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스포츠카의 첫 신호탄 - Jaguar SS 100
2009-01-19  |   11,851 읽음

재규어의 역사는 창업자 윌리엄 라이언즈(William Lyons)가 모터사이클 제작사인 ‘스왈로우 사이드카’(Swallow Sidecar)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후 자체 생산한 차체를 오스틴 세븐에 얹어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으로 자동차 생산에 뛰어들었다.

1931년은 재규어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해였다. 1931년 런던모터쇼에 소개된 SS I은 벤틀리를 닮았지만 값은 3분의 1 수준이었다. 1935년부터는 재규어라는 이름을 단 세단과 스포츠카를 선보인 이래 특유의 기품과 우아함, 힘과 민첩함이 어우러져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뛰어난 엔지니어와의 만남
1931년 7월 홍보에 능란한 라이언즈는 재규어 SS가 나오기 전 사전 광고를 냈다. ‘기다리십시오! 곧 SS가 나옵니다. 두 가지 모델로 나오는 SS는 운전자와 딜러를 모두 감동시킬 새로운 차의 이름입니다. 이 차는 완전히 새롭고 남다르고 우수합니다.’

약속했던 대로 1931년 런던모터쇼에서 SS I 쿠페와 SSⅡ 쿠페가 등장해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SS의 차체는 낮았고 보닛은 길었다. 두 모델은 1,000파운드짜리 벤틀리처럼 보였지만 놀랍게도 310파운드에 불과했다. 이러한 라이언즈의 마케팅과 저렴한 값으로 SS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때부터 라이언즈는 스포츠성을 강조해 가능한 한 무게중심을 낮게 두는 데 집중했다.

1933년에는 SSI을 보다 실용적으로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설계를 변경했다. 트레드와 휠베이스를 늘여 뒷좌석에도 2명이 탈 수 있는 세단을 선보였고, 같은 해 7월 SSI 투어러가 쿠페 라인업에 추가됐다. 투어러는 SS의 첫 오픈카이자 자동차경주에 처음 출전한 모델로 기록된다. 당시 3대의 투어러로 구성된 모터스포츠팀은 유럽대륙의 알파인 트라이얼(Alpine Trial)에 도전해 이듬해 단체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SS II도 이해 말 큰 변화를 겪는다. 트레드를 늘인 전용 섀시가 개발됐고, SS I의 새로운 스타일을 따라 앞모습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1934년에는 새로운 모습의 세단을 추가했다. 4라이트(4윈도) 세단으로 알려진 이 모델은 뒷좌석 탑승객을 위해 실용성에 중점을 둬 설계됐다. 이해 창업 파트너인 웜슬리(Walmsley)와 결별한 라이언즈는 차의 기계적 성능을 높이는 데 더욱 매진했다. 실린더 헤드 디자인 전문가이며 유명한 엔지니어링 컨설턴트인 해리 웨스레이크(Harry Weslake)를 영입한 데 이어, 엔지니어링 부서를 만들어 젊고 유능한 윌리엄 헤인즈(William Heynes)를 수석 엔지니어로 앉혔다. 헤인즈는 이후 35년 간 재규어의 핵심 엔지니어로 실력을 발휘했다.

1935년에는 SS I 에어라인 세단을 선보였다. 이 차는 라이언즈의 취향은 아니었지만 최신 스타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3월 또 하나의 모델 SS I 드롭헤드 쿠페가 나왔다. 드롭헤드 쿠페는 언뜻 보기에는 쿠페와 비슷하지만, 톱을 트렁크에 집어넣을 수 있어 개성 넘치는 모습이었다.

라이언즈가 영입한 웨스레이크와 헤인즈의 노력으로 드디어 SS 90이 탄생했다. SS 90은 뛰어난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2.7L 사이드 밸브 엔진은 아름다운 외관만큼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SS 90의 후속 모델인 SS 100에 이르러 이들의 진가는 빛을 발한다. SS 100은 해리 웨스레이크가 튜닝한 스탠리사의 직렬 6기통 2.7L OHV 엔진과 윌리엄 라이언즈가 직접 디자인한 보디를 얹었다. 최고시속 100마일(시속 약 160km)을 넘으려는 의지를 담아 이름을  SS 100이라 지었지만 실제 최고시속은 100마일에 미치지 못했다. 이에 1938년 실내를 넓히고 더욱 단단한 섀시를 얹은 신형 SS 100을 선보였다. 3.5L 125마력 엔진을 얹은 SS 100은 0→시속 97km 가속 10.5초, 최고시속 160km를 넘어섰다. 재규어는 이 차로 일약 스포츠카 메이커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36년 국제 알파인 트라이얼(International Alpine Trials)에서 자동차 전문기자 톰 윈스텀(Tom Wisdom)이 그의 아내와 함께 SS 100을 운전해 우승을 차지했다. ‘올드 넘버 8’이라고 알려진
SS 100은 브룩랜즈 코스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1년 뒤에는 3대로 구성된 워크스팀이 영국 제일의 랠리인 RAC 랠리(Royal Automobile Club Rally)에 참가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재규어 스포츠카의 출발이 된 SS 100은 1936년부터 1940년까지 총 314대가 생산됐고, 이 차의 뛰어난 DNA를 바탕으로 XK 120이 등장해 재규어의 명성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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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2mm의 휠베이스와 길게 뻗은 유선형 앞 펜더가 특징이다당시 최신 자동차 디자인을 반영한 원형 헤드램프와 대형 프론트 그릴, 불룩 쏟은 펜더를 달았다재규어 스포츠카의 초석이 된 SS 100은 1936년부터 5년 동안 모두 314대가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