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사고와 안전불감증
2018-02-20  |   7,680 읽음

제천 화재사고와 안전불감증

 

 

52dd926d036f4781a3a9d8fc1dcc51e5_1519114837_0943.jpg

 

 

 

소방이나 피난에 필요한 조치로 내 차가 파손되었다면 자동차보험 자차 담보를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 이는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지만 자칫 불법 주차를 조장할 여지가 있다. 현행 보상기준을 그대로 둔 채 소방기본법만 개정해서는 법적 실효성이 떨어진다. 소방차 출동에 방해가 된 불법 주차 차량은 자동차보험 보상에서도 제외하면 보다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조금은 더 안전해질 줄 알았다. 정부도 언론도 국민도 한 목소리로 ‘안전 최우선'을 외쳤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불편과 기다림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영흥도 낚싯배 침몰사고, 대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 제천 화재사고, 크레인 전복사고에 이르기까지 안전 불감증은 사회 곳곳에 깊숙이 박혀 있다. 오히려 반복되는 대형사고에 안전의식은 갈수록 무뎌지는 느낌이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화재사고만 봐도 그렇다. 비상구는 물건들로 막혀 있었고,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으며, 소방안전점검 또한 허술했다. 그렇다고 건물주만 탓할 것도 아니다. 

시민들이 세워둔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소방차 진입이 지연되면서 골든타임 30분을 허비했다. 현행 소방기본법은 소방차 통행에 방해가 되는 주정차 차량을 강제로 이동시킬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차량 파손시 피해배상 문제 때문에 현장에서 잘 이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면 외국에선 출동에 방해가 되면 차량을 강제로 이동시키거나 부수는 것은 당연한 일일 뿐더러, 그럴 일도 거의 없다. 소방시설 앞 주차는 금기사항처럼 되어 있다. 

 

되풀이되는 화제사고시 소방차 진입 방해로 인해 우리나라도 관련 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불법 주차된 차량을 파손해도 소방관에게 책임을 묻지 않게 해달라는 국민청원에 4만 명 이상이 동참했다. 이번 기회에 정치권은 소방기본법뿐만 아니라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소방시설 주변에 주차한 차량에는 높은 과태료를 매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법 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는 것이다. 새해 일출을 보겠다고 소방서 앞에까지 버젓이 주차하는 비양심적인 행동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안전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소방차 출동 방해되는 불법 주정차는 보험 제한해야

자동차보험 약관 개정도 필요하다. 자차 담보에서 압류, 징발, 몰수, 파괴 등 국가나 공공단체의 공권력 행사로 인한 파손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처리가 안 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소방이나 피난에 필요한 조치로 파손이 된 경우에만 보상하도록 되어 있다.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인데 자칫 불법 주차를 조장할 여지가 있다. 현행 보상기준을 그대로 둔 채 소방기본법만 개정해서는 법적 실효성이 떨어진다. 소방차 출동에 방해가 된 불법 주차 차량은 자동차보험 보상에서도 제외한다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불법 주차는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위험요인이 되고 있다. 도로변에 주차된 차량을 피하지 못해 일어나는 교통사고가 의외로 많다. 몇 년 전 부산에서 있었던 사고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손자, 손녀를 태우고 해수욕장에 가다가 도로가에 세워둔 트레일러를 충격하여 일가족 4명이 사망한 사고였다. 사고 당시 안타까운 상황이 블랙박스에 그대로 찍혀 이를 본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다. 

 

판례에 따르면 불법 주차 차량이 다른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하거나 주행에 장해를 준 경우 또는 피해 확대를 초래한 경우에는 통상 10~20%의 과실을 적용한다. 특히 주차한 장소가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면 이보다 더 많은 과실이 나올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 주차한 차량에 40%, 차선변경이 예상되는 갈림길 부근은 50%의 과실을 적용한 판례가 있다. 이 외에도 불법 주차된 트럭 사이로 보행인이 무단횡단을 하다 다른 차량과 충돌한 사고에 대해 트럭의 과실을 20%로 본 사례도 있다. 법원은 트럭이 직접적인 사고 당사자는 아니지만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야를 방해했다고 보았다. 도로교통법은 운전자와 보행인의 시야 확보를 위해 교차로와 횡단보도 주변에는 주정차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교차로 가장자리로부터 5m, 횡단보도로부터 10m 이내). 

 

일각에서는 공용주차장이 부족해서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조금 편하자고 안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제천 화재사고에서 봤듯이 조그마한 방심이 큰 재앙으로 번질 수 있다. 안전에 대한 책임을 국가와 공무원에게 요구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부터 안전을 생활화하고 시민의식을 높여 나가야 한다. 기본적으로 소방차 출동에 방해가 되거나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곳에는 불법주차를 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불법 주차한 차량을 보면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제보문화도 함께 정착되기를 바란다. 

 

 

글 이수원 (The-K손해보험 부장, goodforu@educar.co.kr)

< 저작권자 - (주)자동차생활, 무단전재 -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