국인 최초의 F1 레이서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독자들도 애정 어린 눈길로 그를 지켜보고 격려하는 메일도 보내주기 바란다. 주대수 선수 E메일: deasoo@netomo.com
부자 레이서 세이지와 사이토 준 프로팀과 경쟁해서 .. 2000-09-23
제1회 인터텍 인 코리아 내구레이스는 몇몇 드라이버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선 톰스 스피릿팀의 운전대를 잡은 쿠니 사토. 이 대회에 참가한 드라이버 중 홍일점인 쿠니 사토는 모터 스포츠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일본그랜드투어링카챔피언십(JGTC)`에 참가하는 맹렬 여성이다. 96년 JGTC에서 3위를 하기도 했던 그녀는 도요다 알테자의 운전대를 잡아 중도 탈락했지만 남성 드라이버 못지 않은 정열과 패기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대회 기간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끈 팀은 스왈로우 레이싱팀이다. 아버지 세이지와 아들 사이토 준이 혼다 인테그라의 운전대를 잡아 종합 15위.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은 없다는 것이 부자 레이서의 소감이다. 부자 레이서 세계적으로 드물고 3대가 모터 스포츠계 일하기 바래 아버지 세이지 준이 레이스에 입문한 것은 1978년으로 그의 나이 32세 때였다. 집 근처에 서키트가 있어 흥미 있게 지켜보다가 깊이 발을 담그게 되었다. 아들 사이토 준은 열 여덟 살에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운전대를 잡았다. 각자의 길을 걷던 부자가 함께 레이스를 하게 된 것은 6년 전으로 수퍼 다이쿠 레이스에 참가하면서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들도 자동차경주에 빠져있으니 함께 하는 것도 좋을 듯 해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세이지와 사이토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한 팀으로 출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F1 그랑프리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97년 월드 챔피언 J. 빌르너브도 아버지인 질 빌르너브의 대를 잇고 있고, 96년 월드 챔피언 데이먼 힐 또한 아버지 그레이엄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국내에서는 현재 황운기(발보린 코리아)에 이어 아들 진욱, 진우가 각각 포뮬러 1800과 카트로 레이싱에 발을 담고 있다. 이밖에 김정수(SBS뉴스텍)와 아들 동은 그리고 이용기(모노) 부자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부자가 함께 뛰는 것에 대해서 사이토 준은 "어렸을 때는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은 승부근성을 배우고 있다"고 장점을 밝혔다. 세이지 준은 "처음에는 아들에게 레이싱 테크닉을 가르쳐 주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배우고 있을 정도로 아들의 기량이 앞서 있다"고 아들을 치켜세웠다. 자동차 수리업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세이지 부자는 레이스 경비를 자신이 50% 정도 부담하는 세미 프로팀이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팀과 경쟁해서 승리했을 때 짜릿한 희열감을 느끼고, 가능하면 3대가 모터 스포츠계에서 일하기를 바라고 있다. 50을 넘긴 아버지와 27살의 혈기 왕성한 아들.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의견충돌은 어떻게 할까. 아버지의 경험을 신세대적인 사고로 판단했을 때는 `고리타분하다`, `잔소리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말이다. 이에 대해 사이토는 "가끔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레이스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돈을 대주기 때문이다.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부인 사토 아즈코와 사이토의 애인 카마다 메쿠미가 이들에게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장세례 한국 모터 스포츠를 이끌어갈 당찬 여걸 2000-08-30
올 시즌 한국 모터 스포츠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라면 연예인 드라이버들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지난해까지 이세창(카맨라이거스타)이 고군분투 레이싱을 했다면 올 시즌 들어서는 박세준, 독고영재, 김종헌 등이 얼굴을 내밀며 모터 스포츠를 살찌우고 있다. 이들 남자 연예인 레이서들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낸 당찬 여자 연예인 레이서가 있다. 바로 장세례(26세)다. 기자단 선정 `페어플레이상` 받아 자질과 근성이 뛰어나다는 평가 TV 드라마 `야망의 전설`과 `아씨`를 통해 브라운관에서 팬들과 만났던 장세례는 지난 제4전에 레이서로 데뷔하며 관심을 모았다. 예선 결과는 12위로 14위에 머문 박세준, 19위 김종헌, 32위 독고영재 등 선배들의 콧대(?)를 보기 좋게 눌렀다. 하지만 결선에서는 첫 바퀴를 돌기도 전 다른 경주차와의 추돌(뒤차에게 길을 터주려다 일어난 사고)로 전복되는 사고를 만났다. 남자 드라이버들도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장세례는 한순간 눈물을 비치기도 했지만 너무도 태연했다. 곧바로 자신의 매력인 깜찍하고 귀여운 미소를 보여 걱정하던 동료와 선후배를 안심시켰다. 이런 점 때문에 장세례는 모터 스포츠 기자단이 선정하고 한국자동차경주협회가 시상하는 `페어플레이`상을 받기도 했다. "눈물이 나는 건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어쩔 수 없나 봐요. 하지만 놀라서 흐른 눈물이 아닙니다. 완주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어요. 또한 잘한 것도 없는데 상을 받게 되어 기쁘네요. 더 열심히 하라고 준 상이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노력할게요." 데뷔전의 아픔은 컸다. 연습 때의 기록이 좋아 승부를 걸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고가 일어나 데뷔전을 망쳤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다. 장세례의 소속팀 이레인의 이영배 감독은 "자질이나 근성 등이 남자 드라이버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앞으로 국내 모터 스포츠의 여걸로 커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녀를 높이 샀다. 장세례의 끈질긴 승부근성은 중학교 때 육상선수로 활동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카레이스와 인연을 맺게 했고, 한번 시작했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데뷔전 사고를 가슴에 깊게 새겼다. "차분한 성격이 카레이스와 맞는다고 봐요. 하지만 담력이 조금 부족해 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구요. 눈앞의 성적보다는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순위권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다음 우승도 하고 클래스를 높여 포뮬러에도 도전할 거예요." 연예인 장세례가 아닌 레이서 장세례의 모습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장세례가 카레이스를 접한 것은 TV 스포츠 뉴스를 통해서 스피드의 진수를 알았고, 에버랜드에 놀러왔다가 레이스 장면을 보면서부터다. 사고가 나도 드라이버는 안전한 것을 보고 레이서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한 번 마음을 먹자 곧바로 문을 두드렸다. 처음 속했던 곳은 카맨라이거스타. 하지만 준회원이어서 운전대를 잡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레인에서 차와 메인터넌스를 제공해 본격적으로 레이스에 뛰어든 것이다. 장세례가 자동차경주에 뛰어들면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이는 이세창이다. 이세창은 그녀에게 드라이빙 테크닉을 비롯한 모터 스포츠 전반에 걸친 폭넓은 조언을 해주었다. 카레이스의 매력에 흠뻑 젖은 장세례는 "레이스를 통해 담력을 키우면 이것이 곧 자심감 회복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경주는 물론 연예계 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카레이스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있다"고 밝혔다.
LG화재 신미아 속이 꽉 찬 프로 레이서 2001-03-29
지난 1월 막을 내린 제23회 파리 다카르 랠리에서는 독일의 여성 랠리스트 J. 클라인슈미트가 우승을 차지했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구별이 없어진 최근 추세에 발맞춰 이제 모터 스포츠도 여성들이 당당히 한 부분을 차지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국내 모터 스포츠에 여성 레이서가 등장한 것은 80년대 중반의 초창기 시절이다. 성공한 캐리어 우먼들을 필두로 경주 참여가 활발해 여성부 경기를 따로 열 만큼 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이 레이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해마다 발전을 거듭해온 국내 모터 스포츠가 성적이 가장 중요한 프로 시대로 탈바꿈하면서 취미로 레이서에 뛰어들었던 아마추어 레이서들의 설자리가 줄었다. 특히 우승보다는 스피드를 즐기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었던 여성 레이서들이 많이 사라졌다. 지난 시즌 한 경기라도 출전했던 여성 레이서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은 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국내 최고 클래스인 포뮬러 1800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여성 레이서가 있다. LG화재의 신미아(32) 선수가 주인공이다. 웬만한 경력의 남성 레이서들도 소화하기 어렵다는 포뮬러 머신을 몰고 서키트를 질주하는 그녀는 이미 성공한 모델로 널리 알려진 유명인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국내 유일의 여성 프로 레이서 신미아씨와 서울 여의도에서 반나절을 함께 보냈다. 그녀는 중학교 3학년 때 명동 거리를 걷다 CF감독에게 발탁되어 전문 모델의 길로 들어섰다. 전성기 시절 한 해 30편 이상의 광고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그녀의 이력 가운데 특이한 점은 당시로는 드문 일이던 `명문대 연예인`이라는 것이다. 톱모델로 바쁜 와중에 당당히 학력고사를 통해 서울대(농업생명과학부)에 입학한 그녀는 그간 특례입학 과정에서 무리를 일으켜 비난받아온 유명 연예인들과 대조적이었다. 모델 활동은 중단한 것인가. -제 설자리는 이제 서키트입니다. 레이스 외에 해보고 싶은 일이 또 있긴 하지만 만족할만한 성적을 낼 때까지는 레이서로서의 활동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팬들도 모델이 아닌 `레이서 신미아`로 대해 주었으면 한다. 무엇 때문에 레이서로 데뷔하게 되었나. 단순히 차가 좋다면 다른 연예인들처럼 좋은 차를 두루 타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지 않겠는가? -레이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모델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우연이었다. 97년 3월 25일로 기억하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매니지먼트사 관계자와 용인 경기를 보게 되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모델쪽 분위기와 달리 레이스는 실력 있는 드라이버와 빠른 차가 인정받는 세계였다. 오염되지 않았다고 할까? 경기를 처음 보고 나서 한 달도 안된 4월 12일 라이센스를 취득해 레이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차와 레이스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 때문에 레이서가 된 것 같다. 차와 얽힌 재미난 일화 하나 소개해 달라. -나에게 차는 남자와 같은 존재다. 가장 좋아한다(웃음). 사실 멋진 남자를 보면 가슴이 설레듯이 멋진 차를 보면 그런 느낌을 받는다. 대다수 남자들이 차를 여자와 비교한다던데 그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예전에 길을 지나다 전시장에 서 있는 피아트 쿠페를 보았는데 몇 번이고 전시장 주변을 빙빙 돌며 훔쳐보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직 결혼에 관심이 없어 정확한 남성상을 그리지 못했는데, 아마도 피아트 쿠페처럼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지닌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포뮬러 1800을 모는 유일한 여성 레이서인데, 포뮬러 1800은 양산차를 기초로 한 원메이크전과 비교할 때 드라이빙 테크닉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떻게 드라이빙 테크닉을 배웠나? -원메이크전을 뛰던 시절인 99년 초 TV 방송을 통해 나의 활동이 소개된 적이 있다. 방송을 본 LG화재 홍보실의 제안으로 정식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외국 경기를 자주 보며 포뮬러카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왔던 나로서는 든든한 스폰서를 만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물론 처음 포뮬러카를 몰다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혼자 책을 보며 많이 연구했다. 나는 약간 고집이 있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터득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아직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기술을 100%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지만 올 시즌부터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프로 선수로서는 성적이 너무 나쁜 것 아닌가. -성적이 나쁜 것에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겠다. 모 팀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지난 시즌까지는 나의 상황이 너무 나빴다. 연습 한 번 마음 놓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직 내가 지닌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못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올 시즌은 좋아질 것이다. 올 시즌 포뮬러 르노가 등장할 것 같다. 참가 계획이 있는가.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말해달라. -이제야 포뮬러 1800을 이해하고 있다. 정이 들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를 버리고 새 남자(새 경주차)를 찾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둬 포뮬러 1800과의 멋진 추억을 만든다는 것을 전제로 다음 시즌에 포뮬러 르노 경기 출전을 고려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비밀이다. 4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지만 모터 스포츠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 외에는 공개할 수 없다. 애정을 가지고 계속 지켜본다면 내가 어떤 계획을 세웠고 어떻게 실현시켜 나가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다시 서울대에 복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늦은 나이게 다시 공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학교생활을 소개해달라. -원래 순수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 입학한 뒤 천체물리학과에 가려고 2번이나 학력고사를 다시 보기도 했지만 모델 활동으로 한창 바쁠 때여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졸업을 미루다 학위를 받지 못한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다시 입학해 소비자학과에서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다. 예전에 우연히 강의실 앞을 지나다 재미로 `우주의 진화`라는 과목을 청강한 적이 있는데, 10년만에 다시 들어보니 그 동안 새로운 학설과 데이터가 엄청나게 등장해 있었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진 만큼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는 많은 레이서들이 있다. 프로 스포츠답게 상위권 선수들은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과 팬들의 사랑을 받지만 하위 클래스에 출전하는 선수들 대다수는 모터 스포츠 팬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1년 내내 경기에 출전해도 나의 경기모습이 담긴 사진 하나 찾기 어렵다"는 선수들의 푸념도 곧잘 들린다. 신미아 선수의 경우도 톱모델 출신이라는 이력이 없었다면 프로팀 소속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그녀가 포뮬러 1800에 출전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선수들도 있다. 그녀 역시 세인들의 뒷말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제 덕택에 LG화재라는 기업이 모터 스포츠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인식부족으로 대다수 기업들이 모터 스포츠에 투자하기 꺼려하는 상황에서 저 같이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면 LG화재 같은 큰 기업들이 더 많이 모터 스포츠에 뛰어들게 될 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지금도 LG화재에서 제가 아닌 다른 선수를 지원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아직은 모터 스포츠보다는 저에게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빨리 바뀌어야 할 국내 기업들의 가치관입니다." 그녀의 바램처럼 돈 대겠다는 기업은 넘치는데 선수가 부족할 정도로 국내 모터 스포츠가 활성화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자에게 "서브 스폰서가 변동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사진을 골라 보내주겠다"고 말한 그녀처럼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선수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선수를 탐내는 기업이 줄을 서는 날도 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벤투스 이명목 가장 빠른 레이서 2001-02-28
코스 레코드란 가장 빠르게 달린 기록을 일컫는다. 서키트의 경우 1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을 코스 레코드로 삼고 있는데 국내 대부분의 온로드 레이스가 열리는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의 코스 레코드는 1분 03초 825다. 2.125km 길이의 용인 서키트를 직선으로 가정하면 시속 120km로 계속 달려야 주파할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 온로드 7전 포뮬러 1800 예선 경기에서 세워진 이 기록의 주인공은 벤투스 레이싱팀의 이명목(36)이다. 그는 스피드웨이 초창기인 94년 연습경기에서 1위를 차지했던 1세대 레이서다. 만 7년이 지난 지금껏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이기에 그의 코스 레코드는 우연이 아닌 진정한 실력으로 얻어진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빠른 레이서 이명목을 찾아 그의 삶을 엿보았다. 그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벤투스 레이싱팀의 법인화를 앞두고 하루하루 시간에 쫓기는 나날이었지만 독자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반나절을 헌납했다. 레이스에 뛰어든 지 올해로 16년을 맞이한 그는 수없이 우승했고 수없이 인터뷰했다. 95년 3월에 열린 첫 번째 스피드웨이 공식경기에서 우승했지만 검차과정에서 실격 처리된 데이어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던 일화 등 그의 화려하면서 파란만장한 레이스 이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과정으로 레이스에 뛰어들게 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자가 사전에 입수한 정보는 마산에서 이름 석자만 대면 누구나 아는 농장주의 아들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어린 시절부터 운전을 좋아했는가? -아버지가 농장을 운영하셨다. 당시에도 큰 농사를 지으려면 트럭이 꼭 필요했다. 적당한 놀이거리가 없는 시골 소년에게 자동차는 정말 신기한 존재였다. 버스를 타도 운전기사 옆에 있는 엔진뚜껑(구형 버스는 엔진이 앞에 있었다)에 앉아 운전하는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덕분에 머릿속으로 운전방법을 익힐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이가 어려 운전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지만 꾹 참다가 만 18세 생일 이틀 뒤인 83년 1월 14일, 운전면허를 손에 넣었다. 레이스에 본격적인 관심을 지니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께서 늘 사람에게는 각자의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때부터 나 자신의 재주는 무엇일까 고민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우연히 집 앞 카센터에 걸린 경주차 사진을 보았다. `아! 바로 저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날 그 카센터의 주인 박희태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동호회인 KMFC를 창설했다. 나도 거기에 가입해 동호회 활동을 하며 레이서가 되려는 결심을 굳혔다. 본격적인 드라이빙 기술은 어떻게 배웠나? -80년대 초반에는 체계적으로 레이스를 배운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카레이싱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대신 동호회원들끼리 모이다 보면 자연스레 드라이빙 테크닉 이야기가 나왔고 서로의 경험과 토론을 거쳐 이론을 쌓았다. 개인적으로 남들보다 적응력과 감각이 뛰어났기에 나름대로 레이싱 테크닉을 익혔다. 게다가 일본 선빔 레이싱팀으로 유학을 떠나며 체계적인 이론을 다시 정립하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차를 소개해달라. -첫 차였던 프라이드가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께서 사주셨는데 마산에서 처음 뽑은 프라이드였다. 자가용과 경주차로 함께 사용하던 시절이라 87년 열렸던 운두령 랠리와 영종도 경기는 그 차로 뛰었다. 일반인들도 아마 자신의 첫차에 정이 갈 것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차는 94∼96년 온로드 경기를 함께 했던 스쿠프 터보다. 일본에서 차를 만들다시피 한 다른 팀과 달리 우리는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보면서 노하우를 쌓으려고 했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금껏 도와주고 있는 미캐닉 최상진씨의 공이 컸다. 그는 쇼크업소버 하나 때문에 훗카이도에서 도쿄까지 거의 모든 튜닝숍을 뒤질 정도로 정말 힘들게 스쿠프 터보를 꾸몄다. 가슴아픈 기억이겠지만 출전할 수 없었던 기간 동안 심경은 어떠했나? -불법 개조라고 몰아세운 사람들에게 무척 서운했다. 세상을 살려면 요령이 있어야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뒷날 꼭 다시 서키트를 제패하자고 마음을 다지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다.레이싱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긴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에피소드 한 가지만 이야기 해달라. -경기에 뛸 수 없던 시절 F1 시뮬레이션 게임기에 빠진 적이 있다. 서울 롯데월드에 있던 그 기계는 철저하게 레이싱 이론에 따라 만들어 매우 사실적이었다. 몇 번 하다보니 최고 기록을 세우고 이름 석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정말 F1 챔피언에 된 기분이었다. 내 기록은 아무도 못 깰 거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 다시 찾았을 때 다른 사람 이름이 내 이름 위에 올라 있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어렵사리 그 기록을 뛰어넘어 다시 1등 드라이버로 이름을 새겼다. 그러나 다음날 다시 그 사람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이렇게 몇 일 동안 얼굴 없는 `F1 라이벌` 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록 경쟁을 벌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무척 궁금했다. 1주일쯤 지나서 드디어 그를 만났다. 그는 중학생이었다. 정말 빨랐던 그와의 경쟁에서 내가 결국 졌다. 그 학생이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야 추월하는 드라이버로 알려졌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너무 얌전하게 차를 몬다는 세간의 평가를 돌려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근본적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그럴 뿐이다. 사고가 나면 서로에게 손해 아닌가? 테크닉으로 승부를 내는 페어플레이를 원한다. 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후미차를 견제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브레이킹과 라인을 그리며 서키트를 도는 국내 드라이버들이 있다. 최고수준의 F1 레이서들 가운데도 그런 선수가 있다. 공격적인 성향의 A. 세나와 M. 슈마허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국내에서 점점 많은 드라이버가 그런 식의 플레이를 펼친다는 것이다. 실력보다 잔재주가 인정받아서는 안된다. A. 프로스트, D. 힐, M, 하키넨과 같은 깨끗한 레이서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레이서의 길을 개척해온 1세대 레이서로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적응력이다. 모터 스포츠에 관심 있는 사람도 이미 이론적으로는 레이서 못지 않다. 자기 자신의 드라이빙을 얼마나 이론에 맞출 수 있는지가 빠른 레이서가 되는 길이다. 후배들에게 우스개 소리로 `머리는 F1 드라이버인데 몸은 원메이크 레이서` 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한계는 깰 수 없다. 어차피 또 다른 한계가 나오니까. 결국 계속 자기 자신을 극복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반복되는 연습 속에 스피드를 높여가면서 재미를 찾는 것이 레이서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뛰어난 레이서도 프로인 만큼 우승해야 가치를 높일 수 있겠다. 최근 성적이 부진한 편인데 원인은 무엇인가? -오일뱅크에서 나온 뒤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팀을 직접 꾸리다보니 경기 외에 신경 쓸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려운 환경에서 최상진씨를 비롯한 팀원들이 똘똘 뭉쳐 만족할 만한 성적을 기록했다고 평가한다. 앞으로 3년간은 우승을 위해 전력투구할 계획이다. 나의 드라이빙 습관을 잘 파악하고 있는 동료 선수들이 본다면 깜짝 놀랄 만큼 공격적인 드라이빙을 펼치려고 한다. 최정상의 자리에 다시 오른 뒤에는 팀을 이끌며 후배들을 뒷바라지 할 것이다. 이명목 선수는 99년 창원 F3 경기에 출전했다.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인 만큼 큰 기대를 모았지만 연습주행이 단 이틀에 불과해 제대로 경주차를 소화해내지 못하고 리타이어했다. 당시 14년 경력의 레이서였던 그가 `세상에 이런 차가 있구나!` 라고 감탄했다니 국내 경주차와 모터 스포츠 선진국 머신의 수준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우리 선수들이 세계의 유명 경기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일까? 암담한 국내 현실에서 그는 `우리 선수들을 6개월∼1년 정도 풀 시드로 F3에 참가시켜 적응력을 살려준다면 상위권에 충분히 오를 수 있습니다.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기량차이가 큰 것은 아닙니다. CART 챔프들도 F1에서 맥을 못 추곤 하지 않습니까?` 라는 희망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레이서 이명목 선수의 판단이 입증되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이명목 선수 E메일: ventus01@daum.net 포뮬러 1800을 모는 유일한 여성 레이서인데, 포뮬러 1800은 양산차를 기초로 한 원메이크전과 비교할 때 드라이빙 테크닉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떻게 드라이빙 테크닉을 배웠나? -원메이크전을 뛰던 시절인 99년 초 TV 방송을 통해 나의 활동이 소개된 적이 있다. 방송을 본 LG화재 홍보실의 제안으로 정식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외국 경기를 자주 보며 포뮬러카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왔던 나로서는 든든한 스폰서를 만난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물론 처음 포뮬러카를 몰다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지만 혼자 책을 보며 많이 연구했다. 나는 약간 고집이 있어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터득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아직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기술을 100%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지만 올 시즌부터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프로 선수로서는 성적이 너무 나쁜 것 아닌가. -성적이 나쁜 것에 대해서는 변명하지 않겠다. 모 팀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므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지난 시즌까지는 나의 상황이 너무 나빴다. 연습 한 번 마음 놓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직 내가 지닌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못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올 시즌은 좋아질 것이다. 올 시즌 포뮬러 르노가 등장할 것 같다. 참가 계획이 있는가.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말해달라. -이제야 포뮬러 1800을 이해하고 있다. 정이 들기 시작한 시점에서 그를 버리고 새 남자(새 경주차)를 찾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올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둬 포뮬러 1800과의 멋진 추억을 만든다는 것을 전제로 다음 시즌에 포뮬러 르노 경기 출전을 고려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비밀이다. 4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지만 모터 스포츠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 외에는 공개할 수 없다. 애정을 가지고 계속 지켜본다면 내가 어떤 계획을 세웠고 어떻게 실현시켜 나가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다시 서울대에 복학한 것으로 알고 있다. 늦은 나이게 다시 공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학교생활을 소개해달라. -원래 순수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 입학한 뒤 천체물리학과에 가려고 2번이나 학력고사를 다시 보기도 했지만 모델 활동으로 한창 바쁠 때여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졸업을 미루다 학위를 받지 못한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다시 입학해 소비자학과에서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다. 예전에 우연히 강의실 앞을 지나다 재미로 `우주의 진화`라는 과목을 청강한 적이 있는데, 10년만에 다시 들어보니 그 동안 새로운 학설과 데이터가 엄청나게 등장해 있었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진 만큼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는 많은 레이서들이 있다. 프로 스포츠답게 상위권 선수들은 매스컴의 집중적인 조명과 팬들의 사랑을 받지만 하위 클래스에 출전하는 선수들 대다수는 모터 스포츠 팬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1년 내내 경기에 출전해도 나의 경기모습이 담긴 사진 하나 찾기 어렵다`는 선수들의 푸념도 곧잘 들린다. 신미아 선수의 경우도 톱모델 출신이라는 이력이 없었다면 프로팀 소속이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그녀가 포뮬러 1800에 출전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선수들도 있다. 그녀 역시 세인들의 뒷말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제 덕택에 LG화재라는 기업이 모터 스포츠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인식부족으로 대다수 기업들이 모터 스포츠에 투자하기 꺼려하는 상황에서 저 같이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면 LG화재 같은 큰 기업들이 더 많이 모터 스포츠에 뛰어들게 될 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지금도 LG화재에서 제가 아닌 다른 선수를 지원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지만 아직은 모터 스포츠보다는 저에게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빨리 바뀌어야 할 국내 기업들의 가치관입니다.` 그녀의 바램처럼 돈 대겠다는 기업은 넘치는데 선수가 부족할 정도로 국내 모터 스포츠가 활성화되려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자에게 `서브 스폰서가 변동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사진을 골라 보내주겠다`고 말한 그녀처럼 철저한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선수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선수를 탐내는 기업이 줄을 서는 날도 머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황운기· 황진욱· 황진우 국내 최초 3부자 모터 스.. 2000-10-30
포뮬러 코리아의 황운기 단장.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모터 스포츠에 발을 들여놓자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냥 모터 스포츠가 좋았을 뿐이었다. 그래서 하던 일 다 팽개치고 무작정 뛰어들었다. 황운기 단장을 놓아주지 않던 끈은 첫 경기(제1회 그랑프리 코리아, 87년 6월 13~ 14일)에 나가 지금도 쟁쟁하게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박정룡(MBC 카맨파크), 이명목(벤투스) 등을 누르고 표창대 정상에 선 것이다. 황단장의 말을 그대로 빌면 그때 `코가 꿰인 것`이다. 한 번 빠져드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게 바로 14년 전인 1987년 한국 모터 스포츠가 문을 연 시점이었다. 그는 이해 월드카 레이싱팀을 창단해 활동하다 다시 88년 5월 한국모터라는 팀을 만들었다. 달리기를 좋아했기에 다른 뜻은 없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레이스를 이끌자는 열정 때문이었다. 그런 다음 경기를 주최하기 시작했다. 놀 물이 있어야 고기가 산다는 생각에서다. 폭 넓은 레이스의 세계를 체험하고 현재 안전운전 교육 프로그램 준비 88년 5월 월드9000 청포대 레이스를 시작으로 88년 11월 한·일 카레이스, 92, 93 코리아 챔피언십을 주최하면서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자연 모터 스포츠에 대한 애정은 커졌고, 알면 알수록 갈증은 더욱 깊어갔다. "89년 일본에서 레이싱 스쿨을 수료하고 국내 처음으로 닛산 마치 레이스에 참가했습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선구자가 되어야겠다는 포부도 다졌지요." 이런 열정은 지옥의 랠리라는 파리-다카르 랠리 도전으로 이어진다. 93년 스포티지를 몰고 출전해 폭 넓은 레이스의 세계를 경험한 것이다. 끝없는 열정과 몇 차례의 우승은 황운기를 국내 모터 스포츠 터줏대감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의욕만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95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공인 경기가 열리면서 황운기 단장은 드라이버나 주최자가 아닌 레이싱팀의 단장으로 주저앉았다. 넘치는 의욕에 비해 국내 모터 스포츠의 현실은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다. 그렇다고 마냥 때를 기다린 것만은 아니다. 97년 포뮬러 1800이 연습경기로 열리게 되자 포뮬러 레이싱 스쿨을 여는 등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 팀에서 활동하던 드라이버가 바로 조경업(현재 인디고)이다. "포뮬러는 국내 모터 스포츠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확신을 했죠. 그래서 10대 정도 포뮬러를 구입해 레이싱 스쿨을 열었고 출전도 시켰지요. 호주에서 활동하던 조경업을 불러들인 것도 선진 레이스를 익힌 그로 인해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 였습니다. 물론 드라이버와 팀의 노력이 따랐겠지만 이제는 웬만한 드라이버는 조경업 만큼 타잖아요." 그러나 그가 바라던 포뮬러 시대는 바램에 그쳤다. 모터 스포츠의 기반이 워낙 약한데다 자금을 대는 스폰서들의 반응도 시큰둥한 것이 원인이었다. 98년까지 팀을 꾸려 오던 그는 다시 한 번 레이스의 기본이 되는 카트에 도전하면서 도박(?)을 한다. 인천 송도에 카트장을 준비한 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카트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레이서를 꿈꾸거나 호기심을 갖고 있는 이가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젠 제법 레이스를 치를 수 있는 회원을 확보했고, 올 시즌에도 5차례나 대회를 주최했다. 이 시기에 황운기 단장은 강원도 원주시에 문막 서키트를 만들었다. 규모나 교통 등 모든 조건이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 비해 떨어지지만 카트, 드래그 레이스, 4WD 경기 등을 치르면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다른 클래스보다 가트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황운기 단장은 카트가 예비 레이서를 길러내는 단순한 목적뿐 아니라 `안전운전`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은 초등학교~ 일반인까지를 대상으로 한 안전운전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레이서로 모터 스포츠에 입문해 질곡의 세월을 걸어 온 황운기 단장. 그는 자신을 돈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가진 것 다 날리고(?) 남은 것은 그간의 경험이 전부다. "1세대 중에서 모터 스포츠에 뛰어들어 돈을 번 사람 있나요. 다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거죠. 저도 같아요."진욱이와 진우도 레이서의 길 택해 3부자의 모터 스포츠 사랑 각별해 그런 그의 두 아들이 이제는 레이서의 길을 걷는다. 피는 못 속인다고... 두 아들 진욱(21)이와 진우(18)가 레이스를 하고 싶다고 하자 황단장은 쉽게 허락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을 말릴 수도 없고, 말려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애들에게 바라는 것은 전혀 없어요. 다만 최선을 다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유일한 바램이죠. 다행히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반듯하게 자랐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방황할 나이에 차를 갖고 놀다 보니 다른 길로 빠지지 않은 것 같아요. 애들이 노력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는 해줄 겁니다. 그게 저의 역할이니까요." 큰아들 진욱이가 모터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영향이다. 어려서부터 경기장을 쫓아다니다 보니 피부로 레이스를 접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레이스가 그렇게 멋질 수가 없었어요. 동경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황운기 단장은 중학교 시절 진욱이가 껄렁껄렁(황단장의 표현이다)한 아이들과 어울리자 서둘러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보다는 아들의 장래를 위한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한동안 진욱이는 영국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곳에 유학 온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재미가 쏠쏠했기에 공부는 뒷전이었다. 이를 안 황단장은 진욱이를 한국 사람이 거의 없는 도버쪽으로 전학을 시켰다. 진욱이는 그제야 마음을 잡고 공부에 매달렸다. "이때도 영국 친구들이 카트나 포뮬러 주니어를 타는 것을 보면 너무 부러웠어요.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마음뿐이었죠." 진욱이가 마침내 운전대를 잡은 것은 98년이다. 운전면허를 딴 후 곧바로 99년 한국 모터 챔피언십 시리즈 원메이커 현대전에 뛰어들었다. 열심히 하겠다는 아들을 믿고 출전하도록 아버지가 응원해 주었기에 가능했다. 올해부터 진욱이는 한국 모터챔피언십 시리즈 제4전에서 포뮬러 1800에 도전장을 던졌다. 데뷔할 당시의 목표는 완주. 연습량도 적고, 경주차도 97년형으로 세팅이 거의 되지 않았기에 욕심을 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진욱이의 포부는 야무지다. "차 상태가 더 좋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기본을 다지면 조건이 더 낳은 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고 믿어요. 현재는 앞선 드라이버들과 거리를 좁히도록 하고 차근차근 성적을 올려야지요.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울 겁니다." 둘째 진우는 지난해부터 카트를 타기 시작해 올해 그만두었다. 적수(?)가 없어 재미를 잃어서다. 진우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열린 카트 대회에서 8회나 우승했다. 그렇다고 레이스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목표를 포뮬러 1800으로 잡았고, 올해 11월에 열리는 인터텍 인 코리아 그랑프리에 출전하려고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들들까지 모터 스포츠에 발은 디딘 황운기 단장 가족. 황단장은 두 아들을 항상 자신의 품에 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언젠가는 두 아들이 날개를 펴고 품을 떠나는 그날. 그날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값진 시간일 것이고, 지금껏 걸어 온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 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이때문이다. 이들 3부자의 모터 스포츠 사랑 그리고 열정....결실의 시간은 자신들도 모른다. 다만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주어진다는 확신을 갖고 있을 뿐이고, 그 길을 지금도 묵묵히 걷는 것이다.
드페랑의 펜스키,최강라인 구축 팀 그린, 3시트 운.. 2001-03-29
①섀시 ②엔진 ③스폰서 ④특징 *2001년 데뷔 드라이버 *2월 18일 현재 팀 펜스키 G. 드페랑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말보로 H.C. 네베스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말보로 ④2000년 왕위에 오른 펜스키는 올해도 드페랑-캐스트로 네베스 듀오를 내세워 시리즈 2연패에 도전한다. 엔진과 섀시는 지난해와 같은 레이너드-혼다. 인디500 참전도 결정했다. 페르난데스 레이싱 A. 페르난데스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테카테, 쿼커 나카노 신지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에이벡스 ④지난해 패트릭 레이싱에서 뛴 페르난데스와 팀 매니저 T. 앤더슨이 공동 오너다. 머신은 레이너드-혼다. 페르난데스의 파트너로 2년차 나카노 신지가 뛴다. 패트릭 레이싱 R. 모레노 ①레이너드 ②도요타 ③비스테론 J. 바서 ①레이너드 ②도요타 ③? ④페르난데스의 공백을 J. 바서가 책임지고, 모레노는 그대로 남았다. 엔진은 포드에서 도요타로 바꾸었다. 2000년 2, 3위에 만족했지만 올해는 우승을 목표로 전열 재정비를 마쳤다. 팀 레이홀 K. 브라크 ①롤라 ②포드 ③쉘 M. 파피스 ①롤라 ②포드 ③밀러 라이트 ④오너 레이홀의 바쁜 F1 일정으로 메니저와 엔지니어 등의 체제변화를 거쳤다. 2000년 루키 브라크와 파피스 라인업은 바뀌지 않았다. 올해는 포드 엔진에 새로 롤라 섀시를 씌웠다. 모넌 레이싱 A. 자나르디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파이오니아, MCI T. 카난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헐리우드 ④혼다가 참가하고, 2회 시리즈 챔피언을 따냈던 자나르디가 합류해 강력한 라인업을 구축했다. 신생 모넌 레이싱 팀은 자나르디가 파이오니아, 카난은 헐리우드의 지원을 받는다. 타깃-치프 가내시 레이싱 B. 쟌케이라, ①롤라 ②도요타 ③타깃 N. 미나시언 ①롤라 ②도요타 ③타깃 ④몬토야와 바서가 이탈한 가내시 팀은 지난해 F3000 랭킹 1, 2위 쟌케이라와 미나시언을 과감히 기용했다. 머신은 올해도 롤라-도요타. 신인들의 활약이 역대 챔피언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플레이어즈-포사이드 P. 카펜티어 ①레이너드 ②포드 ③플레이어즈 A. 타글리아니 ①레이너드 ②포드 ③프레이어즈 ④캐나다 출신 카펜티어와 타글리아니의 잔류가 결정되었다. 2000년 예기치 않은 불운이 팀에 비운을 안겼지만 젊은 듀오를 내세워 올해 다크호스로 떠오를 전망이다. 뉴먼-하스 레이싱 C. 피티팔디 ①롤라 ②도요타 ③K마트 C. 다마타 ①롤라 ②도요타 ③K마트 ④안드레티가 떠난 자리에 브라질 출신 다마타가 합류했다. 다마타의 짝은 2000년 최종전 챔피언 피티팔디. 롤라-도요타 머신으로 뛰게 될 두 드라이버의 활약이 기대된다. 팩 웨스트 M. 구젤민 ①레이너드 ②도요타 ③넥스텔 S. 딕슨 ①레이너드 ②도요타 ③파나소닉 ④팩 웨스트는 구젤민의 파트너로 인디라이트 왕좌 딕슨을 불러들여 2시트 체제를 구축했다. 엔진은 벤츠가 빠져나가면서 도요타로 바꾸었다. 포사이드-잭 웨스트 B. 허타 ①레이너드 ②포드 ③? M. 티만 ①레이너드 ②포드 ③? ④독일 명문 레이싱 팀인 잭스피드가 포사이스와 함께 CART 무대를 밟는다. 경험이 풍부한 허타가 팀을 이끌고, 잭스피드와 오랜 기간을 같이한 티만이 데뷔한다. 머신은 레이너드-포드. 팀 그린 P. 트레이시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쿨 D. 프랑키티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쿨 M. 안드레티 ①레이너드 ②혼다 ③모토로라 ④트레이시, 프랭키티 콤비와 레이너드-혼다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다. 명예회복에 나선 프랭키티가 테스트에서 호조를 보였고, 안드레티의 가세로 3시트를 운영해 우승권에 가깝다. 워커 레이싱 다카키 토라노스케 ①레이너드 ②도요타 ③파이오니아, 덴소 ④지난해 레이너드-혼다 머신에 나카노 신지를 띄웠던 워커 레이싱은 올해 다카키를 대표선수로 참전시킨다. 새 머신은 레이너드-도요타, 오디오 메이커 파이오니아와 덴소가 스폰서를 맡았다. 데일 코인 레이싱 A. 바론 ①롤라 ②포드 ③? ④바론의 출전이 확실한 반면 세컨드 시트는 결정되지 않았다. 유력한 후보는 2000년 F3 마카오 GP 챔피언 A. 코토. 섀시는 스위프트에서 레이너드로 바뀌었다. 프로젝트 레이싱 L. 가르시아 Jr ①레이너드 ②일모어 ③헐리우드 M. 크룸 ①레이너드 ②일모어 ③? ④가르시아 주니어와 함께 뛸 드라이버는 올해 데뷔전을 치르는 신예 크룸. 머신은 레이너드 섀시에 벤츠 계열 일모어 엔진을 얹었다. 스폰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시그마 오토스포츠 O. 세르비아 ①레이너드 ②포드 ③? ④지난해 K. 브라크와 신인왕 타이틀전을 벌였던 세르비아가 시그마 오토스포츠에 새 둥지를 틀었다. 엔진과 섀시는 일찌감치 결정지었으나 스폰서는 미정이다. 베텐하우젠 M. 조르다인 Jr ①롤라 ②포드 ③하디스 ④베텐하우젠은 올해도 멕시코의 신예 조르다인 Jr를 기용한다. 엔진은 벤츠에서 포드로 바꿨다. 부르크 레이싱 M. 윌슨 ①롤라 ②피닉스 ③레드백 ④부르크 레이싱은 브라질 출신 드라이버 M. 윌슨을 출전시킨다. 일모어의 피닉스 엔진을 얹고 섀시는 롤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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