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자동차상식

OZ Racing F1과 WRC를 통해 최고의 .. 2004-01-26
F1과 WRC, 인디카 등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경주차에 쓰여 성능이 입증되고, 이를 바탕으로 톱 브랜드로 성장한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달에 소개하는 ‘OZ Racing`은 휠 부문에서 지존을 이루고 있는 이태리 메이커다. OZ가 탄생한 해는 1971년. 자동차와 모터스포츠에 열중해 있던 실바노 오셀라도레와 피에트로 젠이 의기투합해 이태리 비센차 근교의 주유소에 작은 작업장을 차린 것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회사의 이름은 두 사람의 성을 따서 ‘O·Z’라고 지었다. 82년, 람보르기니에 휠 독점 공급 레이싱에 빠져 있던 두 엔지니어는 스스로 만든 경합금 휠을 미니 쿠퍼에 달고 각종 레이스와 랠리에 출전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입소문을 탔고, 사업규모도 서서히 커졌다. 인지도를 높여 가던 O·Z는 1978년 현재 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이스나르도 카르타를 맞이해 캐피탈 회사인 O·Z S.p.A.로 새롭게 태어났다. 때를 같이해 현대식 설비를 갖춘 휠 제작공장을 설립했다. 1982년 람보르기니의 독점 공급업체로 지정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2년 후 O·Z S.p.A.는 ‘OZ Racing’을 독립시켜 모터스포츠용 제품 개발을 전담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OZ Racing은 F1 전용 휠 제작에 착수한다. 첫 작품은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투피스 휠로, 파트레제와 치버가 운전한 알파로메오 경주차에 끼워졌다. 레이스용 휠을 본격 제작하면서 OZ는 1987년 모터스포츠 인재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Racing Wheels` 상을 만들었다. 역대 수상자는 고든 머레이(1988년), 카를로스 사인츠(1990년), 미하엘 슈마허(1991년), 자크 빌르너브(1994년), 프랭크 윌리엄즈(1996년) 등이다. 89년부터는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기 시작한다. 그 해 일본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90년에는 OZ 휠을 쓴 도요타 셀리카가 WRC의 챔피언에 올라 정상급 브랜드로 도약하게 되었다. 92년에도 우승을 차지했다. 93년 OZ 레이싱은 경쟁이 치열한 독일에 두 번째 자회사를 설립했고, F1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드라이버는 윌리엄즈팀의 알랭 프로스트였다. 이듬해 독창적인 스타일링을 이끌어 내기 위해 디자인 센터를 설립하고 96년에는 프랑스에도 자회사를 설립했다. 98년에는 ISO 9001 인증을 획득해 화제가 되었다. OZ는 이를 통해 이태리 메이커로는 처음으로 완벽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99년 OZ는 미국과 스웨덴에 자회사를 설립했으며, 2000년부터 푸조 206 WRC에 휠을 공급했다. 2001년에 푸조가 WRC 매뉴팩처러즈 타이틀을 차지하고 2002년 M. 그론홀름이 우승함으로써 OZ 휠의 진가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국내에는 1999년에 설립된 고성능 파츠 전문업체 ‘폴포지션’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수입차의 업그레이드는 물론이고 국산차에도 어울리는 제품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2003년에는 림 부분을 교체할 수 있는 제품이 소개되어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폴포지션 ☎(053)741-7708
ABT Touareg VS10 2004-02-19
폭스바겐/아우디 전문 튜너 ABT는 승용차 최강의 토크를 자랑하는 폭스바겐 SUV 투아레그 V10을 더욱 강력하게 다듬었다. ABT를 대표하는 스포츠라인은 에어로파츠를 포함한 각종 드레스업 옵션과 엔진 및 서스펜션 튜닝까지 포함하고 폭스바겐과 아우디 그리고 세아트의 모든 모델에 대응하고 있다. ABT 스포츠라인의 투아레그 VS10은 우선 신형 프론트 그릴과 앞뒤 범퍼 등의 에어로파츠와 스피디한 느낌의 루프윙, 대형 휠로 겉모습을 꾸몄다. 다른 폭스바겐용 ABT 스포츠라인 모델과 일맥상통하는 앞모습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모습이 매력. 4개의 배기 파이프와 22인치에 이르는 5스포크 휠은 이 차의 잠재된 힘을 은근하게 풍겨낸다. 지금까지의 엔진 튜닝은 대부분 휘발유차에 집중되었지만 요즘은 시장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디젤 튜닝도 늘어나는 추세. ABT는 투아레그용 V10 5.0X 313마력 엔진을 바탕으로 출력을 373마력까지 끌어올렸다. 87.7kg·m로 높아진 토크는 승용 디젤 최강의 수치. 독자 튜닝한 투아레그의 에어 서스펜션은 ALC(ABT Level Control)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기본 상태에서 지상고가 30mm 낮아져 온로드 주행에서의 안정성이 개선되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지상고가 10mm 낮아지고 댐퍼 감쇄력이 늘어나 코너링 성능을 한층 높인다. 가장 낮은 위치가 되면 기본형에 비해 60mm나 낮아진다.
임현필과 현대 갤로퍼 불꽃만큼이나 정열적인 차 사랑 2004-12-23
얼마 전 이메일이 날아왔다. 열혈 오프로드 매니아라고 소개하면서 ‘4×4 매니아’로 자신을 소개해 줄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A4 용지에 빼곡이 적힌 사연과 튜닝 내역, 그리고 멋들어진 폼으로 찍은 사진까지 보냈던 것. 그를 만나러 인천으로 향했다. 편지의 주인공은 임현필(26) 씨. 그의 파트너는 1992년형 현대 갤로퍼다. 스포츠 캡 위에 선글라스를 걸치고, 힙합 스타일로 한껏 멋을 부렸다. 번쩍이는 액세서리도 눈길을 끈다. “어! 목걸이하고 팔찌까지 했군요. 순금인가요?” “모조품입니다. 비에 젖으면 도금이 벗겨질지 모르니 비 오기 전에 사진 먼저 찍으면 안될까요(웃음)?” SUV와 인연을 맺은 해는 2001년. 제대 후 잘 꾸며 놓은 구형 코란도를 보고 나서다. 우람한 차체와 화려하게 꾸며진 실내가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오로지 SUV를 사겠다는 일념으로 한 푼 두 푼 모아 중고 갤로퍼를 손에 넣었다. 차를 모르던 사람이 오너가 되고, 꾸미는 맛에 푹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기 마련. 공격적인 오프로딩을 위해 이곳저곳 튜닝도 했다. 고장이 잦아 뜯고 조립하기를 수십 번, 그러는 사이 차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소문난 명물 그의 갤로퍼는 화려하다 못해 어지럽다. 인천에서는 명물로 소문이 났고 특이한 도색 때문에 웹사이트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일명 불꽃 도색.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선명하게 그려 넣었다. 아는 사람이 직접 디자인하고, 색칠을 해주었다. 사이드 미러는 갤로퍼Ⅱ의 것을 달았다. 순정품보다 크고 넓어 뒷시야 확보에 좋다. 판 스프링은 갤로퍼 롱보디에서 가져왔고 범퍼에는 헬라 550 안개등 2개, 루프에는 4개의 서치등, 테일 게이트에는 후진등이 달려 있다. 어지럽기는 실내도 마찬가지다. 대시보드 고유의 색깔을 내기에는 차가 너무 낡아 은색 스프레이 페인트로 단장했다. 빨강이나 파랑 등 원색을 써 보기도 했지만 마르는 시간이 길고 표면에 막이 생겨 몇 번을 지웠다. 스티어링 휠은 티뷰론, 실내등은 프론티어, 시트는 갤로퍼Ⅱ에서 떼어 왔다. LED도 곳곳에 심었다. 음악이 나올 때마다 스피커 안쪽에 넣은 LED에서 빛을 쏘고, 센터콘솔 아래 LED는 A필러에 붙여 놓은 가족사진을 비춘다. 기어 레버는 곰인형 푸우가 감싸고 있다. 아기자기하고 꼼꼼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순정 엔진이 자주 말썽을 부려 현대 포터의 것을 통째로 가져다 얹고, 33인치 타이어에 맞춰 기어비를 5.86으로 바꾸었다. 외관의 야성미는 오프로드에서 천하무적임을, 아기자기한 실내는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모든 지침서는 동호회에서 나온다. 평일에 쉬는 직업을 갖고 있어 오프로드에 자주 나가지 못하지만 정모가 있는 날은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오프로딩 초기에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동호회에 가입했습니다. 지금은 인천 지역 갤로퍼 모임에 나가고 있어요. 모임이 있는 목요일이 기다려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일주일간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는 날이니까요.”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기에 임현필 씨는 끝까지 갤로퍼와 같이 가겠단다. 만약 다른 차를 사더라도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경기에도 나갈 생각입니다. 레이스를 뛰면 차가 망가져 폐차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어림도 없어요. 모르지요, 드림카인 허머를 주면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갤로퍼 동호회 AGG 클럽장 정범희 남의 차를 보면.. 2004-11-24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 꾸벅 인사를 하는 모습이 색달랐던 정범희(31) 씨. 햇빛에 약한 눈 때문에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며 잠시 선글라스를 벗어 보인다. 눈가에 하얀 안경자국이 남아 있다. 정범희 씨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낚시광이다. 애지중지하는 2000년형 갤로퍼 롱보디의 트렁크에는 낚시도구가 그득하다. 천장에는 2대의 릴낚시가 가지런히 매달려 있다. 시간만 나면 낚시터로 달려가는 그에게 낚시는 일상을 벗어나는 탈출구. 낚싯대를 드리우고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포윙스’서 오프로딩 즐기다 DIY로 바꿔 정범희 씨에게 낚시는 정신적인 휴식과 재충전 외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갤로퍼와 가까워진 계기가 된 것이 낚시였고, 그 덕분에 활동영역이 훨씬 넓어졌다. 1999년 10월이었다. 낚시터에 다니기 위해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이 갤로퍼 이노베이션이었다. 1999년형 검정색 새차를 사서 낚시터로, 산으로 신나게 타고 다닐 무렵 인터넷에서 오프로드 동호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망설임 없이 뛰어든 곳이 오프로드 동호회 ‘포윙스’(4wings). 낚시를 위해 산 갤로퍼 때문에 오프로드 매니아가 될 줄은 몰랐다. 한동안 정신없이 지내다가 한 인터넷 게시판에서 갤로퍼 동호인끼리 의기투합해 자동차 클럽을 만들었다. 정범희 씨가 ‘클럽장’을 맡고 있는 AAG(www.clubaag.com)가 그것이다. 지난해 5월 문 연 클럽 AAG는 ‘All about Galloper’라는 구호 아래 DIY를 주로 하는 동호회. 갤로퍼를 타는 오너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갤로퍼의 빈틈을 메우는 DIY로 건전한 여가활동을 즐기고 있다. 정범희 씨가 AAG의 클럽장을 맡은 것은 올해 초다. 갤로퍼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동호회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감투(?)를 쓰게 되었다. 그는 1999년형 이노베이션에 이어 2000년형 롱보디 등 갤로퍼만 두 대째 타고 있다. 이노베이션을 탈 때는 “DIY로 새차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DIY에 푹 빠져 지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곧바로 작업에 옮겨 기상천외한 작품들을 쏟아냈고, 솜씨를 탐내는 동호인들에게 노하우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아들 재우(5)가 크면서 2인승 밴을 타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바꿔 탄 차가 2000년형 갤로퍼 롱보디입니다. 롱보디는 이노베이션보다 운전도 편하고 장거리 여행을 해도 덜 피곤해요. 가족이 함께 탈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은 점이지요.” 정범희 씨의 갤로퍼 롱보디를 찬찬히 살펴보니 ‘고수’의 솜씨가 곳곳에 숨어 있다. 우선 낚시와 DIY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트렁크에 만들어 올려놓은 공구박스가 일품이다. MDF판을 트렁크 공간에 꼭 맞게 재단한 뒤 나사를 한 개도 박지 않고 끼워 맞추었다. 또 폐차장에서 싸게 산 르노삼성 SM525의 ECM 룸미러를 달았다. 결합부위의 크기와 부품이 꼭 맞아 손쉽게 작업할 수 있었다. 정범희 씨가 타고 있는 갤로퍼 롱보디는 주행거리가 16만km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앞으로 30만km는 더 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DIY는 꼭 필요한 것만 하면 돼요. 차를 망치면서 DIY를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고, 금방 싫증나게 되거든요.” 고수가 마지막으로 건넨 충고 한 마디가 귀에 쏙 들어왔다. “DIY 아이템은 별다른 것이 없어요. 다른 차를 유심히 살펴보면 내 차에 꼭 필요한 것이 보이지요.”
이성준과 록스타 R2 그리고 레토나 태권도만큼이.. 2004-11-24
지난 8월에 열렸던 아테네 올림픽 하이라이트는 문대성 선수의 태권도 경기였다.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임에도 메달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소극적으로 경기에 임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문대성의 ‘뒤 후려차기 한방’은 비판을 단숨에 날려 버렸고, 그의 ‘KO 장면’은 앞으로 TV에서 애국가가 나올 때마다 볼 수 있게 된다. 이번 달 4×4 매니아인 이성준(32) 씨. 6살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태권도에 입문했고, 초등학교 3학년 때는 피아노 치는 것이 싫어 태권도장으로 내빼기에 바빴다. 이후 본격적으로 무도인(?)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 공인 6단. 주니어 국가대표를 지냈으며 서울과 경기도 하남, 기흥 3곳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프로딩은 태권도와 닮은꼴로 이성준 씨에게 잘 어울리는 분야. 차에 대한 사랑도 남달라 차를 넉 대나 갖고 있는 매니아다. 기아 레토나와 아시아 록스타 R2는 오프로딩 파트너고, 현대 투스카니로는 스피드를 만끽하며 스타렉스는 도장을 찾는 제자들을 태워 나른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차가 레토나다. 취재 당일, 레토나 뒤를 다른 차가 가로막고 있어 하는 수없이 록스타를 끌고 왔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레토나에 대한 진한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오프로딩 경력은 5년차. 1999년 우연히 레토나를 사들인 뒤 투어링 동호회를 따라다녔다. 초보들이 그렇듯, 긁히고 찌그러지기 일쑤였고 뒤집어지기도 수십 번. 결국 폐차를 시켰다. 뒤이어 33인치를 끼운 뉴 코란도를 샀지만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다시 구형 코란도로 갈아탄다. 그러나 오프로딩 초보시절 고락을 같이 했던 레토나가 그리워 다시 손에 넣는다. “여러 사이즈의 타이어를 끼웠는데, 레토나에는 32인치가 딱 맞네요. 기아 와이드 봉고용 LSD와도 매치가 잘되더군요. 등속 조인트는 21번 부러뜨렸습니다. 트랜스미션은 3번 내렸고 기어비는 6번 바꿨습니다.” “하지만 록스타 R2를 끌고 왔으니 R2 자랑도 해야지요.” “록스타를 처음 산 뒤 튜닝을 위해 리프트로 들어올렸는데 막막하더군요. 이전 오너가 뗄 수 있는 모든 곳을 용접해서 붙여 놨어요. 용접기로 떼고 붙이기를 수십 번, 차값보다 용접봉값이 더 나왔는지도 모르겠어요. 라디에이터를 교체하고 그릴을 떼어내 철망을 둘렀습니다. 시멕스 타이어가 무거운 탓에 강철봉으로 뒤 범퍼 겸용 예비 타이어 지지대를 붙여 놓았어요.” 펜더를 잘라낸 뒤 FRP로 오버펜더를 만들고 앞뒤에 로커를 갖추었으며 기어비는 6.14로 바꾸었다. 이전에 달려 있던 캔버스톱은 뒷좌석 승객의 머리에 닿아 랭글러식 캔버스톱으로 바꿨다. 어림 잡아 유명산은 500번 정도 올랐다. 어디에 어떤 말뚝이 박혀 있는지 알 정도. 진창에 빠져 보험 서비스를 요청했지만 서비스 횟수를 다 썼고, 가까스로 부른 견인차마저 진창 속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게 되자 대형 버스를 견인하는 트레일러를 동원시키기도 했다. 철원 여우골에서는 이틀 동안 고립되었다. 한밤중 차안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삵’이 나타나 보네트에서 한참을 어슬렁거렸다. 더운 여름 창문도 열지 못하고 밤을 새운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도장 사범까지 오프로딩 매니아로 만들어 버렸으니 도장에서 학생들 가르칠 사람이 남아나지 않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제자의 부모가 운영하는 튜닝숍을 애용해 싸게 꾸밀 수 있었다며, 이참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달란다. 그는 곧 레토나에 프론티어 엔진을 얹을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프론티어 엔진이 레토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엔진룸 틀을 다시 짜야 한다. 그리고 레토나 엔진과 베스타 레인보우의 트랜스미션을 조합해 록스타를 꾸밀 생각도 갖고 있다. 다음에 만나면 멋지게 튜닝한 레토나, 록스타와 함께 화려한 발차기 솜씨를 보여주기로 했다.
‘칸사랑’ 부시삽 이영길 제품 디자인·설계하는 직업.. 2004-10-27
첫느낌에 반해 버렸어요. 마음이 아주 편안했습니다.” 연인에 대한 추억이 아니다. 이영길(40) 씨가 테라칸만 두 대째 타게 된 사연이다. 우연히 테라칸의 운전석에 앉아 볼 기회가 생겼고,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이 차가 내 차구나’ 하는 느낌이 전해졌다.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SUV는 다 몰아 봤지만 왠지 부담스럽고 거북해 곧장 내리곤 하던 그였다. “그 길로 2001년형 테라칸 2.5를 샀어요. 낚시와 여행을 좋아해서 한동안 신나게 타고 다녔지요. 한 2년 탔더니 덩치에 비해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주저 없이 2.5를 팔고 2003년형 JX290으로 바꾸었어요.” 테라칸과 인연을 맺고는 ‘일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새로운 느낌을 가져 보자’는 생각으로 동호회에 가입했다. 그가 적을 두고 있는 동호회는 국내 테라칸 동호회 가운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칸사랑’(www.khansarang.com). 정회원만 1천600명인 대가족이다. 하지만 동호인들과 적극적으로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회사 업무로 항상 시간에 쫓겨야 했고, 지난해 초 개인사업을 시작한 뒤로는 한동안 ‘잠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지난해 7월쯤 동호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칸사랑 부시삽에다 ‘서울·경기 남부지역장’이라는 감투까지 쓰고 있다.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보니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많아요. 동호회에 가입하게 된 이유도 테라칸을 좋아하는 이유가 반, 동호회 사람들과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가 반이었어요.” 이영길 씨는 제품을 디자인하거나 기구를 설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직업적인 발명가인 셈이다. 항상 무엇이든 고안하고 만들어야 하니 스트레스와 친해져야 하는 직업이다. 그는 직업병(?)처럼 테라칸의 DIY에 나서고 말았다. “완벽한 차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저것 손대고 싶은 곳이 한둘이 아니지요. 시간이 날 때마다 메모하고 설계도도 그립니다. 동호회 모임에서 회원들이 아이디어를 건네면 직접 설계해서 만들어 주기도 하고요.” DIY로 오프로드 달리기 준비해 그가 고집하는 DIY는 동호인들과 오프로드 여행을 즐기기 위한 준비작업이 대부분이다. “테라칸은 휠베이스가 길어서 오프로드에 적합하지 않아요. 그래서 트랜스퍼 케이스를 보호하는 언더커버를 제일 먼저 만들어 달았습니다. 또 범퍼 아래쪽에 오일쿨러가 있어서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앞쪽에도 언더커버를 댔지요.” 이영길 씨의 테라칸은 31인치 타이어를 끼워 키가 껑충하다. 쇼크 업소버도 바꾸었다. 스프링도 2인치 긴 것으로 교환해 순정보다 훨씬 탄탄해졌다. 이렇게 손을 보고 나니 훨씬 듬직해 어딜 가더라도 안심이다. 차라리 테라칸을 팔고 본격 오프로더를 사면 어떨까? “그럴 수는 없지요. 오프로드 여행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차를 바꿀 생각은 없어요. 대신 생각해낸 것이 버기입니다. 언젠가는 버기를 손수 만들 계획입니다. 록크롤링 경기가 열릴 때마다 빠짐없이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인터뷰 중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버기 설계도가 그려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버기를 완성하면 트레일러에 싣고 오프로드에 나갈 겁니다. 물론 테라칸으로 끌고 가야지요.”
송창호와 구형 코란도 “소프트톱도 직접 만들어 .. 2004-10-27
튜닝에 대한 기준을 온로드에 맞추느냐 아니면 그 반대로 하느냐에 따라 차 상태는 크게 달라진다. 오프로딩 매니아들 사이에서 최고의 튜닝 재목으로 꼽히는 구형 코란도도 가꾸기 나름이다. 구형 코란도의 클래식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드코어 정복을 위한 최고의 튜닝 파트너로서 의미가 크다. 구형 코란도의 야성미에 반해 오프로딩 매니아가 된 사람, 송창호(32) 씨의 이야기다. 말투를 보면 경상도 남자고, 말하는 속도는 충청도 톤이지만 오프로드만큼은 방방곡곡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오프로딩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차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현대 스쿠프를 타던 시절 가끔 속도를 내는 평범한 운전자였고, 정비는 당연히 정비업소에 맡겼다. 하지만 이제는 오프로딩 골수팬이 되었다. 웬만한 곳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하드코어 코스만 찾아다닌다. 뜯고 조립하고, 떼어내고 용접하기를 밥먹듯이 한 결과 정비사 이상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3년 전 장안동을 지나다 우연히 본 38인치 타이어를 끼운 구형 코란도에 호기심이 갔다. 그렇게 큰 타이어는 처음 봤거니와 ‘저 차의 용도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숍에 들어가 오너를 만나고 튜닝 방법에 대해 묻는다. 오프로딩을 할 때 어떤 기분인지 얘기를 듣고는 스포티지를 팔고 구형 코란도로 바꾼다. 오프로딩 초보자에게 입문 코스나 다름없는 유명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눈감고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얘기를 많이 들었던 곳이다. 오프로드 운전방법 등 이론공부도 했고 운전경력도 꽤 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만히 보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말이 딱 맞았다. 초입부터 헤매기 시작해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하지만 긴장한 가운데서도 잠깐이나마 느꼈던 스릴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차 꾸미기는 오너 하기 나름 현재 타는 1993년형 구형 코란도를 사서 본격적인 오프로딩을 시작하고 튜닝법도 하나둘 익혀 나갔다. 그의 주특기는 ‘헝그리 튜닝.’ 돈은 적게 들이고 모든 작업은 손수 해내는 것이다. 그가 자주 찾는 곳은 폐차장. 수명이 다한 차에서 뽑아낸 쌩쌩한 부품이 많다. 말만 잘하면 거저 얻을 수도 있고, 싼 값에 종류별로 다양하게 구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중고 제품으로 꾸몄지만 그의 차는 화려하게 바뀌어 있었다. 모든 작업은 그의 손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접근각을 높이기 위해 앞 범퍼를 떼어낸 뒤 둥근 강철봉으로 새 범퍼를 만들고 그 위에 굴삭기용 램프를 달았다. 또 앞뒤 펜더 4개를 잘라내고 휠하우스 안쪽에 고무판을 덧대 오버펜더를 만들었다. 대시보드 위에는 갤로퍼용 고도계가 자리 잡았다. 남들은 쇼크 업소버만큼은 최고를 쓴다지만 폐차장에서 구한 현대 마이티 트럭용 쇼크 업소버를 달았다. 지금 타고 있는 하드톱이 망가질 경우 직접 소프트톱으로 바꿔볼 계획도 있다. 오프로딩, 특히 하드코어 쪽을 즐긴다면 당연히 윈치도 얹어야 할 터이지만 송창호 씨는 손사래를 친다. 그의 말을 빌리면 헝그리 튜닝에 어긋날 뿐 아니라 35인치 타이어에 오버액슬까지 더해 지상고는 한마디로 ‘하늘 높이’다.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래도 빠져 나오지 못한다면 견인바로 충분하단다. 로커 역시 그에게는 사치품이다. 오프로딩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다니기에 자연을 훼손한다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버린 쓰레기가 아니더라도 있는 만큼 주워 오면 되고, 뭉개진 언덕을 보았다면 당연히 복구해 놓아야 합니다. 보살피는 만큼 보살핌을 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전준호와 쌍용 뉴 코란도 첫차를 드림카로 뽑은 행운.. 2004-09-20
발랄하고 겸손하며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주장도 뚜렷한, 상대를 즐겁게 만드는 친구다. 꼼꼼한 손놀림에 DIY로 예쁘게 차를 꾸미고 오프로드도 즐겨 다닌다. 전준호(21) 씨의 차는 2003년형 쌍용 뉴 코란도. 고등학교 3학년, 만 18세가 되자마자 운전면허를 따서 바로 차를 몰았으니 운전경력 3년이다. DIY 성공의 열쇠는 부지런한 발품 DIY에 대한 관심은 뉴 코란도를 뽑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동호회에 가입한 뒤 첫 모임에 나가 배운 것이 DIY였다. 작은 것 하나를 달아도 예쁘고 신기했다. 차를 기본형으로 샀기에 여기저기 단장을 해서 분위기를 바꿔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돈. 그래서 택한 것이 ‘헝그리 DIY’다. 모임에서 재료를 하나 둘씩 얻고 선배가 일하는 카센터에서 부품을 구했으며 조각조각 잘려 버려진 천 조각도 DIY의 재료가 되었다. 해치 도어 방음재로 쓴 스펀지와 그 위에 덮은 인조가죽은 아버지 회사에 굴러다니던 것을 썼고, 천장 방음재도 바닥에 들어가는 스펀지를 가져다 붙였다. 그래도 효과는 만족스럽다. 가장 비싼 값을 치른 DIY는 차 밑에 새로 단 혼으로 2만8천 원을 썼다. 뒤쪽 타이어에서 혼까지 연결한 에어호스 역시 공짜로 얻은 것이다. “당분간은 돈을 아껴야지요. 그리고 젊지 않습니까. 조금만 발품을 팔면 좋은 재료를 많이 구할 수 있어요.” 차 실내외 분위기를 바꿔 주는 LED DIY도 전문가 이상의 실력이다. 보네트 위쪽에는 파란색을, 뒤쪽 범퍼 아래의 안개등 커버에는 LED를 꽂은 뒤 방향지시등 선에 연결했다. 운전석 인스트루먼트 패널 위쪽 빨간색 LED는 차안을 붉은 빛으로 물들인다. 시트지를 사다가 적재함 창 쪽에 붙였는데, 크롬을 입힌 것처럼 보여 새 모델이 나왔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렸을 적 프라모델 같은 각종 만들기 대회에서 여려 차례 입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남다른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오프로딩도 빼놓을 수 없는 여가생활이다. 31인치 타이어를 끼운 것 외에 튜닝한 곳은 보이지 않고 차체에 흠집도 없다. 초보자 코스를 다니든지 오프로드 드라이빙 테크닉이 뛰어나든지 답은 둘 중 하나.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다. “이 차 뉴 코란도 CT예요.” 4WD로도 힘든 오프로딩을 어떻게 두 바퀴로 도전할 생각을 했을까. 비결은 무리하지 않고 갈 수 있는 곳만 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덤볐지만 무턱대고 도전하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조심하고 있습니다.” 두 바퀴만 굴려도 33인치 타이어가 가는 곳은 무리 없이 쫓아갈 수 있다고 자랑한다. 대학 졸업반이면 군대문제도 생각할 나이지만, 차를 2년 이상 세워 둘 일이 걱정되어 입대를 미루고 있다니 말 다했다. 내년 말이면 뉴 코란도가 새롭게 바뀔지 모른다고 했더니 “그러면 중고차로 새로 살 것” 같다며 지금의 디자인이 좋단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대포’였다고 소개하는 전준호 씨. 그러나 도맡다시피 한 봉사활동으로 상을 받은 덕분에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부모가 자신을 믿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드림카를 첫차로 뽑은 것도 부모 덕택이다. 헤어질 무렵 갑자기 기자를 부르더니 기사에 한 마디 꼭 넣어 달라고 한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이정회와 기아 스포티지 극과 극은 통하는 법 2004-09-20
우연히 보게 된 탁월한 글 솜씨, 구리빛 얼굴에 단단한 근육질 몸매, 굵은 목소리에 머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지금은 오프로딩에 푹 빠져 산다지만 그의 과거가 궁금하다. 이번 달 매니아는 스포티지로 오프로드 여행을 즐기는 이정회(36) 씨다. 마음의 평화를 찾아준 오프로딩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 보자. 그의 명함에는 웹사이트 오프로드 어드벤처 기획실장이라고 적혀 있다. 직업상 오프로드 동호인들을 만나고 그들과 여행을 떠나며 때로는 혼자서 오프로드를 헤친다. 인터뷰를 하고 여행기를 써서 사이트에 올리는 일도 이 실장의 몫. 대학 때는 암벽등반을 즐기며 산악부에서 살다시피 했다. 바위틈을 잡고 있는 한쪽 손이 떨려 오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짜릿한 전기가 느껴진다. 놓치면 죽는다는 공포감이 밀려온다. 마지막 힘을 쏟아 정상에 선 순간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으면서도 다음 등반을 계획한다. 멋진 그의 몸매는 하루, 이틀 걸려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산 정상에서, 해와 가장 가까이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녔던 생활의 결과물이다. 일찍부터 록음악에 심취했다.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온몸을 흔든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공중에 휘날린다. 남들은 굉음이라고 하지만 하드코어 음을 뱉어내는 기타의 울부짖음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하드코어 음악은 일부 매니아만이 즐겼던 분야. 결국 4년간 운영한 클럽을 닫아야 했고, 그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던 그를 이끌어 준 것이 바로 오프로딩이다. 그는 “극과 극은 통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암벽등반이 그렇고 록음악도 마찬가지며 하드코어 오프로딩 또한 ‘극점에서 최고의 희열을 맛 볼 수 있는 장르’였다. 오프로딩 전에도 스포츠카로 쏘며, 최고의 속도감을 만끽하곤 했다. 랠리에서 뛰는 스포티지의 터프함이 그를 오프로드로 이끌었다. 스포티지 동호회를 기웃거리고 튜닝용품을 사들이며 차를 꾸미기 시작한다. 밤낮으로 동호회를 쫓아다니며 본격적인 오프로더로 변신한다. 31인치 타이어를 끼웠지만 33인치가 움직일 수 있는 곳도 문제되지 않는다. 란초 쇼크 업소버와 프로콤프 코일 스프링을 끼운 뒷바퀴는 엄청난 휠트래블을 자랑한다. 휠하우스 주위는 33인치 타이어를 끼우기 위해 깔끔하게 잘라냈다. 돌에 찧어 하체가 찌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도어 아래에는 두툼한 강철 사이드 스텝도 달았다. 야간 드라이빙을 위해 지붕에는 헬라 할로겐 램프를 마련했다. 차 지붕에는 항상 하이 리프트 잭을 싣고 다닌다. 튜닝도 그렇고 오프로드 운전실력도 2년도 안된 경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 북배산부터 동막골, 아침가리골, 지장산 등 국내에 내로라 하는 코스는 거의 다 주파했다. 이제는 동호인들을 이끌고 공격조로 나설 정도. 많은 시간을 오프로드에서 보내고 관련된 일을 하다 보니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일도 많이 겪는다. 함부로 내던지는 쓰레기가 그렇고, 길이 막혔다고 논이며 밭이며 무작정 밟아대는 경솔함이 그것이다. 최근 동호회 회원들과 ‘푸르미 봉사대’를 꾸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간이 날 때마다 줍고 가꾸며 정리하는, 가장 순수한 봉사활동이다. 또 대한적십자협회 관계자들과 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쉬운 일일수록 지키기 어렵다고 하잖아요. 버린 만큼 주워 오면 됩니다. 함께 하고 싶은 분은 누구나 환영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아준 오프로드, 자신을 도와주고 이끌어 주었기에 거기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다. 그는 오래도록 자연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다.
무쏘 SUT와 박종구 곳곳에 아내 사랑이 배어 있는.. 2004-08-31
컴퓨터 프로그래머 박종구(36) 씨. 그는 앳된 얼굴에 수줍음을 많이 타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얼굴이 유난히 희고 어려 보여서 비결을 물었더니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업상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하니 햇빛을 쬘 기회가 없어요. 부엉이처럼 낮에는 자거나 놀고(?) 밤새워 일하는 것을 즐겨서 그런가 봅니다.” ‘DIY광’이라는데, 그럼 언제 DIY를 하는 것일까. 대답은 “시간이 날 때마다”다. 박종구 씨의 DIY는 특이하게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지난해 초부터 1년 동안 회사 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습니다. 작년 7월 차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시애틀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어요. 여행도 할 겸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출발 전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TV를 단 것이 DIY의 시작이었습니다.” 중고 시보레 캐벌리어(Cavalier)의 대시보드에 3만 원을 주고 산 7인치 흑백 브라운관을 단 것이 첫 작업이었다. 대시보드를 뜯어 보니 별것 아니어서 DIY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동호회 ‘무쏘 스포츠 DIY’에서 기본기 배워 올해 초 귀국한 박종구 씨가 마련한 차는 쌍용 무쏘 SUT(구 무쏘 스포츠). 화물차로 분류되어 세금이 싼데다 주말여행을 즐기는 그에게 더없이 좋은 차다. 무쏘 SUT를 사자마자 DIY에 대한 갈증을 느껴 다음 카페의 ‘무쏘 스포츠 DIY’(cafe.daum.net/msdiy)에 회원으로 가입했고 이곳에서 기본기를 익혔다 “무쏘 SUT는 의외로 허술하게 만들어졌어요. 동호회에 가입한 것도 내 손으로 좀더 완벽한 차를 만들고 싶어서였습니다. 불편한 부분을 고쳐서 편의성을 높이는 쪽으로 DIY의 방향을 잡았어요.” 맨 먼저 한 작업은 아내를 위해 동반석 앞 선바이저에 램프가 들어간 화장거울을 넣은 것. 에쿠스의 부품을 1만 원에 사서 달았다. 화장거울의 크기에 맞추어 선바이저를 오린 뒤 접착제로 붙이고, 맵등의 전원을 연결했다. 간단한 작업 같지만 천장 패널을 모두 뜯어야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박종구 씨는 대단한 애처가였다. 동호회 모임 때 필수장비인 무전기를 센터콘솔 박스 안에 숨긴 것도 아내를 위한 배려였다. “아내도 DIY를 좋아해요. 하지만 임신 중이어서 예민해졌습니다. 아기를 가진 뒤에는 쓸데없는 데 돈 쓰고 시간 낭비한다며 싫은 내색을 하더군요. 그래서 아내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티 나지 않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대시보드에 단 공기청정기는 새차 냄새가 아내와 아기에게 해로울까 봐 마련한 것이고, 아내의 선글라스를 함께 넣기 위해 렉스턴용 오버헤드 콘솔박스를 달았다. 공기청정기는 전문업체가 만든 완제품이지만 배선을 위해 인스트루먼트 패널을 모두 뜯어내고 작업했다. 렉스턴용 오버헤드 콘솔박스도 천장 마감재를 모두 뜯어내야 했다. 그런 다음 천장에 철판을 가로 대고 그 아래 나사를 끼울 있도록 나무를 덧대는 큰 공사를 마치고 나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그밖에 아내가 좀더 고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2열 시트 뒤에 스피커를 달았다. 평일에는 차를 거의 쓰지 않고, 아내와 주말여행을 갈 때나 시동을 건다는 박종구 씨. 앞으로 어떤 DIY를 즐기고 싶은지 물었더니 유쾌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천장에 모빌을 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아내가 ‘자동차 20년 타기 운동본부’를 만들었다고 하니 DIY도 즐기면서 오래오래 타야지요.”
94년형 무쏘 타는 김연일 “오프로딩 즐기려고 .. 2004-08-31
"저를 따라오세요. 근처에 괜찮은 소나무숲이 있거든요.” 김포시내를 벗어나 한강 제방도로를 달리는데, 앞서가는 무쏘의 뒷모습이 무척 단단해 보인다. 촬영장소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뒤 범퍼를 만져 보니 쇳덩어리다. ‘꽝꽝’ 차 보았지만 발만 아프다. 김연일(44) 씨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면서 바람직한 액세서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앞쪽에도 똑같은 강철 범퍼가 달려 있다. 대명기공에서 만든 ‘탱크가드’라는 것으로, ‘4윙스’ 동호회원으로부터 차를 인수할 때 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프로드용 장비입니다. 날카로운 돌이나 바위에 찧어도 끄떡없어요.” 양쪽 발판과 언더 커버 손수 만들어 김연일 씨는 일산의 집에서 일터(삼양냉동설비)가 있는 김포시내까지 94년형 무쏘로 출근하고, 일할 때는 91년형 시보레 CK 2500 픽업을 몰고 다닌다. 가족 나들이차도 무쏘일 만큼 철저한 SUV 신봉자다. 당연히 지금껏 타 온 차도 SUV 일색이다. 20년 전 거화 코란도를 시작으로 쌍용 코란도 훼미리, 현대 갤로퍼, 쌍용 무쏘,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포드 익스플로러를 거쳐 다시 무쏘로 돌아왔다. 외제차를 타다 국산으로 바꾼 이유는 신경 쓰지 않고 편하게 타고 싶어서다. 패밀리카로 쓰려고 포텐샤를 샀다가 답답해서 20일 만에 팔아 버린 적도 있다. 김연일 씨의 취미는 DIY와 오프로드 달리기. 하지만 그의 차는 꾸민 티가 안 난다. 아니 순정모델보다 더 심플해 보인다. “차 꾸미기에 대한 저의 기준은 ‘위화감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프로드 주행이 취미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튜닝도 온로드와 오프로드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신경을 썼어요. 대신 오프로드에서는 윈치나 에어 컴프레서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나는 것이 요코하마제 32인치 올트랙션 타이어와 구형 코란도에서 가져온 마이너스 오프셋(-13mm) 휠이다. 타이어를 바꾸면서 기어비를 3.73에서 4.27로 바꾸고 차체도 올렸다. 휠은 합법적인 기준에서 최대한 튀어나온 것을 골랐다. 덕분에 펜더 라인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차가 떡 벌어져 보인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탈출이 쉽도록 뒤쪽 디퍼렌셜에는 로커를 끼웠다. 오프로드에 갈 때 꼭 챙겨 가는 물건이 휴대용 에어 컴프레서. 공동구매로 4만 원에 샀다. 계곡 등에서 바람을 뺐다가 원상복구할 때 요긴하게 쓴다. 무쏘의 DIY 핵심은 쇠로 된 범퍼와 발판, 스테인리스 스틸 언더 커버와 트랜스미션 커버 등이다. 이것 때문에 차 무게가 150kg이나 늘었지만 오프로드를 자주 다니는 경우 쓸모가 많다. 탱크 가드와 4mm 두께의 언더 커버는 양산품이고, 발판과 트랜스미션 커버는 동호회원들과 직접 도면을 그려 만들었다. 실내는 특별히 꾸민 것이 없고 그룹 드라이빙 때 쓰는 생활무전기만 새로 달았다. 알루미늄 페달 등은 차를 살 때부터 있던 것이다. “SUV만 석 대”라는 동호회원의 얘기에 김연일 씨는 “남이 들으면 욕하겠다”고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갖고 있는 차를 모두 정리하고 닷지 다코타로 바꿀까 합니다. 넉넉하고, 짐칸도 있고, 잘 달리니까 두루 활용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이제는 험한 산을 고생하면서 올라가고 싶지 않네요(웃음).” 오프로드를 다닐 만큼 다녀서 흥미가 줄어든 것일까? 어쩌면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겉모습은 평범하지만 내용은 빵빵한 무쏘와 김연일 씨는 잘 어울리는 파트너였다.
현대 스타렉스 타는 김동희 스피드 매니아가 미니밴에.. 2004-07-26
승차감만 포기하면 승차인원, 연비 등 미니밴이 주는 이득은 아주 많아 ‘질주본능’을 앞세우던 스피드 매니아가 미니밴의 실용성에 흠뻑 취한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 달의 DIY 매니아 김동희(28) 씨가 바로 질주본능을 미니밴의 실용성과 맞바꾼 주인공이다. 1996년 르망으로 연 그의 자동차 생활은 현대 아반떼·티뷰론 터뷸런스 튜닝카로 이어졌다. 이렇게 속도와 튜닝을 즐기던 스피드 매니아의 마음을 한순간에 바꾸어 놓은 차가 현대 스타렉스다. 동호회 작업실이 DIY 배움터 “인천공항 고속도로가 열리던 날, 아는 이의 스타렉스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다 마음을 빼앗겨 버렸어요. 넓은 실내공간은 물론이고 승용차 못지않은 승차감, 디젤차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정숙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곧바로 중고차 시장을 뒤져 98년형 9인승 점보를 샀어요. 2001년 7월의 일이었습니다.” DIY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스타렉스를 사기 일주일 전 ‘스타렉스 동호회’(cafe.daum.net/starex)의 문을 두드렸고, 회원들과 친해지면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스타렉스, 동호회, DIY 모두 제 마음을 빼앗았어요.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전기와 기계를 따로 공부한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DIY에 빠져들었습니다. 승용차 튜닝 경험도 밑바탕이 되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DIY와 동호회를 빼면 생활이 안될 정도가 되어 버렸어요.” 지난해 4월부터 스타렉스 동호회 인천지역 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동희 씨가 마음껏 DIY를 즐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인천지부는 인천 남구 용현동에 예닐곱 평이나 되는 사무실을 운영하는데, DIY에 필요한 각종 공구와 작업대, 크고 작은 나사못까지 마련되어 있다. 인천지역 회원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이곳이 ‘깔아 놓은 멍석’이 된 셈이다. 하지만 김동희 씨의 DIY 입문작은 구경할 수 없었다. 2002년 초 차를 팔고, 커먼레일 디젤 엔진을 얹은 2002년형을 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의 손재주는 절반밖에 살펴볼 수 없다. 기계적인 튜닝에는 이골이 나서 김동희 씨의 DIY는 인테리어에 집중되었다. 천장을 뜯어 방음작업을 했고, 리벳이 들어갈 자리에 LED 램프를 달아 어두운 승객석을 밝혔다. LED 램프 스위치를 센터페시아 아래쪽에 가지런히 모은 것도 색다르다. 2열 시트 보조석 등받이 프레임을 뚫어 헤드 레스트를 단 것은 안전에 도움되는 좋은 아이디어다. 전기·전자·기계를 두루 공부한 공학도의 재치가 번뜩이는 부분이 엔진룸의 수분 분리기다. 순정 연료필터는 물이 차도 보이지 않아 계기판의 수분 경고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는 보네트만 열면 확인할 수 있도록 반투명 소재로 만들어진 2.5톤 트럭의 ‘세퍼레이터’(separator)를 따로 달았다. 메이커에서 커먼레일 디젤 엔진의 순정 연료필터를 아예 반투명 재질로 만들면 어떨까. 김동희 씨는 메이커들이 겁내는 ‘동호회 파워’의 주역이기도 하다. 지난해 말 후진기어를 넣을 때마다 심한 충격음을 내던 디퍼렌셜의 문제점을 제기해 메이커의 테스트 제품을 맨 처음 달아 시운전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인터뷰 끝에 각오처럼 던진 그의 말이 심상치 않다. “문제를 제기하면 원인을 밝히려는 노력은커녕, 원래 그렇다는 대답으로 대충 넘어가려는 메이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어요. 증상은 같은데, 각기 다른 AS를 받은 동호회원들과 결과를 비교하면서 원인을 찾는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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