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지 않는 F1 엔진 전쟁
2016-01-21  |   43,854 읽음

전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 거물과 메이커들이 모여드는 F1은 매 순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쟁터다. 겉으로 보이는 싸움은 트랙 위에서 드라이버와 팀 크루들이 벌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정치싸움의 치열함 역시 이에 못지않다. 그리고 2016년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둔 지금, F1에서는 파워유닛에 관한 힘겨루기로 그 어느 때보다도 피 튀기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F1은 2014년부터 기존의 V8 2.4L 대신 V6 1.6L 터보로 바꾸는 대규모의 규정 변경을 단행했다. 기존 운동에너지 회수장치(K-ERS) 외에 열에너지 회수장치(ERS-H)를 추가함으로써 파워 유닛은 더욱 복잡한 물건이 되었다. 이 변경의 최대 수혜자는 메르세데스-AMG. 페라리, 르노를 상회하는 성능으로 2014년과 2015년 시즌을 압도했다. 반면 르노 엔진으로 4년 연속 더블 챔피언을 차지했던 레드불은 순식간에 상위권에서 밀려났다.


규정 변경이 챔피언십의 행방을 바꾸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파워유닛 규정이 불러온 파문은 단순히 챔피언 향방에 그치지 않는다. 혼다의 복귀로 종류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지금의 엔진 선택권은 너무 제한적이다. 게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 중하위권은 팀 운영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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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엔진을 다시 얹기로 한 레드불이 르노 대신 태그호이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 사진은 1980년대 활약했던 태그포르쉐(TAG-Porsche) 엔진  

레드불은 르노와의 불화 끝에 지난해 말 관계를 청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언제든 우승을 노릴 수 있는 강팀이다 보니 워크스를 운영하는 메르세데스와 페라리에서는 엔진 공급에 난색을 표명했다. 혼다 역시 파트너인 맥라렌의 반대로 불발. 레드불은 엔진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엔진이 없어 강제퇴진 위기까지 몰렸던 레드불은 얼마 전 르노 엔진을 다시 사용하기로 극적으로 합의했다. 대신 르노가 아니라 태그호이어 브랜드를 사용한다. 이와 관련해 맥라렌의 스폰서였던 태그호이어가 레드불로 자리를 옮겼다. 시계 브랜드 태그호이어는 1999년 LVMH에 인수되기는 했지만 19세기 스위스에서 창업한 호이어사를 1985년 투자회사 TAG 그룹이 사들이면서 태그호이어라는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그런데 TAG는 1980년대 포르쉐가 설계한 V6 엔진을 TAG-포르쉐라는 이름으로 맥라렌에 공급해 두 번의 월드 챔피언을 차지한 바 있다.


제한된 엔진 종류와 너무 높은 가격에 중소팀이 버거워하자 버니 에클레스턴은 FIA 회장인 장 토드와 손잡고 실력행사에 나섰다. 에클레스턴은 먼저 엔진 가격 상한선을 제안했지만 페라리에게 거부당했다. 다음으로 보다 저렴한 커스터머 엔진 도입 카드를 내밀었다. 에너지 회수장치가 없는, 보다 값싼 엔진을 추가로 도입한다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엔진으로 하나의 레이스를 벌이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의 소지가 많다.


엔진 규정을 뜯어고치고 싶어하는 에클레스턴은 팬을 핑계로 들며 메이커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F1을 살려야만 한다. 보다 강력하면서도 값싼 엔진을 위해서는 규정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기술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안 된다. 중요한 건 관객이다. 팬 대부분은 너무 복잡한 지금의 엔진에 흥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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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는 알파로메오 브랜드의 F1 복귀 가능성을 내비쳤다


반면 많은 자금과 인력을 투입해온 엔진 공급사들의 입장 또한 완고하다. 하이브리드는 적어도 향후 10년간 자동차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기 때문에 F1 활동을 통한 관련 기술 개발과 홍보효과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이에 피아트 크라이슬러 그룹(FCA) 마르치오네 회장은 페라리가 F1에서 퇴진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기싸움을 벌이는 한편 새로운 메이커의 참여를 독려하고 나섰다.


“폭스바겐은 현재 큰 문제에 직면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이전부터 그들에게 F1 참전을 권유해왔다. 이렇게까지 대형 메이커의 참가가 저조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혼다의 고전으로 참가의욕이 떨어질 수 있겠지만 그들은 향후에 분명 성능이 개선될 것이다.”


한편 FCA는 알파로메오 브랜드로의 파워 유닛 공급도 검토 중이라고 전해진다. 현재 7만 대에 머물러 있는 알파로메오를 40만 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 중인데, 유서 깊은 레이싱 명가인 만큼 F1에서의 홍보 효과는 적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한때 레드불의 희망이었던 아우디는 폭스바겐 디젤 사태로 인해 F1 진출이 죄절된 것으로 보인다. 아우디가 전 페라리 감독 스테파노 도메니칼리를 영입함으로써 그들의 F1 진출설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현재 그는 람보르기니 신임 사장으로 거명되고 있다.


이수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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