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UCTURE - 근대의 재생
2009-04-08  |   12,835 읽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1926년 미완성으로 준공되어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곳. 1991년 증축 기회가 있었으나 기준이 모호하여 또 다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던 중 한 영국 관광객이 자국 도서관에 남아 있던 원 설계도를 찾아내면서 1996년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간혹 인간이 이뤄낸 그 어떠한 것도 자연의 미를 결코 앞설 수 없다는 선입견을 여지없이 날려버릴 때가 있다. 서울주교좌성당이 바로 그러하다. 아마도 기적 같은 이야기가 주는 가슴 뭉클한 감동 때문이 아닐까.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한 남대문 한복판에 웅장한 르네상스식 석조 건물이 서 있다. 한국은행 한국금융박물관. 많은 건물이 일제의 잔재라는 명분으로 사라졌지만 이곳은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불편한 시선에 맞서 용케도 버티고 있다. 건축에는 인간의 삶과 역사가 투영되어 있고 당대의 기술과 시대적 정신이 깃들어 있다. 비록 잊고 싶은 역사 속 유물이기는 하나 생각해 보면 일제의 감독 아래 작업을 했을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도 서려 있지 않은가. 아픈 역사도 역사란 말이 새삼 떠오른다.

서울시립미술관
추적거리는 빗속에도 시립미술관을 찾는 이들은 분주하다. 애써 찾아왔으니 관람객은 건물 구석구석과 그 안에 담긴 예술을 마음껏 탐닉한다. 허나 이곳이 과거 우국지사들의 대량 체포와 구금을 위한 경성재판소였음을, 해방이 되고 불안한 정국을 거치며 다시 상처를 입고 오늘에 이른 역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몇이나 알고 있을까……. 아픈 과거를 들먹이기에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도 화려하기만 하다.

덕수궁 석조전
조선왕조가 지은 마지막 궁궐. 1909년 완공된 석조전은 대한제국 때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얼마 전 석조전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활용하겠다는 문화재청과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꾸며야 한다는 학계와 시민단체의 이견으로 진통 아닌 진통을 겪었다. 같은 역사를 지닌 한 민족의 시선도 모두 같을 수 없음을 새삼 느꼈던 그날, 석조전은 어떤 모습을 꿈꾸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본다는 기준 아래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방송통신대학 별관
서울 대학로의 상징적인 근대 건축물이자 1909년 지은 옛 ‘공업전습소 본관.’ 당시 지어진 목조건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다 하여 사적으로 지정돼 10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수명을 이어왔다. 그렇지만 이도 얼마 전까지 얘기다. 고증 결과 1912년 지은 ‘중앙시험소 청사’인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대한제국 때 지어진 것이 아닌, 일제시대 건물로 확인돼 문화재 지정이 해제될 운명에 놓여 있다. 28년 동안 엉뚱한 내력으로 살아온 곳. 기둥 하나하나, 나무 틈 사이사이 모진 세월을 이겨낸 흔적이 역력하건만 이번만은 쉽지 않은 기로에 놓인 듯싶다.

고려대학교 본관&연세대학교 연희관
미국과 유럽의 거리를 메우고 있는 건물들 가운데는 100년이 넘는 빌딩과 아파트가 즐비하고 그 안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거주하며 전기와 수도 등을 사용한다. 반면 우리의 건물은 20~30년이 지나면 개발과 첨단이라는 미명아래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전통의 흔적을 잿더미로 만들기 일쑤다. 수백 년이 된 건물들을 지금도 당연한 듯이 사용하는 그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도 조급하게 과거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고층 현대건물 틈새에 끼워져 ‘이질’이라는 명목으로 변형시키고 뒤틀어 놓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

우리나라에 아직 남아 있는 근대양식의 건물은 150여 채. 1934년 준공된 좌우대칭형 고딕양식의 고려대 본관과, 1956년 지어진 미국 아이비리그의 대학을 연상시키는 연세대 연희관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이런 고색창연한 아름다움은 아무 때나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수십 년 세월, 이 땅의 변화와 역경을 묵묵히 바라본 결코 짧지 않은 역사의 증인들이 아닌가. 담쟁이넝쿨을 타고 석탑과 지붕 위를 흐르는 따스한 봄볕의 풍경, 이 아름다움이 어느 때고 계속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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