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자동차를 디자인한다면?
2016-04-07  |   19,660 읽음

얼마 전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이 전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IBM은 이미 1990년대에 딥블루라는 컴퓨터로 체스 챔피언과 대국을 벌인 적이 있어 그저 비슷한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바둑은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하드웨어의 속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고 여겨져왔다. 알파고의 도전은 딥 러닝(심화학습)이라 불리는 인공 신경망, 즉 소프트웨어의 진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4승 1패라는 압도적인 전적으로 그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인공지능은 앞으로도 더욱 발전되어 다양한 분야에 사용될 전망이다. 구글이 이런 대형 이벤트를 준비한 것은 단순히 바둑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분야를 정복함으로써 인공지능이 보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음을 전세계에 홍보하고자 했던 것. 구글의 진짜 노림수는 제2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의료 시장에 있다. 이미 IBM에서 개발한 왓슨은 수많은 의학서와 논문 등을 학습하며 80%가 넘는 암 진단율을 보여주고, 로봇팔이 외과수술에 활용되고 있다. 기계에 눕기만 하면 순식간에 진단하고 치료하던 만화 속 의료 로봇의 등장이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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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가 자동차를 디자인한다면? 재규어 F-페이스는 XF를 위아래로 뻥튀기한 단순한 디자인이라 지금의 인공지능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물론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등장이 우리의 생활을 많이 바꾸어 놓겠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좋은 변화는 아니다. 기대감 속에 잠재된 이런 막연한 불안과 거부감은 수많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도 녹아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걸작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HAL 9000은 사실 IBM 세 글자의 하나씩 앞 알파벳에서 따온 것이다(I 앞의 H, B 앞의 A, M 앞의 L). 영화가 상영되던 1969년 당시 IBM은 그야말로 컴퓨터의 대명사였다. 이후 작품 속 인공지능들은 더욱 다양하고 악랄해져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나 매트릭스의 아키텍트는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전 인류를 죽음으로 내몰기도 한다. 한편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뇌를 포함해 사람의 몸을 전부 안드로이드화할 수 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은 이런 환경에서 과연 인간과 인공지능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심도 깊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자동차 분야 역시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이 뜨거운 화두다. 운전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자동차를 그저 이동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이들이라면 귀찮은 운전을 인공지능에 맡기고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일에 시간을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편히 다른 일을 할 수 있을지, 또한 승객과 보행자의 목숨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위급 상황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등 도덕적, 법적 책임 문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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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운전 이외의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을까? 자동차 디자인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것 같은. 컴퓨터는 아직 창조적인 일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지지만 단순하게나마 로봇이 그림을 그리고 작곡도 가능하다고 하니 전혀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작곡 프로그램이 다양한 음악을 데이터베이스화한 후 일정 패턴으로 나열함으로써 새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아 디자인 역시 비슷한 방식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재규어 F-페이스는 XF의 디자인을 그저 위아래로 뻥튀기한 수준에 불과한데, 이는 지금의 컴퓨터 인공지능 수준으로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가령 SUV에 요구되는 요소들, 재규어 패밀리룩의 기본 특징들을 입력한 후 컴퓨터가 그려내는 수백 수천 장의 렌더링 중에 하나를 골라낸다면 F-페이스 같은 모양이 될 듯하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기자 역시 10년 전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이수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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