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연방군 군사역사 박물관
2016-09-08  |   53,986 읽음



드레스덴에서 찾아낸 밀리터리 마니아의 성지


독일연방군 군사역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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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독지역 드레스덴에 자리잡고 있는 독일연방군 군사역사 박물관은 소장품의 다양성과
규모에서 첫손에 꼽을 만한 군사 관련 박물관이다. 프로이센부터 독일 제국, 두 번의 세계 대전과
냉전에 이르기까지 독일군이 걸어온 드라마틱한 역사 속의 유산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이곳은
밀리터리 마니아라면 꼭 한번 가볼 만한 명소다.

 


​생각 없이 시작했던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이 남아 오전 중에 뭔가 할일이 없을까 빈둥거리던 차에 근처에 군사 박물관이있다는 말을 듣고 무심결에 따라 나선 길. 생각지도못한 수장품 규모에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금세 출발 시간이 되어버렸다. 드레스덴에 위치한 독일연방군 군사역사 박물관. 얼치기 밀덕인 기자는 몰랐지만 사실 이곳은 군사 역사 박물관으로는 유럽최대, 독일 역사 박물관으로도 빅3에 꼽히는 명소다.

독특한 건물 속 충실한 수장품들

숙소를 떠난 지 불과 5분. 올브리히트 공원을 가로지르자 모습을 드러내는 연한 베이지색 건물은 마치 거대한 금속 피라미드가 박혀 있는 듯한 기괴한 형상이다. 원래 병기고로 지어졌던 옛 건물을 바탕으로 미국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7년에 걸쳐 개축했다. 위에서 보면 ㄷ자형 건물 중간에 거대한 금속 화살이박힌 모습이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모 밑에서 성장한 폴란드 태생의 유대계 미국인 건축가 리베스킨트는 베를린 유다야 박물관, 영국 맨체스터의 국립전쟁박물관, 캐나다 왕립 온타리오 박물관 등을 담당했던 건축계의 거물이다.

기본 건물은 19세기 말 빌헬름 1세 때 병기창으로 지어졌다가 1914년 작센 왕국군 박물관이 되었다. 한편포츠담에서 1961년 개관했던 독일군 박물관이 1972년이곳 드레스덴으로 이관되어 동독 군사박물관으로이름을 바꾸었다. 당시에는 동독군과 바르샤바 조약기구(WTO)의 역사를 주로 다룬, 조금은 딱딱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되면서 1990년 독일연방군에게 넘겨져 지금의 독일연방군 군사역사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건물 밖에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냉전 시대를 아우르는 각종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는 물론 비교적 최근일선에서 물러선 레오파르트2와 zh2000 자주포,패트리어트 미사일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다른 박물관이라면 애지중지할 물건들이지만 소장품이 넘치는이곳에서는 실내에 발을 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조명을 다소 어둡게 세팅한 실내는 1~3층에 시대별로 나누어 프로이센과 독일 연방, 독일 제국으로 이어지는 독일군 장비들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옛 동독 지역에 자리잡은 지리적 요건 덕분에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유산까지 풍성하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은 이 박물관의 장점. 비교적 크기가 작은 군용차나 자동차들은 실내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실물을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영국산 장갑차 유니버설 캐리어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비행기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건물을 나서는데 아까보았던 건물 밖 기갑차량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레오파르트1과 T-72 전차는 냉전 시절 베를린 장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던 주력 전차들이다. 현역 시절, 자신들이 은퇴한 후 통일된 독일에서 이렇듯 사이좋게 마주보며 여생을 보내리라고는 상상도못 했을 터.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묘한 감흥에 젖게 하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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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72M 전차 (소련, 1983)

​냉전시대 소련의 기갑전력을 대표하는 존재 중 하나였던 T-72는 사실 태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 T-62의 후계기종을 계획하던 소련군은 모로초프 설계국(오비옘트 432)에게 차기 전차 개발을 맡겼는데,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에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일종의 보험으로 우랄열차공장이 제출했던 오비 트 167도 계속 진행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T-64로 제식화된 오비 트 432가 실패작으로 판명되면서 오비 트 167이 T-72로 제식화될 수 있었다.동독이 1978~86년 사이 196대 도입했던 T-72M은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산되었던 수출형. 장갑이 얇고 장비 등이 일부 빠진 다운 그레이드 버전이다. 이곳에 전시된 T-72M은 러시아 니즈니타길에 위치한 우랄열차공장에서 생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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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P-2 장갑차 (소련, 1983)

​1967년 공개된 BMP-1은 병력수송과 함께 어느 정도 전투까지 가능한 보병전투차였다. 1980년에는 단점으로 지적되던 화력을 보강한BMP-2로 진화했는데 명중률이 낮았던 73mm 저압포를 30mm 기관포로 교체했지만 대량생산과 도하능력 등을 위해 장갑은 그다지 보강되지 않았다. 6기통 300마력의 UTD-20 디젤 엔진을 얹어 최고시속 65km, 행동반경 600km를 갖추었으며 물 위에서 시속 6km로 이동할 수 있었다. 전시차는 동독 시절인 1983년 소련으로부터 도입했던 23대의 BMP-2 중 한 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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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09 A3 GE A2 자주포 (독일/미국)

​한국전쟁을 거치며 기동력과 방어력을 갖춘 대포, 즉 자주포의 필요성을 절감한 미국은 전차 차대에 대포를 얹은 형태였던 M107을 대체할 새로운 자주포 개발을 시작했다. 1956년 개발에 들어간 M108은 105mm 포의 위력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에 1961년 등장한 M109로 금세 대체했다. 70년대 중반까지 2,500대,89년까지 5,000대가 넘는 M109가 만들어졌으며 M109 A2부터는 반동을 줄인 신형 포 받침대를 장비하는 등 지속적으로 개량되었다. 한국 포병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K55 자주곡사포는 바로 이 M109 A2를 라이선스 생산한 것이다. 독일연방군은 1964~73년 사이 586대를 도입해 개량을 거친후 M109 G라는 제식명을 붙였으며, 1986~91년 사이 다시 한번 업그레이드해M109 A3 GE A1으로 만들었다. 미국의 M109 A6 팔라딘, 독일의 PzH2000이 나오기 전까지 서방세계를 대표하는 자주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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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스 A2 정찰장갑차 (서독, 1975)​

​스라소니’라는 뜻의 루크스(lynx의 독일어)로 이름 붙인 이 차륜 장갑차는 1968년 시작해 1983년까지 408대가 독일에서 생산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사용했던 Sd Kfz 231과Sd Kfz 234의 후계자로 다임러 벤츠가 개발을 담당했다. 캐터필러 방식과 달리 고무 타이어를 사용하는 차륜 장갑차는 포장도로에서 속도가 빠르고 제작비가 싸며 승차감과 정숙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방어력과 험로주파성에서는 뒤처진다. 벤츠의 OM403 디젤(V10 389마력) 엔진을 얹어 전후진최고시속 90km를 낼 수 있으며 행동반경은 730km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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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르트1 A4 전차 (서독, 1974)​

​동서로 갈린 독일은 이어진 냉전 시기에 서방과 공산세력이 대립하는 최전선이 되었다. 1955년 창설된 독일연방군(Bundeswehr)은 적의 막강한 기갑전력을 감안해 미국 패튼과 영국산 센츄리온 전차를 도입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1957년 시작했다가 지지부진해진 프랑스와의 차세대 전차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한 독일은 독자개발로 전환, 포르쉐와 아틀라스 등이 공동개발한 차대에 라인메탈과 베르그만이개발한 포대를 얹어 레오파르트1을 완성했다.1974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이 전차는 기동력에주력하느라 방어력에 약점을 보였지만 네덜란드, 노르웨이, 이탈리아 등에도 도입되어 NATO지상 전력의 일익을 담당했다. A4형은 전자식탄도계산기와 야간관측장비가 추가된 모델로1974년 하반기에 생산되었다. 레오파르트1은레오파르트2의 등장에 따라 2003년부터 점차일선에서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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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13 A1 GE 장갑차 (미국/서독, 1974)

소련 BMP 시리즈에 대항하는 서방의 병력수송차를 미국에서는 APC(Armoured PersonnelCarrier)라고 부르는데, ‘전장의 택시’라는 별명으로 널리 일컬어진다. 그 대표기종인 M113은1960년 등장해 오늘날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M59 시절부터 전통이 된 상자형의 차체는내부공간 확보를 위함이며 알루미늄 합금으로무게를 줄여 물길도 건널 수 있다. 다만 경량화에 주력하느라 방어력은 상당히 취약해 현지에서 강철판을 덧대는 개조가 이루어지기도 했다.독일은 1982년 괴팅겐에 주둔한 45 보병 대대를 통해 M113G A2를 처음 도입했고 3년 후 티센-헨셸이 이를 개량했다. 디트로이트 디젤의V6 디젤 210마력 엔진을 얹어 최고시속 64km를 내며 평지에서 300km를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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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스 스탈워트 Mk2 FV622 (영국)

유럽 전선에서 자동차의 유용성을 실감한 각국은 다양한 노면과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군용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6륜 구동에 수륙양용이 가능한 영국 알비스의 스탈워트는 1966년부터 1971년까지1,110대가 만들어졌다. 롤스로이스제 8기통 220마력 가솔린 엔진(B81MK8B)을 짐칸 아래에 두고 그 앞쪽에 기어박스와 트랜스퍼를 배치한 구조로, 완전군장한 군인 30명 혹은 5톤의 화물을 싣고 지상에서는 시속 64km, 워터제트로 수상에서 시속 10km의 속도로 이동이 가능했다. FV622로 불린 개량형 Mk2는 적재인원이 38명으로 늘었고워터젯 성능도 개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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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6 MGMC 반궤도 장갑차 (미국)

병력을 안전하게 전장으로 실어 나를 수 있는 병력수송 장갑차는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 필요성이 빠르게 대두되었다. 하지만 타이어가 달린 일반적인 트럭으로는 이동성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구동륜을 캐터필러로 대체한 물건들이 개발되었는데, 바로 미군의 M3와 M5,그리고 독일군의 Sd.Kfz 251 등이다. M16 MGMC(Multiple Gun MotorCarriage)는 M3를 기반으로 대공포를 올린 개량형으로 M2 기관총 4문을 뒤에 실어 대공사격이나 지상전투에서 널리 쓰였다. 전시차에서는기관총이 제거되어 있었지만 그 강력한 화력 덕분에 ‘미트초퍼’(meatchopper, 고기 다지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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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S30 장갑차 (서독)

종전 후 재편된 서독 연방군은 초창기에 미국산 전차를 주로 도입했다.하지만 장갑차의 경우는 달랐다. 오직 병력 수송에만 중점을 둔 미국산M113과 달리 서독연방군은 전차와 함께 이동하며 전투에 참여할 수 있는 보병전투차를 원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이스파노스이자가 독일을위해 개발한 HS30은 피탄율을 고려한 낮은 차고에 20mm 기관포를 장비했다. 그런데 당초 1만 대를 발주할 예정이었던 HS30은 공간부족 등각종 문제점이 드러난 데다 뇌물 스캔들까지 겹치면서 2,000여 대가만들어지는데 그쳤다. 1956년 이를 대체하기 위한 마더 IFV의 개발이진행되면서 HS30은 1971년을 마지막으로 일선에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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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스2 A1 전투공병차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영국이 선보였던 퍼니 전차는 독일군 지뢰밭과 대전차 방어물, 토치카 등을 무력화시키며전투공병차라는 새로운 무기체계를 제시했다. 전투공병차는 말 그대로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땅을파고 다리를 만들기 위한 군용차. 현역 공병차 중 최고로 평가받는 다크스2는 레오파르트1 차대를 기반으로 크레인과 쇼벨 등으로 갖추어 기갑부대를 따라다니면서 각종 토목작업을 수행한다. 도하장비를 갖출 경우 수심 4m정도는 물속으로 건널 수도 있다. 방어용의 7.62mm 기관총과 연막탄을 갖추고 있으며 MTU의 10기통 37L 830마력 엔진을 얹어 최고시속 62km를 낸다. 1988~90년 사이 140대가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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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SU 23/4W1 쉴카 자주대공포 (소련, 1970)

소련은 독일군의 자주대공포를 참고해 대구경 57mm2연장 기관포를 갖춘 ZSU-57/2를 개발했다. 탄 자체의 위력은 셌지만 발사속도와 포탑 선회가 느린데다 레이더도 없어 점차 빨라지는 제트기에 대응할 수없었다. 이런 요구에 따라 23mm 기관포 4문을 갖춘ZSU-23/4 쉴카가 1962년 등장했다. 대공포로는 최초로 레이더를 갖추고 연사속도를 높인 쉴카는 중동전쟁 당시 대공미사일과 함께 사용되어 이스라엘 공군을 괴멸시키다시피했다. 여기에 위기를 느낀 미국은 스텔스 기술 개발에 박차가했다. 이론상으로는분당 4,000발도 가능했지만 실제로는 고질적인 냉각 문제로 1문당 15초 이상 연사되지 않도록 제한했다. 1974년에는 이런 단점들을 해결한 개량형 ZSU-23/4M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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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마그 AL28 (서독)

하노버에서 1835년 창업한 하노마그는 증기기관을 시작으로 자동차와 농기계 등을 만들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걸작 반궤장갑차인Sd.Kfz 251을 개발했다. 그밖에도 다양한 트럭과 군용차를 만들었던 하노마그가 종전 후 처음개발한 L28은 군용 앰뷸런스나 수송용 트럭 외에 일반 상용 트럭으로도 애용되었다. AL28은뒷바퀴굴림이었던 L28을 기반으로 제작된 네바퀴굴림 버전. 1953년부터 71년 사이에 다양한버전의 AL28이 6,000대 이상 제작되었다. 4기통 2.8L 디젤 65마력 엔진을 얹었고 최고시속은70km. 하노마그는 1952년 라인슈탈, 69년에 헨셸 상용차 부문에 인수되었다가 현재는 메르세데스 벤츠에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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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르트2 A4

​1960년대 초 독일과 미국은 차세대 전차를 공동개발하기로 하고 유기압 서스펜션, 1,500마력 디젤 엔진, 레이저 거리측정기와 관측장비를 갖춘 신형 사격통제장치 등을 탑재한 프로토타입을 KPz.70(미국은 MBT-70)이라는 이름으로 개발했다. 하지만 혁신적인 신기술 탓에 가격이 폭등하자 결국 파트너십을 끊고 독자개발로 돌아서 MBT-70은 훗날 미국의 M1 에이브람스, KPz.70은 레오파르트2가 되었다. 70년대 초 시제품이 만들어졌지만1973년 제4차 중동전쟁이 벌어지면서 신형 전차에 더욱 강력한 방어성능이 요구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레오파르트2는 1977년 서독 국방부의 정식 승인을 얻어 2년 후부터 배치되기 시작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1982년부터 92년까지 695대가 생산된 레오파르트2 A4 중 한 대로 개선된 사격통제장치와 신형 장갑을 갖추었다. V1247.6L 디젤 1,500마력 엔진을 얹어 55.4톤의 거구임에도 시속 68km로 달릴 수 있다. 장갑과 무기 등 꾸준한 개량이 이루어진 레오파르트2 시리즈는 현역 전차 중 최강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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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 대공 미사일 발사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종말고고도 요격 미사일 ‘사드’(THAAD)의 배치가 결정되면서 수도권 방어에 대한 논란이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저공으로 날아드는 스커드 미사일은패트리어트 미사일로 막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한다. 한국은이미 독일에서 운용하던 패트리어트 팩2를 도입했을 뿐 아니라 최신 팩3를 추가로 들여와 방어진영을 더 촘촘하게 짜기로 했다. MIM-104 패트리어트는 1970년대 미국 레이시온에서 미사일 방어를 목적으로 개발을 시작한 대공 미사일 시스템으로 팩2(MIM-104C)는 탄도탄 대응력을 개선, 걸프전에서스커드 미사일을 격추시켜 화제를 모았다. 패트리어트라는애칭은 애국이라는 뜻과 함께 Phased Array Tracking RadarIntercept On Target(목표물을 요격하는 추적 위상배열 레이더)의 약자이기도 하다. 만 트럭에 실린 하나의 발사대에는 9기의 미사일이 수납되며 1개 중대는 5~8개의 발사기와 레이더 시스템, 전용 발전기 등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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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크스 A6 A1 장갑수송차 NBC 방어 버전

푸크스는 여우를 뜻하는 독일어. 독일연방군 두 번째 차륜장갑차인 푸크스는 다임러 벤츠와 포르쉐의 조인트벤처에 의해개발되었으며 생산은 타이센-헨셸이 담당했다. 8기통 디젤428마력 엔진을 얹어 최고시속 98km가 가능하며 뒤에는 스크류 2개를 달아 물 위에서도 이동이 가능하다. 1979년 배치를시작해 주로 특수임무에 투입되어왔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은 NBC 방호 버전으로 방사능, 생물학전, 화학전 상황에서도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2002~2003년에는 항구적 자유 작전(Enduring Freedom)의 일환으로 쿠웨이트에 주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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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젤1(Mk20) 공수장갑차 (독일, 1991)

기갑사단계의 카이맨? 서독 공수부대가 사용하던 크라카를 대체하기 위해 1970년대 개발된 비젤은 포르쉐가 개발에 참여했다. 1975년시제품이 만들어졌지만 당시 독일연방군은 레오파르트2 개발에 돈을 쏟아붓느라 1984년에야 프로젝트를 재개할 수 있었다. 7.62mm 이하철갑탄이나 고폭탄 파편까지는 방어가 가능하고 20mm 캐논 외에 TOW 미사일, HOT2 대전차 미사일 탑재도 가능했다. 폭스바겐의 5기통2.0L 디젤 직분사 87마력 엔진을 얹어 400km순항에 최고시속은 80km. 2.69톤으로 0.75톤의 크라카에 비해 한결 무거워져 공중투하는 불가능하지만 대형 수송헬기인 CH-53로 최대 3대 공중수송이 가능하다. 전시된 비젤은 독불여단(Deutsch-Franzosische Brigade) 292 보병연대 소속으로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니바,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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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zH2000 자주포 (독일, 2001)

한국이 자랑하는 명품 자주포 K9은 결코 세계 1위의 자리에 오를 수 없다. 바로 PzH2000과 동시대에태어난 탓이다. 1970년대에 미국산 M109를 대체할155mm 자주포를 공동개발하기 시작한 서독과 영국,이탈리아는 1986년 결별을 선언하고 독자개발로 돌아섰다. 독일은 이듬해 새 프로젝트에 착수해 크라우스-마파이와 라인메탈이 개발을 담당했는데, 당시요구조건은 로켓 보조장치 없이 최대 사거리 30km확보, 자동 장전장치에 의한 빠른 연사속도, 60발 분량의 탄약과 장약 탑재, 높은 기동력과 신뢰성, 독자적으로 전투가 가능한 시스템, 상부공격에 대한 방호력 등 무척이나 까다로운 것이었다.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막강 기갑전력과 전면전을 상정하느라 화력과성능에서 세계 최고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2000년대 실전배치를 목표로 PzH2000라는 이름을붙인 이 신형 자주포는 155mm 포신에 자동장전장치를 결합해 분당 8발을 쏠 수 있었으며 테스트에서 1분에 12발, 1분47초에 20발을 쏘기도 했다. 최신 둔감 화약을 사용한 덕분에 과열로 인한 오폭 위험 없이 지속적인 연사가 가능하다. 미국의 크루세이더 프로젝트가 어그러지고 러시아제 코아실리차SV가 쌍열포를 포기함에 따라 PzH2000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최강 자주포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그대가로 엄청난 가격표가 붙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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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 모델 1865 드라이제 췬트나델 게베어

프로이센 기술자 니콜라우스 폰 드라이제는 1836년에 볼트액션식 소총을 개발해 소총 역사에 혁명을 불러왔다. 기존에는 총구 앞에서 화약과 총알을 쑤셔 박아야 하는 전장식이었지만 볼트액션식 소총 덕분에 노리쇠를 당겨 뒤에서 장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야금술이나 제조정밀도의 한계로 가스가 새거나 볼트가 부러지는 문제를 노출했지만1분당 1발 정도였던 발사속도가 5발로 빨라짐으로써 전투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연사속도가 획기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대열을 지어걷다가 한 발씩 쏘던 이전까지의 전투방식은 사라지게 됐다. 무기의발전이 전장의 양상을 바꾼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1866년 쾨니히그레츠 전투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오스트리아군은 드라이제의 후장식 소총으로 무장한 프로이센군에게 괴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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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용 보온병

전쟁용으로 개발된 기술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된 경우도 수없이많다. 2차대전 당시 고고도를 장시간 비행하며 추위와 싸우던 승무원들에게는 몸을 덥혀줄 보온병이 지급되었다. 이를 발전시켜 외병과 내병사이를 진공으로 만들어 열전달을 차단하는 기술이 19세기 말에 발명되어 1904년 독일 서모스를 통해 상품화되었고, 1940년대 군용으로 처음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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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 로켓 A4

패전의 위기에 몰린 히틀러는 눈엣가시 같은 영국에 큰 타격을 주고전쟁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무기를 원했다. 그중에서도후세에 미친 영향력으로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V2 로켓이다. 액체 로켓으로 추진력을 얻고, 기계식 자이로를 사용해 스스로 자세를잡으며 아날로그 계산기가 엔진을 멈추는 이 물건은 오늘날 대륙간탄도 미사일의 시발점이 되었다.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V1과 달리 포물선을 그리다가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V2는 요격이 거의 불가능했다. V2 개발을 주도했던 베르너 폰 브라운은 미국의 페이퍼클립작전에 따라 미국으로 망명해 아폴로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V2 로켓과 시제품들 역시 미국과 소련, 영국 등에 의해 철저하게 수거되어 뒤이어 벌어진 우주경쟁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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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 청동포

불화살과 돌을 날리던 유럽의 공성전은 화약을 이용한 대포의 등장으로 완전히 다른 양상이 되었다. 17세기에 전장의 사신으로 떠오른 대포는 19세기 말 강철제련법의 발달에 힘입어 값싸고 단단한 강철제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으며, 뒤쪽에서 포탄을 장전하는 후장식 시스템의 개발로 발사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이곳에 전시된 프러시아의 야포는 청동포의 마지막 시대에해당되는 1886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청동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날렵한 포신에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인 강선을 넣었다. 1870년 보불전쟁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아직 포병의 주력은 이런 전장식 청동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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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mm 포탄

히틀러의 독특한 무기 취향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포인 구스타프 열차포를 탄생시켰다. 50m 길이의 철도차량에 35m 포신을 얹은구스타프는 무게가 1,350톤에 달해 복선 철로가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원래 프랑스의마지노선을 공격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프랑스가 너무 쉽게 항복하는 바람에 쓸 기회가 없었다. 1호는 구스타프, 2호는 도라로 불렸는데,도라는 실제 전투에 투입되지 못한 채 파괴되었다. 800mm 구경의 구스타프용 고폭탄은 포탄무게만도 4.8톤에 달했으며 러시아 세바스토플을 공격할 때 그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1942년 크림반도에 배치된 구스타프가 발사한고폭탄은 세바스토플 시내에 떨어져 무려 높이350m에 이르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어냈다. 한편 철갑탄은 천연암반 27m를 관통해 요새의 지하 탄약고를 박살냄으로써 요새 함락에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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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즈29 (소련, 1978)

소련의 유인 우주선 최초 발사에 충격을 받은미국이 달착륙 성공으로 응수하자 소련 역시 달착륙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N-1 로켓 개발 실패로 타이밍을 놓친 소련은 대신 우주정거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1971년 살류트 1호를시작으로 우주인들이 장시간 우주에 머물며 다양한 연구에 사용했다. 1978년 8월 26일 동독군대령 지그문트 옌은 소유즈 31호를 타고 살류트6호에 도착, 8일간 우주에 머물렀다가 소유즈29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했다. 독일인으로서는 최초의 우주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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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프레센탄트 퍼레이드카 (동독)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의해 관리되던 호르히 공장에서 개발된 P240은 6기통 엔진을 얹은 고급차로 1958년까지 생산되었다. 당시에는 작센링이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했는데, 인근의 서킷이었던 작센링에서 따온 것이다.이 공장에서는 1957년부터 동구권을 대표하는 대중차 트라반트가 만들어져 1991년까지 370만 대나 생산되었고현재는 폭스바겐에 인수되어 아우디 공장이 되었다. 이 차는 P240의 지붕을 잘라낸 퍼레이드 전용차로 동독 국가인민군을 위해 제작되었다. 보디는 VEB 카로세리베르케 드레스덴에서 담당했다. 동독 시절 국경일이나 군사퍼레이드 등에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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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O 425 T 모터사이클 (동독, 1952)​

​전쟁 당시 무기나 차를 생산했던 기업 몇 군데가 소련 점령 하에서 아브토벨로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동독 튀링겐 주 쥘에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1948년에는 단기통 12마력 4스트로크 엔진을 얹은 모터사이클AWO 425를 선보였는데, 모델명의 4는 4스트로크, 뒤의 25는 250cc의 배기량을 의미했다. 최고시속 100km에 L당 33.3km를 달릴 수 있었던 이 모델은 외모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BMW R23의 데드카피였지만 출력을살짝 높인 고출력형 425S나 배기량을 350cc로 키운 레이싱 버전도 만들어졌다. 생산대수는 약 21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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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 56 105mm 산악포 (이탈리아, 1956)

​머신건이나 함포 등 비교적 대구경 화포에 능통한 이탈리아의 오토멜라라는 그 역사가 19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범기업으로 종전 후 트랙터나 직조기계를 제조하던 오토멜라라는 금새 본업인 병기 제조에 복귀해 현재는 핀메카니카의 방위 부문에 흡수된 상태. 1956년 선보인 이 곡사포는 이탈리아의 산악지대를 위해개발한 산악포로 1.29톤의 비교적 가벼운 무게를 자랑한다. 게다가 간단하게 분해조립이 가능해 자동차나 노새, 헬리콥터로 공수가 가능했다. 성능과 기동력이 뛰어나 이탈리아는 물론 영국과 캐나다, 독일, 포르투갈, 뉴질랜드 등 많은 나라에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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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카스 앰뷸런스 (동독)​

​냉전 시절을 소재로 한 스파이 영화에서 한번쯤 보았음직한 이 원박스 밴은 동독 바르카스에서 생산한 B1000. 동독 지역 캠니츠(당시 명칭은 칼-막스-슈타트)에 있던 바르카스는 원래 덴마크인 외르겐 라스무센이 작센 주에 설립했던 프라모를 국영화한 것으로그 이름은 고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의 성에서 따왔다. 1969년부터 91년까지 이곳에서 생산된 B1000은 DKW의 3기통 2스트로크 엔진을 얹고 밴과 트럭, 미니버스 등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었다. 17만 대 이상 생산된 공산권의 대표 밴으로 우편배달과 소방차, 구급차, 경찰차, 앰뷸런스 등에 사용되었으며통일 후에도 연방군 소속으로 제한적인 용도에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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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캐리어 (영국, 1950년대)

전쟁이 꼭 크고 화려하고 강력한 무기들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것은 아니다. 유니버설 캐리어는제2차 세계대전 내내 무려 11만3,000대가 생산된 베스트셀러이자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기갑차량으로 연합군의 사랑을 받았다. 작은 상자형 차체에 캐터필러를 붙인 단순한 형태는 오스틴 미니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절약의 극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보병 기동력에 필요성을 절감한 영국이 개발에 들어갔지만 채용되지 못하다가 2차대전 직후 대량으로 생산을 시작했다. 다양한 버전에 비커스 중기관총, 브렌 경기관총,보이즈 대전차 라이플 등을 달았는데, 브렌 경기관총을 기본으로 한 까닭에 ‘브렌건 캐리어’라 불리기도 했다. 종전 후 1956년, 서독이 300대의 T-16 유니버설 캐리어(포드 캐나다가 생산한 미국형)를 구입했고, 동독은 전쟁 당시 연합국이었던 소련에 랜드리스 형식으로 제공되었던 것을 공여받음으로써 동독과 서독이 동시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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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히 830BL 컨버터블 (독일 제국, 1938)

제2차 세계대전의 개전 초기인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게 순식간에 항복하자 샤를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해 자유 프랑스를 조직했다. 그런데당시 프랑스군의 주력은 사실상의 괴뢰정부인비시 프랑스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드골과 자유 프랑스의 영향력은 아직 보잘 것 없었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파리 해방을 주도하면서 급격하게 입지를 키운 드골은 전쟁이 끝난 후 1958년 프랑스의 제5공화국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이 호르히 830BL 컨버터블은 파리를점령했던 디에트리치 폰 콜티츠 중장(히틀러의파리 파괴 명령을 거부한 것으로 유명)의 차고에서 압수한 것으로, 드골이 2차대전 말부터 대통령 초기인 1959년까지 사용했다. 호르히는 벤츠에서 독립한 아우구스트 호르히에 의해 1898년 설립되어 1920년대 8기통의 대형 고급차를생산하다가 1932년 아우토우니온에 통합, 오늘날 아우디의 뿌리가 된 메이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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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펜파라드 25 대전차 자전거 (독일, 1925)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 1945년, 물자와 연료까지 바닥이 난 독일군부에서는 연합군의 탱크에 대항하기 위해 이런 무기까지 만들기에 이른다. 바로 자전거 앞에 판처파우스트 60M 2기를 매단 대전차 결전병기다. 육상전의 황제라는 전차에 병사가 60m안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판처파우스트는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이고 강력한 대전차무기였다.긴 막대 부분에 넣은 추진제에 따라 30m, 60m, 100m 버전이있었으며 성형작약탄두는 무려 85%의 격파율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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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101 반궤도 모터사이클 (독일, 1942)

군용차 중에는 타이어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구동륜만무한궤도 방식으로 바꾼 이른바 반궤도 차량이 있다.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값싸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개중에는 모터사이클 뒷부분에 캐터필러를 단 괴이한 물건도 있었다. Sd Kfz2 케텐크라프트라드 HK101이 그 주인공. 로터리 엔진으로 유명한 NSU가 독일 군부의 지시를 받아 1939년 개발을 시작해 공수부대나 항공기 견인용으로 활용되었다. 캐터필러의 안정적인 트랙션 덕분에 진창이 많았던 동부전선에서도 연락용이나 통신선 설치, 병력수송 등에 애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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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V 원격조종 지뢰 (독일, 1944)

1차대전 때 등장한 최초의 전차 마크Ⅰ의 축소모형처럼 보이는 이것은 독일에서 1944년 등장했던 원격조종 지뢰다. 폭약을 싣고 고정목표물이나 군용차를 공격하는 데 사용된 이 유선 원격조종 무기는사실 프랑스의 아돌프 케그레스에 의해 고안된 것이었다. 프랑스 침공 때 강 속에 숨겼던 설계도를 독일이 입수해 개발을 진행시켰고,모터와 엔진 두 가지 동력원으로 만들어졌다. 전동식은 60kg, 엔진식은 75kg과 100kg 등 세 가지 버전이 있었다. 주로 공병부대에서사용했는데,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유타 해변(영화 ‘마이웨이’의 무대가 되었던 곳)에서 여러 대의 골리앗이 투입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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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M-88 함 대레이더 미사일 (2006)​​

​월남전 당시 월맹군의 대공미사일(S-75)에 크게 놀란 미국은 적의 레이더를 전문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다. 이미 개발이 완료된 슈라이크 외에 스탠더드라는 신형 미사일을 개발한 미국은 베트남 방공망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들의 후계 기종인 AGM-88 함(HARM)은 레이시온에서 개발해 1985년 배치를 시작했다. 다양한 레이더 주파수를 추적할 수있을 뿐 아니라 마하2의 빠른 속도로 레이더 기지가 대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전작들의 문제점을 개량한 덕분에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방공망을 ‘탈탈 털어버린’ 일등공신이 되었다. 코소보 전쟁 때 NATO 일원으로 참전했던 독일은 구형의 타입B를사용해 세르비아의 방공망을 무력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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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이수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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