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의인은 보험처리가 가능한가?
2018-06-27  |   19,587 읽음

교통사고 의인은 보험처리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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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일으킨 고의사고는 원칙상 보험회사가 보상해 줄 의무가 없다. 더 많은 의인이 나올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자동차보험 약관 개정을 포함한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의사고’하면 보험사기, 자해공갈단, 허위입원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떠올랐다. 차량에 몸을 들이밀고 다친 척하거나 진로 변경하는 차량만 골라 일부러 부딪쳐 보험금을 타내는 수법이 연상된다. 그런데 요즘 고의사고가 착한 사고로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검색창에 고의사고를 치면 ‘투스카니 의인’, ‘참사를 막은 고의추돌’ 같은 훈훈한 뉴스가 먼저 뜬다. 의식을 잃은 운전자를 구조하기 위해 고의로 사고를 낸 의인들 이야기다. 첫 번째 의인은 인천의 제2서해안고속도로에서 나타났다. 그는 의식을 잃고 중앙분리대를 긁으며 주행하던 코란도 스포츠를 자신의 투스카니로 막아 세웠다.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나타난 살신성인에 온 국민의 찬사가 쏟아졌다. 경찰은 대형 사고를 막은 의인에게 표창을 수여했고, LG그룹은 의인상, 현대자동차도 새 차를 선물했다. 그 일 이후 한 달 사이에 경남 함안과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고, 전남 진도에서는 미끄러지는 학원 차를 온몸으로 막아 세운 의인도 있었다. 투스카니 의인에게서 시작된 나비효과가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착한 고의사고가 늘면서 걱정되는 점도 있다. 자동차보험 처리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지만 어쨌든 고의사고이기 때문에 약관상 면책에 해당한다. 여론을 의식한 보험사가 보상하기로 했지만 법적으로는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다. 상법상 보험은 우연한 사고만 보상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고의로 사고를 내면 보상이 안 된다. 인천 사고의 경우에도 투스카니 운전자가 코란도 스포츠를 세우기 위해 고의로 정차한 것이어서 원칙적으로는 두 차의 보험회사 어디에서도 보상을 받지 못한다. 물론 보험처리가 안 되더라도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그 절차가 복잡한데다 충분한 보상이 안 될 수 있는 만큼 자동차보험에서 보상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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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보험 약관 개정이 시급

고의사고라도 형법상 정당행위나 긴급피난에 해당하면 보험처리가 되도록 약관을 바꾸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 형법은 위법행위라도 사회윤리나 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거나(정당행위), 위급하고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긴급피난의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면 뺑소니 차를 잡기 위해 고의로 충돌한 경우 도로교통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정당행위로 보고 처벌하지 않는다. 목적과 방법이 옳고 침해되는 이익보다 보호되는 사회적 이익이 더 크면 정당행위로 인정된다. 그리고 버스 운전자가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나자 승객의 안전을 위해 갓길에 정차된 차량을 고의로 들이받은 사고를 긴급피난으로 본 판례가 있다. 고의로 사고를 냈지만 승객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판례에 비추어볼 때 교통사고 의인의 행동은 형법상 정당행위와 긴급피난에 해당할 것이며 약관에 따라 보상 받을 수 있다.

손해방지비용 인정기준을 바꾸는 방법도 있다. 상법은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에게 손해방지의무를 부과하되 손해방지비용은 보험회사가 보상하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유조차가 전복되어 싣고 있던 기름이 쏟아졌다고 하자. 이때 인근 저수지로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공사를 했다면 그 비용은 보험회사가 보상해야 한다. 손해 방지 활동은 공익적으로도 필요하지만, 보험회사에도 이득이 된다. 다만 현행 약관은 사고 발생 이전에 이루어진 제3자의 손해방지활동은 보상 받을 수 없다. 의인 사고의 경우에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따르더라도 보험회사가 손해방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약관 규정 때문에 보상이 어렵다. 따라서 이 점만 보완해도 보상의 걸림돌은 제거된다.

자동차보험 약관 변경과는 별개로 정부 보장사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현행 정부 보장사업은 뺑소니나 무보험차 사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원 대상을 교통사고 의인까지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인천 사고의 경우 자동차보험 약관이 바뀌더라도 코란도가 무보험이거나 약관상 다른 면책 사유가 있으면 보상을 못 받는 상황이 된다. 이 경우를 대비해 정부 보장사업으로 길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이번 의인들 사고는 다행히 큰 피해가 없었고 보험처리도 잘 끝났지만 보험회사의 책임 여부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언제든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할 수 있고, 2차 사고로 인해 피해가 커질 가능성도 있다. 더 많은 의인이 나올 수 있도록 이번 기회에 자동차보험 약관 개정을 포함해서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 



글 이수원 (The-K손해보험 부장, goodforu@edu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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