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모터스포츠

BMW V12 LMR 르망 24시간 우승 노리는 오.. 1999-04-27
올해 르망 24시간 레이스 결승은 6월 12~13일 프랑스 르망의 사르트 서키트에서 벌어진다. 하지만 출전 워크스팀은 연초부터 출전차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중 BMW의 르망 경주차 V12 르망 로드스터(Le Mans Roadster)는 지난해 연말부터 매스컴을 오르내렸다. 카본-파이버 모노코크 보디로 무게가 900kg밖에 안되는 2인승 오픈 프로토타입으로 550마력의 강력한 심장을 얹어 포르쉐가 빠진 르망 24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힌다. 무게 900kg, 500마력 심장 6월의 르망 결승 우승 노려 르망 로드스터 LMR을 개발한 BMW 모터 스포츠 본부는 영국 아빙던에 있다. V12 엔진은 그 분야의 천재 폴 로셰의 걸작이다. 모터 스포츠의 총감독은 G. 베르거. 97년까지 베네톤의 에이스로 F1 서키트를 달군 베테랑이다. 섀시 개발 후 튜닝과 경기운영은 독일의 명문 튜너 슈니처에 맡겼다. 사장 찰리 람이 진두지휘를 맡아 르망에 출전한다. 지난 1월 중순 크리스텐센이 아빙던 비행장에서 첫 시험을 한 뒤 스페인, 미국을 거치며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열대인 남부 플로리다에서 내서시험을 치렀다. 6월의 르망은 초여름. 더운 날씨에 대비해 홈스테드와 세브링 서키트에서 훈련과 시험, 내구 레이스를 거듭했다. 프랑스의 그랑프리 서키트 르 카스텔레에서는 5천km를 달렸다. 그동안 기능·성능, 내구·내서, 타이어와 공력시험을 착실히 치렀다. BMW 르망팀의 드라이버는 제일 처음 핸들을 잡은 크리스텐센을 비롯해 Y. 달마, P. 마르티, J. 빈켈호크, J.J. 레토 등이다. 2대 체제이기 때문에 줄잡아 6명을 확보해야 한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은 경주차 규정을 프로토타입 중심으로 바꾸어 워크스팀은 프로토타입으로 돌아섰다. 지난해 GT1으로 원투승의 위업을 일군 포르쉐는 올해 경기에 불참을 선언했다. 경기규정이 GT 중심의 포르쉐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오는 6월 터줏대감 포르쉐가 사라진 사르트 서키트에서 BMW를 비롯한 벤츠(다임러-크라이슬러), 아우디, 도요다와 닛산의 5대 워크스가 불꽃튀는 접전을 벌인다. 98년 초반 탈락의 수모를 겪은 BMW는 2개월 앞당겨 일찌감치 르망팀의 시동을 걸었다. 발빠른 워밍업에 들어간 BMW V12 LMR은 르망의 우승 고지를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다.
39년 데뷔한 BMW, 15전만에 첫 승리 - 99 르.. 1999-07-29
98년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앞두고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출전팀의 운명을 가름하는 새 경기규정을 발표했다. 핵심은 99년부터 대 메이커의 프로토타입 출전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르망 서키트의 최강자 포르쉐가 즉각 99년부터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포르쉐는 최종전이 된 98 르망 24시간을 당당히 원투승으로 장식하고 사르트 서키트를 등졌다. 대 메이커의 피나는 홍보전 예선 싹쓸이한 프로토타입 대 메이커의 프로토타입 진출이 어떤 의미를 가졌기에 포르쉐가 미련 없이 르망을 떠났을까. 프로토타입이란 오로지 승리를 목적으로 만드는 경주차다. 따라서 포르쉐처럼 양산차의 성능을 서키트에서 입증해 판매와 연결시키려는 메이커로서는 예산의 낭비일 뿐이다. 포르쉐는 스포츠카의 정상 메이커이기는 하지만 프로토타입으로 메이커 홍보를 할 막대한 재력이 없다. 결국 올해 르망 24시간은 대 메이커의 피나는 홍보전장이 되고 말았다. 1위 BMW는 세계정상급 럭셔리카 메이커, 2위 도요다는 세계 3~4위의 초대형 메이커, 아우디는 세계 5위의 폴크스바겐 그룹 품에 안긴 럭셔리카 메이커다. 거기다 럭셔리카의 정상 벤츠가 예선에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일으켰고, 결승 5시간만에 퇴장한 것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벤츠는 프로토타입 CLR을 발표할 때부터 대대적인 홍보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예비예선과 예선을 통한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뒤 예선에서 결승 5시간 사이에 출전 3대가 모두 서키트를 떠났다. 일각에서는 벤츠가 24시간을 달린 뒤 참패하기보다는 뒷날을 기약하고 일찌감치 무대를 떠났다고 본다. 6월 9~10일 프랑스 르망의 사르트 서키트(1주 13.605km)에서 24시간 레이스의 예선이 벌어졌다. 지난해 종료 2시간을 앞두고 우승을 놓친 도요다의 GT1 2개조가 1, 2위를 차지했다. M. 블룬델조와 T. 부첸조의 1, 2호차였다. 뒤이어 T. 크리스텐센조의 BMW V12 LMR 2호차가 3위였다. 4위 벤츠의 CLR의 3호차(B. 슈나이더조). 5위에 들어온 미국 컨스트럭터 파노즈 LMP 스파이더 2호차(D. 브래범조)가 상위권의 유일한 군소 메이커였다. 폴크스바겐의 위력을 업은 아우디는 R8R 1호차(L. 아이엘로조)를 9위에 올렸다. 도요다, BMW, 벤츠와 아우디 4대 워크스가 20위까지를 거의 메웠다. 지난해 3위를 해 결승 10위권에 3대가 들어갔던 닛산은 예선 12위가 고작이었다. 르노에 기대 회생하려는 닛산의 힘겨운 모습이 그대로 서키트에 반영되고 있었다. 39년 데뷔, 15전째 승리한 BMW 초반 고의 퇴장 의혹 받는 벤츠 6월 12일 토요일 오후 4시 99년 르망 24시간 레이스가 막을 올렸다. 13일 일요일 4시까지 프랑스 르망의 사트르 서키트를 달군 세계 정상의 내구 레이스에서 BMW 프로토타입 V12 LMR이 데뷔전 우승컵을 안았다. BMW는 39년 데뷔 이래 15전째 드디어 승리를 거머쥐는 감격을 맛보았다. 지난해 피니시 2시간을 앞두고 탈락했던 도요다의 GT-One이 2위, 워크스 데뷔전인 아우디 R8R이 3위에 올랐다. 99년 르망 24시간 레이스는 르망 사상 가장 치열하고 말썽 많은 경기로 꼽힌다. 일요일 오후 4시 체커기가 나부꼈을 때 슈니처 튜닝의 BMW V12 LMR이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드라이버는 J. 빙켈호크(독일)/ P. 마르티니(이태리)/Y. 달마스(프랑스)의 3인조였다. 주회수는 365주, 주행시간 22시간 58분 38초 231, 평균시속 207.237km였다. 베테랑 달마스의 4번째 우승이었고, BMW는 르망 첫 승리였다. 아울러 경주차 V12 LMR의 데뷔전. 피니시 45분 전까지 마르티니는 최근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각축전에 휘말렸다. 적수는 전 F1 드라이버 U. 가타야마(일본). 지난해부터 사르트 서키트에서 이름을 날린 도요다 GT1 가운데 3호차였다. 도요다 제3조는 순수 일본팀. 가타야마와 함께 T. 스즈키/K. 쓰치야가 한 조를 이루었다. 마르티니와 가타야마의 시차는 20초로 줄어들었다. 랩타임에서 앞선 가타야마가 마르티니와의 격차를 착실히 줄여나갔다. 한 바퀴 돌 때마다 2~3초씩 죄어드는 맹추격전이었다. 상황은 69년의 재판이 되는 듯했다. 당시 J. 아이크스와 H. 헤르만이 마지막 주에서 순위를 뒤바꾸는 대역전이 벌어졌다. 가타야마가 뒤집기에 들어가는 순간 또 다른 BMW의 T. 브셔가 앞을 가로막았다. 가타야마는 인디애나폴리스 코너로 들어가는 초고속 코스에서 브셔를 피하려다 펑크가 났다. 가타야마는 간신히 피트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승부는 이미 갈라진 뒤였다. 2주가 뒤진 가타야마조의 역전 드라마는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BMW 감독 G. 베르거(전 F1 드라이버)와 워크스 BMW팀은 열광했다. 이미 예선부터 말썽이 끊이지 않았다. 10일 목요일 밤 예선전에서 M. 웨버(오스트레일리아)가 몰고 나온 워크스 벤츠 CLR이 무시무시한 충돌사고를 일으켰다. CLR이 영문도 모르게 튀어나가 인디애나폴리스 직선 코스에서 몇 번이나 공중제비를 했다. 그 뒤 결승일 오전 웨버의 경주차가 뮐산느 직선 코스 끝에서 다시 나뒹굴었다. 벤츠팀은 남은 2대도 철수하는 문제를 검토했다. 그러나 벤츠가 공식적으로 레이스에서 철수하기로 한 것은 결승에서였다. 경기시작 5시간만에 벤츠팀 제3조 P. 덤브렉(영국)이 몰던 CLR이 똑같은 사고를 일으켰다. 다행히 세번 모두 사상자는 없었다. 벤츠 3호차가 탈락한 다음 주에 B. 슈나이더조의 CLR이 트랙을 떠나 벤츠팀은 완전히 사라졌다. 도요다 2개조 사고로 물러나고 BMW 끝까지 아슬아슬 선두 유지 덤브렉의 벤츠 CLR 사고 이후 오랫동안 세이프티카가 대열을 선도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경기는 재개되었다. BMW 2호차(J. 레토/T. 크리스텐센/J. 뮐러), 도요다 2호차(T. 부첸/A. 맥니시/R. 켈레너즈), BMW 1호차(마르티니/달마스/빙켈호크), 파노스 2호차(D. 브래범/E. 버너드/B. 라이칭어), 아우디 2호차(E. 피로/F. 비엘라/D. 타이스)가 선두 그룹을 이루었다. 그때 예선 1위였던 우승후보 도요다 1호차 M. 블룬델/E. 콜라르/V. 소스피리는 유압장치 고장으로 20위로 밀려났다. 거기에다 펑크에 발목이 잡혀 시간을 놓쳤다. 뒤이어 블런델이 핸들을 잡고 달리다 테르트르 루즈 코너에서 스핀을 일으켜 도중하차하고 말았다. 12일 토요일 밤 10시 30분. 도요다의 스피드와 BMW의 연료효율이 맞붙었다. 도요다 제2조 T. 부첸(벨기에)의 GT1이 랩타임에서 앞서고 있었다. 반면 배기량 6.0ℓ의 V12 BMW가 연료효율에서 뛰어났다. BMW가 13주마다 피트인한데 비해 도요다는 11~12주마다 피트에 들어가야 했다. 자정에 부첸의 도요다 2호차가 선두인 레토의 BMW를 숨가쁘게 몰아붙였다. 마르티니/빙켈호크/달마스의 BMW 1호차는 약 25km 뒤쳐져 있었다. 13일 일요일 새벽 3시 10분. 도요다팀에 다시 불운이 닥쳤다. 부첸이 던롭 커브 입구에서 GTS급 포르쉐 911(M. 메조뇌브)과 뒤엉켜 장벽을 들이받았다. 벨기에 드라이버 메조뇌브를 경주차에서 끌어내는 데 20분이나 걸렸다. 메조뇌브는 등뼈가 부러져 입원했다. 이때부터 도요다 3호차의 일본조가 BMW 사냥에 들어갔다. 괴기한 사고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BMW 2호차의 레토에게 명령이 떨어졌다. 13시간동안 2주를 앞서온 경주차의 컨디션을 끝까지 유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액셀이 흔들려 장벽을 들이받았다. 일요일 정오가 막 지난 때였다. 도요다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3호차(가타야마 외)에 새로운 선두 BMW 1호차(마르티니조) 추격 명령을 내렸다. BMW가 2분 앞서 있었지만 랩타임은 도요다 GT1보다 6~8초나 뒤졌다. 하지만 끝내 대역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해 2시간을 남기고 우승을 놓친 도요다는 올해 우승후보 0순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BMW의 교란작전에 말려들어 승리를 눈앞에서 놓쳤다. 반면 팀감독 베르거와 BMW팀은 V12 LMR 데뷔전 승리에 감격했다.
프로토타입 버기 몬 슐레서 11년만에 다카르 제패 .. 1999-02-23
세계 모터 스포츠의 첫경기 그라나다-다카르 랠리가 98년 12월 31일 프롤로그런을 마치고 99년 1월 1일 스타트에 들어갔다. 스타트 라인에 나선 경주차는 모두 278대. 오토(자동차) 87대, 모토(모터사이클) 161대, 카미용(트럭)이 29대였다. 한국팬의 관심대상인 오토는 다시 시판차 그대로인 T1(시판무개조), 경기에 알맞게 개조한 T2(시판개조)와 경기전용 T3(프로토타입)의 3 클래스로 나뉜다. 올해 21회를 맞는 다카르 랠리는 파리를 떠나 다카르에 도착하는 파리-다카르 랠리로 시작했다. 하지만 교통량과 도로사정 때문에 파리-스페인의 랠리 루트를 찾기 어렵게 되자 스페인 그라나다가 출발지점으로 굳어졌다. 참고로 97년에는 다카르-아가데스-다카르의 아프리카 환상 랠리로 바뀌었고, 98년에는 파리-다카르 랠리 20주년을 기려 파리 교외에 집결, 샹젤리제를 지나 그라나다까지 기념 퍼레이드를 벌이며 20년의 역사를 되새겼다. 미쓰비시군단에 도전한 슐레서 첫날 미쓰비시가 상위권 독식해 99년의 제21회 다카르 랠리는 98년 12월 31일 프롤로그런으로 워밍업을 마쳤다. 일본 미쓰비시의 K. 시노즈카가 프롤로그런의 선두를 잡아 97년에 이은 2승 가도에 청신호가 켜졌다. 미쓰비시팀은 98년의 J.P. 퐁트네에 이어 3연패를 노리고 있었다. 2위는 프랑스계 슐레서팀의 오너 겸 드라이버 J.L. 슐레서였고, 그의 동료 J.M. 세르비아가 5위를 했다. 경주차는 슐레서가 직접 만든 T3 프로토 버기. 90%가 넘는 일본차의 바다속에 떠 있는 외로운 프랑스차였다. 네바퀴굴림(4WD)이 주류를 이루는 출전차 가운데 두바퀴굴림(2WD)인 점도 눈길을 끌었다. 2, 5위인 슐레서 듀오를 제외하면 8위까지 미쓰비시군단이 휩쓸고, 9~13위를 닛산이 차지했다. 도요다의 선두는 14위인 A. 바리에르쇼트. 선두그룹을 형성할 미쓰비시의 강자는 지난해 우승자 퐁트네(프랑스), 일본계 H. 마스오카와 독일 여성 J. 클라인슈미트였다. 거기에 파제로 T3클래스로 출전한 스페인계 M. 프리에토가 우승을 넘보고 있었다. 스타트 전야부터 미쓰비시와 슐레서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99년 1월 1일(금요일) 제1 스테이지는 581km, SS 115km. 제21회 다카르 랠리 첫날의 출발점 스페인 그라나다 일대에 찬비가 내리고 있었다. 밤새 광란의 새해맞이 축제를 벌인 그라나다 시민들이 출발점에 모여들었다. 궂은 빗속에 오토 88대, 모토 161대와 카미용 29대가 차례로 스타트를 끊었다. 군용지에 마련한 특설 SS는 커브마다 물이 고여 때아닌 수중전을 벌였다. 루트가 진흙탕으로 변해 첫날 SS는 프롤로그처럼 5km로 줄이고 나머지 576km를 리애종으로 돌렸다. 워밍업에 그친 첫 SS를 마치고 랠리 대열은 빗속을 뚫고 모로코 라바트로 향했다. 루트는 스페인 안달루샤 구릉지대와 올리브숲을 거쳐 알헤시라스항으로 이어졌다. 페리편으로 모로코의 탕헤르항에서 아프리카에 상륙한 뒤 대서양 연안 라바트 공항에 마련된 첫 야영지에 도착했다. 지중해의 파도가 거칠어 마지막 대열은 밤늦게야 도착했다. 이날 미쓰비시 파제로 T3로 출전한 프리에토가 선두. 미쓰비시팀 파제로 T2를 몰고 나온 시노즈카, 퐁트네, 클라인슈미트가 뒤를 이었다. 5위의 슐레서 버기를 제외하면 일본차가 상위를 휩쓸었다. 클라인슈미트 사상 첫 여성 선두 제5 스테이지서 참가자 허둥대고 1월 2일(토요일) 제2 스테이지는 라바트에서 아가디르까지 거리 654km, SS 100km. 한때 모로코가 세계랠리선수권(WRC) 시리즈에 들어 있을 때 쓰였던 코스다. 코르크, 유칼리와 각종 소나무가 울창한 숲속을 지나야 했기 때문에 운전 테크닉이 승부를 갈랐다. 지난해 강도사건이 있은 지역이어서 참가자들은 초긴장 상태. 그러나 랠리 대열은 무사히 아가디르 공항에 마련된 숙소에 도착했다. 첫날 3위였던 퐁트네가 선두를 잡고 팀 동료 시노즈카를 1분 49초차로 따돌렸다. 프리에토가 3위로 물러나고 일본인 드라이버 마스오카가 4위로 뛰어올랐다. 슐레서팀의 세르비아가 5위를 지켰다. 1월 3일(일요일) 제3 스테이지는 모로코 아가디르에서 탄탄까지 모로코의 마지막 스테이지였다. 거리 510km, SS 230km. 다져진 황무지에 돌이 사방에 널리고 비가 와야 물이 흐르는 와디를 건너는 구간이었다. 큰돌에 걸린 경주차들이 잇달아 펑크를 냈다. 한번의 펑크가 승패를 가름하는 험로에서 클라인슈미트는 대담하게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SS의 피니시라인을 통과했을 때 SS 톱타임과 함께 종합선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21회 랠리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종합선두를 잡는 신기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펑크가 나지 않은 행운에 모든 것을 돌렸다. 이미 사상 첫 여성 우승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1월 4일(월요일) 제4 스테이지는 모로코의 탄탄에서 모리타니의 비르모그레인까지 515km에 SS는 451km. 사하라사막이 시작되는, 다져진 길과 황무지가 어우러진 고속 루트였다. 펑크의 위험이 있었지만 미쓰비시 경주차보다 최고속도가 20~30km나 빠른 버기가 단연 유리했다. 뒤로 밀렸던 슐레서와 5위 세르비아 듀오가 두각을 나타냈다. 미쓰비시의 클라인슈미트가 선두를 지켰지만 슐레서와 세르비아가 바짝 추격했다. 마스오카와 시노즈카가 4, 5위. 1월 5일(화요일) 제5 스테이지는 비르모그레인에서 아타르까지 629km, SS 624km. 달표면처럼 모래언덕과 바위가 솟아 있는 황량한 사막이다. 최장 624km 스테이지의 처음 250km는 평탄한 황무지여서 길찾기가 쉬었다. 그러나 모래언덕이 나타나면서 내비게이터들도 헤매기 시작했다. 뒤이어 100km에서 고속질주한 출전자들은 다시 너울지는 모래바다에서 허둥댔다. 전날처럼 1~3위 클라인슈미트, 세르비아와 슐레서 뒤에서 시노즈카가 동료 마스오카를 앞질렀다. 제6 스테이지, 버기카 1, 2위로 올라서 시노즈카는 선두와 2시간 이상 벌어져 1월 6일(수요일) 제6 스테이지는 아타르에서 티지크자까지 429km, SS 458km. 100km의 모래언덕을 돌파하는 황홀한 고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 드라이버 클라인슈미트의 종합선두는 3일 천하로 끝났다. SS 4위로 역주했지만 선두와의 기록차가 너무 커 종합순위가 프로토 버기의 세르비아와 슐레서 뒤로 밀려났다. 1월 7일(목요일) 제7 스테이지는 티지크자에서 말리의 니오로까지 625km, SS는 458km였다. 고속코스 100km를 지나면 험준한 네가 고개가 나오고 100km의 황무지에서 길찾기를 해야 한다. 다음에 모랫길이 나오고 깎아지른 바위 협곡에서 경기는 끝난다. 선두 세르비아가 체크 포인트 1과 2 사이에서 클러치 고장을 일으켜 멀찌감치 뒤로 밀렸다. SS에서는 프리에토가 12분 46초차로 슐레서를 눌렀지만 종합 3위에 그쳤다. 종합선두는 여전히 슐레서, 뒤집기를 노리던 클라인슈미트가 2위로 올라왔다. 일본의 희망 시노즈카는 선두와 2시간으로 벌어졌다. 1월 8일(금요일) 제8 스테이지는 말리 니오로를 떠나 부르키나파소의 보보듈라소까지 986km. 루트 변화는 없었지만 SS는 434km에서 360km로 줄었다. 무성한 푸나무지대와 폭우 뒤의 흙탕을 지나가는 강행군이었다. 대혼전을 벌이는 랠리 대열이 휴식일을 앞둔 마지막 열전을 벌였다. 슐레서가 종합선두를 지켰지만 미쓰비시계의 프리에토, 클라인슈미트가 잘 싸워 시차를 2분 10초와 5분 40초로 줄였다. 4, 5위의 시노즈카와 마스오카는 2시간 이상이 벌어져 표창대마저 가물거렸다. 슐레서 버기의 세르비아가 6위였다.강도단 또다시 돈 털고 차 빼앗아 클라인슈미트는 펑크로 우승 접고 9일 하루를 보보듈라소에서 쉬고, 10일(일요일) 랠리는 제9 스테이지에 들어갔다. 말리 경찰이 가오 부근의 치안상태를 이유로 루트 변경을 요구해 스테이지 종점이 가오에서 모프티로 바뀌었다. 지난해는 말리 북부 타우디니 부근에서 강도단이 경주차를 습격해 충격을 주었다. 새 루트는 거리 342km에 SS 295km. 슐레서가 처음으로 SS 톱타임을 냈다. 파제로군단 프리에토, 클라인슈미트, 시노즈카, 마스오카가 맹추격했다. 모터사이클 부문에서 6승을 거둔 모토의 황제 S. 페테랑셀이 오토로 옮겨 7위에 올랐다. 1월 11일(월요일). 모프티-톰부크투로 루트가 바뀐 제10 스테이지는 1천32km에 SS 430km를 달리는 강행군 코스였다. 겨우 48대가 남은 오토 대열은 새벽 4시에 602km의 리애종에 들어갔다. 정오 직후 430km의 SS를 공략하는 시간표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후끈 달아오른 먼지구름 속에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SS 선두는 작년 승자 퐁트네였지만 종합순위는 슐레서, 프리에토, 클라인슈미트 뚝 떨어져 시노즈카, 마스오카와 페테랑셀이었다. 1월 12일(화요일) 제11 스테이지는 말리의 톰부크투에서 모리타니의 네마까지 548km에 SS 539km. 랠리 중 초고속 달리기에 알맞은 사하라사막의 잘 다져진 모랫길이었다. 시노즈카가 이번 대회 두 번째 SS 톱을 잡아 97년 패자의 저력을 과시했다. 선두 그룹에는 변화가 없었고, 정상 도전자는 슐레서, 프리에토와 클라인슈미트로 좁혀지고 있었다. 1월 13일(수요일) 제12 스테이지 네마-티쉬트는 SS로 꽉 찬 490km. 엔지 고개와 코끼리산의 고난도 험로가 출전자들을 시험했다. 스테이지 끝에는 다카르 랠리의 낙원 티쉬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마을과 절벽 기슭까지 뻗어나간 모래 물결이 황홀했다. 슐레서, 프리에토와 클라인슈미트 트리오가 철벽같이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사상 첫 여성 우승을 노리던 클라인슈미트가 갑자기 무너졌다. 후반에 조금씩 밀리기는 했지만 우승권을 벗어나지 않던 그녀는 펑크 2회에 차가 모래에 틀어박혀 SS 7위. 선두와의 시차는 1시간 31분. 역전은 거의 절망적이었다. 이날 모리타니의 티쉬트를 앞둔 지점에서 강도사건이 있었다. 피해자 53명, 피해차 23대였다. 피해자가 빼앗긴 금품만도 줄잡아 10억원대. 주최측의 TV카 2대, 프레스카 2대, 카미용 3대와 모토 1대를 빼앗겼다. 모리타니군이 추적하고 있는 무장괴한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다카르 랠리 사상 최악이라고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슐레서팀과 미쓰비시팀 치열한 경쟁 17일 동안 16 스테이지 달려 마무리 1월 14일(목요일) 제13 스테이지는 티쉬트-아타르를 잇는 616km에 SS 597km. 깎아지른 절벽 사이를 흐르는 메마른 강을 따라 루트가 뻗어 있었다. 다카르 랠리 코스의 절경이 펼쳐졌다. 눈부신 모래언덕 사이에 묻혀 있는 바위를 피해야 하는 테크니컬 루트였다. 첫 우승을 향해 달리는 슐레서가 과감한 공격에 들어갔다. 라이벌 프리에토를 숨막히는 접전 끝에 따돌려 시차는 26분 32초로 벌어졌다. 선두와 1시간 30분 뒤진 클라인슈미트가 3위. 작년 패자 퐁트네와 H. 페스카롤로(닛산 패트롤)가 다시 10위권에 들어왔다. 슐레서는 초반에 고전해 선두를 빼앗겼지만 중반부터 맹공을 펼쳤고, 골을 앞둔 520km 지점에서 펑크를 당한 프리에토를 곁눈질하며 골인했다. SS 톱인 클라인슈미트는 1시간 30분의 시차를 좁히지 못했다. 1월 15일(금요일) 제14 스테이지는 아타르-누아크쇼트 504km에 SS 433km였다. 역전을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길찾기 구간이었다. 절벽 골짜기에서 출발해 마른 강바닥을 50km 달린 뒤 300km의 사막을 가로질러 누아크쇼트에 골인했다. 슐레서 버기팀과 미쓰비시 파제로팀이 운명을 건 선두 지원작전에 들어갔다. 슐레서팀은 세르비아, 미쓰비시는 퐁트네를 내세워 팀 선두 슐레서와 프리에토를 밀고 끌라는 지시를 내렸다. 두 드라이버는 각각 SS 1, 2위로 골인해 선도역을 다했다. 하지만 슐레서와 프리에토의 선두다툼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다. 1월 16일(토요일) 제15 스테이지는 모리타니 누아크쇼트에서 세네갈 생루이로 이어지는 257km에 SS는 151km였다. 20km의 험로를 벗어나자 대서양의 바바리 해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운영과 지원단체 요원, 랠리팬들이 루트 주변에 몰려 나와 랠리대열의 세네갈 입성을 환영했다. 시차에 변화가 있었을 뿐 10위권 선두들이 순위 변동없이 스테이지를 마쳤다. 1월 17일(일요일) 드디어 제21회 다카르 랠리 골인이 눈앞에 다가왔다. 생루이를 떠나 세네갈 수도 다카르의 라크 로즈 해변에서 마지막 승부를 갈랐다. 최종 제16 스테이지는 생루이에서 수도 다카르까지 260km에 SS 20km로 17일 동안 16스테이지의 대장정을 마무리짓는 코스였다. 표창대 정상에 J.L. 슐레서(슐레서팀)가 올랐고, 나머지 두 자리를 파제로군단의 M. 프리에토와 J. 클라인슈미트가 나누었다.슐레서 자작 버기로 11년만의 감격 우승 278대 중 110대 완주한 서바이벌 게임 장 루이 슐레서는 데뷔 11년만에 왕좌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경주차 프로토타입 버기를 스스로 만들어 사실상 2관왕의 위업을 이룩했다. 데뷔(89년) 11년, 자작 버기를 투입한 지 8년만의 쾌거였다. 48년 9월 12일 프랑스에서 태어나 올해 50세인 베테랑. 78년에 프랑스 F3 챔피언, 83년과 88년에 각기 1전씩 F1에 스폿 출전했다. 90년에는 C카의 WSPC 챔피언. F1 자우버팀의 테스트 드라이버를 거쳤다. 80년대말 다카르 랠리 데뷔, 91년부터 자작 버기를 투입해 지난해 종합 5위에 올랐고 뒤이어 크로스컨트리 월드컵 시리즈에서 일본인 K. 시노즈카를 물리치고 챔피언십을 거머쥐었다. 한편 제3 스테이지에서 사상 처음 선두에 나섰고, 사상 첫 3위에 오른 여성 드라이버 클라인슈미트는 슐레서의 수제자였다. 작년까지 4년동안 슐레서팀에서 슐레서의 지도를 받으며 다카르 랠리에 출전했었다. 1월 1월 그라나다를 출발한 경주차는 오토 88, 모토 161, 카미용 29 합쳐 278대 중 겨우 110대가 완주했다. 그 중 오토가 40, 모토 54, 카미용 16대가 살아남았다. 골인한 오토 40대(생존율 45%) 중 슐레서 버기 2대, 미국제 허머 1대, 레인지로버 1대 등 4대 외에는 모두 일본차였다. 미쓰비시, 닛산과 도요다 36대가 그라나다-다카르 코스를 휩쓴 뒤 라크 로즈 해변에 들이닥쳤다. 반면 드라이버는 90% 이상이 유럽계였다. 완주율 34%에 불과한 모토의 승자는 BMW를 몰고 나온 프랑스인 R. 생크트이고, 55%가 살아남은 카미용의 선두주자는 타트라로 출전한 체코인 K. 로프라이스였다(별표 참조) 99년(제21회)그라나다-다카르 랠리 결과 (1월1일~17일/그라나다~다카르/거리 9천22km, SS 5천820km) 오 토 순 위 드라이버/코드라이버 국 적 경주차 부 분 기 록※ 1 J.L.슐레서/P.모네 프랑스 프로토 버기 T3 70.26.35 2 M.프리에토/D.세리에이스 스페인 미쓰비시 파제로 T3 71.00.13 3 J.클라인슈미트/T.토르너 독일 미쓰비시 파제로 T2 72.08.37 4 K.시노즈카/H.마뉴 일본 미쓰비시 파제로 T2 72.06.03 5 J.M.세르비아/T.델리-조티 스페인 프로토 버기 T3 74.06.03 6 H.마스오카/A.슐츠 일본 미쓰비시 챌린저 T3 75.43.03 7 S.페테랑셀/J.P.코트레 프랑스 닛산 패트롤 T3 76.37.56 8 T.드라베르뉴/J.뒤부아 프랑스 닛산 패트롤 T3 76.52.57 9 J.P.퐁트네/G.피카르 프랑스 미쓰비시 파제로 T3 78.59.14 10 S.세르비아/G.알비에로 스페인 닛산 패트롤 T3 82.42.15 분류: T2=시판개조차, T3=프로토타입 ※기록은 시간, 분, 초 99년(제21회)그라나다-다카르 랠리 결과 (1월1일~17일/그라나다~다카르/거리 9천22km, SS 5천820km) 오 토 순 위 드라이버 국 적 경주차 기 록※ 1 R.생크트 프랑스 BMW 58.44.59 2 T,마냘디 프랑스 KTM 58.49.08 3 A.콕스 남아공 KTM 59.26.18 4 J.아르카론스 스페인 KTM 60.09.41 5 C.소텔로 스페인 야마하 62.06.17 6 J.디컨 영국 KTM 62.45.45 7 G.살라 이태리 KTM 63.30.28 8 C.데 가바르도 칠레 KTM 64.01.49 9 O.갈라르도 스페인 BMW 65.34.38 10 F.메오니 이태리 KTM 67.13.02 ※기록은 시간, 분, 초 99년(제21회)그라나다-다카르 랠리 결과 (1월1일~17일/그라나다~다카르/거리 9천22km, SS 5천820km) 카미용 순 위 드라이버/코드라이버/코드라이버 국 적 경주차 기 록※ 1 K.로프라이스/R.스타쿠라/J.칼리나 체코 타트라 90.01.26 2 V.모스코프스키크/S.야코보프/V.치구이네 러시아 카마즈 90.41.14 3 A.데 아제베도/T.토메세크/L.노이바르트 브라질 타트라 92.28.31 4 Y.스기와라/T.스기와라/N.마쓰모토 일본 히노 93.53.04 5 M.비아종/T.시베이로/L.디아만테 이태리 이베코 97.13.16 6 C.바르비에르/P.바르비에르/A.벤베크티 프랑스 미쓰비시 99.30.24 7 F.카비로프/A.벨리아에프/V.골로브 러시아 카마즈 99.57.17 8 J.P.레이프/J.다인호퍼/H.H.로트 오스트리아 만 104.48.53 9 J.P.보소네/C.그랑종/J.L.베르거 프랑스 벤츠 104.53.35 10 R.갱브르/F.마르세익스/A.N.부이 프랑스 벤츠 105.18.24 분류: T2=시판개조차, T3=프로트타입 ※기록은 시간, 분, 초
20세기 마지막을 수놓고 새 천년을 연다 11월 2.. 1999-09-29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그랑프리 개최가 확정되면서 한국 모터 스포츠가 국제무대를 향해 잰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행사는 한국 모터 스포츠 활성화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F3 그랑프리 유치건은 지난 4월부터 일부 관계자들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KARA가 극도의 보안을 유지해 언론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다. 섣불리 보도하기보다는 조심스럽게 결과를 기다리자는 판단에서였다. F3 국내 유치는 지난 5월 8일 KARA 정영조 회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지만 실무진은 이미 1월에 사전준비를 마쳤고, 3월에는 FIA F3 조직위원회에 신청서를 접수했다. FIA의 관계자들은 지난 5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방한 때 수행원 자격으로 입국해 KARA 관계자들과 F3 유치에 관한 일부 합의를 이끌어냈다. 처음에 F3 개최지로 거론되었던 곳은 제주도 제주시의 항만도로를 이용한 시가지 서키트였다. KARA의 강영태 실장은 "서키트 도면은 물론 코스에 대한 인증도 마쳐 보도발표 시기를 저울질했었다. 하지만 공식발표 때까지 보안을 유지해 달라는 우리 요구를 제주도(제주도 일부 신문에 F3 그랑프리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기사가 실렸다)에서 들어주지 않아 확정단계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서키트 건설비를 제주도가 감당하기도 벅찼다"고 말했다. 경상남도 창원으로 급선회한 것은 6월 이후다. 경상남도 창원은 "창원-금강산 랠리"를 추진하다 도중하차한 전력이 있어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이덕영 행정부지사는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를 비롯한 모터 스포츠 관련인사들을 찾아 자문을 구하는 등 F3그랑프리 개최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17개국 30팀이 참가하는 데 스태프를 포함한 300여 명의 항공권과 숙박료를 조직위윈회에서 부담한다. 여기에 서키트 건설비 등을 더하면 6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경상남도와 창원시는 행정자치부에서 30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기로 했고, 나머지는 KARA가 스폰서를 구하기로 했다. KARA의 정영조 회장은 지난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타이틀 스폰서가 확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코스에 대한 인증과 팀 섭외만 남았다"고 밝혔다. 코스는 지난 7월 22일 FIA F3 조직위원회 B. 브랜드 위원장이 방문해 둘러보았고, 도면은 8월 16일자로 FIA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대회가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각 팀이 참가를 결정(항공료와 숙박료는 조직위원회에서 지불하지만 그 밖의 경비는 자신들이 내야 함.)하기는 쉽지 않았다. 주최측은 한국에서의 첫 대회가 갖는 의미와 마카오 GP와 바로 다음주에 레이스를 해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점을 을 집중적으로 홍보해 각 팀의 결정을 끌어냈다.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새 천년을 여는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그랑프리 챔피언십. 결선이 벌어지는 11월 28일은 김대중 대통령이 참가해 개회사를 하는 국가적인 행사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변수(2000년 총선을 위한 사전 정치활동이라는 야당의 공세 등)가 생길 수 있어 국무총리가 개막 테이프를 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F3란 무엇인가 F3(배기량 2천cc)는 F3000과 F1(배기량 3천cc 이하)으로 진출하기 위한 프로 포뮬러 레이스의 기본 중 마지막 관문이다. 1958년 처음 시작되었고 1963년에는 포뮬러 주니어라는 이름이 쓰이기도 했다. F3의 특징은 F1나 F3000처럼 여러 나라를 돌며 레이스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시리즈를 통해 선발된 상위 랭커들이 매년 프랑스와 네덜란드, 마카오 그리고 한국의 창원(이번이 첫 대회)에서 "왕좌 결정전"을 벌이는 것이다. 경주차는 직렬 4기통 2.0L 엔진을 얹고 2천500대 이상을 생산하는 모델로 FIA의 공인을 받아야 한다. 타이어는 각국의 주관단체가 공인하는데 일본 F3 챔피언십의 경우 브리지스톤이 쓰인다. 일본 F3 경주차의 제원을 살펴보면 길이 2천628mm, 앞뒤 트레드 1천500/1천430mm고 서스펜션은 위시본 타입으로 앞은 푸시로드 모노 쇼크 업소버, 뒤는 푸시로드 트윈 쇼크 업소버다. 탑승 드라이버를 포함한 경주차의 무게는 530kg. 96년까지는 에어 리스트럭터(경주차 오른쪽의 돌출된 부분)의 지름규정이 작아 최대출력 이 170~180마력에 불과했지만 97년부터 지름을 늘려 200마력 이상의 최대출력에서 250km의 최고속도가 나온다. 현재 F3 챔피언십에서 가장 인기를 얻는 엔진은 혼다, 도요다, 오펠, 르노 등이고 섀시는 이태리의 달랄라(영국 F3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모든 경주차가 사용하고 있다)가 독점하고 있다. F1의 많은 드라이버들이 F3 마카오 GP를 거쳐갔다. 서키트의 황제 고 A. 세나는 83년 영국 F3 챔피언십 시리즈 제16전 중 12승을 거둬 챔피언에 올랐고, 그 해 마카오에서 "왕 중 왕"에 오른 후 84년 F1에 데뷔해 94년 산마리노에서 지기까지 통산 31승, PP 65회, 월드 챔피언 3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94~95년 연속 월드 챔피언에 올랐고, 현역 최고 드라이버로 평가받는 M. 슈마허도 90년 마카오 GP에서 우승컵을 안았다. 이밖에 재키 스튜어트, 넬슨 피케 등을 비롯한 전설적인 스타들과 M. 하키넨, 쿨사드, 피지켈라, 알레지 등 현역 드라이버 대부분이 F3에서 맹활약을 했다. F3 개최가 국내에 끼치는 파급 효과 세계적인 스타의 산실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그랑프리는 국내에 어떤 영향을 줄까. 국내 모터 스포츠의 활성화라는 단순한 역할을 벗어나 크게는 2002년 월드컵까지의 틈새를 메우는 국가홍보의 전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마카오 GP는 142개국에서 1천839분간 방송되었다. 시청자가 10억 이상으로 추산되어 국가 홍보무대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152개의 신문과 잡지에서 413명의 취재진이 몰려 열띤 경쟁을 벌인 것을 포함하면 홍보효과는 더욱 커진다. 창원 GP는 한국에서의 첫 대회인 만큼 마카오 GP보다 많은 취재진이 몰리고 홍보효과도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챔피언십은 국내 모터 스포츠 마케팅에도 새바람을 불고 올 예정이다. 언론에 노출되는 횟수가 폭발적으로 많아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질 것이기 때문에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예상되고 자연스럽게 모터 스포츠계가 풍성해질 전망이다. 조직위원회의 협상력도 높이 살 만하다. 조직위원회는 유치과정에서 TV 중계권, 대회 로고권, 상품화 사업권 등 각종 마케팅 권한을 얻어내 무대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다. 조직위원회는 이미 해외 방송권과 관련해 스타 TV와 계약을 체결한 상태이고 국내 방송사와는 접촉중이다. 주최측은 8월말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그랑프리 홈페이지를 개설해 각종 상담과 다양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티켓은 9월 중 주최측이 지정한 공식 은행에서 판매한다. 티켓 판매 문의 ☎ 02 424-2951 국내 메이커와 드라이버 참가 F3 경주차는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규정을 따르고 있지만 소모품(타이어, 기름, 엔진오일 등)은 주최측에게 결정권이 있다. 때문에 진작부터 이 부분에 대한 관심이 컸다. 즉 정유와 타이어를 어떤 메이커가 공급하느냐 하는 것이 관심이었다. KARA의 강영태 실장은 "F3 조직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 정유회사를 선택할 것이다. 9월쯤 결정될 예정이어서 아직은 대답할 수 없지만 국내 메이커임은 확실하다. 이에 비해 성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타이어는 팀 매니저들의 반발(국내 타이어 메이커는 아직 F3용 타이어를 개발하지 못한 상태다. 프로팀이 국제적으로 인증받지 못한 타이어를 신는 것은 모험이어서 당연히 반발한다)이 거세 올해는 국내 메이커로 결정하기가 힘들다. 일본 요코하마 타이어가 쓰일 것으로 보이고, 다음 그랑프리부터는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국내 메이커 제품을 쓸 계획이다"고 밝혔다. F3 코리아 그랑프리에는 한국 드라이버 1~3명이 출전할 예정이지만 이 부분에서 참가 팀의 매니저들이 꺼리고(인터내셔널 창원 F3 코리아 그랑프리는 국내에서 열리는 F1800보다 상위 클래스다. 상위 팀이 하위팀과 레이스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있어 F3 조직위원회가 9월 중순에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한국 드라이버 선정은 국내 모터 스포츠에 대한 공헌도로 결정한다. 세계적인 시가지 코스 시가지 코스는 서키트에 비해 공사비가 적게 들어 경제성이 뛰어나다. 창원의 경우 시가지 코스를 만드는 데는 35억 원 정도가 들고, 서키트를 건설하려면 1천억 원 이상이 든다. 하지만 시가지 코스는 돈이 덜 들지만 연중 계속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단접이 있다. 현재 시가지를 서키트로 이용하는 곳은 F3는 마카오가 유일하고 F1은 모나코와 호주, CART는 호주의 골드 코스트 등이다. 모나코 몬테카를로 1950년 개막 테이프를 끊은 F1 GP와 함께 해온 곳으로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 길이는 3.328km(78주)로 저속 테크니컬 코스다. A. 세나가 87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총 6승을 거뒀고, G. 힐이 5승, M. 슈마허가 4승을 거두고 있다. 호주 맬버른 앨버트 파크 매년 F1 GP 개막전이 열리는 호주 맬버른의 앨버트 파크 서키트는 경기 때마다 코스가 조금씩 변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올 시즌 개막전은 총 길이 5.302km(57주). 득점 선두를 달릭고 있는 E. 어바인이 우승컵을 안았다. 호주 퀸즈랜드 골드코스트 올해 10월 17일 CART 제18전이 열리는 호주 퀸즈랜드의 골드코스트 시가지 서키트는 전구간이 직선에 가까워 스피드의 쾌감을 맛 볼 수 있다. 총 길이는 4.4704km. 코너는 12개다. 마카오 1954년 문을 열어 올해 46회를 맞는 마카오 GP 시가지에 보호벽과 관중석을 설치해 서키트를 만드는 데 총 길이는 6.125km나 된다. 결선은 오전과 오후(각각 15랩)로 나눠 치르고 시간을 더해 순위를 가른다. 지난해는 일본 F3 챔피언인 P. 덤브렉(영국)이 우승컵을 안았다. 태종기자.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그랑프리 경상남도 창원에서 .. 1999-09-29
지난 8월 18일 오전 11시 서울 프레스 센터에서는 내외신 기자 50여 명과 모터 스포츠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모터 스포츠 역사의 새 장을 여는 뜻깊은 보도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경상남도(도지사 김혁규)와 KARA(회장 정영조) 그리고 FIA의 F3 조직위원회(위원장 B. 브랜드)는 경상남도 창원시 두대동 특설 코스에서 올 11월 26~28일 첫 대회를 시작으로 2003년까지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그랑프리"를 개최하겠다고 발표해 국내 모터 스포츠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앞으로 5년 동안 경남 창원서 열려 FIA에서 전문 오피셜 파견해 진행 김혁규 경상남도지사를 대신해 개최 사실을 발표한 이덕영 행정부지사는 "우리 나라 최초로 세계적인 모터 스포츠 경기인 F3(배기량 2천cc 이하로 F1에 진출하기 위해 거쳐야 할 필수 코스)를 유치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창원을 세계적인 도시로 키우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한편 국제사회에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겠다"고 밝혔다. B. 브랜드 위원장은 "다른 나라는 수년 동안 기획해 유치할 수 있는 대회를 단 두 달만에 유치한 저력이 놀랍다. 시가지 코스는 코너와 직선로 등이 조화를 이뤄 매우 재미있게 구성되었다. F3 유치가 한국 모터 스포츠 발전에 도움이 되겠지만 관계자들에게는 악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철저한 준비가 뒤따라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시사했다. F3 개최는 경상남도와 KARA 그리고 FIA가 조인서에 사인을 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조인서는 "앞으로 5년 동안 창원에서 대회를 개최한다" "3자가 대회 성공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터내셔널 코리아 그랑프리 챔피언십은 00누가00 지난 1월 F3 조직위원회에 국내 개최 의사를 전달하면서 물꼬를 텄다. 신청서를 받은 F3 조직위원회는 한국과 경합하던 싱가포르및 동남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3월까지 선정작업을 마쳤고, 5월에는 B. 브랜드 조직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해 구체적인 코스 현황을 파악하고 대회 개최에 대한 1차 협의를 진행했다. 7월에 다시 한국을 찾은 B. 브랜드 위원장은 개최지를 경상남도 창원시로 최종 확정했다. 레이스가 열리는 창원시의 공민배 시장은 "51만 시민과 함께 성공적인 대회를 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50여 장의 서키트 설계도를 조직위원회에 보내 그 중 하나가 최종 결정되었다. 기본적인 작업들은 이미 시작되었고, 개최일 60일 전까지 완공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중이다"라고 밝혔다. 몽키 스패너를 닮아 "몽키 스패너 서키트"란 애칭으로 불리는 창원의 서키트는 총 길이 3.0km로 도로폭이 10~16m고 12개의 코너와 22개의 포스트가 있다. 주요 시설로는 컨트롤 타워(4층), 피트 시설 30개, 패독과 7~8천 석 규모의 그랜드스탠드 등을 갖추게 된다. 매끄러운 레이스 진행을 위해 FIA에서 30여 명의 전문 오피셜을 파견하고 이들이 국내 오피셜을 세 차례에 걸쳐 교육하게 된다. 국내 오피셜은 450명 정도(질서유지를 위한 250명 포함)가 될 예정이다. 각종 계측 시스템은 F1에서 사용하는 것을 빌려 쓸 계획이다. 창원에서 최종 F3 챔피언 결정 관광객 유치에도 한 몫 거들듯 F1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인 F3 레이스는 영국, 프랑스, 이태리는 물론 일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F3 레이스는 F1처럼 각국을 돌며 레이스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자국에서 챔피언을 가린 후 매년 11월 둘째 주 마카오(1954년 마카오 그랑프리를 시초로 올해 46회를 맞는다)에 30여 팀이 모여 "왕 중 왕"을 가린다.하지만 마카오의 위상은 지난해까지로 막을 내리고 올해부터 창원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챔피언십이 국제 F3 코리아 챔피언이 결정되는 최고 위치에 서게 된다.메인 이벤트 이외에 국내 투어링카A, 포뮬러1800 등의 레이스도 펼칠 예정이다. F3 GP는 예산만 60억 원 이상이 드는 대형 프로젝트로 스폰서가 없으면 치르기 힘든 행사다. 이번 대회에는 경상남도에서 20억 원, 창원시에서 10억 원을 내놓았고, 타이틀 스폰서(발표되지는 않았다)도 이미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주최측은 마케팅 수입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작업도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주최측은 JAF(일본자동차연맹, 회원이 1천500만 명)와 협조해 5~8만 명 정도의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고 여행사들은 패키지 관광상품 개발에 들어갔다. 대회기간 중에는 F3 경주차 퍼레이드를 비롯한 각종 콘서트, 각국 선수단과 관광객이 함께 하는 밀레니엄형 이벤트, 경품행사 등이 펼쳐진다. 참고로 마카오 GP 기간에는 15만 명 이상이 관전한다. "국내 모터 스포츠 활성화"와 "관광 한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챔피언십을 계기로 한국 모터 스포츠는 국제무대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평창군민들의 헌신적인 노력 뒤따라 국내 최초 랠리 성공.. 1999-09-29
지난 7월 23~25일 강원도 평창군에서 국내 최초의 공인 랠리(경기 기사는 8월호 참조)가 열렸다. 49대의 경주차가 출전해 기량을 겨룬 이번 랠리는 국내 모터 스포츠에서 처음 시도된 분야였고, 다양한 장르를 열어갈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많은 관심을 모았고 기대 또한 컸다. 이를 반영하듯 대회기간 중에는 50여 명의 보도진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고, 말레시아 국영 TV에서도 5명의 취재진을 파견해 경기를 취재,15분 동안 편집해 방송했다. 자원봉사 손길 랠리 전구간에 뻗어 험로에서 빛난 드라이버들의 우정 한국자동차경주협회의 정영조 회장은 "국내 모터 스포츠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만큼 뜻 깊은 대회였다. 이번 랠리를 계기로 코스 개발, 운영 노하우 축적 등 몇 가지만 보완하면 국제대회를 치러도 손색이 없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고 관전 소감을 밝혔다. 많은 관계자들도 "랠리의 가능성을 본 대회였다"고 평가했다. 이번 랠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창군민이 하나로 뭉쳐 행사를 치렀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로 구성된 오피셜은 안전한 경기 운영을 도왔고, 모범운전사들의 길 안내, 아마추어 무선통신사들의 정보제공 등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랠리 전구간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랠리가 끝난 후 권혁승 평창군수는 "군민과 AMCA, KARA 그리고 군청 관계자들이 힘을 모은 덕분에 무사히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첫 대회라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이번 랠리를 교훈 삼아 다음부터는 매끄럽고 볼거리가 많은 대회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평창 랠리는 스폰서가 나서지 않아 대회를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1억 원의 예산으로만 레이스를 마쳤다. 최근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이벤트는 7~8억 원이 들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럼에도 평찬군은 헤드쿼터를 군청으로 정해 경비를 줄이는 등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일구어냈다. 헤드쿼터를 호텔이나 리조트로 정할 경우 2~3일 동안 2~3천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해피 700 "99 평창 코리아 랠리 챔피언십은 풍성한 이야깃거리도 만들어냈다. 드라이버들은 험로에서 우정의 꽃을 피웠고, 모터 스포츠 관계자들은 처음 열린 랠리를 통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모터 스포츠는 차와 드라이버가 하나되어 시간으로 승부를 다투는 경기이므로 드라이버들은 한눈을 팔거나 지체할 여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번 랠리에서 드라이버들은 곤경에 처한 동료를 안타까워하며 자신의 시간을 쪼개 도와주는 우정을 보였다. 김정수(이글)는 SS3에서 코스를 벗어나 둔덕에 빠져 스스로의 힘으로는 탈출하지 못해 레이스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도움 덕택으로 김정수는 1시간 56분을 고생하고서야 겨우 SS3을 탈출,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 동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김정수는 레이스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도움의 릴레이는 계속되었다. SS2에서 엔진 트러블로 리타이어한 김종수(춘천 코뿔소)는 다른 엔진을 준비하지 못해 이튿날의 레이스에 출전하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김정수가 자신의 승용차인 슈마 엔진을 빌려주어 SS15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많은 드라이버들이 동료애 덕분에 곤경을 벗어났다. KARA와 AMCA는 "세계 랠리 유치 추진과제 선정을 위한 설문서"를 참가자들에게 돌려 눈길을 끌었다. 사실 그 동안 모든 레이스는 일회성 행사에 그쳤고, 레이스에 대한 평가는 일부 오피셜의 몫이어서 현장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KARA와 AMCA는 "설문서를 통해 모터 스포츠의 발전에 대한 드라이버들의 의견을 묻고 이를 바탕으로 협회를 운영하겠다"고 말해 드라이버들을 주인으로 대하는 자세를 보였다. 설문서를 받아 본 레이서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런 기회가 자주 있어야 했다. 그동안은 드라이버의 의견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우리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설문서를 다음 대회를 알차게 치르는 밑거름으로 활용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국제대회 유치 자신감 가져 코스개발,오피셜 양성 필수 그러나 평창 랠리의 무엇보다 값진 성과는 국제대회를 유치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F1 그랑프리와 함께 세계 모터 스포츠의 양대 산맥인 WRC는 프랑스, 포르투갈, 영국 등지에서 매 경기마다 300만 명 이상의 관중을 끌어 모으고 있다. 2000년부터는 수퍼 스페셜 스테이지를 TV로 방송(이전까지는 랠리의 특성상 전파를 타는 것이 불가능했다)하기로 해 그 인기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평창 랠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WRC다. 평창군은 비포장 도로가 300km나 되어 APRC나 WRC를 치르기에 손색이 없는 조건을 갖추었고 WRC도 아시아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외형적인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권혁승 평창군수는 "평창을 세계에 알릴 방법 중 모터 스포츠만한 것이 없다. KARA와 협의해 최소 다섯 차례 정도 레이스를 치른 후 국제무대로 나설 계획이다"라고 밝혀 WRC 유치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또한 KARA도 인터내셔널 포뮬러 레이스인 F3(2천cc 미만)를 유치한 후 다양한 국제경기를 개최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 WRC 유치에 적극 협조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제대회를 치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우선 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 개발이 필수다. 이번 랠리가 끝난 후 AMCA의 강태성 실장은 "첫 대회여서 안전에 신경을 쓰다보니 관전 포인트 개발이 미숙했다. 다음 대회부터는 보기 좋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코스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 오피셜 양성도 시급하다. 이번 대회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손을 빌렸지만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이 레이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전문성이 부족했고 약간의 잡음도 생겼다. 앞으로는 철저한 오피셜 교육으로 경기운영 노하우를 쌓아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계측 시스템과 각종 레이스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틀도 마련해야 한다.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이란 1911년 몬테카를로에서 시작된 랠리는 각 나라마다 고유한 전통에 따라 레이스를 펼쳤다. 나라마다 제각각이던 랠리가 통일된 규정으로 각국을 돌며 순회경기로 치러지기 시작한 것은 1973년. WRC의 시작이다. 첫해 WRC는 몬테카를로 랠리를 개막전으로 총 13회의 레이스를 펼쳤다. 90년대 초반까지 WRC는 유럽 메이커의 무대였다. 르노, 란치아, 아우디가 거물로 성장했고, 92년까지 포드가 한 차례 타이틀을 땄을 뿐 WRC는 유럽 메이커의 손아귀에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서는 도요다, 스바루, 미쓰비시를 앞세운 일본이 WRC의 강자로 자리를 굳혔다. WRC 위닝 클래스에 참가하는 경주차는 4WD에 터보를 달아 300마력 이상의 파워를 낸다. 현재는 미스비시 랜서 에볼루션Ⅴ, 도요다 카롤라, 스바루 임프레사, 포드 포커스 등이 위닝 클래스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새로운 규정(월드 랠리카는 50대만 만들어도 된다. 이전까지는 양산대수 2천500대 이상이어야 자격이 주어져 많은 메이커가 참가를 망설였다)이 적용됨에 따라 세아트, 스코다, 푸조가 올해 도전장을 던졌고, 티뷰론으로 F2 클래스에 참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도 2000년부터 풀 참전할 계획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를 위해 새 경주차를 개발중인데 베이스 모델은 베르나로 알려지고 있다. WRC도 F1처럼 활동무대를 아시아로 넓혀가고 있다. 인도네시아(지난해 치를 예정이었지만 정쟁으로 무산)가 거론되다가 올해는 중국에서 9월 17~19일 제11전을 열기로 했다. 체계를 갖추기만 하면 평창도 WRC의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WRC에 대한 유럽인들의 사랑은 열광적일 정도다. 경기마다 300만 명 이상의 구름떼 관중이 모여들고, 영국 랠리는 시청자가 1천140만여 명이나 된다. 97년 총 13전을 기준으로 국가별 관중을 보면 1경기에 1천270여만 명이 랠리를 관람했다. 전세계 시청자수는 130억을 웃돌고 있다.
박정룡,국내 최초의 공인 랠리 왕좌 오르다 - 42대 .. 1999-08-29
국내 최초의 공인 랠리인 "해피 700 평창 "99 코리아 랠리 챔피언십"이 지난 22일 코스답사를 시작으로 23일 검차, 24일 제1레그, 25일 제2레그를 치렀다. 거리는 평양군청을 기종점으로 하는 총거리 299.06km, SS는 15개 75.78km였다. A1 클래스 강호들 줄이어 출사표 티뷰론, 슈마 제치고 최고 경주차 랠리 참가자를 보면 톱클래스인 A1(배기량 2천cc 이하) 9대, A2(배기량 1천600cc 이하) 16대, 원메이크 클래스인 N3 9대, 4WD 8대다. 위닝 클래스로 관심의 대상인 A1은 박정룡(인터내셔널), 배수오(대우), 임재서(리갈) 등 해외 랠리 경험이 있는 드라이버들과 김정수(이글), 김종수(코뿔소), 정재순 등 강호들이 출사표를 던져 불꽃 경쟁을 예고했다. 특히 박정룡은 호주 출신 D. 롱을 코드라이버로 맞아 우승에 대한 집념을 불태웠다. N3 클래스는 모녀관계인 김태옥(인터내셔널)과 최명희가 함께 출전해 눈길을 끌었다. 24일 제1레그는 평창군청을 떠나 평창 유스호스텔과 면온마을, 종합운동장을 거쳐 돌아오는 총거리 111.76km. 7개 SS 35.98km였다. 랠리는 첫 SS부터 1번 시드를 받은 김태종이 유리했다. 평창군의 토질은 모래 성분이 많은 마사토. 이 때문에 첫차가 지나면서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고, 뒤따르는 드라이버는 안개 속에서 거북이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김태종이 SS 5곳을 제압하며 첫 레그를 마쳤다. 김태종, 김태종이 뒤를 이었고, 경험미숙과 경주차 트러블로 첫 레그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탈락한 드라이버는 김태종을 비롯한 0명이었다. 관심을 모은 김태옥, 최명희조는 N3 클래스 0위, 종합 00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다음날 제2레그는 아침 6시 첫 스타트를 끊었다. 총 거리는 187.30km, 가리왕산 휴게소와 막동삼거리, 종합운동장에서 수퍼 스페셜 스테이지를 치르고 평창군청으로 되돌아오는 8개 SS에 거리는 39. 80km. 전날의 순위에 따라 김태종이 처음 스타트 라인을 벗어났다. 김태종은 SS 0곳에서 톱타임을 기록하는 거침없는 달리기로 국내 최초의 공인 랠리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김태종은 종합우승과 A1 클래스 우승을 동시에 거머쥐어 상금 550만 원을 챙겼다. A2 클래스는 김태종, N3 클래스는 김태종이 우승컵을 안아 각각 250만 원과 2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번 랠리의 성공을 위해 지난 6월 27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오피셜 교육을 실시하는 등 심혈을 기울인 주최측은 경기진행이 전반적으로 매끄러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창군청은 모든 경주차와 서비스차가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건설교통부의 협조를 얻어 임시번호판을 나눠주었고, 경찰이 교통정리를 하는 등 대회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왔다. 해피 700 평창 코리아 랠리 챔피언십은 타이어 메이커의 경쟁도 불을 뿜었다. 한국타이어는 벤투스R, 금호타이어는 R700을 내놓고 한판 승부를 벌였다. 결과는 금호타이어의 승리. 두 메이커는 승부를 떠나 랠리 기간 동안 서비스차를 운영하며 공기압 체크, 타이어 교환 등을 해주어 드라이버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경주차는 티뷰론의 압승으로 끝났다. 오프로드 시리즈에서 슈마는 티뷰론을 누르고 절대 강자의 자리에 섰지만 김태종의 티뷰론은 슈마를 가볍게 잠재우며 랠리 최고의 경주차로 떠올랐다. 출전이 예상되었던 누비라2 해치백은 참가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취재진 100여 명 몰려 뜨거운 열기 실감 10월 1~3일 평창군에서 제2전 열릴 듯 언론의 관심도 대단했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 TV인 "스포츠 TV"가 랠리의 전 과정을(?) 녹화해 방영했고, KBS의 6시 내고향(오후), MBC의 아침뉴스 2000(오전 7시)에 26~27일 전파를 탔다. 말레이시아의 국영 TV인 채널3은 5명의 스태프를 파견해 경기를 취재, 15분 동안 편집해 방송했다. 프레스 센터에 등록한 취재진이 100여 명이 넘어 뜨거운 취재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타이틀 스폰서가 나서지 않아 주최측이 준비했던 다양한 문화행사가 취소되거나 규모가 줄었음에도 관전 포인트마다 많은 랠리 팬이 몰려들어 제2전(10월 1~3일 예정)은 좀더 풍성하게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제2전 때는 코스를 더 개발할 예정이다. 랠리를 마친 후 강태성 조직위원장은 "국내에서 처음 열린 랠리라 미숙한 점도 많았지만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스태프와 함께 랠리 전반에 걸친 검토를 마친 후 다음 대회는 더욱 알차게 치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주최측은 이번 랠리를 시작으로 국내 랠리의 수준을 APRC, WRC 등을 유치할 수 있을 정도로 끌어올리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어, 한국 모터 스포츠가 온로드와 오프로드 레이스라는 단순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열어가게 되었다.
창원~금강산 랠리-남북 화해 무드의 전령이 될 금강산.. 1999-04-27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모터 스포츠 관련 호재가 많다. 특히 5월 초 치러질 예정인 창원~금강산 랠리는 한국 모터 스포츠의 앞날에 파란불을 예고하고 있다. 모터 스포츠가 남과 북을 이어 화해와 평화 무드를 조성할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봄바람에 실려온 창원~금강산 랠리 뉴스는 모터 스포츠 관계자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경상남도와 (주)대우가 후원하고 한국자동차경주협회가 공인할 것으로 알려진 창원~금강산 랠리는 97년 말 이벤트업체인 (주)우인방커뮤니케이션(대표 우창봉)이 타당성 조사를 거쳐 북한측의 조선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김용순)와 공동으로 열기로 합의했다. 우인방은 북한측의 우호적인 태도에 힘입어 올해 2월 중순 통일부의 정식 사업승인을 받았다. 5월 9일부터 3박 4일간 치를 예정 외국인 드라이버도 2~3명 참가하고 우인방의 관계자는 “북한측과 큰 줄거리는 합의를 보았지만 공식발표는 세부적인 계약이 체결된 후에 하겠다. 일부 언론이 먼저 발표해 북한측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북한측의 확인서와 통일부의 최종사업승인서를 받아 외환사용허가를 받아야만 정확한 일정을 잡을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서 북한측에 돈을 주었다고 한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얘기했다. 대회준비위원회는 세부적인 줄거리가 합의되면 5월 9~12일 랠리를 치르기로 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결정이 되어도 시간이 너무 촉박해 대회를 치르기는 힘들다. 일정은 조금 늦춰지겠지만 기본 계획이 변할 것 같지는 않다. 계획안에 따르면 5월 8일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전야제를 치르고, 이튿날 9일 창원도청 앞 광장에서 SS1을 연 후 곧바로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로 이동한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는 2개의 SS가 마련되어 있다. SS를 끝낸 후 춘천 모터 파크로 이동해 1박을 한다. 다음날 춘천시 일대 오프로드 18km의 SS를 마친 후 모터 파크에서 한 두 차례 SS를 치르고 속초로 옮겨 오후 10시쯤 바지선을 이용, 다음날 장전항에 도착한다. 북쪽에서는 금강산 일대에 이미 만들어진 4~6 SS의 코스를 하루 동안 답사한다. 대회 마직막날인 4일째는 레이스를 치른 후 페회식을 갖고 장전항을 출발, 속초에 도착한 후 해단식을 가질 예정이다.섣부른 보도로 일정 늦춰지고 있어 남북 화해 무드에 한 몫 담당하고 이처럼 랠리 코스는 남한구간만 560km를 넘는 대장정이고, 뱃길을 더하면 일정이 매우 촉박하다. 따라서 대회준비위원회는 참가자를 2천cc 이하 클래스가 참가하는 투어링카A 15팀, 1천600cc 이하 15팀으로 제한할 예정이다. 참가자는 별도의 예선전을 치르는 방안과 ’99 한국오프로드 챔피언십 시리즈 제1, 2전의 결과 둘 중 하나로 결정된다. 창원~금강산 랠리가 국제적인 관심 속에 열릴 수 있도록 FIA가 공인할 예정이어서 외국인(동남아시아쪽이 유력) 드라이버 2~3명도 참가, 국내 드라이버는 26~27명(코드라이버를 포함하면 52~54명)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속초에서 북한으로 입국하는 관계자는 드라이버와 코드라이버, 통합지원팀, 보도진을 합해 150명 이내에서 결정된다. 참가팀은 참가비로 20~30만원을 내야 하고 상금은 총 2천500만원이다. 투어링카A는 5위까지, 그룹N카는 1위만 시상한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북한측의 태도다. 우인방 관계자는 “일부 언론이 보도를 조금만 자제해 주었다면 3월 24일 이전에 확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도내용과 관련해 북한측을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랠리를 한 번도 치러본 경험이 없어 돌발사고에 대한 위험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600km 이상을 달려야 하므로 경주차의 내구성도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3박 4일 동안 들어가는 경비도 만만치 않다. 이밖에 우인방 이외에 5개 정도의 업체가 공동참여하고 있어 의견접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점도 걸림돌이다. 한 관계자는 “모든 여건을 생각해 보면 일정이 늦춰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세계가 눈여겨 보는 프로젝트인 만큼 철저히 준비해 알차게 치를 생각이다. 시간에 쫓겨 엉성한 대회가 되어 버리면 안 된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국내에서 합동 연습을 가질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창원-금강산 랠리가 갖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남북 화해 무드에 모터 스포츠가 한 몫을 담당하는 것 외에도 북한이 3시간 정도의 시차를 두고 TV 방송을 허가해 성공여부에 따라 모터 스포츠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창원-금강산 랠리가 ‘통일의 염원’을 품고 달렸으면 한다.
이수화학전 곽성길 초대 챔프 등극 - 겨울철 모터 스포.. 1999-03-24
올시즌 모터 스포츠가 지난 2월 6~7일 이틀 동안 강원도 평창군 특설경기장에서 `99 이수화학컵 스노카 레이스로 문을 열었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회장 박권흠)가 주관하고 대관령 눈꽃축제 조직위원회(위원장 이대영)가 주최한 스노 레이스는 35대의 경주차(모아모아전과 이수화학전 2개 클래스)와 19대의 4WD가 참가해 기량을 겨뤘다. 스노 레이스는 국내에서 처음 열린 겨울철 카 레이스. 노면이 얼어 차가 달리기 힘든 계절에 펼쳐진 레이스라서 모터 스포츠 매니어는 물론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더욱이 ’99 동계 아시안게임 폐막 직후 ‘대관령 눈꽃축제’와 함께 열린 결선(2월 7일)은 몰려든 관중과 함께 언론의 집중조명도 받았다. 레이스는 99년 동계 아시안 게임 때 노르딕 경기를 치른 특설경기장에서 열렸다. 카 레이스는 적당히 언 노면에 많은 눈이 덮여 있어야 하므로 주최측은 1억5천만여원을 들여 인공눈을 뿌리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하지만 경기는 순탄하지 못했다. 오피셜은 스노 레이스를 치러 본 경험이 없어 진행이 서툴었고, 출전차도 성능이 좋지 않아 트랙 곳곳에 멈추어 섰다(2WD, 원메이크 차는 LSD가 없어 눈길에 빠지면 한쪽 바퀴만 돌아 탈출이 불가능했다). 주최측은 원만한 진행을 위해 오르막을 포함한 원래 코스 대신 짧고 평평한 타원형 트랙을 급조해야만 했다. 줄어든 코스 덕에 관중들은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를 한눈에 관전할 수 있었지만 길이 400m, 폭 13m밖에 되지 않는 코스에서 경주차가 스핀과 추돌을 일으켜 부서지는 등 손실이 매우 컸다. 참가자가 적은 이수화학전은 예선으로 출발 순서를 정한 후 곧바로 결선(20분)을 치렀지만, 모아모아전은 예선, 준결승전을 거쳐 결승전을 치렀다(준결승 10분, 결선 20분). 길이가 짧고 노면상태가 나쁜 코스에서 많은 경주차가 예선과 결선만으로 승부를 가릴 경우 실력보다 운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스노카 레이싱의 메카로 만들겠습니다" 이대영 대관령 눈꽃축제는 93년부터 평창군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해 발전시켜온 주민축제로 올해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한국 10대 문화축제로 성장했다. 매번 눈과 관계되는 새로운 이벤트를 찾아 개발해낸 노력이 오늘의 성공을 있게 한 바탕이다. 스노카 레이스도 눈꽃축제의 한 분야로 기획되었다. 준비위원회는 언론을 통해 모터 스포츠를 접하면서 스노카 레이싱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번 대회에 프로모터로 나선 APA와 의견을 나누면서 기획을 구체화시켰다고 한다. 이대영 눈
한국 모터챔피언십 제5전 결과 1999-08-29
한국 모터챔피언십 제5전 결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1주 2.125km, 기록은 시간, 분, 초, 1/100초 (투어링카A/B 30랩, 원메이크A 15랩, 원메이크B,10랩,포뮬러 25랩) ` 클래스 순 위 드라이버 소속팀 경주차 타이어 기 록 투어링카A 1 김의수 인디고 티뷰론 금호/V800 38. 48. 603 2 정소민 베스트-M 티뷰론 금호/V800 39. 00. 313 3 장순호 오일뱅크 티뷰론 한국/블랙파이터 39. 02. 748 현대전 1 구완회 이글 엑센트 한국/블랙파이터 20. 37. 711 2 오일기 이글 엑센트 한국/블랙파이터 20. 38. 186 3 신동길 던킨 스쿠프 금호/V800 20. 42. 252 기아전 1 조재희 로드아트 아벨라 금호 21. 03. 798 2 이병준 보라매 아벨라 금호/V800 21. 12. 939 3 윤현준 발보린 레이싱 캐피탈 금호/V800 21. 20. 831 대우전 1 곽창순 개인 로미오 금호/V800 20. 41. 734 2 최재호 위니아 라노스 금호/V800 21. 12. 417 3 최경호 경인모터스 르망 금호/V800 21. 52. 218 원메이크B 1 강경필 마루아치 스쿠프 한국 15. 30. 174 2 김윤기 마우아치 스쿠프 한국/블랙버드 15. 42. 304 3 이은혁 발보린 레이싱 엑센트 한국 15. 43. 030 포뮬러전 1 윤세진 오일뱅크 포뮬러 현대 한국/벤투스 28. 35. 581 2 신일성 오일뱅크 포뮬러 현대 한국/벤투스 28. 36. 815 3 조경업 인디고 포뮬러 현대 한국/벤투스 28. 38. 537 `
포뮬러 1800, 김시균 사고로 병원 후송 - 신일성 .. 1999-11-28
28일 오전 9시 20분 F3 경주차들의 워엄 업을 시작으로 인터내셔널 F3 코리아 그랑프리 결선의 막이 올랐다. 첫 결선 라운드는 오전 10시의 포뮬러 1800. 27일 예선 결과에 따라 신일성(오일뱅크), 사가구치 료헤이 등이 그리드에 터를 잡았다. 스타트와 함께 신일성을 선두로 서키트에 뛰어 든 경주차들의 질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헤어핀에서 도시히테 오카모도의 경주차가 김시균의 왼쪽 뒤바퀴를 타는 사고가 일어났다. 각포스트에서는 곧바로 레이스 중단을 알리는 적기가 발동했고, 나머지 경주차들은 예선 결과대로 그리드에 재정렬. 한편 오카모토 도시히데는 곧바로 안전지대로 피신했지만 김시균은 안전요원의 도움을 받아 운전석에서 나온 후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정확한 사고부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머리와 목 부분에 상처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레이스는 코스 정리가 끝난 10시 15분부터 포메이션 랩 후 재출발. 신일성, 사가구치 료헤이, 이지리 가오루의 3파전이 펼쳐져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신일성의 노련하고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사가구치 료헤이, 이지리 가오루의 공략세를 막아내며 폴투 피니시를 거뒀다. 한편 레이스는 예정 된 12랩보다 3랩이 줄어 든 9랩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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