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시장 재도약의 해 되돌아본 카 라이프 20년(1984∼2003) ⑪ 2002
2004-11-12  |   15,678 읽음
2002년은 월드컵의 뜨거운 감동이 온 나라를 휘감았던 한해였다. 축구경기가 열린 경기장은 물론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붉은 옷을 입은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목 터져라 외쳤고, 이에 화답하듯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 신화를 창조했다.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물론 대표팀을 이끈 히딩크 감독도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월드컵의 감동은 자동차 관련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2002년 7월, 월드컵 때 보여준 국민화합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2002년 6월 20일까지의 도로교통법 위반자에 대해 벌점을 없애주는 대사면을 단행했다. 또한 집행중인 면허정지처분을 없던 일로 하고 면허가 이미 취소된 사람은 다시 딸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중앙선 침범, 음주운전, 각종 교통법규 위반 등으로 부과된 벌금이나 범칙금, 과태료 등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새 법인 GM대우, 의욕적으로 판매 시작
배기가스 규제 강화로 디젤차 허용 논란


지난 2001년 GM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던 대우차 채권단은 2002년 4월 GM과 신설 법인 설립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고, 뒤이어 10월 GM대우가 공식 출범했다. 닉 라일리 GM대우 사장은 10월 28일 GM대우 출범식에서 “대우차는 뛰어난 품질을 가지고도 대우 이미지와 회사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시장점유율이 낮았다”고 분석하고 몇 가지 비전을 내놓았다. 그는 GM대우차 성공을 위한 세 가지 전략으로 ①한국 시장에서의 입지 확보 ②세계 수준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자동차 디자인 개발 및 제조 ③GM그룹의 유통망, 브랜드 및 기술 이용 등을 내세웠다. GM대우는 출범 직후 L6 매그너스 2.5와 누비라 후속모델로 개발하던 J-200을 라세티라는 이름으로 선보이며 본격적인 시장공략에 나섰다.
배기가스 규제기준 강화로 인한 디젤차 생산 허용 논란은 일년 내내 계속되었다. 환경부는 2000년 7월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2002년 7월부터 배기가스 규제기준을 강화할 예정이었다. 새로운 시행규칙에 따르면 현대 싼타페·트라제 XG, 기아 카렌스 등 이전의 ‘7인승 다목적 승합차’는 ‘승용’으로 분류되어 휘발유 엔진을 얹은 승용 세단 수준으로 배기가스를 낮추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었다. 그러나 쌍용 무쏘·렉스턴, 현대 테라칸·갤로퍼, 기아 쏘렌토·스포티지는 프레임을 가진 4WD로 승용차와 다르다는 점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현대와 기아는 환경부가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한 2000년 7월 이전에 이미 개발한 차들에 대해서 강화된 배출가스 기준 적용을 미뤄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기아가 2002년 3월말 카렌스Ⅱ 디젤을 선보이자 메이커와 환경부의 갈등은 더욱 커졌다. 기아가 선보인 카렌스Ⅱ 디젤은 7월부터 적용할 배기가스 규제치를 넘어선 디젤 엔진을 얹고 있었다. 또한 랜드로버코리아와 주한 영국대사관도 2002년 5월 “랜드로버의 SUV 디스커버리와 프리랜더가 7월부터 승용차로 분류되어 팔 수 없게 되었다”며 외교통상부에 이의를 제기했다.
반발이 거세자 환경부는 5월 14일 디젤 엔진을 얹을 수 있는 다목적차의 기준을 ‘프레임이 있고, 4WD 또는 차동제한장치(LSD)가 있는 차’에서 ‘프레임, 4WD, LSD 가운데 하나가 있는 차’로 바꾸기로 했다. 새로운 기준에 따라 현대 싼타페·트라제 XG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프리랜더는 계속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환경운동연합이 중심이 된 39개 시민·환경단체가 ‘디젤차의 배기가스를 엄격하게 규제하라’며 반발했다. 이후 정부와 메이커, 시민단체 대표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경유차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위원회’가 만들어져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6월 14일 1차 합의서가 만들어졌다. 합의서는 ‘업체마다 배출할 수 있는 배기가스 총량을 허용하고, 이를 벗어날 때만 문제삼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현대는 싼타페를 계속 생산하는 대신 트라제 XG 7인승을 7월 1일부터 생산 중단하고, 기아는 카렌스Ⅱ를 연말까지 생산하되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중단하기로 했다. 또 25만여 대에 달하는 구형 디젤차의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줄이기 위해 기아 스포티지와 레토나, 현대 갤로퍼 등 세 모델을 일찍 단종하기로 합의했다.

무쏘 스포츠, 데뷔 초기 부처간 이견으로 혼란
제조물책임법으로 소비자의 권익 크게 높아져


9월 6일 국내 첫 스포츠 유틸리트 트럭(SUT)으로 선보인 쌍용 무쏘 스포츠를 둘러싼 형식승인 논란도 2002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무쏘 스포츠는 새차발표 직후 계약대수가 1만9천여 대에 이를 만큼 큰 관심을 모았지만, 9월 27일 출고가 시작되자 국세청과 재정경제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무쏘 스포츠는 이미 건설교통부로부터 화물차로 형식승인을 받았지만 재정경제부가 “승용석이 화물칸보다 크기 때문에 사람 수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차”라는 이유를 들어 무쏘 스포츠를 승용차로 판정했다. 결국 무쏘 스포츠는 자동차관리법상 화물차(건설교통부)로 분류되어 자동차세와 등록세는 화물차 기준으로 내고, 차를 살 때는 승용차 특소세를 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무쏘 스포츠로 시작된 SUT의 형식승인 문제는 미국과의 통상마찰로 번질 조짐까지 보였다. 무쏘 스포츠보다 조금 늦은 2002년 11월 5인승 픽업트럭 다코타를 선보인 크라이슬러 역시 SUT의 특소세 면제가 절실하던 참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외교통상부에 특소세 면제를 요청한데 이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되는 ‘한·미 통상회의’에서는 특소세 문제를 정식 의제로 삼기로 했다. 다급해진 재정경제부는 결국 11월 22일 무쏘 스포츠를 다시금 화물차로 분류했고, 정부의 결정이 혼선을 빗는 동안 무쏘 스포츠를 산 1천782명은 1인당 평균 350만 원씩 특소세를 더 내야 했다.
한편 2000년 9월 공식 출범한 르노삼성은 출범 2년만인 2002년 월 판매대수 1만 대를 넘어섰다. 또한 SM5는 월 평균 7천 대 이상 팔리면서 모델별 내수시장 점유율에서 1위인 현대 뉴 EF 쏘나타(8.3%)에 이어 7.3%를 차지하는 인기를 얻었다. 특히 2002년 6월 SM520의 판매대수는 8천644대를 기록해 6천419대에 그친 현대 뉴 EF 쏘나타를 추월, 중형차시장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 ‘제조물책임법’의 시행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제조물책임법은 당시 전세계 30여 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소비자 보호법 가운데 하나로, 소비자가 물건을 산 뒤 그 제품의 결함 때문에 생명이나 신체 또는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을 때 그 제품을 제조 또는 가공했거나 수입한 업체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따라서 자동차의 결함으로 일어난 교통사고 운전자는 피해 상황만 입증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02년에는 수입차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수입차 판매대수가 10월말 이미 1만 대를 넘어섰고, 판매액도 1조 원을 돌파했다. BMW와 렉서스가 나란히 판매 1, 2위를 차지했고, 특히 1대 값이 1억5천950만 원인 BMW 745Li는 10월말 656대나 팔려 전체 판매액 1천46억 원을 기록했다. 단일 모델 판매로는 처음으로 1천억 원을 넘어선 것이다.
국제통일재단에 속한 평화자동차는 2002년 4월 북한 남포공단에 자동차공장을 세워 남북 화해 분위기를 북돋웠다. 평화자동차는 남포공장에서 피아트 시에나를 조립생산해 북한의 관용차 등으로 판매한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2002년에는 8월말까지 한시적으로 내린 특소세 여파로 내수판매가 늘어났고, 경찰청은 2003년부터 신고보상금제 폐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국내 첫 국제규격 모터스포츠 경기장인 ‘태백준용서키트’가 문을 열어 국내 모터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했고, 스카니아·볼보 트럭에 이어 독일 만(MAN) 트럭이 국내에 상륙해 본격적인 수입트럭 경쟁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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