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리더를 꿈꾸는 베트남의 수도 , 하노이를 가다
2018-05-23  |   23,854 읽음

동남아시아 리더를 꿈꾸는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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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호치민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 역동적인 도시다. 오토바이를 타고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흔적, 눈부신 경제 성장의 단면들을 돌아보았다.


하노이는 역동적인 도시다. 거리를 누비는 수많은 오토바이와 건설 중인 높은 건물들은 하노이의 빠른 발전 속도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는 호치민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호치민에 비해 무게감이 있다. 남북으로 갈리었던 베트남은 1975년 북베트남에 의해 통일이 되었다. 아마도 하노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베트남을 통일했다는 우월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런 자신감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구경을 나서려고 하는데 청소부와 마주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당당하게 손을 들어 멋지게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청소부가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재미있는 상황은 처음인지라 오히려 내가 당황했다. 그런 나에게 빨리 찍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그래서인지 하노이 사람들에게서 느낀 첫인상은 무척이나 당돌하다는 것이었다. 하노이가 특별하게 느껴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랩 오토바이를 타고 관광에 나서다

하노이도 여느 대도시와 마찬가지로 교통 체증이 심하다.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데는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베트남의 가장 대중교통 수단인 오토바이도 거리에 넘쳐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돌기로 했다. 안전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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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는 우버와 그랩이 오토바이 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


베트남에는 우보(Uvo)와 그랩(Grab)이 오토바이 영업을 한다. 영어를 하는 운전기사를 구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호텔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그랩 오토바이 운전자와 흥정을 했다. 물론 말이 통하지 않으니 지도에 표시된 곳을 알려주고 계산기에 금액을 찍으라는 시늉을 했다. 내가 갈 곳은 대통령 궁을 포함해서 총 일곱 군데였다. 오토바이 기사가 지도를 한참 살펴보더니 220,000이란 숫자를 찍는다. 우리 돈으로 치면 약 11,000원 정도다. 예상보다 훨씬 싼 가격이라 더 흥정할 이유가 없다. 이렇게 해서 가장 빠르고 실속 있는 하노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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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청소부도 사진을 잘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한다


도심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고층빌딩들이 많다. 경제 도시라 불리는 호치민 보다도 건물이 많아 보였다. 현대와 기아 자동차도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영업용 택시는 대부분 현대 i20과 기아 모닝이다. 지나는 길에 하노이 대우 호텔을 보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 김우중 회장이 베트남의 미래를 예견하오래전에 지은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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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김우중 회장이 세운 하노이 대우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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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빌딩 앞을 현대와 대우차가 달리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높다란 롯데 건물도 보인다. 롯데는 중국에서 사드 문제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결국 작년에 철수를 결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중국 정부의 집요한 압력 때문에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승승장구하고 있어 중국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많은 한국기업이 사드 사태 이후에 베트남으로 본거지를 옮기고 있다. 그동안 급격한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 경쟁력이 낮아진 원인도 있지만, 한국 기업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반응이 예전에 비해 싸늘해졌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를 위해 각 성의 관리들이 모두 나섰지만, 요즘은 첨단산업이 아니면 아예 투자조차 받아주지 않는다.       


호수에서 유래된 이름 하노이

하노이의 많은 건물이 유럽식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도로 주변 건물들이 대부분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탓이다. 하노이의 습한 기후는 중국의 남부와 비슷하다. 중국 남부에서 시작되는 산악지형이 하노이까지 이어진다. 여름은 덥고 겨울에는 쌀쌀하다. 일 년 내내 더운 호치민과는 전혀 다른 날씨다. 건물들을 크지 않고 좁게 지은 것은 습도 높은 이곳 기후를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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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건물들. 습기가 높아서 좁게 지어진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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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셉 성당. 프랑스는 선교사들을 핍박했다는 이유로 베트남을 침공했다 


하노이 시내 어딜 가나 외국 관광객들이 무척 많다. 개방 후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늘어나고 외국인의 왕래도 많아졌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다. 그렇지만 요즘 중국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롭기만 하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영해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이 문제로 베트남은 물론 필리핀, 인도네시아와도 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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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프랑스 총독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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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하우스. 멋진 건물이다 


프랑스식의 대형 건물들은 대부분 정부 기관이나 외국 대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처음 찾은 곳이 프랑스 총독 건물로 대단히 웅장하고 멋지다. 한때 북베트남의 지도자였던 호치민이 집무실로 사용하던 건물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바로 앞에는 호치민의 묘지가 있다. 그는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1969년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뼈를 화장한 후 북부, 중부, 남부에 골고루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베트남 국민들은 그를 영원히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미라로 남겼다. 내가 방문을 했을 때는 방부제 처리를 위해 러시아로 옮긴 상태였다. 정기적으로 러시아로 보내 이런 처리를 한다고 한다. 호치민은 평생을 청렴하게 살았다. 그의 유산은 다 떨어진 구두와 양복 한 벌 뿐이었다.

하노이라는 명칭은 2개의 강이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호수의 도시로 불리 울 만큼 호수가 많다. 300개가 넘는 호수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시내 중심에 있는 호안끼엠 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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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총독 건물에도 작은 호수가 있다. 하노이는 호수의 도시다 


 중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이 호수에서 발견한 검으로 중국을 물리친 후 호수에 돌려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호수 주변에는 많은 시민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언제 전쟁을 치렀던가 할 정도로 평화스럽다. 호수 남쪽에는 아름다운 프랑스식 건물들이 밀집해 있고 북쪽에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은 대부분 중국산. 메이드인 베트남 제품을 파는 매장도 보인다. 외국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들려보지만 아직 베트남에서 만든 제품은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다. 그래도 견고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어 앞으로 경제 대국으로 발전할 여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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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묘소. 미이라 상태로 보존 중이다. 정기적으로 러시아로 보내 부패방지 처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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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의 집무실. 호치민은 평생 청렴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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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에는 300개가 넘는 호수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호엔끼엠 호수 



베트남에 불고 있는 한류 바람

호수 옆에 큰 쇼핑몰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행사가 진행 중이다. 여기에 모인 젊은이들의 복장이 무척이나 도발적이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련되고 행동들도 역동적이다. 게다가 거리낌이 없다. 사진을 찍으려 하면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내과 의사라는 한 여성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한 후 가방과 자켓을 벗어 도로 옆에 내려놓고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마도 세계 최강 미국은 물론 중국도 이겼다는 자부심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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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만난 하노이 처녀들. 사진을 멋있게 찍어 달라며 포즈를 취한다, 베트남의 신세대들은 도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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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인베트남 제품을 파는 상점. 아직까지 상품 구성은 다양하지 못하다


얼마 전에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베트남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군이 월남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물론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도 간접적으로 전달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에 대해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한 것 같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베트남 정부의 반응은 의외로 시큰둥하다. 승전국인 베트남이 굳이 대한민국의 사과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계속 사과를 하겠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를 대단히 부담스러워했다. 물론 한국군이 자행했던 양민 학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베트남에서 굳이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가 계속 사과를 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새가 좀 우습다. 

베트남은 패전국이 아닌 승전국으로서 자긍심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미국의 요청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은 1965년 비둘기 부대를 필두로 해병대와 맹호, 백마부대 등 32만 명이 투입되었다. 당시 한국군은 대단히 용맹스러웠지만 비전투원인 주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등 반인륜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베트남에는 반한감정이 없다. 오히려 한국인들을 좋아하고 한국의 노래와 드라마에 푹 빠져있다. 특히 올 초에 중국 창조우에서 열린 AFC 23세 이하 축구대회에서 준우승을 이끈 박항서 감독 때문에 한국에 대한 감정은 어느 때보다 좋다. 우리들이 히딩크 때문에 네덜란드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의외로 한국에도 많은 베트남 여자들이 살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 며느리가 된 베트남 여인들의 숫자가 중국보다 많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들었다. 대한민국과 베트남은 유교 사상이 몸에 배어있어 어느 민족보다 쉽게 동화될 수 있다.  


개방 선택 후 빠른 경제 성장

전쟁기념관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무척 많다. 베트남은 우리처럼 무수히 많은 외침을 받은 나라다. 중국과 인접한 관계로 옛날부터 숱한 침략을 받았다. 기원전 111년 중국 한나라에 병합되어 서기 939년까지 천년 넘게 지배를 받았다. 기구한 역사의 시작이다. 한동안 잠잠하다가 1406년에 중국이 다시 쳐들어와서 1428년까지 베트남을 점령했다. 중국과의 대립이 뜸해진 후에는 프랑스 선교사를 박해했다는 이유로 1883년 프랑스군이 진격해 들어왔다. 결국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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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이 무척 많다. 미국과 싸워 이긴 베트남을 보고 싶은 심정은 누구나 같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자 이번에는 일본이 쳐들어왔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여 독립을 이루는가 싶었지만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반도(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1946년부터 다시 전쟁에 돌입한다. 8년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1954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위 17도를 기준으로 북부에는 호치민의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남쪽에는 미국이 지원하는 베트남 공화국이 세워진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북베트남을 공격하면서 다시 오랜 내전을 겪는다. 이런 처절한 투쟁의 역사를 지닌 나라이기에 베트남 사람들은 대단히 강한 투쟁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대단히 호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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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박물관. 베트남은 숱한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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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큰소리를 치지만 베트남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다가 바로 철수를 했다. 베트남이 중국이 지원하는 캄보디아 정부를 와해하고 친 베트남 정부를 세운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러나 전쟁을 오래 끌면 불리하다고 판단해 군대를 철수시켰다. 무엇보다 베트남군의 저항이 격렬했기 때문이다. 미군을 굴복시킨 베트남군의 게릴라전에는 중국군도 속수무책이었다. 미국 LA 오렌지 카운티에는 베트남 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베트남 갱들은 어느 지역 조직보다 잔인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숱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기에 거칠 것이 없다. 그래서 흑인 갱들도 베트남 갱들은 건드리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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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앞에 세워진 레닌 동상. 호치민은 레닌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


전쟁 기념관 앞에는 레닌의 동상이 서있다. 호치민이 가장 염원했던 것은 레닌식의 사회주의 건설이었다. 그의 뜻을 받들어 북베트남은 1975년 베트남의 통일을 이룩하여 진정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레닌의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사회주의는 퇴보를 거듭해 국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갔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기반으로 개방을 시작하여 중국식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 베트남의 경제는 매년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6.4%. 대한민국의 제일 큰 투자국이 베트남이다. 우리나라의 삼성과 LG가 베트남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특히 삼성 휴대폰 하나가 베트남 수출의 20%를 차지할 정도이니 그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은 인구 9천5백만 명 중 절반 이상이 20대의 젊은이다. 초고령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우리와 일본 처지에서 보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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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는 LG와 삼성 광고판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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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관통하는 기찻길, 베트남의 철도는 협궤다  


1천년 넘는 역사의 대학, 문묘

베트남에도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학이 있다. 공자의 학덕을 기리고자 1070년에 리타인동 황제가 세운 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문묘로, 공자묘라고도 한다. 베트남도 우리와 같이 오랜 기간 유교를 국교처럼 여기고 공자를 숭상해 왔다. 베트남에는 아직도 유교 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부모를 공경하고 가족들 간의 우애를 중시한다. 정작 공자의 사상이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는 푸대접을 받고 있지만 한국과 베트남에서 꽃을 피웠다. 문묘 안에는 15세기부터 2년에 한 번씩 치러졌던 과거시험의 합격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이런 역사가 있어 대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베트남이 동남아시아의 보잘것없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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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는 하루가 다르게 높은 빌딩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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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최초의 대학인 문묘는 천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갈증이 나 요셉 성당 앞 길거리 카페에서 음료수를 주문했다. 목욕의자에 앉아 커피를 즐기는 하노이 시민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그런데 마시고 난 유리컵을 프라스틱 통 안에 한번 집어넣었다가 꺼낸 후 다시 음료수를 부어서 내어 준다. 플라스틱 통 안의 물은 한 번도 교체하지 않고 온종일 쓰는 것 같다. 이걸 과연 마셔도 될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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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 목욕의자를 늘어 놓으면 카페가 된다


베트남에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성당이 있다. 프랑스가 베트남에 진출하면서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프랑스가 베트남을 침공한 구실도 선교사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연유로 프랑스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건물뿐 아니라 빵 문화도 깊게 뿌리내렸다. 베트남은 세계 최대 쌀 생산국이지만 아침 식사를 빵으로 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점심은 롯데리아에서 해결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점심때가 훌쩍 넘어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롯데리아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절로 발 길이 옮겨졌다. 안으로 들어서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손님들로 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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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70년대를 연상케 하는 길거리 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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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춤을 추는 베트남 어린 아이들. 베트남 신세대들은 전쟁의 참화를 모른다


오토바이가 많다 보니 재미있는 풍경도 많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을 위한 카페와 식당, 그리고 세차장이 많다. 길거리 이발사도 색다른 풍경이다. 우리네 70년대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만 베트남도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또한 치맛바람도 대단하다. 하노이의 한 예술극장에 모인 엄마들의 복장이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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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엄마들의 치맛바람도 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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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세차장은 베트남에서 괜찮은 사업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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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도 여느 사회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아이들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어릴 때부터 외국기업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등록하고 미국 유학을 가는 것은 기본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가장 큰 문제는 관리들의 부정부패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업을 하려면 정부나 관공서의 공무원들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 현대 자동차가 중국에서 베이징을, 삼성이 베트남에서 하노이에 자리를 잡은 것도 중앙정부의 지원을 얻고자 하는 바가 크다. 하노이에서 만난 베트남 젊은이들의 꿈은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처럼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큰돈을 가장 빨리 벌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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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은 대부분 관공서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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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젊은이들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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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젊은이들의 꿈은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글 사진 양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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