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와 축구의 나라, 아르헨티나
2016-06-09  |   29,786 읽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밤하늘에는 어릴 때 보았던 은하수가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중국에서 13년 넘게 지내면서 파란 하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게 아르헨티나의 맑은 하늘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공해가 거의 없는 이곳이 천국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르헨티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 곳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을 끝까지 파고 들어가면 나오는 대척점 근처에 있는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다. 그래서 가는 길도 멀다. 정확히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서 도착하는 곳이니만큼 직항편도 없다. 이번에는 터키 이스탄불과 브라질 상파울루를 경유해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가는 터키항공을 이용했다. 비행시간만 30시간이 걸리고 경유지에서 대기하는 시간까지 따지면 편도에 34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동안 다섯 번의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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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의사당

 

백인이 95% 이상인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는 1580년부터 16세기 중엽까지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다. 알다시피 스페인은 나폴레옹에게 패하기 이전까지 무적이었다. 이런 힘을 무기로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의 모든 지역을 장악했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점령하면서 스페인의 철권통치가 남미 지역에서도 힘을 잃었다. 그동안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불만을 느끼던 점령지의 수장들이 이 틈을 이용하여 스페인에 대항해 독립을 선언하면서 여러 나라로 분리되었다. 아르헨티나 역시 이 시기에 산 마르틴 장군(1778~1850년)에 의해 1816년 독립을 선언했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까지 세계 10대 강국에 들 정도로 대단한 부를 지닌 나라였다. 한반도의 12.5배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갖고 있지만 현재 인구는 4,000여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는 남미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백인이 주를 이루며(95% 이상)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에서 온 이민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언어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92%가 가톨릭 신자이다. 인구의 약 90%가 도시에 거주하는데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고 있다. 20세기 영화를 아직도 기억하는 아르헨티나인들은 자신들은 남미가 아니라 유럽에 속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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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는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인구의 95% 이상이 백인이다

 

넓고 비옥한 땅 때문에 아직도 1차산업의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토의 40% 이상이 목장과 방목지일 정도로 목축업이 발달했으며 10%의 농지에서는 밀, 보리, 옥수수, 귀리 등을 생산한다. 아르헨티나의 농업 경쟁력은 세계에서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강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농산물을 수출하려면 수출세를 내야 한다. 그것도 35%로 세율이 무척 높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수출세를 없애 수출 경쟁력을 더욱 높이겠다고 공약했으니 아르헨티나의 농•축산물은 세계 시장에서 더욱 지배력을 높여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어쨌든 지금까지 이런 고율의 수출세를 부담하고도 다른 나라보다 싼 가격에 수출을 할 수 있으니 엄청난 경쟁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수출을 할 경우 원자재 구입에 부담했던 관세나 부가가치세를 돌려주는 게 보통이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수출할 때 세금을 환급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출세를 내야 하니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마도 정부의 주요한 재정수입이 농•축산물 수출로 벌어들이는 수출세에 대한 비중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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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가 다녔던 길을 지금은 차가 달린다. 이미 140년 전에 길이 50cm의 돌을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체 도로에 깔았다

 

정치 불안과 경제정책의 실패
아르헨티나는 서쪽은 안데스산맥을, 동으로는 대서양을 낀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큰 거대한 나라다. 그래서 동시에 사계절이 존재하는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북부에는 사막과 정글이 형성되어 있고 남쪽은 빙하지대가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아르헨티나의 거대한 빙하가 무너져 내렸다는 뉴스를 보았다. 아르헨티나 최남단 오수하야에서는 몇 년마다 빙하가 내려앉는 장관을 연출하는 곳으로 명성이 높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넓은 농토를 가진 나라이지만 계속적인 정치 불안과 경제정책 실패로 남미의 선진국 꿈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화를 이루었지만 계속되는 쿠데타로 칠레와 함께 오랜 기간 군사 독재정권에 의해 통치를 받는 쓰라린 경험을 겪었다. 안데스 산맥을 마주하고 있는 칠레의 칠레노트 정권의 폭압정치도 다른 나라의 질타를 받았지만 아르헨티나 역시 군사정권 시절 많은 민주인사들이 감옥에 투옥되고 고문과 사형을 당한 것으로 악명 높다. 1976년 비델라 장군이 집권할 당시 약 3만 명에 이르는 학생과 반정부 인사들이 죽음을 당했다. 지금도 이를 기념하는 ‘5월의 탑’ 앞에는 당시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한 기도회가 계속되고 있다. 워낙 쿠데타가 자주 발생해서 제대로 임기를 끝낸 대통령을 손으로 꼽을 정도로 불안한 정치상황은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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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전용차로는 전임 대통령이 한국에서 따온 제도다

 

넓은 국토와 비옥한 농지를 가지고 있지만 1차산업의 비중이 높고 경제정책의 실패가 이어지면서 국민들의 삶은 그다지 풍요롭지 못하다. 한때 세계 최초로 냉동선과 볼펜을 만들 정도로 산업화를 이루는가 싶었지만 공업화가 뒤처져 대부분의 중화학 제품은 수입을 하는 상황이다. 1989년 달러와 페소를 1:1로 하는 태환경제를 도입하고 물가안정을 꾀하는 동시에 전기, 철도, 항공 등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 등 경제의 대수술을 단행했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한때 인플레이션이 5,000%에 달해 지폐로 도배를 한다고 할 정도로 불안정한 경제를 유지해왔고, 불과 지난해에도 디폴트를 선언할지 모른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현재 달러당 페소의 교환율이 15:1에 달하니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어느 정도로 어설프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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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하철. 이미 100여 년 전에 지하철이 건설됐다

 

필자는 아르헨티나를 가기 전까지 이곳이 대단한 부자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1인당 GDP가 1만4,000달러밖에 안 되고 전기와 철도 등 공공부분이 대단히 취약하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심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길을 막고 시위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잘 사는 나라라고 생각했던 아르헨티나의 수도에서 섭씨 40도에 가까운 더운 날씨에 그것도 한 달 가까이 전기가 안 들어오는 상황을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페론 스토리
아르헨티나의 정치를 이야기하려면 1940년대 중반 대통령을 역임한 후안 페론의 부인인 에바 페론을 빼놓을 수 없다. 영화와 뮤지컬, 오페라로 유명한 ‘에비타’는 ‘꼬마 에바’라는 뜻이다. 시골 농부의 딸로 태어나 일국의 정치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올랐던 에바 페론의 삶은 한 편의 영화처럼 드라마틱하다. 에바 페론은 팜파스의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입성한 후 삼류 연극배우를 거쳐 각고의 노력 끝에 영화배우, 유명한 성우로 성공한 그녀는 후안 페론 대령을 만나게 된다. 당시 정치에 대망의 꿈을 꾸고 있던 후안 페론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에바는 노동자의 처우개선과 임금인상, 여성의 지위개선 등의 내세우며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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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독립영웅 산 마르틴 장군의 묘가 있는 성당

 

그렇지만 그녀는 현실을 무시하고 펼친 무모한 복지정책으로 부강한 아르헨티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동시에 받는다. 가난한 빈민촌을 방문한 에바 페론은 그 동네 사람들을 모두 새롭게 주택단지를 조성해 이주시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나라였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나라의 재정은 거덜이 났다. 일이 없으면 정부에서 수당을 주니 열심히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없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인해 남미의 유럽을 꿈꾸던 아르헨티나는 결국 실패한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화처럼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는 백혈병과 암으로 34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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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타(에바 페론)의 묘비

 

에바 페론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극과 극이다. 또한 그녀의 삶은 죽어서도 평탄하지 못했으니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여자라고 할 수 있다. 쿠데타로 페론을 몰아낸 군사정부는 페론주의의 부활이 염려되어 에바 페론의 시신을 이탈리아로 빼돌린다. 또한 쿠데타로 쫓겨난 페론은 해외로 망명길을 떠난다. 그렇지만 불사신과도 같은 페론은 아르헨티나 정계에 복귀해 1973년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정말 영화 같은 사건이 아르헨티나의 근현대사를 장식하고 있다. 대통령이 된 에바 페론은 그녀의 시신을 아르헨티나로 옮겨와 레콜레타 가족 묘지에 안장시켰다. 덕분에 에바 페론의 묘소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 번은 찾게 되는 명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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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페론의 망령은 아직도 아르헨티나를 혼돈스럽게 만들고 있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나치의 잔당들이 최근까지 숨어 지내던 곳으로 유명하다. 평소 히틀러와 친하게 지냈던 페론이 독일의 패망 이후 나치의 추종자들이 아르헨티나에 머물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으로 히틀러가 죽지 않고 아르헨티나로 몰래 들어와서 여생을 평화롭게 살았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해외토픽에서 나치 잔당에 관한 소식이 들려오면 아르헨티나에서 나온 이야기가 많다.

 

아르헨티나에는 독일마을이 있다. 코르도바의 비샤 헤네랄 벨그라노(Villa General Belgrano)에는 독일에서 이주한 주민들이 많이 거주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아르헨티나에서 최고로 꼽히며 매년 10월에는 맥주축제가 벌어진다. 코르도바 에서 열리는 세계 3대 랠리(WRC)중 하나인 아르헨티나 랠리는 거칠고 험한 코스로 유명하다. 멘도사는 아르헨티나 포도주의 주산지이다. 아르헨티나의 포도주는 그동안 자국민의 소비가 워낙 높아서 해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럽의 포도주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지만 세계 명품의 포도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주원료로 쓰이는 말벡 포도는 유럽에서는 전염병으로 인해 멸종되었지만 아르헨티나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며 맛 좋고 품질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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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원색으로 치장한 보카 지역 양철 집들의 모습

 

탱고의 발산지이자 축구강국
탱고(Tango)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집시풍의 음악과 춤이다. 얼마 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해서 미녀 댄서와 탱고를 춘 것 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었다. 탱게레(Tangere : 만질 수 있다)라는 말에서 기원하는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Boca) 지역에서 탄생했다. 19세기 후반의 보카는 유럽에서 들어오는 배들이 짐을 하역하는 항구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하층민들이 고달픈 삶을 음악과 춤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탱고다. 보카 항구는 오래전에 북쪽으로 이전해서 지금은 물자를 나르던 노동자들이 없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살고 있다. 보기에도 낡고 허름한 건물들에는 미국의 빈민촌처럼 온통 지저분한 낙서들로 가득 차 있다. 길거리에 세워진 차들은 너무 낡아서 제대로 굴러갈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탱고의 발상지에 지어진 집들은 벽과 지붕을 양철로 더덕더덕 붙여놓았다. 그렇지만 양철로 된 집들은 화려한 원색으로 칠해져 있어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조선소에서 쓰고 남은 페인트로 집을 칠하다보니 여러 가지 색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러나 원색의 강렬한 조화로 인해 이곳의 양철 집들은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건출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보기에는 그럴 듯하지만 양철로 지어진 탓에 보카의 뜨거운 여름을 견뎌 내려면 무척이나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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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카는 세계적인 축구팀 보카 주니어의 본거지다

 

보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축구팀 보카 주니어가 있다. 영국 선원들이 건네준 축구공으로 마구잡이식 축구를 하던 보카 지역 사람들은 1905년 아르헨티나 최초의 축구팀을 만들었다. 이 팀이 아르헨티나 축구의 역사를 썼다는 보카 주니어다. 축구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고단한 삶의 애환을 풀 수 있는 돌파구였다. 이들의 결속력은 어느 지역보다 강해서 아르헨티나 최고의 팀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 스타 마라도나가 이 팀에서 활약했고 현재는 한때 맨체스터에서 박지성과 함께 뛰었던 테베스가 소속되어 있다. 아르헨티나는 1978년과 1986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축구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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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보카 지역은 탱고의 발산지다

 

한인들, 의류 및 액세서리 시장 장악
아르헨티나에는 3만여 명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지금은 95% 이상이 의류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기 위해 간 이민자들이었다. 아르헨티나의 한국인 이민사는 50년이 넘는다. 1965년 대한민국 정부는 아르헨티나에 농업이민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현지에 840헥타르(8.4㎢)의 땅을 구입했다.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은 아주 절박했다. 먹을 것도 없었고 일을 하려고 해도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없었다. 인구는 많고 식량사정도 좋지 않으니 외국으로 이민을 보내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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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노스아이레스의 옷 시장인 아베자네이다. 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상가다

 

그렇지만 아르헨티나 이민 초창기 농사를 짓던 부지런한 한국인들은 농사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의류 시장에 진출한다. 당시에는 의류업계를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무기로 의류 시장에 뛰어든 한국인들은 뛰어난 디자인 감각으로 아르헨티나의 옷 시장을 완전히 석권했다. 천하의 유태인을 몰아낸 한국인들의 저력이 대단하기만 하다.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계’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자본조달 방식이 있다. ‘계’를 통해 자본을 만들고 이를 통해 사업을 키워감으로써 아르헨티나 의류 시장에서 입지를 키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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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 모양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이 시기 크게 발전한 한국의 산업화 역시 한국인들이 의류업에 진출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원부자재를 한국에서 구입하면서 현지에서 의류 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지금도 남미의 모든 나라에서 의류와 액세서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한국인들이다. 물론 한국인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열정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인은 물건을 고르는 안목과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 사농공상이라 하여 장사하는 것을 가장 천하게 여기던 우리 민족이 남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을 보니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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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는 300여 개가 넘는 골프장이 있고 골퍼들의 평균 실력도 대단히 높다

 

한편,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골프 실력은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골퍼로는 US 오픈과 마스터스를 제패한 앙헬 카브레라(Angel Cabrera)와 올해 소니 오픈에서 우승한 파비앙 고메즈(Fabian Gomez)가 있다. 이들은 모두 캐디 출신으로 세계적인 골퍼가 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아르헨티나에는 300여 개가 넘는 골프장이 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차로 30여 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골프장도 수없이 많다. 게다가 골프장 사용료가 우리 돈으로 2만원 미만이니 누구나 부담 없이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말 그대로 골프의 천국이다. 이런 여건 때문에 아르헨티나에 사는 한국인들 중에는 골프광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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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환 중국통신원

1957년 8월 서울에서 태어나 91년까지 금융권에서 일하다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와 자동차와 함께 하는 삶에 새롭게 도전했다. 91년 국산 자동차로 미국 48개 주를 일주해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92년 아시아 록스타로 호주를 일주했다. 93년 호주 웨스턴 랠리스쿨을 이수한 뒤 호주 웨스턴 랠리 침피언십, 홍콩-북경 랠리(94년), 태국 랠리(94년) 등에서 전문 드라이버로 활동했다. 93년부터 96년까지 본지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참가한 랠리를 비롯해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와 시승기를 소개했다. 저서로 ‘대머리 돈키호테’, ‘차를 알고 문화를 세우는 여유로운 운전’이 있다. 2002년부터 중국 저장성 이우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양인환 통신원은 앞으로 중국을 비롯한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등의 재미있는 여행기를 소개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미국과 호주에 이어 중국과 남미대륙을 일주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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