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 자동차상식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비하는 제이엠모터스 2013-12-06
전남 순천에 자리한 제이엠모터스는 오픈한 지 4년 남짓한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운영된 곳이지만 새로 오픈한 매장만큼이나 세련되고 깔끔한 분위기가 눈길을 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장진모 대표의 따뜻한 마음과 철저함을 추구하는 꼼꼼한 성격 덕분에 제이엠모터스는 수입차 전문 숍으로 탄탄한 명성을 얻고 있다. 전남 순천시 가곡동에 자리한 제이엠모터스 전경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제이엠모터스는 오픈한 지 4년 남짓한 매장이지만 관리하는 단골고객만 3,500명이 넘는다. 억대의 연봉이 부럽지 않다는 장진모 대표는 이 모든 것이 모빌 제품에 대한 브랜드 인지도와 만족도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겸손함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비범함이 느껴졌다.  장 대표가 정비 일을 처음 시작한 것은 12년 전. 스물여섯, 조금 늦은 나이에 일본 유학길에 오른 그는 1년 만에 토요타공업대학교 자동차정비학과에 입학했다. 자동차 정비 전문가로서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였다. 제이엠모터스의 장진모 대표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장 대표는 살면서 감사해야 할 분들이 무척 많다고 말한다. 토요타공업대학교에서 2년간의 전문가 과정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곧바로 렉서스 공식 딜러인 디앤티모터스에 입사했다. “운이 정말 좋았습니다. 귀국 후 바로 입사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고마운 일이었지요.”  알고 보니 그가 입사할 당시 경쟁률이 수십 대 일에 육박했단다. 현재 함께 걸어가고 있는 모빌원이 좋은 친구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라면 디앤티모터스에서의 경험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했다.정든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힘들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더 늦기 전에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와 오너로서 꿈을 펼치고 싶었다”고 답한다. 순천으로 내려온 그는 처음부터 모빌원의 간판을 달고 정비소를 열었다. 좋은 제품이라 할지라도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없는 제품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고객 인지도가 높은 모빌원과 손을 잡게 되었다고. 이곳의 직원들은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비에 임한다 제이엠모터스의 성공비결은 철저함을 추구하는 장 대표의  성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일단 숍에 들어오는 차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히 진단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다. “제가 오픈을 준비할 때 열 군데의 정비소를 가보았습니다. 그 많은 곳 중 단 두 곳만이 고객이 의뢰하는 부분 외의 것들을 진단하고 알려주더군요.”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장 대표는 53가지 정비점검 매뉴얼을 개발해 고객들을 맞이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그때를 떠올리지만 처음에는 고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아해했단다. 묻지도 않는 것을 공짜로 진단해준다니 혹여 바가지 씌우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수입차 오너들이 선호하는 모빌원의 다양한 제품들 모빌원 전문점으로 자리매김한 지 4년째. 지금은 관리하는 수입차만 족히 300대가 넘지만 처음에는 ‘수입차 전문’이라는 간판이 지방 소도시에선 철저하게 외면당했단다. 아마도 그때 모빌원의 품질 좋은 제품이 아니었다면 난관을 헤쳐가기 힘들었을 거라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손님이 없어 장갑 한번 껴보지 못하고 퇴근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보내준 모빌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정비업을 그만두는 날까지 모빌원과 함께 할 생각입니다.”  장 대표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감사’라는 의미가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비를 한다는 장 대표와 직원들. 앞으로 제이엠모터스를 호남에서 제일가는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 이들의 작지만 큰 소망이다.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제이엠모터스 (061)752-2277 전남 순천시 가곡동 138-6
‘신뢰’를 앞세운 수입차 전문 정비업체 2013-11-08
부산 연제구 연산동에 자리한 YB모터스는 부산에서 꽤나 입소문이 난 수입차 전문 정비업체다. 2008년 오픈해 2011년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이 되었고, 이때부터 단골손님이 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신뢰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손 대표와 직원들의 노력 덕택에 YB모터스의 현재는 물론 미래도 ‘맑음’이다.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YB모터스는 오픈한 지 6년 된 수입차 전문 정비업체다. 2008년 문을 열 당시 부산에는 수입차가 지금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차가 훨씬 더 늘어나고 정비 수요도 많아지리라 생각한 손영호 대표는 과감하게 수입차 전문 정비업체를 오픈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기자가 숍을 찾은 날도 YB모터스 앞에는 10여 대의 수입차가 줄지어 늘어서 정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객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기자의 말에 손 대표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저는 자동차 정비사 출신은 아니지만 자동차에 대한 열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크다고 자부합니다. 이것이 지금의 YB모터스를 있게 한 원동력이지요. 또 정확한 진단을 통해 부품을 교체하고, 고객이 인정할 수 있을 만큼만 수리비를 받자는 생각입니다. 설령 돈은 많이 못 벌지 모르겠지만 고객과의 신뢰가 차곡차곡 쌓여지는 만큼 부자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YB모터스의 손영호 대표 자동차 정비는 ‘신뢰’가 기본이처럼 손 대표는 무엇보다 고객과의 신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YB모터스를 오픈할 때의 모토도 바로 ‘믿고 맡겨도 안심이 되는 업체’다. 이러한 마음을 고객들이 알아준 덕분에 YB모터스는 부산에서 잘 나가는 수입차 전문 정비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모빌원이라는 브랜드의 높은 인지도도 큰 역할을 했다. 수입차 오너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모빌원은 그가 주장하는 신뢰와도 일맥상통했던 것. 실제 2011년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이 된 이후 단골고객이 더욱 많아졌다. 
베푸는 마음으로 일하는 윤광천오토서비스 2013-10-17
충북 청주의 윤광천오토서비스는 늘 베푸는 마음으로 일하는 정비업체다. 25년 동안 자동차 정비에 몰두해온 윤광천 대표의 뛰어난 정비 실력은 숍의 강점 중 하나. 그의 모빌 예찬론을 듣고 나면 윤광천오토서비스와 모빌 제품을 다시 꼭 찾게 된다.  청주 신시가지에 자리한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윤광천오토서비스의 대표는 윤광천 씨다. 이름을 걸고 소비자를 맞이한다는 뜻이 상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40대 중반의 윤 대표는 정비업계에 입문한 지 올해로 25년에 이르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으레 윤 대표의 나이가 되면 체력적인 한계로 현업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는 아직도 기름때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직접 차를 만진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장이 현장에서 뛰지 않는 숍은 잘못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손님들이 분명 그 숍의 대표를 보고 올 텐데 사장이 돈만 세고 있다면 제대로 된 경우가 아니지요. 특히 저희 숍은 제 이름을 걸고 하는 만큼 고객들의 차를 직접 정비해야 한다는 게 저의 철칙이에요. 물론 모든 차를 커버할 순 없지만 아무리 바빠도 진단과 상담만큼은 제가 진행합니다. 그 결과 많은 고객들이 믿음을 갖고 계속 차를 맡겨주시는 것 같아요." 늘 환한 웃음으로 고객을 대하는 윤광천 대표 손톱에 낀 기름때를 보고 '일벌레'가 아니냐는 기자의 농담 섞인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겸손해했다. 사실 그는 차를 지독하게 좋아하는 매니아다. 유명 사범대학의 중국어교육과를 다니다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3학년 1학기 때 휴학하고 자동차 정비를 배우기 시작했단다. 차를 좋아했고 특히 정비에 관심이 많아 선생님의 꿈을 과감히 접은 것. 이러한 이력 탓일까? 그의 표정은 언제나 환하고 목소리는 늘 차분했으며 말투는 설득력 있고 논리정연했다. 한번이라도 그의 상담을 받아보았다면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모빌원 전문점이 된 후 달라진 것들윤광천 대표가 청주시 용정동에서 정비업체를 운영한 것은 2003년 3월부터였다. 그리고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자격을 취득한 것은 지난 5월의 일이다. 대기업의 정비 프랜차이즈에서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으로 바뀐 후 가장 달라진 점은 운영의 자유도가 높아졌다는 것.  예전에는 이른바 대기업의 횡포처럼 본사에서 밀어내는 차들을 소화해야 했고 정비공임의 일부를 본사가 가져갔다. 몸이 힘든 것보다 부당한 처우에 대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전혀 없어 매사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간판에 걸린 모빌의 인지도 탓에 지나가다 들르는 손님 수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사실 윤 대표는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자격을 취득하기 훨씬 전부터 모빌 제품을 취급했던 모빌원 예찬론자다. 실제로 그가 타는 차에는 예나 지금이나 모빌원을 넣고 있다. 직접 체험한 바에 의하면 슬러지가 거의 생기지 않고, 초기 주입 때와 1만km를 탄 후까지 오일 상태가 한결같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아울러 엔진의 진동과 소음도 다른 합성유에 비해 확실히 적다. 진열된 모빌원은 소비자들로 하여금 믿음을 자아낸다 윤 대표는 처음 숍을 찾은 이들에게는 모빌원(합성유)을 권하지 않고 모빌에서 나오는 광유나 반합성유를 권한다. 가격적인 부담이 적어 처음 모빌 제품을 경험하기에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후 손님이 그 품질에 만족해 하면 그때부터는 합성유인 모빌원을 추천한다. 한편 청주는 서울에 비해 오래된 차가 많은 편이어서 오일을 먹거나 새는 차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엔진을 오버홀하지 않고 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러나 윤광천오토서비스에서는 이런 차들이 오일을 교환하면 이후의 추가 오일 보충을 모두 무료로 제공한다. 숍 입장에서는 귀찮고 부담스러운 일일 테지만 윤 대표는 그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윤광천오토서비스는 대표가 직접 차를 고치는 숍이다 "제 숍을 찾아주신 손님들께는 항상 베푸는 마음으로 일해야 해요. 장사하는 사람은 절대 돈을 좇으면 안 됩니다. 비단 장사뿐 아니라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않겠어요? 베풀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게 마련이지요. 오일 보충 서비스뿐 아니라 소소한 정비는 서비스로 해드리기도 합니다. 그럼 그 손님은 아무리 먼 거리에 있는 분일지라도 다시 저희 숍을 찾으시더군요."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별로 돈을 벌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윤광천오토서비스를 찾는 손님들은 그런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그의 정비를 믿고 따른다. 늘 베푸는 마음으로 일하는 윤 대표는 앞으로 윤광천오토서비스를 청주에서 제일가는 카 케어 전문점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가을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윤광천오토서비스(043)295-8772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 839
No.1 타이어로 고객 서비스에 힘써 2013-10-14
지난 1월 브리지스톤 타이어 우수 대리점으로 선정된 남영종합타이어 유성재 대표는 "앞으로도 항상 상위 5%에 들도록 노력하고 시장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이를 뛰어넘어 No.1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고객과 소통하며 고객 서비스에 힘쓰고 있다.부산 대연동에 위치한 (주)남영종합타이어와 브리지스톤 타이어의 인연은 고객 서비스에서 비롯됐다. 맛 좋고 신선한 생맥주 가게에 가면 한 종류의 국산 맥주만 팔지 않는다. 고객의 기호에 맞게 국산 맥주는 물론이고 인기 좋은 수입 맥주도 구비해 둔다. 남영종합타이어의 유성재 대표가 세계 최고 브리지스톤 타이어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국산 톱 브랜드와 세계 톱 브랜드를 함께 준비해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그의 생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고, 특히 수입 타이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유 사장의 남다른 안목이 지금의 남영종합타이어를 성장시킨 발판이 된 것이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수입 타이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남영종합타이어  위기를 기회로 삼아 사업 확장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자동차 튜닝산업이 대호황을 누렸다. 이에 따라 유성재 대표는 2001년 브리지스톤 코리아와 부산 총판점 계약을 맺고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부산·경남 지역에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안전성을 우선으로 한 기술력과 뛰어난 상품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초창기부터 매니아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맺음으로써 성능과 품질 모든 면에서 고객들의 사랑을 얻는 기틀을 다졌다. "2000년 초반 국내에 모터스포츠 붐이 일자 튜닝부를 별도로 만들어 운영했는데, 당시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을 만큼 인기가 높았습니다. 고성능 포텐자 G3, S03 등이 튜닝카에 필수 아이템으로 큰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지요."하지만 2003년을 정점으로 국내 튜닝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강타한 신용카드 대란이 결정타였는데, 남영종합타이어도 이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이에 따라 평소 경제 동향에 관심이 많았던 유 대표는 고객의 생각과 관심사, 그리고 타이어 시장의 트렌드를 종합해 새로운 사업 방향을 모색했다. 과감히 튜닝 사업을 접고 조금씩 커지고 있는 수입 타이어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 수입차 점유율이 5%도 되지 않았고, 수입 타이어 시장도 지금처럼 크지 않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과감한 선택이었다. 20년 전부터 전산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타이어와 경정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 대표는 거시적인 안목으로 수입차 수요를 예측해 매장의 고급화를 꾀하고 시설에도 적지 않은 금액을 투자했다. 그 결과 매출과 판매량에서 상위 5% 안에 드는 업체로 입지를 굳히며 부산·경남 지역에서 수입 타이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 비법은 무엇일까? 유 사장이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살짝 공개했다.첫째, 오너의 자기관리와 타이어에 대한 기본 지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심신이 건강한 오너만이 리더의 자격이 있으며, 타이어에 대한 지식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남영종합타이어는 신입 직원에게 타이어 관련 기초지식과 예절을 철저하게 교육하는 한편 교육훈련(OJT)을 통해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둘째, 철저한 고객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남영종합타이어는 이미 20년 전에 전산관리를 시스템을 도입해 타이어와 경정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소통하고 있다.셋째, 항상 좋은 제품만을 취급해야 한다. 브리지스톤 타이어처럼 세계 톱 브랜드는 고객에게 신뢰를 주며, 거기에는 합리적인 가격과 성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직장내 교육훈련을 통해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이와 함께 유 대표는 시장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숲을 볼 수 있는 안목으로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흔히 1개의 제품을 100만 명이 사용하면 패션, 500만 명이 사용하면 트렌드, 1,000만 명 이상이 사용하면 문화라고 한다. 수입차의 시장 점유율이 13%대로 늘어난 요즘, 수입 타이어는 패션이 아닌 트렌드로 자리잡으며 새로운 문화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주)남영종합타이어(브리지스톤 부산 총판)부산 남구 대연동 233-1(051)623-1155
대도모터스 - 오직 최고만을 고집한다 2013-09-09
모빌원 카 케어 광주점 대도모터스는 작은 규모의 경정비 업체이지만 최고의 브랜드만을 취급한다. 메르세데스 벤츠 공식 대리점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직영 서비스센터에 버금가는 기술력과 서비스로 광주•전남 지역의 벤츠 고객들에게 정평이 난 곳이다. 대도모터스를 찾는 벤츠 고객들은 모빌 브랜드의 최고급 제품인 모빌원 윤활유를 경험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대도모터스는 광주•전남 지역의 벤츠 오너에게 정평이 난 곳이다 대도모터스 김현석 대표는 메르세데스 벤츠 차와 모빌, 단일 브랜드만 취급한다. 그 이유는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자동차 만들기 철학을 피력한 ‘Das Beste order nichts’(최고가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에서 찾을 수 있다. 고객들에게 최상의 제품을 소개하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게 김 대표의 굳은 신념이다. “일종의 고객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브랜드보다는 하나의 브랜드를 전문으로 하면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지요.” 소위 맛집이라고 부르는 음식점에 가보면 단일 메뉴로 고객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라고 김 대표는 설명한다. 최근 단출했던 메뉴에 모빌원 윤활유를 추가한 것도 질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대도모터스를 이끄는 김현석 대표와 식구들 메르세데스 벤츠와 모빌의 만남김현석 대표와 모빌과의 인연은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0년대 후반 국산차 경정비와 카 인테리어로 자동차사업에 첫발을 들인 후, 지인의 소개로 1990년 메르세데스 벤츠 공식 대리점을 열어 10여 년간 광주•전남 지역에 벤츠를 팔았다. 당시 벤츠는 전차종에 모빌원을 공식 윤활유로 채택했는데 모빌 브랜드를 직접 사용해보니 절로 신뢰가 쌓였다고 한다.  “70~80년대 제작된 부품 하나까지도 꼼꼼히 관리하는 벤츠가 모빌을 파트너로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최고의 자동차에 최고의 윤활유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20년 넘게 사용해보니 모빌이 세계 톱 윤활유 브랜드로 인정받는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엔진오일 교환 작업 후 전용 진단장비를 이용해 꼼꼼히 세팅한다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모빌원은 100% 합성유를 사용하는 까닭에 탁월한 엔진보호 성능은 물론 오일 소모가 타 브랜드보다 낮아 교환주기가 길고, 열에 대한 내구성이 높아 고성능 엔진에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그의 모빌원에 대한 신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얼마 전 벤츠 대리점을 할 때 판매한 15년 된 고객 차의 엔진을 분해해 보니, 슬러지 하나 없이 깨끗해 모두가 감탄한 적이 있다고. 김 대표의 권유로 차 주인이 15년간 모빌원만 사용한 결과였다.  김 대표의 모빌원에 대한 신뢰는 벤츠에 버금간다. 20여 년을 함께한 벤츠와 모빌원 사랑은 광주•전남 지역 고객들에게 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한 입소문으로 무상 보증기간이 끝난 벤츠 고객들과 타 지역에서 엔진오일을 교환하기 위해 원정까지 오는 이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사무실에는 모빌원 제품 라인업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신뢰에서 싹튼 모빌원 사랑은 단순히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기 때문이 아니다. 고객 입장에서 직접 사용해본 경험에서 기인한다. 광주•전남 지역의 벤츠 오너라면 예약이 필요 없고 값도 저렴한 대도모터스에서 엔진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어떨까. 모빌원 카 케어 전문점 광주점 대도모터스 (062)522-1155 광주 북구 중흥동 694-14
C 세그먼트 푸조의 발자취 2014-06-16
유럽 소형 해치백 하면 많은 사람들이 폭스바겐 골프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물론 골프가 유럽 베스트셀러로서 오랜 세월 인기를 끌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푸조의 20X와 30X 시리즈 역시 이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려온 걸작들이다. 패션 명품으로 유명한 프랑스는 자동차에 있어서만큼은 실용주의로 무장한 작은 차를 사랑해왔고, 이런 문화적 배경은 개성과 매력 넘치는 소형차들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2014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된 푸조 308 역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주역 중 하나다.  1969년, 3으로 시작하는 모델명 첫 등장세 자리 숫자의 푸조 이름에 300 단위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9년. 당시 푸조에는 204와 404, 504 세 가지 라인업이 있었는데, 304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형차 204와 중형 404 사이에 위치하는 또 하나의 소형차였다. 르노 12의 인기에 자극받아 등장한 1.3 클래스의 304는 사실 204의 트렁크를 연장하고 얼굴을 504 풍으로 다듬은 모델이었다. 기본형은 세단이었으며 쿠페와 카브리올레, 왜건형도 만들어졌다. 304 77년 304에 이어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후계차 305가 등장했고, 85년에는 오리지널 디자인의 309가 뒤를 이었다. 원래 탈보를 위해 개발 중이었던 이 모델은 탈보 브랜드가 사라지면서 푸조 엠블럼을 달았다. 세단 대신 해치백이 기본 형태로 바뀐 것도 이때부터다. 305 한국에도 낯익은 306은 1993년 선을 보였다. 306도 왜건과 카브리올레, 세단형이 만들어졌지만 사실상 해치백이 주력 모델로 완전히 자리잡았다. 309306 2001년 데뷔한 307은 306 플랫폼에서 변화가 크지 않았지만 차체 사이즈를 키워 거주성과 안전성을 개선했고 디자인은 푸조가 직접 다듬었다. 국내에서도 판매된 이 차는 프랑스 이외에 아르헨티나와 중국에서도 생산되었는데, 2004~2005년에 연간 50만 대 이상 판매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당시 소형차 206의 판매량이 연간 70만~80만 대에 달해 폭스바겐 폴로/골프에게는 크나큰 위협이었다. 307 308이 등장한 것은 2007년. 푸조 모델 중 맨 뒤에 8자를 붙인 첫 모델이었다. 벌려진 입처럼 디자인된 범퍼 흡기구와 경주차 느낌의 노즈 선단부 그리고 날카로운 삼각형 헤드램프를 갖추었다. 이 호전적인 모습은 2011년 페이스리프트 때 부드럽게 다듬어졌다. 3도어와 5도어 해치백, 왜건(SW), 쿠페 카브리올레(CC)가 만들어졌으며 중국 시장에서만 판매한 308 세단 외에 약간 사이즈를 키운 408이 개발되어 중국과 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 판매되었다. 308 초대 308은 2012년까지 125만 대 판매된 후 지난해 신형 308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푸조는 1929년 201 이래 중간에 0을 넣은 세 자리 숫자를 사용해왔다. 그런데 오랜 전통을 깨고 1단위 숫자까지 동일한 모델명을 유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이유는 309라는 이름을 이미 사용했기 때문. 게다가 1단위 숫자가 얼마 남지 않아 푸조 작명법에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푸조가 선택한 방법은 모델명의 유지였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워진 308의 후계차는 여전히 308로 불린다. 보디는 5도어 해치백과 왜건으로 간략화되었고 3도어 해치백과 쿠페/컨셉트에 대한 소문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우선은 힘을 분산시키기보다 불필요한 부분을 줄이고 착실하게 판매 증진에 힘쓰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308의 성공이야말로 PSA 그룹의 미래를 결정짓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푸조는 그 첫 번째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운 듯하다. 308이 올 봄 제네바모터쇼 직전에 결정된 ‘유럽 카 오브 더 이어’에서 BMW i3, 테슬라 모델 S 등 쟁쟁한 경쟁자를 누르고 올해의 차로 선정되며 PSA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조용한 차'를 지향한 대우 레간자 2013-12-12
 1997.08  1997년 3월 28일 데뷔한 레간자는 뒷바퀴굴림 방식의 프린스를 대체한 대우의 첫 FF(앞 엔진 앞바퀴굴림) 중형차였다. 프로젝트명 V100으로 개발되었으며 GM과의 결별을 고하면서 대우가 92년부터 추진한 5개 차종 동시개발계획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이태리어 ‘elegante’(우아한)와 ‘forza’(힘)의 합성어에서 가져온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80년대 중형차 왕국을 되찾고자 하는 대우의 야심이 담긴 모델이었다.   1998.08 좋은 소리만 남기고 소음을 줄였다는 뜻으로 만든 ‘청진기’편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 만큼 대우가 레간자에 쏟는 정성은 상당했다. 국내 부평기술연구소 주도 아래 영국 워딩연구소와 독일 뮌헨연구소가 힘을 보탰다.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동원한 셈이다. 또한 국내뿐만 아니라 수출을 염두에 두고 폭스바겐 파사트, 푸조 405, 오펠 오메가,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포드 토러스 등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모델들을 벤치마킹했다.   1998.11 미국 수출전략형으로 개발한 2.2 가솔린 모델을 잠깐 국내에서도 판매했다. 개발기간은 31개월로 당시 동급 국산 라이벌들에 비해 짧은 편이었지만 영국 미라를 중심으로 미국 데스벨리, 호주 앨리스 스프링스 등 15개국 18개 지역에서 옹골차게 필드 테스트를 거쳐 완성도를 높였다. 대우는 레간자의 생산을 위해 부평공장에 1,400억원을 들여 설비를 새단장하는 등 개발뿐만 아니라 양산단계에서도 정성을 쏟았다.클래식한 느낌의 디자인은 이탈리아 쥬지아로의 손길로 완성되었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유럽형 에어로다이내믹 스타일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가미했다. 도어트림을 잇는 캐릭터 라인은 기와지붕과 한복에서 영감을 얻었고 대시보드의 디자인엔 태극무늬가 투영되었다. 덩치는 길이×너비×높이가 4,671×1,779×1,437mm로 현대 쏘나타Ⅲ와 기아 크레도스보다 작았다.   1999.07  가죽시트를 기본으로 단 레간자 럭셔리. 프로젝션 안개등,음이온 공기청정기, 리모컨키 등 고급 편의장비가 트림에 따라 선택적으로 적용됐다. 엔진은 1.8L 111마력, 1.8L DOHC 137마력, 2.0L 116마력, 2.0L DOHC 146마력의 4종류로 시작했다. 호주 홀덴에서 들여온 1.8과 2.0L D-TEC 엔진은 새로운 흡기관과 ECU를 적용해 중속 영역을 강화했고 2.0L DOHC 엔진은 고속 영역에 집중해 최고시속 206km로 동급 모델 중 가장 빠른 실력을 뽐냈다. 변속기는 5단 수동이 기본, ZF 4단 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 마련했다. 개발 초기부터 ‘조용한 차’를 지향한 레간자는 엔진으로부터 나오는 소음과 진동을 차단하기 위해 3개의 벨트를 하나로 연결하고 유체 봉입형 엔진 마운트, 가변식 냉각팬, 알루미늄 오일팬을 사용했다. 또 소음의 실내 침투를 최소화하기 위해 9겹의 대시패널과 3중 고무 실을 붙인 도어를 채택하는 등 방음과 방진에 많은 공을 들였다.앞 맥퍼슨 스트럿, 뒤 듀얼 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은 유럽 취향을 반영해 약간 단단하게 세팅했다. 때문에 한국의 전통적인 중형차 오너들에겐 다소 승차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코너링 솜씨는 좋아 조금 더 젊은층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1998년에는 북미형으로 개발한 2.2 142마력 모델에 리어 스포일러를 붙여 내놓았다. 2001.06 레간자는 데뷔 초 ‘변화된 대우’를 앞세워 인기를 끌었지만 1998년 현대 EF 쏘나타와 르노삼성 SM5가 등장하면서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게다가 1999년 12월 내놓은 매그너스와의 판매 간섭을 피하기 위해 1.8L 엔진만을 얹어 시장에서의 비중이 크게 줄었다. 2000년 1월 범퍼몰딩과 로커몰딩을 달고 보디컬러와 같은 색의 라디에이터 그릴로 꾸민 블랙&화이트 버전을 출시하고, 그릴 디자인을 바꾼 2001년형 모델을 출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반전의 기회를 얻지 못한 채 2002년 후속모델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세계의 FF카 ’7’ 2013-12-04
현대의 포니 엑셀로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나 앞바퀴 굴림차를 몰아볼 수 있게 되었다.80년대 세계 소형차시장은 또 폴크스바겐 골프,르노 생크 등 바로 FF2박스카의 전성시대이다.또 폴크스바겐 골프,르노 생크 등 FF차의 주역들이 거의가 모델 체인지로 실내공간을 넓히고 달리기 성능을 개선하여‘2세대 FF’라는 말도 생기고 있다.외모와 성능이 점점 비슷해져간다는 여러나라의 FF2박스카들, 그중에서 포니 엑셀과 비슷한 크기의 FF차 ‘일곱’을 소개한다. 르노 쉬페르5 Renault Super 5 르노(프랑스) 푸조, 시트로앵과 함께 프랑스 자동차업계를 이끌어온 르노는 1898년에 출발한 명문으로 2차대전 후 소형차 시장에서 대중차 4CV로 이름을 날렸다. 72년에는 4CV의 후계차로 앞바퀴굴림인 르노5(생크)를 내놓으면서 프랑스의 FF2박스화에 앞장섰다. 4기통 845CC를 표준으로 가로 아닌 세로 놓은 1.1리터,1.4리터 엔진을 더해간 르노5는 10년동안 프랑스의 베스트셀러카가 되었다.12년이 지난 뒤 르노5는 풀 모델 체인지로 쉬페르 5로 변신, 84년 가을에 열린 파리 오토살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길이와 폭이 각각 61mm, 36mm 커지면서 전체적인 모습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나 실내공간이 넓어지고 공기저항치가 0.38에서 0.35로 좋아졌다. 엔진은 가로 놓은 4기통 956cc,1108cc, 1397cc 3종, 최고시속은 167km이다. 쉬페르 생크는 프랑스 국내에서 푸조 205와 경쟁하게 된다. 피아트 리트모 Fiat Ritmo 피아트(이태리) 이태리 최대의 자동차회사 피아트는 소형차와 앞바퀴굴림차를 만드는 데서 모두 선구적인 구실을 해왔다. 피아트의 설계 실장으로 명엔지니어인 단테 지아코자는 69년 이태리 최초의 ff차인 아우토비앙키 A112, 이어서 프리람을 만들었다. 클러치와 트랜스미션을 일직선 위에 놓은 이른바 ‘지아코자식 배치’였고 골프를 비롯한 FF2박스차가 거의 모두 이 방식을 따랐다. 피아트는 피아트 128 후계차로 78년 토리노 모터쇼에 FF2박스인 리트모를 내놓았다. 리트모는 ‘리듬’이란 뜻이다. 피아트가 자랑하는 대중차의 핵심으로 82년 앞부분을 조금 고쳤다. 엔진은 직렬4기통 1116CC,1301CC, 1498CC 외에 디젤 1714CC가 있다. 최고시속은 160KM, 3도어와 5도어가 있고 폴크스바겐 골프처럼 차체 중앙에 기둥을 남기는 컨버터블도 있다. 골프 Golf 폴코스바겐(서독) 폴크스바겐 골프는 세계 소형차시장을 휩쓸고 있는 FF2박스차의 본보기이다. 엔진을 가로놓는 앞바퀴굴림차는 영국의 미니가 처음이지만 74년에 쥬지아로 설계로 나온 골프는 해치백 스타일로 대중소형차에 새길을 터놓았다. 1950만대의 최대판매를 기록한 비틀즈의 후계차인 골프(미국에서는 래비트)는 인기와 함께 컨버터블도 내놓고 해치백 부분을 트렁크로 개조한 3박스를 만들어 (차 이름은 제타) 다른 회사들이 뒤따르게 했다.성공작인 골프는 83년 모델 체인지로 길이와 폭을 각각 120mm,50mm 씩 크게 하여 실내공간을 넓혔다.또 짐싣는 부분 30%, 연료탱크도 40% 크게했다. 엔진도 커서 직렬 4기통 1.3리터, 1.6리터, 1.8리터 이밖에 1.6리터 디젤이 있다. 엔진을 강화하여 최고시속 191km를 내는 골프 GTI는 모터 트렌드지의 ‘85년 최우수차’로 뽑혔다. 카데트 Kadett 오펠(서독) GM의 독일 자회자(子會社)인 오펠은 1936년 카데트를 주력차종으로 내놓았었다. 그뒤 79년에 나온 5세대 카데트는 GM의 월드카 전략에 따라 오펠의 첫 바퀴굴림차로 등장했다. 엔진은 직렬 4기통 1.2리터, 1.3리터, 1.6리터 에 최고시속은 187KM.차의 수명이 긴 시독에서 자란 카데트는 이례적으로 5년만인 84년 가을 모델 체인지로 새 모습으로 단장되었다.뉴 카데트는 외모는 큰 변화없이 차폭을 조금 늘이고 공기역학적인 개선에 주력하여 톱모델인 GSI에서는 공기저창치 0.30을 기록해다 크기는 3998X1686X1380mm. 엔진은 직렬 4기통 1196CC(55마력), 1297CC(60마력과 75마력), 1598CC(90마력), 1796CC(115마력) 과 디젤 1598CC(55마력)등이고 최고시속은 톱 모델인 GSI에서 203km로 빨라졌다. 카네트는 86년 하반기에 대우의 T카로 한국땅에 상륙할 예정이다. 에스코트 Escort 포드(미국) 포드는 영국과 독일에 자회사가 있어 70년대부터 미국,영국, 독일과 그밖의 나라에서 함께 생간하는 월드카를 설계, 제작해 왔다. 80년에 나온 에스코트는 피에스타(76년)에 이은 포드의 두번째 월드카로, 구형인 뒷바퀴굴림 3박스 노치백에서 앞바퀴굴림 해치백으로 변신했다. 유럽 포드를 중심으로 소형차 시장을 검토한 뒤 ff화된 신형 에스코트는 83년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 카로 뛰어올랐다.수냉식 직렬 4기통 CVH 신형 엔진에 배기량은 1.3리터, 1.6리터와 1.6리터 디젤이 있다. 최고 시속 158km.84년엔 라인업을 약간 바꾸어 3도어, 5도어 세단 쪼긍ㄴ 베이식L, 고성능의 GT, 그리고 GLX에 대신하는 LX 시리즈를 내어 놓으면서 1.6리터 엔진에 터보를 더한 터보GT와 2.0디젤을 추가했다. 패밀리아 Familia 마쯔다(일본) 2차대전 전에 삼륜차를 만들었던 마쯔다 (東洋工學)는 대전 뒤 소형차를 거쳐 64년 패밀리아를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승용차 제작을 시작했다. 60년대에는 로터리 엔진을 세계 최초로 승용차에 쓰는등 개척적인 노력을 해왔다. 패밀리아는 모델 체인지를 거듭하여 80년에 5세대로 FF2박스로 변신, 도요다 카롤라, 닛산 서니와 겨루는 인기차가 되어 경영이 어려워진 회사를 도왔다.85년 1월 초순에 5년만에 다시 새 모습으로 단장했다. 기본설계는 지키면서 차체를 조금 크게 하여 전체적으로 센력도를 높이고 고품질화 하는 ‘2세대FF차’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냈다. 크기는 3990 X1646 X 1390mm,엔진은 1296cc(74마력), 1490cc(85마력과 95마력), 1490cc터보(115마력) 로 최고시속 160km, 기아산업이 마쯔다와 제휴하고 있어 87년 이후 한국에서 생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차종이다. 시빅 Civic 혼다(일본) 2차대전 뒤 오토바이 생산을 거쳐 63년부터 승용차를 만든 혼다는 일본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자동차회사이다.오토바이 레이스 참가에 이어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F-1 그랑프리에도 참가하여 84년에는 댈라스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72년 유럽의 소형차 제작 추세를 재빨리 받아들여 독특한 FF2박스인 시빅을 내놓아 호평을 받자 잇달아 모든차종을 FF화 하였다. 시티, 시빅, 발라드, 아코드, 프렐류드 등이 고성능, 고품질로 모두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83년 여름 시빅은 2세대로 모델 체인지 되었고 84년도 일분 최우수차로 뽑혔다. 엔진은 1.3리터 와 1.5리터, 3도어 해치백, 4도어 세단, 색다른 모양으로 샤틀이란 이름을 가진 5도어 등으로 모두 22차종이 있다.날렵한 모습과 기름소모가 적은 것 (시속 60km 주행 때 리터 당 28.5km, 시내주행 리터 당 18km) 으로도 유명하다.[게제 1985년 03월호]
기아 리오 '새천년의 희망' 2013-11-29
 1987년 프라이드를 출시하며 국내 소형차 시장을 휘어잡았던 기아였지만 그 기세를 잇지 못하고 90년대 현대 엑센트에 밀려 소형차 시장에서 조연에 머물렀다. 와신상담한 기아는 분위기를 역전시키기 위해 1996년 9월 개발 컨셉트를 잡고, 글로벌 소형차 프로젝트(B-III)를 가동했다. 그리고 97년 2월 확정된 모델을 기반으로 33개월 동안 2,800억원을 투입해 1999년 리오(Rio)를 완성했다. 리오는 1999년 11월 5일 소하리 공장에서 보도발표회를 가지며 다가오는 ‘기아 새천년의 희망’ 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스페인어로 ‘즐거운’, ‘힘이 넘치는’, ‘역동적’이라는 뜻을 지닌 리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 취향의 글로벌 소형차를 컨셉트로 잡아 당시 큰 인기를 끌던 폭스바겐 골프, 피아트 브라보/브라바, 포드 피에스타, 토요타 터셀 등을 참고했다. 기아는 그 중에서도 적자 수렁의 피아트를 건져낸 영웅 브라보/브라바를 많이 참고했다고 밝혔다.  1999.11 007 ‘어나더데이’에 출연한 릭윤을 주인공으로 쓴 기아 리오 티저 광고 리오의 길이×너비×높이는 4,215×1,675×1,440mm로 대우 라노스보다 길이는 25mm, 너비와 높이는 5~10mm 컸다. 곡선을 강조한 디자인도 주목받았는데 당시 보수적이던 기아 디자인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왔다. 선과 선이 만나는 부분을 최소화하면서 곡선의 끝에 에지를 줘 다이내믹함을 살렸다. 국내 시장에서 절대적인 지지층을 지닌 4도어 세단 이외에 유럽에서 인기 높은 5도어 왜건도 함께 내놓다. 티타늄 성분이 들어간 녹황색을 메인 컬러로 내세우는 등 겉모습에선 개성을 물씬 풍겼지만 실내는 의외로 차분했다. 라노스보다 5~50mm 넓은 실내는 리오의 큰 장점이었는데 밝은 대시보드와 대비해 검은색 센터페시아를 적용했고 운전자의 손이 자주 닿아 세균이 자라기 쉬운 스티어링 휠, 변속레버, 주차브레이크레버는 음이온 항균 처리했다. 또 5도어 모델의 경우 5:5로 접을 수 있는 뒷좌석을 적용해 공간활용성을 높였다.  엔진은 1.3L 84마력과 1.5L 95마력, 1.5L DOHC 108마력 3종류를 얹었다. 그 중 ‘MI-TEC’이라 불린 DOHC 엔진은 전자 배전방식인 DLI 시스템을 적용하고 연소실과 흡배기 시스템을 개선해 1,500~4,500rpm의 넓은 토크밴드와 아벨라보다 최대 20% 향상된 최고출력을 자랑했다.   1999.12 세단과 왜건(RX-V) 2종류로 데뷔했다 여기에 5단 수동변속기와 4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리버스 울림방지기구 및 2단 더블 싱크로나이저를 단 수동과 크레도스용 솔레노이드 밸브를 적용한 자동변속기 모두 부드러운 조작감을 장점으로 내세웠지만 시장에서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서툰 것은 서스펜션도 마찬가지였다. 토요타 터셀을 벤치마킹해 기아 소형차로는 처음으로 뒤쪽에 토션 빔 타입을 썼지만 완성도가 뛰어나진 못했다. 2002.082002년 페이스리프트 개념의 리오SF가 등장했다 데뷔 당시 리오의 라인업은 1.3 DLX, 1.5 STD와 EL, 1.5 DOHC KL로 이뤄졌다. 이중 STD는 4도어 세단만 나오고 나머지는 세단과 5도어(RX-V)가 함께 나왔으며 차값은 기본형이 575만원, 최고급형은 710만원이었다. 엑센트와 라노스 등 쟁쟁한 라이벌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아는 고객의 요구를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글라스안테나, 알루미늄 휠 및 광폭타이어, 뒷좌석 파워원도, 틸트 스티어링 등을 적용하면서 NVH를 개선한 ‘밀레니엄 리오’를 2000년 6월에 선보였고 2001년 4월 6일 그릴 사이즈를 키우는 등 앞 얼굴을 손보고 실내 편의장비를 보강한 뉴 리오를 발 빠르게 출시했다.  2004.051.5 Si 기본형에 CDP와 발수글라스 등을 적용한 2005년형 리오SF 스페셜 그리고 2002년 8월, 창살 모양의 그릴을 가로로 눕히고, 뒤 범퍼의 번호판 자리를 옮기는 등 스타일을 손질하는 한편 센터페시아에 메탈 그레인을 쓰고 운전석 에어백과 안전벨트 프리텐셔너를 전모델에 기본 장비로 갖춘 리오 SF를 출시하며 국내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공을 들였다.  2006.06 편의성을 보강한 밀레니엄 리오 그러나 4도어 세단과 동시에 유럽 취향의 5도어 왜건을 선보이며 국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던 기아의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전체 판매량에서 엑센트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했을 뿐더러 왜건형인 RX-V의 판매량은 리오의 모든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적게 팔리는 수모를 겪었다. 이는 당시 국내 운전자들의 ‘세단 편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이란에서 생산되는 등 해외에서는 인기를 누렸다. 이를 반영하듯 2005년 4월 신형 프라이드 데뷔와 동시에 국내에서는 그 이름이 사라졌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프라이드가 ‘리오’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GM DAEWOO KALOS 2013-09-10
유럽형 해치백을 지향했던 지엠 대우 칼로스  2002년 5월 출시된 대우 칼로스(Kalos)의 시작은 1999년 1월이었다. 대우의 경영진은 유럽 시장에 어울리는 전략모델을 꿈꿨다.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B세그먼트보다 큰 차체의 라노스(Lanos)로는 수출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2002.05 2002년 5월 칼로스의 데뷔를 알린 티저 광고 이러한 이유로 본격적인 B세그먼트 모델(원래는 코드명 S100으로 출발했지만 회사 사정상 라노스 시장도 대체할 목적으로 코드명 T200으로 변경)을 고려했고 르노 클리오, 푸조 206 등을 벤치마킹해 이탈디자인에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맡겼다. 이탈디자인은 작은 차체의 단점을 극복하고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통적인 해치백에 원박스 스타일을 접목했다.이미지 스케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선행 엔지니어들은 기술적인 검토에 나섰다. 수많은 타당성 검토 끝에 라노스 플랫폼을 줄여 쓰는 것보다 98년부터 진행된 마티즈 플랫폼을 늘리는 프로젝트 쪽에 힘이 실렸다.   2002.07 하이루프 스타일을 강조한 크루즈 해치백 렌더링을 거쳐 실제 모습에 근접한 확정 디자인이 나오면서 프로젝트의 진행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대우를 상징하는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좌우의 수평균형을 강조하는 헤드램프 등 유럽 취향을 반영한 흔적이 짙었다. 작은 차체에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펜더를 살짝 부풀리고 옆쪽에 캐릭터 라인을 그려 넣었다. 앞뒤 오버행을 줄여 휠베이스를 극대화했고 C필러 뒤의 조그만 사각 창으로 디자인 포인트를 주었다.외부의 손을 빌린 겉모습과 달리 칼로스의 실내는 대우 디자인 포럼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송풍구와 계기판을 비롯해 곳곳에 동그란 원을 그려 깜찍함을 드러냈지만 전체적으로 당시 인기를 끌었던 폭스바겐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카울 포인트를 멀리 두어 실내를 넓어 보이도록 했고 보조 기능의 작은 모니터를 센터페시아 위쪽에 두는 등 운전자의 편의를 도모했다. 해치백(칼로스V)과 세단 형태로 개발되었는데 실내 활용성은 해치백이 나았다. 실내의 길이×너비×높이가 1,835×1,390×1220mm로 차체가 큰 라노스보다 25mm 길고 10mm 넓으며 20mm 높았다. 특히 뒷좌석을 더블 폴딩이 되도록 만들어 2인승 밴처럼 쓸 수 있는 것이 돋보였다. 국산 소형차 중엔 칼로스 해치백이 처음 적용한 것으로 큰 물건을 싣고 다닐 때 편리했다. 더블 폴딩뿐만 아니라 6:4로 접어 화물 크기와 승차 인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실내를 활용할 수 있었다.   2003.03 1.2L 엔진으로 18.2km/L(수동)의 뛰어난 연비를 자랑했다 유럽형 해치백을 지향했던 칼로스는 엔진도 그에 걸맞은 1.2L 신형 엔진을 투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개발이 늦어지고 회사 사정상 출시 시점엔 1.5L E-TEC Ⅱ 엔진을 먼저 얹게 되었다. 라노스 엔진의 개선품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32비트 제어칩을 쓰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최고출력 86마력에 최대토크 13.4kg?m로 라이벌인 현대 클릭의 1.5L DOHC(100마력, 13.6kg?m)보다 파워가 부족했다. 변속기는 5단 수동을 기본으로 아이신제 4단 자동변속기를 옵션으로 설정했다. 대우가 1,200억원을 들여 야심차게 내놓은 1.2L T4 엔진의 투입은 예상(9월)보다 더 늦어져 2003년 1월에 이뤄졌다. 최고출력 71마력, 최대토크 10.6kg?m의 성능을 내 유럽의 동급 라이벌들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칼로스의 초기 컨셉트에 어울리는 최상의 파트너였다. 강화된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시키면서 수동 모델의 연비가 18.2km/L에 달할 정도였고 최저가가 669만원부터 시작되어 선택의 폭이 넓었다.   2003.11 2003년 11월 2004년형 모델이 데뷔했다 칼로스는 데뷔 7개월 동안 1만8,000여 대가 팔리는 등 나름 선전했지만 해치백에 비해 어중간한 포지션의 세단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T250(칼로스 페이스리프트)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2005년 9월 디자인을 크게 바꿔 아예 이름을 젠트라(Gentra)로 변경해 내놓으며 해치백과 다른 길을 걸었다.  2005.08 블랙메탈 대시보드와 투톤 인조 가죽시트를 더한 2006년형 젠트라의 데뷔로 ‘V’자의 꼬리표를 뗀 칼로스 해치백은 2005년 8월 2006년형으로 거듭나면서 내장재를 젊고 스포티한 차콜 컬러로 바꾸는 등의 변화를 겪다 2007년 젠트라X에 자리를 내어주며 단종되었다. 칼로스는 비록 2006년 한해 동안 판매량이 채 1,000대가 안 되는 등 국내에선 큰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연평균 18만 대 이상 수출되며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끌어 애초에 대우가 개발하면서 품었던 해외 수출 전략모델이라는 특명을 충실하게 수행한 모델로 기억되고 있다.
기아 쏘렌토 - 중형 럭셔리 SUV 2013-10-01
 쏘렌토의 개발은 스포티지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중형 럭셔리 SUV를 겨냥해 1999년 4월 시작되었다. 당초 현대에 인수되기 전 SG-II 라는 개발명으로 진행되다가 99년 10월부터 BL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이름을 바꿔달았다. 2000년 3월 최종 고정모델이 나와 설계, 시작차 제작, 테스트 등을 거쳐 2001년 말부터 양산, 이듬해 2월 정식 데뷔했다.   2002.12 네바퀴굴림만 나오던 쏘렌토는 2003년형부터 뒷바퀴굴림 보급형을 추가했다 개발에 들어간 3,000억원의 비용이 말해주듯 쏘렌토에 쏟은 기아의 정성은 상당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중형 SUV 시장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먼저 시작된 스포티지 후속 개발 프로젝트를 미뤄놓고 쏘렌토 프로젝트에 총력을 다해 매달릴 정도였다. 엔진과 섀시 등 기본 골격을 완전히 새로 짜고 SUV의 주무대인 미국과 유럽의 수출을 고려해 렉서스 RX300과 메르세데스 벤츠 M클래스 등을 벤치마킹했다.  2003.07 동승석 에어백을 추가하고 2열 시트의 등받이 기울기 조절각도를 확대한 2004년형  이를 토대로 국내외 디자인팀과 해외 유명 디자인업체에 디자인을 주문해 10개의 기본 안을 추려냈고 각 렌더링의 장점을 조합해 2개의 실차를 완성했다. 실차 제작에 앞서 스케일 모델 제작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쏘렌토는 이를 생략하고 실차 상태에서 수정과 보완작업을 상당히 긴 시간 동안 진행했다. 그리고 이 두 실차의 디자인을 8:2로 섞어 2000년 3월 최종모델을 완성했다.  2003.12 2004년형에서 국산 SUV 최초로 5단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전체적으로 미국 시장을 지향한 디자인은 부드러운 볼륨과 강한 선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앞뒤 오버행을 줄여 당당한 비례감을 강조한 것도 이전 국산 SUV와 다른 점이었다. 데뷔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D필러를 비롯해 RX300과 닮은 디자인을 지적했지만 기아는 유행의 한 부분이라며 카피 논란을 부정했다.실내 디자인의 감성품질을 높이는 데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SUV의 실용성에 세단의 감성을 접목해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두 번이나 해외 전문업체에 의뢰해 수차례 수정을 거듭한 결과였다.  데뷔에 앞서 갤로퍼의 2.5L 엔진을 개량해 쓸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쏘렌토의 심장은 예상보다 강력했다. 현대에서 개발 중이던 A2.5 엔진을 가져와 기아가 손본 유닛으로 초기형 커먼레일(1,300바)보다 연료분사 압력을 높인 개선된 커먼레일(1,650바) 시스템을 적용했다. 덕분에 배기량은 2.5L로 라이벌보다 작았지만 최고출력은 145마력으로 쌍용 렉스턴의 2.9L(129마력)를 가뿐하게 넘었다. 굴림방식은 스위치로 변환하는 파트타임 네바퀴굴림 외에 최상급인 리미티드 트림의 경우 노면 조건에 따라 앞뒤 구동력을 자동 배분해주는 ATT 시스템의 풀타임 네바퀴굴림을 달았다.  2005.04 보쉬 2세대 커먼레일과 VGT 기술로 최고출력 174마력을 낸 2005년형 쏘렌토 글로벌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아웃소싱을 통해 상품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기울였다. 앞 더블 위시본, 뒤 5링크 타입의 서스펜션 세팅은 포르쉐에 맡겨 유럽 취향으로 다듬었고, 5단 수동변속기 외에 아이신제 4단 자동변속기를 얹어 국내와 미국 시장을 노렸다. 연비는 수동과 자동이 각각 11.5km/L와 10.3km/L를 기록했다.하나의 엔진으로만 출발한 쏘렌토는 2002년 9월 18일 V6 3.5L 가솔린 엔진을 더했고 한 달 뒤 2003년형을 내놓으면서 기존 네바퀴굴림 외에 뒷바퀴굴림의 보급형을 추가해 모두 8가지로 라인업을 확대했다. 2003년 12월 데뷔한 2004년형에선 쌍용 뉴 렉스턴의 벤츠제 5단 자동변속기를 견제하기 위해 한 박자 빨리 기존 4단 자동변속기 대신 수동 겸용 5단 자동변속기를 디젤 모델에 추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격적인 대응을 통해 데뷔 2년 만에 13만2,417대가 팔리며 성공시대를 열었지만 서둘러 투입한 5단 자동변속기의 품질 불량으로 리콜의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2009.07 모노코크 형태로 바뀐 2세대 쏘렌토. 쏘렌토 R이란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 2월 22일부터 판매된 2005년형은 VGT(Variable Geometry Turbocharger) 기술과 2세대 커먼레일 시스템을 써 엔진의 최고출력이 174마력으로 오르며 2.9L 배기량의 현대 테라칸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2007년형에선 유로4 기준으로 배출가스를 줄이고 5인승 모델을 더해 인기를 이어갔다.2002년 출시 이후 2008년 12월까지 내수와 수출을 합쳐 총 80만 대 이상 판매되며 국산 중형 SUV 시장을 이끌었던 쏘렌토는 2009년 서울모터쇼를 통해 데뷔한 모노코크 보디의 쏘렌토 R에 바통을 넘기고 단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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