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SSIP - 더미 가족
2009-04-06  |   13,623 읽음
사람들은 우리를 더미(dummy)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옷가게에 있는 마네킹 같이 생겼어요. 겉은 사람의 피부 대신 고무로 씌워져 있어요. 머리는 두개골처럼 단단한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고 머리카락은 없지요. 나중에 우리가 하는 일을 들려주면 머리카락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예요. 고무조직 안에는 금속으로 만든 뼈가 있어요. 사람처럼 탄성을 갖기 위해서죠. 사람은 신경이 있어 감각을 느끼지만 우리에게는 수많은 센서가 붙어 있지요. 그래서 사람보다 더 예민한 감각을 지녔답니다. 가끔 몸에 붙은 센서 때문에 거추장스럽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뗄 수 없어요.

아 참, 우리 가족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더미 가족의 가장 ‘하이브리드Ⅲ’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어요. 몸무게 75kg, 키 174cm의 남성 어른 더미입니다. 제 사랑스러운 아내는 키 150cm, 몸무게 47kg의 아담한 체격을 지녔어요. 우리 부부는 정면충돌용이라는 모임에서 처음 만나 3살과 6살 난 두 아이를 두었어요. 아내의 친구 중에는 현재 임신을 한 친구도 있다고 하네요.

지난주 월요일, 우리 가족은 자동차 충돌시험을 위해 모였어요. 하나의 자동차가 탄생하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출동시험을 거치는데 우리 가족이 그걸 대신하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와 고마움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있기 전에는 죽은 사람이나 돼지 등을 차안에 태워 충돌시험을 했다는 이야기를 할머니(하이브리드Ⅰ)한테 들은 적이 있어요. 좀 비인간적인 방법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조금이라도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니까요.

우리 조상이 처음 사람들 앞에 나선 것은 1945년이에요. 미국 공군에서 전투기의 탈출용 의자를 만들었는데 그때 우리가 사람보다 먼저 조종석에 앉아 하늘로 튀어 올랐어요. 그 이후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우리를 대량으로 사들여 새차를 개발하는 데 이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본관은 미국과 네덜란드 두 곳으로 나뉘어요. 네덜란드 출신은 주로 유럽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고, 저 같은 미국 출신은 세계 각국에 있는 자동차 연구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답니다.

제 몸값이 얼마냐구요? 생긴 건 이래도 인기 영화배우 부럽지 않은 몸값을 자랑한답니다. 저 같은 어른 더미는 1억~2억 원이고요. 우리 애들은 크기가 작아 우리의 반값 정도지요.

다시 충돌시험을 하나 봐요. 얼른 가 봐야겠네요. 오전에 했던 시험에서 목을 다쳐서 부품을 교환한 탓인지 조금 어색해요. 이렇듯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열심히 충돌시험을 하며 살아갈 테니 나중에 새차 나오면 우리를 믿고 안전하게 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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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의 자동차 개발 연구소에는 양한 종류의 더미들이다.이들은 충돌 시험 때 사람을 대신해 차에 오른다성인 남자 더미를 비롯해 다양한 크기와 모습의 더미가 있다. 사진은 아우디 A4 개발 과정에서 활약한 더미 4인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