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속 차를 만나는 곳, 서킷의 늑대(サーキットの狼) 박물관
2018-11-19  |   40,577 읽음

만화 속 차를 만나는 곳

서킷의 늑대(サーキットの狼) 박물관


글, 사진 황욱익(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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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동차 문화는 다방면으로 성장해 왔다. 그 중에는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만화(코믹스)가 있는데, 전문성과 사실감에 있어 세계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자동차를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교과서로 불리는 ‘이니셜 D’나 ‘완간 미드나잇’이 가장 유명하지만 일본 자동차 만화는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달려라 번개호’로 유명한 ‘마하 고고고’. 이후 1970년대 등장한 ‘서킷의 늑대(サーキットの狼)’는 일본의 수퍼카 붐을 이끌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 되는 만화다.


일본에는 다양한 테마를 가진 자동차 박물관이 여럿 있다. 특정 차종만 수집하는 개인 컬렉터부터 독일, 이탈리아 등 국가별 수집가를 비롯해 상상을 뛰어 넘는 컬렉터가 많다. 자동차 만화도 빼놓을 수 없다. ‘달려라 번개호’로 소개된 ‘마하 고고고’부터, ‘이니셜 D’, ‘완간 미드나잇’, ‘카페타’, ‘로드 레이서’ 등 자동차 관련 만화만 해도 그 설정과 배경이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이들 만화를 테마로 삼은 박물관도 있다. 이바라키현에 위치한 서킷의 늑대 박물관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기 만화 서킷의 늑대를 테마로 꾸며진 곳이다. 


논란도 많았지만 일본의 수퍼카 붐을 이끈 만화

일본의 거품 경제가 극을 향해 달리던 시절. 일본에는 자동차를 비롯해 골동품, 미술품 등 전세계의 고가 물건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돈이 되던 시절이다. 눈부신 경제 성장을 발판으로 자동차 시장 역시 급성장했고,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자동차 문화 역시 다양했다. 길거리 폭주족부터 막 체계를 잡아 가던 모터스포츠까지 당시 레이서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자동차 관련 산업이 커지면서 일본에는 본격적인 수퍼카 시장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생명을 걸고 달리는 위태로운 일반도로 배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지만 유럽산 수퍼카가 대거 유입되면서 전후 세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 역시 사실이다.  

이케자와 사토시 작가의 ‘서킷의 늑대’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일본의 유명 만화 잡지인 주간 소년 챔프에 연재된 만화다. 작가 자신이 자동차 마니아이기도 했기에 사실적인 묘사와 뛰어난 고증, 실제 번호판과 실존 인물, 실제 장소가 등장해 당시 자동차 마니아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단행본으로는 27권까지 나왔으며 누적 판매 부수는 1,700만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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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으로 27권, 누적 판매 부수 1,700만부를 기록한 서킷의 늑대 


전후세대에게는 매우 특별한 만화다. 인기에 힘입어 1977년에는 실사 영화로도 제작됐으며 속편인 ‘서킷의 늑대Ⅱ 모데나의 검’, ‘21세기의 늑대’까지 세계관이 연결되었다. 그러나 속편은 이렇다 할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보통 서킷의 늑대라고 하면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1975년 원작을 뜻하며 속편의 인지도는 전작에 한참 못 미친다. 

작가는 이 만화를 구상하고 연재하기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당시에는 자동차 만화에 대한 대중의 흥미가 높지 않아 연재 초반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무려 2년에 걸쳐 편집자를 설득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어렵게 탄생한 작품이다. 

스토리의 가장 큰 줄기는 이니셜 D와 비슷하다. 실제 이니셜 D 작가이자 자동차 마니아인 시게노 슈이치 역시 서킷의 늑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니셜 D에 타쿠미가 있다면 서킷의 늑대에는 로터스 유로파를 모는 후부키가 있다. 일반도로의 폭주족을 시작으로 후부키가 여러 자동차 마니아들을 만나고 성장하면서 서킷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차종과 일본 자동차 문화, 실제 배경이 되는 수도고속도로와 하코네 와인딩 로드, 후지스피드웨이, 츠쿠바 서킷, 모나코 F1 등의 묘사는 지금까지 나온 자동차 만화 중 최고라고 평가 받는다. 막판에는 F1에 진출하면서 스토리 자체가 지나친 ‘일본 자동차 문화 만세’로 기울기도 하지만 그 중심에는 자동차와 모터스포츠, 자동차문화에 대한 고찰이 진하게 남아 있다. 

아쉬운 점은 지나치게 유럽차 중심이라는 점이다. 전체 흐름에서 일본차의 등장은 토요타 2000GT와 S30 페어레이디 Z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주인공과 주요 등장인물은 포르쉐와 페라리, 마세라티, BMW, 재규어 등 유럽 스포츠카를 탄다. 만화에서 현실성을 따지고 드는 것도 우습지만 로터스 유로파가 최소 두 체급은 위인 스포츠카를 이기는 모습을 보면 역시 운전자의 역량과 배짱이 두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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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타 2000GT 컨버터블은 '007 두 번 살다' 제작을 위해 2대만 만들었다 


그러나 박물관은 작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도쿄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이바라키의 한적한 국도변에 자리 잡은 서킷의 늑대 박물관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겉모습이 화려하다. 건물 곳곳에는 만화의 주요 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커다란 로고와 함께 주인공 후부키가 촌스러운(?)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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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의 늑대 박물관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특이하다 


사전에 연락이 닿지 않아 개장일(주로 토요일 일요일)에 맞춰 방문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관장인 마이타 씨가 직접 가이드를 맡아 주었다. 사실 이 박물관의 설립 취지는 매우 작은데서 시작했다. 현재 박물관은 5명이 오너인 회사의 소유인데, 서킷의 늑대 팬이었던 아들을 위해 등장 차들을 사 모으고 관련된 소품을 수집하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홈페이지에는 작가인 이케자와 사토시의 만화가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설립되었다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 작가와는 큰 연관이 없는 개인 소장품 중심이라는 게 마이타 씨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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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의 늑대 박물관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개장하는 개인 박물관이다 


전시 차종 역시 만화에 등장하는 차종이 대부분이다. 주인공 후부키가 애용하는 로터스 유로파 스페셜을 비롯해 포르쉐 카레라 RS, 람보르기니 미우라, 람보르기니 쿤타치 LP400S, 란치아 스트라토스(레플리카), 마세라티 캄신, 데토마소 판테라 등 생산 수량이 극히 적고 희소가치 높은 차들이 전시됐다. 무엇보다 가장 눈길을 끈 차는 야타베 RS인데 이 차는 만화에만 등장하는 특별 경주차로 페라리 디노 246GT를 레이싱카로 개조했다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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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엔진을 얹은 데토마소 판테라는 만화에서 중요한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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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와 BMW가 종종 등장하지만, 이탈리아 스포츠카에 비하면 비중은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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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와 페라리, 포르쉐의 경쟁은 서킷의 늑대 스토리의 가장 큰 줄기다 


박물관에는 만화에 나오는 사양을 그대로 재현한 야타베 RS가 있는데 실제 주행이 가능하다. 이 차뿐이 아니다. 현재 전시된 모든 차는 정식 등록되어 있으며,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서킷으로 가져가 주행을 하고 컨디션을 체크한다고 한다. 언제든 주행하는데 문제가 없는 상태로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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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 등장하는 경주차 야타베 RS는 가상의 모델이다. 이곳에 있는 차는 만화 설정 그대로 만든 차로, 실제로 달릴 수 있다 


메인 쇼룸 옆에는 작은 쇼룸이 하나 있다. 이곳은 만화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거나 일본 자동차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차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이곳의 차들 역시 언제든 주행이 가능한 상태이며, 일부 차종은 박물관에서 개최하는 동승체험 이벤트에 출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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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한편에는 일본차 역사에 기념비적인 모델을 보관한다


이곳에는 단순히 자동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킷에 늑대에 관련된 것이면 만화책과 소품, 전시차들이 출전했던 클래식카 이벤트의 트로피까지 마치 역사 보관소 같은 느낌이 가득하다. 마이타 관장 외에도 가이드를 담당하는 분들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로 대부분은 자동차 마니아 출신의 자원봉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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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만 봐도 마음이 설레는 스포츠카들. 중간에 보이는 란치아 스트라토스는 레플리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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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람보르기니 LP40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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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수퍼카의 기원이라 불리는 람보르기니 미우라. V12 엔진을 뒤쪽에 가로로 배치했다


이들에게 듣는 차에 얽힌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고 생생하다. 젊은 시절 좋아했던 차들을 관람객에게 설명해 주면서 이들은 문화의 전달을 늘 강조한다. 자신들이 경험하고 즐겼던 자동차 문화가 다음 세대에도 전달되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무뚝뚝한 인상의 마이타 관장은 자동차 설명이 시작되면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자동차의 세세한 스펙만 나열하는 것이 아닌 이 차가 만화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실제로 자동차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굉장히 재미있고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취재를 마친 필자에게 마이타 관장은 “원칙은 주말에만 개장 하지만 언제든 오면 박물관을 열어주겠다”고 살짝 귀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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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뿐 아니라 서킷의 늑대와 관련된 거의 모든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ookami-museum.com/ 

입장료 성인 800엔, 초중고등 학생 400엔, 보호자 동반 초등학생 이하 무료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 

개관일 토요일 일요일(홈페이지 참조)

휴관일 평일, 연말연시(12월 28일~1월 3일)


이니셜 D 테마의 

이카호 자동차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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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자동차 만화 이니셜 D의 배경이 되는 이카호(만화의 아키나 지역) 부근에는 이카호 장난감 인형 자동차 박물관이 있다. 마사히로 요코타의 컬렉션이 소장되어 있는 이곳에는 지역 특색을 살린 이니셜 D 세트장이 있다. 2016년 5월 박물관 2층에 꾸며진 이니셜 D 세트장은 만화에 등장하는 AE86과 타쿠미 아버지가 운영하는 두부가게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이곳 역시 단순히 만화에 등장하는 곳을 재현해 놓은 것이 아닌 이니셜 D 관련 자료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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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AE86은 만화에 등장하는 사양 그대로를 재현했다. 와타나베 8 스포크 휠과 5밸브 4AG 엔진, 트레노 컬러 등이 그 특징이다. AE86 옆에는 라이벌 타카하시 케이스케가 타는 RX7(FD3S)도 전시되어 있는데 만화의 흐름 상 후반부 버전이다. 이밖에도 이카호 요코타 컬렉션의 기념품 상점에 가면 다양한 이니셜 D 관련 상품을 만날 수 있으며 근처 하루나 호수(모기와 타쿠미가 데이트를 했던 곳)와 하루나 산(아키나 산), 근처 마을은 만화에 등장하는 모습과 90% 이상 흡사하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페 D'z 개러지 역시 이니셜 D를 테마로 꾸며진 카페로 이곳에서는 기념품으로 타쿠미의 면허증을 판매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ikaho-omocha.jp

입장료 성인 1,080엔, 중고등 학생 860엔, 유아(4세), 초등학생 430엔 

개관시간 연중무휴 

4월 25일~10월 30일 오전 8시 30분~오후 6시 

11월 1일~4월 24일 오전 8시 30분~오후 5시 


실차 크기의 마하호가 있는 

나스 클래식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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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동차 만화의 시초라 불리는 마하 고고고(이하 마하 고)는 이미 1967년에 TV에 등장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상상 속의 자동차가 등장하다 보니 서킷의 늑대나 이니셜 D, 완간 미드나잇 같은 작품에 비해 자동차 자체의 재미는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차 역시 허구이며 스토리도 허구다. 하지만 마하 고가 갖는 의미는 그 이상이다. 1967년 첫 등장 이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사이버 포뮬러 과거 버전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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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북서쪽의 소도시 나스에는 일본에서(세계적으로도) 거의 유일한 마하 고의 실물 크기 모형이 있는 나스 클래식카 박물관(아이언 돔)이 있다. 나스의 마하 5(고)는 2008년 비가 주연한 영화 ‘스피드 레이서’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데모카인데 일본 개봉과 동시에 일본 전국을 돌면서 화제가 됐다. 데모카는 요코하마 타이어와 워너 브러더스가 10대만 제작했다. 이후 요코하마 타이어가 한 대, 워너 브러더스가 한 대씩 소유 했으며 나머지는 개인 수집가들에게 판매되었다. 나스 클래식카 박물관에 있는 마하 고는 요코하마 타이어에서 기증한 것으로 일본 내 유일한 실물 크기 모형이다. 이 외에도 나스 클래식카 박물관에는 드 디옹 부통과 메사슈미트, 세계의 경찰모 컬렉션 등을 소장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www.nccm.co.jp/

입장료 성인 1,000엔, 초중고등 학생 600엔

개관시간 연중무휴 

4월~9월 오전 9시~오후 6시 

10월~3월 오전 9시~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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