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먹거리 찾아나선 IT 기업들
2015-08-31  |   18,523 읽음

제12회 베이징모터쇼가 지난 4월에 열렸다. 해마다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 자동차 업계이지만 올해 베이징모터쇼는 총면적 230,000㎡에 달하는 17개 전시장에 100개 이상의 브랜드가 부스를 차리고 1,134대의 자동차를 선보였으며 그 가운데 118대가 월드 프리미어였다. 규모 면에서 베이징모터쇼는 상하이, 프랑크푸르트와 함께 이미 빅3로 올라섰다.

 

필자는 이번 베이징모터쇼를 관람하면서 한국 자동차의 발전사를 회상해봤다. 포드에 근무하던 시절인 1989년 제28회 도쿄모터쇼를 참관할 때다. 당시 현대는 도쿄 무대에 처음 부스를 차리고 1년 전에 성공적으로 데뷔한 쏘나타(Y2)는 물론 판매를 막 시작한 2세대 엑셀(X2)을 전시했다. 또 양산 예정 모델인 엑셀 SLC(Sporty Looking Car)도 선보였다. 바로 1990년부터 생산한 스쿠프다.

 

필자가 그때 받은 인상은 보잘 것 없는 디자인과 감성품질, 그리고 어수룩함 그 자체였다. 당시 현대는 1985년 데뷔한 1세대 엑셀이 미국 시장에 진출, 연간 16만 대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쳤지만 품질 문제로 곧바로 판매 실적이 곤두박질치는 아픔을 겪고 있었다. 도쿄모터쇼를 참관하면서 현대가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뉴 모델이 포드 기준으로 볼 때 수준미달임을 확인하고 한국 자동차의 미래를 걱정했던 기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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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기 다가오는 자동차산업
그러나 우려와 달리 한국 자동차는 놀라운 약진을 거듭하며 이제는 글로벌 톱5에 올라 수준급 개발능력과 위상을 자랑하게 됐다. 단, 방심은 금물이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더군다나 정상급 자동차 선진국에 맞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는 더욱 힘들다.

 

한국보다 후발주자인 중국의 자동차산업은 어떨까? 물론 아직까지 수준급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일본이나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빨리 성장했듯이 중국 역시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실력을 쌓고 있다. 특히 중국은 막강한 자금력과 세계에서 가장 큰 내수 시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필요한 기술은 글로벌 일류 업체로부터 돈을 주고 살 수 있고 엄청난 규모의 중국 내수 시장 덕분에 갖가지 제휴 형태로 얻어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만 있다고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업계를 리드할 수 있는 디자인 능력도 필요하고 질 좋은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수많은 협력업체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수한 인적자원을 계속 배출할 수 있는 인프라와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독일이나 미국 자동차업계의 실력파 디자이너나 엔지니어들을 보면 어릴 때부터 집에서 아버지와 자동차를 수리한 경험을 통해 꿈을 키웠고 열정적으로 노력해온 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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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의 자율주행 시연 모습. 본격적인 스마트카의 등장이 머지않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자동차 기술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공과대학의 기반이 빈약한 것도 문제지만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자동차에 대한 갖가지 경험을 쌓을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게 무엇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배출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최근 여러 글로벌 브랜드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많은 한국인 후배 디자이너들이 자신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어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필자에게 토로하곤 한다.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시대를 리드한 혁신적인 아이폰이 한국의 삼성이 아닌 미국의 애플에서 나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국내의 동년배 친구들에 비해 일찍 자동차를 접할 수 있었다. 아마도 10대 시절 자동차를 수리하고 튜닝하면서 열정을 불태웠던 경험이 포드는 물론 글로벌 부품업체 존슨콘트롤스에서 지금껏 현역으로 왕성하게 뛸 수 있는 자산이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적인 구조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 역시 토요타가 렉서스로 프리미엄카 시장 공략에 나선 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독일 3인방(아우디, BMW, 메르세데스 벤츠)를 능가하는 수준의 자동차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아성을 넘을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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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는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킹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카 산업에 뛰어들었다

 

노키아는 스마트카에 승부수 띄워
최근 자동차업계 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노키아가 휴대폰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하고 그 자본을 가지고 스마트 자동차 개발에 참여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3년 전 구글이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휴대폰의 최강자였던 노키아까지 자동차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노키아는 가까운 미래의 자동차는 운전자가 스피드를 만끽하는 드라이빙 머신의 역할보다는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시켜주는 모빌리티 도구로 변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멀티태스킹 시대인 만큼 이동 중인 자동차의 실내는 이런 저런 일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매일 24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고 삶이 윤택해진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현재 전세계 인구 가운데 약 50%가 도심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 15~20년 후에는 그 비중이 무려 70%에 이를 전망이다. 그렇게 된다면 도심의 교통체증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차 안 운전석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다른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은 당연지사.


물론 지금의 기술 수준으로도 누가 운전만 해준다면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인터넷 브라우징, 비즈니스 업무, 엔터테인먼트, 심지어 쇼핑까지 즐길 수 있다. 노키아가 노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구글이 자율주행 자동차에 뛰어든 것이나 애플이 최근 10개 메이커와 제휴를 맺고 카플레이라는 자동차용 인터페이스를 보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스마트카의 등장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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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자동차는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시켜주는 모빌리티 도구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으로 노키아는 위기 때마다 일대 변신을 꾀하며 생명을 유지해왔다. 고무사업으로 출발했지만 유선전화가 보급되자 전선제조업으로 변신한 데 이어 무선전화 시대로 접어들자 모바일폰으로 오랫동안 글로벌 1위를 지켰다. 비록 스마트폰은 실패의 쓴 잔을 마셨지만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킹 기술을 기반으로 스마트카에 뛰어든 것이다. 어쩌면 노키아로서는 당연한 진로 변경이 아닐까.

 

이처럼 일류 IT 기업들이 최근 들어 자동차 쪽에서 차세대 먹거리를 찾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한 애널리스트는 20년 안에 전세계 자동차 브랜드(30여 개)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없어질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 자동차가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지만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소비자 의식이 달라지는 한편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 강화로 머지않아 자동차산업이 격변기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메이커는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강자에게 흡수당할 수밖에 없다.

 

아직 한국 자동차산업이 글로벌 정상권으로 도약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변화를 잘 이용하면 오히려 큰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스마트카에 꼭 필요한 IT산업은 세계적으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는 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에 IT를 잘 융합한다면 대한민국이 차세대 자동차 선진국으로 우뚝 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 리처드 정 (Richard Chung)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파사데나의 아트센터(ACCD)를 졸업한 뒤 포드에 입사한 리처드 정은 입사 2년 만인 1989년 최연소 매니저로 승진, 북미 소형차 스튜디오를 총괄했다. 당시 디자인을 지휘한 차는 에스코트, 페스티바, 프로브, 컨투어/미스티크 등이다. 이후 포드 그룹 글로벌 감성품질 팀장으로 활약한 그는 지난 2000년 자동차 인테리어 부문의 세계적인 부품회사인 존슨콘트롤즈에 아시아 브랜드 디자인 이사로 스카웃되었다. 아태지역 디자인 부사장을 거쳐 현재 중국 상하이에서 존슨콘트롤스 글로벌 디자인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리처드 정 (존슨콘트롤스 글로벌 디자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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