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굴 양식지 - 프랑스 보르도 아르까숑
2009-05-17  |   16,294 읽음

흔히 굴을 얘기할 때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고 하는데 이것은 멍청한 형이하학적 표현이다. 거칠고 흉한 단단한 껍질을 열었을 때 짭짤한 물이 자박자박 고인 매끈한 자개 위에 탄력 있게 살이 오른 밝고 선명한 유백색의 굴이 검은 흑태를 두르고 오므리고 있는 모습은 입 속의 침만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바람둥이들은 굴의 그 독특한 향과 그 야한 모양새를 여자의 ‘옥문’(玉門)에 비유하는데 실제로 굴은 정액의 주요성분인 아연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혹자는 ‘바다에서 나는 비아그라’라고 말한다.

나폴레옹도 즐겨 먹던 ‘굴’
천하의 오입쟁이 카사노바는 매일 아침 굴 50개를 먹어 치우고 옥문탐험에 나섰다나. 예부터 서양에서는 굴을 정력제로 여겨 ‘굴을 먹으면 오래오래 사랑하리라’(Eat Oyster, Love longer)라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굴을 비유한 속담이 있다. ‘굴 같이 닫힌 여자’는 정조가 굳은 여자, ‘굴 같은 남자’는 입이 무거운 남자를 가리켜 굴껍질 까기의 어려움에 포커스를 맞췄다. 줄리어스 시저가 대군을 이끌고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원정을 꾀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뎀스 강 하구에서 나는 굴 맛을 못 잊어서였다.

나폴레옹 1세는 전쟁터에서도 세 끼 식사에 굴이 떨어지지 않았고, 프랑스의 대작가 발자크는 앉은 자리에서 1,444개의 굴을 먹어 치웠다. 독일의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도 굴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산 속에서는 굶어 죽지만 바닷가에서는 굶어 죽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바닷가 바위에 붙어 있는 굴을 까먹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굴은 수많은 종류가 바다에 널려 있지만 먹을 만한 굴은 예부터 양식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산 선호도가 워낙 높아 굴도 양식이라면 자연산에 비해 하위개념으로 보는데 굴에 관한 한 인공양식과 자연산의 차이가 하나도 없다. 양식이라 해봐야 종패가 붙은 줄만 인위적으로 만들었지 바다 속에 집어넣어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것은 자연산과 다를 바가 없다. 기록상으로는 유럽에서는 기원전 95년, 로마가 전성기를 누릴 때 로마인 세르기우스 오라타(Sergius Orata)가 굴 양식을 처음으로 시도한 기록이 있고 동양에서는 송나라 시대(420년경)에 종패를 대나무에 끼워서 양식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선사시대의 패총에서 수많은 굴껍질이 출토, 그 역사는 오래인 듯 보이나 기록상으로는 1454년 단종 2년에 공물용으로 양식한 것이 굴 양식의 효시다. 굴은 우리나라 전 연안에서 생산되나 예부터 이름난 굴산지는 함경북도의 황어포, 함남의 영흥만, 경남의 낙동강 하구, 전남의 광양만과 해창만, 평북의 압록강 하구 등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굴 생산국으로 청정해역인 통영 및 여수 가막만 해역에서 그 대부분이 양식으로 생산되고 있다.

굴의 양식기술은 투석식에서 수하식으로 진일보했다.
투석식은 종패를 돌에 붙여 바다 바닥에 던져놓은 것이고 수하식은 종패를 줄에 매달아 바다에 띄워놓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석화라 하는 것은 자연산이 아닌 양식굴로 껍질을 까지 않은 것이다. 굴을 영문에서 R자가 들어간 달, 즉 9월에서 4월까지만 먹어야 한다는 것도 이제는 옛 이야기다.

아르까숑 굴과 와인
이 세상엔 수많은 종류의 굴이 있다. 미식가들을 미치게 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굴은 미국 서부해안에서 양식하는 참굴인 태평양 굴, 미국 동부 버지니아 주 대서양 연안에서 나는 크고 육질이 좋은 토종굴인 버지니아 굴, 가늘고 긴 모양의 포르투갈 굴, 인도의 봄베이 굴, 호주 굴 등이 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굴은 프랑스 보르도에서 나는 아르까숑(Arcachon) 굴이다.

유럽의 남서부, 프랑스와 스페인을 가르는 피레네 산맥은 서쪽 끝, 대서양의 비스케 만에서 동쪽 지중해의 리용 만까지 동서로 430km나 뻗어 있다. 알프스에 비하면 산정은 낮고 고개는 높다. 피레네 산맥 북사면 서쪽에서 골골이 흘러내린 물은 아담한 레이르 강이 되어 서북쪽으로 흐르다가 대서양으로 빠진다. 이 강이 대서양으로 빠져 나가기 직전에 커다란 석호(Lagoon)를 만든다. 왼쪽 하단 귀퉁이는 대서양으로 터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레이르 강물이 흘러 들어오는 드넓은 석호가 심한 간만의 차로 만조 때는 삼각 호수가 되었다가 썰물 때는 거대한 삼각 섬이 드러나 삼각 변으로 뱃길만 남는다. 바다와 닿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바로 이곳이 세계 최고의 아르까숑 굴 생산지다.

간만의 차가 심하다는 것은 하루에 한 번씩 새 바닷물이 들어와 플랑크톤이 풍부하면서도 깨끗한 뻘이 형성, 굴양식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단 얘기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에서 흘러내린 강물은 풍부한 유기물을 안고 와 굴생육에 금상첨화다. 아르까숑 굴은 굴껍질의 크기에 따라 10등급으로 분류한다. 가장 작은 굴인 1번이 가장 비싸고 가장 맛있는 그랑크루급 굴이다. 유람선을 타고 남 프랑스의 햇살 아래 대서양의 훈풍에 실려 아르까숑 석호를 돌며 보르도 와인을 마시고 신선한 굴을 먹는 맛은 글로 형용할 길이 없다.

이곳에서 약 50km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갸로니 강가에 자리 잡은 보르도 시내다. 이곳에서 보르도 시내까지 가는 길은 온통 포도밭 사이 길로 바로 보르도 와인의 노른자위 메독이다. 흔히 와인과 가장 궁합이 맞는 음식이 치즈라 하지만, 그것은 간편한 보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보급, 대중적인 가격으로 와인잔 앞에 자주 나타나기 때문일뿐, 최고의 와인음식은 굴이다. 혹자는 해산물엔 화이트와인, 육류엔 레드와인이라지만 일본의 사시미, 스시에 어울리는 와인이 꼭 화이트와인이 아니듯이 이러한 경계도 허물어진 지 오래다. 보르도 사람들은 보르도에서 최고의 굴이 나오기에 보르도가 와인메카가 되었다고 한다.

와인이 먼저냐 굴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는 다르다. 보르도의 굴은 이곳에 사람들이 발 붙이기 전부터 있었지만 와인은 사람들이 정착한 후에 생겨났으니 안주가 술보다 먼저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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