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다, 남원
2018-02-20  |   16,169 읽음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들다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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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절절한 사랑의 무대인 광한루를 배경으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소화되고 살을 불렸다. 더해서 지리산이 내어주는 풍요로움 또한 남원을 무대의 전면에 내세우는 든든한 역할을 했을 터. 지금 이 순간에도 남원은 남녀의 사랑과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영글어가고 있다.   

 


전통 예술이 활짝 꽃을 피운 남원시 옻칠공예관

이름난 산에는 일찍부터 가람이 들어섰으니 남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도자들이 만들어서 사용하던 목기(木器)의 제조 공법이 민가로 이전됐고, 남원은 그래서 이름을 더 얻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실상사에는 한때 3,000여 명의 수도승들이 머물렀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목기의 운명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산사는 기울어갔고 목기 대체품들이 들어서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제기(祭器)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을 뿐 실제 생활로 녹아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3호 옻칠 장인 박강용 선생 등 장인들의 노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4년 문을 연 남원 옻칠공예관은 옻칠 공예의 정수를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1,980㎡의 부지 위 660㎡의 공간에 전시관과 옻칠작업장, 정제실, 건조실, 디자인실 등을 갖추고 있다. 우선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옻칠 공예의 그 화려함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스님들이 사용하는 발우와 수저세트, 다기, 반상기를 비롯해 제기 및 제사상 세트 등이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멋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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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공예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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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광택을 내는 반상기 세트 

 

 

천연도료인 옻칠을 하면 외부의 습기를 흡수하거나 방출해 일정한 수분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나무로 만든 생활용구나 공예품에 옻칠을 하면 표면에 견고한 막을 형성할 뿐 아니라 광택이 나고 오랫동안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토피 개선 효과를 비롯해 방충, 항균, 원적외선 방출, 방부 및 탈취 효과까지 있어 가장 완벽한 도료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초급과 중급, 그리고 전문가반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주 1~2회 운영하고 있다. 관람료는 없고 평일 09:00~18:00까지 문을 열고 월요일에는 닫는다(자세한 사항은 전화063-631-5725로 문의). 

 

성춘향과 이몽룡의 이야기 품은 광한루원, 예촌 

이야기를 엮어내고 많은 이들이 덧칠을 하며 끌어가는 데 사랑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까? 바로 불세출의 주제라 할 수 있는 ‘사랑’이 남원에서는 365일 단 하루도 지지 않고 활짝 꽃을 피운다. 

광한루원은 바로 춘향전의 무대가 되는 곳이다. 그네를 타는 춘향을 지켜보며 애틋한 정을 키워가는 이몽룡. 둘이 나눈 사랑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가다 보면 애간장을 녹이는 듯한 이별, 그 후에 닥친 춘향의 고난, 과거에 급제한 몽룡이 어사가 되어 변 사또의 폭정을 단죄하는 장면, 두 사람의 아름다운 해후라는 줄거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춘향전은 이미 1935년부터 ‘성춘향’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제작되었고, 이후로도 ‘춘향전’, ‘탈선춘향전’, ‘춘향뎐’ 등으로 꾸준하게 리메이크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임권택을 비롯한 당대의 유명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은 것은 물론  허장강, 박노식, 신성일, 장미희, 이덕화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김희선과 이민우가 열연한 TV 드라마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18세기의 소녀 21세기를 살다’라는 테마로 구성된 광한루원의 춘향관은 저마다 이몽룡이 되어 춘향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순수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오작교를 건너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선조 15년(1582)에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길이 57m, 폭 2.4m에 4개의 홍예경간(무지개 모양의 다리나 기둥 사이의 공간)으로 새로 놓은 다리다. 광한루는 정유재란 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그대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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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원의 춘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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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을 잃은 감나무가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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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매의 집도 재현해 놓았다

 

남원으로 유배를 온 황희 정승이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광통루는 그 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라고 한 후 광한루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에 연꽃을 심고, 오작교를 놓고,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이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었다. 봉래섬은 백일홍, 방장섬은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은 영주각을 세웠는데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고 말았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중건된 것으로 1794년에 영주각이, 1964년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광한루원 바로 곁에는 전통 한옥으로 지은 호텔 ‘예촌’이 있다. 최기영 대목장을 비롯한 이근복 번와장, 유종 토수 등 대한민국 최고의 한옥 명장들이 직접 시공에 참여해 전통의 멋이 그대로 흐른다. 황토, 대나무, 해초 등 오롯이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사용해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구들장과 함께 옻칠 기법으로 마무리한 이곳은 2017년 한국관광의 별 숙박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굳이 숙박을 하지 않아도 호텔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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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제일루라 쓰여진 광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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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원 바로 옆에 자리잡은 한옥 호텔 예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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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예촌의 객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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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방으로 만들어진 객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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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령과 춘향의 동상

 

 

 

천년고찰 실상사

뉘엿뉘엿 저무는 해를 마주하며 찾은 실상사는 한때 3,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생활을 했을 정도로 융성하던 곳이었다. 너른 들 한가운데 버티고 선 가람은 심산유곡에 자리를 잡아 신비한 기운을 더하는 산사에 비해 세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을 불러 마을을 이루고, 민초들의 삶을 어르며 풍족하게 해주어 ‘극락정토’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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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는 한 때 3천여 명의 승려가 생활했던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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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삼층 석탑을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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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의 철불 부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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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각대사의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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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각대사 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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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의 석장승

 

뭔 절이 동네 앞에, 너른 들판 논 가운데 멋없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갖는 의문에 기자 역시 공감한다. 이에 대해 주지스님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렇게 밝혀 놓았다. 대략 요약하면 이렇다.

“실상사는 남녘에서 가장 크고 깊은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수만 평의 논 한가운데 놓여 있다. 이 너른 들판이 여름이면 새록새록 자라는 벼로 초록바다가 되고, 실상사는 그 속에 마치 섬처럼 떠 있다. 가을날 벼가 익어 황금물결을 이룰 때면 마치 보물선이 흔들리는 듯하고, 겨울이면 벼를 베고 난 휑한 들판에 무상(無常)의 모습으로 있다. 그리고 다시 봄이면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 마치 신기루처럼 자리한다. 마음을 열고 보면 너른 들판 가운데 멋 하나 없이 밋밋하게 있는 그런 절이 아니다. 실상사가 처음 이곳에 자리할 때는 그야말로 심산유곡이었다. 그러던 곳이 부처님의 품을 찾아든 사람들로 마을이 생기고 논밭이 만들어지다 보니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선계와 속계를 구분하는 만수천을 대하면 다리 입구의 석장승이 “어서와! 이곳은 처음이지?”라고 마중을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다른 석장승이 실상사로 안내를 한다. 그 너머로 지리산 천왕봉이 시야에 아련하게 들어온다. 이곳은 국보와 보물의 보고여서 그 보물들을 꺼내어 보다보면 천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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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허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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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관 안에는 각종 허브들이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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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 관련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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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교육장에서 상영중인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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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면 나비의 날개로 만들었다

지리산 ‘생 햄’과 ‘흑돈’을 아십니까?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그 길을 만들어갔던 이의 고단한 일정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스페인어로 하몬(Jamon)으로 불리는 생 햄이 남원의 운봉읍 화수리에서 제대로 숙성되어가고 있다. 돼지고기를 훈현시키지 않고 소금에 절여 만드는 생 햄은 본토인 스페인에서도 귀하게 여기는 식재료다.

산간지방의 깨끗한 공기와 수분이 적절하고 바람이 찬 지형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버크셔 흑돈을 원료로 지리산 고랭지 기후의 청정성과 희소성이 결합해 탄생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박화춘 씨는 농업진흥청 등에서 활동한 종자개량 전문가였다. 그런 박 박사가 퇴직 후 고향인 남원에 버크셔 품종 흑돼지를 들여와 우리 풍토에 맞도록 품종을 개량한 것이다. 

박 박사에 따르면 스페인의 하몽은 사육하는 방식(완전 방목, 반 방목, 축사 등)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면서 “지리산 생 햄도 각종 환경 등을 고려해 가치 산업으로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아울러 그는 철저하고 엄격한 기준을 통해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야 하는 등 농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리산 생 햄은 자연환경과 천일염만을 이용해 장기간(겨울에 원료를 선택해 정형과 염지를 한 후 초기 건조과정을 거쳐 봄에 건조, 여름에 저장을 해 다시 겨울에 출시한다) 숙성시킨 식품으로 신선육 상태에서 바로 제조를 하기 때문에 단백질 및 지방조성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했다는 쉐프의 요리는 잘 숙성된 생 햄이 은근하게 짭짤한 기운이 퍼지다가 이내 고소한 감칠맛이 되어 침샘을 자극한다.   

 

그렇다면 재료가 되는 흑돈의 맛은 과연 어떨까? 사실 음식이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천양지차여서 객관성을 부여하기 어렵다. 따라서 오로지 주관적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명문화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권리를 일정부분 침해할 수 있어 꺼려진다. 그럼에도 이를 소개하는 것은 우선 독특한 조리방식 때문이다.    

대한민국 1.2%만 드실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건 지리산 고원 흑돈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 등에 소개되기도 했다. 삼겹살과 목전지, 그리고 항정살 등으로 구성된 ‘흑돈 명품 한 마리’는 우선 상차림이 정갈한데다 고기의 상태가 좋아 과연 허 화백이 내세울 만했구나 싶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기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원료와 불 조절에 있다. 일단 고기의 품질을 확인했으니 그 다음은 불판에서 구워내는 순서. 여기에서도 차별화된다. 돼지고기는 기름기가 거의 빠질 만큼 바삭하게 익혀야 제맛이라는 기존의 암묵적 룰을 여지없이 깬다. 살짝만 익히는 것을 권하는데, 한 점 깨물면 쫄깃한 식감에 입안에 툭 터지는 육즙이 일품이다.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짓던 것과 비슷한 묘한 표정이 절로 지어진다. 느끼함도 거의 없어 젓가락은 연신 불판으로 향하고, 여기에 술 한 잔 곁들이니 행복 그 자체다. 그러는 사이사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아, 맛있다!”

지리산 고원식당 063-625-3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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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흑돼지를 맛볼수 있는 고원 흑돈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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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를 개량했다는 흑돈은 쫄깃한 식감과 터지는 육즙이 일품이다

 

 


글, 사진 김태종(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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