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안전한 레이스 테크닉 정확한 예측능력, 순간 판단력 키워야
2003-08-26  |   14,203 읽음
제8장 고속과 안전성

음속을 돌파한 자동차는 접어두더라도 최신 경주차의 최고속도는 엄청나다. 시속 290km로 달리는 차는 1초에 약 80m를 주파하고, 정지하는 데 필요한 거리는 250m. 숙련된 드라이버의 평균 반응시간 0.2초 동안에 16m를 움직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때 위험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드라이버가 뛰어난 예측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고속과 안전은 상충되게 마련이다.
안전하면서도 빠른 드라이버에게 필수적인 요건은 기민한 반사신경이 아니라 정확한 예측능력이다. 자기 차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한 대처능력은 물론 다른 차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일어날 사태를 예측해야 한다. 가령 앞차가 코너에 조금 빨리 뛰어들거나 정상 라인에서 벗어났다고 하자. 그러면 즉시 결과를 예측해 일어날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앞차가 코스의 어느 쪽으로 스핀하고,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를 몇 분의 1초 사이에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F1의 명드라이버 J.M. 판지오는 수많은 드라이버가 말려 들어간 복합사고에서도 가끔 홀로 빠져나갔다. 이는 판지오가 고도의 예측능력을 갖춘 덕분이다. 1953년 몬자의 이태리 그랑프리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최종 랩 마지막 직선코스에서 아스카리와 파리나는 하위그룹에 방해를 받다가 충돌했다. 그러나 바로 뒤를 따르던 판지오는 번개같이 사태를 간파해 충돌을 모면했을 뿐 아니라 표창대 정상에 올랐다.
또 다른 실례를 들어보자. 1955년 르망에서 참극이 벌어졌다. 레베크의 벤츠가 매클린의 오스틴 힐리에 추돌해 관객 8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뒤따르던 판지오는 아수라장을 비집고 안전하게 빠져나갔다. 세 번째는 1957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일어난 대충돌. 모든 경주차가 무리 지어 달리던 2주째, 선두를 잡은 모스가 장벽을 들이받았다. 모스의 뒤에서 달리던 호손과 콜린스가 연쇄추돌하면서 도로를 가로막았지만, 뒤따르던 판지오는 마세라티를 몰고 절묘하게 위기를 돌파해 우승 트로피를 안았다.
이처럼 ‘앞을 읽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서키트와 랠리 뿐만 아니라 도로를 달리는 모든 드라이버에게도 절대로 필요한 기술이다. 앞길을 알 수 없고 가드레일도 갖추지 않은 도로를 달릴 때가 그렇다. 이른바 도로감각(road sense)이 긴요한 역할을 한다. 길을 달리고 있을 때 어떤 위험이 닥쳐올 수 있느냐를 판가름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이 많은 드라이버는 비상 수단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에게는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주의 깊은 드라이버는 단기간에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어디를 보아야 하고, 무엇을 주의해야 하느냐를 일찍 깨닫는다. 사람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볼 수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에 정신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절박하게 필요하지 않은 것은 무시하고 곧 잊어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훈련을 거듭하면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높아진다. 익숙해지면 보도에 서 있는 20명의 보행자 가운데 누가 차 앞에 뛰어들지를 알아낼 수 있다. 아주 사소한 실마리로 놀랄 만큼 많고 중요한 것을 가늠한다. 예를 들어, 사방이 잘 보이지 않는 교차로에서 다가오는 차를 그림자로 식별할 수도 있다. 긴 그림자라도 차가 나타날 때까지의 시차는 몇 분의 1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종이 한 장 차이로 사고를 피하기도 한다.

혹은 보행자가 위험을 미리 알리기도 한다. 횡단보도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으면 가까이 달려오는 차가 없다고 보아 틀림없다. 그러나 갑자기 보행자가 비킨다면 예상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판단해야 한다. 도시의 번잡한 거리에서는 쇼윈도가 큰 도움을 준다. 실제로 차가 나타나기 전에 유리에 반사되는 경우가 있다. 또 차 사이가 아주 좁은 곳에 주차할 때 쇼윈도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길가에 차가 서 있으면 먼저 차안을 본다. 사람이 타고 있을 경우 문을 열 가능성이 있다. 운전자가 있다면 갑자기 출발하거나 곧 U턴을 할 수도 있다. 그 차가 덩치 큰 트럭이라면 그늘에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때는 아래쪽으로 사람의 발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느냐도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시가지에서 앞차가 급정거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고 하자. 그때 힘껏 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상황이 허용하는 한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는다. 그러면 앞차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정지할 수 있어 뒤따르는 차가 추돌하지 않을 여유가 생긴다. 내 차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백미러를 통해 뒤를 살핀다. 필요하고 가능하다면 좌우 어느 쪽으로 비켜 뒷차의 추돌을 피하기도 한다.
요즘처럼 길이 복잡할 때 한 대가 급정거하면 연쇄추돌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가령 적당한 차간거리를 유지해도 이럴 때 안전거리를 지키며 차를 세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구실이 될 수는 없다. 드라이버는 이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미리 알기 때문이다. 바로 앞을 달리는 차만이 아니라 2∼3대 앞을 주의하면 한 순간이라도 빨리 대응할 수 있다. 그것이 연쇄추돌을 피하는 길이다. 잇따라 달릴 때에는 앞차 바로 뒤가 아니라 옆으로 약간 비켜난 라인을 따른다. 긴급사태에서 앞차를 피하기 쉽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앞이 안 보이는 코너에 들어갈 때에는 변칙 드라이빙을 해야 한다. 교통규칙 그대로 갓길에 가까운 차선을 충실히 따르지 말고 코너 바깥쪽 차선을 고른다. 노상에 있을지도 모를 장애물을 앞서 발견하기 때문에 훨씬 안전하다. 또 미끄러지기 쉬운 노면에서는 어떤 속도라도 정지거리가 길어진다. 당연히 한층 정밀한 예측을 해야 한다. 가령 눈길에서는 건조한 노면보다 3배나 먼 앞길을 보고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앞을 읽는’ 능력은 안전성을 한 차원 높인다. 뛰어난 드라이버에게는 필수조건이다. 그러면 그것과 레이스 드라이빙과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느냐는 반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분명히 위에서 예를 든 실례를 모두 서키트 레이스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랠리 드라이버는 일상적으로 도로에서 겪는 모든 위험과 부닥치게 마련이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사고라도 귀중한 시간을 빼앗기는 걸림돌이 된다. 랠리 드라이버는 안전이 뒷받침되지 않은 스피드를 생각할 수 없다.

비상 라인
레이스와 랠리 중에 이론대로 실천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게 마련이다. 레이스 코스에서도 다른 드라이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빠른 차의 추월을 받거나 느린 차를 앞지를 때 잠시 이상적인 라인을 벗어나게 된다. 이럴 때 대다수 경주차가 지나가는 정상 라인 밖의 노면은 부드러운 레이싱 타이어 가루와 모래가 쌓여 있다. 따라서 그립이 훨씬 떨어진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때 드라이버가 몇 분의 1초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가 코너 직전에서 가능한 한 브레이킹 포인트를 늦추는 것이다. 이 전법을 쓸 때 자칫 판단 착오로 브레이킹이 조금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전과 같은 라인을 따르려면 코너 진입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면 밖으로 튀어나가거나 스핀할 수밖에 없다. 이 위기를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보통 라인을 따르면 너무 빠르다고 깨닫는 순간 차를 코너 안쪽으로 돌린다(그림1).
그에 따라 직진상태가 상대적으로 길어진다. 이때 브레이크를 한껏 밟으면 코너에 들어가기 전에 속도를 늦출 수 있다. 당연히 커브가 급한 라인을 따라가지만 다소 스피드를 떨어뜨려 최악의 사태를 피할 여유를 찾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방법을 절묘하게 살리면 시간 손실을 막을 수도 있다. 커브에서는 분명히 스피드가 떨어져 불리하지만, 브레이킹 포인트를 조금 늦출 여유가 있다. 여기서 시간을 벌 수도 있다. 그밖에도 코너 바깥쪽에서 거리를 두고 제동을 걸어 차가 옆을 보고 있더라도 안전하다. 게다가 라이벌에게 안쪽으로 파고들 틈을 주지 않는다.

비가 올 때
노면이 젖어있을 때 대체로 드라이버는 소심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숙달되면 달라진다. 특히 레이스 중에는 일반 도로와는 달리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 별로 없다. 경기중 코너링을 하며 브레이크를 밟을 때나 가속할 때 차의 접지력은 한계에 다다른다. 따라서 노면이 젖어 접지력이 변화할 때에는 드라이버가 판단해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코너링 속도를 낮추어 제동거리를 길게 잡는다. 또 바퀴가 잠기거나 휠스핀을 하지 않도록 브레이크 페달과 액셀러레이터 조작을 보통 때보다 정교하게 한다. 휠스핀은 가속력을 떨어뜨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테일의 파워 슬라이드를 일으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일반 서키트에서는 비가 온다고 코너 직전의 브레이킹 포인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비가 올 때에는 코너링 속도가 떨어지고 당연히 코너 탈출속도가 내려간다. 따라서 그 뒤 직선코스에서의 속도 역시 어디서나 느려진다. 다음 코너 직전의 브레이킹 포인트에 도달해서도 마찬가지다. 노면이 건조할 때와 같은 속도에 이르지 못한다. 미끄러운 노면에서는 예기하지 않은 운동, 가령 슬라이드를 일으키면 평상시보다 정확하고 신속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노면이 미끄러워도 운전 테크닉에는 변함이 없다. 때문에 노면의 미끄럼 정도나 원인이 물이냐, 눈이냐, 얼음이냐는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미끄러운 노면일수록 코너링 속도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모는 일이 평상시보다 낮은 속도에서 일어난다. 노면의 미끄럼이 올라갈수록 코너보다는 직선코스에서 운전하기가 어렵다.

코너에서는 타이어의 그립과 차에 작용하는 외력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빗속에서는 속도를 낮추어 외력을 줄이게 된다. 그러나 직선코스에서는 마른 노면과 마찬가지로 고속을 낼 수 있다. 타이어의 그립만 감소할 뿐 차의 운동량과 그에 따른 갖가지 외력은 줄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미끄러운 눈길이나 빙판에서는 굴림바퀴와 구동력이 차체의 공기저항 및 굴림 저항의 합과 같아질 때가 있다. 이렇게 될 때 차는 속도의 한계에 도달한다. 이 한계속도에서는 굴림바퀴의 접지력은 전진하는 데 모두 쓰여 바퀴가 스핀하기 쉽다. 때문에 조그마한 횡력에도 저항하기 어렵다. 그러면 방향안정성은 극도로 떨어지고, 드라이버가 끊임없이 핸들을 수정하지 않으면 도로 밖으로 튀어나간다.
이는 노면상황에 맞지 않는 타이어를 신고 있기 때문이다. 알맞은 겨울용 타이어(필요할 때에는 스터드가 박힌)를 신으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 제동거리가 미끄러운 노면에서 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장애물에 대비해 평상시보다 훨씬 먼 전방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레이스 코스에서도 중요하지만 일반 도로에서는 결정적이다. 도로에서는 까다로운 코너, 위험한 교차로, 부주의한 자전거를 쉬지 않고 경계해야 한다. 앞지를 때에는 마주오는 차에 신경을 써야 한다. 노면의 그립이 바뀜에 따라 얼마나 멀리 전방을 주시하느냐를 정확히 가늠할 필요가 있다. 속도가 올라감에 따라 점차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진다. 그럴 때 풍부한 경험이 필요하다. 대다수 드라이버는 멀리 앞을 바라보면 거기에 정신이 팔려 가까운 상황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때문에 멀리 보지 않는다.
고속으로 달릴 때 폭우가 쏟아지면 노면상황이 매우 위험해진다. 강우량이 물이 빠지는 속도보다 빠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노면이 두꺼운 수막에 덮여 보통 속도라면 물이 타이어에 퉁겨나가고 타이어 양쪽에 빠지지 않은 물만 트레드에 들어온다. 하지만 스피드가 올라감에 따라 타이어 밑에서 물이 퉁기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 그러면 트레드가 노면에 닿을 때까지 물이 남게 되어 타이어가 물에 뜨는 ‘수막현상’을 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뛰어난 드라이버도 어쩔 도리가 없다. 수막현상은 평탄하고 매끈한 노면에서 일어나기 쉽다. 거친 노면보다 수막현상이 잘 일어난다는 말이다.
수중 레이스를 좋아하는 드라이버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는 자동차경주에 관한 헛소리의 한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나 지금이나 수중전을 좋아하는 드라이버는 없다. 앞을 달리는 차가 일으키는 물보라로 시야가 좁아져 테크닉보다는 어림짐작으로 달리게 되어 아주 위험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폐쇄된 차도 위험하지만 초광폭 타이어가 노출되어 있는 1인승 경주차는 절망적이다. 게다가 바이저가 물에 젖어 흐려진다.
따라서 수중전을 좋아할 드라이버는 절대로 없다. 다만 비가 오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드라이버가 있다. 그럴 때 비가 오기를 바라는 것도 사실이다. 또 드라이버의 수완보다 경주차에 따라 수중전에 불리한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출력이 큰 고속차는 출력이 작은 차에 비해 레인트랙에 약하다.
예를 들어 마른 노면에서 시속 200km로 돌아가는 커브가 있다고 가정하자. 비가 올 때에는 시속 170km로 달려야 한다면 모든 고속차는 시속 30km를 낮추어야 한다. 한편 이 커브에서 시속 160km가 한계인 차는 비가 와도 여기서 감속할 필요가 없다. 날씨에 관계없이 시속 160km로 안전하게 돌아간다. 이처럼 비는 모든 차가 이용하는 힘을 평준화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출력이 적은 차의 드라이버는 비가 좋을 리 없는 데도 비를 기다리는 경우가 더러 생긴다.

겨울 운전
비가 와서 미끄러운 노면과 비나 눈, 얼음 때문에 그립력이 떨어지는 노면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다. 다행히 일반적으로 경주차가 눈길과 빙판을 달리는 경우는 없다. 다만 랠리 드라이버는 이런 노면상황과 늘 대결해야 한다.
현대의 국제 랠리에서는 경기구간(SS)의 기록 합계로 승패를 가름한다. SS는 짧게는 몇 킬로미터, 길 때에는 50km에 이른다. 이들 경기구간 사이에는 시간을 측정하지 않는 연결구간이 있다. 거기서는 일반 교통규칙이 적용된다. 그러나 최대 허용시간 안에 그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먼저 경기 전체를 일정한 시간의 틀 안에서 시행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정비를 하지 못하게 막는 데도 목적이 있다. 만일 허용시간 안에 체크포인트에 도착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준다.
눈길의 운전 테크닉은 기본적으로 비포장도로와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타이어 선택은 훨씬 어렵다. 눈의 종류, 수분의 양, 새로 온 눈인가 다져진 눈인가에 따라 타이어의 최적 컴파운드가 달라진다. 빙판에서는 스터드가 달린 타이어를 신어야 한다. 게다가 경기구간이 비교적 길 때에는 노면상황이 곳에 따라 달라진다. 산악 구간은 특히 변덕이 심하다. 스타트 지점에서는 건조하거나 비가 오더라도 고도가 올라감에 따라 눈이나 얼음으로 바뀐다. 워크스팀이 아닌 개별 참가자는 갖고 있는 장비로 대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두그룹 팀들은 자체 지원이나 타이어 메이커의 지원으로 가장 알맞은 타이어를 공급받는다.
하지만 워크스팀들도 난관은 있다. 드라이버가 경기구간을 랠리 며칠을 앞두고 볼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노면상황은 시시각각 크게 바뀔 수 있다. 드라이버는 어떤 타이어를 신느냐를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톱클래스 팀들은 랠리 경험이 풍부한 드라이버를 투입한다. 경기개시를 앞두고 구간을 폐쇄하기 전에 코스에 투입해 전화로 노면상황을 확인한 다음 그에 따라 타이어를 결정하게 된다.
건조한 포장도로에서는 네바퀴굴림(4WD)이 두바퀴굴림(2WD)에 비해 이점이 거의 없다. 그립을 둘러싼 4WD의 이점이 무게가 늘어나면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과 얼음 위에서는 4WD의 우위는 압도적이다. 4WD는 앞바퀴굴림과 비슷하해 언더스티어가 강하고, 그에 따라 특별한 조종 테크닉이 필요하다. 비포장 또는 미끄러운 노면에서 4WD는 최대 성능을 끌어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아울러 뒷바퀴굴림에 아주 가까운 조종감각을 살렸다. 그러기 위해 뒷바퀴에 큰 토크를 보내는 토크 배분장치와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LSD)을 달았다. 마찬가지로 대다수 앞바퀴굴림 랠리카도 LSD를 갖추고 있다.

야간 레이스
12시간, 24시간 내구 레이스나 많은 국제 랠리에서는 반드시 야간 경기가 따른다. 어둠 자체가 큰 위험요소여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달린다는 최대의 목표에 전념하도록 드라이버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가령 뒤에서 다가오는 경주차의 램프, 또는 자신의 램프와 그 반사광으로 인한 눈부심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또한 대시보드 전체, 특히 윈드실드 밑쪽과 이어지는 수평부분은 반사되지 않는 검은색으로 칠한다. 계기의 테두리, 스티어링 컬럼과 스포크, 백미러 테두리도 빛이 나지 않도록 검은색을 칠한다.

한낮에도 유압계나 수온계 같이 작은 계기의 숫자를 정확히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필자는 레이스에 나갈 때마다 다음과 같이 대비했다. 계기 패널에 흰 테이트로 ‘WAT
ER, OIL P, OIL T’라고 크게 써 두었다. 그런 다음 각 계기의 유리에 지침의 정상 위치 가까이에 붉은 페인트로 표시했다. 이렇게 하면 야간에도 한번 흘낏 보면 정상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러면 계기판의 조명을 아주 높이지 않아도 된다. 계기에 정신을 빼앗길 일이 적어 코스에 시선을 집중할 수 있다. 아주 중요한 타코미터는 대체로 크기가 충분하니까 레드존 표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만일 타코미터 이외에 속도계가 달려 있다면, 각 기어의 허용 최고속도를 표면에 표시한다. 이따금 일어나는 타코미터 고장에 대비하는 방법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완벽한 시야는 몇 분의 1초가 좌우하는 상황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재규어 D타입으로 영국 실버스톤에서 연습중이던 필자는 약간 흠이 간 고글을 신품으로 바꾼 것만으로도 랩타임을 2∼3초 줄였다.
야간 레이스 또는 랠리의 고속구간에서 1초라도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램프가 아주 강력해야 한다. 레이스에는 멀리 강력한 빛을 전하는 헤드램프에 더하여 폭넓은 빛을 보내는 포그램프를 갖추어야 한다. 포그램프는 레이스중 고속에서는 안개에 무력하지만 코스 양쪽을 환히 비쳐주기 때문에 정확히 코너에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레이스에서는 이 같은 보조램프가 헤드램프보다 중요하다. 서키트에서는 앞길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랠리에서는 강력한 램프가 절대로 필요하다.
앞차에 바싹 따라붙으면 램프를 하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백미러는 눈부심 방지를 위해 각도를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램프의 딥스위치는 위치와 모양이 조작하기 쉬워야 하고, 그것으로 헤드램프를 점멸할 수 있도록 한다. 느린 차를 앞지를 때 점멸해 경고하기 위해서다.
경주차의 전력소비는 아주 크다. 6개의 강력한 헤드램프와 모든 보조등, 거기에다 랠리카에서는 드라이버와 내비게이터를 연결하는 인터컴, 지도읽기용 램프 등이 많은 전력을 쓴다. 따라서 이들 모든 전장품을 켜놓은 상태로도 배터리 충전이 가능한 올터네이터를 마련해야 한다.

브레이킹
‘빨리 달리려면 브레이크를 밟지 마라!’ 이 경구에 대해 필자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갖고 있다. 1953년 스파프랑코샹에서 벌어진 벨기에 그랑프리 연습중이었다. 마세라티는 4대 체제로 출전했다. 3대는 당시 마세라티의 정규 드라이버 판지오, 곤잘레스와 보네트가 몰았다. 나머지 한 대는 전 벨기에 챔피언인 조니 클레가 핸들을 잡았다.

클레는 아무리 분발해도 판지오와 곤잘레스를 따를 수 없었다. 열심히 연습을 마친 뒤 클레가 판지오를 찾아왔다. 아무래도 자기 차는 다른 차보다 느리니까 잠시 판지오가 몰아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판지오는 당장 클레의 경주차에 올라 몇 바퀴를 돌았다. 그중 최고기록은 조금 전 판지오가 자기 경주차로 낸 기록과 거의 같았다. 피트에 돌아온 판지오에게 클레가 어깨를 움츠리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느냐고. 판지오는 아무 말도 않고 차를 빠져 나와 피트 카운터쪽으로 걸어갔다. 따라온 클레를 보고 마주 앉아 특유의 서둔 영어로 간단명료하게 잘라 말했다. “브레이크를 덜 밟고 액셀을 많이 밟아라”(Less brakes and more accelerator).
하지만 브레이크를 덜 쓸수록 빨리 달린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빨리 달리려면 브레이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감속이 절대로 필요할 때에만 써야 한다. 일반 도로에서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드라이버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쓴다. 그러나 주의 깊게 앞을 읽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주위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쓸데없이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높은 평균시속을 유지한다.
도로에서 높은 평균시속을 지키려면 브레이크를 함부로 쓸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숙달될 때까지는 상당한 수련이 필요하다. 단순히 시간을 줄일 뿐 아니라 타이어, 브레이크와 연료를 절약한다. 드라이버의 실력은 일정 거리에서 밟은 불필요한 브레이킹 회수에 반비례한다. 필자의 자신 있는 평가기준이다.

도로에서 앞지르기
정확한 판단력과 신중한 자세는 도로에서 앞지를 때 시간을 상당히 절약한다. 3대가 나란히 달릴 수 없는 좁은 길에서 느린 차를 따라잡았다고 하자. 먼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 또는 마주 오는 차와 교행할 때까지 속도를 늦추어 기다릴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뒤로 물러나 기다리기로 했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앞차와 마주 오는 차와의 속도차를 정확히 가늠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자기 차의 속도를 알맞게 조절한다. 다시 말해 마주 오는 차가 지나간 뒤 길이 열리는 순간 가능한 한 빨리 추월태세에 들어가야 한다(그림2).
빨리 감속하면 그만큼 속도가 덜 떨어져 원래 순항속도로 돌아갈 때 시간이 덜 걸린다. 상대를 해야 하는 2대의 속도는 조절할 수 없어도 2대가 지나치는 지점은 미리 예상할 수 있다. 그 지점에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접근하면 추월은 그만큼 빨리 이루어진다. 그 뒤 가속도 빨라진다. 사전에 충분히 가속하지 않으면 훨씬 낮은 속도, 최악의 경우 추월할 앞차만큼 속도가 떨어진 뒤에 가속해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판단력이 뛰어난 드라이버가 지금까지 시속 160km로 달려왔다고 하자. 겨우 시속 130km로 속도를 떨어뜨려도 추월하여 다시 가속에 들어갈 수 있다. 고성능 스포츠카라면 시속 160km로 돌아가는 데 5∼7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계산이 빗나가 시속 50km까지 속도를 떨어뜨려야 했다고 하자. 그러면 원래 순항속도를 되찾을 때까지 위에서 말한 시간보다 3배나 들어간다. 이처럼 전혀 불필요하게 10∼20초의 시간을 허비한다. 몇 차례 이런 실수를 반복하면 몇 분에 이른다.

‘앞을 읽을 줄 아는’ 드라이버는 심한 충격을 받지 않도록 서스펜션을 보호한다. 노상의 구덩이나 길을 가로질러 흐르는 빗물 도랑, 심한 요철은 멀리서 분간하기 어렵다. 고속으로 달리고 있을 때 매끈하게 타고 넘을 만큼 감속할 여유가 없을 때가 많다. 알아차렸다고 해도 시간에 쫓길 때에는 느긋하게 감속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럴 때에도 다음 사항을 잊어서는 안 된다. 브레이크를 걸면 프론트 서스펜션의 하중이 증가한다. 단순히 앞바퀴에 대한 무게배분이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레이크 토크의 반작용 때문이다. 제동을 걸면 차의 노즈가 내려간다. 프론트 서스펜션의 상향 운동을 줄이고,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을 끌어내린다. 따라서 구덩이나 요철과 같은 장애물 직전에 브레이크를 놓아 서스페션에 걸리는 지나친 하중을 덜어준다. 그러면 심한 충격을 흡수할 태세가 갖추어진다. 브레이크를 놓을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 그에 따라 일어나는 스프링의 충격 흡수력을 잘 이용한다. 그러면 장애물을 매끈하게 타고 넘을 수 있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앞을 읽는 능력을 갖춘 드라이버는 전방을 잘 볼 수 없더라도 안전하게 고속으로 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앞에 나직한 오르막이 있어도 그 뒤가 어떤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경우에도 나무, 전주, 혹은 광고판으로 미루어 보이지 않는 길이 어느 쪽으로 뻗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르내림이 심한 산골길을 달릴 때 경우에 따라 멀리 앞길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런 기회는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한다. 마주 오는 차가 있는지를 살피고 지나칠 때를 대비한다.

안전벨트
실제로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례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폐쇄된 차에 타고 있으면서 잘 조절된 안전벨트를 매고 있으면 피해는 크게 줄어든다. 중대 사고가 날 때 부상하거나 사망하는 확률이 뚝 떨어지는 것은 확실하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안전벨트는 고속도로보다 시가지에서 더 큰 효력이 있을지도 모르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면 겨우 시속 50km에서 목숨을 잃은 실례가 있다. 적어도 최신 차라면 안전벨트만 제대로 매고 있으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시속 100km 이상으로 정면충돌할 때에는 어떨까. 벨트 착용에 관계없이 생존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레이스에서는 4∼6점식 안전벨트를 맨다. 드라이버(랠리에서는 내비게이터도)는 시트에 고정되어 전후좌우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기규칙에 담긴 의무조항이다. 롤 케이지(폐쇄성 경주차) 또는 롤 바(오픈카의 경우)와 함께 최대한 안전이 확보된다. 엄청난 원심력, 제동력, 최신 공력장치에 의한 다운포스에 맞서기에 알맞은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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