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모터스포츠

WRC 최종 제13전 영국 랠리 - 시트로앵 더블 타이.. 2011-01-25
세계랠리선수권(WRC) 2010 시즌은 7연속 챔피언 S. 로브(시트로앵)의 압승으로 끝났다. 시즌 13전 중 8승, 막판 3연승으로 2L 랠리카시대의 최종전을 휘어잡았다. 최종전 3위에 그친 BP 포드의 라트발라가 P. 솔베르그(솔베르그 WRT)와 S. 오지에(시트로앵)를 제치고 랭킹 2위로 올랐다. 169점의 솔베르그는 영국전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2점차로 라트발라(171)에게 무릎을 꿇었다. 한데 최종전의 저주는 오지에(167)를 덮쳤다. 토요일 오전 충돌로 탈락하는 바람에 단 1점도 얻지 못하고 랭킹 2위에서 4위로 굴렀다. 2011년 타이틀을 노리는 오지에의 뼈아픈 실책. 시트로앵 주니어의 D. 소르도(150)와 BP 포드의 M. 히르보넨(26)이 랭킹 5, 6위로 시즌을 마쳤다. 매뉴팩처러에서는 시트로앵(456)이 라이벌 BP 포드(337)를 119점차로 압도한 가운데 시트로앵 주니어(217), 스토바트 포드(176)와 문치즈 포드(58)가 뒤따랐다.  라트발라 펑크, 로브 선두로11월 12일 금요일. 시즌 최종 제13전 영국 랠리가 시작되었다. 제1레그는 카디프 발착거리 595.10km, 7개 스페셜 스테이지(SS 1~7) 130.26km에서 열렸다. 하루 전인 11월 11일 목요일, 카디프에서 1개 수퍼스페셜을 치렀기 때문에 이날은 6개 스테이지를 소화했다. 최종 스테이지에서 J. 라트발라(BP 포드)가 펑크로 1분을 지체하는 사이 S. 로브(시트로앵)가 선두로 치고 나갔다. 라트발라는 마이헤린 스테이지에 앞서 로브를 4.5초차로 따돌리고 선두를 달렸다. 한데 길가 둔덕을 들이받고 타이어가 펑크, 뒤로 밀려났다. 반면 로브는 바로 2개 스테이지 앞선 하프렌에서 4위로 내려앉았다. 이날 오전 1차 공격 때 경주차가 남긴 바퀴자국에 고인 깊은 빗물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 하지만 시트로앵 에이스는 잽싸게 전력을 회복해 스위트 램과 마이헤린 스테이지를 잡았다. 이제 로브의 최근접 도전자는 P. 솔베르그(솔베르그 WRT)뿐. 오후에 기어고장으로 고전했지만 로브를 1.8초차로 맹추격했다. 시트로앵 제2 드라이버 S. 오지에도 선두와 3.6초차. 하프렌을 잡아 선두 경쟁에 뛰어들었다. M. 히르보넨(BP 포드)은 자그마치 42.4초차의 4위. 하프렌에서 스핀한 D. 소르도(시트로앵 주니어)를 6.7초 앞섰다. 포드군단의 랭킹 선두 J. 라트발라가 6위로 내려앉았다. 스토바트 듀오 H. 솔베르그와 M. 윌슨이 추격전을 벌이는 가운데 스바루의 프라이비터 M. 오스트베르그와 K. 라이코넨(시트로앵 주니어)이 10위권에 들었다.11월 13일 토요일. 제13전 2레그는 카디프 발착거리 570.16km, 9개 SS(7~16) 138.56km. 빛나는 전과로 2011년 시트를 찾아야 하는 프라이비터 P. 솔베르그가 챔피언 S. 로브를 4.8초차로 따라붙었다. 이날 오후 로브는 3개 스테이지에서 연승. 선두를 노리다 크라이핸에서 고속 스핀에 걸린 솔베르그를 6.7초 앞질렀다. 이에 맞서 솔베르그는 하프웨이 스테이지를 따내고 로브와의 격차를 줄였다. 그러자 로브는 다시 카디프의 수퍼스페셜을 잡아 0.2초를 추가했다. 이때 워크스 포드의 J. 라트발라가 팀동료 M. 히르보넨과의 간격을 8.6초 이내로 줄였다. 포드 듀오는 시즌 마지막 시상대를 놓고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라트발라는 적어도 3위로 솔베르그와 S. 오지에를 꺾고 시즌 랭킹 2위를 노린다. D. 소르도(시트로앵 주니어)가 5위. 스토바트 듀오 H. 솔베르그와 M. 윌슨이 차분하게 6, 7위를 지켰다. 이날 스프링 파손으로 고전했던 K. 라이코넨(시트로앵 주니어)은 다시 8위로 하락. M. 오스트베르그(아답타)는 바위를 들이받고 뒤로 밀렸다. 한편 몬스터 포드의 K. 블록은 드라이브샤프트 고장으로 10위에서 완전 탈락했다. S2000의 선두 A. 미켈센(체코 슈코다)이 득점권을 채웠다.  챔프 로브, 최종전 잡아 13전 8승 11월 14일 일요일. 제13전 최종 3레그 카디프 발착거리 376.56km, 4개 SS(17~20) 76.14km. S. 로브(시트로앵)가 월드랠리카 최종전을 승리로 장식했다. 시즌 13전 8승. 7회 세계 챔피언은 P. 솔베르그를 19.1초차로 여유 있게 꺾었다. 아울러 솔베르그는 시즌 랭킹 2위를 J. 라트발라(BP 포드)에게 빼앗겼다. 라트발라는 팀동료 M. 히르보넨을 제치고 최종전 3위로 랭킹 2위를 잡았다. 한편 랭킹 2위를 확신하던 시트로앵의 야심가 S. 오지에가 토요일 오전 충돌로 탈락, 라트발라에게 행운을 안겼다. 한편 2003 챔피언 솔베르그는 로브 뒤집기에 총력전을 펼쳤지만 최종전의 영광을 로브에게 바쳤다. “정말 어려운 싸움이었다. 랠리 초반 페터(솔베르그)는 아주 빨랐다. 거의 실수를 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주 빠른 드라이버다. 나는 최종전을 한껏 즐겼다.” 로브의 우승 소감이었다. 한편 D. 소르도가 선두 5위권에 진입, BP 포드 듀오 라트발라와 히르보넨을 바싹 추격했다. 동시에 스토바트 포드의 H. 솔베르그와 M. 윌슨을 2분 이상 여유 있게 따돌렸다 K. 라이코넨은 앞뒤 2분의 간격을 두고 순항한 뒤 8위로 골인. 고난의 행군이었던 한 시즌을 조용히 접었다. M. 오스트베르그(아답타)가 고전 끝에 9위. S2000 클래스의 승자 A. 미켈센(체코 스코다)이 득점권을 마무리했다.   WRC는 2011년 2월 11~13일 개막전 스웨덴 랠리를 기약하고 2010 시즌 및 2.0L 시대의 막을 내렸다.
자동차 메이커의 F1 이야기 - 공공도로와 F1을 섭렵.. 2011-01-25
Ferrari두말 할 필요 없는 최고의 브랜드. F1과 스포츠카를 아우르는 그들의 화려한 역사와 카리스마는 많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F1 인기에 상당부분을 페라리가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울러 스포츠카 분야에서의 명성 또한 절대적이다.  페라리의 역사는 드라이버 출신의 엔초 페라리가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설한 19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에는 알파로메오의 세미 워크스팀으로 활동하다가 알파와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독립,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페라리라는 이름으로 차를 만들 수 있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1950년 창설전부터 F1에 참여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빠져본 적이 없는 ‘F1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알베르토 아스카리가 최초의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 이래 지금까지 무려 15번의 드라이버즈 챔피언과 16번의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을 차지한 명실상부한 F1 최고의 팀. T. 누볼라리, J. M. 판지오, P. 힐, J. 서티스, J. 아약스, M. 안드레티, N. 라우다, G. 빌르너브, N. 만셀, A. 프로스트 그리고 M. 슈마허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거쳐간 드라이버 역시 화려하다. 엔초 페라리는 F1의 막대한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카를 만들어 팔았는데, 첫 도로형차는 1947년의 125S. 초창기 페라리는 디자인이나 마무리가 그리 깔끔하지 못했지만 피닌파리나가 디자인을 담당하면서 성능에 어울리는 멋진 스타일을 완성하게 되었다. 최신예 458 이탈리아는 이전까지 ‘베이비 페라리’ 이미지를 벗어나 CO₂ 배출을 줄이면서 준 수퍼카급 성능을 확보해 미래형 페라리로 거듭났다. V8 4.5L 직분사 570마력 엔진으로 최고시속 325km를 낸다.Mercedes-Benz메르세데스 벤츠는 고급차와 특장차로 유명하지만 모터스포츠 부문에서도 역시 오랜 역사와 화려한 전적을 자랑한다. 30년대 유럽 그랑프리 무대를 휩쓸며 실버 애로우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던 주인공 중 하나. 2차대전 이후에는 1954년 W196으로 F1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원래 마세라티를 타던 J. M. 판지오가 시즌 도중 이 차로 갈아타고 그해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올랐다. 이듬해 같은 차를 타고 판지오와 S. 모스가 출격해 챔피언과 2위를 차지했다. 1955년 르망에서 있었던 대참사의 책임을 지고 메르세데스 벤츠는 모터스포츠에서의 전면적인 퇴진을 선언했다. 그리고 거의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1993년 F1 무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워크스팀이 아닌 자우버팀 엔진 공급업체로서의 자격이었다. 실제 제작을 담당한 일모어는 현재 메르세데스 벤츠에 인수되어 메르세데스 벤츠 하이 퍼포먼스 엔진으로 이름을 바꾼 상태. 제작은 일모어에서 했지만 ‘Concept by Mercedes-Benz’라는 문구가 사용되었다. 95년부터는 맥라렌에 공급해 97년 오스트레일리안 GP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로서는 1955년 이태리 GP 이후 무려 42년 만의 우승이었다. 1998년에는 드라이버즈와 컨스트럭터즈 양대 타이틀을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미카 하키넨이 연속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올랐지만 전반적으로 페라리와 슈마허의 위력에 밀리는 분위기였다. 더구나 2005년 르노가 알론소를 영입하며 분위기는 더욱 안 좋아져 2006년에는 한번도 우승을 챙기지 못했다. 하지만 신예 L. 해밀턴이 2008년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올랐고, 지난해 말 챔피언 팀인 브라운 GP를 사들여 워크스팀 메르세데스 GP를 창설했다. 7회 챔피언에 빛나는 M. 슈마허가 메르세데스 GP로 복귀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해 성적은 변변치 않았지만 팀이 안정되고 새로운 경주차가 투입될 내년에는 변화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Porsche페라리와 함께 스포츠카 분야에서 높은 명성을 누려온 포르쉐. 독일 특유의 정밀함과 신기술, 독특한 RR 레이아웃와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완성된 대표작 911은 1963년 등장해 지금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포르쉐 하면 르망 24시간 레이스가 먼저 떠오르지만 F1에서도 적지 않은 활약을 펼쳤다. 1950년대 F2 머신을 개발한 경험을 살려 1961년 F1 머신을 개발한 포르쉐는 초창기 전적이 그리 화려하지 않다. 1962년 덴 거니가 포르쉐 804로 프랑스 GP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 유일한 우승 전적. 하지만 1980년대 들어 TAG그룹의 의뢰에 따라 F1 엔진 개발에 나서 맥라렌 팀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1983년 투입되기 시작한 TAG-포르쉐 엔진은 맥라렌에 날개를 달아주어 84~85년 컨스트럭터 챔피언과 84, 86년 드라이버즈 챔피언을 차지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F1에 전력투구한 페라리와 달리 포르쉐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더 큰 활약을 보였고, 각종 내구레이스와 랠리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Honda1946년 설립, 자전거용 엔진을 만들기 시작한 혼다가 소형 트럭 T360으로 자동차시장에 발을 들인 것이 1963년. 당시 흔했던 기술협력 없이 자력으로 자동차를 만들던 혼다가 1964년 F1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모두 미친 짓이라며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65년 벨기에 GP에서 첫 포인트를 따더니 멕시코 GP에서 역사적인 첫승을 올렸고, 67년 이태리 GP에서 두 번째 우승컵을 차지했다. 혼다의 F1 역사 제1기는 1968년에 막을 내렸다. 83년부터 엔진 공급업체로 다시 F1에 복귀한 혼다는 스피릿, 윌리엄즈팀과 손을 잡았다. 86년과 87년 윌리엄즈가 혼다 엔진을 얹고 연속 더블 챔피언에 올랐고 새로운 파트너 맥라렌과 함께 88~91년 시즌을 휩쓸었다. 92년 시즌 이후 퇴진할 때까지 80년대 말~90년대 초 F1에서 혼다 파워는 무적이었다. 5년 뒤 BAR팀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1998년 되돌아온 혼다는 2004년 팀을 인수해 약 35년 만에 워크스 체제를 다시 꾸렸다. 하지만 우승은  2006년 헝가리 GP(J. 버튼)가 유일하다. 이후 성적부진과 금융위기에 휩쓸려 2008년 말 다시 F1에서 퇴진을 선언했다. 이 팀을 1파운드에 사들인 당시 감독 로스 브라운은 메르세데스 엔진을 얹어 이듬해 더블 챔피언을 차지하는 이변을 낳았다. BMWBMW의 F1 활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오래되었다. 자우버를 사들여 워크스팀을 만들기 한참 전부터 엔진 공급자로서 활약해왔다. BMW는 이미 1952년과 53년에 328 섀시를 사용한 경주차로 독일 GP에 출전했다. 60년대에는 롤라제 F2 섀시에 BMW 엔진을 얹어 투입했는데, 69년 대형 사고가 나면서 F1에서의 퇴진을 결정한다. 1977년 르노가 F1 최초의 터보 엔진을 선보이자 BMW는 엔진 공급자로서 F1 복귀를 검토해 직렬 4기통 1.5L 터보 엔진을 개발했다. KKK제 터보차저와 보쉬 연료분사장치를 단 1.4L 엔진 M12/13은 1982년부터 88년까지 5개 팀에 공급되었다. 특히 브라밤이 가장 성적이 좋았는데 83년 넬슨 피케가 드라이버즈 챔피언, 컨스트럭터즈 3위에 올랐다. 당시 브라밤팀은 현 FOM 회장 버니 에클레스턴이 대표였고 고든 머레이가 기술감독(현 맥라렌 기술감독)이었다. 터보 엔진 금지와 함께 잠시 F1 활동을 접었던 BMW는 10년 만인 2000년 윌리엄즈팀에 엔진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2002년과 2003년 컨스트럭터즈 2위까지 올랐지만 점차 하향세를 그렸고, 2005년 자우버팀을 사들여 2006 시즌부터는 워크스팀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아 2008년 쿠비자가 캐나다에서 거둔 승리가 유일한 우승 기록이고 컨스트럭터에서는 2007년 2위가 최고였다. 경제위기 등의 이유를 들어 200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퇴진했다.  McLaren양산차 최초의 카본 섀시로 이름을 남긴 맥라렌 F1은 사실 F1 그랑프리에서 더 유명한 명문 팀 맥라렌의 작품. 페라리가 F1 최고의 팀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면 두 번째 자리 역시 의심할 여지없이 맥라렌의 차지다. 쿠퍼팀 드라이버였던 뉴질랜드인 브루스 맥라렌의 의해 1960년 창설된 맥라렌팀은 뉴질랜드 타스만 시리즈를 시작으로 1966년 모나코 GP를 통해 F1에 발을 들였다. 팀의 첫 우승은 1968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였는데, 팀 오너이자 드라이버였던 브루스 맥라렌이 주인공이 되었다. 부르스 맥라렌은 캔암 레이스(Can-Am) 경주차를 테스트하던 도중 굿우드 서킷에서 사고를 일으켜 사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팀은 1974년 에머슨 피티팔디를 영입해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즈 양대 타이틀을 휩쓸었고 지금까지 모두 8번의 컨스트럭터즈 챔피언과 12번의 드라이버즈 챔피언을 차지하는 활약을 보였다. 맥라렌의 이름이 붙은 첫 양산차는 1980년 포드와 함께 개발해 10대만 만들었던 포드 머스탱 M81 맥라렌. 1992년에는 맥라렌의 이름을 수퍼카 역사에 확실하게 각인시킨 전설적인 이름 맥라렌 F1을 선보였다. F1 디자이너 고든 머레이가 설계한 이 차는 첨단 공력 설계와 운전석이 차체 중심에 오는 독특한 3인승 레이아웃을 지녔다. BMW가 개발한 V12 6.1L 550마력 엔진을 미드십에 얹고 최고속도 372km, 리미터를 제거하면 390km까지 가능해 오랫동안 양산차 최고속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한동안 메르세데스 벤츠의 고성능차 SLR 맥라렌 개발과 제작에 참여했던 맥라렌은 최근 독자 모델인 MP4-12C를 선보였다. 페라리 458 이탈리아를 누르고 스포츠시장에서도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맥라렌의 야심을 담고 있다. 카본 모노셀이라는 혁신적인 카본 섀시 뒤쪽에 독자개발한 V8 3.8L 트윈 터보 592마력 엔진을 얹었고 듀얼 클러치 기어박스(SSG)와 브레이크 스티어 등 F1에서 도입한 첨단기술로 무장했다. 현재 공장을 건설 중으로 내년부터 양산을 시작한다. Renault르노삼성의 모기업 르노는 1899년 창업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프랑스 자동차 메이커. 자동차 역사뿐 아니라 자동차 레이스 역사 초창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F1에 데뷔한 것은 1977년으로 당시 F1 최초로 터보 엔진을 투입해 화제가 되었다. 1979년 프랑스 GP에서 F1 터보엔진차 최초의 우승기록을 남겼고 1983년에는 챔피언 타이틀 쟁탈전에도 나섰지만 막판 신뢰성 부족으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80년대 중반 모기업의 경영부진으로 워크스팀을 그만 두고 엔진 공급자로만 활동하기 시작했다. 공압식 밸브를 갖춘 르노 엔진은 윌리엄즈 머신이 1992년부터 94년까지 3년 연속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을 따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98년부터 잠시 활동을 접었던 르노는 베네톤팀을 인수하는 형식으로 2000년부터 다시 워크스팀이 되었다. 2003년 영입한 알론소가 실력을 발휘하면서 페라리(슈마허)를 누르고 2005년과 2006년 연속으로 더블 챔피언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 르노 F1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였다. 브리아토레 감독과 넬슨 피케 Jr의 이른바 크래시 게이트 폭로전으로 2009년 말 르노팀은 엄청난 위기에 빠졌지만 르노가 여전히 주식 1/4을 보유하고 있으며 엔진도 공급하고 있다. 더구나 르노가 엔진을 공급하는 레드불팀은 올 초반부터 엄청난 스피드로 예선을 독식하더니 양대 챔피언 타이틀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Alfa Romeo스포티한 소형차로 유명한 알파로메오는 매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태리 브랜드. 2차대전을 전후로 유럽 자동차시장과 모터스포츠계를 호령했던 왕년의 명문이다. 1910년 경영위기에 빠진 프랑스 다라크사의 이태리공장을 밀라노 기업가들이 사들여 시작한 알파로메오는 1933년 국유화와 70년대 혼란기를 거쳐 80년대 후반 피아트의 자회사가 되었다. 2006년에는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수퍼카 8C 콤페티치오네를 500대 한정생산하기도 했는데, 페라리-마세라티의 V8 4.7L 456마력 엔진을 얹었고 생산 역시 마세라티 공장에서 이루어졌다.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는 1920년대부터 큰 활약을 보였다. 1923년 수퍼차저 엔진 경주차로 유럽 그랑프리에서 데뷔전 원투 피니시를 달성함으로써 수퍼차저시대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P1과 P2, 6C1500 등의 걸작을 선보이며 유럽 서킷을 호령했다. 1950년 F1 개막과 함께 개막전 우승을 차지한 알파로메오는 7전 6승이라는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맹활약했다. 이듬해에도 챔피언이 되었지만 자금난으로 퇴진하고 말았다. 이후 1960~71년 그리고 76~88년 엔진 공급자로 나선 데 이어 간혹 워크스 팀으로도 활동했지만 성적은 보잘 것 없었다.   Matra아리안 로켓과 유로파이터 전투기 그리고 르노 미니밴 에스파스. 언뜻 무관해 보이는 이들은 모두 프랑스를 대표하는 기업 마트라와 연관되어 있다. 1960년대에는 르노 엔진을 얹어 마트라라는 이름으로 승용차를 생산하기도 했지만 그 후 엔지니어링 용역으로만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르노가 1984년 발표했던 유럽 최초의 미니밴 에스파스. 유럽 자동차시장에 MPV 바람을 몰고온 장본인이다. 2003년에는 원박스 고급차 아반타임을 설계하고 생산하기도 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고 자동차 엔지니어링과 테스트, 프로토타입 부문을 피닌파리나에 매각하며 지금은 자동차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 상태다.  1960년대 F3와 F2에서 레이스 활동을 시작한 마트라는 1967년 F1에 테스트 출전한 후 이듬해부터 풀타임 출장을 시작했다. 워크스팀 외에 마트라 인터내셔널이라는 세컨드 팀이 재키 스튜어트의 활약으로 3승을 거두었고 1969년에는 11전 6승으로 더블 챔피언을 휩쓸었다. 워크스팀인 마트라 스포르는 72년을 마지막으로 퇴진했지만 마트라 인터내셔널을 이끌었던 캔 티렐은 팀 이름을 티렐로 바꾸어 90년대 말까지 활동했다. 마트라 워크스팀은 엔진 부문만이 살아남아 80년대 초까지 샤도우, 리지에 등 몇 개 팀에 V12 엔진을 공급했다. 매우 고음의 독특한 엔진 사운드는 ‘마트라 소프라노’라고 불렸다. Lotus천재적인 엔지니어 콜린 채프먼이 창업한 영국의 로터스는 혁신적인 설계로 스포츠카와 F1 역사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F1 분야에서는 알루미늄 모노코크와 윙카 등 한발 앞선 발상과 기술력으로 항상 주목을 받았다. 로터스의 F1 첫승은 1961년 미국 GP. 하지만 이미 1년 전 롭 워커 레이싱의 S. 모스가 로터스 18을 타고 모나코 GP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였다. 2년 후에는 F1 최초의 모노코크 머신으로 기록된 로터스 25를 J. 클라크가 몰고 7승이라는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시즌을 장악했다. 1968년 G. 힐을 챔피언에 올려놓은 로터스 49의 경우 엔진 블록을 섀시의 한 부분으로 사용하는 구조를 처음 선보였다. 지금은 레이싱카에 매우 널리 사용되는 설계방식이다. 70년대 말 선보인 78과 79는 차체 바닥을 흐르는 공기를 이용해 압력차이로 다운포스를 얻는 이른바 그라운드 이팩트에 착안한 머신이었다. 흔히 ‘윙카’라 불리는 78과 79는 압도적인 공력적 이득을 바탕으로 1978년 강력한 페라리를 누르고 로터스에게 양대 타이틀을 선사했다. 하지만 액티브 서스펜션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던 1982년 콜린 채프먼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로터스는 GM과 부가티 등을 거쳐 1996년 말레이시아 프로톤에 인수되었다. F1에서는 1994년 오스트레일리아 GP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접었다가 올 시즌 다시 복귀했다. 하지만 에어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 회장이 이끄는 말레이시아팀으로 성적 또한 보잘 것 없다. Cooper미니라는 소형차의 가능성을 엿본 한 영국인이 미니를 랠리카로 개조,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3승이라는 빛나는 전적을 일구어냈다. 그 주인공은 바로 F1 컨스트럭터로도 이름을 날린 존 쿠퍼다. 1946년 리처드 쿠퍼가 아들 존 쿠퍼와 함께 자기 집 차고에서 경주차를 만든 것이 쿠퍼의 시작. 그들의 F500(후의 F3)과 F2 머신은 프라이비트 레이서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었다. 1957년 F1에 워크스팀으로 풀 시즌 참가하기 시작한 쿠퍼는 이듬해 아르헨티나 GP에서 롭 워커 레이싱의 S. 모스가 첫 우승을 기록했는데 F1 역사상 프라이비트팀이 기록한 최초의 우승이었다. 특히 쿠퍼는 59년과 60년 연속으로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을 차지하며 F1에 미드십 레이아웃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리처드 쿠퍼가 사망하고 아들 존이 교통사고로 부상을 당하면서 1965년 회사가 매각되었고 1969년 말 F1에서 자취를 감추었다.Toyota일본을 넘어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으로 올라선 토요타. 하지만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지난해 말 F1에서는 발을 빼고 말았다. 랠리와 르망에서 활약하던 토요타가 F1 도전을 발표한 것이 1999년. 랠리와 르망 활동을 담당했던 토요타 모터스포츠 GmbH(독일 쾰른 소재)의 주도 아래 2002년부터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성적은 보잘 것 없었다. 최고의 성적은 3위 세 번에 88포인트로 컨스트럭터즈 4위였던 2005년. 이후 5~6위권을 맴돌아가 200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쓸쓸하게 퇴진했다. Maserati현재 페라리 산하에 있는 마세라티는 사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마세라티가의 형제들이 모데나에 공방을 세운 것이 1914년. 모데나 시를 상징하는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로고로 단 그들의 경주차는 타르가 플로리오 같은 유명 레이스에서 크게 활약했다. 하지만 경영의 어려움으로 알프레도 오르시에게 1937년 회사를 매각했고 마세라티는 다시 한번 황금기를 맞이한다. 특히 J. M. 판지오는 1954년과 57년 마세라티 250F를 타고 챔피언에 올랐다. CosworthF1에 엔진을 공급하는 회사는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 기술력과 자본에서 앞선 대형 메이커가 상위권을 독점해왔다. 따라서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 엔진 전문 소규모 메이커로서 코스워스만큼 유명한 이름도 드물다. 마이크 코스틴과 케이스 더크워스가 1958년 설립한 코스워스는 포드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 포드 엔진 베이스의 고성능 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1966년 선보인 F1용 V8 3.0L 엔진 DFV(Double Four Valve의 이니셜)는 수많은 개량형으로 발전하며 여러 팀에 공급되어 20여 년간 무려 167번의 F1 레이스에 출전한 기록을 남겼다. F1 역사상 가장 널리 애용된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는 CA2010이 HRT와 로터스, 버진 등에 공급되고 있지만 2006년형 엔진의 개량형이라 별다른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양산차 분야에서는 포드와 굵직한 모델을 남겼다. 에스코트 RS 시리즈와 스콜피오, 시에라 RS 코스워스 등 유럽 포드의 고성능 모델에서 코스워스는 매우 중요한 이름이었다. 그밖에도 80~90년대 메르세데스 벤츠가 DTM 출전용으로 개발한 190E 2.3-16의 엔진 개량과 아우디 RS용 엔진 개발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WRC 제12전 스페인 랠리 - 로브 스페인 제압 시즌.. 2010-12-17
2010년 세계랠리선수권(WRC)은 이미 양대 타이틀전을 끝내고 시즌 뒷풀이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사상 최고 7회 타이틀의 S. 로브(시트로앵)는 초토화작전으로 밀어붙여 시즌 7승. 스페인 출신 팀동료 D. 소르도에게 고국에서의 1승을 선사할 수도 있다는 예측을 짓밟았다. 뒤이어 포드 군단이 4~9위를 휩쓸었다. 시즌 랭킹 2위 S. 오지에(시트로앵 주니어)가 10위에 턱걸이, 1점을 보탰다. 로브, 오지에의 끈질긴 도전 차단10월 22일 금요일. 제12전 스페인 랠리 제1레그는 포르트 아벤투라 발착거리 573.50km, 6개 경기구간(SS 1~6) 136.38km. S. 로브(시트로앵)가 스페인 랠리 첫날 끝까지 선두를 지켰다. 한데 주니어팀의 S. 오지에와는 불과 3.8초차. 챔피언 로브는 오전 중 비포장도로를 앞장서 달리면서도 쾌조의 페이스를 자랑했다. 원래 아스팔트 루트였지만 이번에는 혼합형으로 바꿨다. 약간 습한 날씨가 오전 통과 코스의 먼짓길을 좀 가라앉혔지만 오후에는 한층 미끄러웠다. 특히 SS4에서 시트로앵 주니어 S. 오지에가 8.5초나 빨랐다. 한데 오지에는 그 뒤 간격을 더 좁힐 수 없었다. 사소한 실수로 J. 라트발라(BP 포드)는 오전의 스파링 파트너 오지에를 놓쳤다. 로브에 16.1초나 뒤진 라트발라는 3위 지키기에 몰두. 프라이비터 시트로앵 P. 솔베르그가 라트발라 추격에 들어가 SS5를 잡으면서 2.2초차로 첫날을 마쳤다. M. 히르보넨(BP 포드)은 5위. 고국전의 D. 소르도(시트로앵)가 뒤를 이었다. 스토바트 포드 군단의 M. 윌슨, F. 빌라그라, K. 블록과 H. 솔베르그가 10위권을 메웠다.   독주 로브 추격하는 솔베르그 10월 23일 토요일. 제12전 제2레그는 포르트 아벤투라 발착거리 369.01km, 6개 SS(7~11) 126.62km.S. 로브(시트로앵)가 스페인 랠리 정상을 향해 독주하는 가운데 P. 솔베르그와 D. 소르도가 2위를 놓고 맞붙었다. 2위 P. 솔베르그를 44.4초로 따돌린 로브는 라무사라 스테이지 2차전을 휘어잡고 선두를 즐겼다. 로브 뒤 저 멀리서 팀동료 소르도가 위력적인 돌격으로 이날의 화제에 올랐다. 첫날 혼합 코스에서 페이스를 잃었던 소르도는 아스팔트 스테이지에서 날았다. 절뚝거리는 포드의 M. 히르보넨을 간신히 빠져나와 산타마리나 스테이지를 잡았다. 뒤이어 다음 SS에서 라트발라를 바싹 뒤쫓았다. 그 뒤 소르도가 솔베르그를 덮쳐 2위를 뺏으려는 순간 솔베르그가 놀란 토끼처럼 달아났다. 시차는 다시 16.9초. SS10에서 터보 고장으로 10분을 놓친 히르보넨은 전력을 되찾지 못한 채 라트발라에 뒤이은 5위에 머물렀다. S. 오지에(시트로앵 주니어)는 오전의 충돌 뒤 17위에서 기어가며 14위까지 올랐다. 한데 득점권에 들려면 앞차의 탈락을 기대하거나 적어도 몇 대를 추월해야 한다. 프라이비터 F. 투란(시네르곤 투란)을 7위에 끼고 스토바트 포드의 M. 윌슨, H. 솔베르그, K. 알카시미와 K. 블록이 10위권에 들었다.  스페인 압도한 로브, 시즌 7승 10월 24일 일요일. 제12전 최종 제3레그는 포르트 아벤투라 발착거리 367.95km, 4개 SS(13~16) 92.30km.S. 로브(시트로앵)가 스페인 랠리 정상에 올라 시즌 7승을 거머쥐었다. 한편 팀동료 D. 소르도는 프라이비터 P. 솔베르그에 막혀 고국전에서 3위에 그쳤다. 로브가 레그 2까지 벌어놓은 시간은 44.4초. 최종 레그에서 아스팔트의 4개 SS 92.30km를 완전 제압하고, 여유 있게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스페인에서 아주 좋은 성과를 거뒀다. 타이틀전의 부담이 없어 첫날부터 밀어붙였다.” 그의 팀동료 소르도는 일단 아스팔트에 나서자 날았다. 그러나 2레그에 2위를 잡은 솔베르그가 앞을 가로막았다. 결국 5.8초차의 3위. 포드의 J. 라트발라와 M. 히르보넨이 4, 5위. 라트발라는 랠리 초반 선두를 위협했지만, 아스팔트에 올라서자 뒤로 밀렸다. 한편 히르보넨은 레그 3에서 터보 고장으로 몇 분을 잃었다. 스토바트 군단의 M. 윌슨, K. 알카시미, H. 솔베르그와 K. 블록이 6~9위를 덮었다. 다음 시즌에 챔피언 로브를 위협할 S. 오지에(시트로앵 주니어)가 10위에 턱걸이했다.  WRC는 11월 12~14일 영국 웨일스에서 시즌의 막을 내린다.
F1 제18전 브라질 그랑프리 - 드라이버즈 타이틀 .. 2010-12-17
2010 시즌 F1은 최종전까지 치열한 각축으로 일관해 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코리아 그랑프리 수중전에서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펼친 페라리의 F. 알론소(246)가 랭킹 선두. 일단 유리한 고지에서 운명의 타이틀전을 맞는다. 한데 18전 브라질에서 원투를 거둔 레드불 듀오가 아부다비의 대반전을 노린다. 브라질 2위 M. 웨버(238)가 일단 랭킹 2위를 지켰고, 1위 S. 베텔(231)이 랭킹 3위. 그렇다면 최종전은 알론소 vs 웨버+베텔의 운명적 한판? 노! 팀동료 웨버와 베텔은 시즌 초부터 공존할 수 없는 라이벌. 따라서 아부다비전은 선두 세 드라이버의 한 치 양보 없는 3파전을 예고한다. 레드불은 브라질에서 시즌 타이틀을 확정했다.  훌켄베르크, 충격적인 브라질 폴11월 6일 토요일. F1 제18전 브라질 그랑프리가 인텔라고스 서킷(1주 4.309km)에서 예선에 들어갔다. 그런데 N. 훌켄베르크(윌리엄즈)가 데뷔 후 첫 F1 폴포지션(PP)을 잡아 인텔라고스를 충격에 빠뜨렸다. 2005년 뉘르부르크링 이후 윌리엄즈 최초의 PP이기도 하다.   모든 선두주자들은 Q3 종반 최종 공격에서 슬릭 타이어로 갈아신었다. 훌켄베르크는 잇따른 최고속랩으로 레드불의 S. 베텔과 M. 웨버를 꺾었다. 레드불은 막판까지 톱10의 끝자리에서 출발할 위기를 맞았다. 2분을 남기고 M. 웨버가 코스 이탈. 최종공격에서 2위로 뛰어올랐지만 동료 S. 베텔에게 밀려 3위로 떨어졌다. L. 해밀턴(맥라렌)은 종반 잠시 선두를 잡았지만 결국 4위로 밀렸다. 랭킹선두 F. 알론소(페라리)도 몇 초 동안 선두를 잡았지만 5위로 내려앉았다. R. 바리첼로(윌리엄즈)가 6위. R. 쿠비자(르노)는 슬릭으로 갈아신은 선두그룹에 도전했지만 코스아웃한 뒤 자기 베스트 타임으로 7위. 그래도 M. 슈마허(메르세데스)를 눌렀다.  브라질의 영웅 F. 마사(페라리)는 간신히 Q3에 진출한 뒤 9위로 예선을 끝냈다. V. 페트로프(르노)가 10위권 진입. 타이틀전에서 밀려난 전 챔피언 J. 버튼(맥라렌), K. 고바야시(자우버)와 N. 로즈베르크(메르세데스)가 뒤따랐다. 11월 7일 일요일. 제18전 브라질 그랑프리 결승 레이스가 인텔라고스 서킷(1주 4.309km×71주=305.909km)에서 승패를 갈랐다. S. 베텔(레드불)이 결전에서 승리, 동료 M. 웨버와 F. 알론소(페라리)를 뿌리치고 타이틀을 최종전으로 넘겼다. 베텔은 스타트와 동시에 기선을 제압하며 동료 웨버에게 단 한번도 빈틈을 주지 않았다. 반면 웨버가 2위를 차지해 레드불은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굳혔다. 한데 알론소가 3위로 랭킹선두를 사수, 최종 타이틀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폴시터 N. 훌켄베르크의 영광은 단명으로 끝났다. 베텔이 첫 코너에서 그를 제쳤고 턴4에서는 웨버에게 밀렸다. 알론소는 훌켄베르크를 밀어내는 데 무려 6주가 걸렸다. 일단 레이스에 적응하자 훌켄베르크는 능란하게 도전을 막아냈다. 알론소가 훌켄베르크를 추월했을 때 웨버와는 7초차. 랩당 0.5초나 느렸다. 해밀턴은 8랩까지 훌켄베르크 뒤에 갇혀 있었다. 제15주째 마침내 윌리엄즈가 피트인했다. 제51주의 턴2에서 V. 리우지(포스 인디아)가 충돌해 세이프티카 진입. 그때까지 베텔과 웨버는 추격의 위험 없이 선두를 내달렸다. 그동안 베텔은 웨버보다 2~4초 빨랐다. 재출발에서 주회가 뒤진 R. 쿠비자(르노)가 베텔과 웨버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때부터 베텔은 웨버와의 사이를 4초 이상으로 벌려 승패에 쐐기를 박았다. 반면 웨버는 알론소의 맹추격을 따돌려야 했다. 알론소는 레드불 듀오를 끝내 뒤집지 못하고 3위에 머물렀지만 랭킹선두를 지켜 타이틀 전쟁에 유리한 위치를 잡았다. L. 해밀턴이 막판 추격을 시도했지만 알론소와는 거리가 먼 4위. 팀동료 J. 버튼이 5위로 따라붙었다. 버튼은 피트인에서 메르세데스 듀오, 훌켄베르크와 쿠비자를 따돌렸다. 브라질의 영웅 F. 마사(페라리)가 6위. N. 로즈베르크(메르세데스)가 동료 M. 슈마허를 앞서 6위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폴시터 훌켄베르크와 쿠비자는 8, 9위. K. 고바야시(자우버)가 10위권을 마무리했다. F1은 최종전 아부다비(결승 11월 14일)에서 드라이버즈 타이틀을 결정한다. S. 베텔, 드라이버즈 챔피언에 오르다!포인트 3위로 아부다비 GP에 나선 베텔이 알론소, 웨버의 부진에 힘입어 2010년 드라이버즈 챔피언을 차지했다. 폴포지션으로 희망의 불씨를 붙인 베텔은 맥라렌 듀오와 치열한 접전 끝에 야스마리스 서킷에서 가장 먼저 체커기를 받았다. 웨버는 지나치게 빠른 12주에 타이어를 교체했고, 웨버를 의식한 알론소 역시 피트작전 혼란으로 페트로프에 막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알론소 7위, 웨버 8위로 베텔에게 챔피언 타이틀을 헌납하고 말았다. 한편 베텔은 23세 134일의 기록으로 해밀턴이 가지고 있던 사상 최연소 챔피언 기록을 갱신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드라마틱한 레이스 - 챔피언 향방은 더.. 2010-12-15
‘코리아 F1 개최’라는 뉴스가 흘러나왔을 때 그것이 실현되리라 믿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기자 역시 기대와 흥분 속에 어느 정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던 사람 중 하나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지난 10월 22~24일 전남 영암에서 한국 모터스포츠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졌다. 코리아 그랑프리(이하 GP)가 한국 모터스포츠 현실에서 꿈꿀 수 없었던 거대한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최초의 국제대회는 아니다. 지난 1999~2003년 경남 창원에서 열렸던 코리아 슈퍼프리 F3를 빼놓을 수 없다. 스트리트 코스에서 열렸던 창원 F3는 당시 한국 기준으로 매우 수준 높은 국제경기.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경기를 개최한 사람이 바로 코리아 F1 대회운영법인 카보(KAVO)의 대표 정영조 회장이다. 호주 항공학교에서 강사와 학장을 하던 그는 우연히 F1의 실세라 불리는 버니 에클레스턴과 안면을 익혔고, 1995년 한국 자동차경주협회(KARA) 회장을 맡게 되면서 F1에 대한 꿈을 키웠다. 하지만 무작정 F1부터 열 수 없었기 때문에 에클레스턴 회장의 조언에 따라 F3 개최에 팔을 걷어붙였다. 아직 국제 수준의 모터스포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당시의 여건상 5년 만에 대회가 중단되었지만 그것이 코리아 GP 개최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당시 한국에서 우승컵을 가져갔던 젠슨 버튼이 맥라렌팀 드라이버가 되어 한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정 회장의 노력은 전라남도의 J프로젝트와 만나면서 비로소 현실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서해안에 대규모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를 개발하기 위해 F1 서킷과 관련시설은 물론 요트 정박을 위한 마리나시설, 주거와 교육시설 등을 차례로 건설한다는 대단위 프로젝트다. 이 계획대로만 진행된다면 서킷 주변에 건물 등 상업시설이 들어선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서킷 주변에 숲이 조성되어 조금은 황량한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된다. 현대 F1 서킷 상당수를 설계한 헤르만 틸케는 코리아 GP를 위해 길이 5.615km의 대형 트랙을 끼고 도시를 건설하는 새로운 개념의 서킷을 제안했다. 또 긴 코스가 필요 없을 때에는 3.71km의 상설 서킷을 따로 떼어 운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지난 2007년 10월 착공된 서킷은 해변가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오랜 시간 지반 다지기 공사가 필요했다. 눈만 감았다 뜨면 순식간에 건물이 완성되는 한국에서 이런 오랜 준비작업은 ‘공사가 지연된다’는 소문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올 여름에는 거의 4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리는 바람에 막바지 포장공사가 지연되어 9월 계획되어 있던 FIA 검수가 대회 직전인 10월 11일로 연기되기도 했다. 사실 경기를 50일 앞두고 열렸던 D-50 행사에 참석했을 때만 해도 트랙 표층이 깔리지 않은 데다 양옆에 흙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고 팀 건물 역시 마무리 공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과연 무사히 대회를 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50일이 지난 지금 기자는 페라리, 맥라렌, 메르세데스 GP 팀원들과 선택받은 드라이버들이 우글거리는 패독에 서 있다. 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대한민국 땅에서 말이다. 코스에서 머신들이 달리기 시작하다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기온 18도, 노면온도 22도, 습도 69%. 역사적인 F1 코리아 GP 창설전이 열리는 아침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전남 영암의 상공을 뒤덮고 있었다. 불과 50일 전만 해도 개최 자체가 불투명해 보였던 코리아 GP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비로소 여기까지 왔다.오전 연습주행을 12분 남긴 9시 48분경 간헐적으로 들리던 머신의 엔진 소리가 점점 그 수를 더해가더니 몇몇 머신이 코스 진입을 앞두고 피트 로드 끝에서 파란불 사인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니터를 통해 피트로드 출구에 서 있는 정영조 회장의 얼굴이 비쳐졌다. 곧이어 파란불이 켜지고 로터스를 필두로 머신들이 하나둘 코스로 진입하자 그의 얼굴에 조금은 벅찬 감정이 떠오르는 듯 보였다. 지난 몇 년간의 고생과 노력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신상 코스에 첫발을 들인 드라이버들은 아직 그립이 오르지 않은 노면과 낯선 레이아웃에 적응하기 위해 천천히 페이스를 올려갔다. 포장공사를 막 끝낸 노면은 경주차 타이어 컴파운드가 쌓이지 않은 데다 주변의 흙이 날려 아직 미끄러운 상태. 그래도 2번 코너를 지나 초장거리 직선구간에 들어서자 풀 스로틀을 시도하며 짜릿한 소리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대부분 한 바퀴만 돌고 피트로 들어와 타이어를 갈거나 세팅을 바꾸느라 공식 기록이 계측되지 않았다. 첫 공식 기록이 나온 것은 10시 17분경. 주인공은 토로로소팀의 J. 알구에르수아리로 2분16초178이었다. 10시 25분이 되자 M. 슈마허(메르세데스)를 필두로 세팅의 방향을 잡은 거물급 머신들이 속속 계측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50초의 벽이 깨졌고 포인트 리더 M. 웨버(레드불)가 1분45초대까지 페이스를 리드했다. 반면 올 시즌 꼴찌를 확정지은 B. 세나(HRT)는 스핀으로 코스아웃. 오르막인 15번 코너는 너무 안쪽으로 공략할 경우 뒷바퀴가 튀어오르며 스핀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맥라렌 듀오가 코스에 들어가 해밀턴이 1분42초208, 곧이어 버튼이 1분41초940으로 기록을 경신했다. 영암에서의 첫 연습주행 베스트 타임은 1분40초877을 기록한 해밀턴 차지였다.처음으로 40초의 벽을 깬 것은 레드불의 젊은 피 S. 베텔.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두 번째 연습 세션에서 1분39초240를 기록했다. 다시 웨버가 1분37초942로 1.3초 줄이며 레드불이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역시 레드불, 페라리, 맥라렌 등 상위권이 월등히 강했고 르노의 페이스도 좋아 보였다. 통상 연습주행은 100% 실력발휘를 하지 않아 본선기록을 예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의 경우 데이터가 워낙 적다 보니 이런 연막전술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연습주행 기록에도 많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이버들은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개최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해외 보도에 걱정했다가 막상 실물을 보고는 만족하는 분위기. 1km가 넘는 긴 직선로에 비해 테크니컬한 제2, 3섹터는 좋은 리듬을 타기가 쉽지 않고, 고전과 현대 서킷의 특징이 섞여 있어 버라이어티하다는 평이었다. 또한 가까이 벽이 둘러쳐져 있어 스트리트 코스를 연상시키는 17번 코너는 상당히 긴장감을 고조시킨다고 입을 모았다. 첫 폴 포지션의 주인공은 베텔이튿날 토요일 오전에 3번째 연습주행에서 상위권 드라이버들은 1분37초대의 기록을 냈다. 이번 세션 최고기록은 R. 쿠비자의 1분37초354. 하지만 세팅작업을 얼추 마무리한 때문인지 상워권팀은 과도한 타임 어택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코스에서는 치열하지 않았지만 예선을 앞두고 피트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오후 1시 50분. 기온 22도, 노면온도 28도로 어제보다 조금 기온이 떨어졌다. 2시가 되자 로터스의 코발라이넨과 르노팀 V. 페트로프를 시작으로 하위권 드라이버들이 어택에 들어갔다.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F1 드라이버인 M. 슈마허가 나서자 기록이 1분40초557로 줄어들었다. 타이틀 후보 알론소(페라리)가 2시 5분 코스에 들어섰지만 버튼과 베텔, 웨버 등 상위권 선수들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2시 7분경 해밀턴이 세운 1분38초677의 톱타임이 훌켄베르그와 코발라이넨에 의해 경신되는 것을 보니 아직 기록에 여유가 많아 보였다. 2시 10분이 되자 1분37초395의 알론소가 톱으로 올라섰다. 반면 트랙을 벗어나는 드라이버도 많았다. 특히 거의 직각으로 꺾이는 데다 의외로 속도가 높은 13번 코너 그리고 급한 각도에 오르막인 15번 코너에서 코스아웃이 많이 목격되었다. 모든 드라이버가 한계까지 라인을 시험하지만 순간적인 대처로 코스 이탈이나 스핀을 막느냐 못 막느냐에서 드라이버의 역량이 드러났다. Q1을 5분 남기고 1분37초113의 해밀턴이 선두. 베텔과 알론소, 웨버, 마사 순으로 늘어섰다. 잠시 후 하위권 7명인 V. 리우지(포스 인디아), J. 트룰리(로터스), T. 글록(버진), H. 코발라이넨(로터스), L. 디그라시(버진), S. 야마모토(HRT), B. 세나(HRT)가 그리드 후위를 확정지었다.  Q2가 되자 상위권 다툼이 더욱 치열해졌다. 페라리팀 마사가 1분36초672로 처음 36초대 기록을 세웠다. 베텔이 36초457로 응수, 35초대 기록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2시 36분경 셋업을 바꾸고 재출격한 알론소가 1분36초287로 다시 잠정 톱에 올라섰다. 당시 순위는 알론소, 베텔, 웨버, 마사, 해밀턴, 로즈베르크 순. 폴 포지션 경쟁은 레드불과 페라리로 압축되는 듯 보였다. 41분에 마사가 1분36초169로 톱이 되자 다시 웨버가 1분36초039로 제쳤고 베텔이 1분36초074로 원투 체제를 갖추었다. Q2 완료 후 윌리엄즈팀의 N. 훌켄베르그, H. 코발라이넨(로터스), N. 하이드펠트(자우버), A. 수틸(포스 인디아), V. 페트로프(르노), J. 알구에르수아리(토로로소)가 11~17위를 채웠다. 오후 2시 50분. 드디어 상위 10명의 출발순서를 결정지을 Q3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알론소가 1분35초927초 35초대에 처음 발을 들였다. 베텔이 그 뒤를 이음으로써 레드불과 페라리의 경쟁이 점입가경에 들어섰다. 55분경에는 해밀턴이 마지막 코너에서 직선로와 피트로드 사이로 질주하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곳의 피트로드는 최종코너를 고속으로 탈출한 직후 들어서는 형태라 위험한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어 보였다. 2시 59분에 웨버가 버튼을 밀어내고 2위로 올라섰지만 알론소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1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창설전 폴포지션은 알론소와 페라리로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이윽고 타이머가 0이 되고 세션이 종료되자 코스를 달리고 있는 차들에게 마지막 기회만이 남았다. 그 순간 제3 섹터를 공략하고 있는 베텔의 모습이 모니터에 비쳐졌다. 몇 개의 코너에서 연석을 아슬아슬하게 밟아 흙먼지를 일으키면서도 용케 코스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17번 중속 코너를 가속해 나올 때 기록이 1분31초대로 페이스가 빨라 기대감이 높아졌다. 18번 코너를 숏컷으로 흙먼지를 날리며 피니시라인을 향해 그대로 질주. 결과는 1분35초585 톱타임! 순간 레드불 피트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어서 웨버가 1분35초695로 알론소를 밀어내 레드불이 1열을 독점했다.  Q3 결과 베텔을 폴 포지션으로 같은 팀 웨버가 1열을 채웠고 알론소가 3위, 해밀턴이 그 뒤를 이었다. 메르세데스팀 로즈버그가 컨디션을 회복한 마사를 밀어내고 5위를 차지한 것도 눈에 띄었다. 마사 6위, 버튼 7위, 쿠비자 8위, 페라리 시절 옛 동료 슈마허와 바리첼로가 사이좋게 9위와 10위를 기록했다. 베텔은 예선 직후 열린 인터뷰에서 “근소한 차이였지만 폴을 차지해 기분이 매우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1섹터는 직선이 길어 적절한 브레이크 포인트만 신경 쓰면 되었고, 2, 3섹터는 코너가 많아 실수하기 쉬운 대신 매우 재미가 있다. 연습에서는 타이어가 터진 데다 연습기회가 많지 않아 리듬을 잡는 것이 힘들었다. 내일은 비가 올 것이라고 하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3위로 밀려난 알론소 또한 예선 내용에 만족한다며 소감을 피력했다. “머신의 성능을 최대한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Q1에서 매우 빨랐고, Q2와 Q3에서 더욱 빨라졌다. 폴은 놓쳤지만 그래도 위치는 좋다. 레드불은 올해 매우 강력하다. 17개 레이스에서 14번이나 폴을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도 차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내일 무리하지 않고 좋은 스타트를 할 것이다. 내일 비가 내린다면 침착함을 유지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챔피언 후보 5명 전원이 완주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리타이어 명단에 들지 않고 점수를 챙기는 데 온 힘을 다할 것이다.”많은 비가 내려 잠시 경기 중단10월 24일 일요일 결승날, 어제의 예상대로 하늘을 가득 덮은 먹구름이 비를 내리고 있었다. 폭우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결코 적다고도 할 수 없는 비. 더운 여름, 상태가 좋은 코스라면 별 문제될 것이 없는 양이지만 아직 러버링이 부족한 신설 코스는 그립이 낮은 데다 아직 드라이버들의 코스 숙련도도 떨어지므로 시야가 부족하면 사고의 위험성이 그만큼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는 12시 벌어진 오프닝 경기에서 그대로 현실화되었다. ‘현대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열린 제네시스 쿠페 원메이크 경기는 S-오일 황진우를 폴 포지션으로 최명길, 조항우, 이승진, 사카구치 료헤이 순이었다. 스타트 직후 젖은 노면에서 조심스럽게 첫 코너를 돌아 나간 경주차들이 직선로를 향해 가속하기 시작했다. 순간 중위권에서 충돌이 일어나며 두 대의 차가 양쪽 벽으로 튕겨져 나갔고, 뒤따르던 차들이 줄줄이 들이박는 다중 충돌사고가 일어났다. 이후 30분의 경기 시간 내내 페이스카가 선도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되었다. 결국 21시 31분경 페이스카가 빠졌지만 여전히 황기 경보 상태였고, 결국 예선 선두의 황진우가 액셀 페달 한번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체커기를 받았다. 오후 2시 20분경 비가 잠시 잦아들었지만 다시 비구름이 지나간다는 예보가 나왔다. 기온 20도, 트랙온도 19도, 습도 84%의 상태였다. 잠시 후 그리드 정렬을 위해 머신들이 피트에 들어섰다. 코스 상태를 보기 위해 슬릭을 끼웠던 차들이 다시 피트인해 인터미디어트나 웨트 타이어로 갈아끼는 모습이 보였다. V. 페트로프는 전날 순위에서 5그리드 강등 페널티를 받아 출발 순위가 20번으로 떨어졌다.경기 시작 10분을 남기고 다시 빗줄기가 굵어지며 예정보다 10분 후에 러닝 스타트(달리면서 출발)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 노면이 미끄러운 상황에서 스탠딩 스타트(정지선에서 출발)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러닝 스타트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시 9분, 이윽고 타이어 워머가 제거되고 엔진 회전수를 올리자 관중석의 긴장감도 한껏 고조되었다. 아직 F1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아 보였지만 가득 들어찬 그랜드스탠드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TV 시청이 보기도 편하고 경기 전반적인 상황 파악도 쉽지만 역시 F1의 참맛을 맛보려면 현장에서 사운드를 직접 들어보아야 한다. 스탠딩 스타트가 아니라서 제대로 된 사운드는 아니었지만 아직 익숙지 않은 한국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3시 10분 세이프티카를 선두로 코스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빗줄기가 줄어들지 않아 3시 16분에 적기가 휘날리며 경기 일시 중단이 선언되었다. 앞차가 만들어내는 물안개 때문에 자신의 앞 타이어를 보기도 힘들 만큼 시야가 최악이라는 무전이 들려왔다. 그리드에 머신들이 다시 정렬하고 몇몇 드라이버가 헬멧을 벗고 개리지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상태로 30분을 허비하자 혹시나 경기가 중단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가 조금씩 잦아들어 4시 5분에 경기 재개가 결정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레드불 탈락에 알론소 웃다세이프티카를 선두로 다시 머신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분 40초대의 랩타임으로 세이프티카를 뒤따르는 지루한 열차행렬이었다. 설마 현대 시리즈처럼 페이스카를 따라 경기가 끝나는 것 아닌가 낙담하는 순간 17주를 마지막으로 세이프티카가 빠진다는 사인이 들어왔다. 17번 코너 직전에서 천천히 길을 막던 베텔이 갑자기 전력질주하며 18번 코너를 돌아 직선구간에 접어들었다. 모든 경주차들이 풀 스로틀을 시도하며 사운드가 고조되자 서킷 주변의 공기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첫 코너를 무사히 통과한 베텔이 1분 57초, 56초대의 페이스로 경주차 무리를 선도했다. 그런데 베텔을 추격하던 웨버의 뒷바퀴가 순간 코스에서 이탈하는 모습이 보였다. 카운터 조작으로 차를 되돌리려 했지만 컨트롤을 잃으며 반대편 펜스로 돌진. 순간 레드불팀에서는 신음소리가, 맥라렌팀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웨버의 리타이어는 올 시즌 챔피언의 향방이 다시 혼란 속에 빠지게 됨을 의미했다. 뒤따르던 로즈베르크도 이 사고에 휘말려 동반 리타이어의 고배를 마셨다. 세이프티카가 다시 나오고 순위는 베텔, 알론소, 해밀턴, 마사, 버튼, 슈마허 순으로 바뀌었다.24랩부터 경기가 재개되자 베텔이 다시 1분54초438을 기록했다. R. 디그라시가 스핀으로 리타이어하는 사이 베텔이 자신의 기록을 경신. 또한 M. 슈마허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버튼을 제치고 4위로 뛰어올라 박수를 받았다. 경주차 성능이 맥라렌에 뒤지지만 마음껏 액셀 페달을 밟을 수 없는 빗속이기에 가능했던 추월이었다. 빗길에 강한 그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28랩, 해밀턴이 1분53초914의 최고속랩으로 베텔과 알론소를 압박했다. 상위권이 페이스를 끌어올린 반면 중하위권은 정체된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알론소가 29주와 30주에 최고속랩으로 베텔을 압박했다. 반면 로터스팀의 코발라이넨은 스핀으로 코스아웃. 여전히 미끄러운 노면에서 스피드 배틀보다는 스핀이나 코스아웃하지 않기 위한 싸움이 우선이었다.  16주에 피트인 후 차근차근 순위를 올리던 토로로소팀의 S. 부에미가 브레이크 포인트를 놓쳐 버진의 B. 세나를 들이박고 리타이어했다. 31주에는 타이어를 갈기 위해 상위권의 피트인이 이어졌다. 32주까지 6대가 리타이어하고 18대만 살아남았다. 해밀턴은 알론소의 피트 작업 실수에 힘입어 2위로 부상했다. 오른쪽 앞 타이어를 끼우다가 너트가 빠지는 뼈아픈 실수였다. 하지만 35랩에서 해밀턴이 코스를 벗어나 알론소가 다시 2위로 부상. 알론소가 1분52초445의 최고속랩으로 베텔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베텔은 1분51초909로 응수했다. 39주에는 해밀턴이 1분50초710, 40주에는 마사가 1분50초673으로 기록을 단축했다. 상위 네 선수의 랩타임 경쟁이 코리아 GP의 막판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43랩이 되자 1바퀴 뒤처진 백마커가 꼬리를 드러냈다. 경기는 15랩, 23분 가량이 남은 상황. 규정 랩수인 55랩을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의 F1은 규정랩수가 우선이지만 경기가 지연될 경우 2시간이 넘지 않도록 도중에 경기를 마치도록 하고 있다.베텔은 알론소와 일정거리를 유지했지만 알론소의 랩타임이 전반적으로 빨라보였다. 44랩에서 베텔과 피트 간의 교신이 들려왔다. 무언가 이상이 있는 듯한 분위기. 그 순간 그랜드 스텐드 앞에서 알론소가 베텔을 추월해 선두로 나섰고, 관중석과 페라리 피트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2코너를 돌아 직선로에 접어든 베텔의 머신 뒤로 짙은 연기가 보이더니 불꽃을 뿜으며 서서히 멈추어 섰다. 예상치 못한 엔진고장에 베텔이 코스에서 사라졌다. 레드불 팀원들이 절규하고 페라리와 맥라렌팀에서는 기쁨의 탄성이 터졌다. 컨스트럭터즈 선두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했던 레드불팀이 무득점으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아울러 폴투윈으로 챔피언 도전의 전의를 불태우던 베텔의 꿈도 빛을 잃었다. 챔피언 향방은 더욱 혼란 속으로이제 남은 경기는 불과 10랩. 과격한 코너 공략으로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던 수틸이 47주에 자우버팀 하이드펠트를 들이박고 리타이어한 것 말고는 더 이상의 이변이 없었다. 수틸은리타이어했고 다음 경기 5그리드 강등 페널티까지 받았다. 52주째. 알론소가 1분51초040의 빠른 페이스로 질주하자 해밀턴은 추격을 포기했다. 경기 종료까지 시간제한 3분이 남은 상황에서 알론소가 54주째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공식 주회수인 55주를 꽉 채울 수 있을 듯 보였다. 해밀턴과 10초 이상의 안정적 리드를 지키던 알론소는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달려 체커기를 받았다. 레드불의 동반탈락으로 행운의 2위를 차지한 해밀턴은 실낱같은 챔피언 가능성을 남겼다. 페라리팀 마사가 3전 만에 3위로 15포인트를 따냈다. 왕년의 황제 M. 슈마허는 스페인과 터키 이후 오랜만에 4위로 복귀 후 최고순위 타이를 기록. 빗속에서 강함을 보여주었지만 직접 개발에 참여한 신형 경주차가 투입되는 내년이 되어야 시상대 등극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리우지가 올 시즌 최고기록인 5위, 바리첼로와 코바야시, 하이드펠트가 그 뒤를 이었고 훌켄베르크가 득점권을 마무리했다. 한국 GP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아 선두가 된 알론소는 다음과 같은 우승 소감을 남겼다. “트랙 컨디션을 생각한다면 정말 어려운 우승이었다. 특히 노면상황과 시야는 정말 위험한 수준이었다. 리타이어하지 않고 계속 달리는 것이 목표였지만 이곳을 웨트 타이어로 달려본 경험이 없으니 데이터가 너무 부족했다. 웨버의 초반 탈락으로 표창대 등단 가능성이 높았으나 경기 후반 트랙이 마르면서 타이어 그립이 순식간에 떨어져 어려움을 겪었다. 경주차는 지속적인 개량 덕분에 시즌 후반 들어 꽤 개선되었다. 나의 목표는 우리 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반면 중요한 길목에서 동반 탈락한 레드불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러나 아직 컨스트럭터즈 챔피언십 선두를 지키고 있고 알론소와 11점차인 웨버의 타이틀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베텔 역시 알론소와 25점차이기 때문에 나머지 두 경기 상황에 따라 충분히 역전이 가능하다. 웨버는 남은 2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며 아쉬움을 삭였다.“완전히 내 실수다. 빠르지 않은 속도에서 12코너 출구의 연석에 올라탔고,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반대편 벽에 충돌했다. 덕분에 로즈베르크의 레이스도 망치고 말았다. 하지만 리타이어는 올 시즌 2번째일 뿐이고 아직 2전이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포인트다.” 한편 오랜만에 4위로 좋은 성적을 거둔 슈마허도 한국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오늘의 레이스에 매우 만족하며 팀에 감사한다. 관객들은 오늘의 코리아 GP 창설전을 즐겁게 관람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다만 로즈베르크의 리타이어가 못내 아쉽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팀에게 매우 기쁜 주말이 되었을 것이다.” 성공적 개최, 하지만 숙제도 많이 남아이번 레이스 결과 레드불팀의 동반탈락으로 페라리팀 알론소가 드라이버즈 타이틀 선두로 부상했고, 컨스트럭터즈에서는 레드불과 맥라렌의 점수차가 줄어들어 막판 타이틀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해가 진 서킷에서 시상식이 거행되는 동안 패독에서는 시즌 향방의 진짜 분수령이 될 브라질 그랑프리에 대비해 짐을 꾸리는 모습이 보였다. 19개 레이스 중 17개가 치러졌지만 챔피언 타이틀의 주인공은 아직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개최 자체가 쉽지 않았던 코리아 그랑프리는 결승 레이스조차도 날씨 때문에 가슴을 졸이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했다. 하지만 경기 자체를 무사히 치러 주변의 우려와 의심을 불식시켰다. 또한 공중파 TV 중계와 다양한 홍보 프로모션 등을 통해 모터스포츠 불모지인 한국에서 자동차 레이스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하지만 문제점과 개선점 역시 적지 않다. 우선 코스와 관중석 등 서킷 일부 시설이 깔끔하게 완공되지 않은 점이 아쉬웠고, 주변 인프라가 부족한 점도 많은 지적을 받은 만큼 내년에는 더욱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올 11월 열릴 F3 슈퍼프리를 시작으로 이 거대한 국제규격 서킷을 활용할 다양한 레이스의 유치와 활성화 방안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는 KAVO나 전라남도뿐 아니라 국내 모터스포츠 관계자들, 나아가 모터스포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참여해야 할 문제다.
F1 역사의 영광을 전하는 - The Power of .. 2010-11-20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맞이해 분주한 것은 출전팀이나 대회 관계자, 스폰서들뿐만이 아니다. 미디어의 입장에서 F1은 수많은 취재진들을 몰고 다니는 취재 경쟁의 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취재진 중에서도 펜을 들거나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는 취재기자보다 훨씬 바쁜 이들이 있으니, 바로 커다란 망원렌즈를 한아름씩 안고 동분서주하는 포토그래퍼들이다.사진으로 담는 모터스포츠의 역사모터스포츠 사진을 찍는 것은 일반 자동차를 촬영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F1 머신을 렌즈로 좇아가고, 흙먼지를 날리며 언덕길을 내리달리는 WRC 레이스카를 카메라에 담고, 24시간 동안 달리는 내구레이스를 촬영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시승차를 앵글에 담는 것보다 훨씬 혹독하고 전문적인 작업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F1 사진도 당연히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세계 모든 서킷의 촬영 포인트를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 경주의 흐름을 파악하고 머신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해야 멋진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이 같이 많은 경험과 노련함으로 무장한 모터스포츠 전문 포토그래퍼가 있기에 우리는 생생한 F1의 감동을 지면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F1 코리아 그랑프리를 촬영하기 위해 한국을 방한한 ‘서튼 이미지’(Sutton Image)도 전세계 모터스포츠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모터스포츠 사진 전문 공급업체다. 영국 모터스포츠의 성지인 실버스톤 서킷 근처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지난 30년간 전세계의 수많은 모터스포츠 사진을 빼곡히 기록에 담고 있다. 1960년대부터 찍은 400만 장 이상의 이미지와, 이를 바탕으로 68만 장 이상의 다양한 사진을 온라인에서 공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10명도 안 되는 영국 본사의 포토그래퍼들이 500개가 넘는 전세계 모터스포츠를 모두 카메라에 담는 걸까? 그건 아니다. 서튼 이미지는 세계 곳곳에 현지 파트너를 두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F1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경기는 본사 촬영팀이 직접 세계 각국으로 날아가 현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말이 너무 길었다. 말보다는 사진이라는 걸 말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말을 하다니……. 서튼 이미지가 촬영한 사진들을 감상해 보라. 모터스포츠는 현장에서 즐기는 것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은 사진이나 영상이다. 글은 아마도 한참이나 후순위일 것이다(참, 글쟁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다니). 이런 전문 포토그래퍼들의 노력이 있기에 모터스포츠의 위대한 기록은 지금까지 남겨져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제11전 프랑스 랠리 - 로브 사상 최초 7연속 챔피언 2010-11-20
세계랠리선수권(WRC)은 종반 2전을 남기고 양대 타이틀을 확정했다. 시트로앵의 S. 로브(226)가 시트로앵 주니어의 S. 오지에(166)를 60점차로 제압, 시즌 타이틀을 굳혔다. 나아가 7연속 챔피언으로 자신이 세운 WRC 사상 최다 6연패 기록을 다시 갈아치웠다. 역전 설욕을 벼르던 포드 군단의 선두 J. 라트발라(144)는 82점차로 나가떨어졌다. 매뉴팩처러 타이틀전에서도 시트로앵(388)은 BP 포드(277)를 이미 111점차로 따돌렸다. 포드가 남은 2전에서 원투로 판을 휩쓸고, 시트로앵이 0패 해도 25점이 모자란다. 2010 WRC는 남은 2전을 시즌 뒷풀이로 느긋하게 즐길 수 있게 됐다.  로브, 고향서 첫날 압도10월 1일 금요일. 제11전 프랑스 랠리 제1레그가 스트라스부르 발착거리  567.20km, 8개 경기구간(SS 1~8) 145.20km에서 열렸다. 프랑스 랠리가 벌어지는 스트라스부르 루트에는 랭킹 선두 S. 로브(시트로앵)의 고향 아그노가 들어 있다. 바로 이곳에서 로브는 첫날 22.7초차로 팀동료 D. 소르도를 따돌리고 선두를 잡았다. 사상 최다 7연속 타이틀을 눈앞에 둔 로브는 굳건히 선두를 지켰다. 하지만 전반전 중 루트에 쌓인 진흙탕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완주한 것만도 다행이다. 스테이지 상태가 아주 나빴다.” 시트로앵 주니어의 S. 오지에가 D. 소르도에 뒤이은 3위. 그도 스테이지 상태가 데뷔 후 최악이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한데 포드의 J. 라트발라는 이 악조건을 한껏 즐겼다. SS5와 SS8에서 최고속을 기록했다. 원래 포드는 아스팔트에서 취약하지만 시트로앵 프라이비터 P. 솔베르그를 제치고 4위로 올라섰다. 소르도 역시 진흙탕 아스팔트를 잘 요리한 끝에 오지에를 밀어내고 4위에서 2위로 마무리했다. 한데 라트발라의 맹추격에 놀랐다. 시즌 초 타이틀 후보로 지목된 H. 히르보넨(포드)은 선두그룹에서 완전 탈락했다. 선두와는 거의 2분차의 6위. 산기슭을 들이받는 등 두 번이나 실수를 한 끝에 완주한 것만도 다행이라고 자위했다. K. 라이코넨(시트로앵 주니어)이 7위. F. 빌라그라(문치즈), M. 윌슨(스토바트)과 K. 블록(몬스터)이 10위권을 채웠다.  10월 2일 토요일. 제2레그는 스트라스부르 발착거리 471.40km, 8개 SS(9~16) 150.40km 구간에서 열렸다. S. 로브가 제2레그를 마쳤을 때 2위 팀동료 D. 소르도와는 약 43초차. 내일 최종 제3레그에는 4개 스테이지밖에 없다. 로브는 이날 후반전을 신중하게 대응했다. 까다로운 코스에 진흙탕이 점차 늘어나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뒤집을 도전자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동료 소르도는 한층 여유 있는 2위. 추격자 S. 오지에(시트로앵 주니어)가 SS15에서 서스펜션 고장으로 탈락. P. 솔베르그(프라이비터 시트로앵)가 후반전의 2개 스테이지를 장악했지만 소르도보다 31.4초 뒤진 3위.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스핀한 포드의 J. 라트발라를 20초차로 밀어냈다. 포드의 M. 히르보넨이 외로운 5위. 한편 오지에는 수퍼랠리 규정에 따라 3레그에 출전한다. 따라서 여전히 6위에 랭크. F. 빌라그라(문치즈 포드)와 M. 윌슨(스토바트)이 3초차로 7위와 8위. H. 솔베르그(스토바트)는 피에스타 S2000으로 9위를 잡았고, P. 산델(레드불 랠리)은 슈코다 파비아 S2000으로 10위에 들었다.  고향에서 7연패 달성한 로브  10월 3일 일요일. 제11전 최종 제3레그는 스트라스부르 발착거리 230.20km, 5개 SS(15~19) 56.20km.S. 로브가 고향 랠리에서 압승을 거뒀다. 생애 통산 60승에 시즌 6승 그리고 사상 신기록을 다시 갈아치우며 7연속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울러 시트로앵은 최근 몇 년 동안 아스팔트 루트에서 라이벌을 제압하고 연전연승을 기록했다. 로브는 이날 전반전에서 40초를 리드한 뒤 페이스를 늦춰 선두 방어작전에 들어갔다. 프랑스 랠리가 사르데냐에서 스트라스부르로 무대를 옮기면서 그의 고향 아그노에서 사상 최고 7연속 챔피언을 굳혔다. “정말 특별한 랠리다. 이곳 아그노에서 7회 타이틀을 따다니 믿을 수 없다. 이같은 대관중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로서는 생애 최고의 영광이다.” 로브의 승리로 시트로앵은 매뉴팩처러 타이틀까지 확보했다. D. 소르도가 팩토리 시트로앵의 원투에 가담했다. 랠리 초반 2위를 놓고 4파전을 벌였지만, 결국 여유 있게 라이벌을 따돌렸다. 시트로앵 프라이비터 P. 솔베르그(솔베르그 WRT)가 4위. 단순 계산으로 S. 오지에(시트로앵 주니어)가 로브의 유일한 타이틀 라이벌이었다. 한데 둘쨋날 서스펜션 고장으로 탈락. 수퍼랠리 규정에 따라 3레그에 재출전했지만 겨우 6위에 그쳤다. BP 포드 듀오 J. 라트발라와 M. 히르보넨이 5위와 6위. 워크스 타이틀마저 시트로앵에 바쳤다. 포드 군단의 F. 빌라그라(문치즈), 스토바트 듀오 M. 윌슨과 H. 솔베르그가 7~9위. P. 산델(레드불 랠리)이 10위에 들었다.  타이틀이 결정된 WRC는 남은 2전을 시즌 뒷풀이로 맞는다. 그 첫판 제12전 스페인 랠리가 10월 22~24일 카탈루냐에서 벌어진다.
2010년 인디카 시리즈 제16전 일본/최종 제17전 .. 2010-11-20
2010 인디카 시리즈는 막판까지 불꽃튀는 각축전이 벌어졌다. 최종전을 앞둔 일본 레이스에서 랭킹 선두 펜스키의 W. 파워(587)는 맹추격하는 가내시의 D. 프랭키티(575)를 12점차로 따돌렸다. 한데 최종 17전 마이애미에서 파워는 오벌의 저주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25위로 역전대패(10). 8위로 27점을 거머쥔 프랭키티에게 종합 챔피언 타이틀을 넘겨주고 말았다. 1승에 최고 53점을 안겨주는 인디카에서 불과 5점차의 패배였다. 그에게는 로드(도로+시가지) 챔피언 타이틀이 떨어졌다. 랭킹 2위에 그친 파워가 시즌 최다인 5승을 기록. 챔피언 프랭키티를 비롯 3, 4위의 S. 딕슨(가내시)과 H. 카스트로네베스(펜스키)가 각기 3승씩을 거뒀다. 인디카 시리즈는 내년 3월 27일 세인트 피터스버그에서 시즌의 막을 올린다.      제16전 일본 레이스펜스키가 모테기에서 예선 1-2-3에 이어 H. 카스트로네베스가 폴투윈. 지난해 일본을 휩쓴 천적 가내시에게 완전 설욕했다. 타이틀 라이벌 W. 파워(페스키)와 D. 프랭키티(가내시)의 점수차는 12점으로 줄었다.  9월 18일 토요일. 일본 트윈링 모테기(1주 2.414km)에서 인디카 제16전 일본 레이스 예선이 벌어졌다. H. 카스트로네베스(펜스키)가 예선에서 펜스키 1-2-3의 선두에 섰다. 지난 5년간 4번째 폴포지션(PP). 지난해 펜스키는 일본 트랙에서 가내시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한데 올해 전세는 완전 역전. 랭킹 선두 W. 파워가 3위로 타이틀 라이벌 D. 프랭키티(가내시)를 앞섰다. 안드레티 트리오가 프랭키티의 뒤를 따랐고 M. 안드레티가 T. 카난과 R. 헌터-리이를 눌렀다. E. 비조(KV)가 연습세션부터 밀어붙여 8위. 팀동료이며 일본의 영웅 T. 사토가 그보다 더욱 빛났다. 연습세션에 오일에 미끄러져 방호벽과 충돌. 연습부족이었음에도 대담한 예선작전으로 10위권에 파고들었다.  카스트로네베스, 모테기 폴투윈  9월 19일 일요일. 제15전이 트윈링 모테기(1주 2.414km, 200주)에서 결승에 들어갔다. H. 카스트로네네스가 모테기에서 통쾌한 폴투윈. 인디카 2연승을 달성했다. 그뒤에서 D. 프랭키티가 W. 파워를 3위로 밀어냈다. 이로써 랭킹 선두 파워와의 점수차는 12점. 최종전 마이애미에서 타이틀전의 승패를 가르게 됐다. 한데 올해부터 신설된 오벌과 로드 챔피언중 프랭키티는 이미 오벌 챔피언을 굳힌 상황. 카스트네베스는 스타트부터 레이스를 장악했다. 그뒤에서 R. 브리스코(펜스키)와 프랭키티가 바퀴를 부딪치는 격전을 벌였다. 한데 카스트네베스가 위기를 맞은 것은 딱 한번. 3차 황기경보가 나왔을 때 R. 마토스(드페랑 드래건)와 H. 무토(뉴먼하스)가 피트인하지 않고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리고 재출발과 동시에 브리스코와 프랭키티가 스타트가 느린 카스트네베스를 제치고 나갔다. 한데 펜스키 듀오가 곧 프랭키티를 추월. 앞서가던 무토와 마토스를 제치고 원투로 빠졌다. 일단 둘이 앞으로 나서자 카스트네베스는 선두 브리스코를 가볍게 제쳤다. 그 뒤 피트스톱에서도 선두를 굳게 지켜 4.5초차로 낙승. 프랭키티와 브리스코는 피트와 트랙에서 2위 자리를 뺏고 빼앗겼다. 한데 31주를 남긴 최종 재출발 직전에 파워가 브리스코를 따돌리고 3위를 확보. 예선 3위 파워는 40주의 정식 황기경보 전에 감속했다가 10위로 추락했고 다시 3위로 떠오를 때까지 추월을 거듭했다. 파워는 탁월한 최종 피트작전으로 마침내 데뷔 후 첫 오벌 시상대에 올랐다. D. 패트릭이 안드레티의 선두로 5위. 가내시의 S. 딕슨과 팀동료 T. 카난을 6, 7위로 밀어냈다. G. 레이홀(새러 피셔), R. 헌터-리이(안드레티)와 D. 휄던(팬더)이 10위권에 들었다. 최종 제17전 마이애미 레이스오벌 챔피언 D. 프랭키티가 종합 타이틀까지 거머쥐어 2관왕. 16전까지 선두를 지킨 W. 파워는 5점차로 2위로 굴러 로드(도로+시가지) 챔피언에 그쳤다.10월 2일 금요일. 제17전 마이애미 레이스가 마이애미 스피드웨이(1주 2.414km)에서 예선을 치렀다. D. 프랭키티가 마이애미에서 폴을 잡아 1점을 선취했다. 이제 점수차는 11점. 프랭키티는 팀동료 S. 딕슨을 옆구리에 끼고 제1열에 포진한다. W. 파워는 팀동료 R. 브리스코를 따돌리고 세션 중 태반을 잠정폴로 제압했다. 한데 프랭키티가 파워보다 0.1432초 빠른 랩타임으로 폴. 뒤이어 파워는 2위 자리마저 딕슨에게 내줬다. 브리스코가 4위. 펜스키의 제3 드라이버 H. 카스트네베스는 10위로 처졌다. 그에 앞서 D. 휄던(팬더), J. 윌슨(드라이어&라인볼드)과 E. 카펜터(팬더)가 5~7위. 안드레티의 선두 T. 카난과 T. 사토(KV)가 9위까지를 메웠다. 프랭키티 타이틀, 딕슨 우승 잡아10월 2일 토요일. 시즌 최종 제17전의 야간결승이 시작되었다. 1주 2.414km의 마이애미 스피드웨이를 200바퀴 돌고 나면 시즌 타이틀이 결정된다.D. 프랭키티가 4년 만에 3회 인디카 챔피언의 왕좌에 올랐다. 마이애미 최종전에서는 8위였지만 시즌 내내 랭킹선두를 달린 W. 파워가 방호벽을 긁으면서 서스펜션을 다쳐 타이틀 도전에 실패했다. 처음부터 파워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가내시 듀오가 원투. 딕슨이 라이벌을 따돌려 폴시터 프랭키티를 방어했다. 한데 33주째 안드레티의 T. 카난이 가내시 듀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첫 피트스톱 때 펜스키는 브리스코를 4위에서 2위로 띄워 프랭키티를 압박했다. 두 라이벌은 몇 랩 동안 나란히 달리며 치열한 접전을 벌였고, 59주 때 브리스코가 선두를 잡았을 때 프랭키티는 탄력을 잃고 4위로 물러났다. 그러나 프랭키티는 끈질긴 반격으로 14랩 뒤 선두 탈환. 브리스코는 다시 카난에게 역습을 당했다. 한편 파워는 첫 스틴트에 9위까지 추락했지만 후반에 페이스를 되찾아 프랭키티, 카난과 딕슨에 이은 4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타이틀을 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프랭키티는 폴과 최다 랩선두로 이미 2점의 보너스를 확보한 상태. 바로 그때 파워의 타이틀전에 치명타가 날아왔다. 134주째 턴4의 방호벽과 충돌한 것. 정면충돌이 아닌 연속 접촉이었지만 오른쪽 리어 서스펜션이 망가져 리타이어하고 말았다. 수리로 6랩을 날린 뒤 다시 트랙에 돌아왔지만 끝내 제 페이스를 찾지 못한 머신을 트랙에서 내려 사이드라인에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프랭키티가 탈락하는 불운을 기대하면서…….라이벌이 나가떨어지자 프랭키티는 안전작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음 황기경보 때 선두를 딕슨에게 내주고 연료탱크를 가득 채워 완주. 체커와 동시에 종합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지난 4년 사이 무려 3번째 챔피언 등극. 이미 오벌 타이틀도 그의 손아귀에 있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5월의 인디 500 승리도 그의 몫이었다. 패자 파워에게는 로드(도로+시가지) 챔피언 타이틀이 돌아갔다. 최종전의 승자 S. 딕슨(가내시)은 시즌 랭킹 3위. 여걸 D. 패트릭(안드레티)이 마이애미 2위로 시즌 고별전을 장식했다. 팀동료 T. 카난이 시상대 끝자리를 차지했다. 펜스키 듀오 R. 브리스코와 H. 카스트로네베스가 4, 5위.  인디카 시리즈는 2011년 제1전 세인트 피터스버그 레이스를 기약하고 폐막했다.
제15전 싱가포르/제16전 일본 그랑프리 - 쫓기는 웨.. 2010-11-20
2010 시즌 F1은 3전을 남긴 지금 레드불의 M. 웨버(220)가 선두. 하지만 페라리의 F. 알론소(206)와 레드불의 S. 베텔(206)이 14점차로 맹추격하고 있다. 두 추격자는 동점이지만, 승수에 따라 알론소(4승)가 랭킹 2위, 베텔(3승)이 3위다. 쫓기는 자 웨버에게는 지루한 3전이, 쫓는 자 알론소와 베텔에게는 대역전의 3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 역사적인 대결에서 10월 24일 치러질 코리아 그랑프리 창설전이 결정적인 고비가 될 수 있다. 한편 컨스트럭터 부문에서는 레드불(426)과 맥라렌(381)의 2파전 양상. 그러나 현재의 전력에 비춰 맥라렌이 판세를 뒤집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제15전 싱가포르 그랑프리9월 25일 토요일. F1 제15전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싱가포르 시가지 서킷(1주 5.071km)에서 예선에 들어갔다. F. 알론소(페라리)가 S. 베텔(레드불)의 막판 추격을 뿌리치고 톱타임을 기록, 14전에 이어 2연속 폴투윈의 발판을 마련했다. 초반 실수로 잠정 7위로 밀려난 베텔은 최종 공격에 들어갔다. 일단 첫 섹터에서 알론소 추월에 성공. 하지만 곧 페이스를 잃고 시간을 잃었다. 알론소의 최고 랩타임 1분 45.390초와는 0.067초차. 페라리는 알론소의 폴에 환호했지만, Q1의 엔진고장으로 꼴찌로 밀린 F. 마사에게 실망했다. 맥라렌 듀오가 2열을 독점. L. 해밀턴이 J. 버튼을 앞질러 3위. 랭킹 선두 M. 웨버(레드불)가 맥빠진 5위로 R. 바리첼로(윌리엄즈)를 옆구리에 꼈다. 바리첼로의 팀동료 N. 훌켄베르크는 12위로 떨어졌고 메르세데스 듀오는 10위권에 들었다. 여전히 N. 로즈베르크가 M. 슈마허(9위)를 앞선 7위. 그 사이에 르노의 쿠비사가 끼어들었다. 자우버의 K. 고바야시가 10위권을 채웠다. 알론소, 2연속 폴투윈 랭킹 2위9월 26일 일요일. 제15전 싱가포르 그랑프리가 시가지 서킷(1주 5.071kmx61주=309.316km)에서 결승전을 치렀다. F. 알론소(페라리)가 F1 유일의 야간경기를 제패, 14전에 이은 연속 폴투윈으로 랭킹 2위로 뛰었다. 타이틀을 향한 페라리의 후반 총공세가 뜨겁다. 예선에 이어 S. 베텔(레드불)이 또 다시 종반 뒤집기를 시도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타이틀전 선두인 동료 M. 웨버를 밀어내고 2위를 건졌다. L. 해밀턴(맥라렌)은 타이틀전 라이벌 알론소를 놓쳤을 뿐 아니라 2전 연속 중도탈락함으로써 스스로 타이틀 희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팀동료 J. 버튼이 4위로 맥라렌의 몰락을 막았다. 알론소의 폴투윈 작전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베텔과 같은 랩에 피트인한 뒤에도 순위는 불변. 그동안 알론소는 심각한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막판 최종 랩에 가서야 베텔은 알론소를 맹추격, 뒤집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알론소는 베텔을 교묘하게 따돌렸다. 더구나 H. 코발라이넨(로터스)의 최종 코너 황기경보마저 알론소를 도왔다. 한 랩 앞서 코발라이넨의 로터스 머신이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불길에 휩싸였다. 웨버는 타이어 도박으로 3위를 낚았다. 랩 3에 T. 리우지(포스 인디아)의 머신을 끌어내기 위해 세이프티카가 들어왔다. 그때 레드불팀은 웨버를 피트로 불러들여 프라임 타이어로 교환했다. 선두그룹에서 유일한 케이스였지만 그 덕택에 웨버는 5위에서 3위로 도약. 타이어 교환 후 웨버는 11위로 복귀한 뒤 연속 추월전에 들어갔다. 피트인한 맥라렌 듀오를 따돌리고 추월을 계속하다 주회가 뒤진 보진에 막혔다. 이때 해밀턴과 접촉. 해밀턴은 차체 파손으로 탈락한 반면 웨버는 기적적으로 살아나 시상대를 향해 질주했다. 종반 팀오더를 받은 J. 버튼(맥라렌)이 웨버 사냥에 나섰지만 N. 로즈베르크(메르세데스)를 제치고 4위에 그쳤다. 윌리엄즈 듀오 R. 바리첼로와 N. 훌켄베르크가 6, 10위로 득점권 진입. 르노의 R. 쿠비사, 페라리의 F. 마사와 포스 인디아의 A. 주틸이 그 사이에 끼었다. 제16전 일본 그랑프리10월 9일 일요일 오전. 제16전 일본 그랑프리 예선이 스즈카 서킷(1주 5.807km)에서 시작됐다. F1 사상 악천후로 인해 예선이 일요일로 넘어온 경우는 2번째. 서킷이 물바다가 되자 일요일 오전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레드불 듀오 S. 베텔(레드불)과 M. 웨버가 예상대로 그리드 1열을 독점했다. 날씨가 개어 바싹 마른 스즈카 서킷을 압도했다. 베텔은 예선 1~3전을 모두 휘어잡았다. Q3이 시작되자마자 즉시 1.30.792로 잠정 폴에 올랐다. 2차 공격에서 0.007초를 단축하며 헝가리 이후 시즌 8번째 폴을 잡았다. 그의 동료이며 랭킹 선두 웨버가 0.078초차로 뒤따랐다. L. 해밀턴(맥라렌)이 3위로 타이틀 도전에 박차를 가하는 듯했다. 한데 기어박스 교환으로 5위 강등 페널티에 걸려 8위로 추락. R. 쿠비사(르노)가 3위에 올랐다. 그의 위력에 밀려 이태리와 싱가포르 승자 F. 알론소(페라리)가 5위로 내려갔다. F. 마사는 이번에도 12위로 굴렀다. Q3에 혼자 하드 타이어를 선택한 J. 버튼(맥라렌)은 6위에 턱걸이했다. 메르세데스는 7위와 10위. N. 로즈베르크가 동료 M. 슈마허보다 0.4초 빨랐다. 윌리엄즈 듀오 R. 바리첼로와 N. 훌켄베르크가 그 사이에 끼었다. 폴투윈 베텔, 타이틀전 재점화10월 10일 일요일 오후 3시. 일본 그랑프리가 스즈카 서킷(1주 5.807kmx53=307.471km)에서 결승에 들어갔다. S. 베텔(레드불)이 마침내 시상대 정상에 돌아왔다. 깔끔한 일본 그랑프리 2연승이었다. 그의 팀동료 M. 웨버가 0.905초차의 2위. 3위로 뒤따른 F. 알론소(페라리) 및 동료 베텔과의 득점차를 14점으로 벌렸다. 베텔은 유럽 그랑프리 이후 첫승으로 알론소와 동점인 랭킹 3위에 올랐다. 맥라렌의 타이틀 희망은 좀 더 멀어졌다. J. 버튼과 L. 해밀턴이 4, 5위에 그쳤다. 해밀턴은 3단 기어가 먹통이 돼 고전. 레이스 중 사고는 첫 랩에 집중됐다. 심지어 버진의 L. 디그라시는 그리드로 가던 중 엽기적으로 대충돌을 일으켜 탈락. 뒤이어 레이스가 재개되자 번개처럼 스타트한 르노팀 V. 페트로프가 N. 훌켄베르크의 윌리엄즈 머신을 추월하며 들이받았다. 한편 페라리의 F. 마사가 첫 코너를 앞둔 풀밭으로 뛰어들면서 T. 리우지의 포스 인디아를 찔렀다. 즉시 세이프티카가 진입. 가장 주목되는 드라이버로 꼽히던 R. 쿠비사(르노)가 황기경보 중에 사라졌다. 페이스카 뒤를 정속주행하던 2위 쿠비사가 레드불 듀오 사이로 돌진. 오른쪽 리어 타이어를 날려버리고 탈락했다. 레드불은 재출발에서 원투를 지켰다. 베텔과 웨버가 알론소와 랩당 약 1초씩 간격을 벌려나갔다. 레드불 듀오가 선두를 내준 것은 딱 하번. J. 버튼(맥라렌)이 피트인을 미루고 하드 타이어로 버티던 25~38랩뿐. 버튼은 소프트로 갈아 신으면서 뒤로 밀렸고, 다시 최후 반격에 나섰다. 표적은 해밀턴과 알론소. 막판에 해밀턴의 3단 기어가 망가지며 순위는 결정됐다. 알론소가 3위, 버튼과 해밀턴이 4, 5위로 밀렸다. M. 슈마허(메르세데스)는 시즌 최고위(4위)에 이은 6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정석대로 어린 동료 N. 로즈베르크가 앞섰지만 불운이 덮쳤다. 5랩을 남기고 바퀴 하나가 날아가고 S커브에서 충돌 탈락. 자우버 듀오 K. 고바야시와 H. 하이드펠트가 7, 8위. R. 바리첼로(윌리엄즈)와 S. 부에미(토로로소)가 득점권을 마무리했다. F1은 10월 24일 한국 영암 서킷에서 코리아 그랑프리 창설전을 벌인다.
역대 르노 F1 머신 2010-11-14
1977 RS01 F1 최초의 터보 엔진인 FE1을 얹고 있었다. 장 피에르 자부이유가 몰고 시즌 막바지에 데뷔했다 1978 RS01 시즌 막바지 왓킨스 글렌에서 4위에 올라 최초의 포인트를 획득했다 1979 RS10 시즌 중반 투입된 신형 RS10은 프랑스 GP에서 터보차 최초로 F1 우승을 차지했다 1980  RE20  R. 아르누가 2승, J. P. 자부이유가 1승을 했지만 신뢰성 문제는 여전했다 1981 RE30 신예 프로스트가 영입되어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82  RE30B 본격적인 터보시대의 개막. 알랭 프로스트 3승으로 드라이버즈 포인트 3위 1983  RE40 종반까지 선두를 달리던 프로스트가 막판 신뢰성 부족으로 챔피언 타이틀을 놓쳤다 1984 RE50 신형 EF4 엔진을 얹은 RE50 머신 등장. 하지만 드라이버진이 바뀌면서 1승도 거두지 못했다 1985 RE60  르노 F1 1기 최후의 시즌. 모기업 르노가 국유화되면서 86년 엔진 공급업자로 전환했다  2002 R202 베네톤팀을 인수해 르노 워크스팀을 공식적으로 부활시켰다.  2003 R23 버튼 대신 영입된 신예 알론소가 재능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가 헝가리 GP에서 팀에 10년 만의 우승컵을 안겼다  2004  R24 1승뿐이었지만 꾸준한 득점으로 컨스트럭터 3위  2005  R25 팀 덴샴이 설계한 R25는 알론소와 함께 르노의 더블 타이틀을 견인했다. 르노 역사상 최초의 F1 챔피언 획득이었다  2006  R26 르노 첫 F1용 V8 엔진 RS26을 얹고 다시 한번 더블 타이틀을 차지. 말레이시아에서는 24년 만에 원투 피니시를 하기도 했다  2007  R27 알론소가 떠나고 타이어가 바뀌면서 전투력이 급감. 일본 GP 2위가 최고성적이었다  2008  R28 복귀한 알론소가 싱가포르 GP에서 예선 15위에서 출발해 우승했지만 후에 크래시 게이트가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2009  R29     시상대는 알론소의 싱가포르 3위가 유일. 광화문 시티쇽 행사를 위해 지난달 한국을 찾은 것이 바로 이 머신이다 2010 R30새로운 감독과 드라이버로 시작된 새로운 르노팀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고 있다. 아직 우승은 없지만 2번의 최고속랩을 기록했으며 컨스트럭터즈 5위를 유지 중. 벨기에 GP에서는 F덕트 버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DIMENSION 5,050×1,800×950mm(길이×너비×높이) WEIGHT 620kg(드라이버 포함)  CHASSIS   카본 파이버와 알루미늄 허니컴 복합제 EIGINE   RS27-2010, 90。 V8 2,400cc 32밸브 공압식 밸브, 최고 회전수 18,000rpm, 무게 95kg GEARBOX 후진 기어 포함된 티타늄제 반자동 7단, 변속시간 0.005초 SUSPENSION 카본파이버 암을 사용한 더블 위시본, 푸시로드식 인보드 댐퍼 TIRE/WHEEL 브리지스톤 포텐자/OZ 레이싱 13인치 BRAKE  히트코제 카본 디스크와 패드, AP 레이싱제 캘리퍼와 마스터 실린더
RENAULT F1 - 노란색으로 물든 혁신과 도전의.. 2010-11-14
10월 24일 역사적인 창설전을 치르게 된 코리아 그랑프리. 아직 F1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국에서는 어떤 팀, 어느 선수를 응원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페라리나 맥라렌은 세계적으로도 팬이 많고 한국에서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이름.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이름도 낯설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자고로 열성적인 응원을 위해서는 자국팀이나 자국인 드라이버의 존재가 절실한 법. 물론 한국 팀이나 한국인 드라이버는 없지만 잘 살펴보면 한 다리 건너 사돈의 팔촌보다는 가까운 F1 팀이 있으니, 바로 노란색 보디가 산뜻한 르노팀이다. F1 최초로 터보 엔진을 사용우선 한국 자동차 메이커가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현대와 기아, 르노삼성, GM대우 그리고 쌍용이 떠오를 것이다. 이 중 현대/기아를 제외하면 해외자본의 외국계 기업이지만 모두 그 뿌리와 시작은 한국이었다. 특히 르노삼성의 경우 외환위기 때 삼성자동차의 지분 80.1%를 르노가 인수했지만 여전히 19.9%를 삼성이 소유하고 있으며 삼성이라는 이름을 굳이 고집하고 있다. 모기업 르노는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 자동차 메이커. 1899년 루이 르노에 의해 창업된 후 자동차 역사 초창기부터 명성을 누려왔다. 그런 르노가 F1 그랑프리에 발을 들인 것이 1977년. 랠리와 르망 24시간에서도 활약했던 르노 스포르(Renaulet Sport)가 이 중책을 맡았다. 다만 데뷔는 개막전이 아니었고 후반기 5개 레이스에 경주차도 한 대만을 투입했다. 드라이버는 장 피에르 자부이유. 1976년 유럽 F2 챔피언이었던 그는 르노의 야심찬 F1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서 F1 사상 최초의 터보 엔진 개발에 한 축을 담당했다. 프랑스 메이커 르노는 프랑스인 J. P. 자부이유를 기용하는 한편 미쉐린 타이어와 엘프 연료를 사용한 ‘올 프렌치’ 체제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자연흡기 엔진에 비해 강력한 파워를 얻을 수 있었던 터보는 당시 아직 신뢰성이 부족했다. 데뷔전이었던 10전 영국 그랑프리에서는 예전 21위, 결선에서는 터보차저 트러블로 리타이어했다. 나머지 4전을 포함해 리타이어 4번, 예선 탈락 1번의 초라한 성적표였다. 빡빡한 예산과 인력으로 내구 레이스와 F1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이듬해인 1978년에는 3전부터 참가했는데, 전반적으로 신뢰성이 낮아 시즌 통틀어 완주가 4번에 불과했다. 최고 순위는 4위.제대로 된 팀 체제와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들어서부터다. 우선 전경기에 출장했을 뿐 아니라 르네 아르누를 영입해 2대 체제를 꾸렸다. 특히 3전 남아공 GP가 열린 칼라미 서킷은 공기가 옅은 고지대여서 터보 엔진의 위력이 배가되며 폴 포지션을 잡았다. 이윽고 8전 프랑스 GP에서 우승을 차지해 ‘프랑스 서킷에서 프랑스 드라이버가 프랑스 타이어와 연료를 사용한 프랑스 경주차를 타고 차지한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남겼다. 팀 첫 우승이자 F1 최초의 터보차 우승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신뢰성은 여전히 아킬레스건이었다. 81년 르노팀은 맥라렌에서 데뷔전을 치른 F1 새내기 알랭 프로스트를 자부이유 대신 앉혔다. 나중에 ‘프로페서’라는 별칭을 얻으며 가장 위대한 F1 드라이버 중 하나로 추앙받게 되는 프로스트는 빛나는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RS01의 터보 엔진도 점차 신뢰성이 안정되던 시기. 프로스트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이태리를 잡으며 종합성적 5위를 기록했다. 1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팀이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했지만 81년에는 르노 외에 페라리와 톨레만이 터보 엔진을 얹으면서 터보 세력이 늘어났다. 프로스트와 윌리엄즈의 황금기혼다와 BMW가 터보 엔진을 공급하면서 83년 시즌은 본격적인 터보시대로 접어들었다. 프로스트와 미국인 에디 치버를 내세운 르노는 데뷔 후 최고의 해를 보냈다. 1, 2전을 망쳤지만 3전 프랑스에서 프로스트 우승, 치버가 3위로 시상대를 독점했고 프로스트는 이후 3번의 우승과 2위 두 번, 3위 한 번으로 선두로 나섰다. 하지만 막판 추월을 허용하며 손에 넣었던 챔피언 타이틀을 넬슨 피케에게 헌납하고 말았다. 네덜란드와 이태리, 최종전 남아공 등 막판 3개 그랑프리에서 리타이어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챔피언 확정을 의심치 않았던 르노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고 프로스트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결국 프로스트는 8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맥라렌으로 이적했다. 1984년 D. 워윅과 P. 탐베이를 기용했지만 이미 터보 엔진 노하우를 손에 넣은 라이벌들은 르노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특히 프로스트가 가세하고, TAG 포르쉐 엔진을 손에 넣은 맥라렌의 기세가 무서웠다. 1985년이 되자 경쟁력은 더욱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경영부진이 심각하던 모기업 르노가 국유화되고 말았다. 이때 새로이 CEO로 취임한 조르쥬 베세는 F1 활동을 중단시키고 86년 로터스와 리지에, 티렐팀에 엔진을 공급하도록 했다. 잠시 공백기를 가진 르노는 1989년 윌리엄즈팀 엔진 공급자로 활동을 재개했다. 데뷔 당시 터보차저라는 신병기를 선보였던 르노는 이번에는 공압식 밸브라는 신기술에 도전했다. 나날이 회전수가 높아지는 F1 엔진들은 스프링과 캠을 사용하는 전통적 구조로는 정확한 밸브 작동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계적인 스프링 대신 공기압력을 이용해 밸브를 움직이도록 한 것. 이 시스템 덕분에 1만4,000rpm이라는 경이적인 회전수가 가능해졌다. 티에리 부첸은 새로운 르노 RS1 엔진을 얹은 윌리엄즈 머신을 타고 6전 캐나다와 최종전 호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르노 엔진의 가능성을 확인한 윌리엄즈는 공급계약을 연장했고, 그들의 신무기 액티브 서스펜션을 더해 강력한 머신을 완성했다. 92년 만셀, 93년 프로스트가 윌리엄즈-르노 머신으로 챔피언에 오르는 동안 팀은 3년 연속 컨스트럭터즈 챔피언(92~94)을 차지했다. 95년에는 베네톤팀에서 챔피언이 된 M. 슈마허부터 상위 4명이 모두 르노 엔진(베네톤과 윌리엄즈팀)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97년까지 계속되었다. 97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르노가 다시 F1을 떠나면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잃은 윌리엄즈와 베네톤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2년 후인 2000년, 마침내 르노가 워크스팀으로 F1에 복귀신고를 하기에 이른다. 플라비오 브리아토레가 이끌던 베네톤팀을 1억2,000만달러에 매입한 르노는 베네톤의 G. 피지켈라와 A. 부르츠를 그대로 기용했다. 엔진은 구형 르노를 베이스로 프랑스 수퍼텍이 개량한 버전(플레이라이프)을 얹었다. 하지만 컨스트럭터 등록기한을 넘겨 2001년은 ‘베네톤 르노’라는 이름을 그대로 썼다.  초반 3년간의 성적은 부진했다. 2001년 J. 버튼, 2002년 J. 트룰리가 새롭게 합류했다. 그리고 2003년 버튼 대신 인상적인 테스트 기록을 남겼던 스페인 출신의 신예 F. 알론소를 영입했다. 브리아토레의 파격적인 기용에 화답하듯이 알론소는 그 해 헝가리 그랑프리에서 르노에게 복귀 후 첫 우승컵을 안겨주었다. 1983년 오스트리아 GP 이후 10년 만의 감격이었다. 2005년 트룰리는 모나코에서 우승하며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팀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최종 3전을 남기고 토요타로 이적하고 말았다. 반면 알론소는 표창대에 4번 오르며 종합 4위에 올랐다.르노 모터스포츠의 산실 르노 스포르르노 스포르(Renault Sport) 혹은 RST(Reanult Sport Technologies)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르노의 모터스포츠 담당 부서. 1970년대 르망 24시간을 필두로 한 유럽의 내구레이스와 투어링카 레이스, 랠리는 물론 F1까지 담당해왔다. 2000년대 들어 르노가 F1에 복귀할 때에는 베네톤팀을 인수함으로써 이제는 F1과 별개의 부서가 되었다. 하지만 포뮬러 르노와 월드 시리즈 바이 르노 등 하위 포뮬러에서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순수한 모터스포츠 활동 외에 르노 고성능 버전도 제작해 판매해왔다. 대표적인 모델이 메가느 르노 스포르와 르노스포르 클리어 197. 소형 해치백 메가느와 클리오를 바탕으로 제작한 핫해치들이다. 3세대 메가느를 바탕으로 2009년 선보인 메가느 르노스포르 250(왼쪽 끝에서 시계방향으로 2번째)은 4기통 엔진에 트윈 스크롤 터보를 달아 출력을 250마력으로 높이고 6단 수동변속기, 전용 에어로파츠, 리어 디퓨저 등 서킷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진하게 담아냈다. 반면 메가느 트로피(사진 맨 왼쪽)는 모습은 메가느지만 내용물은 순수 레이싱카. 튜브 프레임에 복합소재 보디를 씌우고 미드십에 V6 3.5L 360마력 엔진을 얹었다. 구형을 대신해 원메이크 레이스인 유로컵 메가느 트로피에 사용된다. 알론소와 2년 연속 더블 타이틀 차지경주차의 성능이 숙성되고 알론소의 실력이 눈부시게 발전한 2005, 2006년 시즌은 르노팀 역사의 황금기가 되었다. 2004년 말 트룰리의 빈자리를 J. 빌르너브로 메웠던 르노팀은 G. 피지켈라를 알론소의 파트너로 영입했다. 당시 F1은 페라리와 슈마허의 황금 콤비가 서킷을 휩쓸던 시기. 2004년 슈마허는 18전 중 무려 13전을 챙겨 압도적인 차로 챔피언에 올랐다. 팀동료 바리첼로가 2승을 챙겨 컨스트럭터 점수에서 2위와 무려 143점 차로 2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알론소는 7승으로 슈마허(페라리)와 라이코넨(맥라렌)을 밀어내고 챔피언에 올랐다. 또한 사상 최연소 월드 챔피언 기록(이 기록은 2008년 해밀턴에 의해 갱신되었다)까지 갈아치웠다. 개막전을 잡은 피지켈라의 활약까지 더해 컨스트럭터즈 타이틀까지 손에 넣었다. 르노의 기세는 이듬해에도 계속되었다. 2005년의 타이어 규정이 변경되면서 페라리가 부진한 덕분에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2006년 시즌의 활약은 이런 평가를 일축하기에 충분했다. 슈마허는 2006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 마지막 타이틀을 놓고 알론소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알론소가 9전까지 6승, 2위 3번으로 앞서갔지만 슈마허 역시 4~5전, 10~12전을 잡으며 응수했다. 타이틀의 향방은 최종전 직전 벌어진 17전 일본 GP에서 결정되었다. 116점으로 동일 포인트, 하지만 승수에 따라 슈마허가 근소하게 리드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37주째 슈마허의 페라리 머신이 데그너 커브 근처에서 엔진 트러블로 멈추어 서면서 승리의 여신은 알론소에게 미소를 보냈다. 르노팀은 2년 연속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차지했다. 2연속 챔피언이 된 알론소는 2007년부터 맥라렌으로 자리를 옮겼다. 르노팀은 테스트 드라이버 H. 코발라이넨을 승격시켰지만 전력 누수는 어쩔 수 없었다. 담배 광고가 금지되면서 마일드 세븐 대신 보험사 ING가 메인 스폰서로 바뀌는 등 변화가 많았다. R27 머신은 새로운 브리지스톤 타이어와의 상성 문제와 에어로다이내믹 설계 실수로 전투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일본 GP에서 코발라이넨의 2위가 최고 성적.  맥라렌으로 옮겨갔던 알론소가 팀 적응에 실패하면서 2008년 시즌 다시 르노로 복귀, 드라이버 전력이 강화되었다. 세컨드 드라이버는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넬슨 피케 Jr로 교체. 경주차의 성능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알론소의 실력을 믿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화답하듯 최초의 나이트 레이스로 열린 싱가포르 GP에서 예선 15위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멋지게 우승을 차지했다. 피케 Jr는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독일에서 2위에 올라 가능성을 보였다.  부활의 가능성이 점쳐지던 2009년. 하지만 이 시즌은 르노 F1 역사상 최악의 해로 기록된다. 9전 독일에서 알론소가 3년 만에 최고속랩을, 10전 헝가리에서 3년 만에 폴 포지션을 따낼 때만 해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헝가리 GP를 마지막으로 팀에서 방출된 피케 Jr가 2008년 싱가포르에서 의도적인 사고로 알론소의 우승을 도왔다고 폭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FIA 모터스포츠 평의회는 르노팀에 참가자격 박탈(집행유예 2년), 팀 감독인 브리아토레는 FIA가 주관하는 모든 모터스포츠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그 여파로 팀의 주요 스폰서였던 마투타 마힌드라와 ING 그룹이 모두 떠나고 말았다.세계적인 경제위기까지 겹친 상황에서 F1 팀을 유지할 수 없었던 르노는 팀 매각을 결정했다. 2009년 12월 16일, 소유하고 있던 주식 대부분을 룩셈부르크 투자회사인 제니 캐피탈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중 1/4인 25%의 주식을 유지하기로 하고 여전히 엔진을 공급함으로써 F1으로 이어진 끈을 놓지 않았다. 위기 지나 새로운 도약 준비해무엇보다도 르노 엔진(RS27-2010)은 강력한 파워와 안정적인 내구성을 갖추고 있어 르노팀 전력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팀 자체는 아직 크래시 게이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엔진을 공급하고 있는 레드불팀은 승승장구, 올해 드라이버와 컨스트럭터즈 더블 타이틀을 넘본다. 1980년대 르노 파워 황금기의 부활이 점쳐지고 있다.감독이 파면되고 알론소도 떠났지만 르노팀은 레드불, 맥라렌, 페라리, 메르세데스에 이어 5위를 달리고 있다. 알론소 대신 영입된 헝가리 출신 쿠비자는 안정적인 달리기로 꾸준히 득점권을 지키고 있다. BMW의 퇴진으로 자리를 잃었던 쿠비자는 원래 2001년 포뮬러 르노를 통해 포뮬러 세계에 입문한 경력이 있다.지난 1월 새로이 팀을 이끌게 된 에릭 부이에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프랑스 DAMS팀과 A1팀 프랑스 등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 러시아의 아브토바즈를 지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최초의 러시아 드라이버 V. 페트로프를 영입함으로써 라다와 비보르그 등 러시아 기업들을 스폰서로 끌어들였다. 위기를 넘어 황금기를 구가해온 지금까지의 역사처럼 그들의 새로운 도약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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