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통 여행기 - 풍부한 문화유산의 왕국 Morabia
2009-01-09  |   10,215 읽음

성직자가 교회 뒤뜰에 완두콩을 심었다. 완두콩을 식탁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돋보기로 완두콩을 보며 우성 열성을 가려내고 두툼한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무언가를 기록했다. 7년 동안이나 완두콩에 매달린 성직자는 마침내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멘델의 법칙’을 발표했다. 염색체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던 1865년, 성직자 멘델은 정확한 관찰, 실험, 분석으로 유전학의 토대를 구축했다. 멘델은 원래 오스트리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가 공부하고 성직생활을 하고 멘델의 법칙이라는 대 업적을 남긴 곳은 브르노(Brno)다. 동구의 파리라 불리는 브르노는 체코 동남쪽에 있는 체코 제2의 작은 도시다.

 1차대전 막바지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가 승전국은 되었지만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게르만에 혼쭐이 난 미국은 한 가지 묘안을 짜냈다. 게르만과 국경을 맞댄 체코와 슬로바크 두 나라를 통합해 좀 더 강한 하나의 나라로 만들어 게르만이 쉽게 넘볼 수 없게 하자는 것. 우드로 윌슨 전 미국대통령의 종용에 두 나라는 결국 1918년 프라하를 수도로 하나의 국기 아래 체코슬로바키아가 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서 냉전시대에 소련의 위성국으로 신음하다가 소연방이 와해되고 동구권 나라들이 소련의 사슬에서 풀리면서 1993년 다시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s)과 슬로바크 공화국으로 갈라졌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의 위성국에서 해방될 때, 그리고 다시 두 나라로 갈라설 때 이들은 총성 한 방 울리지 않았고,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프라하에 이은 체코 제2도시 브르노
체코 사람들과 슬로바크 사람들은 기질부터가 판이하다. 열흘 동안 체코 가족과 슬로바크 가족이 같은 비용을 가지고 크로아티아 해변에 휴가를 간다고 치자. 체코 가족은 자동차 트렁크에 빵이다, 치즈다, 야채다 장을 봐서 넣고 온 가족이 차를 타고 가서 민박집에 짐을 풀고 직접 요리해서 식사를 하며 열흘 만에 돌아오지만 슬로바크 가족은 비행기를 타고가 호텔에 묵으며 맛있는 음식을 사먹다가 돈이 떨어져 사흘 만에 돌아오는 기질이다. 체코 민족은 슬라브인과 독일인의 혼혈로 근면하고 실용적이며 교육수준이 높다. 이와 달리 슬로바크 민족은 슬라브인과 마자르(헝가리)인의 혼혈로 쾌활하며 독립심이 강하다.

근세로 접어들며 체코인들은 공업에, 슬로바크인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했다. 소득격차가 벌어지자 체코인들은 자신들이 땀 흘려 슬로바크를 먹여 살린다는 인식을 가졌다. 그러자 슬로바크인들은 ‘그래? 그럼 갈라서면 될 것 아냐!’ 라고 생각했으니, 서로 결별한 것이 두 나라 장래에 모두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슬로바키아와 갈라선 지금의 체코 공화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또다시 둘로 나누어진다. 서쪽의 보헤미아(Bohemia)와 동쪽의 모라비아(Morabia)가 그것으로, 북동~남서로 뻗은 표고 600~800m의 모라비아 고지(高地)가 완만하게 두 지방을 가른다. 체코공화국은 남한의 면적보다 작은데, 이 중 모라비아 지방은 체코 땅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체코 인구 1,000만 명의 20%에 이르는 200만 명이 이곳에 살고 있다. 하지만 9세기 한때는 모라비아 왕국으로 군림하며  보헤미아와 현재의 헝가리 일부까지 통치했다.
체코의 주류인 보헤미안은 보헤미안과 모라비안 모두를 체코인이라 말하지만 모라비아 사람들은 자기들은 모라비안이고 서쪽 사람들은 보헤미안이라고 완강하게 편을 가른다. 같은 슬라브계지만 민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체코공화국에서 두 민족이 한 나라를 구성하고 있다며 모라비안은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지금부터 천 년 전인 11세기, 모라비아 제국이 현재의 브르노 교외 스트라트카 강 옆에 자리잡아 기름진 땅을 딛고 부강해져 갔다. 14세기 말엔 브르노가 모라비아 제국의 수도가 되어 예술이 꽃피고 통상이 활발해졌다. 브르노에 산재한 수많은 수도원들은 이때 지어진 것이다. 브르노는 허사이트 전쟁에서 시지스 문드 왕의 편을 들었지만 두 번이나 패전의 쓴맛을 보고 결국 15세기 중엽, 앙숙인 체코 편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16세기 말 가톨릭 도시 브르노는 프로테스탄트로 개종을 하고 체코와 함께 반 합스부르크 대열에 서게 되었다. 잇따라 일어난 30년 전쟁에서 브르노는 스웨덴 침략군을 효과적으로 방어, 도시를 지켜냈다.

20세기 초, 슬라브 민족운동의 영향으로 모라비아는 보헤미아와 합쳐 체코가 되었다. 거슬러 오르면 두 지방은 슬라브라는 같은 피를 가졌지만 언어까지 달랐던 적대국이었다. 모라비아는 보헤미아에 비해 지대가 낮고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토지를 지녀 오곡백과가 풍성하다. 모라비아는 서쪽의 보헤미아, 동쪽의 슬로바크 사이에 끼어 있어 옛부터 완충역할을 했다. 보헤미아의 중심이 프라하라면 모라비아의 중심은 브르노다.

브르노는 체코에서 프라하 다음으로 큰 제2도시로 인구가 40만 명도 안 되지만 장엄한 도로와 드넓은 공원으로 사람들은 동구의 파리라 일컫는다. 길가의 노천카페에서 재잘거리고, 바에서 포도주 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의 모습도 어딘가 프랑스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근세에 들어와 브르노가 비약적으로 커진 것은 1839년 브르노~비엔나 간 철도가 완성되고 나서부터다. 대학이 서고 빌딩들이 솟아오르고 무역박람회가 열리고 도시 주위에 산업공단이 들어서면서 브르노는 유럽 유수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브르노에서 즐거움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포도주다. 체코에서 맥주는 보헤미아, 포도주는 모라비아다. 좋은 기후와 기름진 땅, 특히 질 좋은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 생산에 절대적인 석회질 땅이라 모라비아 포도주는 유럽에서도 그 품질을 인정받은 지 오래다. 남모라비아에만 가족단위 포도 농장과 포도주 양조장이 무려 1만8,000개나 있다. 모라비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목축으로 이곳 쇠고기의 육질은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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