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오리진 컨티넨탈과 부커스
2018-05-17  |   29,021 읽음

아메리칸 오리진

컨티넨탈과 부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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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세력 블렌디드 위스키와 이에 맞서는 신흥 세력 싱글 몰트 위스키는 양강 구도를 형성한 지 오래. 최근 여기에 더해 새로운 조류가 생겨났다. 저 멀리 미국에서 태평양을 건너온 버번위스키다. 그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들만이 즐길 수 있었던 버번, 부커스를 마셨다. 부커스가 목구멍을 넘어가자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차가 있었다. 링컨 컨티넨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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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스타, 링컨

미국 포드의 고급차 브랜드 링컨(Lincoln). 지난달 편집부가 진행한 플래그십 기획 기사에는 끼지 못한 브랜드다. 엄연히 기함 세단 컨티넨탈(Continental)을 보유 중인데도 말이다. 아시아, 유럽 고급 세단들의 흥겨웠던 파티에 자동차 대국 미국이 함께하지 못한 건 컨티넨탈의 전륜구동 기반 사륜구동 시스템 때문이었다. 모름지기 고급차는 뒷바퀴를 굴려야 한다는 편집부의 이유 있는 고집을 꺾는 덴 실패했지만, 링컨은 요즘 시장에서 보란 듯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16년 북미 국제 모터쇼에서 화려한 부활을 알린 컨티넨탈은 국내 출시 직후 링컨 브랜드 월별 판매량 1위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장의차 이미지가 강했던 링컨의 화려한 부활이다. 링컨은 컨티넨탈을 통해 1980년대까지 존. F. 케네디를 비롯한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로서 그 위상이 하늘을 찔렀던 영광의 세월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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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위스키, 버번

이렇듯 새로이 주목받고 있는 링컨이지만 아직 길 위에서 쉽게 만나긴 어렵다. 처음 버번(Bourbon)을 마셨을 때가 그랬다. 도로에서 운 좋게 링컨 차를 만난 격이랄까. 어릴 때부터 집안 장식장을 채우고 있던 발렌타인이니, 로얄살루트니 하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기자를 ‘양주’에 눈 뜨게 해준 장본인이었다. 이젠 트렌드라고 부르기도 힘들 정도로 안착한 싱글 몰트는 아예 몇 병 구비해놓고 나이트캡(잠을 청할 때 마시는 술)으로 즐기고 있다. 그런데 버번은? 술에 관심이 있더라도 깊이 있게 그리고 오래 즐겨온 게 아니라면 맛도 모르는 이가 태반일 거다. 나부터가 그랬으니까.

버번위스키는 북미 지역 특산물인 옥수수와 호밀을 이용해 만든다. 보리, 쌀을 이용한 부드러운 위스키에 익숙한 우리에게 버번은 꽤 낯설 수밖에 없다. 술 많이 마시기로는 당당히 월드클래스를 자처하는 한국의 국민 술, 소주는 버번의 도수에 비하면 애교에 그친다. 43도는 기본, 45~50도에 달하는 것도 많다. 일반적인 스카치위스키에 비해 거친 맛도 버번의 특징. 그중 부커스(Booker's)는 강한 알코올과 거친 맛 뒤에 숨은 부드러움이 기억에 남는 버번이다.


원숙미 품은 컨티넨탈

컨티넨탈은 엄연히 링컨 브랜드의 우두머리 자리를 꿰찬 플래그십 세단이다. 현재로선 캐딜락 CT6와 함께 우리나라에 판매되는 미국 대형 세단의 대표 모델이다. 사실상 유럽산 세단이 평정한 우리나라이지만 신진 세력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은 유럽산이 평정하다시피 한 위스키 시장에서 분투 중인 버번과 닮았다. 부커스를 들이켜면서 컨티넨탈이 떠오른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배경, 어딘지 모를 낯선 인상······ 그러나 이러한 불리한 출신을 불식시키고 마는 완성도를 갖췄다는 데서 일맥상통한다. 인지도를 중시하는 첫차 구매 경향 때문에 링컨은 어느 정도 운전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오너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컨티넨탈도 마찬가지다. 비싸고 흔한 대형 세단 사이에서 특별함을 즐기고 싶은 이들의 타깃이 된다.

컨티넨탈이 보여주는 실력은 다분히 플래그십스럽다. 일단 외모부터 가망 고객군을 넓히기 위해 스포티함을 버무리는 여느 대형세단들과 비교해도 기품이 있다. 클래식함이 넘치다 못해 뚝뚝 흘러내린다. 실내 역시 몇천만 원 더 비싼 세단 못잖은 디테일들로 뒤덮여있다. 인생 1막을 넘어 생애 전환기를 지나며 여유를 찾는 이라면 컨티넨탈의 내실 있는 기품에 흡족한 미소를 지을 거다.

컨티넨탈의 최고출력은 393마력으로 라이벌인 CT6 3.6의 340마력을 크게 웃돈다. 비슷한 가격의 제네시스 EQ900(3.3터보 370마력)까지 포함시켜도 우월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동을 켤 때만 해도 차분히 일어나던 컨티넨탈은 페달을 깊숙이 밟자 묵직한 바디를 잊게 만들 정도로 빠르게 가속한다. 잠시 과욕을 부렸나 싶어 페달에서 살짝 발을 떼면 대형 세단스러운 움직임을 보이며 짐짓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간혹 거친 노면을 거르지 못하고 엉덩이까지 전달하는 건 약간 아쉽지만 이미 고득점을 한 탓에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10세대 컨티넨탈은 최상위 트림 프레지덴셜 모델이 8,940만원에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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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코코낫 품은 부커스

부커스는 미국 켄터키주의 짐빔(Jim Beam) 증류소에서 만든다. 짐빔 증류소의 5대 사장이었던 부커 노(Booker Noe)는 누가 증류소 집안 아들 아니랄까봐 술을 끔찍이 아낀 애주가였다. 6~8년 숙성된 짐빔 위스키 중에서도 최상급 원액을 그대로 병에 담아 소수의 지인들과 나눠 마셨는데 이것이 바로 은밀한 버번위스키, 부커스의 탄생 배경이다. 원액 그대로 담았으니 도수는 무려 60도를 웃돌아 럼, 고량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발효통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3도 안팎이다. 부커스는 병마다 각기 다른 라벨을 붙여 숙성 연한과 도수를 표기하고 있다. 숙성통끼지 섞거나 물을 더해 도수를 맞추기 않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위스키다. 

맛을 보기 전에 향을 조심스레 맡는다. 날카롭게 피어오를 알코올이 분명 재채기를 부를 테니 말이다. 유리잔 바깥을 천천히 타고 오른 코는 어느덧 절벽을 넘어섰다. 이상한 일이다. 알코올의 화한 느낌은 전해지지만, 바닐라, 메이플 내음이 이를 덮어 버린다. 어릴 적 자주 먹던 과자 빠다코코낫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나던 냄새다. 술을 딴 지 오래 됐나 싶어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불과 엊그제 딴 새 술이라고.

머리를 긁적이며 한 모금 마셔본다. 첫 느낌은 부드럽다고 느낄 정도로 오일리하다. 그러나 캐스크 스트렝스인지라 알코올이 혀를 재빠르게 훔치고 사라진다. 그 뒤로 버번임을 알리는 묵직한 매운맛이 입안 전체를 자극한다. 통후추 혹은 산초 같은 조미료를 혀에 바로 떨군 듯한 맛이다. 이 때문에 입천장은 잠시 얼얼해지기까지 하지만 부커스는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내게 달콤한 뒷맛을 선물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버번위스키의 풍미와 다를 바 없지만, 거친 맛은 덜고 재료 본연의 캐릭터가 잘 전달되게끔 세팅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도 버번은 버번인 만큼 아무래도 위스키에 혀 좀 적셔봤다는 경력자들에게 어울린다. 젊은 고객보단 유행을 좇지 않는 원숙미를 갖춘 연령대가 어울리는 컨티넨탈처럼 말이다.

지난번 오반 14년이 데일리 위스키라면, 부커스는 위클리, 혹은 먼슬리에 가까운 술이다. 불타는 금요일이나 월 마감을 끝낸 날에 입에 한잔 털어 넣기 딱 좋다. 하이볼로 유명한 일본 산토리가 짐빔 증류소를 인수한 탓에 일본에서 사는 게 부커스를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 구하려면 10만 원에 웃돈 몇 만원을 더 얹어야 가능하다.


글 김민겸 기자 사진 포드세일즈서비스코리아, 에드링턴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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