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금을 울리는 리얼 인생역전 스토리 - 자동차판 신데렐라
2009-04-07  |   15,728 읽음

안방극장을 강타하는 드라마 스토리는 뻔하다. 대부분 나쁜 놈이 좋은 놈을 괴롭히다가 전세역전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약간의 양념을 넣어 맛깔스런 스토리를 완성한다. 좋은 놈의 통쾌한 복수를 돕는 ‘실장님’은 신데렐라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의 대리인으로 이야기의 큰 축이다. 지어낸 것이 아니라 현실에 그대로 녹아든 이야기라면 감동은 배가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실장님(든든한 모기업)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자동차 회사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람보르기니
이태리의 열정을 사랑한 페르디난트 피에히

“당신은 차를 모르니 트랙터나 모시오.” 엔초 페라리의 이 빈정거림이 오늘의 람보르기니를 있게 했다. 람보르기니의 삶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1916년 이태리 북부의 농가에서 태어나 기계 만드는 것을 즐겼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볼로냐 기술학교를 마치고 2차대전 때 정비병으로 복무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전쟁이 끝나자 망가진 군용차를 이용해 트랙터를 만들어 팔면서 재미를 보았고, 1954년 무렵에는 이태리에서 가장 큰 트랙터 회사의 주인이 되었다.  

기계라면 모든 것을 즐겼던 람보르기니는 당시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페라리 모델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250GT를 즐겨 탔는데 종종 클러치가 말썽을 부렸다. 매니아의 한 사람으로 이를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직접 엔초 페라리(페라리 설립자)를 찾았으나 트랙터나 만들라는 소리를 듣자 페라리를 능가하는 수퍼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페라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람보르기니의 이런 말을 곧이듣지 않았고 심지어 미친 사람이라는 핀잔까지 주었다. 하지만 람보르기니는 1962년부터 수퍼카 프로젝트를 차근히 진행해 1963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딴 ‘오토모빌리 페루치오 람보르기니’(Automobili Ferrucio Lamborghini)를 설립했다. 페라리를 뛰어넘어야 할 숙명을 타고 났기에 그의 첫 작품인 350GTV는 V12 3.5L 360마력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를 썼다. 4단 수동변속기와 V12 3.3L 엔진을 얹었던 페라리의 기함 275GT를 능가하는 성능이었다.

이듬해 등장한 양산차 350GT는 발표와 동시에 2년치 주문이 밀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람보르기니는 350GT의 성공을 기회삼아 매년 새 모델을 내놓는 등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도 1966년 발표된 미우라 P400과 1971년 등장한 카운타크(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양산은 1973년부터 시작되었다)는 페라리의 콧대를 꺾는 것은 물론이고 20세기 최고의 자동차로 꼽힐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개발비는 부메랑이 되어 회사 재정을 바닥냈고 이때부터 시련이 닥쳤다. 1972년 스위스의 사업가 조르즈 앙리 로세띠를 시작으로 패트릭 밈람(1980년), 크라이슬러(1987년), 메가텍(1994년), 마이콤(1995년)을 거치는 동안 왕성했던 열정은 사라지고 디아블로를 빼곤 변변한 모델을 내놓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시련을 겪던 람보르기니에게 1998년 기회가 찾아왔다. 폭스바겐의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이 구호의 손길을 내민 것. 무모한 구색 갖추기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보다 강력한 브랜드파워가 필요했던 피에히에게 람보르기니의 전통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피에히는 람보르기니를 폭스바겐 산하 아우디에 통합하고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희미해진 오리지널의 색깔을 찾도록 요구했다.

그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은 람보르기니는 연구개발팀을 2배로 늘려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페라리를 향해 다시 총구를 겨눈 람보르기니는 그 첫 번째 성과물인 디아블로 GTR을 1999년 볼로냐모터쇼에 선보였다. 피에히는 트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무너진 람보르기니의 자존심을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디아블로 GTR은 서킷 전용 모델이었다.

람보르기니의 르네상스는 카운타크의 다자인을 바탕으로 독일의 장인정신이 결합된 무르시엘라고의 등장부터 시작된다. V12 6.3L 엔진으로 시속 330km를 돌파한 무르시엘라고는 미우라, 카운타크, 디아블로를 잇는 람보르기니의 기함이었다. 여기에 V8 리틀 페라리를 겨냥한 가야르도가 투입되면서 페라리와의 수퍼카 대결은 더욱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현재 람보르기니의 라인업은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무르시엘라고 LP640이 기함의 자리에 우뚝 섰고 스페셜 모델 레벤톤도 수퍼카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야르도는 스파이더와 쿠페로 새로운 고객을 꾸준히 람보르기니로 안내하고 있다. 비록, 포르쉐의 폭스바겐 지분 참여와 경기침체 등 최근의 상황이 람보르기니에게 이롭지만은 않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수퍼카 메이커에서 흔한 일이다.

미니
꼬마, 숙녀의 향기를 품다

오리지널 미니는 1950년대 불어 닥친 석유파동으로 탄생했다. 석유파동 이전 높은 인기를 누렸던 영국차들은 1956년 기름값이 치솟자 독일제 소형차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위기감을 느낀 BMC 레오나드 로드 회장은 알렉 이시고니스와 존 쿠퍼, 알렉스 몰트를 중심으로 프로젝트팀을 꾸려 경쟁력 있는 소형차 만들기에 나섰다.

작은 차체, 넓은 실내를 컨셉트로 앞바퀴굴림 방식에 가로배치 직렬 엔진을 얹어 1959년 8월 완성차를 내놓았다. 초기에는 BMC 산하의 오스틴 세븐과 모리스 마이너로 팔리다가 1969년부터 ‘미니’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독립했다. 미니는 길이 3,050mm의 깜찍한 차체에 4명의 어른과 짐을 실을 수 있는 실내공간을 확보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나 모기업의 경영난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1975년 국유화되어 ‘브리티시 레이랜드’(BL)로 불리다가 1979년 BL공사로, 1986년에는 로버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데 이어 1988년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에 흡수되는 시련을 겪었다.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는 1994년 다시 BMW에 인수되었다. 럭셔리카 브랜드로 활약하던 BMW는 수익성을 높이고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쟁력 있는 소형차 브랜드가 절실했다. 미니는 BMW가 찾던 유리공주와 같은 존재였다.

미니를 입양한 BMW는 클래식 미니의 기본 컨셉트를 유지하면서 BMW의 고급스러움을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초기 개발의 중심에는 로버 기술진이 있었지만 BMW가 로버를 영국 금융그룹에 떠넘기면서 거의 개발이 완성된

뉴 미니를 독일식으로 새롭게 바꿨다. 오리지널 미니와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사이즈를 키우고 직렬 4기통 1.6L 엔진 등 세련된 유닛으로 무장했지만 스타일은 레트로풍 미니 그대로였다.

다양한 보디 및 인테리어 색상과 옵션을 두어 꾸미며 탈 수 있는 맛도 잊지 않았다. BMW의 풍부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등에 업은 미니는 해치백을 시작으로 컨버터블과 클럽맨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매년 20만 대 가까이 판매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다치아
파리지엔느로 거듭난 시골 촌뜨기

다치아는 1966년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 국영 자동차 회사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르노의 12s를 라이선스로 조립 생산해 자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1968~1972년 르노 8s를 다치아 1100으로 개조해 4만4,000대 생산했다. 몇몇 모델은 다치아 1100S로 생산되어 모터스포츠에 참가하거나 경찰차로 쓰였다. 1969년부터 생산한 다치아 1300은 여러 가지 개선을 거듭하면서 34년간 250만 대 이상 판매되어 루마니아의 도로 위를 활보하고 다녔다.

다치아의 시련은 정치적인 영향이 컸다. 1989년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민주화혁명이 일어나 큰 혼란을 겪었고 정치적인 변화는 다치아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공산국가시절 별다른 경쟁자 없이 루마니아 내수 시장을 독식했던 다치아였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마냥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결국, 경쟁력을 높이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루마니아 정부는 다치아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했고, 프랑스 르노가 1998년 다치아의 주식 51%를 매입해 끌어안았다. 르노의 다치아 인수는 유럽 자동차 부품업체들을 루마니아로 끌어들여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르노는 다치아에 묻어 있는 공산국가 시절의 잔재를 떨쳐 버리고 효과적인 생산라인 정비를 위해 투자(2000~2004년 동안 4억8,900만 유로, 약 9,400억 원)를 아끼지 않았다. 2000년 노바(Nova)에 르노 클리오 직렬 4기통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올리고 에어컨과 알로이 휠 등 편의장비를 보강한 수퍼노바를 선보였다. 르노의 지원으로 다치아는 2002년 내수 시장 점유율 50%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4년 등장한 로간(Logan)은 다치아 1300 이후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지금까지 다치아의 베스트셀링카로 활약하고 있다. 이전의 모델들이 루마니아 내수용에 머물거나 동유럽으로 수출 지역이 제한된 것에 반해 로간은 서유럽과 동남아시아 등 전세계 시장을 무대로 뛰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르노 로고를 붙이고 판매되기도 한다. 세단뿐만 아니라 왜건, 밴, 픽업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서유럽 메이커들이 다가설 수 없는 낮은 값과 뛰어난 품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지난 제네바모터쇼에 출품한 더스터(Duster) 컨셉트카는 SUV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는 증거다. 다치아는 루마니아인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로 떠올랐고 르노 그룹 내에서도 전략적 투자회사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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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품에서 태어난 람보르기니 가야르도르노의 신데렐라가 된 다치아 로간40년 터울의 미니 형제다치아 산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