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 사망사고를 줄이려면
2018-03-21  |   25,366 읽음

보행자 사망사고를 줄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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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와 보행자가 함께 법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보행자 사고는 감소할 것이다. 아울러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보행자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성숙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올해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총생산(GDP) 또한 현재 세계 11위에 올라 있다. 하지만 비약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쟁력은 여전히 OECD 35개국 중 24위에 머물고 있다. 교육, 보건복지, 안전 등 사회제도와 시스템에 있어서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자살률은 10년 넘게 최하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OECD 평균의 1.7배로 꼴찌 수준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살, 교통사고, 산재사고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는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중 교통안전 분야에서는 보행자 사망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보행자 사망은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의 40%를 차지하며, 인구 10만 명 당 사망자수가 OECD 평균보다 3배 이상 높을 만큼 취약하다. 

 

주요 추진정책으로는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가 강화된다. 지금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을 때만 차량이 일시정지를 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횡단하려는 의도만 보여도 정지해야 한다. 또한 주택가 이면도로에서도 보행자의 통행을 우선적으로 보장할 계획이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보행자는 이면도로의 길 가장자리로만 다닐 수 있어, 도로를 횡단 중이거나 길 가운데를 걷다 사고가 나면 보행자에게도 10~20%의 과실을 적용한다. 그러나 관련법이 바뀌면 이면도로에서 사고가 나도 보도와 마찬가지로 차량의 100% 과실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정책 중 가장 강력한 조치는 도심의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60km에서 50km로 낮춘 것이다. 2016년에 이미 OECD가 우리나라에 이 사항을 권고했을 정도로 도심의 빠른 차량속도는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제한속도를 낮출 경우 교통체증이 심해질 것이라는 반발에 부딪혀 세종시 등 일부 지역에서만 현재 시행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제한속도를 10km 낮출 경우 교통사고가 24% 감소한다. 실제로 외국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거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10건 중 8건, 사망자의 54%가 도심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제한속도를 낮추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블랙박스 영상으로 교통사고 무죄 판례 늘어나

이번 대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보행자의 준법의식을 높이는 방안이 빠진 것이다. 보행자 사망사고의 약 70%는 무단횡단 중에 발생하고 있는데, 운전자의 주의의무만 강화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야간에는 가시거리가 짧기 때문에 무단횡단을 하거나 술에 취해 도로에 누워 있으면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현행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은 무단횡단 사고라도 보행인이 사망하거나 식물인간과 같은 중상해를 입으면 운전자를 형사처벌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발생한 무단횡단 사고는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보행자가 자동차전용도로를 통행하거나 횡단하는 경우까지 대비해가며 주의할 의무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보행자는 자동차보험에서도 전혀 보상받지 못한다. 

 

최근에는 일반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라도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경우라면 운전자에게 무죄를 판결하고 있다. 교통사고에서 운전자의 불가항력을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늘어나는 블랙박스 보급률과 관련이 있다. 블랙박스 영상을 통해 사고당시 정황이 확인됨에 따라 운전자의 과실유무 판단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정상신호에 따라 주행하던 버스가 정차된 차량들 사이로 갑자기 뛰어나온 사람을 충격한 사고에 대해 법원은 버스 운전자의 무죄를 판결했다. 운전자가 급하게 제동을 했더라도 사고를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통상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태까지 주의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본 것이다. 무단횡단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밟는 데 걸리는 인지반응시간이 0.7∼1.0초이기 때문에 시속 60km로 주행하는 차는 최소 11~16m 거리를 지나간 뒤 제동을 시작한다. 제동시작 후 정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약 1.5초)까지 감안하면 무단횡단자를 발견하고 브레이크를 바로 밟아도 최소 30m는 더 주행한 뒤 멈출 수밖에 없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바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의식도 그에 걸맞아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다.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시민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다. 운전자와 보행자가 함께 법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보행자 사고도 줄어든다. 아울러 운전자는 보행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고, 보행자 또한 성숙한 준법정신을 길러야 한다.

 

글 이수원 (The-K손해보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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