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혼다정신’의 상징 - Honda S2000
2009-03-13  |   18,228 읽음

“즐거움을 주는 이동수단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사명입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혼다가 주장해 온 말이다. 같은 차를 만들어도 ‘재미’라는 요소를 빼면 혼다차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최근 혼다의 움직임에서 불안한 기운이 엿보인다. 미드십 수퍼카 NSX 후속 모델의 양산을 저울질하고 F1 레이스에서 발을 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려운 경제여건을 핑계로 삼기에는 그동안 혼다가 쌓아 놓은 이미지가 너무 아쉽다.

1948년 설립된 혼다는 모터사이클로 출발해 1963년 S500과 T360을 만들며 자동차 제작에 발을 들였다. 무엇보다 기술을 중시한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모터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뛰어난 혼다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1965년 F1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고 맥라렌과 짝을 이룬 1988년에는 총 16전 중에 15승을 쓸어 담았다.    

레이스에서 얻은 경험은 고스란히 양산차 개발로 이어졌다.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등장한 혼다 S2000은 NSX와 더불어 혼다정신이 가장 잘 반영된 모델 중 하나이다. 혼다 수뇌진이 S2000 엔지니어들에게 요구한 기본은 소이치로의 그것과 같았지만 젊은층을 겨냥해 값을 낮추고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완성해야 했다.

S2000의 출발은 1995년 도쿄모터쇼에 등장한 SSM 컨셉트카였다.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양산작업에 들어갔고 그 핵심에 수퍼카 NSX의 개발주역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1998년 9월, 혼다 창립 50주년 기념 이벤트에 프로토타입을 공개해 그 의미를 부여했고 1999년 4월부터 판매되었다.

S2000의 특징은 가벼움이다. 핸들링을 중시하는 영국 로터스와 비슷한 컨셉트이지만 하드코어 지향적인 로터스보다는 실용적이다. 당시 유럽의 많은 스포츠카들은 섀시 보강으로 무거워진 차체를 이끌기 위해 대배기량의 강력한 엔진을 얹었다. 당연히 값도 비쌌고 일반인들이 선뜻 고르기에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S500의 전통을 잇기 위해 오픈 모델로 등장한 S2000이지만 섀시 강성은 어떤 모델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견고했다. ‘하이 X-본 프레임’으로 불리는 독특한 섀시구조 덕분이었다.

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2.0L 자연흡기(NA)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의 조합. 수수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잘 달리기 위한 열정이 담겨 있다. 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JTCC)에 참가했던 어코드 레이싱카의 H22A에 바탕을 둔 엔진(F20C)은 최고출력 250마력을 냈다. L당 125마력에 이르는 출력은 지금까지도 직렬 4기통 엔진의 신화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어×스트로크가 87.0×84.0mm인 숏스트로크 엔진으로 9,000rpm까지 쓸 수 있는 고회전 유닛이다. 특히 6,000rpm 이후부터 작동되는 브이텍(VTEC: 가변밸브 타이밍&리프트 기구) 덕분에 고회전에서 뛰어난 응답성을 보여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엔진 출력을 뒷바퀴에 전달하는 역할은 6단 수동변속기가 맡았다. 스포티함을 떨어뜨리는 자동변속기는 넣지 않았다. 고회전을 감당하기 위해 강화 클러치를 사용했고 명민한 시프트 감각을 지녔다. 

직렬 4기통 엔진을 얹은 차로서는 노즈의 길이가 지나치게 긴 것은 앞뒤 무게비율을 50:50으로 맞추기 위함이었다. 앞축 뒤에 작은 엔진을 놓아 무게배분을 효과적으로 얻었을 뿐만 아니라, 롱노즈 숏데크의 클래식 컨버터블 분위기까지 만들었다. 공간 활용성보다는 달리기 성능을 위해 태어난 만큼 앞뒤 서스펜션은 모두 레이싱카에 많이 쓰이는 더블 위시본 타입이었다. 

2000년 가변기어스티어링(VGS) 시스템을 도입한 타입Ⅴ가 추가되었고, 2001년 리어 스크린을 유리로 바꾸고 서스펜션과 엔진을 개선한 첫 마이너체인지 모델이 등장했다. 2003년 헤드램프 디자인과 LED 테일램프를 달고 등장한 두 번째 마이너체인지 모델은 서스펜션 세팅을 달리하고 17인치 휠을 달아 코너링 성능을 높였다. 또 6단 수동변속기의 싱크로나이저를 카본(2~6단)으로 바꿔 변속감을 개선했다.

미국 소비자 요구 반영한 AP2
2005년 일본 시장에 엔진 배기량을 2.2L로 키운 AP2 모델이 등장했다. AP2의 엔진(F22C)은 보어를 그대로 두고 스트로크를 90.7mm로 늘였다. 배기량이 커졌지만 최고출력은 오히려 242마력으로 내려갔다. 대신 중저속 토크를 강화해 6,500~7,500rpm에서 최대토크 22.5kg·m를 냈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소비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매니아들은 AP1의 샤프한 고회전 응답성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2007년 4월 뉴욕오토쇼에 하드코어 버전 S2000 CR 프로토타입이 전시되었다. 주말 트랙데이를 즐기는 매니아를 위해 등장한 CR은 ‘Club Racer’(클럽 레이서)의 약자로 무게를 40kg이나 덜어냈다. 서스펜션은 더욱 단단해졌고 리어 스포일러를 포함해 전용 에어로파츠로 무장했다. 공력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소프트톱 대신 탈착식 알루미늄 하드톱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2007년 10월, AP2의 마이너체인지 모델이 등장했고 고속 안정성과 스티어링 반응을 개선한 타입 S가 일본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서킷주행에 초점을 맞춘 CR과 달리 타입 S는 와인딩 로드의 달리기 성능을 극대화했다.

그러나 오직 ‘기술의 혼다’를 외치며 한길을 걸어온 S2000의 진화는 2009년 막을 내린다. 2009년 1월 17일, 혼다가 S2000의 단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6월을 끝으로 북미에서 판매되지 않고 일본에서는 4월까지만 주문을 받는다. 유럽 시장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사라질 예정이다. 경기침체 탓에 후속 모델에 대한 기약도 없다.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 자동차 전문지들은 혼다의 마지막 뒷바퀴굴림 스포츠카 S2000의 단종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세계에서 고작 11만 대가 판매된 모델에 이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2004년형 S2000 AP2(미국 버전) 오너 승완철(학생, 28)
2004년 S2000을 손에 넣었다. 당시 국내에는 2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내고 9,000rpm까지 쓰며 뛰어난 밸런스를 지닌 모델이 흔치 않았다. 비록 실내공간이 좁고 편의장비가 부족하지만 바이크처럼 높은 회전수를 유지하면서 코너링을 타고 넘는 맛은 아직까지 경쟁 모델을 찾기 힘들다. S2000의 단종 소식을 들으니 매니아로서 안타깝다. 전투력을 더 높인 타입 R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렸기 때문이다. 혼다 소이치로가 내세웠던 ‘본 투 레이싱’(Born to racing)의 신념으로 꼭 돌아오길 바란다.

2003년형 S2000 AP1(미국 버전) 수퍼차저 오너 전우진(자영업, 33)
1999년 제대 후 첫차로 기아 엘란을 사면서 경량 로드스터의 매력에 푹 빠져 나름의 드림카를 그려봤다. 혼다 S2000은 그런 나의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다. 2005년 꿈에 그리던 S2000을 손에 넣었다. 빼어난 달리기 성능으로 재미를 주었지만 사고로 떠나보내고 2008년 6월 AP1 수퍼차저 모델을 중고로 구입해 지금까지 타고 있다. 경제침체로 S2000이 단종된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혼다 모델 중에 뒷바퀴굴림 스포츠카는 없지 않은가. 기술의 혼다를 증명해주는 모델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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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 위주의 세팅으로 각종 스위치들을 스티어링 휠 바로 옆에 붙였다어코드 레이싱카의 H22A 엔진을 베이스로 개발한 S2000의 2.0L F20C 엔진. 최고출력 250마력에 회전한계가 9,000rpm이다S2000의 모태가 된 1963년형 S500 컨버터블2004년형 S2000 AP2(미국 버전) 오너 승완철(학생, 28)2003년형 S2000 AP1(미국 버전) 수퍼차저 오너 전우진(자영업,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