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화재사고의 제조물책임(PL)법
2003-05-20  |   8,005 읽음
운전경력 20년의 A씨는 자동변속기를 조작하다 급발진 사고를 일으켰다. 시동을 걸고 레버를 전진(D) 위치로 옮기는 과정에서 후진(R)에 이르렀을 때, 굉음과 함께 차가 뒤로 움찔했다. 당황한 A씨가 재빨리 레버를 D로 옮기고 힘껏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으나 차는 그대로 30여m 달려가다 건물을 들이받고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주차된 차 5대와 건물 일부가 부서졌고 피해액은 5천만 원에 이르렀다. A씨는 대물손해한도액 2천만 원은 보험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3천만 원과 보험에 들지 않은 자기차량손해에 대해서는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했다.

또 1년된 승용차를 갖고 있는 B씨는 집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집에 들어와 있는 사이 원인 모를 자동차화재 사고를 입었다. B씨는 그동안 엔진 등에 이상을 느껴 AS를 받은 적이 있고, 그 뒤에도 2차례 엔진 이상음과 진동, 배터리 방전 등으로 보증수리를 받은 점을 내세워 자동차 결함을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당사자가 자동차를 통상의 용법에 따라 합리적으로 관리사용하던 중 통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정도를 넘는 위험이 생겼고, 그 위험이 제3자의 행위 개입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므로 제조자인 당사자의 반증이 없는 한, 위 결함요건은 사실상 추정된다”고 판결했다.

소비자 부담 축소 등 긍정적인 효과 기대
위 사례는 자동차 결함 사고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동차사고를 운전자의 부주의나 나쁜 교통여건 탓으로 생각하지만 자동차 안전 결함으로 사고가 일어나거나 확대되는 손해도 의외로 많다. 가령 한쪽 라이트나 브레이크등의 미작동, 빗길에서 갑작스런 와이퍼 고장, 타이어 펑크, 주행중 시동 꺼짐 등의 경험은 한두 번쯤 있을 것이다. 사고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얼마나 당황스럽고 아찔한지. 더불어 정비불량으로 인한 브레이크 파열, 충돌 때 안전벨트와 시트 등받이의 작동 결함, 에어백 오작동과 전기장치 누전 화재사고 등 기계적·전기적 ‘후발 손해’도 많다. 만약 이런 일들이 제조상 결함 때문이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문제는 사고 원인이 차의 결함 때문임을 입증하기가 현재의 법률로서는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민법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가해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되어 있는데, 피해자인 일반 소비자들은 기술력과 시간, 자금이 부족해 메이커의 제조상 결함을 입증하기 어렵다. 이 같은 문제를 감안해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제조물책임법(PL법)을 도입해 메이커에게 입증책임을 묻고 있다. 심지어 제조물의 속성상 위험성만 입증해도 메이커에게 엄격한 위험책임을 부과해 소비자를 보호한다.

오는 7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도 제조물책임(Product Liability)법이 시행된다. 그동안에는 제품으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제조업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하려면 소비자가 제조업자의 과실을 입증해야만 했으나, 7월 1일부터는 과실의 입증 대신 그 결함만 입증하면 되므로 소비자의 부담이 한결 줄었다. PL법은 소비자에게 과실을 입증할 의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인배상사고의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과도 그 뜻이 비슷하다.

일단 PL법이 시행되면 그간 소비자가 입증하기 어려웠던 원인 모를 급발진이나 전기화재 등 자동차사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가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메이커들은 많은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하지만 PL법의 시행 목적이 피해자보호뿐만 아니라 제조물의 안전성 향상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에 있는 만큼, 궁극적으로는 자동차의 안전성이 높아지고 자동차관련업체들의 서비스의식이 바뀌며 교통사고가 예방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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