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속리산국립공원 법주사 & 문장대
2016-08-30  |   40,470 읽음

속리산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정이품송’은 예전 그림에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노쇠한 모습이었다. 1,600여 년이나 된 사찰 법주사는세계 최대의 크기를 자랑하는 청동미륵불상과 팔상전 등 많은 보물과 유물을 간직하고 있었고, 문장대로 향하는 길은 만만하게 생각했던것과 달리 고되고 힘들 정도로 가팔랐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자 사방으로 펼쳐진 기암괴석들의 멋진 모습에 절로 탄성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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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더워도 너무 덥고, 한낮의 태양은 그렇게 뜨거울 수가 없었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폭염주의보와 경보를 발령했다는 뉴스를 앵무새처럼 틀어댔고, 화면 속의 한반도 지도는 아궁이에 장작을 끊임없이 집어넣으며 불을 지펴 설설 끓는 아랫목 같았다. 맞서는 것보다는 피하는것이 상책이라는 듯 도시가 그렇게 비워지고 있을 즈음 허물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없는 오랜 벗이 “휴가는 갈 거야? 가면 어디로 가는데?”라며은연중 동행을 청했다. 이에 “글쎄, 최근 몇 년 동안은 휴가다운 휴가를가보지 못한 것 같아서 올해도 비슷하지 않을까?”라며 말을 흐렸다. 그나마 기자는 매달 여행을 떠나고 그것을 <자동차생활>에 연재하고 있다는 데 위안을 삼으면서……

속리산 자락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그럼에도 휴가라는 단어의 여운은 남아 희미한 기억 속의 ‘속리산’을 떠올리자 ‘화양계곡’과 ‘법주사’가 따라나섰다. 속리산은 산 타기를 좋아할 무렵부터 ‘가고 싶은 곳’ 중 하나였지만 쉽게 연이 닿지 않았다. 정상(문장대와 천왕봉)을 밟은 이들이 입을 모아 ‘괜찮은 곳’이라고 추천했음에도 ‘그곳은 교통이 불편한 오지’라는 선입견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꽤 오래전 속리산 자락에 눌러 앉은 충북 보은군을 찾았을 때 시간이 아주 더디게 흘렀고 몹시도 지루했었던 기억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하지만 그 사이모든 것은 달라져 있었다. 내비게이션을 통해 확인한 서울과 속리산과의거리가 채 200km가 되지 않았고, 시간도 2시간 30분이면 보은군청 앞에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서 20여 분이면 속리산국립공원에 닿으니 머뭇거리거나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마음이 일자 서둘러 길 떠날 채비로 바빠졌다.

 

속리산으로 향하는 길은 쭉쭉 뻗어 있었고, 휴가철의 고속도로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의외로 한산했다. 해가 제법 남아 있을 때 도착한 보은읍내는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듯했지만 길이 넓어지고 도시는 확대되어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고 내일 아침에 산으로 가자”는 제안에모처럼 동행을 한 아내와 아들이 “그럼 숙소를 정하고 빨리 저녁을 먹자”며 거든다.

 

급하게 떠나온 길이어서 숙소를 예약하지 못했지만 특별한 일 아니면 당일의 상황에 따라 숙소를 잡는 습관이 배어 있기에 읍내를 둘러본다. 웬만한 도시의 편의시설을 다 갖췄음에도 읍내는 하룻밤을 묵어갈 잠자리를 보여주지 않았다. 검색을 통해 “여기 어때?”라고 묻자 “어, 조금 아까지나쳐 온 곳인데”라며 길을 일러준다. 값을 치르고 열쇠를 건네받은 후 들어간 룸은 아담하고 깨끗했다. 세면도구 등은 비닐 팩을 통해 제공되었고, 미니 냉장고는 생수와 음료수로 채워져 있었다.

대충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자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랫가락이 발길을 이끈다.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보은군에서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여는 야단법석야시장이다. 흥겨운 트로트와 감성적인 발라드가 묘한 조화를 이룬 가운데 입맛을 돋우는 음식들과 한 잔의술을 곁들이다며보니 한여름 뙤약볕에 맥을 못 추던 더위도 기세를 꺾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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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경내에는 국보급 보물이 가득

다음날 속리산국립공원으로 길을 잡자 20여 분이 채 되지 않아 도로 옆의 ‘정이품송’이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은 수령을 600년으로 추정하는데 높이가 15m에 이르고 동서남북으로 뻗은 가지가 차이는 있지만 각각 10m에 이른다. 조선의 7대 임금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가지에 걸릴까 염려해 “연(輦)걸린다”고 하자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 이에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지금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전해진다. 그러나 이 나무는 예전의 그림을 통해 보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세월의 흐름을 비껴나지 못했는지 아니면 또 바뀌어 갈 미래를 위한 환골탈태를 진행하는 건지……. 노송의 모습에서 오늘과 내일이 또 다를 것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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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국립공원으로 가는 중에 만나는 정이품송​

그곳에서 5분여를 더 달리니 법주사와 인연을 맺은 상가들이 이른 아침부터 손님맞이에 바쁜 모습이다. 이곳에는 법주사를 찾는 신도들이나 여행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상가거리가 거창하게 형성되어 있다. 길에는 말린각종 나물과 집에서 손수 기른 채소들을 가져와 손질하고 있는 아낙들의 난전이 손님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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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시간임에도 아낙들은 여행객들에게 팔 물건을 다듬고 있었다.

속계와 진계를 뚜렷하게 갈라내준다는 일주문은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경계가 불투명했다. 최인호 선생은 ‘길 없는 길’에서 일주문이란 문아래 이르기까지 세속의 파도가 밀려와 출렁거린다 해도, 이제부터 세속을 떠나이 문을 들어설 때부터는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뜻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 짓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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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만나는 숲의 길

일주문을 지나자 나무와 나무가 엮어내는 숲의 터널이 서서히 한여름의 기온으로 달궈지고 있는 머리 위와 발아래의 기운을 붙든다. 그럼에도 꾸준히 상승한 대기온도의 여파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방울방울 맺힌 이슬들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온 몸 곳곳에서 흘러내릴 곳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작은 바람에도 살랑거리는 나뭇잎들의 춤사위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덥긴 하지만 대도시에서와는 차원이 다른 상쾌함이 밀려온다.

일주문에서 20여 분을 더 걸어가야 모습을 드러내는 법주사는 유서가 깊다. 553년(진흥왕 14년)에 의신 스님이 창건한 후 776년(혜공왕 12년)에 진표 율사가 중창했다. 절 이름은 의신 스님이 서역에서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절은 진표 율사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이 되면서 한창때는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렸다. 임진왜란으로 대부분 불타버린 것을 1605년(선조 38년)부터 1626년(인조 4년)에 걸쳐 사명대사가 팔상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로 들어서면 세계 최대의 크기(높이 33m)를 자랑하는 청동미륵불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진표 율사가 7년간의 노력 끝에 조성해 1,000년이 넘도록 법주사를 지켜왔던 미륵불상은 조선 말 흥선대원군이 당백전(동전)의 재료로 쓰기 위해 훼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시멘트로 불상을 만들었으나 균열이 생기자 국비와 시주를 통해 청동 160톤, 주석 16톤,아연 3톤으로 1990년 시멘트 미륵대불을 그대로 탁본을 떠 지금의 불상을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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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청동미륵불상은 높이가 33m에 달한다

법주사에는 이 밖에도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과 팔상전(국보 제55호), 석연지(국보 제64호) 등 3점의 국보와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법주괘불탱화(보물 제1259호) 등 10여 점의 보물을 비롯해 수십여 점의 문화재를 품고 있다. 때문에 수행자나 신도가 아니더라도 법주사가 품고 있는 웅장하고 멋있으며 운치 있는 불교 유적 앞에서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문장대에 올라서 세상을 내려다보다

속리산의 정상인 천왕봉과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문장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세심정은 둘 사이를 가르는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길을 잡으면 천왕봉이고, 왼쪽으로는 문장대를 향한다. 7시간이나 걸린다는 천왕봉 대신 문장대로 발걸음을 옮기자 울창한 숲이 펼쳐지고, 길을 따라 청량한 계곡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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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대로 오르는 길에 만난 계곡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걸음을 떼다보니 용바위골 휴게소가 비 내리듯 흐르는 땀을 식혀가라고 의자를 내어준다. 침샘을 가득 자극하는 해물파전과 서늘하다 못해 입안을 그대로 얼어붙게 할 것 같은 탁주 한 사발에 축 늘어졌던몸의 세포들이 다시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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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바위골 휴게소에서 파전과 탁주 한 잔을 들이키며 잠시 쉬어가는 건 어떨까?

산은 빈틈이 없었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길이 이토록 고되고 힘들까 싶었지만 가파른 길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면서 고개를들어도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막바지에 이른 듯 점점 열리는 하늘은너무도 맑고 또 뜨거웠다. 문장대를 200여m 앞둔 평지의 나무 그늘아래엔아침부터 산에 올랐을 사람들이 가쁜 숨을 죽이고 있었다.산 정상에 자리를 잡은 넓은 바위 봉우리인 문장대(대라는 것은 경지 좋은곳에 자리한 너른 바위라는 뜻)는 오르내리기 편하게 철제 계단이 놓여 있었다. 한여름의 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문장대에 오르자 사방으로 기암괴석들의 멋진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탄성이 절로 인다. 사람들이 그토록이곳을 오르려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리라.

최인호 선생의 소설 ‘길 없는 길’로 소개된 경허 스님의 시 구절이 바람을 타고 날아들었다.“산도 절도 푸르고, 물도 절로 푸른데 맑은 바람 떨치고 흰구름만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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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김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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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함께한 차, 푸조 508 GT
508 GT는 2.0L 블루HDi 디젤 엔진을 얹어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0.8kg·m의 성능을 내는 푸조의 플래그십 세단이다. GT라는 배지에 걸맞게 GT 시그니처, 강렬한 레드 스티치, 트윈 머플러 등 스타일링 포인트로 스포티한 감성을 살렸다. 프리미엄 세단의 감성과 GT의 강렬한 퍼포먼스가 조화를 이룬, 그러면서 도 복합 13.2km/L(도심 12.5, 고속 14.2)의 좋은 연비를 내는 실속 모델이다. 길이×너비×높이는 4,830 × 1,830 × 1,455mm 이며 휠베이스는 2,815mm. 508 라인업에는 같은 2.0L 디젤 엔진에 GT 스타일링 포인트가 빠진 펠린이 있으며, 보다 경제적인 1.6L 120마력 디젤 엔진을 얹은 얼루어와 1.6 모델에 출력 보강 없이 GT스타일링을 더한 GT 라인도 있다. 어느 모델이든 값이 4,000만원대로 실속과 품위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보다 개성적인 차를 원한다면 왜건인 508 SW나 차고를 높인 크로스오버 모델인 RXH를 선택하면 된다. SW 는 1.6L 120마력 디젤 엔진을, RXH는 2.0L 180마력 디젤 엔진을 얹는다. 값은 508 1.6 4,340만원, 2.0 4,740 만원, 1.6 GT 라인 4,540만원, 2.0 GT 4,990만원이며, SW는 4,390만/4,590만원, RXH는 5,39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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