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모터스포츠

6김창영, 랠리 데뷔 5년만에 첫승 감격 개 클래스.. 2003-11-11
‘오프로드 김창영시대 선언!’ 2001∼2002년 코리아 오프로드 시리즈 챔피언 김창영(타이거릴리)이 지난 9월 27∼28일 속리산 기슭의 충북 보은군 일대에서 열린 2003년 보은 금호컵 코리아랠리에서 우승해 비포장 레이스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번 대회는 국내 랠리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2001년 통일염원 금강산 자동차질주 경기 이후 2년만에 펼쳐진 랠리로 관심을 모았다. 또한 지역축제인 보은동학제와 더불어 하프마라톤 대회 등 많은 부대행사가 펼쳐졌고 20여 개 모터사이클팀이 참가한 2003년 엔듀로 랠리챔피언십도 함께 치러져 관중들에게 재미를 주었다. 3개 SS 취소 등 대회 진행에 차질 FCR 듀오 T1과 T2 클래스 휩쓸어 코리아랠리는 보은군 길탕리, 탁주리, 장갑리, 은운리, 신정리, 차정리 등을 연결하는 임도 등 모두 180km(경기구간 62km)구간에서 펼쳐졌다. 이 대회에는 오프로드 레이스에 주로 참가해온 경주차 28대와 4WD 8대 등 36대가 출전해 랠리의 참맛을 보여 주었다. 클래스는 국제자동차연맹(FIA) 기술규정에 따라 A7(1천601∼2천cc, 부분개조), A6(1천301∼1천600cc, 부분개조), N3(1천601∼2천cc, 비개조), N2(1천301∼1천600cc, 비개조), T1(4WD, 휘발유), T2(4WD, 경유)로 나뉘었다. 9월 27일 오후 4시, 참가번호 1번 김창영의 현대 터뷸런스 랠리카가 헤드쿼터인 보은문화원 광장을 출발하면서 코리아랠리 제1레그(SS1∼SS2)가 시작되었다. 이날은 보은군 길탕리, 탁주리, 보청천 특별코스 등에서 모두 2개의 스페셜 스테이지(SS)가 치러졌다. 특히 보은 읍내를 가로지르는 보청천 둔치에 마련된 SS2는 수퍼스페셜스테이지(SSS)처럼 한자리에서 코스(1주 900m) 전체를 지켜볼 수 있게 꾸며졌다. 하지만 코스 길이가 짧고 단조로워 드라이버의 실력과 경주차 성능을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미흡했다. 대회 첫날 주인공은 현대 터뷸런스 경주차로 A7 클래스에 출전한 김창영(타이거릴리)이었다. 김창영은 코드라이버 진영호와 함께 SS1과 SS2 구간에서 5분53초70의 기록을 내며 2위 임창규(T2, FCR)를 6초 차이로 따돌리고 종합 선두에 올라 일찌감치 우승을 예약했다. 김석기(N3, 춘천레이싱), 정승철(T1, FCR), 신수욱(N3, 퀘스트랠리), 한권섭(A6, 임팩트)이 간발의 차이로 뒤를 이었다. N2의 이민우(포항용마)는 SS2에서 리타이어해 첫 탈락자로 기록되었다. 9월 28일 치러진 제2레그(SS3∼SS8)는 보은군 은운리, 길탕리, 탁주리 등에서 당초 계획보다 3경기가 줄어든 모두 3개 SS(SS4, SS5, SS6)에서 펼쳐졌다. 경기가 진행되는 코스에 일반 승용차가 진입해 SS3이 취소되었고, 코스 이동을 하던 경주차를 주민들이 트랙터로 막아서서 경기가 2∼3시간 지연되는 등 대회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대회에 참가한 경주차, 모터사이클이 굉음을 내며 달리는 동안 이 지역 가축 피해가 잇따랐기 때문이었다. 1레그까지 2위를 지키며 선전한 FCR의 임창규는 SS6에서 팀동료 정승철에게 추월당했다. 길탕리∼탁주리 구간인 SS4는 김창영, 보청천 특설 코스인 SS5는 임창규, 차정리∼노성리 구간인 SS6에서는 정승철이 톱타임을 냈다. 하지만 3개 SS를 휘어잡은 김창영이 정승철을 9초 차이로 따돌리고 표창대 정상에 섰다. 95년 오프로드 레이스에 데뷔한 후 2000년 최고종목 투어링A로 올라간 김창영은 불과 2년만에 대회 간판 드라이버로 자리잡으며 역대 오프로드 레이스 챔피언 중 최단기간에 정상을 정복하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김창영은 지난해에도 라이벌 최희식을 제치고 비포장 최고 드라이버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김창영은 “코드라이버로 호흡을 맞춘 진영호와 미캐닉들의 도움으로 95년 이후 랠리에서 첫 우승컵을 안을 수 있었다”며 “기회가 생기면 국산 경주차에 국내 타이어를 달고 해외 랠리에 출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부분개조 부문인 A6에서는 한권섭(임팩트), 비개조 부문 N3에서는 김석기(춘천레이싱), N2에서는 최영무(진주DMZ)가 클래스 우승컵을 안았다. 4WD 부문에서는 T1(휘발유) 정승철과 T2(디젤) 임창규 등 FCR팀이 우승했다. 올 시즌 두 번째 랠리는 11월 8∼9일 경북 김천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팀 메카의 김남균, 클릭 레이스 호령 시리즈 참가규.. 2003-11-11
국내 유일의 아마추어 원메이크 레이스인 2003년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이 지난 9월 27일 올 시즌 최다 참가자인 42명이 출사표를 던진 가운데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펼쳐졌다. 지난 4월 개막전에서 당초 기대했던 것과 달리 25명만이 참가해 일반인들의 호응이 저조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규모가 커지고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류시원, 황기 구간 추월해 22위로 추락 김남균, 폴투윈으로 시리즈 3연승 달려 예선 결과 팀 메카의 김남균이 1분 25초 151로 폴포지션(PP)을 차지했고 팀동료인 강병휘(팀 메카)와 오상엽(카레안)이 뒤를 이었다. 경기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연예인 레이서 류시원(R스타즈)은 예선 3위로 골인했지만 황기 구간 추월로 타임 페널티를 받아 아쉽게 중하위권인 22위로 내려앉았다. 랭킹 선두 이주상(LED 미라지) 역시 페널티 사인 불응으로 타임 페널티를 받아 후미그룹으로 내려앉고 말았다. 결승 레이스 출발신호가 떨어졌으나 2그리드 강병휘가 잠시 주춤거리는 사이 PP 김남균이 여유있게 가장 먼저 1코너에 진입했고 2위부터 4위까지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며 선두 그룹을 형성했다. 김남균은 일찌감치 독주태세를 갖추기 시작했고 5랩부터 후미 그룹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22그리드에서 출발한 류시원은 앞차들을 차례로 따라잡으며 6랩째 10위까지 올라섰으나 5코너에서 코스를 벗어나 또다시 하위권으로 떨어졌다. 2위 강병휘보다 100m 가량 앞서며 여유를 보이던 김남균은 후미 그룹을 추월하는 과정에서 스피드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틈에 강병휘가 공격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노련미를 앞세운 김남균의 블로킹에 막히고 말았다. 강병휘는 마음이 급한 나머지 15랩 오메가 코스에서 무리한 추월을 시도하다가 잠시 자세가 흐트러졌다. 위기를 넘긴 김남균은 추월행진을 계속하며 안정된 레이스를 펼쳐갔다. 3위 오상엽은 2위 추격을 포기한 채 4위 안현준(로드아트)과의 거리를 200m 이상 벌리며 안전한 페이스를 유지했다. 강병휘는 다시 한번 선두를 추격했으나 후미 그룹에 막혀 더 이상 추월 기회를 잡지 못했다. 레이스가 종반전으로 접어들자 김남균은 우승을 예감한 듯 속도를 조절하며 여유있게 경기를 마무리, 시즌 첫 3연승의 주인공이 되었다. 김남균은 “레이스 중반 후미 그룹에 막혀 레코드라인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며 “특히 강병휘에게 추격의 빌미를 줘 한때 긴장했으나 그것도 레이스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며 우승 소감을 밝혔다. 강병휘(팀메카), 오상엽(카레안), 안현준(로드아트), 어영해(달비)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 종합점수에서는 80점을 기록한 김남균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김남균은 꾸준한 점수관리 덕에 2위 강병휘보다 6점을 더 쌓았다. 제4전까지 종합 선두를 달리던 LED 미라지의 이주상(64점)은 이번 대회에서 득점에 실패해 시리즈 챔피언 경쟁에서도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클릭 스피드 페스티벌 제4전은 오는 10월 26일 스피드웨이에서 열린다.
인디고, 창단 이후 첫 2종목 독식 사가구치 료헤,.. 2003-11-11
국내 유일의 온로드 레이스인 2003년 BAT컵 GT챔피언십 시리즈가 8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마감했다. 지난 10월 12일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GT챔피언십 제6라운드는 마지막 대결장답게 올 시즌 중 가장 화끈한 승부를 펼치며 6개 클래스 챔피언을 확정지었다. 제6전 최고의 영웅은 포뮬러1800 챔프 사가구치 료헤(인디고). 그는 5전까지 오일뱅크 듀오 이승진과 장순호의 파워에 눌렸으나 최종 라운드에서 믿기 힘든 역전 드라마를 펼치면서 드라이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의수(인디고, GT1), 강현택(타키온, 투어링A), 김동륜(블라스트, 하이카), 김동선(마루아치, 신인전)도 종합챔피언 자리에 올라 샴페인을 터뜨렸다. GT2 부문에 출전한 김한봉(펠롭스)은 3년 연속 톱드라이버 자리를 차지해 노장의 진면목을 과시했다. 김중군, 마지막 바퀴에서 짜릿한 역전승 이승진과 장순호 추돌로 동반 리타이어 스피드웨이 1.8km 숏코스에서 열린 GT챔피언십 시리즈 제6전에는 드라이버 80여 명이 참가했다. 경기는 GT1·GT2·투어링A 30랩, 하이카 18랩, 신인전 15랩을 돌아 승패를 갈랐다. 이날 열린 첫 레이스는 신인전. 이미 김동선(마루아치)이 챔피언을 확정한 상태여서 종합 2위를 놓고 박인천(CJR, 55점), 김무연(리갈, 52점), 김윤도(R테크, 52점), 이응송(NRT, 51점)의 4파전이 예상되었다. 예선에서는 박인천, 이응송, 김동선이 1∼3위를 차지했고 김윤도와 김무연은 7, 8그리드로 밀려났다. 폴포지션(PP)의 박인천은 11랩 1코너에서 김동선에게 잠시 선두를 빼앗겼으나 곧바로 역전한 뒤 줄곧 1위를 달렸다. 뒤이어 무리하지 않고 달린 김동선이 2위로 들어와 자신의 챔피언 타이틀을 자축하는 마무리 득점을 올렸다. NRT의 이응송은 경기 초반인 3랩에서 경주차 트러블로 리타이어했다. 신인전은 3, 4전에서 2연승을 거둔 김동선(100점)이 챔피언이 되었고 꾸준히 상위권에 든 박인천(78점)이 종합 2위, 3위는 이날 4위를 기록한 김무연(65점)이 차지했다. 뒤이어 열린 하이카 종목에는 30명이 출전해 그리드를 꽉 채웠다. 예선에서는 김중군(시케인)이 어렵사리 PP를 잡았다. 2위는 선두와 불과 0.002초 뒤진 김동륜(블라스트). 김호중(R테크), 곽성규(R테크), 이임균(NRT)이 간발의 차이로 뒤를 이었다. 김중군은 스타트와 함께 1코너에서 김동륜에게 선두자리를 내주었으나 2코너에서 되찾았다. 하지만 3위 김호중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3랩에서 2위, 7랩에서는 1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김호중, 박인천, 김동륜, 곽성규 순으로 레이스가 이어졌다. 마지막 랩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선두 김호중이 10코너를 빠져나가면서 한 바퀴 뒤진 최광규(스피드 폭스)의 블로킹에 잠시 주춤하는 사이 김중군이 선두로 치고 나가 제일 먼저 피니시 라인을 밟았다. 하지만 3위로 들어와 15점을 올린 김동륜(95점)이 김중군(92점)보다 총점에서 3점 앞서 하이카 종목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포뮬러1800에서는 지난 5전에서 우승해 종합선두로 나선 이승진(89점)과 1점차로 2위로 내려앉은 장순호(88점) 등 오일뱅크 듀오의 마무리 승부가 기대되었다. 12명이 참가해 점수는 1위부터 23점, 18점, 15점, 13점 순으로 평소보다 5점이 많았다. 따라서 이날 결과에 따라 순위가 뒤바뀔 가능성이 컸다. 21점차로 뒤진 인디고의 사가구치 료헤(68점)가 역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가 1위를 하고 오일뱅크 듀오가 모두 탈락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선 5차례 레이스에서 모두 완주한 것은 물론 전 경기 우승을 기록한 오일뱅크팀이 한꺼번에 탈락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예선 결과 PP를 잡은 드라이버는 장순호. 이승진과 사가구치가 2, 3위로 출발했다. PP 장순호를 압박하며 출발한 이승진은 1코너에서 장순호와 부딪쳐 둘 다 최하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완주점수 3점 때문에 아직 종합우승 기회는 남아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3랩이 더 이어졌고 이승진은 장순호를 내내 압박하며 추월을 노렸다. 4바퀴째 3코너에서 이승진은 장순호를 추월하려다 장순호의 경주차 왼쪽 뒤타이어로 올라타면서 추돌, 장순호의 경주차 위로 떨어지는 대형사고가 벌어졌다. 레이스 중단을 알리는 적기가 걸리며 구조요원 등이 투입되자 서킷의 열기는 싸늘히 식었다. 장순호는 아주대 병원으로 옮겨져 정밀진단을 받았으나 큰 부상은 없었다. 김의수, 2년 연속 GT1 타이틀 차지해 렉서스 IS200, 국내무대 첫 우승 기록 결국 오일뱅크 드라이버 둘이 리타이어하고 경기는 30분만에 다시 진행되었다. 오일뱅크 듀오의 탈락으로 사가구치는 종합챔피언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새로운 복병인 심페이 코노미(이레인)를 쫓기엔 역부족인 듯했다. 그러나 경주차의 트랜스미션 고장으로 심페이가 리타이어, 결국 사가구치(91점)는 1등으로 피니시라인을 밟았다. 시즌 1승만을 거두고도 종합우승을 거머쥐고 국내 모터스포츠 사상 첫 용병 드라이버 우승자가 되는 기쁨을 누리게 된 것이다. 사가구치는 정상을 밟은 기쁨을 이기지 못해 펜스에 올라가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2, 3위는 주니치 타케다(이레인)와 최해민(타이거릴리)이었다. 이로써 오일뱅크는 98년부터 지켜온 포뮬러1800 타이틀을 어이없게 라이벌 인디고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올 시즌 내내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는데 마지막 레이스에서 뜻밖에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 팀과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기적 같은 역전승의 주인공, 사가구치 료헤의 우승소감이다. 롤링 스타트로 시작된 GT1 클래스도 인디고 듀오 김의수(66점)와 이재우(62점)의 혈전이 예상되었다. 반면 3위 윤세진(오일뱅크, 57점)은 우승을 해도 김의수가 4위 이하로 밀려나지 않으면 챔피언이 되기 어려웠다. 전날 펼쳐진 예선에서는 이재우가 PP를 잡고 윤세진, 김의수, 오일기(오일뱅크)가 뒤를 이었다. 결승전이 열릴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각 팀의 미캐닉들은 재빨리 경주차의 타이어를 레인 타이어로 바꿨다. GT1은 예선 2위 윤세진이 빠른 스타트로 대열을 이끌면서 막이 올랐다. 이재우, 오일기, 김의수의 순. 이재우는 윤세진을 압박하면서 실마리를 풀었다. 이재우는 12랩에서 윤세진을 추월해 선두로 올라선 후 시리즈 타이틀을 향해 질주했다. 그러나 쉽게 물러설 김의수가 아니었다. 김의수는 오일기를 추월한 데 이어 14랩에서 윤세진마저 따돌리고 2위로 올라서 정상 도전에 나섰다. 팽팽하던 경쟁은 이재우가 추돌사고로 서킷에서 사라지면서 끝났다. 김의수가 선두를 넘겨받았고 윤세진, 오일기가 차례로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김의수는 84점으로 2년 연속 챔피언컵을 안았다. 윤세진(72점)은 이재우(62점)와 종합순위를 맞바꾸어 2위가 되었다. 이로써 오일뱅크는 95년 팀 창단 이후 처음으로 단 1개의 타이틀도 얻지 못했다. GT2 종목에서는 렉서스 IS200의 운전대를 잡은 백전노장 김정수(모빌엣지 이글)가 선두를 차지해 지난 5월 18일 시리즈 3라운드에서 데뷔한 이래 4번째 경기만에 일본차의 국내경주 첫 우승기록을 남겼다. 2, 3위는 김한봉(펠롭스)과 심상학(다이나믹)에게 돌아갔다. 5전까지 1점 차이로 김한봉과 타이틀 경쟁을 벌이던 권오수(잭)는 첫 코너에서 임성택(레드라인)과 추돌해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종합 순위는 김한봉(78점), 심상학(67점), 권오수(65점)의 순이었다. 투어링A는 쌍용자동차 테스트 드라이버인 김영관(RTS)이 시즌 첫승의 감격을 맛보았고, 강현택(타키온)과 이세창(KMC R스타즈)이 2, 3위로 들어왔다. 하지만 경기 후 검차에서 이세창의 경주차가 불법개조된 사실이 인정되어 실점, 결국 강현택(87점)이 첫 챔피언이 되었다. 김영관(83점)은 1위를 기록했으나 점수차를 넘지 못하고 종합 2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종합우승을 노린 이세창(81점)은 종합 3위로 처졌다. 올 한 해 BAT컵 GT챔피언십은 경기당 평균 7천여 명이 관람해 국내 자동차경주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호평 속에 2003년 시즌을 마무리했다. GT챔피언십은 내년 시즌 새롭게 다듬어진 규정으로 더욱 알찬 레이스를 다짐하며 긴 휴식기에 들어갔다.
1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박경호 우승 현대해상 하이.. 2003-10-29
우리나라 최초의 카트 내구 레이스가 지난 9월 21일 경기도 화성 카트빌(1주 700m)에서 개최되었다. 레드스톤이 주관하고 현대 레이싱&커뮤니케이션이 주최한 이번 대회는 2003 현대해상 하이카 카트 페스티벌 제3전을 겸해 동호인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서 치러졌다. 이야메(FP-A)와 야마하(FP-B) 통합전으로 열린 1시간 내구 레이스에서 킴스레이싱의 박경호가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 정상 드라이버 출전해 분위기 돋궈 19명이 출전한 통합전 결승은 드라이버의 체력과 팀워크가 승패를 갈랐다. 1시간 동안 카트빌 700m 트랙을 126바퀴 주파한 박경호는 안정된 테크닉을 바탕으로 투지를 불태워 예선 3위 핸디캡을 극복했다.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문성학(카티노)은 선두 박경호에 1랩 뒤져 2위 체커기를 받았다. 이야메전과 통합전을 휩쓴 박경호는 “처음 접하는 내구 레이스여서 체력부담이 가장 힘들었다. 그동안 조깅과 줄넘기로 체력을 키웠지만 마지막 5분을 남겨 두고 많이 힘들었다”면서 “내년 시즌에는 포뮬러1800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야마하전에서는 코리아카트팀 김동은이 랩 당 평균 26초의 꾸준한 달리기를 펼쳐 클래스 우승과 통합전 3위 트로피를 한꺼번에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레드스톤의 김진수가 야마하전 피니시라인을 두 번째로 갈랐다. 올해 13세인 김동은과 김진수는 어린 나이에도 강한 체력과 집중력을 갖춰 인상적인 레이스를 보여주었다. 한편 이벤트로 마련된 톱스타 레이스에서는 윤세진, 장순호(이상 오일뱅크), 김의수 등 국내 BAT GT 챔피언십 톱드라이버들 8명이 출전해 분위기를 돋구었다. 꿈나무 카레이서들과 조를 이뤄 달린 경주에서 민현기-임태훈 조가 1위, 윤세진-김동은 조가 2위를 거두었다.
인디고 김의수, GT1 역전 1위 장순호·이승진, .. 2003-10-29
여름 끝머리에 펼쳐진 BAT GT 챔피언십 제5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지난 8월 30∼31일, 에버랜드 스피드웨이 서키트를 뜨겁게 달군 이번 대회에는 7천여 명의 관중이 찾아와 열전 퍼레이드를 지켜봤고, 6개 클래스 드라이버 91명은 흥미진진한 레이스를 펼쳐 박수갈채를 뽑아냈다. 시리즈 챔피언의 주인공을 가름하는 분수령인 BAT GT 챔피언십 제5전은 2위들의 반란이 불을 뿜은 무대였다. 대회 최고 클래스 GT1과 포뮬러1800 1위를 지키고 있는 윤세진과 장순호(이상 오일뱅크)가 5전에서 2003 시즌 타이틀을 확정지을 전망이었으나, 김의수(인디고)와 이승진(오일뱅크)에게 덜미를 잡히는 불운을 맞았다. 이에 따라 최종 6전(10월 12일, 스피드웨이) 체커기가 올해 챔피언을 지목하게 되었다. GT2 부문에서는 노장 김한봉이 우승컵을 챙겼다. 이로써 개막전 이후 3연속 2위에 머물렀던 김한봉은 4전 리타이어의 아쉬움을 떨어내고 클래스 1위에 올라섰다. 이밖에 손병훈(투어링A), 김동륜(현대해상 하이카, 투어링B), 이응송(신인전)도 오랜만에 포디엄 정상을 밟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GT1·2, 투어링A 통합전 안개 레이스, 최종전 체커기가 우승자 가려 최고의 격전이 벌어지는 투어링카 통합전에서 ‘희비 쌍곡선’이 뚜렷하게 그려졌다. GT1 라이벌 오일뱅크와 인디고의 엇갈린 명암이 어느 대회보다 짙게 드리워진 레이스였기 때문이다. BAT GT챔피언십 GT1 제5전은 윤세진에게는 통한의 한 판, 반대로 인디고팀으로서는 타이틀 2연패의 불씨를 되살린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희망의 전주곡은 30랩 통합전 오프닝랩에서 울려 퍼졌다. 예선 원투체제를 구축한 인디고 듀오 김의수와 이재우가 스타트한 이후 3그리드에서 출발한 윤세진이 앞선 주자들의 틈을 비집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윤세진에게 뒤쳐진 이재우가 설욕에 나서는 순간 스피드웨이 오메가 코스에서 파란이 일어났다. 휠투휠 레이스를 벌이던 두 드라이버의 경주차가 부딪치는 과정에서 윤세진의 투스카니가 치명상을 입었다. 파닥거리는 숨을 고른 뒤 곧바로 몸을 추스렸지만 상처 입은 오일뱅크 경주차는 달리기를 계속할 수 없었다. 이 사이 폴시터 김의수는 시즌 2승을 향해 순항을 거듭했다. 고의 푸싱으로 페널티를 받은 이재우는 피트인한 뒤 트랙에 복귀해 오일기(오일뱅크)를 제쳤다. 이로써 GT1 예선 순위대로 인디고 쌍두마차 김의수와 이재우가 원투피니시를 거두었고, 3위 표창대에 오일기가 올라갔다. 최종전을 남겨둔 GT1 종합 성적은 김의수(66점), 이재우(62점), 윤세진(57점) 순. 이변이 없는 한 클래스 우승은 인디고팀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득점 선두 김의수는 남은 경기에서 3위 이내에만 들어도 드라이버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고, 5전에서 아쉽게 리타이어한 윤세진은 김의수가 4위 이하로 밀려나고 자신은 우승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변수가 많은 자동차경주의 특성상 2003 시즌 영광의 얼굴은 최종 6전 포디엄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5명이 참가한 GT2 승패도 안개 속에 빠져들었다. 4전까지 권오수(잭)가 선두를 지켰으나 베테랑 김한봉(펠롭스)이 5전 우승과 함께 전세를 뒤바꿨다. 두 드라이버의 점수차는 1점. 63점을 쌓은 김한봉과 그 뒤를 따르는 권오수의 대결이 6전 GT2 마지막 라운드를 기다리게 하고 있다. 18명이 맞붙은 투어링A에서는 이세창(KMC)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시즌 2승을 거둬 일찌감치 선두에 나선 이세창은 남은 1전에서 6위 이내에만 들어도 자력 우승이 결정된다. 치열한 2위 대결장에는 강현택(타키온), 손병훈(KMSA), 김영관(RTS)이 올라와 있다. 이 가운데 손병훈은 이번 대회 우승과 함께 단숨에 클래스 3위까지 뛰어올라 선두 이세창을 사정권에 끌어들였다. 하이카(투어링B)·신인전 신인전 김동선 시리즈 우승 확정 시리즈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더욱 격렬해진 순위 대결이 현대해상 하이카(투어링B) 클래스에서도 벌어졌다. ‘선두 굳히기’에 들어간 김중근(시케인)과 클래스 왕좌를 노리는 김동륜(블라스트)은 예선부터 치열한 기세싸움을 벌였다. 5전 예선의 승자는 김동륜. 이임균(NRT), 한상규(블라스트), 김중근을 누르고 폴포지션을 차지한 김동륜은 톱그리에 포진해 피니시 체커기를 꿈꿨다. 30명이 출전한 하이카 레이스에서 이변은 나오지 않았다. 폴시터 김동륜이 18랩을 가장 빨리 달려 우승컵을 차지했고, 예선 순위를 바꾼 한상규와 이임균이 2, 3위 표창대를 밟았다. 반면 4그리드에서 출발한 김중근에게는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레이스 초반, 3위까지 올라서며 표창대 등정을 기대했지만 어이없는 스핀에 덜미를 잡혀 16위로 뒤쳐졌다. 이후 매 랩마다 앞선 주자를 추월했으나 10위에 머물렀다. 이로써 4전까지 지킨 클래스 1위 자리를 김동륜에게 내줘 힘겨운 최종전을 맞아야 한다. 매 대회마다 화끈한 레이스가 펼쳐지는 신인전은 5전에서 시리즈 챔피언을 결정지었다. 3, 4전 연승, 5전 2위 김동선(NRT, 80점)이 공동 2위 박인천과 김무연(52점)의 추격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5전 톱시터 박인천은 막판 대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으나, 푸싱 페널티(기록에 60초 가산)를 받고 스스로 무너졌다. 리갈의 김무연은 첫랩 때 빚어진 사고의 여파로 트랙을 떠나 시즌 목표를 클래스 2위로 수정할 수밖에 없다. 포뮬러1800 선두 장순호, 허탈한 출발 범실 BAT GT 챔피언십 제5전 포뮬러1800전은 의외의 변수가 승패를 갈랐다. 이 클래스의 타이틀 후보는 오일뱅크 듀오 장순호와 이승진. 4전까지 79 대 66으로 장순호가 앞선 상황에서 5전을 맞은 라이벌은 0.126초 차 예선 기록을 보이며 근접전을 예고했다. 그러나 25랩 레이스 결과는 출발 녹색등이 켜지기 전에 이미 판가름났다. 2그리드에 포진한 장순호가 어이없는 플라잉 스타트를 범해 10초 페널티를 받게 된 것이다. 그와 달리 산뜻한 주행으로 후속 주자 10명을 이끈 이승진은 시즌 3승 우승컵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이에 따라 97 대 86으로 선두 자리를 넘겨받은 이승진은 팀동료 장순호보다 여유 있게 최종전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페스티스트랩(1분 02초 729)을 뽑아내며 분전한 장순호는 6위. 이레인의 심페이 코노미가 시즌 처음으로 2위를 차지했고, 예선 6위 조항우(인디고)는 노리오 다케다(이레인)를 제치고 3위 표창대에 올라갔다. 포뮬러 드라이버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기대되는 정의철(모빌엣지이글), 안석원(이레인), 최해민(타이거릴리)은 이번 5전에서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경주차 트러블을 맞은 안석원은 한 차례 피트인하면서 완주에 만족해야 했고, 최해민은 8랩째 스핀해 피니시라인을 밟지 못했다. 그러나 매 대회마다 달라진 면모를 보이면서 빠르게 성장해 국내 모터스포츠계의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다. 모처럼 포뮬러1800전에 출전한 모델 출신 레이서 신미아(이글)는 아쉬움만 남긴 채 얼굴을 붉혔다. 포매이션랩 도중 뒤따르던 강현택(타키온)에게 경주차를 받쳐 출발 그리드에 서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강현택은 실격되었다. 한편 이벤트 레이스로 개최된 아시안 포뮬러 르노 챌린지 7, 8에서는 황진우(르노스포츠)가 연승을 차지했다. 8월에 열린 5, 6전도 석권한 황진우는 최근 열린 4전을 모두 휩쓸어 시리즈 3위에 진입했다. 2003 시즌을 결산하는 BAT GT 챔피언십 최종 제6전은 10월 11∼12일, 스피드웨이 서키트에서 개최된다.
통산 5회 월드 챔피언 오른 J. M 판지오 컨스트.. 1999-10-25
F1 GP는 지난 50년 동안 단 한 번도 경쟁의 미학을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순간을 멈춰 본 적이 없다. 올해도 마찬가지로 시리즈 챔피언을 향한 라이벌들의 다툼이 시즌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드라이버즈 타이틀은 맥라렌의 M. 하키넨과 페라리의 E. 어바인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고, 컨스트럭터즈와 엔진 부문은 맥라렌과 페라리, 벤츠와 페라리가 선두를 다투고 있다. 50년 동안 월드 챔피언 27명 배출해내 슈마허와 하키넨 왕좌에 또 오를 수도 지난 50년 동안 각 부문 타이틀의 주인공은 F1 역사를 살찌우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우선 개막 첫해부터 시상한 드라이버즈 타이틀의 주인공을 살펴보면, G. 파리나가 처음 정상에 올랐지만 그의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듬해 J. M 판지오라는 위대한 드라이버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J. M 판지오는 52~53 시즌을 A. 아스카리에 내준 후 54~57 시즌을 거머쥐며 통산 5회의 월드 챔피언에 올라 F1 드라이버 중 최다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통산 4회 왕좌에 올랐던 A. 프로스트는 85~86 시즌, 89, 91 시즌을 챙기며 `서키트의 교수`라는 애칭을 F1 팬들의 기억 속에 확실하게 남겼다. 그는 F1 드라이버로 활약한 기간 동안 51승을 거둬 이 부문 최고에 올라 있기도 하다. 3차례 이상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드라이버는 A. 세나를 비롯한 5명이나 된다. 50년대 말~60년대는 J. 브라밤이 3차례 등단해 전성기를 누렸고, 60년대 말~70년대 초는 J. 스튜어트, 70년대 말은 N. 라우다, 80년대는 N. 피케 등이 F1 무대를 휘어잡았다. 두 차례 타이틀을 잡았던 드라이버는 M. 슈마허를 비롯한 5명이다. 하지만 슈마허를 제외하고는 모두 은퇴한 상태여서 기록이 바뀔 가능성이 없지만 슈마허는 월드 챔피언에 등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 차례 이상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이는 M. 하키넨을 포함한 15명이다. 이 중에서 현역은 올 시즌 12연속 중도탈락의 기록을 세우고 있는 J. 빌르너브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이 확실한 D. 힐이다. 재미있는 점은 두 사람의 아버지들이 G. 빌르너브(자크의 아버지)는 1961년, P. 힐(데이몬의 아버지)은 62년과 68년 월드 챔피언십을 따내 부자 월드 챔피언으로 기록된 것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인 M. 하키넨은 올해도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어 2회 이상의 챔피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드라이버즈 타이틀에 비해 팀(섀시+엔진 메이커가 팀이 된다. 예를 들면 페라리의 경우 팀과 컨스트럭터즈가 같지만 맥라렌의 경우 현재는 맥라렌-벤츠 팀이다) 시상은 58년부터 시작되었다. 타이틀을 가장 많이 따낸 팀은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페라리로 8차례나 된다. 뒤를 이어 윌리엄즈-르노, 로터스-포드(이상 5회), 맥라렌-포드(4회) 등이다. 지난해는 M. 하키넨과 D. 쿨사드가 맹활약을 보인 맥라렌-메르세데스팀이 타이틀을 안았다.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은 윌리엄즈가 르노, 포드, 혼다 엔진을 얹으면서 9차례나 차지해(엔진 공급자는 바뀌어도 섀시 제작자는 잘 바뀌지 않는다) 페라리를 제치고 최고의 승부사로 자리잡았다. 포드는 엔진 타이틀 10회나 따내 다음 시즌 대 메이커 격전장 될 것 윌리엄즈가 F1 헤DP(??) 데뷔한 79년 이후 페라리는 명문팀으로서 겨우 자존심을 지켜갈 뿐이었고, 윌리엄즈와 맥라렌이 F1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79년 이후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의 향방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는데 윌리엄즈는 80년 타이틀을 따기 시작해 지난해까지 9회나 정상에 섰다. 이 시기에 맥라렌도 7차례나 왕좌에 올라 최고의 강팀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비해 페라리는 82~83 시즌 단 두 차례만 표창대의 정상에 섰을 뿐이다. 이밖에 F1을 떠난 로터스(7회)를 비롯해 쿠퍼, 브라밤(이상 2회) 등 이름을 올린 컨스트럭터즈는 12곳이다. 자동차 메이커는 페라리를 제외하고는 엔진 공급에 주력해 전쟁터를 판매시장에서 모터 스포츠로 넓혔다. 1960년대 중반까지는 랩코, BRM, 반월 등이 무대의 주역이었지만 60년대 말부터는 대 메이커인 포드가 뛰어들면서 판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포드는 코스워스 V8 엔진 등을 앞세워 68~83년 10회나 타이틀을 차지했고, 특히 68~74년에는 7연패의 대기록을 기록해 최강 엔진의 신화를 쌓았다. 하지만 페라리의 저력도 만만치 않아 6차례나 타이틀을 손에 넣으며 `뛰는 말`의 영광을 이어갔다. 하지만 두 메이커는 80년대 후반부터 혼다에게 왕좌를 내주며 2인자의 자리로 물러나야 했다. 혼다는 86년부터 91년까지 6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후 F1 GP에 고별사를 던졌다(혼다는 터보 엔진으로 최강의 자리를 굳혔지만 92년 터보 금지규정이 생기자 F1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혼다는 올해 BAR팀에 엔진을 공급하는 메이커로 복귀해 예전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속도를 높여가고 있다. 혼다가 사라진 무대에서는 프랑스의 르노가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르노는 92~96 시즌 6연속 왕좌에 올라 화려하게 무대를 수놓았다. 하지만 르노도 여러 가지 사정(엔진 제작비 부담 등)이 겹쳐 `97 시즌 윌리엄즈와 베네톤에 엔진을 공급한 것을 마지막으로 F1에서 손을 뗐다. F1은 드라이버는 물론 팀과 컨스트럭터즈 그리고 엔진 메이커가 명멸을 거듭하고 있다. 2000년 이후에는 페라리, 메르세데스에 이어 혼다, 도요다, BMW, 포드 등이 컨스트럭터즈(메이커에서 팀을 사들이고 있다)와 엔진 타이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쏟아 부을 것이다. 드라이버즈와 각 타이틀의 주인공을 점쳐보는 F1 팬의 가슴이 어느 때보다 설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통산 24승 거둔 J. 클라크, 최고 드라이버 자리 굳.. 1999-03-24
1967년 고속 서키트인 아르덴에서 영국 엔지니어 출신인 M. 파크가 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그는 이 레이스에 앞서 출전했던 동료 M. 호던처럼 휠 베이스가 긴 페라리 경주차로 출전했다. 이 사고로 M. 파크는 오랫 동안 레이스를 뛰지 못해 많은 기회를 놓쳤다. 같은 시기에 언론인이며 광고주 그리고 페라리팀의 매 니저로 활동했던 F. 리니와 치프 엔지니어 M. 호히에르에게 불운이 겹쳤다. 투스카니 레이스에서 페라리 디노 스파이더를 몰고 나온 독일인 드라이버 K. 클라스가 연습경기 도중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캐나다 그랑프리 처음 문열어 시즌 종반 다양한 엔진 쏟아져 1967년 ACF 그랑프리는 지난 1906년과 1921년처럼 프랑스 르망에서 열렸다. 그러나 이 때는 ‘르망 24시간’ 코스가 아니라 ‘서부지역 자동차 클럽’에서 새로 만든 부가티 서키트에서 경기를 치렀다. 이 서키트는 예전 트랙의 마지막 직선 코스와 짧은 스트레치 구간을 연결했지만 대부분 피트 뒤쪽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했다. 서키트 레이아웃의 창의력이 떨어져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드라이버와 엔지니어들의 반발을 사 완만한 헤어핀도 만들어 두었다. 어쨌든 막을 올린 레이스는 박진감 넘치는 장면도 없었고, 관중 동원에도 실패했다. 이 때문에 ACF 그랑프리는 두 번 다시 르망에서 열리지 않고 있다. 이 레이스에서는 브라밤팀의 잭 브라밤과 D. 흄이 원투 피니시를 거두었다. 실버스톤에서 열린 영국 그랑프리는 로터스 49를 몰고 나온 J. 클라크에게 5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G. 힐은 연습경기에서 서스펜션이 고장나 벽에 부딪쳤지만 큰 부상은 없었다. 결선에서도 G. 힐은 똑같은 사고를 당했지만 피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원인은 서스펜션의 나사를 꽉 죄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브라밤 BT24를 탄 흄, 페라리 312의 어몬과 잭 브라밤이 차례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영국 그랑프리에서 J. 린드는 T86 쿠퍼를 몰고 나왔다. 3밸브 V12인 마세라티 엔진을 얹었지만 T. 로빈슨이 설계한 매우 가벼운 섀시를 썼다. T86 쿠퍼는 로터스 49처럼 냉각효율을 높이기 위해 돌출형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팀을 달았다. 독일 그랑프리에서 J. 클라크는 로터스 49로 초반 레이스를 이끌었지만 타이어가 펑크나 5랩에서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2위를 달리던 이글팀의 D. 거니가 1위로 올라섰지만 13랩에서 드라이브 샤프트 고장으로 탈락, D. 흄에게 승리를 헌사했다. 흄은 BT24로 두 번째 우승을 거뒀다. 1967년에는 캐나다 그랑프리가 월드 챔피언십 레이스로 처음 문을 열었다. 폭우 속에 치른 레이스에서 J. 브라밤과 팀 동료 D. 흄이 원투 피니시를 거두었다. 그러나 짐 클라크는 점화장치가 말썽을 부려 또다시 정상정복에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는 B. 맥라렌이 새 포뮬러카 M5A를 내놓았다. 모노코크 섀시에 T. 루드가 8기통을 샘플링해 만든 2천988cc(74.6×57.2mm) BRM 12기통 엔진을 얹었다. H16 엔진처럼 성능에 관해 많은 말이 있었지만 BRM팀은 다음 해에도 이 엔진을 계속 사용했다. 이태리 그랑프리는 가장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였다. 4밸브 엔진을 얹은 페라리 312가 첫선을 보였고 혼다도 새 경주차 RA300의 베일을 벗겼다. RA300은 V12 엔진을 썼지만 A. 브로들리가 만든 새 모노코크 타입 섀시를 입혔다. 혼다의 새 엔진은 ‘혼돌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F2에서 활동하던 영국 티렐팀의 J. 아이크는 쿠퍼-마세라티의 T81을 타고 F1 그랑프리에 데뷔했다. 1967년 시즌 후반에 완성도 높은 다양한 엔진이 쏟아졌다. 페라리, 마세라티, BRM, 웨스레이크, 혼다 등이 새 엔진을 선보였다.J. 클라크 최고 드라이버로 떠올라 2승 거둔 D. 흄 월드 타이틀 따내 이태리 레이스에서 J. 클라크가 최고 드라이버로 자리를 굳혔다. 출발하자마자 선두를 잡은 클라크는 곧 타이어 교환 때문에 피트 인했다. 피트 아웃했을 때 순위는 15위. 선두는 한 바퀴 이상 앞서 있었다. 하지만 침착하게 레이스를 펼친 결과 59랩에서는 팀 동료인 G. 힐을 눈앞에 두었다. 팀의 에이스 드라이버에게 길을 터준 힐은 순위가 밀리기 시작했고 클라크는 1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브라밤과 J. 서티스가 바짝 뒤쫓으며 선두탈환의 집념을 불태웠다. 운명의 파이널 랩. 시속 260km로 세 대의 경주차가 쿠바 그랑 코너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클라크 경주차의 속도가 줄었다. 기름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브라밤과 서티스의 경주차는 비틀거리는 클라크의 로터스를 앞질러 나갔다. 브라밤이 코너 안쪽을 파고들면서 추월을 시도했지만 서티스의 블로킹은 절묘했다. 결국 이태리 그랑프리의 우승컵은 간발의 차로 혼다팀의 서티스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날 경기는 3위를 한 클라크의 날이었다. 그랑프리 역사상 어느 누구도 피트 인한 후 한 바퀴나 뒤진 상태에서 선두로 올라선 레이서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끝없는 훈련을 통해 익힌 테크닉과 판단력 그리고 로터스 49의 성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그랑프리에서도 이태리와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클라크는 레이스 종반까지 2위 G. 힐을 두 바퀴나 앞섰다. 그러나 마지막 랩에서 서스펜션 볼트가 빠져 버렸고, 클라크는 그 상태에서 속도를 줄여 한쪽으로 기운 경주차를 몰고 간발의 차로 우승컵을 안았다. 멕시코 그랑프리에서도 클라크가 우승했다. BT24를 탄 브라밤과 흄이 혼다팀의 서티스를 제치고 클라크의 뒤를 이었다. 멕시코 우승으로 24번이나 그랑프리 영광을 안은 클라크는 전설적인 레이서 후안 마뉴엘 판지오와 같은 반열에 올랐다. D. 흄과 J. 브라밤은 이 해 2번씩 우승했고, 클라크는 로터스 49로 4번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그러나 드라이버 챔피언십은 51점을 얻은 흄에게 돌아갔다. 브라밤 46점, 클라크 41점, 페라리팀의 어몬과 혼다팀의 서티스는 20점을 받았다. 3.0X F1 경주차가 나온 지 2년째인 67년 월드 챔피언십을 따낸 흄은 2승을 거두는 데 그쳤지만 뛰어난 테크닉과 득점관리 능력이 돋보였다. 브라밤팀은 흄의 활약으로 매뉴팩처러즈 타이틀까지 손에 넣어 렙코-브라밤 엔진의 성능을 인정받았다.
2승 거둔 D. 홀름 월드 챔피언 1967년(상) 1999-02-23
1967년 그랑프리는 J. 서티스가 혼다 유니폼을, R. 긴터는 이글, G. 힐은 로터스, P. 로드리게즈는 쿠퍼, M. 스펜스는 BRM 그리고 C. 아몬은 페라리로 둥지를 옮기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개막전으로 치러진 남아프리카 그랑프리는 1월 2일 요하네스버그 근처 키알라미 서키트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 페라리는 경주차를 내보내지 않았지만 이글은 구형 코벤트리 클라이맥스를, 로터스는 43타입에 BRM H16 엔진을 얹은 경주차를 내보냈다. 레이스는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이었다. 브라밤 BT19를 몬 D. 홀름은 기름이 떨어질 때까지 구형 4기통을 쓰는 R. J. 러브의 쿠퍼 클라이맥스를 앞질렀다. 하지만 행운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가 6랩을 남기고 기름이 떨어져 멈췄을 때 멕시코인 P. 로드리게즈가 선두로 나섰고, 러브와 서티스가 뒤를 이었다. L. 반디니 모나코 GP에서 지다 코스워스 포드의 V8 엔진 데뷔 브랜즈 햇지 GP는 V12 이글 웨스레이크를 몬 D. 거니에게 우승컵을 안겼다. D. 거니는 L. 반디니가 몬 새 페라리 312(배기관이 높이 치켜진)에 간발의 차인 0. 4초 차로 앞섰다. 쿠퍼 마세라티를 몬 J. 시퍼트는 3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새 페라리의 섀시는 이전부터 널리 알려진 V12 4밸브 버전이었다. 하지만 R. 반디니가 3밸브로 엔진을 다듬었고 실린더 헤드는 지난해 이태리 그랑프리에서 수정했었다. 배기밸브의 끝을 배기 파이프에 둔 새 페라리는 이전보다 뒷모양이 훨씬 매끄러워졌다. 마세라티는 J. 브라밤의 최신차 브라밤 BT24로 몬테카를로에서 연습하는 동안 3밸브를 갖고 있음이 알려졌는데, 실린더마다 2개의 스파크 플러그를 달았다. F2카의 스페이스 프레임에 기초를 둔 이 차는 디자인이 컴팩트해 브라밤이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에 기대를 걸 만했다. BT24의 배기량은 2천996cc(88.9×60.3mm)로 740타입과 같지만 실린더 헤드와 연소실의 모양을 다르게 했다. 루카스식 연료점화 시스팀을 써서 8천500rpm에서 230마력을 냈다. D. 홀름은 우승컵을 눈앞에서 놓친 키알라미 서키트의 불운을 털고 모나코 GP에서 우승하기 위해 구형 랩코 브라밤 BT19로 출전했다. G. 힐은 BRM V8 엔진을 얹은 로터스33, 재키 스튜어트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구형 BRM F8을 몰았다. BRM F8은 1만rpm에서 283마력을 냈다. 모나코 GP는 이 해 가장 불행한 레이스였다. R. 반디니가 시케인 출구의 벽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고, 반디니는 불길에 휩싸여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다 4일만에 눈을 감았다.L. 반디니의 죽음은 경주차에 불이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알려주었다. 이때부터 국제경기를 치르는 서키트는 불에 대한 전쟁을 선언했고,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을 피트의 앞과 뒤 그리고 트랙의 곳곳에 배치하는 등 대책을 세웠다.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소재들도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듀폰사가 불이 붙지 않는 노맥스라는 옷감을 개발한 후 급속도로 레이스계에 퍼졌다.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30세의 뉴질랜드 드라이버 D. 홀름이 우승컵을 안았다. 6월 4일 잔드보르트에서 열린 네덜란드 그랑프리에는 V8 코스워스 포드 엔진을 얹은 로터스 49가 데뷔했다. 로터스 49와 포드 코스워스 V8 엔진이 결합한 것으로 J. 클라크가 우승컵을 안으며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로터스 49의 모노코크 섀시는 매우 유능한 엔지니어인 M. 필리페와 C. 채프먼이 함께 디자인했다. 필리페는 1969년에 4WD인 로터스 63, 회사의 경영이 호전되기 시작한 70년에 웨지 스타일의 로터스 72를 선보이기도 했다. 72년 미국으로 건너간 필리페는 J. 존스팀을 위해 USAC 경주차를 디자인했고, 이 차를 몬 J. 레오나드는 이 해 USAC 챔피언에 올랐다. 경합금을 쓴 V8 엔진은 주철을 쓴 F2 포드 코티나형 FVA 엔진과 같았다. 이 엔진 프로젝트는 포드자동차가 돈을 대고 G. 듀크가 개발했다. FVA와 DFV는 국제경주에서 많은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배기량 2천993cc로 루카스제 12V 점화 시스팀을 써서 400마력을 냈다. 실린더마다 4개의 밸브가 있고, 캠샤프트가 두 개의 기어를 움직인다. 트랜스미션은 ZF 5단을 썼는데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지만 1967년 가장 멋진 디자인을 한 경주차로 꼽혔다. 하지만 섀시가 너무 약했고 서스펜션의 레이아웃이 매우 어려웠다. J. 클라크는 로터스 49를 몰고 ’67 시즌 중 4차례나 그랑프리 정상에 섰다. 로터스 49는 페라리, 이글, 혼다를 능가했다. 페라리의 세 번째 드라이버 C. 아몬은 R. 반디니의 죽음으로 침울하게 가라앉았던 페라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C. 아몬은 20세 때인 1963년 F1 드라이버였던 레그 파넬(후에 BRM팀의 지배인이 되었던 팀 파넬의 아버지)을 도운 후 레이싱에 대한 꿈을 키웠다. 개스 터빈 경주차 우승 눈앞에서 놓쳐 로터스 49 노즈에 작은 윙 달고 출전 개스 터빈을 쓴 경주차가 거의 이길 뻔한 1967년 인디500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P. 존스가 운전대를 잡은 STP-팩스톤은 A. 그래너틀리 회장의 야심적인 목표에 따라 STP 연료첨가회사가 자금을 댔다. 인디500은 개스 터빈 경주차에 배기량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STP-팩스톤 엔진은 캐나다항공이 만든 프래트 & 휘트니 개스 터빈으로 540마력을 냈고 4WD 시스팀을 썼다. 이 경주차는 경주가 펼쳐지는 동안 훌륭한 특성을 나타냈다.예선에서 P. 존스와 STP-팩스톤은 6위로 통과했다. 로터스 49를 몬 짐 클라크는 중간에서 출발했고, 로라 포드의 재키 스튜어트, G. 힐 등이 뒤를 이었다. 경주를 하는 동안 개스 터빈차는 일반 경주차와 비슷하게 달렸다.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 존스는 코요테 포드를 30초나 앞서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경주를 세 바퀴 남긴 197랩에서 트랜스미션이 깨져 개스 터빈은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6위로 주저앉았다. 유럽 드라이버들도 불행을 겪었다. 경기 초반에 J. 클라크와 G. 힐, 후반에 J. 스튜어트가 탈락했다. D. 홀름은 P. 존스가 큰 실패를 하자 4위로 올라섰다. 개스 터빈차가 미래의 탈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STP사의 A. 그래너틀리 회장은 로터스와 함께 웨지 스타일의 로터스 56과 비슷한 새 개스 터빈차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1967년 그랑프리의 또 다른 특징은 벨기에의 스파프랑코샹 서키트에 짐 클라크가 선보인 로터스 49였다. J. 클라크는 노즈에 작은 윙을 달아 공기저항을 줄이고 접지력을 높였다. 이것은 모든 경주차가 큰 스포일러를 달아 높은 속도에서도 다운포스가 크게 줄 것임을 예고했다. 짐 클라크는 스파프랑코샹에서 완벽하게 달렸지만 트랜스미션 고장으로 탈락했다. 댄 거니가 이 해 두 번째 F1 레이스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99 한국모터챔피언십 규정 바뀌어 수입차 참가하고 핸디캡 웨이트 강화 3월 21일 개막전을 치를 ’99 한국모터챔피언십은 투어링카A, 투어링카B, 포뮬러1800, 원메이크A(현대, 대우, 기아 통합전), 원메이크B(신인전) 등 5개 클래스로 나눠 열린다. 포뮬러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치러지고, 주피터 레이스(1.5X 포뮬러)는 제작이 덜 끝난 상태여서 정식경기 일정을 잡지 못했다.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는 또한 98년 최종전에 선보였던 모터사이클 레이스를 이벤트 행사로 준비한다. 125∼150cc의 국산 및 외제 모터사이클에 스피드웨이 라이센스를 갖고 15회 이상 스포츠 주행을 한 사람에게 참가자격이 주어진다. ’99 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는 경주차 개조가 일부 완화되고 수입차에도 문을 열었다. 투어링카A, B, 포뮬러1800의 ECU(전자제어장치) 및 배기 매니폴드 개조규제를 풀어 세팅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었다. 경기시간도 늘어났다. 25랩을 돌았던 투어링카A, B는 30랩으로, 포뮬러는 15랩에서 25랩으로 바뀌었다. 또 수입차가 참가할 수 있도록 최저무게를 앞바퀴굴림차 980kg, 뒷바퀴굴림차 1천5kg으로 정했다. 레이스 참가를 신청한 수입차는 아직 없다. 핸디캡 웨이트는 지난해보다 강화되었다. 1, 2, 3위 경주차에 얹는 30, 20, 10kg의 핸디캡 웨이트는 지난해와 같지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최고 60kg을 80kg으로 올렸다. 무게를 추가한 드라이버가 4위 이하를 기록할 경우 다음 경기에서 20kg을 덜어준다.한편 현대, 대우, 기아차 통합전으로 치르는 원메이크 경기는 종전 규정을 지키고 이름만 원메이크A로 바꿨다. 투어링카B에는 엑센트 1.6이 정식으로 투입된다. ‘연간 500대 이상 생산된 차’라는 규정이 바뀐 것은 아니나 지난해 출전차는 예외로 묶었기 때문이다. 엑센트 1.6은 지난 시즌 8전부터 경기에 투입되었던 라노스 1.6을 누르고 두 경기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국내 첫 스노 카레이스 열려 2월 6∼7일 횡계 특설경기장 국내에서 처음으로 눈 위를 달리는 자동차경주가 열린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가 주관하고 문화관광부, 한국관광공사, 강원도가 공동 후원하는 이 경기는 2월 6∼7일(토, 일)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리(용평리조트 입구) 특설경기장에서 펼쳐진다. 한국자동차경주협회 공인경기로 개최되는 이번 대회는 길이 0.8km 눈길 트랙에 4개의 포스트를 두고 있다. 코너는 6개가 있고 직선로는 200m다. 경기는 투어링카A, B 통합전(이수화학전), 원메이크 통합전(모아모아전), 4WD전(루비아전) 3개 클래스로 나누어 예선 5분, 준결승 20분으로 결승 진출자를 가린다. 본선에서는 20분간 달려 순위를 정한다. 대회규정은 국내 오프로드 레이스와 같다. 참가비는 30만원이고 총상금은 700만원이다. 이밖에 전야제를 비롯해 눈조각대회, 다목적 레저카 전시회, 록 라이브 콘서트 등 부대행사도 열린다. 문의:☎(02)424-2951 스피드웨이 카트 경기장 개장 헤어핀, 오메가 코스 등 갖춰 용인 스피드웨이에 일반인을 위한 카트 전용경기장이 문을 열었다. 1주 500m 코스에 헤어핀, 오메가 코스 등을 갖추었다. 1명이 타는 카트는 효성 스즈키의 100cc 엔진을 얹고 최고시속 130km를 낸다. 연습주행용은 시속 50∼60km로 속도가 제한된다. 이용료는 5분에 5천500원으로 하루 300명 탈 수 있다. 문의:☎(0335)320-8981∼2 99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 경기종목 클래스 배기량 기 타 투어링카A 1601~2000cc - 투어링카B 1600cc이하 - 원메이커A 1500cc이하 현대, 대우, 기아 통합전 원메이커B 1500cc이하 신인전(신설) 포뮬러1800 1800cc 차값 상한선 : 4천만원 ’99 오프로드 경기일정 확정 춘천 모터파크서 6차례 진행 KARA가 올 시즌 3월 28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6차례의 경기일정을 확정했다. 장소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춘천 모터파크. 경주차규정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투어링카A 클래스에 양산규정(500대 이상 생산)을 적용해 기아자동차 슈마의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2.0X 엔진을 얹은 기아 슈마의 생산대수는 30대. KARA는 규정회의를 통해 슈마에 크레도스 엔진을 얹으면 출전자격을 주겠다고 밝혔지만 기아자동차 모터 스포츠팀은 출전자체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슈마에 크레도스 엔진을 얹게 되면 ECU 데이터 등 여러 곳을 손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새 규정에 따라 슈마를 모는 드라이버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종수(코뿔소), 강선순(캐스트롤) 등 5명이 슈마를 타고 있다. 한편 KARA는 올해 포뮬러, 투어링카, 카트, 4WD 등 각 종목별 위원회를 구성, 분과조직을 중심으로 사업을 이끌어갈 계획이다. 이밖에 선수협의회 이외에 언론위원회, 프로모터 위원회 등 의사결정 기구도 두기로 했다. 톱 레이서 이명목 어디로 가나 캐나다로 F3 유학길 오를 듯 올 시즌 한국모터챔피언십 시리즈에 이명목의 출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명목은 지난해 공식경기로 열린 포뮬러 레이스에서 오일뱅크팀으로 출전해 초대 챔프로 등극했다. 하지만 지난해 팀에 사표를 제출한 후 새 팀을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96년 입단 당시 1년 동안은 다른 팀에서 뛰지 않겠다는 옵션계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목은 “더 늦기 전에 유학을 떠나고 싶어 사표를 냈다. 스폰서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어 올 시즌은 캐나다 F3(포뮬러, 배기량 2천cc 이하) 클래스에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목이 캐나다 F3 클래스에 진출하게 되면 국내 드라이버로는 최초로 국제무대를 밟는 셈이다. 이명목은 국내에서 초보자를 위한 드라이빙 스쿨과 레이싱 스쿨을 열 계획도 갖고 있다. 발보린 카트 전용 경기장 확정해 운전교실 열고 카트 경주도 계획 발보린 레이싱팀(대표 황운기)이 서울과 인천에 카트전용 경기장 및 연습장을 마련했다. 700여 명을 수용하는 서울 서초동 아크리스 백화점 카트 경기장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카트 연습 및 안전운전교실을 연다. 5천여 명을 수용하는 인천 송도 전용 경기장은 카트 경기와 포뮬러 스쿨이 열린다. 발보린 레이싱팀은 이 달부터 카트 경기를 시작해 매달 레이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참가신청 및 회원가입 문의: 발보린 레이싱팀 회원관리부(☎02-338-8000) 99시즌 KARA 오프로드 경기일정 경 기 날 짜 제1전 3월28일(일) 제2전 4월25일(일) 제3전 6월6일(일) 제4전 9월19일(일) 제5전 10월24일(일) 제6전 11월21일(일) ※장소 : 춘천 모터파크 일정은 주최측의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음
F1 그랑프리를 읽자(2) 철저한 준비와 감독으로 .. 1999-03-24
F1경주차는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을 금지하지만 클러치 페달 밟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세미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은 사용한다. 대부분의 F1 경주차는 트랜스미션 조작을 스티어링 휠의 양쪽에 있는 버튼으로 한다. 한쪽은 시브프 업, 다른 하나는 시프트 다운 때 쓴다. 매뉴얼 트랜스미션보다 1/100초 이상 기어조작이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레이스 도중 한 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잡은 채 기어 레버를 조작하지 않아도 되므로 그만큼 사고의 확률도 낮아졌다. 세미 오토매틱 트랜스미션은 대부분 6, 7단으로 되어 있다. 기어비가 좁아 빠른 변속을 할 수 있지만 코너가 많은 서키트에서 뛰는 차는 4, 5단이 고작이다. 피트 인 때는 이 기어비를 더 낮게 써야 한다. 제동력 뛰어난 탄소 브레이크 쓰고 휘발유 샘플 FIA에 제출, 승인 받아야 F1 경주차는 양산차보다 일찍 제동력이 뛰어난 디스크 브레이크를 썼다. 이것이 점점 발전해 지금은 모든 경주차가 디스크와 패드, 캘리퍼를 탄소합금 재질로 만들어 쓴다. 양산차보다 열에 잘 견디고 무게가 덜 나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탄소 브레이크 시스팀은 직선로에서 340km로 달리다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양산차보다 100m 이상 먼저 설 수 있다. 양산차가 900~1천200。C에서 6달간 사용하는 것 정도의 내구성도 갖고 있다. F1 경주차는 배기개스를 줄인 휘발유를 쓰는데 오염에 대해 가장 엄격한 것으로 알려진 EEC 표준을 만족시킨 제품이다. F1은 한때 배기개스를 줄이기 위해 탄화수소가 포함된 기름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는 시중에 나와 있는 휘발유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기름이었다. 하지만 FIA는 일반차의 오염을 줄이는 기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이 규정을 없앴다. 규정을 바꾼 후에는 기름 성분이 좋아져 공기가 맑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 팀은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그 해에 사용할 120L의 휘발유 샘플을 FIA에 제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샘플은 특별 실험실에서 분석하는데 기술 규정에 적합한지, 연료 펌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인지 등을 가린다. 통과된 샘플은 일정한 ‘코드’를 받는다. FIA 기술위원회는 레이스 도중이나 후에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휘발유를 점검하고 샘플과 다른 점이 확인되면 그 레이스의 성적을 무효로 처리한다. 팀은 시즌 중 기름을 바꿀 수도 있는 데 이때는 FIA에게 새 샘플로 인증받아야 한다. 샘플이 통과되기 전에는 옛것을 써야 한다. F1 레이스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타이어 규정이다. 규정에 따르면 모든 드라이버는 마른 노면에서 최대 40개, 젖은 노면에서는 28개의 타이어를 쓸 수 있다. 이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조사도 한다. 타이어 선택도 드라이버의 운전 스타일과 차 디자인, 서키트의 온도 등에 따라 달라진다. 저속 테크니컬 서키트나 기온이 낮을 때는 그립력을 높이기 위해 소프트 타입을, 고속 서키트에서는 하드 타입을 많이 쓴다. 팀과 드라이버는 모든 상황에 맞춰 타이어를 고르므로 레이스 중간에 타이어 세팅이 달라지기도 한다. F1 레이스에서 타이어를 교환하는 장면은 색다른 볼거리다. 4바퀴를 바꾸는데 5~10초 정도 걸리는데, 시간을 줄이기 위한 팀워크가 아주 중요하다. 경주차의 무게는 드라이버가 탄 상태에서 600kg 이상이다. 연습중 FIA는 임의로 경주차를 선정, 피트 라인의 센서가 달린 곳을 통과해 웨이팅 에어리어로 들어가게 해 검사한다. 무게규정을 어겼을 때는 다시 한 번 웨이트를 달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경주차와 드라이버의 무게를 확인한다. FIA 기술위원회가 각종 검차에 관여 세계 모터 스포츠 평의회가 제소 판정 공정한 경기를 위한 FIA의 준비도 철저하다. 결선을 앞두고 연습이 시작되는 날부터 검차자는 팀의 차고를 돌며 경주차가 규정을 지켰는지를 확인한다. 여기에 덧붙여 레이스가 끝난 뒤에도 다시 한 번 검차해 규정을 어겼을 경우 페널티를 준다. FIA의 기술위원회는 각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한다. 전기 분석팀은 레이싱팀보다 더 좋은 장비를 갖추고 경주차의 전기적인 상태를 체크한다. F1 경주차의 전자구조는 50만선(소프트웨어)으로 되어 있어 경주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전자 프로그램을 체크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전자 검차도 휘발유와 비슷하게 진행한다. 각 팀은 FIA에 전자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팀은 이 자료를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체크한다. 승인된 프로그램은 FIA가 보관하므로 팀은 샘플과 같은 데이터로 레이스를 치를 수밖에 없다. 레이스를 매끄럽게 진행하려면 숙련된 오피셜이 반드시 필요하다. 각 분야의 오피셜 위원장은 현장으로부터 제출된 보고서로 결과를 분석하고 이를 경기위원장에게 알린다. FIA는 판정의 안전 및 공정성을 위해 경기 위원장을 세 명 두고 있는데 2명에게 ‘수퍼 라이센스’를 발급하고, 세 번째 경기위원장은 자국내 모터 스포츠 관장권을 가진 ASN에서 지정한다.경기위원장은 국제 스포츠 법규에 따라 레이스중의 불법행위부터 챔피언십 포인트까지 자격을 박탈하고 징계하는 권한을 갖고 있으며 레이스 도중에도 드라이버에게 페널티를 줄 수 있다. 페널티를 받은 드라이버는 서키트에 들어오지 못하고 지정된 시간만큼 피트에 남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피트 레인 속도를 위반하면 10초의 페널티를 받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25~40초를 잃는 것과 같다. 또한 오피셜은 연습 중의 스포츠 또는 기술적인 원인과 결과에 따라 드라이버에게 벌칙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오피셜의 결정에 대해 팀과 드라이버가 제소하면 경기위원장은 세계 모터 스포츠 평의회에서 판정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밝혀야 하고, 평의회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 잘못으로 판단될 경우 오피셜이 제재를 받는다. 안전과 관련된 모든 사항 철저 피트 인 제한속도 어기면 벌점 결선은 출발 30분 전부터 시작된다. 피트를 떠난 경주차가 한 바퀴를 돌고 피트로 돌아온 후 문제점을 점검한다. 15분 전에 다시 한 번 반복하고, 5분 전에는 한 바퀴를 돈 후 그리드에 정렬한다. 이때 피트를 떠나지 못한 경주차의 자리는 비워 놓는다. 녹색불이 들어오면 페이스카의 뒤를 따라 포메이션 랩을 돈 후 스타팅 그리드에 서는데 엔진을 켠 후 출발신호를 기다린다. 포메이션 랩을 돌지 못한 레이서는 피트에서 출발하게 된다. 자동 프로그램에 따라 ‘녹색등’이 들어오면 레이스가 시작된다. 신호 주기는 여러 방식이 있고, 주기 변화는 비밀이다. 모든 그리드에는 전기 센서가 달려 있어 부정출발을 알 수 있다. 차가 미리 움직이면 신호가 컨트롤 타워로 보내지고, 오피셜은 부정출발을 한 레이서에게 페널티를 주거나 점프 스타트(맨 뒤 출발)를 명령할 수 있다. 제대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면 포메이션 랩 때는 팀 미케닉이나 오피셜의 도움을 받아 출발할 수 있지만, 한 바퀴를 돈 후에는 맨 끝에 서야 한다. 포메이션 랩 때도 추월하면 역시 맨 뒤에 서야 한다. 그러나 포메이션 랩에서 맨 뒤차가 떠나기 전에 출발하면 원래 위치에 선다. 출발을 앞두고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레이서가 팔을 들어 이상을 알리면 5분 동안 출발을 미루는 황색등이 들어온다. 이때는 포메이션 랩을 한 바퀴 더 돈 후 레이스를 하는데 시간 때문에 1바퀴를 줄이게 된다. 또한 문제가 된 레이서는 자신의 자리를 비워 놓고 맨 뒤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음에도 출발하지 못하면 오피셜이 차를 밀어 경기를 하게 되는데 엔진이 멈추면 피트로 돌아가야 한다. 일단 경주가 시작되면 비가 와도 레이스는 멈추지 않는다. 이때 팀은 레인 타이어로 바꿔 낄 수 있다. 그러나 레이스를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조건이 나빠지면 경기위원장이 세이프티 카의 사용을 명령할 수도 있다. 아주 위험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레이스를 멈추고 코스를 패쇄하기도 한다. 이때 서키트에는 레이스 종료를 알리는 붉은 깃발이 나부끼게 된다. 세이프티 카는 순조롭고 매끄러운 경기진행을 위해 꼭 필요하다. 사고가 일어났거나 위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곧바로 서키트에 투입되고, 세이프티 카가 들어오면 레이스 카는 추월을 할 수 없고 그 뒤를 따라야만 한다. 세이프티 카가 투입된 후 진행된 시간도 전체 레이스 시간(레이스는 두 시간을 넘지 못한다)으로 합산된다. 경주차의 피트 인 속도는 서키트에 따라 다르지만 80~120km로 제한하고 있다. 이는 피트 라인에 설치된 계측기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이를 어기면 벌금(장소에 따라 다르다)을 내고 페널티를 받게 된다. 속도를 지키기 위해 경주차에는 피트 라인 제한속도와 같은 센서를 갖추지만 때때로 레이서들이 이를 잊고 제한속도를 어기기도 한다.
F1 그랑프리를 읽자 시속 350km 쾌속질주의 세계 1999-02-23
F1 그랑프리란 50년 역사 자랑하는 세계인의 축제 F1 그랑프리의 기원은 1906년 프랑스의 르망 근처에서 ‘프랑스 오토모빌 클럽’이 주최한 프랑스GP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그랑프리의 열기는 이태리와 벨기에, 모나코 등 유럽 전역으로 퍼져각국에서 독자적인 자동차경주가 열렸다. 하지만 각국의 모터 스포츠는 규정이 달라 국제적인 레이스로 치를 수는 없었다. 특별한 경주차 규정이 없었고, 레이스 자체도 매우 간단했다. 좌석의 숫자와 휘발유, 증기기관 등 어떤 연료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클래스를 나누었을 뿐이다. 이때의 경주차는 2시트 이상이었고 원시트카는 1911년 인디애나폴리스500 레이스(드라이버 R. 해로운)에서 백 미러가 처음 등장한 이후부터 쓰였다. 백 미러의 등장은 모터 스포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의 경주는 미캐닉이 경주차에 함께 타 차가 고장나면 고치고 추월차가 있다는 등의 정보를 운전자에게 알려줬다. 각국의 모터 스포츠는 1907~1939년 사이 나름대로 최저, 최대무게 등 제한규정을 갖추며 발전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1939~1945년에는 긴 잠에 빠졌다가 전쟁이 끝난 46년 프랑스에서 다시 GP를 열며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다. 1947년 각국의 모터 스포츠 관련단체는 FIA(세계자동차연맹)를 만들었고, FIA는 그 해에 ‘F1 규정’을 내놓았다. 50년 5월 13일에는 영국의 실버스톤에서 F1 규정으로 첫 레이스를 치렀다. 당시에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해 7번 레이스를 치렀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높아져 77년에는 17번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해에 일정이 너무 벅차다는 의견이 나와 16번만 열도록 하는 규정이 생겼다. 이 규정은 96년 17차례도 열 수 있는 것으로 다시 고쳐졌다. F1 그랑프리는 크게 드라이버즈와 컨스트럭터즈 두 개의 타이틀이 있다.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레이서에게 주는 드라이버즈 챔피언십은 개막 첫해인 1950부터 생겼고 알파로메오를 몬 주제페 페리나가 초대 챔피언의 영광을 안았다. 현재까지 세 번 바뀐 득점규정은 상위 6명에게만 점수를 주는데 91년부터 1위는 10점, 뒤따르는 6위까지는 6, 4, 3, 2, 1점을 차례로 얻도록 되어 있다. 1950년 이전에는 1위 8점, 50~90년에는 9점을 받았다. 58년 신설된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은 두 대의 차가 레이스에서 올린 득점을 더해 결정하는데 영국의 쿠퍼가 첫 영광을 안았다. 드라이버즈와 스트럭터즈 타이틀은 그 해 발표된 캘린더의 절반 이상 경기에 참가해야만 받을 수 있다. 지난 시즌에는 M. 하키넨과 맥라렌팀이 각각 드라이버즈와 컨스트럭터즈 타이틀을 따냈다.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F1 그랑프리는 그동안 수많은 경주차와 영광의 얼굴들을 탄생시키며 모터 스포츠의 중심에 우뚝 섰다. F1 그랑프리가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은 넓고도 깊어 17경기를 치른 97년의 경우 50억 명이 TV를 지켜보았고, 650명의 저널리스트와 사진기자에 의해 전세계 신문과 전문지 등에 소개되어 420억 명이 F1을 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F1은 엔진과 타이어 메이커는 물론이고 정유, 담배, 의류회사 등이 홍보무대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대한항공’이 베네톤팀의 스폰서로 F1에 참여하고 있다. F1 서키트와 경주차 속도 빠르기 때문에 안전이 최우선 그랑프리는 어떤 서키트에서나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FIA가 경주차의 성능향상에 맞춰 서키트의 넓이와 폭, 도로상태, 안전에 관련된 시설 등에 대해 검토한 후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F1 레이스를 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자격을 인정받고 레이스를 치르더라도 서키트는 유지보수를 통해 항상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르투갈 GP(에스토릴 서키트)처럼 캘린더에서 제외되기도 한다. F1의 무대가 되는 서키트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예전의 서키트는 모나코 GP처럼 시가지에서 열리는 레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속도를 높이기 위해 코너보다는 직선로를 많이 두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경주차가 지나치게 빨리 달리다 사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코너가 많아졌다. 예전의 뉘르부르크링 서키트는 길이가 22.8km나 되어 안전시설에 대한 막대한 투자비 및 인건비가 부담되고 TV 방송이 어려워 사라졌다. 현재 F1 그랑프리를 치르는 곳 중 모나코(3.328km)가 가장 짧고, 스파프랑코샹(6.940km) 서키트가 가장 길다. 무대의 주인공인 레이서들도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F1은 모터 스포츠의 최고봉답게 쉽게 문을 열지 않는다. 때문에 F1 드라이버로 활동하려면 F3000 또는 F3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수퍼 라이센스’를 따야 출전자격이 주어진다. F1 레이싱팀에 입단하면 테스트 드라이버를 거쳐 그랑프리에서 뛰게 된다. 레이서가 타는 경주차의 배기량은 3.0X로 터보나 수퍼차저를 달 수 없다. 경주차의 최고출력은 컨스트럭터가 민감한 사안으로 여겨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추정치에 따르면 97년형 경주차는 700마력에 이르렀고, 지난해 우승한 맥라렌 MP13은 713마력 정도를 냈다. 이 엄청난 힘으로 F1 경주차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낸다. F1 그랑프리의 최고속 랩은 71년 이태리 그랑프리에서 P. 게틴이 시케인이 없는 몬자 서키트(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측정한 결과 300km 이상을 낼 수 있는 것으로 나옴)에서 세운 242.612km였다. 하지만 이 기록은 97년 같은 장소에서 D. 쿨사드가 238.036km, 이를 다시 J. 알레지가 250.295km로 갱신했다. 최저속 랩은 M. 슈마허가 모나코 GP에서 세운 104.264km다. 최고속도는 97년 J. 빌르너브가 독일 GP 직선로에서 세운 시속 351.7km다.경주차의 무게는 레이서가 수트, 헬멧 등 모든 복장을 입고 타서 600kg이고, 출력(700마력 기준):중량비는 1마력: 0.857kg이다. 1마력으로 0.857kg을 지고 달리니 속도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놀라운 속도를 내기 때문에 F1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속도를 제한하기 위해 모든 기술이 총동원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엔진 배기량이 줄었고 연료, 타이어 크기, 차의 최저 무게와 넓이는 물론 에어로다이내믹, 전기장치 등에도 많은 제한사항을 두고 있다. 레이스 데이 3일 동안 열려 일요일에 결선 F1 그랑프리는 언제나 똑같이 3일 동안 치른다. 일요일(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에 결선을 치르므로 레이스는 금요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된다. 오전 11시~12시, 오후 1시~2시에 레이서들은 서키트와 경주차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자유주행을 한다. 토요일은 오전에 자유주행을 하고 오후 1시~2시에 예선을 치른다. 한 시간 동안 드라이버는 최대 12바퀴를 돌고 가능한 가장 빠른 기록을 내야 한다. 기록이 가장 뛰어난 드라이버가 제1열(폴포지션)을 차지하고 순서대로 자리를 잡는다. 예선 기록이 같으면 기록이 나온 랩이 빠른 레이서가 앞자리에 선다. 7/100 규정(PP의 최고기록이 1분 40초 00이었을 때 1분 46초 99까지는 결선에 참가할 수 있지만 1분 47초 00을 넘어서면 참가할 수 없다)에 따라 스탠딩 스타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결선 그리드(출발선)는 두 대의 차가 엇갈려 서고 앞 뒤 차의 간격은 8m다. 결선은 일요일 오후 2시(지역시간을 우선으로 한다)에 막이 오른다. 결선에 앞서 오전 9시~9시 30분에 워엄업 주행을 하는데 노면상태나 기후에 따라 15분이 늘어나기도 한다. 워엄업 주행은 결선에 앞선 마지막 점검으로 압력, 온도, 습기 등 실제경주와 같은 상태에서 경주차를 테스트하는 것이어서 매우 중요하다. 결선에서 드라이버가 달릴 수 있는 총 거리는 305km, 두 시간이 넘게 운전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저속 테크니컬 코스인 모나코 GP의 경우 레이스 도중 비가 내리면 진행중인 레이스를 멈출 수 없어 두 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F1 그랑프리는 미국의 인디카나 CART(이상 비가 오면 경기를 중단함)와 달리 날씨의 영향을 덜 받는다. 타이어 메이커가 빗길에서도 그립력을 잃지 않는 ‘웨트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전에 이상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레이스를 멈출 수도 있다. 레이싱 팀은 최대 3대의 경주차를 준비할 수 있고 연습중 3대를 전부 테스트할 수 있다. 다만 경주차는 검차자의 검사를 받은 것으로 엔진과 섀시가 같아야 한다. 결선은 두 대가 참가하는데 특별한 사고가 없는 한 경주차를 바꿀 수 없다. 다만 두 바퀴를 돌기 전에 사고가 나 경주차가 망가지면 다른 차로 바꿔 탈 수 있다. 이때 팀의 두 드라이버가 동시에 사고를 냈다면 경기에는 에이스 드라이버만 참가할 수있다.
레이싱 타이어의 세계 개발과정부터 실전 투입까지 1999-10-25
드라이버, 경주차 그리고 타이어는 모터 스포츠를 지탱하는 힘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모터 스포츠가 존재할 수 없다. 지난 110여 년 동안 모터 스포츠는 이들의 조화를 통해 발전해 왔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바뀌어 왔다. 경주차의 성능이 승부를 결정짓는 시대가 있었고 드라이버의 능력이 결과를 바꾸는 시대도 있었다. 최근에는 승부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타이어로 꼽힌다. 드라이버의 능력과 경주차의 성능은 일정 궤도에 올라섰지만 타이어는 노면상태와 기후조건 등에 따라 성능변화의 폭이 커 타이어 세팅에 따라 승패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레이싱용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와는 태생이 전혀 다르다. 일반 타이어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값이 싸면서도 오래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지는 데 비해 레이싱용 타이어는 빨리 달리고 쉽게 멈출 수 있는 성능을 절대과제로 삼는다. 브리지스톤, 굳이어, 던롭, 미쉐린 등은 일찍부터 포뮬러, 랠리, GT 등 레이스 전 분야의 타이어를 실전에 투입해 실적을 쌓고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 세계적인 메이커로 성장했다. 이에 비해 국내 타이어 메이커는 포뮬러 1800과 랠리 그리고 투어링카용 타이어를 만들어 내는 수준에 머문다. 선진국보다 출발 시기가 뒤지고, 규모(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의 연구원이 300여 명 정도인 데 비해 미쉐린 타이어의 연구원은 3천 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도 작아 개발 여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레이싱 타이어 개발과정 타이어 메이커는 레이스에 뛰어들기 위해 F1 GP 또는 BTCC, 르망 24시간 등 카테고리를 결정한다. 레이싱 타이어 개발 초기단계부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시간과 경비를 낭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내 타이어 메이커(한국타이어는 F1600용 타이어를 생산하기도 했다)도 처음에 투어링카 레이스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한 다음 랠리, 포뮬러용으로 카테고리를 넓혀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원하는 카테고리가 결정되면 클래스 규정에 맞춰 타이어 사이즈가 결정된다. 그 다음은 타이어를 신는 경주차의 엔진 파워, 기어비 등 기본적인 제원은 물론 서키트의 상황(직선로, 코너 등 코스의 특성)을 종합해 분석한다. 그래야만 타이어의 구조와 컴파운드 포지션을 뽑아낼 수 있다. 기초적인 조사가 끝나면 경쟁 메이커의 타이어를 샘플링한다. 타이어에는 메이커의 기술력이 그대로 녹아 있어 어느 정도 장단점(생김새와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타이어 구조 등 설계기술은 어느 정도 알아낼 수 있지만 컴파운드에 관한 노하우를 알아내는 상당히 어렵다. 각종 계측기를 동원한 실내 테스트를 통해 스프링 상수값, 코너링 포스(그립력 측정), 트랙션, 압력과 면적에 따른 타이어 상태 등을 데이터로 뽑아낸다. 내구성 테스트에서는 온도 증가, 무게 가감 등 각종 데이터를 계측기에 입력한 후 캠버와 슬립 앵글 등 레이스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을 체크한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그려진 3~5종 설계도상의 림 폭, 공기압, 무게, 캠버(경험치와 예측치를 한꺼번에 적용한다) 등을 컴퓨터에 입력시킨 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해석하는데 이를 FEM(finite element method)이라고 한다.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의 김영수 선임연구원은 "현재 국내에서는 FEM 결과를 타이어 개발에 접목시키는 비율이 작지만 앞으로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을 것이다. FEM은 타이어 개발기간을 단축시키고 경쟁 메이커에 대한 대응력을 키우는 방법"이라며 "국내 메이커는 프로그램이 단순해 접지형태, 응력의 분포, 스프링 상수값 등 정적인 요소를 주로 파악하지만 외국 메이커는 운동상태를 중심으로 한 다이내믹 테스트가 주류를 이룬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FEM을 통해 가장 이상적인 타이어 설계도가 두 가지 정도 확정되면 곧바로 금형제작으로 들어간다. 제작에 45일 정도 걸리는 금형은 타이어 크기에 따라 작으면 스틸, 크면 알루미늄을 소재로 쓴다. 타이어 구조를 3~7종 만들고, 구조 1개에 소프트, 미디엄, 하드 타입의 3가지 컴파운드를 적용해 9~42종의 시제품을 내놓는다. 시제품은 샘플 타이어와 마찬가지로 특성시험, 내구성 테스트, 구조분석 등 실내 테스트를 통해 다시 3~5종류로 추려진다. 실차 테스트는 경주차와 같은 조건에서 이루어진다. 공기압, 타이어 표면 온도 등의 변화를 살피고, 2차 테스트에서 차고, 공기압, 캠버, 스프링 강도 등을 다르게 해 가장 알맞은 타이어를 골라낸다. 실차 테스트에서는 드라이버의 조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드라이버의 느낌은 연구소로 피드백되어 다음 제품 개발에 도움을 준다. 실차 테스트에서는 구조와 컴파운드가 같은 타이어가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드라이버의 운전특성과 관계가 있다. 이 때문에 한국타이어가 지원하는 드라이버들도 컴파운드가 서로 다른 타이어를 신고 있다. 테스트를 마친 타이어는 계절(날씨, 온도 등)의 변화에 따라 구조와 컴파운드에 변화를 주는데 서키트가 하나밖에 없는 국내의 레이싱(포뮬러와 투어링카) 타이어는 봄, 여름, 가을용 3가지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에 따라 컴파운드를 다르게 한 타이어를 더해 날씨와의 거리를 줄여가고 있다. 랠리 타이어는 트레드가 있어 패턴의 설계기술 및 컴파운드가 서키트용 슬릭 타이어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뜨거운 사막과 비포장 및 얼음길을 달려야 하고 심한 기후변화에도 적응해야 하므로 쇠못을 박은 스파이크 타이어 등 종류가 다양하고 트레드 패턴도 노면에 따라 자주 바뀐다. 타이어 메이커가 1년 동안 연구와 개발, 생산을 거쳐 모터 스포츠에 투자하는 비용은 적게는 수천만 원부터 많게는 수백억 원에 이른다. 한국타이어는 5~7억, F1 GP에 타이어를 대는 브리지스톤은 500억 원 정도를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F1 GP에 이처럼 많은 돈이 드는 이유는 전 세계 16곳에서 그랑프리가 열리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많이 들고, 경기마다 다른 타이어를 신어야 하기 때문이다. 타이어 성능의 90%는 컴파운드 레이싱 타이어는 구조와 소재배합률에 따라 성능차이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국내 타이어 메이커가 일반 타이어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레이싱용 타이어에서는 뒤처진 이유 역시 컴파운드 기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컴파운드 기술은 끝없이 반복되는 테스트를 거쳐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컴파운드의 중요성은 레이스에서 쉽게 느낄 수 있다. 내구레이스에서 소프트 타입 타이어를 끼우면 그립력이 떨어져 속도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빨리 닳아 타이어 교환을 위해 피트에 자주 들락거려야 한다. 반면 예선 또는 스프린트 레이스에서 하드 타입을 끼우면 그립력이 나빠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컴파운드는 베이스가 되는 고무에 황, 카본 블랙, 노화방지제, 가류촉진제 등 8~16종의 배합제를 혼합해 만든다. 배합제의 특성 혹은 양 조절에 따라 1%의 차이만으로도 고무의 물성이 크게 달라지고 성능차이도 커진다. 타이어 메이커는 가장 이상적인 혼합비율을 찾기 위해 테스트와 연구를 반복하고, 새로운 배합비법을 발견해도 특허출원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타이어 중앙연구소 임달용 부장은 "기술유출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대부분의 메이커는 경쟁사의 제품을 벤치마킹하므로 특허출원 과정에서 신기술이 경쟁사로 빠져나갈 수 있다. 어느 메이커도 제품으로 컴파운드 포지션을 100% 분석할 수는 없지만 특허에는 소재는 물론 배합비율 등이 다 기록되어 있으므로 기술도용이 쉽다"고 특허출원 기피 이유를 설명했다. 영원한 맞수 한국과 금호타이어 한국과 금호타이어는 비포장경기만 열리던 1987~1994년 대회를 후원하는 기업으로 모터 스포츠에 발을 들여놓았다. 두 메이커가 영원한 숙적으로 경쟁에 돌입한 시점은 93년 경기도 용인에 포장 서키트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가 문 연 뒤부터다. 이듬해 연습경기를 거쳐 95년 공식경기로 치러진 투어링카A는 금호타이어가 휩쓸었다. 한국타이어는 96년 F1600용 타이어를 공급했지만 투어링카와는 전혀 특성이 달라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97년부터 한국타이어는 레이싱 타이어 전담팀을 구성해 레이스에 대응했고 그 결과 그 해 시리즈 우승컵(투어링카A 이명목)을 거머쥐면서 금호타이어의 콧대를 눌렀다. 한국타이어의 우세는 지금까지 이어져 금호타이어는 여전히 맥 빠진 모습이다. 하지만 금호타이어의 반격도 서서히 달아오를 전망이다. 마케팅팀의 김희정 과장은 "전담팀 구성 또는 그밖의 모든 대응책을 구상해 잃었던 영광을 재현하겠다. 지켜 보아달라"며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맞수의 경쟁은 레이싱 타이어의 노하우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 투어링카용 타이어가 전부였던 5년 전에 비해 지금은 포뮬러와 랠리용 타이어도 생산해 드라이버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얼마 후면 F3, F3000, F1 타이어를 생산해 외국 기업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니 타이어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셈이다. 두 메이커의 경쟁은 드라이버들의 경제적 부담도 덜어 주었다. 97년의 경우 하루 연습비(서키트 사용료, 연료, 타이어)가 70만 원이 넘었지만 지금은 원메이크 드라이버들까지 타이어를 무상으로 공급(메이커의 지원이 아니더라도 프로팀 등에서 나눠주고 있다)받아 비용을 2/3 이상 줄이게 되었다. 입상 상금을 내놓아 드라이버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채워주기도 한다. 자동차 메이커가 모터 스포츠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에서 국내 모터 스포츠가 오늘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 금호의 치열한 라이벌 다툼 덕분인지도 모른다. F1 GP에 타이어 공급하는브리지스톤 지난해 11월 1일 일본 그랑프리에서 M. 하키넨이 우승컵을 거머쥔 순간 환희와 흥분으로 달아오른 팀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F1에 타이어를 공급한 지 2년밖에 안된 신출내기 브리지스톤 타이어였다. 이 날의 승리로 브리지스톤은 굳이어를 누르고 세계 최정상의 레이싱 타이어 기술을 가진 메이커로 등극했다. 혹평가들은 "참전 2년만에 거둔 운 좋은 승리였다"고 평가절하했지만 브리지스톤이 F1 GP 참전을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고나면 그 날의 승리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브리지스톤은 F1 참전 희망을 품고 87년부터 굳이어, 피렐리 등 경쟁 메이커의 서비스 체제와 타이어 분석 등을 통해 꾸준히 기술을 축적했다. 89년 혼다의 F1 동반참전 제의를 계기로 타이어의 그립력(컴파운드 부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91년 신소재와 시뮬레이션을 통한 최초의 F1 GP용 타이어가 만들어졌다. 94년까지 브리지스톤은 2만km 이상 테스트를 해 데이터를 확보했지만 참전에 대한 희망만 있을 뿐이어서 95년에는 테스트를 중단(94년을 마지막으로 혼다가 F1에서 발을 뺀 것도 원인이다)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88년 인수한 파이어스톤사가 95년부터 인디카(지금은 CART)에 타이어를 공급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힘입어 브리지스톤은 유럽을 겨냥한 글로벌 마케팅을 생각하게 되었고, 마침내 96년 2월, 98년부터 정식으로 참전한다고 발표했다. 이 해 브리지스톤은 애로우즈와 손잡고 서키트에 따른 타이어 컴파운드 포지션을 결정해 나갔고, 타이어 구조 4종과 컴파운드 5종 등 모두 20여 개의 타이어로 하루 300~500km의 주행 테스트를 했다. 이 테스트로 96년 6~9월 4개월 동안 8천km를 달리며 데이터를 모았다. 테스트 결과가 만족스럽자 96년 말 영국에 전담팀을 배치했고, 예정을 앞당겨 97년 출전을 결정했다. 프로스트, 애로우즈, 스튜어트, 미나르디 등 중하위팀과 계약을 맺었던 브리지스톤은 개막전 호주 GP(3월 9일)에서 O. 파니스가 5위로 골라인을 통과해 2점을 얻으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이때는 홈이 없는 슬릭 타이어였고, --예선 전용타이어는 신을 수 없었다.??-- 사이즈는 앞 245/50R 13, 뒤 325/45R 14였다. 98년 F1 GP의 타이어 사이즈는 앞 265/55R 13, 뒤 325/45R 13으로 앞타이어가 97 시즌보다 커졌지만 1970년대부터 20년 동안 써온 슬릭 타이어가 F1 무대에서 사라지고 안전을 목적으로 앞 3, 뒤 4개의 홈을 넣은 타이어가 나왔다. 머신의 최대폭도 2천mm에서 1천800mm로 줄었다. 새 규정에 따르면 다운포스가 줄어 잘 미끄러지고 그립력이 떨어지므로 타이어 메이커에게는 부담이었다. 결국 이 규정은 굳이어가 F1에서 은퇴하고, 브리지스톤이 최강의 자리에 서는 기회가 되었다. 브리지스톤은 97년 4월 30일 바르셀로나에서 시제품을 테스트하며 98 시즌을 대비하고, 계약팀을 97년 4팀에서 98년 맥라렌, 베네톤을 더해 6개 팀으로 늘리는 등 라이벌을 물리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즌 중반에도 3번이나 타이어 스펙을 변경하는 등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올해부터 F1 타이어는 브리지스톤 원메이크로 치러지고 있다. 그러나 경쟁자 없는 독주는 의미가 없기에 브리지스톤은 라이벌의 등장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베르나 월드 랠리카 WRC 정상정복의 임무를 안고 .. 1999-10-25
베르나 월드 랠리카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9월 14~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2000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 출전할 베르나 WRC(유럽 모델 명 엑센트 월드 랠리카) 경주차를 내놓고 WRC 정상정복을 향해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올 시즌까지 티뷰론 키트카로 F2 클래스에 참가해 온 현대자동차는 베르나 WRC를 투입하면서 미쓰비시, 도요다, 포드 등에 이어 8번째 워크스팀이 되어 다음 시즌 14전을 모두 출전하게 된다. 2.0ℓ 터보 엔진 얹어 300마력 내고 현대 참여로 워크스팀 8개로 늘어나 베르나 WRC는 현대자동차 선행(?)연구소(경인도 용인시 마북리 소재)와 영국의 MSD의 8개월에 걸친 공동개발을 통해 탄생했다. 베르나 3도어를 베이스로 했고 길이x너비x높이가 4천200x1천770x1천332mm, 휠베이스 2천440mm로 푸조 206 WRC나 도요다 카롤라 WRC처럼 몸집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4기통 2.0L 16밸브의 터보 엔진을 얹어 6천rpm에서 최고 300마력 이상의 출력이 나오고 최대토크는 53.0kg./4천rpm이다(양산차의 최대출력은 149마력, 최대토크는 19.5kg.m/rpm). 경쟁차종인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Ⅴ보다 최고출력 10마력, 최대토크 1.0kg.m/rpm이 높은 수치다. 트랜스미션은 7개 워크스팀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X트랙 제품으로 6단 시퀀셜 방식을 쓰고 액티브 4WD 시스템을 달았다. 클러치는 AP사의 3플레이트 140mm 카본 풀 타입이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포장과 비포장용 두 가지를 준비했고, 앞뒤 다른 크기를 쓴다. 비포장용 앞바퀴는 304x28mm 벤틸레이드 디스크에 4피스톤 켈리퍼, 뒤는 304x28mm 디스크에 4실린더다. 포장용은 앞 368x32mm 수냉식 벤틸레이티드 디스크에 6 피스톤 켈리퍼, 뒤는 304x25mm 디스크에 4 피스톤 캘리퍼를 달았다. 서스펜션은 앞뒤 스트럿 방식에 오린스 제품의 개스식 쇼크 업소버를 달고, 타이어는 미쉐린, 알루미늄 휠은 OZ를 끼웠다. 드라이버가 탄 상태에서의 무게는 1천230kg이다. 운전대를 잡을 드라이버는 스웨덴 출신의 K. 에릭슨과 영국의 A. 맥레이다. 97년부터 현대와 인연을 맺은 K. 에릭슨은 80년 WRC에 첫발을 디딘 후 86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 타이틀을 따냈고, APRC에서는 3번이나 챔피언에 올랐다. A. 맥레이는 95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을 따낸 콜린 맥레이의 동생으로 92년 RAC 랠리에서 데뷔했고 지난해부터 티뷰론의 운전대를 잡고 있다. 베르나 월드 랠리카의 등장으로 WRC는 한층 뜨겁게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 WRC는 미쓰비시, 스바루, 도요다, 포드 등 4개의 워크스팀이 이끌어왔지만 경쟁이 약해 큰 흥미를 주지는 못했다. 올해 푸조와 세아트 그리고 스코다가 뛰어들면서 재미를 더해가고 있고, 2000년 현대가 참가하게 됨으로써 16대(팀당 2대)의 월드 랠리카가 경쟁하는 장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메이커들이 WRC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랠리는 진행특성 때문에 TV 중계방송에 제약이 따라 메이커의 홍보무대로서는 큰 매력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일부경기(핀란드와 호주 랠리 등)를 생방송으로 내보냈고 2000년에는 14전 중 8전, 2001년부터는 전 경기의 수퍼 스페셜 스테이지를 중계한다. 인지도를 높이기에 더없이 좋은 무대가 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월드 랠리카 투입으로 도전정신, 파워, 안전성, 주행능력, 내구성, 신기술 개발 등 모터 스포츠가 추구하는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이미지를 쌓으면서 세계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로 발돋움하겠다는 야심에 차 있다. 대표적인 랠리 WRC: 1911년 처음 시작되어 1973년부터 국제규정에 맞춰 유럽을 중심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현재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호주 등을 돌며 연간 14회 개최되고 세계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APRC: 1988년부터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열리기 시작했고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등을 돌며 6전을 치른다. 파리~다카르 랠리: 1979년 문을 연 이 랠리는 매년 1월 1일 파리(장소가 변경될 수도 있다)를 떠나 15~20일 동안 지중해와 사하라사막을 지나 1만km 이상을 달린다. 4WD가 주로 출전하고, 쌍용자동차가 94~96년 출전해 종합순위 8위에 오르기도 했다. 파리~모스크바 랠리: 1907년 첫 대회가 열렸고 85년만인 지난 92년 2회 대회가 열렸다. 현재는 중단되었지만 부활 움직임이 있고 총 1만6천km 이상을 달린다. 파라오 랠리: 1982년 시작된 이 랠리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시나이반도의 사막지대를 지나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로 돌아오는 4천500km 코스다. 쌍용자동차가 96년 무쏘로 출전해 우승컵을 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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