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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24  |   7,651 읽음
901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포르쉐는 356 후계모델 개발에 온 힘을 기울였다. Kdf(후에 폭스바겐 비틀)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태어난 356은 여러 차례 개량을 거쳤지만 기본설계에 한계가 있어 새로운 플랫폼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디자인은 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손자이고 페리 포르쉐의 아들인 알렉산더 포르쉐(일명 부치)가 맡았다. 그는 356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아버지가 원하는 신세대 스포츠카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다.
최종적으로 몇 대의 시작차가 완성되어 스타일링과 메커니즘이 시험되었다. 앞쪽 화물공간 확보를 위한 세로배치 토션바 맥퍼슨 스트럿(356은 가로) 서스펜션과 새로운 수평대향 6기통 엔진 등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대형 4인승 모델로 확정되었지만 커진 6기통 엔진과 4인승 시트를 갖춘 타입695 계획은 페리 포르쉐에 의해 제지되었다. ‘한눈에 포르쉐임을 알 수 있어야만 한다’는 그의 주장에 따라 뒷좌석 공간을 줄인 2+2 구성이 탄생했다. 알렉산더가 재디자인한 2+2 구성의 패스트백 쿠페 프로토타입은 휠베이스 2200mm로 356보다 실내와 화물공간이 넓고, 고성능과 안락성, 정숙성까지 목표로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디와 한스 트라마가 완성한 수형대향 6기통 SOHC 엔진을 얹어 196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901’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356 때와 마찬가지로 901 역시 설계도면 번호를 차 이름으로 사용했다.
901은 보디 사이즈 4163x1610x1320mm, 휠베이스 2211mm로 356C에 비해 너비만 작을 뿐 사이즈가 모두 커졌고, 포르쉐 최초로 모노코크 구조를 체용했다. 901형으로 불린 엔진은 소렉스 카뷰레터를 달고 최고출력 130마력, 최대토크 16.7kg·m로 최고시속 200km를 어렵지 않게 넘겼다. 356 시절 최고시속은 185km. 서스펜션은 앞 세로배치 토션바와 맥퍼슨 스트럿, 뒤는 가로배치 토션바와 트레일링암 구성. 5단 수동 변속기와 356에서 가져온 ATE제 4륜 디스크 브레이크, 15인치 휠을 장비했다.
하지만 901이라는 이름은 사용할 수 없었다. 가운데 0이 들어간 세 자릿수 이름을 이미 푸조가 등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4년 선보인 양산형은 이름을 911로 바꾸었다. 다만 부품과 유닛의 형식번호에는 901이라는 이름이 계속 사용되었다.

912

비틀의 부품을 많이 활용한 356과 달리 911은 완전히 새로 개발한 차여서 가격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페리 포르쉐는 정평 있는 356C용 수평대향 4기통 1.6ℓ 90마력 엔진을 얹은 저가형 모델을 912라는 이름으로 선보였다. 1966년부터 69년까지 생산된 912는 최초의 숏휠베이스 버전 O시리즈와 A, B시리즈 등 3가지. 당시 911의 값은 356SC에서 30%나 상승된 2만1천 마르크였다. 356이 생산될 때는 별 문제 없었지만 911만 남게 되자 높은 값과 좁은 선택범위가 문제되었다. 결국 포르쉐는 356의 빈 자리를 채워 줄 저가형 912를 1865년 4월 발표했다.
이런 개발배경과 달리 판매는 순조로워 1966년 911이 1천710대 팔린 데 비해 912은 4천660대라는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911의 성능이 높아지고 초기의 문제점들이 해결되면서 판매 차이는 점점 줄어들었고, 3만300대 생산 후 1969년 모습을 감추었다. 7년 후인 1976년 갑작스레 등장한 912E(타입 923)는 미국시장을 위한 특별 버전으로, 1년간 2천대가 만들어졌다. 당시 유가상승과 속도제한으로 미국 판매 부진에 고민하던 포르쉐가 단종된 914용 엔진(수평대향 4기통)을 얹어 만들어 낸 저가형 모델이다. 79.5X의 연료탱크를 달아 600마일(966km)이 넘는 포르쉐 최고의 주행거리를 자랑했다.

Carrera

지금은 911 기본형에 사용되는 이름 카레라. 하지만 70년대 포르쉐 카레라는 고성능의 상징이었다. 1973년 F시리즈 911을 바탕으로 태어난 카레라RS(아래 사진)는 그룹4 스페셜 GT 경주차 인증을 위한 한정생산 모델로 2.4X형 911의 보디를 경량화하고 배기량을 키워 성능을 높였다. 일종의 레이싱카의 로드 버전이었다.
당시 911S의 2.4X 엔진은 2천500cc 클래스(2천501~3천cc) 경주에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배기량을 늘이면서 무게를 줄이고 트레드를 넓히는 한편 에어로파츠를 새롭게 설계했다. 얇은 시트 메탈로 만든 보디에 독특한 덕테일 리어윙, 파이버 글라스로 된 엔진 후드, 경량 시트를 달았고 리어 시트는 형태만 남겼다. 배기개스 정화장치까지 떼어 버려 무게는 불과 900kg. 2천687cc로 배기량을 키운 엔진은 니켈-실리콘-카바이트 코팅된 알루미늄 실린더를 달아 210마력, 26.0kg·m의 힘을 냈다. 최고시속 240km, 0→400m 가속시간은 14.1초. 양산형은 911S와 같은 장비를 갖춘 투어링, 편의장비를 배제한 스포츠, 그리고 철저하게 경량화시킨 레이싱 등 세 타입으로 판매되었다. 원래 목표인 500대를 훨씬 넘겨 스포츠 버전이 1천36대, 투어링 버전도 600대나 만들어진 카레라RS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클래식 포르쉐 최고 인기모델로 꼽힌다.
이듬해 911 기본형에 카레라RS 엔진을 쓰면서 카레라는 성능이 한 단계 올라갔다. 배기량을 3.0X로 키워 압축비 9.8에서 최고출력 230마력, 최대토크 28.0kg·m를 냈다. 최고시속 250km, 0→시속 100km 가속 5.3초의 고성능이었다. 새로운 대형 스포일러도 달라진 부분. 기본 상태로도 서키트 레이스가 가능할 만큼 고성능이었기 때문에 경주차 917에서 가져온 대구경 V디스크를 달았다. 74년형 카레라RS 3.0(위 사진)은 109대만이 생산된 초희귀 포르쉐.
이렇게 특별한 의미로 사용된 이름 카레라는 84년 모든 포르쉐에 붙기 시작해 리어 엔진 후드에 911 엠블럼 대신 ‘Carrera’라는 글자가 새겨졌다. 이후 지금까지 터보를 제외한 모든 911은 카레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Ferry & Butzi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르쉐라는 이름에서 페르디난트 포르쉐를 떠올리지만 실질적으로 포르쉐를 키워 낸 사람은 그의 아들 페리(사진 오른쪽)였다. 정식 이름은 페르디난트 안톤 에른스트 포르쉐(Ferdinand Anton Ernst Porsche). 그가 태어난 1909년 아버지 페르디난트는 오스트리아 아우스트로 다임러사의 치프 엔지니어였다. 1923년 페르디난트가 독립해 슈투트가르트에 Dr. Ing. h. c. F Porsche KG라는 이름으로 엔지니어링 회사를 차린 후 히틀러의 요청으로 국민차 개발을 시작했고, 장성한 페리는 테스트 부문 책임자로 아버지 일을 돕기 시작했다. 2차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고,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페르디난트는 프랑스에 억류되었다. 누나 루이제가 아버지의 석방에 힘쓰는 사이 오스트리아 그뮌트에 터를 잡은 페리는 오랜 파트너 칼 라베 등과 함께 신차 개발에 착수했다. 아버지가 베를린-로마를 잇는 장거리 로드 레이스(2차대전으로 열리지 못했다)를 위해 개발한 타입60 K10을 바탕으로 한 RR 구성의 소형 스포츠 로드스터였다. 설계도면 번호를 따라 356이라는 이름이 붙은 최초의 포르쉐는 1948년 양산 프로토타입이 발표되었다. 49년 그뮌트에서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온 포르쉐는 356 생산을 시작했지만 노쇠한 페르디난트는 1950년 9월 3일 75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포르쉐는 아들 페리에 의해 착실한 성장의 길을 걸었다. 356은 356B와 356C로 진화하면서 성능을 인정받았고, 550과 1500RS 등 레이싱 모델이 서키트를 누볐다.
63년 페리의 구상과 큰아들 알렉산더(사진 왼쪽)의 디자인으로 완성된 911은 포르쉐를 세계적인 스포츠카 브랜드로 만들어 주었다. 결국 포르쉐의 설립부터 첫 모델 356과 대표작 911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두 페리의 손에 이루어졌지만 유명한 아버지의 그늘에 오랫동안 가려져 있어야 했다. 페리 포르쉐는 1972년 포르쉐를 주식회사로 개편하면서 경영에서 물러났고, 이때 가족 모두가 회사를 떠났다. 페리는 1998년 3월 27일,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포르쉐 가문 사람들이 모두 회사를 떠나던 1972년 페리의 장남 페르디난트 알렉산더 포르쉐는 디자인회사 ‘포르쉐 디자인’을 세워 독립했다. 1935년생으로 애칭은 부치(Butzi). 911로 재능을 인정받은 부치는 독립 후에도 산업 디자이너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오리지널 브랜드의 시계, 선글라스, 지갑 등 패션 소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주된 업무는 역시 디자인 개발용역. 삼성 카메라 ECX-1과 LCD 모니터 싱크마스터 151P/171P, 후지 디지털 카메라 파인픽스 4800/6800 그리고 스바루 레거시 B4 블리첸 등이 포르쉐 디자인의 작품이다.

Flat 6

지금까지 911은 적지 않은 변화의 순간이 있었지만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는 전통도 있다. 바로 원형 램프와 2+2 시트 그리고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다. ‘Flat six’(수평대향 6기통)는 포르쉐와 911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을 만큼 절대적인 존재. 356이 비틀의 수형대향 4기통 엔진과 RR 레이아웃을 물려받은 영향으로 911은 RR과 수평대향 레이아웃을 자연스럽게 채용하게 되었다.
당시 포르쉐의 최고성능 엔진은 356 카레라에 얹었던 수평대향 4기통 OHV. 하지만 구조가 복잡해 생산성이나 가격 면에서 효율적이지 못했다. 치프 엔지니어 클라우스 폰 루커에 의해 진행된 신형 엔진 개발작업은 한스 트라마가 새로운 치프로 영입된 후 페르디난트 피에히(페르디난트 포르쉐의 외손자 겸 전 폭스바겐/아우디 그룹 회장)와 한스 메거(TAG-포르쉐 F1 엔진 개발) 등 젊은 엔지니어들의 참여로 활기를 띠었다. 타입 821이라 불리는 새로운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체인구동 SOHC와 드라이섬프 구성으로 양산형이 901/10으로 불렸고 1천991cc 배기량으로 130마력/17.8kg·m의 힘을 냈다.
가장 큰 변화는 97년 등장한 996에서였다. 30년 넘게 공랭식 엔진을 고집해 왔지만 전통적 구조로는 날로 높아지는 배기개스 규정 등 시장환경에 맞추기 힘들다는 판단에서였다. 복스터를 통해 한발 먼저 선보인 수랭식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3.4X의 배기량과 DOHC 헤드, 압축비 11.3으로 최고출력 330마력을 내고 레드라인이 7천300rpm으로 높아졌다. 지난해 등장한 최신형 997은 배기량이 3.6X로 늘어나 기본형이 325마력, 고성능 카레라S가 355마력을 낸다.

PCCB

어느 메이커보다도 레이싱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포르쉐는 여기서 축적한 기술을 양산차에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PCCB(Porsche Carbon Ceramic Brakes)도 그 중 하나. 양산차 최초의 카본-세라믹 브레이크 디스크다. 자동차가 고성능화되면서 더욱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타이어와 브레이크 성능이다. 엔진 성능이 비슷하다면 빠르고 강력한 제동이야말로 코너에서 라이벌을 추월하는데 더 없이 중요한 무기가 된다. 무게까지 줄일 수 있다면 스프링 하중량 경감으로 가속성능은 물론이고 서스펜션 반응성까지 높일 수 있어 일석이조. 포르쉐는 이를 위해 세라믹을 사용한 신소재 브레이크 PCCB를 완성했다. 초저압에서 1천700℃의 고온으로 제조되는 PCCB는 주철제 디스크에 비해 절반 이상 가벼우면서도 내열성이 뛰어나다. 대개 반복된 급제동으로 브레이크가 과열되면 제동력이 떨어지는 페이드 현상이 나타나지만 PCCB는 이런 현상이 거의 없다. 수퍼카 카레라 GT는 물론이고 911 터보에도 옵션으로 준비했고, 지난해 발표한 고성능형 터보S에는 기본으로 달린다.

turbo

레이싱카 917/10으로 터보차저에 관한 기술을 쌓은 포르쉐는 911 레이싱 버전 RSR에 터보를 더했다. 여기서 얻은 노하우를 투입한 첫 양산차가 1974년 가을 파리 오토살롱에서 발표된 930 터보. 레이스를 통해 얻어낸 다양한 기술을 911시리즈에 도입함으로써 카레라 RS의 뒤를 잇는 고성능 버전이 탄생했다.
엔진은 기본적으로 911용 자연흡기 2.7ℓ형과 동일하지만 높아진 성능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부분이 보강되었다. 크랭크 케이스는 마그네슘 합금에서 다소 무겁지만 강성이 좋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복귀했고, 신소재 나사가 사용되었다. 실린더는 니카실, 피스턴은 단조 제품으로 바뀌었고 캠샤프트는 3점 지지에서 4점 지지로 설계 변경되었다.
연료분사는 K-제트로닉으로 911 자연흡기에 비해 용량이 늘어났고, 연료펌프 2개를 직렬 연결해 압력도 높였다. 75년형 930/51 엔진은 최고출력 260마력, 최대토크 35kg·m를 냈다. 0.8kg/㎠의 낮은 과급압은 노킹현상을 막고 조작성과 내구성 확보를 위한 조치.
프로토타입은 930 터보였지만 양산형은 911 터보로 이름이 바뀌었고, 78년 배기량을 3.3ℓ로 키워 300마력을 얻었다. 베이스 모델이 993 시리즈로 바뀌면서 트윈 터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최고출력이 408마력으로 높아졌다. 고출력을 효과적으로 노면에서 전달하기 위해 구동방식도 4WD로 바꾸는 한편 레이스 출전을 위해 뒷바퀴굴림으로 개량한 GT2 버전도 함께 선보였다. 2000년에는 3.6ℓ 415마력, 지난해 등장한 터보S는 444마력에 0→시속 200km 가속시간이 13.6초로 줄어들었다.

Tiptronic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기계식 클러치가 달린 수동 변속기와 유체 컨버터를 단 자동 변속기는 용도와 성격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다. 고성능 혹은 좋은 연비를 위해서는 수동, 편한 운전을 원하면 성능과 연비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자동 변속기를 골랐다. 스포츠카 메이커 역시 대부분의 차에 수동 변속기를 달았고, 자동은 극히 한정된 모델에 사용했다.
하지만 포르쉐는 이런 상황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었다. 1990년 911(964)에 혁신적인 자동 변속기 팁트로닉을 옵션으로 준비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토크 컨버터가 달린 자동 변속기를 바탕으로 수동처럼 조작할 수 있게 한 팁트로닉은 편의성과 스포츠성이라는 상반된 요소를 조화시킨 기술로 큰 인기를 모았다.
H자 형태로 만든 시프트 게이트 왼쪽은 P, R, N, D, 3, 2, 1 순서의 일반적인 자동 모드. 오른쪽으로 옮기면 레버를 밀고 당겨 한 단씩 변속하는 시퀸셜 시프트 모드가 된다. 엔진 회전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한 변속되지 않으므로 수동 변속기와 비슷한 스포츠 주행이 가능해졌다. 포르쉐가 기획하고 ZF가 하드웨어, 보쉬가 제어장치를 담당한 팁트로닉은 95년 변속 스위치를 스티어링 스포크에 단 팁트로닉S로 발전했고, 이제 양산 포르쉐 상당수에 얹는 인기장비다. 911 터보까지 영역을 넓힌 팁트로닉은 변속기 시장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으며 미쓰비시 INVECS-Ⅱ와 혼다 S매틱, BMW 스텝트로닉, 크라이슬러 오토스틱 등 유사기술의 탄생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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