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최적의 떼루아 - Bordeaux
2009-02-06  |   13,923 읽음

프랑스 보르도 시내에도 맥도날드 햄버거 집들이 있다.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메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와인이다. 햄버거를 먹으며 와인 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쳐다보는 사람은 없다. 호텔 조식뷔페에서도 최소한 적백 두 병의 포도주가 준비되어 있고 투숙객들은 아침부터 와인을 마신다. 보르도 시내엔 와인 학교가 있다. 하루 코스, 이틀 코스, 사흘 코스, 일주일 코스……. 장기(?) 코스 학생들은 실습시간에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필자는 최단기 코스인 한나절 코스 와인학교에 입학해서 4시간 만에 졸업했다. 강의는 ‘보르도가 왜 와인의 메카가 되었는가’로 시작해 와인의 종류로 들어가면 와인병이 돌아간다. 학생들의 테이블 위엔 두 개의 글라스와 작은 수도꼭지, 그리고 물과 포도주를 버리는 구멍이 있다. 아침부터 와인 테이스팅으로 샤도네를 마시고 물로 입을 헹궈 뱉어버리고, 리슬링을 마시고 헹구고, 다시 까베르네 소비뇽을 마시고……. 와인스쿨을 졸업할 때쯤이면 취객이 되어 비틀거리게 된다.

와인스쿨에서 예상치 못한 일은 강사가 영국인이라는 것. 강의가 끝난 뒤 “영국인이면서 어떻게 보르도에서 와인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더니 비즈니스로 보르도에 왔다가 와인에 반해서 이곳에 눌러 앉았다고 대답한다. 보르도 세인트 에밀리온 인근 와이너리에서 또 한 사람의 영국인을 만났다. 그는 아내의 고향이 이곳이라서 보르도에 산다며 많은 영국인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100년 전쟁의 원인이 된 보르도
영국과 보르도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보르도는 프랑스 남서부, 여러 강이 합쳐 대서양으로 빠져 나가는 하구 지역에 있다. 보르도(Bordeaux)라는 말은 불어로 ‘물 가장자리’라는 뜻이다. 프랑스는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포도나무에 물을 주는 걸 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강가에 자리잡은 땅은 포도가 자라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또한 물이 감싸고 있는 땅은 밤과 낮의 일교차가 적고 계절의 온도 변화도 크지 않아 포도 산지로 제격이다. 게다가 보르도 지역은 일년 내내 쏟아져 내리는 햇살에 계절의 변화를 보이면서도 혹한과 혹서가 없는 온화한 기후로 로마시대부터 포도주 산지로 이름을 떨쳤다.
 
영국은 포도주를 생산할 수 없는 나라지만 포도주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라다. 중세부터 그들이 눈독을 들인 곳도 보르도다. 보르도 지방은 아끼뗀 공작의 영지였는데 1137년 상속자인 기욤 공작이 갑작스레 죽어 겨우 열다섯 살의 아끼뗀의 딸이 상속받았다. 이 딸은 훗날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게 될 왕녀 엘레 오노르였다. 로빈후드와 아이반호에 등장하는 사자왕 리처드와 폭정을 휘두르다 대헌장을 승인하게 된 존 왕이 그녀의 아들들이다. 엘레 오노르는 프랑스의 왕 루이 7세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후 영국 왕실의 헨리 플랜태저넷과 재혼했다.

이후 헨리 플랜태저넷이 영국의 왕 헨리 2세로 즉위하면서 엘레 오노르는 영국의 왕비가 되었다. 프랑스 왕실이 소유한 영지보다 더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던 그녀는 루이 7세와 결혼하면서도 땅에 대한 소유권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헨리 2세와 결혼하면서 중세 영국법에 따라 보르도는 영국 왕실 소유가 됐다. 엘레 오노르와 결혼한 헨리 2세는 신부의 결혼 지참금으로 보르도라는 엄청난 보화를 얻은 셈이다.

보르도에서 생산된 질 좋은 포도주가 영국으로 바리바리 실려 가는 걸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프랑스로서는 왕비가 이혼 후 영국 왕비가 된 데 대한 원한이 사무치는 터에 땅까지 가져가자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보르도 와인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부글부글 속을 끓이던 프랑스가 마침내 1337년 보르도를 몰수한다는 칙령을 발표한것. 하지만 영국이 순순히 물러날 턱이 없다. 보르도 땅을 둘러싼 영국과 프랑스 간의 기나긴 전쟁이 시작됐다. 이것이 바로 인류역사에 한 획을 그은 ‘100년 전쟁’의 전말이다.

피와 포도주가 보르도를 붉게 물들이며 백년 전쟁이 무르익어갈 때 프랑스의 시골 처녀가 이끄는 군대가 영국군을 연파하기 시작한다. 그녀 이름은 바로 잔 다르크. 잔 다르크의 등장으로 전세는 급격하게 프랑스의 우세로 반전되어 보르도는 다시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의 과도한 징세에 질려버린 보르도 농민, 귀족, 상인들이 영국이 지배하던 시절이 더 좋았다며 영국에 밀사를 보냈다. 이에 딸보(Talbot) 와인의 기원이 되는 영국의 딸보 장군이 영국군을 이끌고 보르도에 상륙, 잔 다르크와 한판승부를 벌였다.

그러나 한껏 기세가 오른 잔 다르크를 꺾을 수는 없었다. 결국 딸보 장군은 보르도에서 목숨을 잃고 전투에서 패한 영국은 이후 보르도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만다. 300년 동안이나 영국 영토였던 땅, 보르도는 마침내 프랑스 품으로 돌아갔지만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영국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영국이 수입하는 포도주는 보르도산이 대부분이다. 보르도는 인구 20만의 부띠끄 도시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도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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