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외면하는 현실 바로잡아야 신뢰할 수 있는 자동차문화 필요
2003-06-13  |   10,263 읽음
며칠 전 편의점 앞에 현대 스쿠프를 세워두고 물건을 사서 나오던 길이었다. 무심코 스쿠프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30대 후반 남성 두 명이 앞서가며 주고받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야, 저 스쿠프 새차 같지 않냐?”
“휠 보면 몰라, 고물차 도색한 거야!”
친구인 듯한 두 사람이 별 뜻 없이 주고받은 대화였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그 이야기를 엿듣게 된 차 주인인 기자는 조금 언짢아졌다. 차 주인이 듣기에는 스쿠프가 새차 같다던 남자의 말에 이미 ‘새차는 아니다’는 뜻이 들어있는데 옆에서 걷던 이가 한술 더 떠 ‘고물차’라고 못박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남자의 머릿속에는 ‘중고차=고물차’라는 생각이 들어있는 듯했다.

10년 된 자동차 타기, 생각보다 힘들어
연식 오래된 차 타려면 발품부터 팔아야


물론 겉모습만 보면 중고차 가운데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을 만했다. 깨지고 갈라진 앞뒤 범퍼와 운전석 사이드 미러, 테이프의 힘으로 간신히 매달려 있던 운전석 윈도는 흉물스럽기까지 했다. 유리가 깨진 안개등은 심하게 녹슬어 있고, 보디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지난 2월호에 ‘10년 된 중고차 타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중고차 체험기 1회에는 ‘겉모습만 본다면 바로 폐차장으로 가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썼을 정도다.
겉모습은 지저분했지만 엔진이나 트랜스미션 등은 쓸 만했다. 선배로부터 차를 건네 받았을 때의 주행거리는 14만3천200km. 지난 93년 3월 맨 처음 등록했으니 차의 나이만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파워 트레인은 멀쩡했다. 이모저모 살펴 쓸 만하다는 결론을 내린 뒤에 스쿠프의 새로운 오너가 되었다.
평소 연식이 오래 된 중고차의 부품은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실제로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0년이나 된 스쿠프를 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악했고, 이런 현실을 꼬집고 문제점을 찾아보자는 의도에서 지난 2월호부터 중고차 체험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부품 구입에 나선 뒤 현대 모비스에서 스쿠프의 부품을 신청하면서 1∼2주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마저 전국 부품판매점에 해당 부품이 있는지 조회한 뒤 어느 곳이든 재고가 남아 있어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만약 재고가 없다면 정식 경로를 통한 부품 구입을 포기해야 했다. 그 뒤로는 오너의 인내심과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중고부품 판매점을 들락거리든, 폐차장을 뒤지든 오너의 의지가 중요했다. 현대 부품판매점의 한 사장은 “스쿠프 범퍼는 판매업자들도 구하기 힘들다”며 서울에서 이름난 중고차 매매단지인 장한평에서 재생 또는 중고 범퍼를 찾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이의 말대로 장한평에서 뒷범퍼를 사기는 했지만 제품이 워낙 귀하다보니 중고품이라도 부르는 게 값이었다. 장한평의 중고부품 판매점에서 살 수 있는 중고 뒷범퍼 값은 10만∼15만 원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스쿠프의 새 범퍼는 앞이 17만500원, 뒤가 19만2천500원. 중고품의 값이야 주인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지만 중고 뒷범퍼가 15만 원이라면 새 범퍼와 4만 원 정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소비자로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값을 치를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가 생긴 원인은 메이커가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 정해진 부품 보유기간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부품 보유기간은 차가 단종된 때부터 8년. 스쿠프는 지난 95년 단종되었으니 마침 올해까지가 부품 보유기간이다. 하지만 부품 보유기간에 관한 소비자피해보상규정은 무시당하고 있었다. 장한평의 중고부품가게에서 뒷범퍼를 구하게 된 것은 범퍼가 나오면 연락 달라는 부탁과 함께 보증금에 해당하는 2만 원을 미리 주었기 때문이었다. 범퍼값 8만 원을 포함해 모두 10만 원을 주고 뒷범퍼를 구했지만 보디의 검정색과 맞지 않는 흰색이어서 도색을 다시 해야했다. 그나마 뒷범퍼라도 구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일련번호 알아두면 새 부품 사기 편해
큰 수리는 상태와 성능 고려해서 결정


뒷범퍼를 구하면서 중고부품이 거래되는 유통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중고부품의 출처는 대부분 폐차장이다. 폐차장은 다시 팔 수 있는 부품들을 모아 놓았다가 중고부품판매업자들에게 넘기는 방법을 쓰고 있다. 소비자가 폐차장을 찾아 필요한 부품을 살 수 있지만 단단히 각오하지 않으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기 마련이다. 또 폐차장은 중고부품판매업자들과 거래해야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이 원하는 부품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중고부품을 전문으로 파는 이들은 대부분 3∼4개의 폐차장과 직거래를 통해 부품을 확보한 뒤 이를 수리하거나 상태가 좋은 것들은 그대로 소비자에게 팔고 있다. 거래방식은 박리다매(薄利多賣). 싼값으로 많은 양을 팔아서 이윤을 얻는 방식이다.
1주일을 기다려 현대 모비스에 주문해 놓은 부품도 살 수 있었다. 이때 구한 부품은 사이드 가니시와 몰딩, 왼쪽 사이드 미러 등 세 종류로 모두 13만 원이 들었다. 부품번호를 미리 알아두면 쉽고 빠르게 부품을 살 수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부품은 모두 일련번호를 달고 있어 필요한 부품의 번호를 알면 재고가 몇 개이고, 언제쯤 살 수 있는지 대충 알 수 있다. 필요한 부품을 손에 넣은 뒤 과감하게 전체 도색을 했다. 이전에 사놓은 사이드 몰딩·가니시와 사이드 미러를 달아주는 공임 그리고 당시 문제가 생긴 등속조인트, 앞범퍼까지 갈아주는 조건으로 100만 원을 냈다. 전체도색을 하는 데는 3일이 걸렸다.
1급 정비공장의 직원이라고 밝힌 한 독자는 전체도색에 관해 쓴 중고차 체험기 3회를 읽고 “전체도색을 하려면 최소한 120만 원에 작업기간은 일주일 이상이 필요하다”며 “3일만에 끝내버린 전체도색이라면 작업과정이 뻔하다”는 의견을 <자동차생활> 인터넷 홈페이지 카라이프넷에 남겼다. 이 독자의 의견을 대하고 보니 3회의 내용에서 빠진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체도색처럼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수리는 차의 상태를 먼저 점검해야 한다는 점이다. 목돈을 들여도 될 만한 상태라면 그에 맞는 지출규모를 결정할 수 있다.
시장조사를 통해 전체도색의 방법이 여러 가지이고, 제대로 하려면 엔진까지 뜯어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스쿠프의 연식과 상태를 고려하면 성형이 아닌 화장 수준의 전체도색이 알맞았다. 너무 비싼 작업은 오히려 낭비가 될 수 있었다. 또 각종 공임과 앞범퍼(17만500원), 등속조인트(7만 원) 등까지 새것으로 교환하는 조건이었으니 100만 원이면 만족스런 결정이었다. 전체도색으로 말끔해진 스쿠프를 즐겁게 타고 있는데 엔진 회전수가 불규칙적으로 오르내리다 시동이 꺼지는 문제가 생겼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정비업소를 찾았지만 진단 내용이 서로 달랐고, 부품값이나 수리비를 적은 견적서를 주는 업소는 많지 않았다. 자동차관리법에는 정비업자가 오너(정비를 의뢰한 자)에게 점검·정비견적서와 ‘어떻게 정비를 했다’고 알리는 내역서를 써 주도록 되어 있지만 부품보유 기간처럼 이 또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다섯 차례에 걸친 중고차 체험기를 통해 얻은 결론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문화가 새차 중심이라는 점이다.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부품보유 기간과 법을 무시하는 정비체계는 연식이 오래된 차를 외면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법을 지키도록 하는 강제성과 이를 어겼을 때 받는 불이익 등 마땅한 제재방법이 없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다.
차를 단순한 이동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적당히 타고 팔아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동차는 이미 이동수단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에 걸 맞는 자동차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메이커든 소비자든 중고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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