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이프 포커스 - 조동필 박사
2013-11-30  |   15,426 읽음
“자동차 덕분에 안성에서 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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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계에서 큰 봉우리를 이루는 훌륭한 학자이면서 ‘그무엇’을 남기는 명강의로도 너무나 유명한 조동필 박사.
그는 8년전 고향인 경기도 안성에 안주함으로써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모든 도회인의 꿈을 실천했다.
그리고 바로 자동차가 이 전원생활과 도심권을 이어주는 멋진 고리임을 증명했다,

“17년 전인가 조박사는 코티나 자동차를 한대 구입해 그 시절로서는 아주 드물게 대학교수로 자가용을 탈 수 잇구나 라는 세인의 반항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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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의 검정 고무신
겨울인데도 남촌(南村) 조동필 박사의 거처인 안성 야시원 뜰에는 안온한 햇빛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 햇빛은 뜰 한쪽에 세워져 있는 하얀색 레코드 로얄 위에도, 노교수가 신고있는 검정 고무신 위에도 똑같이 투명하게 부어지고 있었다.


하얀색 레코드 로얄은 조동필 교수가 안성에서부터 출퇴근을 할 때 그를 실어다 주는 바쁜 달구지 (그의 표현이다)라면, 검정 고무신은 한편으로 유유자적 전원생활을 즐기는 그의 삶의 한 상징처럼 보였다.
지난 8월, 3-년 훨씬 넘게 몸담아 온 고려대학교를 정년 퇴직했으니 그는 확실히 노년에 접어든 셈이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젊었고 열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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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내내 빽빽한 스케줄만 보더라도 그가 아직도 얼마나 젊고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1주일에 하루는 고려대학교에 강의가 있고 또 이틀은 이리 원광대학에 출강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 밖에도 특별한 강연 스케줄이 밀려들어 도무지 쉴 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도 가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휴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멋진 9천평의 농원을 가지고 있고, 1만여 권이 넘는 장서가 아래 위층에 꽉 들어찬 근사한 서재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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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그를 마치 할아버지 처럼 따르는 갑돌이, 귀염이 등의 이름을 가진 개들과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내고 서재에 파묻혀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라라는 희망은, 아직은 희망 사항으로 끝나곤 한다.
몇 년은 더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으니 조금 더 세월이 흐른 뒤에나 희망사항을 실천하기로 그는 작정하고 있다.
바쁜 스케줄 덕분에 그의 자동차는 역시 휴식을 취할 틈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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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30분의 통근거리
17년 전인가 조동필 박사는 코티나 자동차를 한 대 구입해 그 시절로서는 아주 드믈게 교수가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는 약간의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남보다 일찍 자동차가 필수품임을 절감한 데서 비롯된 일이지 무슨 사치나 허영을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의 호방하고도 서민적인 인품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조박사가 고향인 안성에 집을 마련한 것도 일찍 자동차의 필요성을 절감해, 그것을 십분 이용해 온 사람만이 가능한 용기였을 것이다.


그가 안성에 야시원을 마련한 것은 8년전, 그떄만 해도 누구도 서울에서 그렇게 먼 곳에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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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박사에게는 수많은 제자들이 있다. 그의 가장 큰 보람이자 사랑이다.

 

안성에서 서울 까지는 꼬박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것도 교통체증이 심하지 않을 떄가 그 정도이다. 지금도 이 정도의 통근 거리는 약간의 모험을 필요로 하는데 조박사는 이미 8년 전에 그 일을 단행한 것이다.
자동차 인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조만간 그 정도의 거리는 일반적인 통근 거리가 되리라는 전문가의 견해이고 보면 조박사는 시대를 앞질러 살고 있다고 할까.


“자동차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지. 그런 점에서 나는 내 차에 정말 애정을 가져요. 잘난 사람 많고 북적대기만 하는 서울이 무에 좋겠소? 이곳에 있으면 그저 조용하지.” 조박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야시원 뜰은 겨울날 오후의 햇빛 아래서 조는듯 조용하기만 했다.
경제학계에서 큰 봉우리를 이루는 훌륭한 학자이면서 불을 뿜는 듯한 명강의로 수많은 제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존경받는 스승이기도 한 조동필 박사. 그러나 야시원 뜰에서의 그는 오히려 평범한 촌로의 편안함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생활 자체를 그는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틈이 나는대로 고향의 촌로들과 어울려 막걸리 잔을 주고받고 환담을 나누며 시간보내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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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원의 집 뒤를 둘러싸고 있는 수림(樹林)과 잘 가꾸어진 정원의 어느 한끝에도 조박사의 손길이 스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곳에서 조박사 내외는 마치 어린아이들 처럼 투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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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시골에서 사는 즐거움의 하나지. 그리고 시골에는 성급함이 없거든. 그게 좋아요. 난 차로 하루에 1백km이상 달릴 떄도 있을 만큼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지만 도로에서 마주치는 다른 차들을 보면 가끔 안타까울 때가 많아.” 바로 성급함 때문이라는 것이 조박사의 말이다.

 

“사람들이 왜 모두 그렇게 바쁘고 조급하게 서둘러 대는지 모를 일이에요. 앞차가 가다가 뻔히 신호대기에 걸려 서 있는걸 알면서도 위에서 클랙슨을 울려대거든, 외국에서는 절대로 그러는 법을 내가 못 봤어요. 거기다 지독한 끼어들기, 차선 무시하기, 어디 가슴 서늘한 일이 한둘이라야지. 이게 다 우리나라의 조급한 국민성 떄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면 자괴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야.”

 

주거지는 도심권 밖이어야
조박사는 특히 요즘의 젊은 오너 드라이버들은 성급함을 버려야 한다고 당부한다.
“세상에 성급하게 서둘러 될 일은 하나도 없지만 특히 자동차 운전은 1~2분 빨리 가겠다고 서둘러서는 안돼요. 그게 목숨과 직결되는 일인데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겠소?”
그래서 그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를 자동차의 운전의 제1과 라고 자주 말한다.


운전 뿐 아니라 모든일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조박사는 생활에서도 그것을 실천하고 있다.조박사가 맨 처음 야시원에 거처를 정했을 때 그곳은 드넓은 황무지에 불과했다. 그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황무지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기 시작했다.입구에서부터 저절로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지금의 야시원은 그렇게 그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을 만큼 정성을 들여 탄생시킨 것이다.


집 뒤를 둘러싸고 있는 빽빽한 수림(樹林)과 잘 가꾸어진 정원의 나무 한 그루, 돌 하나에도 그의 손끝이 스쳐가지 않은 것이 없다. 슬하의 6남매는 모두 장성해 각기 독립해 살고 있어서 이곳에서는 조박사 내외만이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천진하고 투명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전원생활은 모든 도회인의 꿈이고 실제로 오너 드라이버들이 늘어나면서 도심권 박으로 주거지를 정하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다.


그러고 보면 조동필 박사의 야시원 생활과 그의 카라이프는 앞으로 오랫동안 모든 전원생활을 꿈꾸는 도회인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재 198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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