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스포츠카의 가능성을 확인하다 - 포르쉐 가라사대 하이브리드란…
2010-12-15  |   20,036 읽음

프리우스의 끈질긴 노력과 마케팅으로 ‘하이브리드=저탄소’란 공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동시에 배출가스를 줄이고 연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퍼포먼스를 조금 양보할 것이라는 막연한 편견이 따른다. 때문에 많은 이들은 하이브리드와 스포츠카의 관계를 어색해한다.

스포츠카가 내세워야 할 것은 달리는 재미가 우선이다. 아무리 좋은 의미라고 해도 재미를 잃는다면 고객은 결코 스포츠카라는 타이틀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카 메이커의 고민이 여기 있다. 이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물과 기름을 섞어서 한 차원 높은 새 물질을 만드는 것처럼 어려운 숙제다. 게다가 이산화탄소 규제 때문에 이제 그 과제물을 내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 초 제네바모터쇼에서 포르쉐가 하이브리드카 3종 세트를 전시했다. 스포츠카 메이커 중에서 하이브리드 띄우기에 나선 것은 포르쉐가 처음이다. 911 GT3 R 하이브리드와, 카이엔 S 하이브리드, 918 스파이더가 그 주인공으로 향후 포르쉐가 발 빠르게 하이브리드 기술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에 충분한 자리였다.

이와 관련해 지난 11월 6일 중국 주하이에서 조금 더 진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포르쉐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 미디어를 대상으로 ‘포르쉐 하이브리드 워크숍’을 열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하이브리드는 이런 것’이라고 공식화하는 자리. 포르쉐 모터스포츠 디렉터인 하르트무트 크리스텐(Hartmut Kristen)이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911 GT3 R 하이브리드로 모터스포츠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서 명확히 밝혔다.

“언제나 그랬듯 우리는 레이스에서 얻은 노하우를 양산차 개발에 쓸 것이다. 하이브리드도 예외는 아니다. 모터스포츠만큼 새 기술을 공개적으로 테스트할 좋은 기회는 없다.”

예전부터 다른 메이커들이 연구실과 컴퓨터 시뮬레이터(포르쉐도 물론 이런 과정을 거친다)에 치중할 때 포르쉐는 실전 감각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레이스 참가를 통해 엔지니어나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 입장에선 드라이버의 피드백도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

포르쉐는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911 GT3 R 하이브리드 머신으로 몇몇 내구레이스에 참가하고 있다. 911 GT3 R 하이브리드는 GT3 RSR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수평대향 3.8L 480마력 엔진으로 뒷바퀴를 굴리고 2개의 80마력 모터(68kg)로 앞바퀴를 굴린다. 하이브리드카에 필수적인 배터리 대신 운전석 오른쪽에 동그란 전자 플라이휠 에너지 스토리지(47kg)를 달고 있다. 배터리와 발전기 역할을 동시에 하는 이 시스템은 제동시 분당 3만6,000번 회전하면서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드라이버가 버튼을 누르면 전기를 모터로 보내 약 8초 동안 엔진에 160마력의 힘을 보탠다. 이를 커스(Kinetic Energy Recovery System)라 부르는데 70년대 중반 F1의 윌리엄즈팀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순간 출력과 평균 연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911 GT3 R 하이브리드에 단 커스를 당장 양산차에 쓸 수는 없다. 배터리 대신 동반석 자리에 놓인 전자 플라이휠 에너지 스토리지는 소음과 부피 때문에 양산차에 집어넣기에 적당하지 않다. 크리스텐이 거짓말을 한 걸까? 그렇지 않다. 배터리 대신 플라이휠을 양산차에 넣는 일은 없을 테지만, 앞쪽의 모터구동 부분과 이를 제어하는 기술은 양산차에서 아주 요긴하게 쓸 정보를 제공한다.

서킷에서 확인한 GT3 R 하이브리드카의 실력
다음날 우리는 포르쉐 하이브리드의 실전 테스트를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주하이 서킷에서 치러진 ‘ILMC(인터콘티넨탈 르망컵) 1,000km 주하이 내구레이스’의 현장에 포르쉐 GT3 R 하이브리드가 함께 했기 때문. ILMC는 르망 본부가 내구레이스의 세계로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올해 신설한 레이스. 르망 24시간 내구레이스처럼 최고 카테고리인 LM P1부터 LM P2, LM GT2, LM GT3로 레이스를 펼친다.

GT3 R 하이브리드는 번외 카테고리인 LM GTH에 단독으로 참가했다. 각 카테고리별로 순위를 따로 선정하지만 출발은 모든 카테고리의 머신이 같이 하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LM P1과 LM P2 카테고리는 그야말로 내구레이스를 위해 개발된 프로토타입들이어서 성능 면에서 다른 카테고리 머신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실질적으로 GT3 R 하이브리드의 비교대상은 GT1과 GT2다.

레이스는 총 4,319km인 주하이 서킷을 약 5시간 35분 정도 달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이 시간 동안 푸조 908 HDi이 232랩을 가장 빨리 돌아 우승을, 아우디(R15 TDI)가 4초826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LM P1, P2에 출전한 9팀 중 5팀(4팀은 도중에 리타이어)이 체커기를 받고 GT3 R 하이브리드가 6번째로 골인했다. GT1과 GT2 중 어떤 팀도 포르쉐 하이브리드보다 앞에 서지 못한 것이다. 1분34초804의 패스트랩과 최고시속 164.006km/h를 기록해 LM GT2 카테고리 1위를 차지한 BMW M3(1분36초532, 161.070km/h)보다 3바퀴나 더 달렸다. 빠른 기록도 기록이지만 무엇보다 1,000km를 아무 고장 없이 끝내주게 달렸다는 데 의의가 있다. LM GT2 카테고리의 머신들이 평균 7번 피트인한 것과 대조적으로 총 4번의 피트인으로 이 같은 성적을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포르쉐는 하이브리드에 대한 청사진을 밝혔다. GT3 R 하이브리드와 카이엔 S 하이브리드로 새 장을 열었던 2010년을 뒤로 하고 내년 중 카이엔 S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개선해 파나메라 하이브리드에 얹는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포르쉐표 하이브리드카의 정점을 만날 수 있는 시기는 2013년, 918 스파이더가 양산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포르쉐가 GT3 R 하이브리드와 카이엔 S 하이브리드를 통해 쌓은 노하우를 이 화려한 테크니션에게 물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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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 스파이더. 포르쉐가 추구하는 인텔리전트 퍼포먼스 하이브리드의 종착역이다1 제어 모듈  2 전기모터  3 리튬이온 배터리  4 V8 엔진  5 PDK 반자동 기어911 GT3 R 하이브리드에 달린 전자 플라이휠 에너지 스토리지911 GT3 R 하이브리드를 살피는 포르쉐 미케닉911 GT3 R 하이브리드는 자그마치 5시간 30분 넘게 GT2 머신들을 압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