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자동차상식

심금을 울리는 리얼 인생역전 스토리 - 자동차판 신데렐.. 2009-04-07
안방극장을 강타하는 드라마 스토리는 뻔하다. 대부분 나쁜 놈이 좋은 놈을 괴롭히다가 전세역전으로 끝나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약간의 양념을 넣어 맛깔스런 스토리를 완성한다. 좋은 놈의 통쾌한 복수를 돕는 ‘실장님’은 신데렐라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의 대리인으로 이야기의 큰 축이다. 지어낸 것이 아니라 현실에 그대로 녹아든 이야기라면 감동은 배가된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실장님(든든한 모기업)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자동차 회사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람보르기니이태리의 열정을 사랑한 페르디난트 피에히“당신은 차를 모르니 트랙터나 모시오.” 엔초 페라리의 이 빈정거림이 오늘의 람보르기니를 있게 했다. 람보르기니의 삶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다. 1916년 이태리 북부의 농가에서 태어나 기계 만드는 것을 즐겼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볼로냐 기술학교를 마치고 2차대전 때 정비병으로 복무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전쟁이 끝나자 망가진 군용차를 이용해 트랙터를 만들어 팔면서 재미를 보았고, 1954년 무렵에는 이태리에서 가장 큰 트랙터 회사의 주인이 되었다.   기계라면 모든 것을 즐겼던 람보르기니는 당시 스포츠카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페라리 모델을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250GT를 즐겨 탔는데 종종 클러치가 말썽을 부렸다. 매니아의 한 사람으로 이를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직접 엔초 페라리(페라리 설립자)를 찾았으나 트랙터나 만들라는 소리를 듣자 페라리를 능가하는 수퍼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페라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람보르기니의 이런 말을 곧이듣지 않았고 심지어 미친 사람이라는 핀잔까지 주었다. 하지만 람보르기니는 1962년부터 수퍼카 프로젝트를 차근히 진행해 1963년 마침내 자신의 이름을 딴 ‘오토모빌리 페루치오 람보르기니’(Automobili Ferrucio Lamborghini)를 설립했다. 페라리를 뛰어넘어야 할 숙명을 타고 났기에 그의 첫 작품인 350GTV는 V12 3.5L 360마력 엔진에 5단 수동변속기를 썼다. 4단 수동변속기와 V12 3.3L 엔진을 얹었던 페라리의 기함 275GT를 능가하는 성능이었다. 이듬해 등장한 양산차 350GT는 발표와 동시에 2년치 주문이 밀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람보르기니는 350GT의 성공을 기회삼아 매년 새 모델을 내놓는 등 공격적인 모습이었다. 그 중에서도 1966년 발표된 미우라 P400과 1971년 등장한 카운타크(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양산은 1973년부터 시작되었다)는 페라리의 콧대를 꺾는 것은 물론이고 20세기 최고의 자동차로 꼽힐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난 개발비는 부메랑이 되어 회사 재정을 바닥냈고 이때부터 시련이 닥쳤다. 1972년 스위스의 사업가 조르즈 앙리 로세띠를 시작으로 패트릭 밈람(1980년), 크라이슬러(1987년), 메가텍(1994년), 마이콤(1995년)을 거치는 동안 왕성했던 열정은 사라지고 디아블로를 빼곤 변변한 모델을 내놓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시련을 겪던 람보르기니에게 1998년 기회가 찾아왔다. 폭스바겐의 페르디난트 피에히 회장이 구호의 손길을 내민 것. 무모한 구색 갖추기라는 비난이 있었지만 보다 강력한 브랜드파워가 필요했던 피에히에게 람보르기니의 전통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피에히는 람보르기니를 폭스바겐 산하 아우디에 통합하고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희미해진 오리지널의 색깔을 찾도록 요구했다. 그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은 람보르기니는 연구개발팀을 2배로 늘려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페라리를 향해 다시 총구를 겨눈 람보르기니는 그 첫 번째 성과물인 디아블로 GTR을 1999년 볼로냐모터쇼에 선보였다. 피에히는 트랙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무너진 람보르기니의 자존심을 가장 빨리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디아블로 GTR은 서킷 전용 모델이었다. 람보르기니의 르네상스는 카운타크의 다자인을 바탕으로 독일의 장인정신이 결합된 무르시엘라고의 등장부터 시작된다. V12 6.3L 엔진으로 시속 330km를 돌파한 무르시엘라고는 미우라, 카운타크, 디아블로를 잇는 람보르기니의 기함이었다. 여기에 V8 리틀 페라리를 겨냥한 가야르도가 투입되면서 페라리와의 수퍼카 대결은 더욱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현재 람보르기니의 라인업은 어느 때보다 화려하다. 무르시엘라고 LP640이 기함의 자리에 우뚝 섰고 스페셜 모델 레벤톤도 수퍼카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가야르도는 스파이더와 쿠페로 새로운 고객을 꾸준히 람보르기니로 안내하고 있다. 비록, 포르쉐의 폭스바겐 지분 참여와 경기침체 등 최근의 상황이 람보르기니에게 이롭지만은 않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수퍼카 메이커에서 흔한 일이다. 미니 꼬마, 숙녀의 향기를 품다오리지널 미니는 1950년대 불어 닥친 석유파동으로 탄생했다. 석유파동 이전 높은 인기를 누렸던 영국차들은 1956년 기름값이 치솟자 독일제 소형차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위기감을 느낀 BMC 레오나드 로드 회장은 알렉 이시고니스와 존 쿠퍼, 알렉스 몰트를 중심으로 프로젝트팀을 꾸려 경쟁력 있는 소형차 만들기에 나섰다. 작은 차체, 넓은 실내를 컨셉트로 앞바퀴굴림 방식에 가로배치 직렬 엔진을 얹어 1959년 8월 완성차를 내놓았다. 초기에는 BMC 산하의 오스틴 세븐과 모리스 마이너로 팔리다가 1969년부터 ‘미니’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독립했다. 미니는 길이 3,050mm의 깜찍한 차체에 4명의 어른과 짐을 실을 수 있는 실내공간을 확보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러나 모기업의 경영난은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1975년 국유화되어 ‘브리티시 레이랜드’(BL)로 불리다가 1979년 BL공사로, 1986년에는 로버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데 이어 1988년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BAE)에 흡수되는 시련을 겪었다. 브리티시 에어로스페이스는 1994년 다시 BMW에 인수되었다. 럭셔리카 브랜드로 활약하던 BMW는 수익성을 높이고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쟁력 있는 소형차 브랜드가 절실했다. 미니는 BMW가 찾던 유리공주와 같은 존재였다. 미니를 입양한 BMW는 클래식 미니의 기본 컨셉트를 유지하면서 BMW의 고급스러움을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초기 개발의 중심에는 로버 기술진이 있었지만 BMW가 로버를 영국 금융그룹에 떠넘기면서 거의 개발이 완성된 뉴 미니를 독일식으로 새롭게 바꿨다. 오리지널 미니와는 상대도 안 될 만큼 사이즈를 키우고 직렬 4기통 1.6L 엔진 등 세련된 유닛으로 무장했지만 스타일은 레트로풍 미니 그대로였다. 다양한 보디 및 인테리어 색상과 옵션을 두어 꾸미며 탈 수 있는 맛도 잊지 않았다. BMW의 풍부한 자금력과 기술력을 등에 업은 미니는 해치백을 시작으로 컨버터블과 클럽맨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했고 매년 20만 대 가까이 판매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다치아파리지엔느로 거듭난 시골 촌뜨기다치아는 1966년 공산국가였던 루마니아 국영 자동차 회사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르노의 12s를 라이선스로 조립 생산해 자급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1968~1972년 르노 8s를 다치아 1100으로 개조해 4만4,000대 생산했다. 몇몇 모델은 다치아 1100S로 생산되어 모터스포츠에 참가하거나 경찰차로 쓰였다. 1969년부터 생산한 다치아 1300은 여러 가지 개선을 거듭하면서 34년간 250만 대 이상 판매되어 루마니아의 도로 위를 활보하고 다녔다. 다치아의 시련은 정치적인 영향이 컸다. 1989년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민주화혁명이 일어나 큰 혼란을 겪었고 정치적인 변화는 다치아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공산국가시절 별다른 경쟁자 없이 루마니아 내수 시장을 독식했던 다치아였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마냥 문고리를 걸어 잠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결국, 경쟁력을 높이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루마니아 정부는 다치아를 민영화하기로 결정했고, 프랑스 르노가 1998년 다치아의 주식 51%를 매입해 끌어안았다. 르노의 다치아 인수는 유럽 자동차 부품업체들을 루마니아로 끌어들여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르노는 다치아에 묻어 있는 공산국가 시절의 잔재를 떨쳐 버리고 효과적인 생산라인 정비를 위해 투자(2000~2004년 동안 4억8,900만 유로, 약 9,400억 원)를 아끼지 않았다. 2000년 노바(Nova)에 르노 클리오 직렬 4기통 엔진과 5단 수동변속기를 올리고 에어컨과 알로이 휠 등 편의장비를 보강한 수퍼노바를 선보였다. 르노의 지원으로 다치아는 2002년 내수 시장 점유율 50%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4년 등장한 로간(Logan)은 다치아 1300 이후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지금까지 다치아의 베스트셀링카로 활약하고 있다. 이전의 모델들이 루마니아 내수용에 머물거나 동유럽으로 수출 지역이 제한된 것에 반해 로간은 서유럽과 동남아시아 등 전세계 시장을 무대로 뛰고 있다는 점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르노 로고를 붙이고 판매되기도 한다. 세단뿐만 아니라 왜건, 밴, 픽업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서유럽 메이커들이 다가설 수 없는 낮은 값과 뛰어난 품질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지난 제네바모터쇼에 출품한 더스터(Duster) 컨셉트카는 SUV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는 증거다. 다치아는 루마니아인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로 떠올랐고 르노 그룹 내에서도 전략적 투자회사로 성장했다.
도쿠다이지의 초보운전교실(7) - 신중하게·결단력 있게.. 2009-03-14
초보운전자들이 애를 먹는 것 중 하나가 차선 바꾸기다. 특히 좌회전 차선에 들어서야 하는데 차가 많아 쉽지 않을 때는 진땀을 빼기 일쑤다. 차선을 바꿀 때는 미리 앞차와의 거리를 충분히 두고 옆차선에 공간이 충분하다 싶으면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들어선다차가 많은 곳에서 가장 많이 필요하면서도 애를 먹는 것이 차선 바꾸기다. 특히 좌회전을 위해서는 미리 생각해서 좌회전 차선에 들어서야 하는데, 차가 많을 때는 이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또 공사 등으로 차선이 줄었을 경우도 이를 피하기 위해 차선을 바꿀 수밖에 없다. 차선을 바꿀 때는 어느 정도의 결단력이 필요하다. 다른 차가 차선을 비워 주기를 기다린다면 오래도록 뜻을 이루지 못한다. 끼어들기를 할 때는 이동하려는 쪽의 차선과 속도를 맞추면 부드럽게 들어설 수 있다. 왼쪽 차선은 일반적으로 오른쪽 차선보다 속도가 빠르다. 오른쪽 차선에서 달리던 속도로 왼쪽 차선으로 바꾸면 뒤차로부터 추돌당할 수 있다. 이런 때는 미리 앞차와의 차간거리를 두어 가속할 거리를 확보하도록 한다.화물차 조심하고 위급할 때는 클랙슨을교통량이 많은 곳에는 일반 승용차 외에도 택시를 비롯해 상용차, 덤프트럭 같은 대형 화물차까지 여러 차들이 달리고 있다. 이런 차들은 다른 차들이 예측하지 못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고 시야도 가리므로 너무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또 매너가 나쁜 차도 조심해야 한다. 특히 뒤에서 몰아세우는 점잖지 못한 차가 있더라도 흥분하지 말고 추월시키는 것이 좋다. 이런 때 흥분해 쓸데없이 클랙슨을 누르거나 옆차선까지 막아버리는 운전자가 있는데, 그러면 매너 나쁜 뒤차와 같은 꼴이고, 말썽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런데 매너가 나쁜 차도 정도가 지나치면 위험하다. 어거지로 끼어들기를 하는 차 때문에 위험해지면 주저하지 말고 클랙슨을 누르자. 클랙슨은 상대에게 ‘위험하다’고 알리기 위한 장치이다. 클랙슨을 안 울리면 상대방은 상황을 알지 못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전손사고의 두 가지 예 - 차가 불에 타거나 도난됐을 .. 2009-03-14
자동차보험의 담보 종목에는 ‘대인배상’, ‘대물배상’, ‘자기신체사고’(자동차상해), ‘무보험자동차에 의한 상해’, ‘자기차량손해’가 있다. ‘자기차량손해’는 말 그대로 가입자의 자동차에 직접적으로 생긴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자기차량손해’ 사고는 대부분 충돌, 접촉, 추락, 전복 등에 의해 일어난다. 드물긴 하지만 화재나 도난사고도 발생한다. 만일 화재로 자동차가 전소됐고, 복원수리비가 그 차의 가격(싯가)을 넘었을 때는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를 전손(전부손해)사고라 하는데, 보험회사로부터 ‘보험가액’에 해당하는 보험금을 받고 그 보험계약은 사고발생시점에서 종료된다. ‘보험가액’이란 보험개발원이 시장조사를 거쳐 별도로 정한 자동차가액기준표상 사고 당시 정한 최초의 자동차기준가액을 말한다. 보험은 기본적으로 ‘우연성’을 전제로 한 경제제도이므로 고의로 인한 사고이거나 일부러 자기 차에 불을 질렀을 때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자동차가 도난됐을 때도 마찬가지다. 도난이란 형법상 절도, 강도를 말하는 것이며 불법영득(不法營得)의 의사가 요건이 된다. 단순한 점유의 침해는 영득의 의사가 없는 것으로서 절도, 강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일시 무단 사용은 도난으로 보지 않는다. 자동차가 도난됐을 때는 먼저 그 사실을 경찰관서에 신고하고, 자동차 말소등록을 한다. ‘자기차량손해’ 보험금을 청구할 때는 도난신고확인서와 자동차말소등록 사실증명서, 청구서, 인감증명, 각서, 등록원부, 권리양도증 등의 서류를 갖춰야 한다. 보험금 청구는 도난 사실을 경찰관서에 신고한 날로부터 30일 이후에 할 수 있는데, 이는 말소등록 후 다시 신규(부활) 등록을 할 때 별도의 비용이 들고, 통상 30일 이내에 찾는 일이 많아 차주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도난 사고 역시 ‘전손사고’이므로 사고발생시점에서 그 보험계약은 종료되며, 새차를 샀을 때는 당연히 새 자동차가액을 기준으로 새로운 ‘자기차량손해’ 보험계약을 맺어야 한다. 화재이든 도난이든 ‘전손사고’의 자동차보험금은 가입 당시의 가액이 아닌 사고 당시의 ‘보험가액’(보험개발원 공표)을 기준으로 보험금이 지급됨을 기억하자.
스포츠 세단의 선구자 - BMW 328 2009-03-14
BMW는 1913년 항공기 엔지니어 칼 프리드리히 라프(Karl Friedrich Rapp)가 세운 항공기 엔진 회사였다. 독일이 1차대전의 패전국으로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더는 군수물자를 만들 수 없게 되자 BMW는 군수물자인 항공기 엔진 생산이 중단돼 큰 타격을 입는다. 이에 따라 궁여지책으로 항공기 엔진을 만들던 기술을 토대로 모터사이클을 만들기 시작했고, 어려운 경제 상황에 힘입어 모터사이클은 큰 인기를 끌어 자동차 회사보다 많은 수익을 올렸다. 모터사이클로 재정이 좋아지자 BMW는 1928년에 딕시(Dixi)를 인수했다. 딕시는 영국의 오스틴 세븐을 라이선스로 만들던 회사였다. 딕시의 인수는 BMW가 본격적으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계기를 마련했고, 곧바로 BMW 로고가 붙은 3/15가 나왔다. 이후 1932년 BMW는 오스틴과 계약을 끝내고 고유 모델을 만들어 새롭게 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운다. 1933년 드디어 BMW가 자체 개발한 첫 모델인 3/20PS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듬해 오스틴의 직렬 4기통 엔진을 베이스로 직렬 6기통 1.2L 엔진을 얹은 303이 선보였다. 303은 BMW 처음으로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이로써 BMW가 자랑하는 ‘실키식스’의 역사가 시작됐다. 양산 전, 트랙에서 성능 입증BMW가 자체 모델을 선보인 지 4년 만에 1930년대를 대표하는 차가 탄생했다. 디자이너 루돌프 슈라이처(Rudolf Schleicher)와 수석 엔지니어 프리츠 피들러(Fritz Fiedler)는 진정한 스포츠카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은밀히 진행했다. 그 결과 BMW 역사에 기본 틀이 되는 328이 빛을 보게 됐다. 328은 319의 스티어링과 서스펜션, 326의 브레이크와 엔진 블록을 베이스로 개발됐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술을 쓴 328의 메커니즘은 지금까지 BMW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강철 튜브를 사용해 만든 프레임과 견고한 리어 액슬, 예리한 핸들링을 돕는 랙 앤드 피니언 방식의 스티어링과 독립식 앞 서스펜션은 가볍고 날렵한 2인승 스포츠카를 더욱 빛나게 했다. BMW가 지금까지도 추구하는 ‘궁극적인 드라이빙 머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컨셉트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BMW의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았다.328 엔진은 오스틴 세븐의 직렬 4기통 747cc 엔진을 베이스로 했지만 전혀 새로운 엔진으로 거듭났다. 무게를 줄인 직렬 6기통 1,971cc 엔진은 주철로 만든 실린더 블록과 알루미늄 헤드를 사용했고 밸브는 실린더당 2개씩 달렸다. 3개의 카뷰레터와 반구형 연소실로 80마력의 최고출력을 냈으며, ZF 4단 수동변속기를 단 뒷바퀴굴림 차였다. 또한 차체 무게가 830kg에 불과한 완벽한 2인승 로드스터였다.당시 라이벌들은 과급기와 대배기량으로 출력을 올렸지만 BMW는 차체 무게를 줄이고 작지만 고성능 엔진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본형 328의 엔진은 80마력이었으나 경주에 출전하는 차들은 간단히 100마력 이상으로 출력을 높였다. 328은 양산하기 전 트랙에서 먼저 신고식을 치뤘다. 1936년 6월, 뉘르부르크링크에서 열린 아이펠렌넨 경주에서 모터사이클 레이서 출신 에른스트 헨네는 2.0L 스포츠카 부문과 1.5L 경주차 부문에 326 프로토타입을 이끌고 출전해 평균시속 100km이라는 놀라운 속도로 우승컵을 안았다. 이 승리에 힘입어 이듬해인 1937년, 328이 로드스터와 쿠페 버전으로 양산됐다. 직렬 6기통 2.0L 엔진을 얹은 328은 BMW가 선보인 본격적인 스포츠카로,     시속 190km의 최고속도를 자랑하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내달렸다.328을 논하면서 스타일링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 첫 번째가 카리스마 넘치는 앞모습. 328의 앞모습은 차체와 헤드램프, 펜더가 하나로 부드럽게 어우러져 당시로서는 무척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또 비행기 디자인을 응용해 공력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유선형 차체도 인상적이었다. 카누와 같이 갈수록 좁아지는 보트테일로 마무리한 차 뒷부분도 돋보였다. 아울러 유선형 차체와 짧은 휠베이스는 보는 것만으로도 달리기 위해 태어난 스프린터임을 암시했다. 328은 1930년대에 나온 차 중 가장 우아한 유선형 스타일의 로드스터인 동시에 326과 327의 로드스터 버전과 더불어 오늘날까지 BMW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디라인을 가진 차로 평가받고 있다.달리기 위해 탄생한 328은 각종 경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독일 내 2.0L 클래스 경주는 물론 랠리, 스프린터, 힐클라임 등 1936년부터 1940년까지 130여 개 경주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1938년 1,000마일의 도로를 달리는 가혹한 이태리 밀레밀리아 경주에서 평균시속 166km로 우승해 높은 내구력과 스피드를 입증받았고, 1939년에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940년 브레시아 1,000마일에서 종합우승의 영광을 안은 328은 카로체리아 투링의 경량 알루미늄 차체로 최고시속 220km를 자랑했다. 모터스포츠에서의 성과에 힘입어 328은 단숨에 세계의 명차 대열에 올랐다. 1936~1939년 겨우 462대밖에 생산되지 못했지만 328은 이후 나온 수많은 스포츠카의 중요한 교과서 역할을 할 만큼 많은 영향을 끼쳤다. 328은 BMW 로드스터의 시작이었고 스포츠 세단을 지향하는 컨셉트를 일구어 낸 기념비적인 차다.
전상귀 변호사의 알쏭달쏭 법률이야기 - 법인은 폐업해도.. 2009-03-14
Q 미나, 미현, 미옥 3자매는 자본금 2억 원으로 건설기계 렌트업을 하기 위해 (주)로마자동차를 세웠습니다. 영등포구청 부근에 사무실을 만들고 등기도 마쳤습니다. 로마자동차는 임직원이 단결해 열심히 영업을 한 덕분에 첫해인 2006년과 이듬해에는 큰 이익이 났습니다. 이에 미나 자매는 2008년에 사업을 더 키우기 위해 포클레인을 몇 대 더 샀습니다. 로마자동차는 (주)파리자동차에게 포클레인 값으로 2억 원을 빚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금융한파가 몰려왔고 건설경기가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자동차는 영업을 위하여 열심히 뛰었지만 경기는 도대체 살아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로마자동차는 구조조정을 했습니다. 먼저 2008년 2월에 미나 자매에게 지급되었던 자동차를 팔고 3월에는 사무직 직원 2명을 해고했습니다. 5월에는 남아 있던 포클레인 2대를 팔았지만 10월에 적자가 누적되고 회사가 회생의 가망이 보이지 않자 폐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자동차는 (주)대왕성건설에 2억 원의 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왕성건설은 미나와 결혼을 할 조박이라는 사람이 실질적인 사주입니다. 대왕성건설에서 로마자동차에 돈을 지급해도 곧바로 파리자동차 등 채권자들에게 빼앗길 것 같아 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파리자동차는 로마자동차의 행태에 분개했습니다. 파리자동차는 로마자동차가 가지고 있는 대왕성건설에 대한 채권을 가압류 신청을 했습니다. 법원은 파리자동차의 소명자료를 읽어보고 가압류를 해주었습니다. 이에 로마자동차는 파리자동차에게 가압류만 하지 말고 소를 제기하라는 제소명령신청을 했습니다. 제소명령이 나자 파리자동차는 서둘러 로마자동차에게 채권 2억 원과 이자를 내라고 소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로마자동차는 자신들은 이미 폐업했으므로 파리자동차의 소는 기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파리자동차는 채권을 회수할 수 있을까요?| 해설 | 파리자동차는 채권을 회수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는 폐업했다고 하더라도 그 회사의 법인은 살아 있고 청산할 부분이 있다면 그 사무범위 내에서 회사는 존속하는 것입니다. 다만 파리자동차의 채권회수방법이 문제인데 로마자동차가 대왕성건설에 채권회수를 위한 권리행사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면 대왕성건설의 부동산 등 재산에 가압류를 하고, 채권자대위소송을 통하여 직접 청구를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금융위기 이후 많은 업체들이 부도나거나 또는 위장 폐업을 일삼고 있으므로 채권회수를 하려면 믿을 수 있는 변호사 사무실 친해 두는 것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길일 것입니다. 문의 (02)2693-3004
전문성과 다양성 모두 갖춘 튜너 - HAMANN(1) 2009-03-14
튜닝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량 양산차와의 차별화이다. 양산 모델보다 빠르고 강하게 달리고, 색다른 디자인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생겨난 사업이 바로 튜닝이다. 더불어 자동차 메이커가 사업성을 이유로 제작하지 않는 소량의 자동차를 만들어 불특정 소수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튜닝사업은 규모가 그리 클 것 같지 않지만, 독일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의 튜닝사업은 자동차산업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의 역사가 오래 되면서 자동차문화와 모터스포츠가 발달한 그들에게 튜닝은 단순히 멋을 부리고 성능을 높이는 것이라는 인식을 넘어 개인 맞춤화로 받아들여진다.차를 운전하는 습관이나 용도는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대량 양산차는 모두 똑같은 포맷으로 생산된다. 이에 개성파 오너들은 튜닝으로 자신의 운전습관과 특성에 맞게 차를 조율해서 재미있고 안전하게 타고자 한다. 대량 생산된 기성복을 내 몸에 맞게 다시 수선해서 입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바퀴가 가장 중요하다이렇게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튜너들은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튜닝카와 튜닝 용품은 판매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재정이 튼실하지 않은 튜너들은 제품개발과 생산을 많이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또 생산을 하더라도 값이 너무 비싸지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제품 개발에 부담을 갖다 보니 특정 브랜드나 차종만을 전문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브랜드와 차종의 제약 없이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많은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튜너도 있다. 독일의 하만(HAMANN)이 대표적인 예다. 독일 라이프하임에 위치한 하만은 1986년 리하르트 하만(Richard Hamann)이 만들었다. 리하르트 하만은 독일 모터스포츠에서 20년 넘게 활약해온 레이서였다. 1980년대 초반 피아트 127로 투어링카 레이스를 시작해 1984년에는 독일 F3 챔피언십에 도전했으며, 독일 투어링카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슈니처팀의 BMW M3 테스트 드라이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BMW의 스페셜카 M1을 타고 독일의 스페셜 투어링카 트로피(STT) 시리즈에서 세 번이나 우승한 훌륭한 레이서였다.  그는 레이서에서 은퇴하기 전부터 모터스포츠에서 쌓은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1986년 하만 모터슈포르트(HAMANN MOTORSPORT)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튜닝사업에 뛰어들었다. 자신에게 우승을 안겨 주었던 BMW를 전문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가 처음으로 만든 차는 M3(E30) 튜닝카. 직렬 4기통 2.3L 192마력의 기본 엔진에 터보차저를 붙여 최고출력을 348마력으로 끌어 올렸고, 0→시속 100km 가속이 5.1초, 최고시속이 273km나 되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수퍼카였다. 대부분의 튜너가 차의 내외관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것과 달리 하만은 처음부터 내외관뿐만 아니라 엔진과 구동계까지 손을 댔다. 리하르트 하만이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터스포츠에서 노하우를 쌓은 덕분이다. 그가 레이서로 쌓아온 명성은 소비자들에게 큰 신뢰를 안겨 주었고, 이에 힘입어 판매량도 꽤 많았다. 이후 하만은 BMW의 모든 모델에 대한 다양한 튜닝 프로그램을 내놓기 시작한다. 간단한 ECU 튜닝부터 시작해 흡ㆍ배기 시스템, 서스펜션, 에어로파츠, 트랙션 컨트롤을 포함한 각종 전자장비까지 모터스포츠에 뿌리를 둔 만큼 강력한 성능을 내는 좋은 제품들을 만들었다. 특히 하만이 자랑하는 것은 고품질의 경량합금 휠. 자동차의 가장 기초적인 부품인 바퀴가 가장 뛰어난 성능을 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킨 하만은 알루미늄 합금으로 무게를 줄이면서 강성을 높인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1피스 주조부터 3피스 단조 휠까지 갖추고 있고, 디자인도 단순한 5스포크에서 고급스러운 매시 타입까지 다양하다. 휠 제품군은 튜너들 중 하만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현재 하만의 휠에는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한국타이어가 끼워진다.BMW 전문 튜너로서의 역량을 확대해 가며 짧은 기간 동안 고속성장을 이룬 하만은 1990년 중반 AC슈니처, 하르트게 등을 제치고 가장 크고 유명한 BMW 전문 튜너가 된다.기술력이 다양성의 원천력1994년 하만은 BMW 전문 튜너에서 벗어나 한층 더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도전한다. 바로 페라리 F40 튜닝카를 선보인 것. 시대를 대표하는 고성능 머신을 튜닝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은 하만은 이듬해에는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페라리 F512M 와이드 버전을 내놓아 또다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엔초 페라리를 비롯해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 등 고성능 머신의 튜닝 프로그램을 내놓는다. 수퍼카의 영역에 도달한 차를 튜닝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수퍼카들은 높은 엔진 출력을 뽑아내면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달리도록 조율된 차들이다. 이런 차를 튜닝해 출력을 높이는 것은 뛰어난 기술력을 지니지 않고서는 쉽지 않은 일이며, 결과물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회사 명성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만의 엔지니어는 엔초에 하이 퍼포먼스 스포츠 배기 시스템과 촉매를 바꾸면서 48마력을 높여 최고출력을 660마력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서스펜션과 머플러를 바꾸고 에어로다이내믹 패키지를 붙여 수퍼카 이상의 수퍼카를 탄생시켰다.페라리 튜닝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높인 하만은 1997년에 자회사인 오페라 디자인(OPERA DESIGN)을 만들어 메르세데스 벤츠도 손대기 시작했다. 하만의 특별지시에 의해 설립된 이 회사는 짧은 준비기간을 거쳤지만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에 의해 빠르게 벤츠 전문 튜너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특히 오페라 디자인의 에어로파츠는 그동안 벤츠 튜닝카에서 볼 수 없었던 우아하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내세우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페라 디자인이 만든 SL500 그랑프리 스포츠 버전은 스포티하면서도 우아한 에어로 패키지를 덧댔고, 엔진은 최고출력 330∼420마력에 여러 가지 옵션을 마련했다. 그 중 420마력 튜닝카는 0→시속 100km 가속 5.2초, 최고시속 296km를 낸다. 하만은 독일 튜너들 가운데 비교적 신생업체에 속한다. BMW 튜너로 출발해 뛰어난 튜닝 기술을 인정받은 하만은 2000년부터 포르쉐, 랜드로버, 애스턴마틴, 마세라티, 피아트 등 차종과 가격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브랜드의 차를 튜닝하고 있다. 또 사업적 역량을 넓혀 레이싱카 튜닝 및 신생 레이싱팀의 인프라 구축을 도와주는 한편, 라이프스타일 액세서리도 판매하고 있다. 하만이라는 이름 자체가 곧 상품이 될 정도로 브랜드 파워를 키운 것이다.  하만은 소비자의 욕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금도 기술 및 상품성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브랜드와 차종, 차값에 국한되지 않고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전문성과 다양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몇 안 되는 튜너가 바로 하만이다.
똑똑한 자동차가 되기 위해 꼭 챙겨야 할 - 엄친아 스.. 2009-03-13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수동변속기의 효율성과 자동변속기의 편리함을 겸비한 팔방미인 변속기라고 불러도 좋다. 최근 연비가 자동차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이 되면서 주목받는 기술이다. 별도의 식별문자가 없다면 운전자가 눈으로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겉모습은 보통의 자동변속기와 같다. 왼쪽 발이 필요한 클러치 페달도 없고 기어 시프팅 방법도 일반적인 자동변속기와 같다. 그러나 내부 시스템은 수동변속기 2개를 포개 놓은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수동변속기의 클러치 조작을 똑똑한 제어 기술로 고도의 테크닉을 갖춘 베테랑 드라이버보다 정확하게 대신한다. 폭스바겐은 보그워너의 듀얼트로닉 기술을 활용해 만든 듀얼 클러치 변속기(DSG)를 활용해 가장 빛을 보고 있는 자동차 회사다. 2003년 1세대 DSG를 내놓았고 2008년 골프와 제타에게 7단 건식 DSG를 선물했다. 미끄럼 없이 전달되는 순간적인 변속능력도 매력적이지만 연비와 친환경적인 면에서도 환영받을 만하다. 예를 들어 7단 DSG를 단 골프 1.4 TSI는 6단 수동변속기 모델과 비교해 1.27km/L 뛰어난 연비를 지녔고 1km를 달리는 데 10g의 CO₂를 적게 배출한다. 2011년이면 폭스바겐의 모든 자동변속기가 DSG로 바뀐다. LED 헤드램프저전력 조명의 대표주자 LED가 자동차 헤드램프로까지 세력을 넓히고 있다. LED(light emitting diode)는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반도체 중 하나로 휴대폰 키패드, 자동차 실내조명 등 우리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부품이다. 이론적으로 전력 소모량이 일반 백열등과 비교해 20%에 불과한 LED는 최근 자동차산업의 가장 큰 이슈로 등장한 연비문제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작은 크기로 디자이너가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아우디 R8 V10은 헤드램프에 LED 기술을 써 LED의 또 다른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하이브리드카 시장을 토요타에게 내준 유럽 메이커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메르세데스 벤츠의 움직임이 가장 적극적이다. 최근 독일자동차협회 (ADAC)는 ‘2009 옐로 엔젤’을 쥐어 주며 벤츠 리튬이온 배터리 상용화 노력을 높이 샀다. 벤츠는 올 여름 성능 좋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단 S400 블루 하이브리드 모델을 판매할 예정이다. 럭셔리 세단 중에 가장 효율적인 파워트레인을 갖춘 S400 블루 하이브리드 세단은 V6 휘발유 엔진에 작은 하이브리드 모듈을 결합한 것으로 L당 12.7km(유럽 기준)의 연비와 km당 186g의 CO2 배출량을 자랑한다. 보다 효과적인 디조토 엔진 기술을 연구 중이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못하다.  컨티넨탈과 함께 개발한 이 시스템으로 벤츠는 25종의 특허를 갖게 되었고 고성능 하이브리드 기술 분야에서 한발 앞으로 나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벤츠의 리튬이온 패키지는 별도의 온도조절 시스템을 갖춰 외부온도에 상관없이 항상 15~35°C를 유지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최상의 배터리 효율을 유지할 수 있다. 10년의 긴 라이프 사이클과 60만 번 충전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는 구식 니켈 수소 배터리 패키지와 비교해 30~50% 뛰어난 성능이다. LPI 엔진LPG 엔진은 택시에나 어울리는 유닛이라고? LPI 기술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싸잡아 휘둘러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LPI 엔진이 나온 이상 LPG의 이용이 단순히 유지비를 줄이기 위한 꽁수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LPI 엔진은 LPG를 공기와 혼합시켜 기체 상태에서 실린더로 보내던 방식 대신 액체의 연료를 직접 실린더로 보내 연소효율을 높이고 배출가스를 줄였다. 지난달 등장한 기아 모닝 LPI의 최고출력이 67마력으로 휘발유(64마력) 엔진보다 높고 최대토크도 9.0kg·m로 0.1kg·m 앞선다. 더욱 중요한 것은 LPI 엔진의 친환경성. 동급의 휘발유 엔진과 비교해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비슷하지만 일산화탄소와 미세먼지, 포름알데히드, 아세트알데히드, 아크로레인 배출량이 50%에 불과하고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은 5%에 그치고 있다. 또 온실가스의 주범인 CO₂ 배출량도 50∼87%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하이브리드나 클린 디젤 엔진에 쏟는 노력을 생각한다면 LPI 엔진의 가치가 더 높다. 세계적으로 LPG 충전소가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파크 어시스트운전이 서툰 김 여사를 위해 자비로운 자동차 회사들이 내놓은 선물이다. 파크 어시스트 시스템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삐삐’ 소리를 내던 후방경보기와 실물을 보여 주던 후방카메라 시스템에 이어 등장한 첨단 기술로 초보 운전자들이 가장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주차를 자동차 스스로 해결해 준다. 도심의 복잡한 주차공간에서 접촉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아이템이니 이 어찌 반갑지 않을쏘냐. 지난해 7월 국내에 출시된 폭스바겐 티구안에 달린 평행주차 어시스트 시스템이 대표적이고 토요타와 BMW, 시트로앵 등 많은 업체에서 이 기술을 사용하고 있거나 개발 중이다. 포드도 올 여름부터 MKS 세단에 액티브 파크 어시스트 시스템을 옵션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시스템도 스스로 주차를 완료하지는 못한다. 즉, 주차공간을 스스로 파악하고 스티어링 휠의 각도를 조절하는 수준일 뿐, 브레이크와 액셀 조작은 운전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차세대 통합 유저 인터페이스  구형 체어맨에 비슷한 모양새의 재떨이가 등장해 네티즌들을 즐겁게 했던 BMW i드라이브 시스템이 2세대로 진화했다. 수많은 명령어 또는 키보드 타이핑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해 준 마우스처럼 자동차의 컨트롤 스위치를 간결하게 바꿔 놓은 인체공학적 인터페이스의 대명사다. 그러나 너무 혁신적인 탓에 전통적인 버튼 방식에 익숙한 많은 오너들의 불평을 들어야 했다. 이를 보완해 2세대 i드라이브에는 많이 쓰는 몇몇 기능들을 윈도우 단축키와 비슷한 별도의 단축키로 묶었다. 한발 더 나아가 사전만큼 두꺼운 사용설명서를 e북 형태로 담아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벤츠 커맨더 시스템, 아우디 MMI, 렉서스 RX시리즈의 리모트 터치 컨트롤 등도 좋은 예다.    커뮤니케이션즈 시스템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제왕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대표적인 굴뚝산업인 자동차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포드와 마이크로소프트웨어가 함께 개발한 싱크(SYNC) 시스템은 IT 기술이 얼마나 즐거운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음성제어와 전화통화 기능만을 제공했지만 최신버전의 싱크 3.0은 운전자가 스스로 파악해 위급할 때는 911 번호를 자동 연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실시간 교통상황, 뉴스, 날씨 등 맞춤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아이팟과 같이 블루투스를 지원하는 IT 제품을 연결해 자동차의 순정품처럼 이용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스티어링 휠의 버튼 조작으로 아이팟을 컨트롤할 수 있고 소형 가전제품을 작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전격 Z작전’의 키트와 마이클처럼 자동차와 운전자가 대화하면서 정보를 공유할 날도 머지않았다. 나이트비전빛의 가시광선을 이용해 사물을 알아채는 우리의 눈은 어둠이 내리면 무용지물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동차에는 인공적으로 빛을 내는 헤드램프가 있다. 하지만 헤드램프도 마주오는 차의 눈부심과 기술적인 한계가 있기 마련. 적외선 열영상 기술을 이용한 나이트비전은 야간주행 때 넓은 시야를 확보해 안전을 보장해 주는 첨단장비이다. BMW 7시리즈에 달린 나이트비전은 최대 800m의 거리까지 좌우 24도 범위에서 사물을 식별해 모니터와 헤드업 디스플레이(HUD)에 표시한다. 보행자가 갓길을 걷거나 동물이 지나갈 때 다른 신호를 보내 운전자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혼다정신’의 상징 - Honda.. 2009-03-13
“즐거움을 주는 이동수단을 만드는 것이 회사의 사명입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혼다가 주장해 온 말이다. 같은 차를 만들어도 ‘재미’라는 요소를 빼면 혼다차가 아니라는 것. 그러나 최근 혼다의 움직임에서 불안한 기운이 엿보인다. 미드십 수퍼카 NSX 후속 모델의 양산을 저울질하고 F1 레이스에서 발을 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어려운 경제여건을 핑계로 삼기에는 그동안 혼다가 쌓아 놓은 이미지가 너무 아쉽다.1948년 설립된 혼다는 모터사이클로 출발해 1963년 S500과 T360을 만들며 자동차 제작에 발을 들였다. 무엇보다 기술을 중시한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는 모터스포츠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뛰어난 혼다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1965년 F1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고 맥라렌과 짝을 이룬 1988년에는 총 16전 중에 15승을 쓸어 담았다.     레이스에서 얻은 경험은 고스란히 양산차 개발로 이어졌다.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등장한 혼다 S2000은 NSX와 더불어 혼다정신이 가장 잘 반영된 모델 중 하나이다. 혼다 수뇌진이 S2000 엔지니어들에게 요구한 기본은 소이치로의 그것과 같았지만 젊은층을 겨냥해 값을 낮추고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완성해야 했다. S2000의 출발은 1995년 도쿄모터쇼에 등장한 SSM 컨셉트카였다.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양산작업에 들어갔고 그 핵심에 수퍼카 NSX의 개발주역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1998년 9월, 혼다 창립 50주년 기념 이벤트에 프로토타입을 공개해 그 의미를 부여했고 1999년 4월부터 판매되었다.S2000의 특징은 가벼움이다. 핸들링을 중시하는 영국 로터스와 비슷한 컨셉트이지만 하드코어 지향적인 로터스보다는 실용적이다. 당시 유럽의 많은 스포츠카들은 섀시 보강으로 무거워진 차체를 이끌기 위해 대배기량의 강력한 엔진을 얹었다. 당연히 값도 비쌌고 일반인들이 선뜻 고르기에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S500의 전통을 잇기 위해 오픈 모델로 등장한 S2000이지만 섀시 강성은 어떤 모델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견고했다. ‘하이 X-본 프레임’으로 불리는 독특한 섀시구조 덕분이었다.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2.0L 자연흡기(NA)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의 조합. 수수하게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잘 달리기 위한 열정이 담겨 있다. 일본 투어링카 챔피언십(JTCC)에 참가했던 어코드 레이싱카의 H22A에 바탕을 둔 엔진(F20C)은 최고출력 250마력을 냈다. L당 125마력에 이르는 출력은 지금까지도 직렬 4기통 엔진의 신화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어×스트로크가 87.0×84.0mm인 숏스트로크 엔진으로 9,000rpm까지 쓸 수 있는 고회전 유닛이다. 특히 6,000rpm 이후부터 작동되는 브이텍(VTEC: 가변밸브 타이밍&리프트 기구) 덕분에 고회전에서 뛰어난 응답성을 보여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 엔진 출력을 뒷바퀴에 전달하는 역할은 6단 수동변속기가 맡았다. 스포티함을 떨어뜨리는 자동변속기는 넣지 않았다. 고회전을 감당하기 위해 강화 클러치를 사용했고 명민한 시프트 감각을 지녔다.  직렬 4기통 엔진을 얹은 차로서는 노즈의 길이가 지나치게 긴 것은 앞뒤 무게비율을 50:50으로 맞추기 위함이었다. 앞축 뒤에 작은 엔진을 놓아 무게배분을 효과적으로 얻었을 뿐만 아니라, 롱노즈 숏데크의 클래식 컨버터블 분위기까지 만들었다. 공간 활용성보다는 달리기 성능을 위해 태어난 만큼 앞뒤 서스펜션은 모두 레이싱카에 많이 쓰이는 더블 위시본 타입이었다.  2000년 가변기어스티어링(VGS) 시스템을 도입한 타입Ⅴ가 추가되었고, 2001년 리어 스크린을 유리로 바꾸고 서스펜션과 엔진을 개선한 첫 마이너체인지 모델이 등장했다. 2003년 헤드램프 디자인과 LED 테일램프를 달고 등장한 두 번째 마이너체인지 모델은 서스펜션 세팅을 달리하고 17인치 휠을 달아 코너링 성능을 높였다. 또 6단 수동변속기의 싱크로나이저를 카본(2~6단)으로 바꿔 변속감을 개선했다.미국 소비자 요구 반영한 AP22005년 일본 시장에 엔진 배기량을 2.2L로 키운 AP2 모델이 등장했다. AP2의 엔진(F22C)은 보어를 그대로 두고 스트로크를 90.7mm로 늘였다. 배기량이 커졌지만 최고출력은 오히려 242마력으로 내려갔다. 대신 중저속 토크를 강화해 6,500~7,500rpm에서 최대토크 22.5kg·m를 냈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소비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매니아들은 AP1의 샤프한 고회전 응답성을 그리워하기도 한다.2007년 4월 뉴욕오토쇼에 하드코어 버전 S2000 CR 프로토타입이 전시되었다. 주말 트랙데이를 즐기는 매니아를 위해 등장한 CR은 ‘Club Racer’(클럽 레이서)의 약자로 무게를 40kg이나 덜어냈다. 서스펜션은 더욱 단단해졌고 리어 스포일러를 포함해 전용 에어로파츠로 무장했다. 공력특성을 강화하기 위해 소프트톱 대신 탈착식 알루미늄 하드톱을 달아 눈길을 끌었다.  2007년 10월, AP2의 마이너체인지 모델이 등장했고 고속 안정성과 스티어링 반응을 개선한 타입 S가 일본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서킷주행에 초점을 맞춘 CR과 달리 타입 S는 와인딩 로드의 달리기 성능을 극대화했다. 그러나 오직 ‘기술의 혼다’를 외치며 한길을 걸어온 S2000의 진화는 2009년 막을 내린다. 2009년 1월 17일, 혼다가 S2000의 단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6월을 끝으로 북미에서 판매되지 않고 일본에서는 4월까지만 주문을 받는다. 유럽 시장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사라질 예정이다. 경기침체 탓에 후속 모델에 대한 기약도 없다.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 자동차 전문지들은 혼다의 마지막 뒷바퀴굴림 스포츠카 S2000의 단종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세계에서 고작 11만 대가 판매된 모델에 이토록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2004년형 S2000 AP2(미국 버전) 오너 승완철(학생, 28)2004년 S2000을 손에 넣었다. 당시 국내에는 200마력 이상의 출력을 내고 9,000rpm까지 쓰며 뛰어난 밸런스를 지닌 모델이 흔치 않았다. 비록 실내공간이 좁고 편의장비가 부족하지만 바이크처럼 높은 회전수를 유지하면서 코너링을 타고 넘는 맛은 아직까지 경쟁 모델을 찾기 힘들다. S2000의 단종 소식을 들으니 매니아로서 안타깝다. 전투력을 더 높인 타입 R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렸기 때문이다. 혼다 소이치로가 내세웠던 ‘본 투 레이싱’(Born to racing)의 신념으로 꼭 돌아오길 바란다.2003년형 S2000 AP1(미국 버전) 수퍼차저 오너 전우진(자영업, 33)1999년 제대 후 첫차로 기아 엘란을 사면서 경량 로드스터의 매력에 푹 빠져 나름의 드림카를 그려봤다. 혼다 S2000은 그런 나의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었다. 2005년 꿈에 그리던 S2000을 손에 넣었다. 빼어난 달리기 성능으로 재미를 주었지만 사고로 떠나보내고 2008년 6월 AP1 수퍼차저 모델을 중고로 구입해 지금까지 타고 있다. 경제침체로 S2000이 단종된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이제 혼다 모델 중에 뒷바퀴굴림 스포츠카는 없지 않은가. 기술의 혼다를 증명해주는 모델이었는데…….
링컨 지고 캐딜락 뜨다 - 미국 대통령 전용차 이야기 2009-03-05
미국에서 처음 전용차를 사용한 대통령은 제27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로, 재임기간은 1909∼1913년이었다. 초대 조지 워싱턴(1789∼97년)에서 제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1901∼1909년)까지는 마차를 썼다. 이 때문에 태프트 대통령의 승용차가 첫 백악관 공용차로 기록된다. 당시 사용한 모델은 스튜드베이커 전기차였다고. 뜻밖에도 친환경적인 자동차를 탔던 셈이다. 그 다음 우드로 윌슨 대통령(재임 1913∼21년)의 전용차는 피어스 애로. 윌슨은 이 차를 아주 마음에 들어해 퇴임 후에 친구가 이 차를 사들여 윌슨에게 선사했다. 뒤이어 워런 하딩 대통령(1921∼23년)은 패커드. 그가 재임 중 세상을 떠나자 부통령에서 승격한 캘빈 쿨리지 대통령(1923∼29년)은 링컨을 전용차로 결정했다. 캐딜락은 1929년 재임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1929∼33년)이 처음으로 골랐다. 첫 방탄차는 1942년형 링컨 선샤인 스페셜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1933∼45년)의 전용차는 패커드. 현재 일본의 토요타 박물관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2차대전 중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용한 1942년형 링컨은 최초로 장갑을 두른 대통령 전용차였다. 후임 트루먼 대통령(1945∼53년)도 잇따라 링컨을 선정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1953∼61년)은 캐딜락과 함께 백색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을 쓰기도 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1961∼63년)의 전용차는 링컨 컨티넨탈이었으나 취임 퍼레이드에서 사용한 전용차는 포드 선더버드 컨버터블이었다. 이처럼 링컨과 캐딜락이 전통적으로 대통령 전용차로 쓰였으나 90년대 이후부터는 캐딜락이 주로 대통령 전용차를 공급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의 전용차 역시 특수제작한 캐딜락 리무진이다. 오바마의 전용차는 보안상 자세한 제원이 비밀이다. 미국 정보통에 따르면 캐딜락으로 보이는 것은 겉모습뿐 속은 전혀 다르다. 중형트럭의 섀시에 보디를 얹고 그릴은 STS, 헤드램프는 에스컬레이드에서 가져왔다. 도어는 두께 약 20cm. 강철과 티타늄, 알루미늄, 세라믹을 겹겹이 쌓은 장갑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대전차 로켓탄 등 성형작약 탄두가 폭발하면 고온으로 녹은 금속이 가느다란 제트스트림을 만들어  장갑판을 뚫는다. 그런 다음 뜨거운 금속 파편이 차안에서 소용돌이치면 누구도 살아남기 어렵다. 그러나 앞에서 적은 대로 밀도가 다른 소재를 겹쳐 만든 장갑판은 연소제트를 분산시켜 폭발력이 크게 줄어든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용차가 바로 이런 구조로 되어 있다. 창문은 방탄유리, 타이어는 케블러를 보강했고, 강철제 휠은 타이어가 없어도 굴러간다. 트렁크에는 따로 산소공급장치와 소화장비가 들어 있다. 방어용 특수총과 최루탄 발사기도 갖췄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오바마 대통령의 혈액도 보존용으로 넣어둔다. 이 때문에 무게가 대단하고, 최고시속은 97km에 불과하다. 연비는 약 3.4km/L. 미국은 세계 최강의 정치·경제·군사대국이다. 2차대전 이후 세계를 이끌어오며 우호국과 동시에 많은 적대국을 양산해왔다. 덕분에 미국 대통령의 생명을 노리는 세력은 국내외에 널러 퍼져 있다. 따라서 지금의 대통령 전용차는 테러 위험에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대비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컨버터블을 사용하게 될 때쯤이면 진정한 세계평화가 도래하지 않을까? 
TREND - 자동차의 새 물결 AGreen Waves 2009-02-09
지난 연말 MBC에서 방영된 자연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11%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언제까지나 순백의 눈으로 덮여 있을 것만 같았던 북극은 거대한 빙붕이 녹아내리며 생태계가 빠르게 파괴되고 있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북극곰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이누이트들은 작살과 사냥총을 내려놓고 배를 타는 어부가 되었다. 북극의 문제는 온실효과에 의해 기온 상승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온실은 한겨울에 여름 과일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 유리나 비닐막이 태양에너지를 가두고 외부로 열이 달아나는 것을 막아내기 때문이다. 지구가 지금처럼 살기 좋은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역시 온실효과 덕분. 하지만 지금의 온실효과는 극점의 얼음을 녹여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극심한 홍수와 가뭄 같은 환경재앙을 일으키는 원흉이 되고 있다.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er Tomorrow)에서 보았던 대재앙이 상상 속의 일이라고 안심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자동차업계에 불어닥친 푸른 물결CO2뿐 아니라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 분진 등 자동차에서 나오는 많은 공해물질은 자연과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아울러 석유자원의 고갈이 가시화되면서 효율 높은 엔진이나 배출가스 저감 기술, 나아가 차세대 동력원 개발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졌다. 2005년 발의된 도쿄 의정서에 의해 CO2 배출 규제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다량의 CO2를 배출하려면 큰 돈을 내고 배출권을 구입하든지 CO2 저감을 위한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요즘 녹색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는 제조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소비자들에게 판매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공해물질을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공해산업. 하지만 이미 생활 필수품으로 자리잡아 생산을 함부로 줄일 수도 없다. 따라서 새차를 만들 때 재료를 적게 쓰고 공해 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엔진의 연소효율을 높여 배출가스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소형차 비중을 높이고 연비 좋은 엔진 개발이 필수다. 아울러 충전해서 쓸 수 있는 전기차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혹은 수소를 사용하는 무공해 연료전지차 개발과 보급을 서둘러야 한다. 한동안 고급차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자동차업계는 갑자기 불어닥친 미국발 경제한파와 석유자원 고갈, 환경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효율 좋은 소형차와 미래형 무공해차 개발에 힘쓰는 중.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를 파괴하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에 유익한 생활도구가 되고자 하는 자동차의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CO2 절감을 위한 노력지금까지의 자동차는 출력과 토크, 가속성능, 연비 등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CO2 배출량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공해물질을 줄이는 방식은 크게 연소효율을 높이는 것과 배출가스에서 걸러내는 것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앞은 휘발유 직분사나 고정밀 연소제어 등을 통해 연소를 최적화시킴으로써 공해물질의 발생을 줄인다. 뒤의 방식은 휘발유 엔진의 삼원촉매장치나 디젤의 분진 필터 등을 들 수 있다. CO2를 줄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엔진 배기량이다. 크라이슬러의 고성능 세단 300C SRT-8은 V8 6.1ℓ 425마력 엔진으로 km당 330g의 CO2를 뿜어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배기량이 큰 엔진이 CO2도 많이 나온다. 미국이 도쿄 의정서에서 탈퇴하고, 독일이 프랑스와 CO2 배출량 기준을 놓고 대립하는 이유도 두 나라의 대형차 비율이 높은 데서 기인한다. 덕분에 요즘은 작은 배기량으로 큰 출력을 내는 과급장치들이 주목받고 있다. 터보와 수퍼차저는 한때 공해의 주범으로 몰려 자동차 시장에서 퇴출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연소제어기술이 향상되면서 터보를 달고도 저연비가 가능해졌고, 소형 고출력 엔진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아우디 신형 S4가 V8 4.2ℓ 엔진을 버리고 V6 수퍼차저를 얹은 것이 좋은 예다. 직분사 방식 역시 공해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기술. 공기만 빨아들여 압축하고, 연료는 연소실에 고압으로 직접 분사한다. 디젤에서 전수받은 직분사 기술은 엔진의 압축비를 높일 수 있어 효율이 뛰어나고, 최적의 연소제어로 고성능을 끌어낸다. 대표적인 엔진은 폭스바겐/아우디가 사용 중인 2.0 FSI와 터보형인 2.0 TFSI. 아우디 A4에 얹은 2.0 TFSI 엔진은 최고출력 211마력으로 ℓ당 출력이 100마력을 웃돈다. 차체가 커졌음에도 10.0km/ℓ의 연비와 함께 CO2 배출량은 km당 154g. 최근 발표된 메르세데스 벤츠의 신형 E클래스 역시 직렬 4기통과 6기통 휘발유 엔진을 직분사화해 이전보다 연비가 20% 정도 좋아졌다. E200 CGI는 스타트/스톱 기능까지 갖춰 14.7km/ℓ의 연비와 함께 CO2 배출량이 159g/km으로 줄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지난해 디젤과 휘발유 엔진의 특성을 한데 묶은 디소토 엔진을 컨셉트카 F700에 얹어 선보이기도 했다. 배기량은 1.8ℓ지만 디젤의 압축착화와 휘발유의 스파크 점화를 상황에 따라 사용해 최고출력 238마력을 내고, 차무게가 1.7톤이나 되지만 하이브리드 구성으로 18.9km/ℓ의 연비를 가능케 하는 궁극의 내연기관이다. CO2 배출량은 127g/km. 얼마 남지 않은 석유 때문에라도 내연기관은 더 효율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작은 배기량으로 고효율, 고성능을 추구하다 보면 CO2는 저절로 줄어들기 마련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전기차어느 사이엔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저공해 청정기술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최신 승용 디젤과 비교해 연비나 공해물질 배출 등에서 앞서간다고 보기는 힘들다. 특히 미국은 장거리 주행이 많아 하이브리드의 장점이 극대화되기 힘든 환경. 이런 곳에서는 낮은 rpm으로 저연비 주행이 가능한 승용 디젤이 더 어울린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유별난 휘발유 선호 때문에 유럽산 디젤이 발을 붙이지 못했다. 미국은 디젤보다는 전기차 쪽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GM EV1이 실패작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전기 스포츠카 테슬라가 팔리고, 빅3이 다양한 컨셉트카를 선보여왔다. 전기차 보급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배터리 용량과 긴 충전시간 같은 사용상의 문제점이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하이브리드에 전기차 개념을 강화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주목받고 있다.엔진과 모터를 함께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하이브리드와 다를 것이 없지만 가정용 전원을 이용해 직접 배터리를 충전할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카에 전기차의 기능을 강화한 개념이다. 야간전기를 활용하면 저렴하게 충전할 수 있고, 배터리를 다 썼을 때는 엔진으로 움직이거나 충전도 가능하다. 따라서 일반 하이브리드에 비해 유지비와 공해 배출에서 유리할 뿐 아니라 주행거리도 길다.이렇게 되려면 일반 하이브리드카보다 큰 배터리가 필요하다. 프리우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프로토타입의 경우 2.6kWh의 배터리를 얹어 전기만으로 13km(일반 프리우스는 7km 정도)를 달린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니켈-수소 배터리보다 가볍고 용량이 큰 리튬-이온 배터리를 얹어야 해서 배터리 탑재공간이 늘어나고 값도 올라간다.자동차 역사상 최초로 시속 100km를 돌파한 것은 전기차였다. 하지만 배터리 발전이 느려 휘발유 엔진에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 전기에너지를 화학적으로 저장하는 배터리는 용량과 성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기 매우 어렵다. 순식간에 많은 전기를 충전하고, 강한 방전에 견디면서 수명이 긴 배터리는 꿈과 같은 이야기. 현재 가장 대중적인 Ni-MH(니켈-수소 저장합금)와 가벼우면서 용량이 큰 리튬-폴리머, 리튬-이온 그리고 뛰어난 안정성과 내구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Li-Fe(리튬-페라이트) 계열 등이 전기차용 배터리의 대표주자들이다. 최근 GM은 2010년 데뷔할 시보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 볼트의 에너지원으로 LG화학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선정했다. 배터리의 성능과 수명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만큼 내연기관이 없는 순수 전기차의 출현도 멀지 않아 보인다. 몇 분만에 연료를 가득 채울 수 있고 수백 km를 달려내는 엔진 자동차들과 달리 전기차는 충전에 최소 수십분(용량 일부만 충전시)에서 몇 시간이 걸리고, 1회 충전 주행거리 역시 100∼200km 수준이다. 주행거리를 늘이기 위해서는 배터리 용량을 키워야 하는데 그러면 차가 너무 무거워져 효율이 떨어지고 비용이 올라간다. 테슬라처럼 충전된 배터리를 통째로 교환해 주면 5분만에 끝낼 수 있지만 이 서비스를 세계 어디서나 받을 수 없을 뿐더러 다양한 배터리에 대응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완전한 전기차가 사랑받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전기차의 미래는  배터리의 성능 개선에 모든 것이 달렸다. 수소 연료전지의 미래연료전지는 아폴로 계획과 함께 우주시대를 열었던 기술이다. 수소와 산소를 공급해 전기를 만들어내는 연료전지는 말 그대로 연료를 사용해 전기를 만드는 장치. 배터리처럼 충전하지 않고 연료 공급만으로 우주선에 꼭 필요한 전기와 물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효율이 낮았고, 값도 무척 비싸 실생활에서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의 자동차 동력원으로 누구나 연료전지를 꼽는다. 배터리를 얹은 전기차는 긴 시간 충전해야 하지만 연료전지는 액체 혹은 기체상태의 연료에서 전기를 만들기 때문에 충전이 간편하고 한 번 주입으로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전기로 모터를 굴린다는 점에서는 전기차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바닥을 보이고 있는 석유와 달리 수소는 지구상에 무한대로 존재한다.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3/4이 수소다. 연료전지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전기와 순수한 물이므로 환경에도 이롭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동력원이다. 하지만 실용화를 위해서는 높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좁은 공간에 수소를 많이 저장하기 위해서는 액체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수소의 녹는점은 영하 252.8도. 더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액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조금 높은 온도에서 액체로 만들려면 엄청난 압력을 가해야 하므로 안전성 문제가 생긴다. 현재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연료전지차 기술표준에서는 700기압 수소용기의 안전성 확보를 검토 중이다. 고압용기 외에 금속분자 사이에 수소를 저장하는 수소저장합금도 있다.값이 싸면서 효율이 좋은 연료전지 개발도 필수요소다. 아직까지는 가격 경쟁력을 지니기 힘든 현실. 혼다가 판매를 시작한 최초의 연료전지차 FCX 클러리티의 값은 약 1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 수퍼카를 사고도 남는 금액이다. 하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고 최고의 연료전지차 메이커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혼다는 월 이용료 600달러(약 82만 원)에 리스 판매를 시작했다. 할리우드 스타 등 유명인사들이 주요 고객. 혼다는 10년 내에 1만 달러(약 1천370만 원) 이하의 연료전지차를 만들겠다고 장담했다.연료전지차는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만 운행할 수 있다. 완충전 후 주행거리가 448km나 되지만 이곳에서만 수소충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극저온으로 운반, 취급해야 하는 액체수소는 일반 주유소에서 취급할 수 없고, 충전에 위험도 따른다. 미국처럼 광활한 대륙에 수소 충전소를 건설하는 일은 값싸고 성능 좋은 연료전지차를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워 보인다. 10여년의 개발기간과 오랜 테스트를 통해 연료전지 자동차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지만 연료전지차가 실용화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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