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모터스포츠

윤세진 포뮬러 1800 우승으로 화려한 컴백- 투어링카.. 1999-08-29
99 한국 모터챔피언십 시리즈 제5전이 지난 7월 16일(금요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결선을 치렀다. 지난해에 이어 제5전은 생방송(주관방송사 MBC)으로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방송노조의 파업으로 스케줄이 취소되어 방송도 없고 관중도 없는 해프닝성 레이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타이틀 스폰서도 없어 입상 드라이버에게 상금이 돌아가지 못했다(제4전까지는 삼성화재가 타이틀 스폰서를 맡았다). 풀코스(2.125km)에서 치른 이날 레이스에는 61명(포뮬러 포함)이 참가해 신인전 10랩, 원메이크 통합전 15랩, 투어링카 통합전 30랩, 포뮬러 1800 25랩을 돌아 승부를 가렸다. 투어링카A 김의수(인디고)가 올 시즌 첫승을 폴투 피니시로 장식했고, 포뮬러는 팔꿈치 부상으로 2~4전을 결장한 후 출전한 윤세진이 화려한 컴백전을 가졌다. 현대전 구완회(이글), 대우전 곽창순은 올 시즌 5연승을 거두며 시리즈 챔피언을 확정지었다. 기아전 조재희(로드아트), 신인전 강경필(마루아치)가 표창대 정상에 섰다. 신인전 김성용의 눈부신 테크닉 선보여 시즌 전반을 뜨겁게 달구던 마루아치와 MM 레이싱팀의 대결은 마루아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12대가 결선에서 맞붙은 신인전은 마루아치팀 드라이버가 1~ 3위 그리드를 점령해 후반기 독주를 예고했다. 이에 비해 MM 레이싱팀은 출전자가 없었다. 결선은 제1열에 선 강경필과 김윤기의 선두다툼으로 막을 올렸다. 두 드라이버는 7랩까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을 벌였지만 8랩에서 김윤기가 3코너 버지에 빠졌다 가까스로 탈출하면서 승부의 마침표를 찍었다. 강경필이 우승컵을 안았고, 김윤기와 이은혁(발보린 레이싱)이 뒤를 이었다. 한편 티코를 몰고 출전한 김성용(개인)은 12 그리드에서 떠났지만 매 랩마다 순위를 바꾸는 놀라운 테크닉을 선보였다. 10랩을 돌고 났을 때 김성용은 2위. 하지만 번외 경기였기에 표창대에는 오르지 못했다. 원메이크 통합전 곽창순의 연승행진 어디까지 25대가 결선에서 맞붙은 원메이크 통합전(현대+기아+대우)은 현대차를 타는 드라이버들이 1~9그리드를 점령해 경주차 성능이 기아나 대우차보다 월등히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구완회, 신동길(던킨), 주원규(개인)가 매끄럽게 첫 코너를 지나며 결선의 막을 올렸지만 2번 코너가 발목을 잡았다. 속도를 줄이지 못한 경주차들이 한데 엉켜 붙었고, 이 과정에서 주원규가 추돌의 영향으로 9위로 처졌다. 이 틈을 놓치지 않은 오일기가 구완회에 이어 2위로 뛰어오르는 등 레이스는 새 판을 짰다. 1바퀴를 돌며 선두권은 안정을 찾았지만 원승남이 테크니컬 트러블로 10랩에서 레이스를 포기했고, 선두 대열에 뛰어들었던 봉선영(이글)은 페널티를 받고 피트인해 표창대의 꿈을 접는 등 곳곳에서 숨가쁘게 접전이 펼쳐졌다. 구완회, 오일기, 신동길이 현대전 표창대에 올랐다. 앞선 현대차의 그늘에 가려 순위조차 파악하기 어려었던 기아전은 조재희가 우승컵을 안았고, 이병준(보라매), 윤현진(발보린 레이싱)이 표창대를 메꿨다. 대우전은 곽창순이 5연승 신화를 기록하며 철옹성을 쌓았다. 이날 레이스에서 곽창순은 2위 최재호와 30여 초 이상 벌리며 쉽게 우승컵을 낚아 연승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을 모았다. 최경호(경인모터스)가 표창대 마지막 자리에 섰다. 투어링카 통합전 타이어 세팅이 승패를 갈랐다 전날의 예선은 팀과 드라이버를 혼란에 빠트렸다. 원인은 비. 빗길에서는 경주차 세팅 방법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예선에서 드라이버 대부분은 경주차를 웨트 세팅으로 맞췄고, 타이어도 웨트 타이어를 신었다. 하지만 비가 그치면서 노면이 마르자 재빨리 슬릭 타이어를 신은 드라이버들이 상위 그리드를 점령했고, 웨트로 밀어붙인 이는 중하위권으로 떨어졌다. 제5전 핸디캡 웨이트 대상자는 장순호(50kg), 이준호(30kg), 이명목(20kg), 정경용(20kg)이다. 예선 결과 PP는 김의수(인디고). 제2그리드는 95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제1열에 선 정소민(베스트엠)에게 돌아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명목(제임스딘) 3그리드, 57점을 기록해 득점선두를 달리고 있는 장순호와 제4전 우승컵을 안은 이준호는 8과 9그리드에 섰다. 바싹 마른 노면에서 치른 결선은 1~7그리드에 늘어섰던 드라이버들이 접전 없이 차례로 첫 코너를 지나며 순항을 시작했다. 한 바퀴를 돌면서 김의수의 독주가 이어지기 시작했고, 2위를 놓고 5대의 경주차가 9랩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벼랑끝 승부를 펼쳐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9랩에서는 6위로 달리던 김정수(이글)가 테크니컬 트러블로 피트인, 레이스를 포기함에 따라 선두권이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2위 정소민과 3위 이명목은 방패와 창의 대결을 보는 듯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접전을 20랩까지 펼쳤다. 21랩에서 이명목의 창은 마침내 방패를 뚫고 2위로 올라서 시즌 2승을 향해 내달았다. 하지만 정소민의 추격은 끈질기고 집요해 23랩 1코너에서 이명목을 제압하고 2위로 올라섰다. 장순호의 파이팅도 빛을 내기 시작했다. 8위에서 떠난 장순호는 23랩에서 4위로 뛰어 올랐고, 27랩에서는 2위를 놓고 정소민과 격돌하기도 했지만 힘이 달렸다. 김의수가 30랩을 완벽하게 지켜 폴투윈을 거뒀고, 정소민은 데뷔 후 첫 표창대의 감격을 맛보았다. 장순호가 나머지 한 자리를 메꿨다. 한편 투어링카B는 허강주와 린 그레고리만 참가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클래스의 의미가 없어 다음 시즌에는 사라질 위기에 몰렸다. 포뮬러 1800 조경업 환상적인 테크닉 선보여 제2~4전 공백기를 딛고 돌아온 윤세진(오일뱅크)이 폴투윈을 거두며 화려한 복귀전을 치러 신일성과 조경업 2파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었다. 윤세진은 이날 다친 팔꿈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도 붕대를 감고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결선 그리드는 윤세진에 이어 신일성(오일뱅크), 이명목(제임스딘), 조경업(인디고) 등이 줄을 이었다. 결선 참가자 11명 중 일본 드라이버는 사가구치 료헤이를 비롯한 4명이었다. 포메이션 랩이 끝나고 경주차들이 그리드에 늘어섰지만 예선 3위 이명목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피트로 들어왔다. 원인은 점화계통 이상. 재빨리 손보고 피트 라인에 섰지만 11그리드의 어기윤이 스타트 라인을 떠난 후에야 코스인 했다. 레이스는 초반부터 윤세진과 신일성, 조경업과 6위에서 출발해 단숨에 4위로 뛰어오른 사가구치 료헤이의 무대로 이어졌다. 특히 조경업과 사가구치 료헤이는 4랩부터 10랩까지 손에 땀을 쥐는 승부를 벌였다. 하지만 10랩 헤어핀에서 사가구치 료헤이가 어이없이 스핀, 조경업은 멀찌감치 달아났고, 김시균과 이명목에게 잇따라 길을 터 주었다. 10랩부터 18랩까지 레이스는 소강상태, 오일뱅크 듀오 윤세진과 신일성은 원투 피니시를 향해 내달으며 싱겁게 막을 내리는 듯 싶었다. 하지만 19랩서 조경업이 2위 신일성을 눈 앞에 두면서 레이스는 활기를 띄었다. 조경업은 21랩 첫 코너를 앞두고 환상적인 슬립 스트림 테크닉으로 신일성을 제압하며 마지막 불꽃을 피웠다. 그러나 불꽃은 타오르지 못했다. 헤어핀에서 신일성에게 추월을 허용해 폴투 피니시를 거둔 윤세진, 신일성에 이어 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 인디고 레이싱팀 대대적인 조직개편 인디고 레이싱팀이 회사의 독립부서로 거듭나기 위해 대대적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그동안 인디고 레이싱팀은 성우시멘트에 속해 있어 결재라인이 복잡했으므로 모터 스포츠에 대한 대응이 라이벌팀인 오일뱅크에 비해 한참 처졌다. 인디고가 결재라인을 단순화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라이벌 오일뱅크의 장점을 도입해 모터 스포츠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가 섰기 때문이다. 조직개편 과정에서 팀의 에이스 드라이버였던 김한봉과 미캐닉 5명이 유니폼을 벗었다. "성적과 관계 있는 문책성 인사가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박상규 팀장은 "팀과 레이서가 추구하는 방향이 서로 달라 같이 갈 수 없었을 뿐 성적과는 큰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인디고 레이싱팀은 당분간 포뮬러 1800은 투 카, 투어링카A는 원 카 체제로 운영하면서 일정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조직을 재정비할 방침이다. `
한국 모터 챔피언십 프리뷰 - 실력차 줄어 최종전까지 .. 1999-03-24
95년 문을 연 한국 모터 챔피언십 시리즈가 올해로 5회를 맞았다. 올 시즌은 경제침체의 여파로 위축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예상과 달리 3월 21일(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총 10회의 레이스를 펼친다. 늘어난 경기만큼 볼거리도 풍성하다. 우선 좁아진 실력차. 프로팀은 오일뱅크, 인디고, 제임스딘밖에 없지만 지난해까지 투어링카B 클래스에서 활약하던 대부분의 레이서가 투어링카A 클래스로 진출했기 때문에 드라이버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그야말로 실력으로 말할 수 있는 레이스가 펼쳐지는 것이다. 모터사이클도 흥미를 끌 것으로 보인다. 125~150cc 두 클래스. 125cc는 국산 제품인 대림과 효성 중에서 결정될 예정이고, 외국산은 이태리의 아프릴리아로 결정되었다. 한국 모터사이클연맹의 신준용 사무총장은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와 협조해 안전장비를 갖추는 등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대학생 자작차 경주와 1천500cc 포뮬러카인 주피터 레이스도 열릴 계획이다. 올 시즌 최강의 경주차는 올 시즌은 현대그룹의 한 지붕 두 가족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불꽃대결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대자동차로 경영권이 넘어간 기아자동차가 모터 스포츠에서 손을 떼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있었지만 기아자동차는 모터 스포츠에 공격적으로 돌아섰다. 온로드와 오프로드에서 문제되었던 규정(500대 생산규정에 맞춰야 하지만 기아는 예외규정을 적용받아 2.0X를 30대만 생산했다)이 마무리 되어(지난해의 예외규정이 올해도 인정되었다) ‘슈마 우승 만들기’에 정성을 다할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현대자동차의 앞도적인 우세. 96년 등장한 티뷰론은 지난 시즌까지 3연패를 기록하며 최고의 종마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했다. 티뷰론은 국내 레이스를 주름잡고 있는 쟁쟁한 드라이버들의 ‘강력한 무기’였다. 96~97 시즌 2연패를 일궈냈던 이명목, 지난 시즌 챔피언에 등극한 윤세진, 원년(95년) 챔피언 박정룡을 비롯해 언젠가 챔피언을 따낼 김한봉 등 톱 레이서 대부분이 티뷰론을 몰았다. 지난 시즌 경쟁차였던 김정수의 슈마는 덜 여물었고, 누비라 해치백은 티뷰론에 대항하기에는 무대가 너무 넓었다. 슈마의 도전과 티뷰론의 수성이 흥미 누비라는 우승보다 경험 쌓기에 주력 하지만 올해는 양상이 다르다. 우선 기대되는 차가 김정수의 슈마. 기아는 지난해까지 팀 미캐닉의 손으로 다듬어져 신통치 않은 성적을 냈던 김정수의 슈마를 시흥의 소하리공장 시작차 라인에 넣어 다듬었다. 최대한 정성을 들여 올 시즌 우승을 넘보겠다는 야심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일본인 레이서 야마모토의 슈마. 지난 시즌 국내에서 포뮬러 레이서로 활동했던 야마모토는 ‘슈마’를 일본의 하세가와 튜닝숍에서 다듬은 후 개막전에 선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하게 세팅해도 그의 테크닉으로 우승을 넘보기는 역부족. 그래서 재일교포 실력파 레이서 1~ 2명이 그를 대신할 물망으로 오르고 있다. 세 번째는 기대도 못했던 이명목. 지난 시즌을 끝으로 오일뱅크 유니폼을 벗은 이명목은 올 시즌 ‘포뮬러 3’ 유학을 계획했지만 일단 ‘제임스딘’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제임스딘은 이명목을 선택하고 경주차는 슈마로 결정(바뀔 가능성도 있다)했다. 이명목은 오일뱅크와의 관계가 잘 마무리 되지 않아 개운치 못한 상태인 데다가 ‘최강팀에서 활동했으니 그런 성적을 냈다’는 비아냥을 들을 수도 있으므로 슈마 성적 올리기에 열중할 것이다. 기아자동차로는 손해볼 것 없는 거래다. 이밖에 심상학에 이어 모빌팀에서도 1대의 슈마를 준비하고 있어 올 시즌 모터 스포츠는 원년에 이어 5년만에 정상도전의 불길이 타오를 전망이다. 이에 맞서는 티뷰론의 수성도 만만치 않다. 국내 최강팀(지난 시즌까지) 오일뱅크와 인디고가 2월부터 연습주행을 시작하는 등 올 시즌을 준비하는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노력 때문에 지난 시즌(1분 10초 007)보다 롱 코스(2.125km)에서 최고기록을 1초나 앞당기고 있다. 지난해 슈마가 1초 정도 뒤졌던 것을 생각하면 올 시즌 슈마는 최소한 2초 정도 빨라져야 같이 달릴 수 있다. 경주차 규정이 까다로운 국내 조건상 2초 당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대우자동차는 올 시즌도 우승보다는 경험 쌓기에 힘쓴다. 드라이버는 지난 시즌 투어링카B 챔피언을 따내 이재우. 이재우는 ’97 시즌 챔피언 윤세진과 비슷한 테크니션을 갖고 있어 올 시즌 선두권을 위협하는 복병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밖에 투어링카B 경주차는 올해도 엑센트와 라노스가 겨룰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참가자가 줄고 있어 큰 흥미를 끌지는 못하고 있다.올 시즌 챔피언 후보와 최고의 팀은 올 시즌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드라이버 경쟁이다. 지난해보다 레이스가 한 차례 늘어났고 주행횟수, 득점규정, 핸디캡 웨이트(박스기사 참조) 등이 달라져 섣불리 우승자를 점치기 어렵다. 지난해 성적을 기준으로 보면 윤세진(오일뱅크)이 가장 유리하다. 투어링카B부터 착실히 기초를 다져온 윤세진은 지난해 마침내 ‘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반복되는 연습(지난해까지 연습주행 700회를 넘어섰음)을 통해 숙달된 테크닉과 팀의 지원, 미캐닉과의 호흡 등 모든 부분에서 다른 드라이버를 압도한다. 또한 지난 시즌까지 포뮬러카를 함께 탔지만 올 시즌은 투어링카에만 전념할 수 있어 우승 확률을 높이고 있다. 김한봉은 윤세진과 시즌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95년 이후 ‘무관’의 설움을 달래고 있는 김한봉은 팀의 지원이 오일뱅크와 같은 수준이고 미캐닉의 실력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자신이 직접 차를 세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챔피언 후보로 꼽히기에 부족하지 않다. 95년 원년 챔피언인 박정룡도 눈부신 테크닉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다툰다. 박정룡의 테크닉은 국내 최고라는 평가지만 스폰서가 없는 것이 핸디캡이다. 각종 경비 지원 등이 프로팀에 비해 떨어지고, 미캐닉도 제 역할을 다할 지 의문이다. `인터크루`에서 활동했던 미캐닉 이종근을 받아들여 핸디캡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인 만큼 둘의 팀웍이 큰 관건이 될 것이다. 96~97 시즌 2연패, 지난해 종합2위를 한 이명목은 올 시즌 제임스딘에 둥지를 틀고 새출발할 것으로 보인다. 2월 중순 3년 동안 자신을 최고의 자리에 있도록 도와준 티뷰론을 버리고 기아 슈마를 선택했는데, 개막전까지는 세팅에 무리가 있겠지만 우승을 만드는 ‘마이다스의 손’ 최상진과 호흡을 맞춰 시즌 중반부터는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개막전부터 착실한 득점쌓기에 성공하면 시리즈 챔피언도 어렵지 않다. 슈마의 몸매 만들기에 정성을 다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김정수(이글), 팀의 지원에 따라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박시현(인터크루)도 올 시즌 주목되는 레이서고, 윤철수, 이재우 등이 이들과 함께 선두권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첫 공인경기로 문을 연 포뮬러카는 챔피언을 따낸 이명목과 조경업, 한원덕의 3파전이 예상된다. 투어링카도 신경써야 하는 이명목보다는 포뮬러만 타는 조경업이 유리하고, 한원덕은 테크닉에 비해 연습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일뱅크팀은 재일교포 출신(이름은 밝혀지지 않았다) 레이서를 포뮬러에 태운다. 늘어난 주행횟수 때문에 이명목이 포뮬러카를 포기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팀에서는 96년 이후 국내 최고팀의 자리를 지켰던 오일뱅크의 신화가 무너질 가능성이 엿보인다. 지난 시즌 오일뱅크에 도전장을 냈던 인디고가 그 신화를 깰 주인공이다. 인디고는 올 시즌 김한봉과 김의수를 투톱으로, 포뮬러는 조경업과 김시균을 내세워 오일뱅크를 압박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이에 맞서는 오일뱅크는 이명목이 떠난 자리가 너무 커 보인다. 이준호와 장순호를 윤세진의 파트너로 맞아들일 예정이지만 인디고를 쉽게 공략할 팀웍은 아니다. 이명목을 맞아들인 제임스딘도 투 카 체제로 시즌을 치를 예정이지만 드라이버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챔피언을 넘보는 레이서들 윤세진(오일뱅크) “2연패에 집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 시즌 국내 모터 스포츠계를 평정한 윤세진은 올 시즌 투어링카만 타 시리즈 챔피언의 가능성이 가장 크다. 3년째 미캐닉 백성기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윤세진은 주행횟수가 늘어난 올 시즌을 위해 스토브 리그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며 개막전을 기다렸다. 이명목(제임스딘) “아직 팀과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올 시즌 전망을 밝힐 수는 없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도록 하겠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오일뱅크를 떠나 유학길에 오르려고 했던 이명목은 예정과 달리 올 시즌 국내 레이스를 뛰며 틈틈이 외국의 레이스문화를 접할 생각이다. 김한봉(인디고) “올해 꼭 시리즈 챔피언의 왕좌에 오르겠다.” 매년 우승후보로 거론되면서도 타이틀 운이 따라 주지 않던 김한봉의 각오가 새롭다. 김한봉이 올 시즌을 벼르고 있는 이유는 팀 체제가 완비되었고 투어링카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해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것임을 확신한다. 박정룡(인터내셔널 레이싱팀) “목표는 포뮬러와 투어링카 타이틀을 동시에 안는 것이다.” 박정룡은 올 시즌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힘겨운 레이스가 펼쳐질 것이지만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거두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 시즌 투어링카만 탔던 방식을 바꿔 올 시즌은 `포뮬러 기아`를 탄다. 박정룡은 올 시즌 "라이벌은 자신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원년 챔프의 영광에 대한 도전의식이 강하다. 김정수(이글 레이싱팀)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열심히 하겠다. 올 시즌은 모두가 라이벌이다.” 김정수는 올 시즌 경주차의 성능을 보완하고 테크닉을 쌓아 시리즈 챔피언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지난 시즌까지 투어링카와 포뮬러를 함께 탔지만 올 시즌은 투어링카만 전념한다. 그만큼 시리즈 챔피언 욕심도 크다.한국 모터 스포츠의 기대주 주피터 한국 모터 스포츠를 한 단계 발전시킬 기대주 주피터가 마침내 지난 2월 21일(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의 쉐이크 다운을 통해 1년 2개월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주피터는 98년 1월 (주)JK자동차기술연구소가 가능성을 내다보고 기획하기 시작, 8월부터 한국인 4명, 일본인 6명의 기술진이 공동으로 제작한 보급형 포뮬러카다. 기아자동차의 1.5X DOHC 엔진(미드십)을 얹고 수동 5단 트랜스미션을 썼다. 주피터는 쉐이크 다운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시작차여서 마무리가 덜 된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950년대 포뮬러카를 떠올리게 하는 앙증맞은 디자인과 비교적 싼 값(1천750만원, 부가가치세 별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2시트 구조의 보급형 포뮬러 1.8X 포뮬러보다 6~7초 뒤져 베이스 모델은 일본의 ‘자우르스’지만 주피터는 개발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우선 펜더의 모양이 독특하고, 자우르스가 원시트인데 비해 주피터는 2시트(공개 때는 한쪽 시트를 달지 않았다)를 썼다. FRP를 쓴 카울은 앞 뒤 2분할 방식으로 뗐다 붙일 수 있다. 크기는 길이x너비x높이가 3450x1480x1250mm, 휠베이스 2천100mm, 트레드 앞뒤 1천250mm로 휠베이스에 비해 트레드가 넓어 코너링 성능이 좋을 것으로 기대된다. 타이어는 한국타이어 블랙파이터3000 205/50ZR 15를 끼웠지만 래디얼 타이어와의 호환성도 매우 뛰어나다. 이 날 시승을 한 일본 웨스트사의 가미타니 사장은 “한국 모터 스포츠 발전을 위해 금방 태어난 차라 아직 손볼 곳이 많다. 주피터 레이스가 활성화되면 한국 모터 스포츠도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최고속도 160km, 평균 랩타임 1분 12초 정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1천800cc 엔진을 얹은 ‘포뮬러 현대’나 ‘포뮬러 기아’보다 6~7초 정도 뒤지는 수준이다. JK자동차기술연구소는 주피터를 올해 일본으로 30대 수출해 원메이크 레이스를 펼칠 예정이다. 국내에서 주피터 레이스가 활성화되려면 최소 15대 이상이 팔려야 한다. 이를 위해 JK는 차 값의 반만 받은 후 반은 한 달 후에 받는 등 할부판매 조건을 생각하고 있다. 주피터는 5월 10일부터 열리는 서울 모터쇼에도 선을 보인다. 알면 재미가 두 배인 올해 규정 올 시즌 한국 모터챔피언십 시리즈는 특별전(메이커 지원)을 비롯해 8개 클래스에서 기량을 겨룬다. 주목되는 분야는 신설된 모터사이클과 대학생 자작차 경주차 및 주피터 레이스, 신인전 등으로 많은 관심과 흥미를 끌 것으로 보인다. 신인전은 1천500cc 경주차만 참가할 수 있다. 또한 메이커별로 나뉘었던 원메이크전이 올해는 현대+대우+기아 통합전으로 치러진다. 웨트 타이어는 지난해처럼 1세트만 사용할 수 있다. 득점규정은 지난해보다 축소되었다. 1~10위는 15~1점을 얻고, 최종전은 5점이 더해진 20~1점이다. 핸디캡 웨이트는 대폭 조정되었다. 지난해까지 핸디캡 웨이트는 60kg으로 하향평준화를 통해 경쟁의 폭을 넓히려는 주최측의 의도와 달리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올 시즌은 80kg의 밸러스트를 얹어 드라이버의 기량에 따라 승패가 엊갈릴 가능성이 크다. 핸디캡 웨이트 대상자가 4위 이하일 때는 20kg이 줄어들지만 경기에 출전하지 않으면 전 경기의 핸디캡 웨이트를 적용 받는다. 투어링카A, B와 포뮬러카는 ECU와 배기 매니폴드를 자유롭게 튜닝할 수 있어 지난 시즌보다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를 펼칠 수 있으므로 랩타임이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상금은 결승에 참가한 경주차 수에 따라 차등 적용하고, 메인 스폰서의 유무에 따라 조정된다. 규정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주행횟수가 늘어난 것이다. 투어링카A, B는 롱코스(2.125km)와 숏 코스(1.8km)가 지난 시즌보다 5랩이 늘어난 30주를 달린다. 포뮬러는 10랩이 는 25주. 이에 따라 지난 시즌까지 투어링카와 포뮬러카를 함께 탔던 드라이버들이 올 시즌에는 한 분야만 출전할 확률이 높아졌고, 엔진 내구성에 따라 승패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투어링카A 이준호 스타 예감 - 조경업과 신일성 포뮬러.. 1999-07-29
삼성화재컵 "99 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가 지난 5월 29일(토) 제3전, 6월 20일(일) 제4전 결선을 치렀다. 제3전은 풀 코스(2.125 km), 제4전은 숏 코스(1.8km). 저속 테크니컬 코스와 고속 코스에서 드라이버들의 명암이 크게 엇갈렸다. 제3전 투어링카A는 장순호가 파이널랩에서 앞선 두 드라이버를 제치는 신기를 선보이며 개막전 우승에 이어 올 시즌 2승을 챙겼다. 이에 비해 숏 코스에서는 이준호(오일뱅크)가 데뷔전 첫승을 낚아 파란을 일으켰다. 이준호는 97년 투어링카B에 데뷔한 후 올 시즌 투어링카A 출전 4전만에 우승컵을 낚는 기쁨을 맛보았다. 포뮬러카는 조경업과 신일성이 3, 4전 우승컵을 나눠 가져 올 시즌 챔피언 다툼이 어느 해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이밖에 현대전 주원규(개인)는 4연승에 제동이 걸리는 등 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제3전 풀 코스(2.125km) 토요일의 결선은 레이서나 스폰서에게 흥이 나지 않는다. 관중석은 텅 비어 있고 패독을 오가는 이도 적어 분위기가 가라앉기 때문이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관중은 고작해야 1천여 명으로 일요일 결선의 1/3 수준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레이스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볼거리도 많았다. 3전을 끝으로 중반전으로 접어들기 때문에 레이서들은 착실한 득점관리에 신경썼고 개막전에서 벌어졌던 팀의 격차도 좁혀졌다. 투어링카A와 포뮬러는 체커기를 받는 순간까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접전을 벌였다. 투어링카A는 한때 5위까지 밀렸던 장순호(오일뱅크)가 대역전극을 펼치며 우승컵을 안았고, 현대전 주원규는 3연승을 이루었다. 대우전 곽창순(개인), 기아전 이병준(보라매), 신인전 김윤기(마루아치)가 우승컵을 안았고, 포뮬러 레이스는 조경업이 제2전에 이어 제3전도 낚아 시즌 챔피언을 향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 신인전 김윤기 올 시즌 2승 챙겨 마루아치와 MM레이싱의 힘 겨루기가 팽팽한 신인전은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PP는 개막전 우승자 강준서(MM레이싱), 제2전 우승컵을 안은 김윤기(마루아치)가 뒤를 이어 다시 한번 경쟁을 예고했다. 그러나 결선은 어이없게 승부가 갈렸다. 첫 코너를 제압하며 기선을 잡은 김윤기가 완벽하게 10랩을 마무리해 올 시즌 2승을 챙겼다. 이에 비해 강준서는 첫랩에서 3위로 주저앉은 후 3랩에서 2위 안정호(발보린)와 추돌해 레이스를 마쳤을 때는 12위에 머물렀다. 김윤기에 이어 표창대의 두 자리는 6, 9 그리드에서 떠난 박종필(MM레이싱), 양영식(다이내믹)이 메꿨다. 원메이크 주원규 3연승 쾌속 질주 9대가 출전해 15랩을 돌아 승부를 가린 기아(5)+대우(4) 통합전은 첫랩부터 라노스(곽창순)와 아벨라(이병준)의 혈전이었다. 두 경주차는 첫랩부터 파이널랩까지 물고 물리는 접전을 벌여 관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지만 라노스가 0.513초 차로 아벨라를 따돌리고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17대가 맞붙은 현대전은 첫랩부터 혈전. 구완회(이글)가 PP의 주원규(개인)을 밀어내고 선두를 잡았지만 한 바퀴를 돌지 못하고 주원규와 오일기(이글)에 손을 들었다. 하지만 집요한 추격전을 펼친 구완회는 2랩에서 오일기 사냥에 성공해 선두 탈환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2연승을 달리고 있는 주원규는 더 이상 접근을 허락하지 않고 그대로 골라인을 통과 3연승을 폴투윈으로 장식했다. 구완회, 권오수(개인)가 뒤를 이었다. 투어링카A 장순호 행운의 역전승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개장(95년부터 공식 경기) 이래 가장 화끈하고 스릴 넘치는 레이스였다. 전날 예선 결과 제1열은 김한봉과 김의수(이상 인디고)가 점령해 올 시즌 첫 원투피니시의 의욕을 불태웠다. 장순호(오일뱅크), 이명목(제임스딘), 정경용(영오토)이 3~5그리드를 채웠다. 핸디캡 웨이트를 적용받는 드라이버는 장순호(40kg), 이명목(30kg), 김의수(20kg)였다. 결선은 3그리드에서 출발한 장순호가 과감하게 인코너를 공략하며 불을 당겼다. 하지만 장순호는 공략에 실패해 5위로 주저앉으며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명목, 이준호(오일뱅크), 정경용이 선두대열로 뛰어들었다. 3랩부터는 선두그룹의 피 말리는 격전장으로 변했다. 이명목이 김의수를 끌어내고 2위로 올라섰고, 4랩에서는 3, 4위 김의수와 이준호가 추돌해 순위가 뒤로 밀렸다. 김의수는 추돌의 책임을 물어 페널티를 받고 피트인해 우승권과 거리가 멀어졌다. 11랩 6위권을 유지하던 김정수(이글)가 정경용을 밀어내고 3위, 시즌 첫 시상대를 향해 거침없는 질주를 벌였다. 김한봉과 이명목의 선두다툼은 불을 뿜었고, 표창대의 한 자리를 놓고 4명의 드라이버가 엉켜 싸우는 형국으로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레이스는 23랩을 넘기며 선두와 중간그룹의 거리가 줄면서 다시 한번 파란을 예고했다. 26랩에서 김정수와 장순호는 오메가 코스에서 이명목을 제치고 28랩 김한봉마저 따돌려 올 시즌 첫승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운명의 29랩 2번 코너. 선두 김정수와 다시 2위로 뛰어오른 이명목이 힘 겨루기에 들어 갔고, 둘 사이의 틈을 비집고 나온 장순호가 선두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그대로 첫 체커기. 한때 5위로 밀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선전한 장순호의 꿀맛 우승이었다. 김정수, 이명목이 차례로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한편 올 시즌 첫 폴투윈을 노렸던 김한봉은 2랩을 지키지 못해 8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포뮬러 조경업 2연승으로 선두 신일성 추격 조경업과 신일성. 올 시즌 포뮬러 레이스를 움직이는 운명의 라이벌이다. 지난 시즌 1, 2위 이명목과 윤세진은 부진의 늪에서 허덕이고, 그밖에는 눈에 띄는 드라이버가 없어 두 레이서는 개막전과 제2전 우승컵을 나눠 가지며 시리즈 챔피언을 향한 불을 당겼다. PP는 조경업. 2연승의 파란불을 예고했다. 신일성, 이지리 가오르, 사가구치 료헤이(이상 이글)가 뒤를 이었다. 첫랩부터 파이널랩까지 조경업과 신일성의 경쟁이 볼 만했다. 둘은 묘기에 가까운 초접근전을 펼쳐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조경업이 25랩을 지켜 2연승을 거두었고, 신일성, 사가구치 료헤이가 표창대를 메꿨다. 제4전 숏 코스(1.8km) 6월 20일(일) 결선을 치른 제4전은 올 시즌 가장 많은 4천여 명의 관중이 관중석을 빼곡히 채웠다. 숏 코스에서 치러진 이날 레이스는 핸디캡 웨이트가 서서히 드라이버들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가벼운(?) 드라이버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투어링카A는 올해 데뷔 3년째인 이준호(오일뱅크)가 깜짝 우승을 일궈냈고, 현대전 오일기는 주원규의 3연승에 제동을 걸었다. 대우전은 곽창순이 4연승을 거둬 시즌 챔피언을 점찍었고, 기아전 이용기, 신인전 한상규가 올 시즌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포뮬러는 신일성(오일뱅크)이 개막전에 이어 2승을 챙겨 조경업과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신인전 한상규 올 시즌 첫승 감격 강준서(MM레이싱)가 현대전으로 옮기고, 김윤기(마루아치)가 불참한 신인전에서는 한상규(마루아치)가 올 시즌 첫 우승컵을 안았다. 한상규는 이은혁, 안정철, 김연수(이상 MM레이싱)에 이어 예선을 4위로 통과했지만 침착한 경기 운영과 안정적인 달리기로 앞선 드라이버들을 제압해 첫승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에 비해 PP의 이점을 살지지 못한 이은혁, 5위에서 떠난 강경필이 표창대를 메꿨다. 원메이크 통합전 오일기, 주원규 4연승 제동 32대가 결선에서 맞붙은 현대+대우+기아 통합전은 1~8그리드를 현대차가 채우는 초강세 속에서 치러졌다. 곽창순(라노스로 출전), 조재희(아벨라로 출전)가 9, 13 그리드에 자리를 잡았다. 32대의 경주차가 뿜어내는 배기음이 서키트를 감아돌며 굽이치는 장관이었다. 레이스는 첫코너를 움켜쥔 오일기가 휘어잡았다. 3연승을 달리던 주원규는 첫코너 사고로 5위로 밀렸고, 레이스는 오일기, 권오수(개인), 구완회(이글)의 3파전으로 굳어졌다. 오일기는 한때 권오수, 구완회의 거센 도전을 받기도 했지만 여유있게 뿌리치고 올 시즌 첫승을 거뒀다. 오일기는 6월 13일(일) 춘천 모터 파크에서 열린 한국 오프로드 챔피언십 시리즈 제3전에서도 우승컵을 안아 대성할 재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구완회, 주원규가 차례로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시상을 따로 한 대우전은 곽창순이 4연승을 질주했고, 기아전은 이용기(모노)가 조재희를 밀어내고 올 시즌 첫승을 챙겼다. 투어링카A 이준호 스타 탄생 예고한 한판 이변일까 아니면 스타 탄생의 신호일까. 전날 예선 결과 PP는 정경용(영 오토).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개장 이후 첫 PP의 감격이었다. 거기다 정경용은 스폰서도 없는 개인. 쟁쟁한 프로팀 드라이버를 제치고 PP를 따냈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던진 충격파는 컸다. 과연 폴투윈으로 이어질까. 이준호(오일뱅크), 김한봉, 김의수(이상 인디고)가 차례로 둥지를 틀었다. 결선은 신예 이준호가 정경용의 바람을 가볍게 재웠다. 성공적인 스타트로 첫코너를 선점한 이준호는 30랩을 단독 질주해 올 시즌 첫승을 챙겼다. 이준호는 97년 투어링카B에 데뷔한 신출내기. 지난해 오일뱅크로 스카웃되었고, 올 시즌 투어링카A 클래스에 진출했다. 한순간에 폴투윈을 날려버린 정경용은 김한봉의 매서운 추격을 뿌리치고 올 시즌 첫 등단에 성공했다. 김한봉, 김정수가 뒤를 이었다. 한편 밸러스트를 짊어진 김의수, 장순호, 이명목은 각각 5, 6, 8위에 머물러 핸디캡 웨이트의 위력을 실감케 한 한판이었다. 포뮬러 원투 피니시한 신일성 득점 선두 조경업과 신일성의 독주에 제동을 걸 드라이버는 과연 없는 것일까. 제4전도 이들의 독무대로 두 드라이버의 경쟁이 서키트를 뜨겁게 달구었을 뿐 이렇다할 경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카트로 레이스를 익힌 신일성의 약점(신일성은 제2전에서 플라잉 스타트를 해 10초 페널티를 받고 우승권에서 멀어졌다)은 바로 스탠딩 스타트. 하지만 이날 신일성은 쾌조의 스타트를 끊어 일찌감치 조경업을 떼놓는 데 성공했다. 조경업의 추격은 매서웠고 10랩을 넘기면서 피 말리는 접전을 벌여 17랩에서는 한 차례 선두를 주고받았다.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18랩부터 신일성은 절묘한 블로킹과 테크닉으로 조경업을 적절히 견제해 시즌 두 번째 폴투 피니시. 이로써 신일성은 52점을 얻어 45점에 머문 조경업을 따돌리고 시리즈 챔피언을 향한 유리한 고지에 섰다. 3위 김시균(인디고)은 시즌 첫 표창대의 감격을 맛보았다. 한편 제2전과 3전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던 윤세진(오일뱅크)은 팔꿈치에 금이 가고 신경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 그동안 스위스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00월 귀국해 그간의 잡다했던 소문들을 말끔히 잠재웠다. 윤세진은 제5전(7월 18일)에 출전할 예정이다.
베네톤팀 인수한 르노 F1에 컴백한다 F1 GP 이.. 2000-04-27
새 천년 F1 GP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포드가 재규어를 등에 업고 올 시즌 데뷔했고, 윌리엄즈도 BMW와 손을 잡았다. 벤츠는 맥라렌 주식 40%를 획득해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이밖에 혼다자동차가 뛰어들었고, 도요다는 다음 시즌에 출전한다. 말 그대로 F1은 대 메이커의 격전장으로 바뀐 것이다. 2002년부터 르노 이름으로 F1에 진출 83년 데뷔한 베네톤은 통산 27승 거둬 여기에다 프랑스 르노자동차(삼성자동차를 인수하려는 회사다)가 뛰어들어 다시 한 번 불을 질렀다. 르노는 지난달 15일 90년 중반 F1 무대를 휘어잡았던 베네톤팀을 1억2천만 달러(1천440억 원 정도)에 사들였다. 이에 따라 엔진은 프랑스의 수퍼텍에서 개발하고, 섀시는 이전처럼 영국에서 만들며 드라이버는 그대로 잔류한다. 팀 매니저는 전 베네톤, 현 수퍼텍 대표인 H. 브리아토레가 맡는다. 르노의 한 관계자는 `2년 뒤 데뷔전까지는 경주차 개발에 열을 올려 참전하는 2002년부터는 톱팀과 어깨를 나란히 해 챔피언 타이틀을 다툴 것이다. 애로우즈. 프로스트, 조던 등이 매수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의 성적과 실적 그리고 스탭 사이에 쌓여진 신뢰관계 등을 종합해 베네톤을 인수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브리아토레는 `자연스런 합의로 인수가 결정되었기에 큰 부담은 없을 것이다. 두 차례나 월드 챔피언을 한 경험이 있어 최정상은 시간문제다`며 자신감을 보였고, 2002년의 팀 이름 변경에 대해서는 `위원회에서 80% 이상의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레이싱팀은 새 주인을 만나면서 티렐은 BAR로, 스튜어트는 재규어로 이름이 바뀌었다. 레이싱팀을 넘긴 베네톤 그룹의 루치아노 베네통 회장은 `베네톤은 예산의 덪에 걸려 있었고 기술개발에 드는 많은 돈 때문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르노자동차는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그동안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제팬 타바코 그룹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83년 데뷔한 베네톤은 르노 엔진으로 명성을 얻었다. 94년과 95년 연속 드라이버즈 챔피언십(M. 슈마허)을 따냈고, 27회의 우승컵을 안았다. 하지만 르노가 97년 F1에서 철수하자 베네톤은 엔진을 사는 데 많은 돈이 들면서 개발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중하위권에 머물러야 했다.
A. 프로스트 128회로 최다 입상기록 보유 입상 .. 2000-02-24
세계 모터 스포츠의 최고봉 F1 그랑프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50년 동안 단 한 포인트도 얻지 못하고 사라지는 비운을 겪은 드라이버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입상(표창대 기준이 아니라 포인트를 따낸 6위까지. 포인트는 1~6위가 10~1점이다) 드라이버들은 역사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레이스는 경주차 트러블이나 작전 미스 그리고 각종 사고에 휘말릴 위험이 많아 완주하는 것조차 어렵다. F1 그랑프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시즌 윌리엄즈팀에서 활동했던 A. 자나르디의 경우를 보자. 자나르디는 F1에서 활약할 당시 단 한 차례의 6위가 최고기록이었에 97~98년 연속 미국의 챔피언십 오토 레이싱팀즈(CART)를 휘어잡고 F1에 금의환향했을 때 그에게 거는 기대는 사뭇 컸다. 하지만 지난 시즌 자나르디는 1포인트도 건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완주조차 힘겨워하며 그를 아끼는 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F1에서 입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체 출전자 중 31.7%만 입상하고 M. 슈마허 올 시즌 2위 진입할 듯 성적으로 평가할 때 자나르디는 팀에 대한 공헌도가 낮고 몸값을 못한 것이 분명해 올 시즌 윌리엄즈와의 계약이 불투명한 상태다. 지난 10일 새 경주차 발표회에서 동료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퇴출설(?)이 퍼지고 있고, 지난 시즌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그랑프리에서 2위를 한 J. 버튼이 대타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드라이버는 성적으로 평가된다. 성적이 좋으면 더 나은 대우(연봉+지원 등)를 받고 계속 활동할 수 있으며 팀 또한 스폰서로부터 자금을 끌어내기가 쉽다. 하지만 성적이 나쁘면 드라이버는 팀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팀도 재정난을 이기지 못해 해체되는 아픔을 겪는다. F1의 명문팀으로 활동했던 브라밤이나 티렐이 자취를 감춘 것도, 수없이 많은 드라이버들이 사라져간 것도 성적부진이 원인이다. 하지만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고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는 드라이버도 많다. 지난 시즌까지 F1을 거쳐간 드라이버는 756명에 이르는데 이중 입상 드라이버는 31.7%인 240명으로 3명 중 1명이 입상했다. 최다 입상 기록을 갖고 있는 드라이버는 `서키트의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던 A. 프로스트(현재 F1 레이싱 프로스트팀의 오너다)다. 프로스트는 통산 51승을 거두며 2~6위는 각각 35, 20, 10, 5, 7차례를 해 통산 128차례나 득점을 올렸다. 이 기록을 분석하면 득점권에 들었을 때 우승확률은 39.8%로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표창대(3위까지)에 오른 것은 82.8%인 106회나 되는 대기록을 세웠다.브라질 출신의 N. 피케가 100회 입상해 프로스트의 뒤를 잇고 있지만 우승횟수는 프로스트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3승에 머물고 있다. 피케는 78년 F1 무대에 첫발을 디딘 후 79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4위로 입상하기 시작해 81년과 83년 두 차례 월드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2~6위 20, 17, 18, 15, 7회를 기록하고 있다. 피케가 득점권에 들었을 때 표창대에는 60%를 섰다. 프로스트의 영원한 숙적 `서키트의 황제` A. 세나가 간발의 차인 98회로 3위를 지키고 있다. 3번의 월드 챔피언에 빛나는 세나는 통산 41승을 챙겨 51승을 거둔 프로스트에 이어 다승 부문은 2위다. 세나도 프로스트와 마찬가지로 입상했을 때의 우승 확률이 매우 높다. 즉 입상 98회 중 우승은 41.8%로 프로스트를 2% 앞서고 있다. 세나의 입상 분포는 2~6위가 각각 23, 16, 7, 6, 3이다. 표창대에 오른 회수로 보면 81.6%나 된다. 만일 세나가 사고로 유명을 달리 하지 않았다면 프로스트의 기록을 넘어섰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바탕이 이런 기록이다. J. 알레지 1차례 우승 66회 입상 1차례 이상 우승 드라이버 24.1% 현역 레이서 중에는 M. 슈마허(페라리)가 독보적이다. 슈마허는 세나의 뒤를 이어 86차례나 입상에 성공했고, 통산 35승을 거둬 세나의 41승을 눈앞에 둔 데 이어 입상 횟수에서도 세나와의 차이가 10회 이내다. 올 시즌 결과에 따라 두 부문 모두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 예상되고 있다. 입상 기록은 2~6위가 22, 14, 6, 5, 4으로 표창대에 선 기록이 80.2%나 된다. 득점을 올렸을 때의 우승확률은 40.6%로 세나에 이어 2위다. 통산 31승을 거두고 92년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N. 만셀도 상위권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입상은 2~6위 17, 11, 8, 6, 9회 등을 더해 모두 82회다. 이밖에 N. 라우다(73회), J. 스튜어트(57회) 등 전설적인 F1 스타들이 앞줄에 포진해 있다. 단 한 차례의 우승에 그쳤지만 꾸준히 입상해 66회나 이름을 올린 드라이버도 있다. 주인공은 바로 올 시즌 프로스트 시트를 배정받은 J. 알레지로 2위 16회, 3위 15회 등을 하며 66회나 포인트를 획득했다. 1차례 우승한 드라이버는 알레지 말고도 28명이나 된다. 2회 이상 20회 미만 현역 드라이버는 98, 99년 연속 월드 챔피언인 M. 하키넨을 비롯해 20명이다. 20회 이상은 10명으로 A. 프로스트, A. 세나, J. 스튜어트 등. 대부분 한두 번 이상 월드 챔피언에 오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이버들이다. 단 한 차례도 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입상권에는 들었던 드라이버는 182명으로 전체 입상자 중 71.9%나 된다. 이들의 분포는 2위 42명, 3위 47명, 4위 38명, 5위 19명, 6위 36명 등이다. 종합해 보면 전체 드라이버 중 29.9%만 포인트를 올렸고, 이들 중 한 차례 이상 우승한 드라이버는 58명으로 24.1%밖에 안 된다.
포드, 엔진 부문 10회 챔피언 영광 50년 동안 .. 2000-01-30
F1 그랑프리가 지난 시즌을 끝으로 반세기를 마감하고 새 밀레니엄으로 접어들었다. 50년 동안 가장 뛰어난 발자국을 남긴 드라이버는 누굴까. 이에 대한 해답은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성적만으로 살펴보면 월드 챔피언 횟수와 깊은 관계가 있다. 컨스트럭터즈와 엔진 부문도 타이틀 획득에 따라 우열이 가려진다. F1에서 활동한 드라이버들은 750여 명이 넘는다. 이들 중 단 한 포인트(6위를 해야만 1점을 건진다)도 못 건지고 퇴출당한 드라이버가 있는 반면 수 차례나 월드 챔피언에 올라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광을 맛본 이도 있다. 50년 동안 27명만 이름 올리고 J.M. 판지오 5번으로 최다 챔피언 한 차례 이상 월드 챔피언의 영광을 거머쥔 행운의 드라이버는 몇 명이나 될까. 한 해 1명씩이면 50명이 되어야지만 많게는 5차례 이상 월드 챔피언에 오른 이가 있어 1회 이상 이름을 남긴 드라이버는 절반 정도인 27명밖에 되지 않는다. 월드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다는 얘기다. 월드 챔피언 중 단연 선두는 J.M. 판지오다. 판지오는 F1 그랑프리가 문을 연 50년부터 참전하기 시작해 57년까지 통산 22승을 거뒀고 5회나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판지오의 뒤를 잇는 드라이버로는 현재 F1 프로스트팀의 오너인 A. 프로스트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A. 세나와 함께 F1을 이끈 쌍두마차인 A. 프로스트는 1980년 아르헨티나 그랑프리에서 데뷔한 후 81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첫승을 거둔 이래 65승을 거둬 최다승을 기록하고 있다. 프로스트는 4번이나 월드 챔피언에 오르는 영광을 맛보며 `서키트의 교수`라는 별명도 함께 얻었다. 3번 월드 챔피언의 왕좌에 올랐던 드라이버는 고인이 된 A. 세나를 비롯해 J.브라밤, J. 스튜어트, N. 피케, N. 라우다 등 5명이나 된다. 재미있는 것은 3번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드라이버 중 A. 세나, N. 피케, N. 라우다가 브라질 출신이라는 점이다. 현재 F1 그랑프리에서도 R. 바리첼로 등 3명의 브라질 드라이버가 활동하고 있지만 선배들의 명성에는 비할 수가 없고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2회에 걸쳐 월드 챔피언을 따낸 드라이버는 얼마 전 F1에서 은퇴한 D. 힐의 아버지 그레이엄 힐을 비롯해 6명이나 된다. 94, 95년 챔피언인 M. 슈마허와 98, 99년 챔피언인 M. 하키넨도 같은 반열에 올라 있다. 1회 월드 챔피언에 오른 이는 J. 빌르너브와 N. 만셀을 비롯해 14명이다. 50년 동안 27명의 월드 챔피언을 배출한 F1 그랑프리. 새 천년 월드 챔피언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마키넨과 슈마허가 통산 3회 월드 챔피언에 오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을 만큼 2000년도는 맥라렌과 페라리의 무대가 될 전망이다.드라이버만큼 팀도 명멸을 거듭해 17팀만이 이름을 남겼다. 팀은 섀시와 엔진을 더한 것이어서 컨스트럭처는 같지만 다른 엔진을 쓸 경우 다른 팀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르노, 혼다, 포드 등 사용하는 엔진에 따라 윌리엄즈 르노, 윌리엄즈 포드팀으로 불리는 것이다. 페라리는 엔진과 섀시를 같이 만들어 `페라리`팀으로 불린다. 페라리가 팀 챔피언 부문 선두 엔진 부문은 58년부터 표창해 팀 챔피언은 페라리가 8번이나 차지해 가장 많은 승수를 쌓고 있다. 윌리엄즈 르노, 맥라렌 포드와 로터스 포드가 각각 5승을 챙겼다. 윌리엄즈 르노는 1989년 제6전 캐나다 그랑프리에서 첫승을 거뒀고, 1991년 첫 타이틀을 딴 후 97년까지 5차례나 챔피언 왕좌에 올랐다. 또한 윌리엄즈는 혼다와 포드 엔진을 얹어 각각 두 차례씩 왕좌에 올라 컨스트럭터즈 타이틀 부문에서는 페라리를 제치고 선두에 올라 있다. 포드 엔진을 얹어 5회, 메르체데스 엔진으로 2회, 그리고 자신이 엔진을 만들어 2회 등 9승을 건진 맥라렌은 윌리엄즈와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다. 로터스는 포드(5회), 클라이맥스(2회) 등 7회나 타이틀을 잡았다. 이밖에 쿠퍼와 브라밤이 두 차례, 베네톤과 `98 시즌을 끝으로 F1 무대를 등진 티렐 등 5팀이 한 차례씩 타이틀을 따냈다. 엔진 부문을 별도로 시상하기 시작한 것은 드라이버즈 타이틀보다 8년이나 늦은 58년부터다. 첫해 반월이 우승컵을 안았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포드가 10번이나 챔피언에 올라 페라리(8번)를 가볍게 제쳤다. 눈여겨 볼 것은 현재 BAR에 엔진을 공급하고 있는 혼다다. 혼다는 86년부터 91년까지 6연속 타이틀을 석권하며 최강 엔진의 신화를 쌓았다. A. 세나를 비롯해 A. 프로스트 등이 혼다와 영광을 함께 했다. 2002년 복귀가 유력한 르노도 혼다와 같은 6번이나 챔피언십을 거머쥐었다. 르노는 혼다가 F1에서 철수한 92년부터 97년까지 역시 6연승의 신화를 쌓고 F1을 등졌다. 이밖에 클라이맥스는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강세를 떨치며 정상에 4회나 섰다. 포르쉐, 랩코, 메르체데스(이상 2회), 반월(1회), BRM(1회)이 뒤를 잇고 있다.
F1 그랑프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다 많은 팀들이.. 2000-05-29
1972년 F1 그랑프리 시즌에는 12년만에 아르헨티나 그랑프리가 부활했다. 이 경기의 연습에서 농부의 아들인 카를로스 알베르토 로이테만이 브라밤-포드 BT34를 몰고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하자 모두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예선 결과 그는 결승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했고, 국유기업 YPF 정유회사가 그의 스폰서가 되었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티렐-포드 003을 몬 재키 스튜어트가 첫 번째 랩에서 선두를 차지, 마지막 랩까지 맥라렌 M19A을 탄 데니스 헐름과 페라리 312B2의 재키 익스를 앞서 우승을 차지했다. 로이테만은 스타트는 좋았으나 피트에서 타이어를 바꿀 때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해 우승권에서 멀어졌고, 에머슨 피티팔디는 서스펜션 트러블로 리타이어했다. 브라밤, BRM 등 새 경주차 선보이고 피티팔디,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우승 이어 열린 남아프리카 그랑프리에서 스튜어트는 45랩까지 선두를 유지하다 트랜스미션 고장으로 경기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 대신 맥라렌-포드 M19A를 탄 헐름이 선두로 나섰고, 로터스 72의 피티팔디와 팀 동료 피터 레브슨, 페라리의 마리오 안드레티 등을 누르고 1위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브라질인 카를로스 파세는 이 경기에서 마치 721을 몰고 F1 그랑프리에 데뷔했다. 72년 유럽에서 열린 첫 번째 그랑프리는 자라마의 스페인 그랑프리였다. 여러 대의 새로운 경주차가 이 경기에서 처음 선보였다. 그레이엄 힐은 BT34의 개량형인 브라밤 BT37을 몰았는데, 이 차는 이전 모델의 집게발 모양 프론트 노즈가 아닌 평범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로이테만은 스페인 그랑프리가 열리기 몇 주 전에 상파울로의 인테라고스 서키트에서 열린 비공식 F1 경기에서 BT34를 몰고 우승했다. 그러나 시즌 초 무한한 장래성을 보여줬던 로이테만은 영국 F2 경기의 연습에서 바퀴가 빠지는 사고로 발뼈가 부러져 스페인과 모나코 그랑프리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스페인 그랑프리에 등장한 또 다른 새로운 경주차는 BRM의 P180으로 피터 게딘이 운전했다. 이 경주차를 디자인한 토니 사우스게이트는 구동바퀴 쪽으로 무게배분을 옮기는데 가장 많은 중점을 두었다. 또한 뒷바퀴 위에 있는 공기흡입구 안에 라디에이터와 오일쿨러를 놓는 새로운 방법도 시도했다. 프론트 노즈의 모습은 로터스 72와는 전혀 다른 쐐기 모양이었지만, 아쉽게도 성능은 기대 이하였다. 두 대의 새로운 마치-포드 모델도 등장했는데, 워크스 드라이버인 페터슨와 라우다가 721X, 마이크 베틀러(Mike Beuttler)가 721G를 운전했다. 로빈 허드는 로터스와 BRM이 뒷바퀴쪽에 무게중심을 맞추는데 중점을 둔 것과 달리 경주차의 중심 부분에 무게를 집중시키는 방법으로 721X를 디자인했다. 알파로메오의 스포츠카에 쓰는 타입 33/T3 트랜스미션을 리어 액슬 바로 앞에 놓고, 안전성이 높아진 새장 구조의 콕피트을 최대한 앞쪽으로 놓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BRM P180처럼 721X도 성공적인 디자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프랑스 그랑프리 이후 이전 방식 무게배분과 모노코크 보디 옆에 라디에이터를 단 721G로 모두 바뀌었다.에머슨 피티팔디의 우승 행보는 1972년 스페인 그랑프리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이 경기에서 5위로 출발했지만 후반에 선두로 나섰다. 재키 익스와 클레이 레가조니의 페라리 312B2s가 피티팔디의 뒤를 쫓았고, 서티스-포드 TS9을 탄 안드레아 드 아다미크와 맥라렌-포드 M19A의 피터 레브슨, 마치-포드 721의 카를로스 파세, 그리고 F1 그랑프리에 처녀 출전한 브라밤-포드 BT33의 윌슨 피티팔디 등 네 대의 경주차가 무리지어 그 뒤를 맹추격했지만 결국 우승은 피티팔디에게 돌아갔고, 재키 스튜어트는 스핀으로 리타이어했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엄청난 폭우 속에서 열렸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경주차들이 스핀을 일으켜 역사상 가장 많은 파란이 일어난 경기로 기록되었다. 폭이 가장 넓은 최신형 레이싱 타이어도 곳곳에 고여 있는 빗물 위에서는 빠른 속도를 낼 수 없어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레이서 잔 피에르 벨토이즈는 BRM P160을 몰고 그 엄청난 빗속을 뚫고 달렸다. 많은 선수들이 빗길에 미끄러져 충돌하거나 속도를 줄여 나쁜 성적을 냈지만, 그는 자신의 경주차와 노면상태 등을 완전히 파악해 스타트부터 피니시까지 최악의 조건을 이겨내며 실수 없이 달려 결국 우승을 차지했다. 그의 우승은 레이스 경력에서 유일하게 자기 힘으로 얻은 승리였다. 모나코에서 재키 스튜어트와 티렐-포드 콤비는 더 이상 최고가 아니었다. 경쟁자들의 머신 성능이 더욱 좋아졌고, 스튜어트가 쓰는 굳이어 타이어보다 파이어스톤이 훨씬 성능이 좋았기 때문이다. 많은 파란 일어난 모나코 그랑프리 티렐과 마트라의 새 경주차 등장해 벨기에 그랑프리는 스파 서키트가 아니라 브뤼셀 근처 니벨에 새로 만든 서키트에서 열렸다. 고속 코스인 스파 서키트가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트랙을 안전하게 만들어야 했지만 그러기엔 엄청난 자본이 필요해 결국 장소를 바꾼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이 모두에게 환영받지는 못했다. 니벨 서키트의 코스는 겨우 3.72km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키 스튜어트는 위궤양으로 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피티팔디는 연습에서 가장 빠른 랩타임을 기록했고, 레가조니가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결승에서는 로터스 72를 운전한 피티팔디가 티렐의 세베르, 맥라렌의 험름을 누르고 우승했다. 테크노의 새로운 경주차 테크노 PA123도 처음 선보였으나 레가조니와 충돌해 둘 다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벨기에 그랑프리가 끝나고 며칠 후 티렐은 프랑스의 르망에서 새로운 005 모델을 언론에 공개했다. 데렉 가드너는 이 머신을 넒은 박스 모양의 섀시 뒤쪽에 높은 공기흡입구를 달고 더욱 에어로다이나믹한 모습으로 디자인했다.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세베르가 이 새로운 경주차를 처음 탔다. 그러나 연습중 트랙을 벗어나 방호벽에 충돌, 영국 그랑프리에 다시 등장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독일 그랑프리는 잔트보르트 서키트가 안전시설을 보강하는 공사 중이어서 취소되었다.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조르쥬 마르텡과 로베르 모렝이 디자인한 타입 MS120D가 새로 등장했다. 이 머신은 69년에 등장한 MS80과 거의 흡사했고, 중심 부분이 공처럼 둥그런 모양이었다. 크리스 아몬은 이 머신을 타고 연습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냈다. 레가조니는 찰스부르크링의 1만km 스포츠카 경주에서 페라리팀 미케닉들과 축구시합을 하다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프랑스 그랑프리에 참가하지 못했다. 대신 페라리는 테크노팀의 드라이버 나니 갈리에게 312B2를 몰게 했고, 데렉 벨은 테크노를 운전했다. 이 경기에서 마트라팀의 크리스 아몬이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경기 후반까지 그 누구도 선두로 달리는 아몬의 파란색 경주차를 추월하지 못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타이어 펑크로 스튜어트와 피티팔디에 이어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F1 그랑프리 더욱 활성화되다 1972년(상)- 여.. 2000-04-27
에머슨 피티팔디는 1946년에 상파울로에서 라디오 리포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68년에 유럽으로 건너가 포뮬러 포드와 F3 경기에 참가했고, 70년 영국 브랜즈 해치에서 F1 레이스에 데뷔했다. 그로부터 2년 후 그는 25세의 나이로 최연소 월드 챔피언에 올랐다. 다른 어떤 드라이버도 이처럼 짧은 시간에 조용하고 빠른 드라이버가 된 적은 없었다. 총 12회가 열린 제23회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새롭게 태어난 로터스 72(정확히 말하면 로터스 72D)를 타로 다섯 경기의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은 피티팔디가 월드 챔피언을 차지했다. 재키 스튜어트는 티렐-포드로 4번의 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쳤고, BRM의 잔 피에르 벨토이즈와 페라리의 재키 익스, 맥라렌-포드의 데니스 헐름 등은 단지 한 번씩의 우승을 차지했다. 명문팀들 담배회사와 스폰서 계약 맺어 서티스, 경주차 개발 위해 레이서 은퇴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많은 F1팀들이 팀을 재정비했다. 피티팔디는 세컨드 드라이버인 데이브 워커와 함께 로터스팀에 톱드라이버로 계속 남았다. 콜린 채프먼이 라이네 비젤과 재계약 맺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워커가 세컨드 드라이버가 되었던 것이다. 그 해 존 플레이어 담배회사가 유명한 경주차 로터스 72s의 모델 독점권을 산 이후로 쐐기 모양에 라디에이터를 콕피트 옆에 단 이 레이싱카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존 플레이어 스페셜스`로 바뀌었다. 머신은 존 플레이어 스페셜 담배갑처럼 검정색 바탕에 금색 줄이 들어간 디자인이었다. 데렉 가드너가 디자인한 티렐의 머신은 비록 프랑스 F2 드라이버 파트릭 데파예가 시즌 중 두 경기를 몰았지만, 재키 스튜어트와 프랑수아 세베르가 다시 탔다. 니키 라우다는 로니 페터슨을 마치팀에 영입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대기업가의 아들인 라우다는 오스트리아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F1 레이스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페라리팀의 재키 익스와 클레이 레가조니, 마리오 안드레티 등은 계속해서 팀에 남았다. 그리고 아르투로 메르자리오와 나니 갈리가 시즌 중 각각 두 번과 한 번씩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필립 모리스 담배회사가 1년 동안 BRM 경주차를 말보로-BRM이라 부르기 위해 BRM팀에 2백만 프랑을 투자했을 때 팀 안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매 경기에 5대의 경주차가 참가하는 계획이 세워져 팀의 공식적인 세 명의 드라이버에 말보로 내셔널 팀의 두 명의 선수가 추가되었다. `A팀`드라이버는 잔 피에르 벨토이즈와 새로운 뉴질랜드 드라이버 하우든 갠디, 피터 게딘, 그리고 다른 차들은 오스트리아 드라이버 헬머트 마르코와 알렉스 솔러로이크가 맡았다. 라이네 비젤도 개인적인 이유로 BRM의 선수로 뛰게 되었다. 그 중 벨토이즈는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우승해 팀의 사기를 크게 높였으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BRM의 역사에서 마지막 우승으로 남았다. 마트라는 재정적인 이유로 72년 시즌에 크리스 아몬이 모는 단 한 대의 경주차만 그랑프리에 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반면 데니스 헐름은 맥라렌팀의 톱드라이버이자 아메리칸 피터 레브슨팀의 세컨드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그 해 맥라렌팀은 야들리 화장품과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영국인 드라이버 브라이언 레드만은 맥라렌의 세 번째 드라이버로 경기에 몇 번 참가했다. 유능하고 젊은 남아프리카 드라이버 조디 쉑터 또한 그 해 후반에 테스트를 받았다. 존 서티스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경주차 개발과 팀 경영에 투자하기 위해 현역 드라이버에서 은퇴했고, 그의 TS9s는 마이크 헤일우드와 팀 쉔켄, 안드레아 드 아다미크가 몰았다.윌리엄스팀는 프랑스인 앙리 페스카롤로와 1971년에 F2 레이스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던 젊은 브라질 인 카를로스 파세 등과 계약을 맺었다. 이태리 인형제조업체 폴리토이즈는 이 작은 팀의 스폰서가 되었고, 경주차는 폴리토이즈-포드라고 불렀다. 이 차는 포드 엔지니어 렌 베일리가 윌리암스팀을 위해 디자인했고, 72년 한 해 동안 매 경기에 등장했다. 윌리엄스팀은 시즌 중 마치-포드 경주차에 아주 크게 기대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F1 그랑프리에 새로 등장한 테크노 예선용 타이어 나오고, 브레이크 발전 브라밤팀의 새로운 경영자인 버니 엑클레스톤은 런던의 사업가로 이후 몇 년 동안에 F1에서 점차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된다. 엑클레스톤과 토라낙은 몇 년 후 회사에서 독립했는데, 성격차이란 말만 들렸을 뿐 따른 특별한 이유는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유명한 맥라렌 M19A를 만든 랄프 벨라미도 레이싱카 디자이너로 영입했다. 엑클레스톤의 드라이버들은 그래이엄 힐과 아르헨티나 드라이버 카를로스 로이테만, 그리고 브라질인 드라이버 에머슨 피티팔디의 형인 윌슨 피티팔디 등이었다. 1972년 F1 그랑프리에는 테크노란 메이커가 새로이 등장했다. 카트 레이싱부터 시작한 이 작은 볼로냐 회사는 66년에 처음으로 F3 머신을, 68년에는 F2 경주차를 만들었고, 둘 다 모두 성공적이었다. 테크노의 사장 루치아노 페데르자니는 취미로 레이싱카를 만들기 시작한 사업가였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F1 그랑프리 경주차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그 자신만의 섀시에 맞는 독자적인 엔진을 개발했다. 새로운 테크노 엔진은 페라리 이후로 12기통 2천996cc 엔진 모델이 되었고, 1만1천rpm에서 440마력의 힘을 냈다. 페데르자니는 F1에서 팀 스폰서로 주류제조회사인 마르티니&로시의 관심을 끌만큼 매우 운이 좋았고, 그들은 이미 장거리 레이스를 하는 포르쉐 스포츠카팀을 돕고 있었다. 1971년 말에 언론에 처음으로 소개된 테크노 PA123은 많이 쓰이지 않던 튜블러 스페이스 프레임을 썼다. 그러나 첫 테스트에서 좋은 성능을 내지 못해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시작했고, 다시 PA123이라는 똑같은 이름의 새로운 모노코크 보디를 만들었다. 테크노는 존 위어의 유명한 스포츠카 팀 출신의 데이비드 요크를 팀 매니저로 고용함과 동시에 나니 갈리와 데렉 벨을 드라이버로 영입했다. 새로운 경주차는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처음으로 월드챔피언십 경기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성능은 팀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72년 F1 그랑프리 경주차는 이전보다 리어 액슬 위로 더 큰 무게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BRM P180이 라디에이터를 좀 더 뒤쪽으로 놓은 것처럼 연료통이나 오일 쿨러 등의 다양한 구성요소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얻어진 결과였다. 윙은 리어 액슬 뒤로 더욱 뒤쪽에 달려 뒷바퀴에 더 큰 다운포스를 주었다. 그러나 경주차 앞쪽에 어떤 균형 잡힌 힘이 없으면 자동차는 코너에서 심한 언더스티어가 일어나 트랙 밖으로 곧장 벗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디자이너는 균형 잡기 위해 쐐기모양의 노즈나 각진 노즈핀 등의 에어로다이나믹 디자인을 이용해 앞쪽에 다운포스를 증가시켜 균형을 맞추었다. 타이어 전쟁 또한 더욱 치열했는데, 굿이어와 파이어스톤은 더 부드러운 컴파운드를 가진 `예선용 타이어`라는 특수 타이어를 내놓았다. 이 타이어는 겨우 3∼4랩이면 모두 닳아 없어지는 단점이 있었으나, 예선에서 짧은 시간에 최대의 접지력을 제공해주어 베스트랩을 내는데 효과적이었다. 브레이크 시스템도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71년 시즌에 티렐이 개발한 트윈 디스크의 옆면에 구멍을 뚫은 새로운 시스템은 마트라와 브라밤, 테크노 등이 썼다. 그때까지 각각의 브레이크 디스크에는 냉각용 방사형 홈이 있었는데, 이 새로운 기술은 좀더 효과적으로 열을 방출시켰고 젖은 조건에서 더욱 효과가 있었다. 또 다른 발전은 전체적으로 브레이크 패드의 크기를 크게 해준 4-피스톤 캘리퍼를 쓴 것이었다.
재키 스튜어트, 두 번째 월드 챔피언 되다 1971.. 2000-03-26
짤즈부르크에서 열린 오스트리아 그랑프리는 조셉 시퍼트의 날이었다. 모든 사람들은 BRM P160을 타고 연습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운 그가 이 경기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폴 포지션을 차지한 시퍼트는 경기 내내 선두를 유지하며 폴 투 피니시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티렐-포드를 탄 재키 스튜어트가 그를 바짝 쫓으며 추월하려고 했으나 34랩에서 스핀해 트랙 밖으로 벗어나고 말았다. 선두로 달리던 시퍼트의 경주차 왼쪽 뒤 타이어는 마지막 랩에서 바람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차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점점 뒤로 처지자 로터스 72를 몬 에머슨 피티팔디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세 그를 따라 붙었다. 시퍼트는 피티팔디보다 겨우 5.1초 먼저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 아슬아슬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그랑프리의 승리는 시퍼트의 마지막 승리가 되었다. F2 드라이버 출신인 마치의 니키 라우다는 이 경기가 그가 참가한 첫 번째 월드 챔피언십 F1 그랑프리였다. 슬립스트림 경주 벌어진 이태리 그랑프리 프랑스인 세베르 미국 그랑프리에서 우승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출전을 포기했던 마트라는 이태리 그랑프리에 다시 출전했다. 몬자 서키트에서 열린 이 경기의 연습에서 크리스 아몬은 베스트 랩을 기록했다. 레이스는 스타트 신호와 함께 고속의 슬립스트림 경주로 시작되었다. 레가조니와 아몬, 시퍼트, 피터슨, 스튜어트 등이 모두 한두 번씩 선두로 나섰고, 신인 드라이버 마이크 헤일우드와 피터 게딘이 선두에 나서기도 했다. 월드 모터사이클 챔피언이었던 헤일우드는 서티스의 TS9를 몰고 이 그랑프리에 참가했다. 그는 몇 해전부터 특별한 소속팀 없이 개인 자격으로 F1 경기에 출전하고 있었다. 반면 게딘은 유명한 영국 레이서의 아들로 BRM의 P160을 탔다. 아몬은 연료공급장치에 문제가 생겨 선두그룹에서 뒤로 쳐졌고, 시퍼트는 트랜스미션의 결함으로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사진판정으로 아슬아슬하게 게딘이 마치 711을 몬 로니 페터슨과 1m 간격으로 예기치 않은 우승자가 되었고, 간발의 차이로 티렐의 세컨드 드라이버 프랑수아 세베르가 3위를 차지했다. 슬립스트림 경주는 복권 당첨과 같이 운이 따라야 하는데 게딘의 우승은 그 행운과 훌륭한 감독의 도움으로 우승컵을 안을 수 있었다. 그는 마지막 랩의 파라볼리카 코너에서 늦게 브레이크를 밟는 위험한 브레이킹 트릭으로 그의 라이벌들을 누를 수 있었다. 다음에 열린 캐나다 그랑프리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펼쳐졌다. 굿이어 레인타이어는 모든 면에서 파이어스톤보다 뒤떨어졌다. 이 경기에서 파이어스톤을 낀 재키 스튜어트는 로니 페터슨을 이기고 또다시 우승을 차지했다. 처음 F1 그랑프리에 참가한 미국인 레이서 마크 도너휴는 로저 펜스키팀 소속으로 맥라렌-포드 M19A를 몰고 3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성적을 보였다. 1971년 월드챔피언십 시리즈는 확장수리를 해 더욱 안전해진 와킨스 글렌 서키트에서 열린 미국 그랑프리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경기 초반에 선두로 나섰던 스튜어트가 엔진 트러블로 뒤로 처지자 그의 팀 동료 세베르가 앞으로 나섰다. 이 경기에서 세베르는 시퍼트와 페터슨을 누르고 처음으로 F1 그랑프리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이것은 1958년 모나코에서 모리스 트랭티냥 이후로 그랑프리에서 프랑스인이 거둔 첫 번째 우승이었다.국제스포츠위원회는 71년 F1 그랑프리 월드챔피언십 시리즈 중 마지막 경기인 멕시코 그랑프리를 취소했다. 70년 멕시코 경기처럼 질서를 잃은 군중들이 트랙 가장자리까지 떼지어 몰려들 경우 또다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사유였다. 또한 멕시코의 우상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죽음 이후로 F1 그랑프리는 멕시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큰 관심거리가 아니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스튜어트, 두 번째 월드 챔피언 영광 안고 비공식 F1 경기에서 조셉 시퍼트 목숨 잃어 1971년 11회 열린 월드챔피언십 시리즈에서 9회나 완주하고 여섯 번의 우승을 차지한 재키 스튜어트는 62포인트를 얻어 생애 두 번째 월드 챔피언의 영광과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라는 명예를 안았다. 시즌 후반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 마치의 로니 페터슨은 33포인트를 얻어 2위, 그 뒤를 스튜어트의 팀 동료 프랑수아 세베르가 26포인트로 3위를 차지했다. 재키 익스와 조셉 시퍼트는 각각 19포인트를 얻는데 그쳤고, 처음으로 모든 F1 그랑프리 경기에 참가한 에머슨 피티팔디는 6위를 했다. 티렐팀의 스튜어트와 세베르는 총 11회의 경기 중 7회를 우승해 팀에게 컨스트럭터즈 부문의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티렐팀의 승리는 그 해가 그들의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놀라운 업적이었다. 페라리의 우승과 함께 시작되었던 71년 F1 그랑프리 시즌은 후반 이후 페라리의 성적이 점점 떨어지자 스튜어트와 티렐 콤비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BRM은 그들의 본 기지에서 많은 발전을 보여 시즌 마지막 몇몇 경기에서 뛰어난 성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마트라, 맥라렌, 브라밤 등은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의 매우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맥라렌 M19A와 페라리 312B2의 새로운 실험적인 서스펜션 시스템은 시즌 경기를 통해 결국 실패로 밝혀져 다시 이전의 것으로 바뀌었다. 정교하면서도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되어있는 포드-코스워스 DFV 엔진은 많은 사람들의 성적이 나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뛰어난 성능을 보이며 71년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4위를 차지했다. 1971년 레이스 시즌 후반에는 또 다른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났다. 취소된 멕시코 그랑프리 대신 10월 24일 영국 브랜즈 해치에서 비공식 F1 경기인 로스만스 월드 챔피언십 빅토리 레이스가 열렸다. 이 경기에서 BRM P160을 탄 조셉 시퍼트가 14랩에서 죽는 사고가 일어나 경기가 중단되었다. 당시 정확한 사고원인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기술적 결함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불길에 휩싸인 BRM은 곧 폭발했고, 콕피트에 있던 시퍼트는 연기에 질식해 숨지고 말았다. 소방관과 비상 구조대가 도착했으나 너무 늦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스페인, 모나코, 프랑스, 영국, 독일 그랑프리에서 우.. 2000-02-24
1971년 F1 그랑프리 월드챔피언십 시리즈는 남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다. 데니스 헐름은 새로운 맥라렌 M19A로 선두로 달리고 있었으나 서스펜션 문제로 뒤로 쳐졌고, 곧 페라리 312B1을 몰고 출전한 마리오 안드레티가 1위로 나서 F1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 경기에서 마트라는 처음으로 엔진 위에 높은 공기 흡입구를 달고 나왔는데, 이것은 엔진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압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차를 본 많은 F1 경주차 디자이너들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실험을 통해 다양한 공기 흡입구의 모양을 개발해 그들의 차에 적용시켰다. 티렐, 새로운 프런트 브레이크 선보여 빗속 경기 타이어 선택이 우승 결정해 1월말 마트라의 크리스 아몬은 아르헨티나 F1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비공식 경기였던 이 경기에는 페라리, 티렐, BRM 등의 많은 정상팀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이 경기에서 마트라의 우승은 마트라 V12 엔진의 첫 번째 F1 그랑프리에서의 우승이었다. F2 드라이버였던 카를로스 알베르토 로이테만은 조킴 보니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맥라렌-포드 M7A을 몰고 이 경기에서 처음으로 F1에 데뷔해 3위를 차지했다. 71년 시즌 종반에 그는 브라밤의 워크스 드라이버로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십 경기에 참가하게 된다. 클레이 레가조니는 3월에 영국 브랜즈 해치에서 열린 일반 레이스에서 마우로 포르기에리가 디자인한 페라리 312B2로 우승을 차지했다. 몇 주 후 페라리의 안드레티는 구형 312B1로 캘리포니아 온태리오 서키트에서 열린 비공식 경기인 퀘스터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열린 챔피언십에서의 우승은 스페인과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던 티렐-포드의 재키 스튜어트에게 돌아갔다. 바로셀로나에서 페라리 312B1을 몬 재키 익스는 스튜어트를 그림자처럼 뒤쫓았으나, 모나코 경기에서는 스튜어트와 티렐의 팀웍에 그 누구도 경쟁할 자가 없었다. 모나코 그랑프리의 연습에서 티렐은 새로운 걸링 프론트 브레이크를 선보였다. 이전까지 디스크는 휠 림 밖에 있어 공기에 직접 닿아 냉각되었으나, 새로이 림 안으로 옮겨진 디스크는 쉽게 과열되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티렐은 듀얼 디스크를 썼다. 네덜란드 그랑프리에서는 타이어 선택이 가장 중요한 우승요인이었다. 스타트 때부터 내린 심한 비로 인해 트랙은 젖어 있었고, 이것은 곧 굿이어 타이어를 낀 선수들보다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쓴 경쟁자들이 더 우수한 성능을 내게 했다. 페라리 312B2를 탄 익스와 BRM P160을 몬 로드리게스는 곧 다른 선수들을 제치고 선두 그룹을 이뤄 치열한 경쟁을 벌렸다. 비오는 날에 더욱 뛰어난 운전 실력을 발휘하는 드라이버 재키 익스가 무서운 경쟁자인 로드리게스를 따돌려버릴 때까지 그들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많은 드라이버들사이에서 재키 스튜어트는 상대방의 꼬리에 코를 대고 쫓았으나 결국 트랙을 벗어나고 말았다. 로터스 56을 몬 데이브 워커는 빗길에 미끄러져 레이스를 방호벽에서 끝마쳤다. 프래트 앤 휘트니 개스터빈 엔진을 얹은 로터스 56은 1970년 인디애나폴리스 로터스 경주차의 변형 모델이었다. 그러나 이 머신은 유럽의 코스에 적응하기 어려워 에머슨 피티팔디와 라이네 비젤은 스핀으로 트랙을 벗어나 방호벽에 충돌하고 말았다. 개스터빈 엔진은 코너 밖에서 부드러운 가속으로 최고 엔진 회전수에 다다를 때까지 엔진의 회전속도를 계속 올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 드라이버는 코너에 들어서기 전에 브레이킹과 동시에 최대로 가속하는 테크닉을 구사해야 했다.스튜어트 새로운 경주차로 또다시 우승 비운의 죽음 맞은 페드로 로드리게스 티렐의 재키 스튜어트는 마르세이유 근처 르 카스텔레에 있는 새로운 서키트에서 열린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또 다른 통쾌한 우승을 거머쥐었다. 티렐-포드를 몬 스튜어트는 경쟁자들의 모든 움직임을 한눈에 알아보고 미리 대치하는 등 그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티렐은 이 경기에서 넓게 벌어진 노즈가 똑바르게 바퀴까지 뻗은 새로운 머신 티렐-포드 001을 선보였다. 이 디자인은 경주차에 더 큰 다운포스를 주었고, 다른 디자이너들은 곧 이 디자인을 참고해 새로운 경주차를 개발했다. 프랑스 그랑프리에서는 티렐 엔진이 표준 연료를 쓰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연료 테스트 후 이상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곧 잠잠해졌다. 그러나 또다시 영국 그랑프리에서 티렐 경주차의 엔진 배기량이 틀리다는 풍문이 돌았고, 검차결과 규정에 맞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시즌 중반 BRM과 페라리 모두 경주차 섀시에서 진동이 발생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발견했다. BRM의 경주차는 롤바 위에 놓인 점화 코일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 트러블은 코일이 진동이 있는 곳에 달린 것이 원인이었기 때문에 실린더 헤드 위로 위치를 옮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 사건은 오스트리아 그랑프리 직전에 있었는데, 같은 시기에 페라리의 기술자들도 진동으로 발생하는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모든 테스트를 해보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고 차의 진동 트러블은 시즌 내내 계속되었다. 그러나 결국 BRM과 페라리 모두의 문제는 파이어스톤 타이어에 그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그 해결책으로 타이어의 지름이 더 커졌다. 1969년 페라리 2ℓ 212E를 몰고 유러피언 마운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던 피터 쉐티 박사는 1971년에 페라리 경주팀의 매니저로 임명되었다. 페드로 로드리게스는 그 해 7월에 독일의 뉘르부르크링 서키트에서 열린 한 인기 없는 스포츠카 경주에서 31세의 나이로 비운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페라리 512를 타고 이 경기에 참가했는데, 경기 중에 앞서 천천히 달리던 경주차가 갑자기 멈추는 것을 미쳐 피하지 못하고 충돌하고 말았던 것이다. 페라리는 곧 불길에 휩싸여 폭발했고, 그는 살아나지 못 했다. 뛰어난 운전기술을 가지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드라이버도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비극이었다. 실버스톤에서 열린 영국 그랑프리에서도 재키 스튜어트의 우승은 계속 되었고 이것은 독일 그랑프리까지 이어졌다. 독일 그랑프리는 완전히 새롭게 지어지고 최신의 안전 시설을 갖춘 뉘르부르크링 서키트에서 다시 한 번 열렸다. 프랑스에서 2위를 차지했던 티렐팀의 세컨드 드라이버인 프랑수아 세베르는 이 곳에서도 2위를 차지했고, 이 어려운 고난도의 코스에서 7분 20.1초의 새로운 랩 레코드(시속 186.8km)를 세웠다. 티렐의 성공은 재키 스튜어트의 능력과 재능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기술적으로 진보한 경주차의 우수함도 기여한 것이었다.
F1 그랑프리 뜨거운 경쟁이 시작되다 레이서들의 이.. 2000-01-30
1970년 시즌 후반, 페라리의 수평대향 12기통 엔진이 뛰어난 성능을 보이자 전문가들은 이 엔진을 얹은 빨간색 페라리 경주차가 71년 월드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동안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던 코스워스 DFV 엔진은 4년이나 된 노후 엔진이었기 때문에 우승할 가능성이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스워스는 1만500rpm에서 440∼450마력의 힘이 나오는 새로운 V8 모델을 내놓았다. 페라리의 신형 12기통 엔진은 1만2천500rpm에서 480마력의 힘을 냈으나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새로운 코스워스 엔진은 출력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이전 모델의 문제점을 모두 해결해 다시 신뢰를 얻는 데 성공했다. 마트라와 BRM의 12기통 엔진들은 둘 다 440마력의 최고출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즌 시작 전 많은 선수들 팀 옮겨 레이스 시즌 비극적인 사고로 시작해 1970년 말, 페라리는 재키 스튜어트에게 스카웃을 제안했으나 그는 이에 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티렐에 남았다. 티렐의 탄탄한 조직력은 다른 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팀의 모든 구성원은 각각 임무를 가졌고, 팀 내에 조급함이나 혼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따라서 데렉 가드너가 디자인한 경주차는 뛰어난 조직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성능을 냈다. 스튜어트의 티렐-포드 001과 002는 1971년에 총 11회 열린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9회나 완주했다. 스튜어트의 운전기술은 경주차의 완벽함과 조화되어 그에게 여섯 번의 우승과 두 번째 월드 챔피언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그의 시즌 제패는 68년에 죽은 F1의 영웅 짐 클라크에 필적하는 기록이었다. 71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일상적인 변화같이 많은 선수들이 팀을 옮겼다. 70년 시즌의 실패로 신생팀 마치의 크리스 아몬, 조셉 시퍼트, 마리오 안드레티 등이 팀을 떠났다. 아몬은 마트라와 2년 계약을 맺었고, 시퍼트는 BRM에 새 둥지를 틀었다. 안드레티는 페라리로 옮겨 어려서부터 꿈꾸던 야망을 달성하게 되었다. 마치는 70년 시즌에 자동차 수집광 콜린 크랩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마치 701을 몰았던 스웨덴 출신 레이서 로니 피터슨과 2년간 계약을 맺었다. 독립팀을 만들려던 로브 워커는 팀을 세우는 것을 포기하고 존 서티스와 합쳤고, 여기에 브라밤의 드라이버였던 롤프 스토멜른도 합류했다. 그레이엄 힐은 워크스 드라이버로서 브라밤에 합류했고, 그의 팀 동료는 호주인 팀 쉔켄이 되었다. 잭 브라밤은 1970년 말 드라이버로 은퇴했고, 그의 친구 론 토래낙이 다음 해부터 혼자서 그의 F1팀을 관리했다. 장래성 있는 에머슨 피티팔디와 라이네 비젤은 로터스에 그대로 남았다. 반면 콜린 채프먼은 71년 시즌 후반에 호주 F3 전문 드라이버 데이브 워커를 영입해 F1에 출전시킴으로써 팀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1971년 레이스 시즌은 1월에 부에노스아이레스 1천km 경기에서 이태리 드라이버 이그나지오 지운티가 자신의 페라리 312 스포츠 프로토타입 경주차에서 죽는 비극으로 시작되었다. 잔-피에르 벨토이즈가 몰던 마트라는 연료가 떨어져 드라이버가 차에서 내려 결승점 직선 구간을 가로질러 피트까지 경주차를 밀고 있었다. 당시 1위로 경기를 이끌던 지운티는 천천히 움직이는 파란 마트라 경주차를 보았으나 도로를 가로지르는 차를 피하기에는 너무 늦어 충돌하고 말았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지운티의 페라리는 불꽃에 휩싸였고, 그는 죽고 말았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벨토이즈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사고가 일어났다고 판결했고, 그에게 6개월 면허정지 처분을 내렸다. 많은 팀이 새로운 F1 경주차 만들어 타이어 기술 발전해 슬릭 타이어 등장 새로운 F1 그랑프리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많은 새 모델이 나왔다. 브라밤의 경주차를 디자인했던 랄프 벨라미는 BRM과 티렐 스타일로 차 옆에 연료통을 단 낮고 평평한 맥라렌 M19A를 내놓았다. M19A는 차체 안에 코일 스프링과 쇼크 업소버를 단 혁신적인 서스펜션 시스템을 썼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실제로는 큰 효과가 없어 시즌 후반에 다시 일반적인 서스펜션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페라리 312B2 또한 코일 스프링이 리어 액슬 위에 거의 가로로 놓인 새로운 서스펜션 디자인을 사용했다. 그러나 312B2는 섀시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성능도 이전의 312B1보다 떨어졌다. 클레이 레가조니는 이런 열악한 조건을 가진 경주차로 3월에 브랜드 해치에서 열린 일반 레이스에 출전해 승리를 차지했다. 로빈 허드는 유선형의 차체제작 전문가 프랭크 코스틴과 함께 새로운 마치 711을 만들었다. 마치 711은 정면에 공기흡입구가 없는 대신 둥근 노즈를 가지고 있었고 그 위 중앙에 타원형의 윙이 달려 있었지만 실제로는 큰 성능을 내지 못했다. 디자인 자체가 엔진 냉각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또한 로터스팀의 테스트에서 마치 711은 앞 디스크 브레이크를 샤프트와 함께 휠 안쪽에 넣었으나 로니 피터슨이 샤프트 파손으로 사고를 당한 이후 다시 브레이크의 위치를 섀시 바깥쪽으로 바꾸었다. 론 토라낙은 바닷가재의 집게발처럼 노즈의 양 옆에 두 개로 나누어진 라디에이터 그릴을 가진 브라밤 BT34를 개발했다. 서티스 TS9는 TS7을 발전시킨 일부 수정 모델이었고, 마찬가지로 BRM P160도 P153의 접지력을 많이 향상시킨 것이었다. 알파로메오는 70년에 맥라렌과 협력한 이후로 71년에 마치와도 비슷한 협정을 맺었다. 그에 따라 영국 마치 경주차는 이태리 엔진을 얹고 알파로메오의 드라이버 안드레아 데 아다미크와 나니 갈리가 함께 달렸다. 그러나 바라던 F1 그랑프리의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그랑프리 경기에서 던롭 타이어가 철수하자 그들의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재키 스튜어트는 굿이어와 3년간 계약을 맺었다. 타이어 기술은 눈에 띄게 발전해 더욱 낮은 편평률을 가진 타이어가 나왔다. 당시 타이어가 경주차 전체 바람저항의 65% 원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로 인해 타이어의 넓이가 높이의 3배이고 편평율이 30인 타이어도 등장했다. 그러나 바람의 저항을 줄이지 못했고 무게도 크게 줄이지 못했다. 대신 많은 디자이너들은 뒤쪽 타이어를 15인치에서 13인치로 바꾸었다. 이런 노력에 따라 접지력이 많이 높아지고 경주차가 코너를 통과할 때 약 1.6g의 원심력 한계에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이어 유럽 그랑프리 경기에서는 타이어의 트레드가 완전히 없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타이어를 슬릭 타이어라고 불렀다. 미국의 드래그 레이스용 자동차와 카트 경기에도 사용된 슬릭 타이어의 부드러운 접촉면은 최대의 접지력을 제공했으나 젖은 노면에서는 매우 위험한 단점이 있었다.
WRC의 세계 일류 브랜드 이색소개> 최고 기.. 2000-04-27
1973년 문을 연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은 수많은 자동차 메이커와 드라이버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주가를 높여가고 있는 무대로 많은 팬들을 끌어 모으며 해마다 인기를 높여가고 있다. WRC가 이같은 인기를 누리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중 차와 드라이버에 가려 빛은 덜 나도 자신의 분야에서 일류가 되겠다는 집념으로 노력한 숨은 공로자들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 스페셜 파츠의 명품들은 오늘날 일반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최고의 제품임을 당당하게 과시하고 있다. 미쉐린 타이어 미쉐린 타이어는 WRC가 첫 문을 연 1973년부터 깊은 인연을 맺었다. 새 타이어의 개발과 테스트는 계속되었고, 폭넓은 컨디션(날씨, 노면 등의 조건)을 커버하는 `우승` 공식을 일궈냈다. 이때문에 WRC에서 13번이나 매뉴팩처러즈와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거머쥐며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WRC에 참전하는 7개 워크스팀을 보면 `현대 캐스트롤팀`을 비롯해 5곳이 미쉐린 타이어를 신고 있다. 지난해 미쉐린은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10대의 트레일러에 16종류(보통 6~ 8종류를 쓴다) 4천252개의 타이어를 준비해 레이스를 치렀을 정도로 승부근성 또한 뛰어나다. 미쉐린 타이어는 모든 경기마다 이같은 규모의 지원을 하고 있고, 무상으로 타이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팀에 이를 팔고 있다. 또한 팀마다 3명 이상의 엔지니어를 파견해 경주차 특성에 맞는 타이어를 개발하고 있다. 브렘보 이태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브렘보는 세계 최대의 브레이크 디스크 메이커로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브렘보는 WRC는 물론 F1 GP 그리고 나츠카 시리즈까지 공통된 규격으로 열리고 있는 레이스에 참가하는 팀에게 브레이크를 공급하고 있다. WRC에서는 포드의 스폰서로 포커스WRC에 브레이크를 공급하고 있고, 푸조 206WRC도 브렘보 제품을 달고 있다. 이밖에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등 고성능 시판차에도 제품을 납품해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 모터 스포츠 투어링카A 경주차들도 브렘보 제품을 애용하고 있다.스파르코 1977년 이태리에서 설립된 레이스 레이싱웨어 메이커로 전세계 50여 개국에 판매망을 갖고 있다. 의류는 물론 슈즈와 장갑 등에 이어 스티어링 휠, 레이싱 시트, 페달 키츠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모터 스포츠계에서는 확고한 영역을 쌓았다. 현재는 포드, 푸조, 스바루, 세아트, 스코다 등에 슈트와 시트를 공급하고 있다. OZ 1971년 휠을 생산하기 시작한 이래 성공을 거둬 현재는 경합금 휠 산업을 리드하는 메이커로 성장했다. OZ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에 납품하고 있고, 국내 드라이버들도 OZ 휠을 애용하고 있어 폭넓은 사랑을 과시한다. 모터 스포츠계에서는 F1 GP와 투어링카 레이스 등에 제품을 공급해 신뢰성을 높여가고 있다. WRC에서는 6개 워크스팀이 OZ 휠을 끼웠고, 미쓰비시만 OZ의 자회사인 NK 휠을 쓰고 있다. 피렐리 타이어 1872년 창업한 피렐리는 1950년대는 F1 GP에 타이어를 공급해 기술력을 알렸고, 1974년부터 WRC에 뛰어들어 란치아에 타이어를 공급하면서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후 피아트, 도요다, 스바루 등에 타이어를 공급해 매뉴팩처러즈 타이틀 11회, 드라이버즈 타이틀 6회를 기록했다. 현재는 스바루와 스코다가 피렐리 타이어를 신고 있어 라이벌 미쉐린보다 뒤처지는 인상이다. 하지만 피렐리는 타이어뿐 아니라 와이어와 케이블 등 폭넓게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레카로 1906년 독일에서 시트 메이커로 출발해 1963년 레카로로 이름을 바꿨다. 1965년 첫 `레카로` 상표를 붙인 제품이 나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해 비행기와 자동차 시트로 세계를 휘어잡는 기업이 되었다. 1975년부터 레이스에 뛰어들어 세계 각국의 레이스와 랠리 등에서 성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스파르코, OMP 등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고, WRC에서는 스코다팀을 후원한다. OMP 국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어 낯익은 OMP는 1973년 이태리에서 출발한 회사로 롤케이지 등 레이싱 파츠를 주력상품으로 삼았다. 모터 스포츠에 열정적인 회사의 경영층은 롤케이지 등 자사의 제품을 이용해 만든 경주차로 레이스에 출전했고, 이것이 인기를 얻으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F1 그랑프리 M. 슈마허, WRC T. 마키넨 등을 스폰하고, D. 오리올(세아트), K. 에릭슨(캐스트롤 현대) 등이 OMP 제품을 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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