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준봉에 둘러싸인 로열 네팔 GC - 사람보다 신이 더 많은 나라
2009-01-12  |   10,760 읽음

네팔엔 사람보다 신이 많다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한복판 달발광장에는 구왕궁을 중심으로 사원이 둘러서 있다. 타레주 사원, 자카나트 사원, 시바 사원, 나라얀 사원…….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아름다운 사원은 왕궁 앞에 위치한 쿠마리 사원이다. 쿠마리 사원에는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가 살고 있다.

살아 있는 여신, 쿠마리
쿠마리는 힌두교도뿐만 아니라 네팔의 불교도들도 신으로 떠받든다. 쿠마리는 석가모니의 부족인 샤키아족 중에서 선출된다. 쿠마리를 선출하는 기준은 지능이나 학력이 아니라 신기(神氣)다. 먼저 용모의 조건이 맞는 준수한 어린 소녀를 뽑아 캄캄한 방에 두고 피 냄새가 나는 소, 돼지, 양, 닭 등의 머리를 늘어놓는다. 아이가 무서워서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탈락이다.

쿠마리로 뽑힌 소녀는 쿠마리 사원에 들어가 살아 있는 신으로 추앙받으며 사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일을 한다. 9월에 벌어지는 인드라 자트라 축제 때 쿠마리가 성장을 하고 코끼리를 타고 나가면 네팔 왕이 무릎을 꿇고 예를 바친다.

한 번 쿠마리는 영원한 쿠마리가 아니다. 소녀가 초경을 하면 쿠마리의 자격을 잃고 사원에서 쫓겨난다. 2001년 7월 라시밀라 샤키아가 사원에서 쫓겨나고 그 뒤를 이어 4살짜리 프리티 샤키아가 새 쿠마리로 추대되었다.

인간 세계로 나온 쿠마리 출신의 소녀는 사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쿠마리와 함께 신전으로 들어가 호의호식하던 가족들도 그녀를 멀리한다. 쫓겨난 쿠마리와 가까이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시집도 못간다. 쿠마리였던 처녀와 살면 남자가 비명횡사한다는 속설이 그녀를 터부시하게 만든다. 따라서 쿠마리 출신의 처녀는 집을 나와 떠돌다가 유곽으로 빠지는 게 일반적이다.

히말라야 산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네팔은 히말라야 산자락에 붙어 있는 작은 나라로 2천만 인구 중 80%가 인도계 아리안족이다. 이들은 저지대와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힌두교를 믿는다. 북방에서 내려온 몽골리언은 10%가 안되는 소수종족으로 주로 산악지대에서 살면서 불교를 믿는다. 그들이 험준한 산중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 카투만두에서 서북쪽에 위치한 포카라까지는 아슬아슬한 절벽 길을 따라 차로 7시간을 달려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차는 탈 수 없고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포카라에서 담푸스로 가는 히말라야 산길은 코가 닿을 듯 가파르다. 담푸스 마을은 안나푸르나 연봉 해발 2천m 산허리에 붙어 있는 산촌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사방에서 하늘에 닿을 듯 솟아오른 고봉들이다. 그 많은 봉우리 중에서도 으뜸은 마차푸차레(해발 6천997m)다. 현지어로 ‘물고기 꼬리’라는 뜻의 마차푸차레는 네팔의 성산으로 아무도 올라갈 수 없다. 외국 등반대가 아무리 많은 입산료를 바쳐도 네팔정부는 등산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담푸스 마을에서 보면 많은 안나푸르나 연봉들이 이 마을을 감싸듯이 빙 둘러섰고 그 한복판에 손에 잡힐 듯 마차푸차레가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다. 집집마다 아침 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딸랑딸랑 방울을 울리며 당나귀들은 부지런한 농부의 손에 이끌려 밭으로 가고 개들은 컹컹 짓고 닭들은 모이를 쫀다. 가파르게 비탈진 산자락에도 몇 뼘의 밭들이 계단처럼 차곡차곡 펼쳐진다.

다루초가 펄럭이는 돌집으로 들어가 보자. 삼라만상이 불심을 받으라고 다루초 붉은 깃발에 빼곡히 적힌 부처님 말씀이 바람에 실려 훨훨 날아간다. 이 집 어른인 87세의 아스바하디르 노인이 빙긋이 미소를 띠며 마당으로 나와 마차푸차레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한다.

16세에 인도군에 입대하여 12년 동안 근무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날 이때껏 이곳에서 밭벼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이 노인은 인도정부로부터 얼마간의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연금으로 용돈으로 쓰고 어린 손자들 과자값도 준다며 얼굴에 자랑이 넘친다. 일평생 담배를 입에 댄 적이 없는 대신 술을 좋아해서 지금도 조로 만든 술과 창을 증류한 독주를 한 잔씩 반주로 든다. 귀가 좀 어두울 뿐 아직도 꼿꼿한 이 노인에게 건강비결을 묻자 서슴없이 ‘낙관과 자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루는 밤과 낮이 있듯이 모든 것은 양면이 있어. 좋은 면과 나쁜 면, 기쁜 면과 슬픈 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좋을 땐 나쁠 때를 생각하고 나쁜 땐 좋을 때를 생각 하고, 기쁠 땐 슬픈 때를 생각하고 슬플 땐 기쁜 때를 생각해야 돼.”

아스바하디르 노인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산비탈 계단식 밭 2천여 평을 갖고 있다. 식구가 부런히 농사지으면 양식 걱정은 없다. 남는 것은 팔아서 일용잡화를 사고,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준다. 몇 살 아래 부인과 건강하게 해로하고 있는 그는 55세 맏아들과 함께 산다. 둘째 아들은 산 너머 이웃 마을에 살면서 한 달에 두 세 차례씩 달걀을 싸들고 노부모를 찾아온다. 세 딸은 포카라로 이웃마을로 시집가서 별 탈 없이 살고 있다. 손자, 손녀가 열여섯이고 증손녀도 둘이나 된다. 손자들의 이름을 깜박할 때가 있어 종잇조각에 이름을 모두 적어 머리맡 불경 책갈피 속에 꽂아두고 불경을 볼 때마다 이름 외는 걸 잊지 않는다.

산중의 9홀 코스, 로열 네팔 GC
카트만두엔 9홀 골프코스가 하나 있다. 공항 옆에 자리 잡은 이 골프장은 네팔 왕실에서 지원해주는 로열 네팔 GC다. 로열 네팔 GC는 빼어난 골프코스는 아니다. 그렇다고 흙바닥이 드러나는 아프리카 스타일도 아니어서 골프를 즐기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페어웨이 떡잔디에 잡풀은 섞여 있지만 가지런히 깎아 놓았고 수건을 쓴 여자들이 부지런히 풀을 뽑고 있어 샷이 빗나가도 페어웨이 컨디션이 나쁘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비록 9홀이지만 2개의 파5, 2개의 파3, 다섯 개의 파4홀로 구색을 갖추고 광활한 개활지 내리막 홀이 있는가 하면 정글 속을 뚫고 가는 오르막 홀이 있다. 한 홀에 프론트나인 티잉그라운드와 백나인 티잉그라운드를 따로 만들어놔 9홀을 두 번 돌면 18홀을 라운드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반적으로 9홀 코스는 구성이 단조롭지만 로열 네팔 GC는 워터 해저드가 도사리고 온갖 장애물도 숨어 있는 전략적 코스다.
골프코스가 좋으니 나쁘니 탓할 일이 아니라 히말라야 산자락에 박힌 이 나라에 골프코스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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