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일궈낸 미국의 자존심 - Duesenberg Model J
2009-06-18  |   19,384 읽음

자동차의 황금기였던 1930년대, 듀센버그는 찬란한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상징하는 언어 중의 하나였다. 당시 유럽과 미국은 자동차 춘추시대로 불릴 만큼 많은 메이커에서 수많은 차들을 선보였다. 이 중 듀센버그는 혁신적인 기술과 화려한 디자인으로 유럽의 명차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모델 J를 내세워 반향을 불러 모았던 미국 자동차 메이커다.

듀센버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 아이오와로 이민을 온 프레드, 어거스트 듀센버그(Frede·August Duesenberg) 형제가 만든 자동차 회사다. 경기용 자전거로 사업을 시작한 듀센버그 형제는 탁월한 기술로 유명세를 탔다. 이에 힘입어 1905년 4기통 자동차 엔진을 만들어 메이슨 자동차 회사(Mason Motor Car Company)를 설립했다.

한편 기술을 인정받고 싶었던 프레드 듀센버그는 기술력을 뽐내기 위해 자동차경주를 이용했다. 기통수는 적었지만 고출력을 자랑한 경주차는 여러 차례 우승으로 4기통 엔진의 진가를 알렸고, 이는 듀센버그가 자동차 메이커로 성장하는 디딤돌이 됐다. 이를 계기로 4기통 엔진이 큰 인기를 끌자 듀센버그 형제는 기존 엔진 공장을 팔고 본격적으로 고급차를 만들기로 했다.

혁신적인 기술의 최고급 미국차
듀센버그 형제는 뉴저지의 뉴어크(Newark)에서 직렬 8기통 OHC 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1919년 자동차경주의 메카인 인디애나폴리스로 본거지를 옮기고, 그들의 이름을 딴 듀센버그 자동차 회사(Duesenberg Motor Corporation)를 세웠다. 이듬해 11월, 뉴욕에서 열린 오토쇼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모델 A를 발표했다. 이 차는 직렬 8기통 4.3L 100마력 엔진을 얹었다. 미국차 처음으로 오버헤드 캠샤프트(OHC), 유압 브레이크 등 첨단기술을 썼고, 최고시속은 136km에 이르렀다. 당시 미국의 고급차인 패커드와 피어스 애로보다 비쌌던 모델 A는 1926년까지 600대가 생산됐다.

1921년에는 지미 머피가 모델 A로 미국차 처음으로 프랑스 그랑프리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1924년과 1925년에는 인디 500 경주를 2연패하며 듀센버그의 뛰어난 내구성과 성능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러나 순조롭게 팔리던 모델 A는 디자인과 성능의 변화가 없는 데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8기통 엔진과 네바퀴 유압 브레이크가 일반화되면서 판매가 급격히 줄어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된다.

결국 듀센버그는 회사 창립 6년 만인 1926년, 고급차를 만들고 싶어 했던 오번(Auburn) 자동차 회사에 100만 달러에 팔리고 만다. 그런데 오번에게 합병된 것이 듀센버그 형제에게 호기가 됐다.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오로지 자동차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됐기 때문. 듀센버그 형제의 뛰어난 기술을 인정한 오번의 에렛 코드 사장은 세계에서 제일 호화스러운 차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 결과 2년 뒤 모델 J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도면과 부품 번호 및 이름까지 온통 J로 명명된 이 차는 1929년 뉴욕모터쇼에서 등장했다. 직렬 8기통 DOHC 6.9L 265마력으로 시속 186km를 자랑한 모델 J는 경쟁차보다 출력이 100마력이나 높았고 값 또한 롤스로이스에 버금갔다.

1929년 발표된 모델 J는 1932년 모델 SJ로 그 명성을 이어갔다. 모델 J에 수퍼차저를 더한 320마력 엔진을 얹어 최고시속이 무려 210km에 이른 이 차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빠른 차로 기록됐다.

모델 SJ는 성능만큼이나 디자인도 아름다웠다. 보닛 옆으로 돌출된 배기 다기관, 크롬으로 장식한 프론트 그릴, 쭉 뻗은 차체는 최고급차의 위용을 넘어 예술품의 경지에 이렀다. 1935년 9월에 레이서 압 잰킨스가 보내빌에서 24시간 동안 평균시속 216.6km(최고시속 253.6km)로 달린 일화는 유명하다. 

모델 SJ는 두 종류의 차체에 무게가 무려 2.5톤, 섀시 가격만 1만1,1750달러(약 1,400만 원)에 이르렀다. 차체를 합치면 3만 달러(약 3,000만 원)가 넘었다. 계기판에는 속도계, 적산계, 고도계 등이 있었고 연료잔량 및 엔진오일 교환시기를 알려 주기도 했다. 또 속도와 거리에 따라 광도를 변화시켜 주는 자동 헤드램프까지 더했다. 하지만 듀센버그는 시대를 너무 앞섰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화되지 않은 신기술을 과감히 써, 표준형 이외에 쿠페와 로드스터를 선보였다. 이후 모델 J와 SJ는 벨기에와 독일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다양한 모습으로 나왔다.

1930년대 헐리웃 스타들의 인기를 가늠하는 것이 바로 듀센버그를 소유하고 있느냐였다. 당시 최고 스타였던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 그레타 가르보, 메이 웨스트가 모두 듀센버그의 오너였다. 스페인 왕과 유고슬라비아 여왕, 루마니아 왕자를 비롯해 신문왕 윌리엄 허스트, 사업가 하워드 휴즈도 듀센버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1936년 모회사 오번이 파산을 선고하면서 듀센버그는 17년 동안 1,000여 대의 생산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듀센버그는 아직까지 미국인의 가슴 속에 1930년대를 풍미했던 명차로 남아 있고 미국차의 자존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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